객지에서 영양부족으로 돌아온 자식을 위해 붉은개미를 직접 잡아…

태국은 이번주가 송끄란연휴 입니다. 보통 물축제를 하는 시기로 잘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의 설연휴 같은 개념입니다. 그래서 많은 기업체들이 일주일 연휴를 가집니다. 저의 태국지인들도 고향으로 돌아갔더군요.

태국은 땅이 좀 넓은 나라죠. 그래서 멀리 사는 사람들은 도중에 1박을 하기도 합니다. 한국/대만 이런 땅좁은 나라에서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상황인데요.  대만은 북쪽끝에서 남쪽끝까지 차로 이동하면 대략 6시간전후면 도착합니다. 

하지만 태국에서는 방콕에서 푸켓갈때 저도 1박을 했었죠. 그리고 북쪽 끝에서 중남부 이하로 내려가게되면 하루 1박을 해야 합니다. 무튼…

보통 객지에서 살고 있는 자식들이 고향에 오면,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맛있고, 좋은 음식을 해 먹이려고 하기 마련이죠. 이번에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 에서도 보면 서울에 사는 딸이 고향 제주도에 가면 이것저것 계속 먹이는 엄마를 볼 수 있는데요.

태국에서는 개미와 개미의 애벌레를 먹습니다. 객지에서 영양보충도 못 하고 삐쩍마른 자식을 보면서 어머니가 마음이 아팠는지 ‘붉은개미’ 를 직접 잡아서 요리를 해 주었다고 태국친구가 보내주었네요. 

붉은개미가 보통 저렇게 나무에 집을 짓고 서식을 한다고 합니다. 그걸 소쿠리에 담는다고 하는데요.

많은 개미들이 보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태국의 시골은 정말 먹거리 걱정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일년내내 더운 날씨에 각종 야생동식물이 다양하게 엄청 많습니다. 한국처럼 ‘보릿고개’ 같은 그런 시기가 없을 것 같습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자라기도 엄청 잘 자랍니다. 

뭔가 엄청 고단백에 영양은 많을 것 같습니다. 아직 붉은개미는 못 먹어 봤는데, 다음에 태국가면 꼭 한 번 직접 잡아서 먹어 봐야겠습니다. 

태국친구의 어머니가 직접 붉은개미를 잡는 영상을 보내 와서 소개를 해 봅니다. 쥐, 뱀 이런 고기를 약간 거부감이 있긴 한데, 곤충들은 ‘고.마.운.단.백.질.공.급.원.’ 이죠. 

태국시골생활에서 가장 부러운 것 중 하나는 저렇게 직접 불을 피워서 물을 끓인 후 커피를 타서 마신다는 겁니다. 

비 내리고 약간 쌀쌀할 때 저렇게 불을 쬐면서 커피 마시면 그것만큼 행복한 것이 없죠.

그리고 아직 태국송끄란 물축제 안 가 보신 분들은 꼭 한 번 가 보시길 바랍니다. 즐겨볼만 한 축제입니다. 

사격연습을 하는 태국지인 아가씨

오랜만에 태국지인의 시골살이 모습을 소개해 봅니다. 보통 한달 정도 모아서 내용을 올리는데요. 이번 겨울은 태국북부지역도 상당히 추웠다고 합니다. 밤에는 영상 10도까지 떨어졌다고 하네요. 제가 살고 있는 대만도 밤에 10도까지 기온이 떨어지면 난방기를 켭니다. 

혹시라도… 영상10도에 난방을 하는건 전기낭비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한국의 아파트거주자가 있을까봐 설명을 드리면… 태국은 말할 것도 없고 대만의 주택들은 대부분 단열에 취약합니다. 한국의 아파트들은 창문도 이중으로 되어 있고 위아래옆이 모두 집들이라 나는 난방을 하지 않아도 실내에는 온기가 있는 경우가 있죠. 하지만 태국이나 대만은 건물내가 더 추울때도 있습니다. 올해도 뉴스를 보니 영상10도인데 한파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78명이 나왔다는 그런 뉴스도 있고요. 최근에 저의 카페에 식자내 납품해 주던 아주머니도 급심장마리로 운명을 다하셨습니다. 그 아주머니 나이도 그렇게 많지 않고, 지지난주까지만 해도 직접 트럭 운전해서 배달을 해 주셨는데요.

무튼 올해는 태국북부도 상당히 추웠다고 합니다. 

농사일을 하는 소가 진흙에 빠져서 트랙터를 이용해 꺼냈다고 하네요.

태국시골지역 여행을 하다보면 아직도 소를 이용해서 농사를 짓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고, 소를 방목해서 키우는 모습도 볼 수 있으며, 가끔 소를 몰고 이동을 하는 모습도 도로나 초원에서 볼 수 있으며, 어떤 분은 오토바이를 타고 소떼를 이동시키기도 하더군요. 

사격연습을 하고 있는 저의 지인아가씨 입니다. 남편의 지도?를 받으며 사격연습을 하는 모습인데요. 

다행히? 실제총은 아니라고 합니다. 

태국은 실제로 총기가 많습니다. 합법/불법적으로 총기도 많고 총을 구입하기도 쉽습니다. 

얼마전 대만에서 태국친구랑 운전을 하고 가는데, 앞에서 차량끼리 시비가 붙었더군요. 차량 한대가 창문을 내려 중간손가락을 보이자 태국친구가 “태국 같았으면 총을 보여 줬을건데…” 라고 농담을 하더군요. 태국에서 이사를 들어 갔는데, 기존 사람 물건들 중에 탄피가 한박스 있기도 하더군요. 그만큼 개인이 총기를 휴대하기 쉬운 나라이니까 조심해야합니다. 

이 아가씨는 도시의 공장생활 청산하고 귀향해서 농사짓고 있는데요. 이전 남편과 둘이서 공장에서 일을 할 때 보다는 훨씬 스트레스 덜 받고 즐겁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도시에 살다보면 저렇게 낚시 한 번 하러 가는 것도 하나의 큰 일이고, 저 같은 경우에는 평생 낚시를 해 본 적도 없습니다. 이 친구는 생활속에서 늘 물고기를 직접 잡아서…

다양한 형태로 조리를 해서 먹습니다. 태국의 민물고기는 크기가 엄청 큽니다. 저는 어릴적 크기가 작은 한국토종민물고기 위주로만 봐서인지 열대지방의 민물고기는 그 크기면에서는 압도적입니다. 

쥐고기는 자제하려고 했는데…

쥐도 엄청 자주 잡아서 먹습니다.  저기 쥐들 보이시나요?

들쥐 입니다. 그래서 도심의 하수도에서 사는 그런 쥐들보다는 깨끗?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대만의 시골마을만 해도 쥐들이 많습니다. 주변이 온통 논밭, 과수원, 공터, 폐가 들이니까요. 야생고양이가 그렇게 많음에도 쥐들이 출몰하는 걸 보면 쥐들도 개체가 엄청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쥐가 얼마나 많냐면, 저의 마을 도심에 있는 가게 큰 차랴이 지나다니는 도로에도 쥐들이 돌아 다닐 정도이니까요.

여기는 음식을 만들때 저렇게 장작을 피워서 조리를 하거든요. 그럼에도 올 겨울은 좀 더 추워서인지 불을 쬐는 사진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날씨가 쌀쌀할 때 불을 쬐면서 커피한잔하면 좋죠.

늘 다양한 삶을 소개하려 합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꼭 특정 하나의 삶의 방식대로 못 살았다고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지난 춘절 전날 저녁 5시경. 가끔 저의 카페를 찾는 여자손님 한 명이 혼자 와서 라면을 시키더군요. 그래서 제가 물어 봤죠.

“춘절인데 집에 안 갔냐?”
“부모와 친척들 만나기 싫어 안 갔다”

“무슨 일 있냐?”
“부모님도 그렇고 친척들도 나에 대해서 잔소리를 많이 한다. 졸업했는데 아직 직장도 못 구해서 부모님이 늘 잔소리를 한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를 해 줬죠.

“내가 인생을 경험해 오다보니 나이가 많은 사람들 중에는 그냥 숫자만 많은 사람들이 많더라. 그 노인들이 뭘 알겠냐? 그 나이를 먹도록 아직도 그런 <분간> 을 못 한다는 건 지능이 낮거나 지혜롭지 못 하다거나 인생의 철이 덜 들었다는 거다. 그냥 안 만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너의 부모에게도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해 줘라. 자식한테 계속 그렇게 하면 나중에 노후가 엄청 외롭고 고독해 질 수 있다”

실제로는 더 심하고 강도높게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당시 분위기가 춘절전날인데 여자혼자 와서 라면시켜 먹는 모습에 제가 어떤 형태로라도 위로의 말을 좀 해 주고 싶었었거든요. 

사실 그 손님이 저의 카페 밖에서 2번 정도 들어올까 말까 기웃거리고 돌아갔다가 다시 들어 온 걸 제가 봤었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건 그냥 살아온 년도가 많다는 거지 그 사람이 더 현명하거나 지혜롭거나 존경을 받아야 할 위치에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이가 많은 사람들 중에도 철딱서니가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글을 읽는 젊은 분들은 굳이 뭐 그런 나이만 많고 <사리분별> 못 하는 그런 사람들 사고에 얽매이지 마시고 다양한 삶이 있다는 걸 인지하시고 다양한 인생을 즐기셨으면 합니다. 차이컬쳐에서는 늘 다양성을 소개하고 존중하려고 합니다. 

태국지인이 잡은 민물고동의 크기

어릴적 방학때 시골가면, 강에서 작은 다슬기 잡아 반찬으로 해 먹고, 또 위의 사진과 같은 논고동도 잡아서 반찬으로 해 먹었거든요. 그 당시에는 시골에 딱히 고기반찬이 흔하지 않던 시기라 동네 강가나 논두렁에 가서 저런 고동류나 물고기 잡아서 반찬으로 많이 해 먹었습니다. 

오늘은 최근 태국지인의 태국시골살이 모습을 다시 소개해 봅니다. 이 태국지인은 고향을 떠나 도시근처 공장에서 직장생활 하다가 미래에 답 없음을 느끼고 다시 고향으로 가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중입니다. 

한국에서는 저런 크기의 논고동을 본 적이 없습니다. 역시 태국 열대지방의 힘. 대체로 강속의 다슬기 보다는 논고동이 크긴 해도 사람 손바닥만 하지는 않았거든요. 이건 반찬이 아니라 주요리로 해 먹어도 될 듯 합니다. 

한국시골 강가에도 붕어가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생때 강속에서 손으로 붕어를 딱 한번 잡아 봤었는데요. 돌틈 사이에 손을 넣었는데, 뭔가 물컹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첨에는 이상한 동물이나 뱀일까봐 무서워 손으로 꽉 쥐고 빼내 보니 붕어더군요.

제 기억으로 제가 초등학생시절 민물고기들이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고만고만한 크기의 민물고기들을 ‘많이’ 잡아 주로 탕으로 해 먹었습니다. 

차이컬쳐에서 몇 번 소개를 했던 메기인데요. 이번에는 저렇게 통발로 잡았습니다. 그물로, 통발로…

크기가 좀 있는 물고기는 이렇게 구워 먹어야죠.

이 지인뿐 아니라, 현재 저와 연락하는 태국지인들은 모두 엄청 잘 먹습니다. 사진을 주고 받고 하니 생활하는 모습을 알 수 있는데요. 대체로 느끼는 건 먹는건 정말 잘 먹는다는 겁니다. 

이게 날씨가 더우니까 가능한거죠. 동식물이 자라도 빨리 자라고, 자라면 크게 자라고. 인구밀도는 낮은데 자연이 넓으니 각종 동식물도 많구요.

저기 왼쪽에 보이는 건 옥수수처럼 보입니다만.

물론 저 태국지인의 집 주변에도 옥수수도 있고, 바닥에 호박/오이류도 보입니다. 

하지만 쟤는 옥수수가 아니라 밥을 뭉쳐서 직화로 구워 놓은 겁니다. 살짝 누룽지 느낌도 나구요.

대만에서도 많이 생산이 되는 석가 라는 과일인데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먹고 있습니다. 대만이 산지이긴 하지만 큰 건 그래도 개당 대략 4000원 정도인데요. 저 태국지인은 집 주변에서 따서 먹는 모습입니다. 대만오시면 저 석가 꼭 드셔 보세요. 지금 먹고 있는 것도 엄청 달고 맛있습니다. 

저 지인들 공장에서 일 할 때 정말 힘들고 어렵게 살았거든요. 태국공장의 (일반생산직) 월급은 정말 낮습니다. 거기에 지저분하고 열악한 단칸방도 빌려야 하고, 도시라서 기본생활비도 많이 들어가고.

많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돈이 없어 도시를 떠나지 못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저 지인들은 고향에 저렇게 큰 집과 땅이 있고, 무엇보다 농장이 있어서 본인들이 할 일도 있고, 수익도 조금 낼 수 있으니까요.

서울에서 200만원 받고 월세내고 비싼 생활비 부담하면서 스트레스 받으며 사느니, 적게 벌더라도 저렇게 자기 집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뭐 월급이 아주 많으면 참으면서라도 살겠지만, 저 지인들은 월급도 낮고 삶의 질이 말이 아닌 수준이었습니다. 

도시에 살아도 가난한 젊은 사람들 지금 많거든요.

태국시골의 논 게 잡아 먹는 모습

태국지인들 먹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평소 제가 먹는 것 보다 더 다양한 영양소를 다양한 먹거리에서 섭취하는 것 같은데요. 특별한 일이 없는한 일주일내내 먹는 것들이 거의 비슷한 저로서는 태국의 저런 다양한 식재료가 이상적이라 생각합니다. 

태국시골에서는 다양한 식재료를 ‘집주변’ 에서 직접 구하는데요.

땅은 넓은데, 기온은 늘 높고, 숲, 농지, 산, 하천, 강들이 잘 조성되어 있는데다가 인구밀도도 그다지 높지 않아서 주변에서 다양한 식자재를 직접 구하더군요.

제가 어릴때 시골에서만해도 개구리, 메뚜기를 잡아 먹었습니다. 

태국시골 시장에 보니 개구리를 많이 내다 팔고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분중에, 호박꽃 가운데 암술떼어내서 그걸로 개구리 낚시 해보신 분 있으신지 모르겠네요. 저는 방학때 시골가면 그 개구리낚시도 자주 했었거든요.

얼마전에 태국지인이 쥐를 먹는 모습을 소개해 드린 적이 있는데요. 들쥐에 비하면 개구리는 난이도가 좀 낮지 않나요?

제 주변 태국지인들은 어릴때부터 들쥐를 잡아서인지 죽은쥐 꼬리를 들고 사진찍어 저에게 보내주면 저는 기겁을 합니다. 

최근에는 논에 사는 게를 잡아서 먹더군요.

작은게는 우리나라에서도 간장등에 졸여서 먹잖아요.

직접 잡아 직접 손질까지 하는 태국지인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태국지인이 논 게 잡아 오는 모습을 유튜브쇼츠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보러가기)

다음엔 집주변에서 메기잡는 모습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태국시골의 가정집형태의 반야외 건축설계사무소 찾아간 이야기

태국시골의 어느 건축사무실에 가서 상담을 받아 보았습니다. 시골의 건축사무실이라 건물 아래의 반야외 사무실입니다. 사무실이 반드시 빌딩의 실내여야 한다는 건 또, 도시에 사는 우리의 선입견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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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고 있는 대만도 그렇고, 저기 태국도,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시골지역에서도 저렇게 오래된 건물들을 개보수 하거나 새롭게 현대식 건물로 지어서 좀 더 편하게 생활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골지역에 가 보면 건물 저렇게 잘 지어놓은 걸 종종 볼 수 있는데요. 

보통 집을 지어 올리려면 땅이 가장 큰 문제이고, 땅 값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싸고 넓은 땅이 있으니, 도심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저런 널직한 주차장이 있는 주택을 지을 수 있는 겁니다. 서울에서도 좀 오래된 아파트나, 빌라에서는 또 주차문제가 큰 스트레스죠. 어떤 분들은 생활패턴이 주차자리에 의해 좌우된다 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주차장소 때문에 왠만하면 차끌고 안 나가거나 일찍 들어온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북미의 주택가 가면 주차장 있는 차고 주택이 부럽습니다.

일반 주택이 아니더라도, 위의 사진처럼 주택+카페(영업가게) 등을 새롭게 지어서 주거도 하면서 내 건물에서 상업활동도 하는 귀농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사실 이런 경우가 가장 부러운 경우이죠.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여기 대만의 마을주민 중에도 도시에서 살다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여기 고향으로 돌아와서 저런 식으로 건물을 아주 현대적으로 지어 주거도 하면서 한켠에서는 영업도 하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내는 이런 비용중에는 ‘땅’ 에 지불하는 비율이 높은데, 이렇게 땅이 있으면 그 비용을 확 줄일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골지역에서도 건축사무소가 있고, 첫번째 사진처럼 시골지역에 특화?된 시골스러운 사무실에서 영업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겁니다. 

제가 찾아갔던 건축설계사무실은 저기 보이는 가정집의 1층부분에 있었습니다. 저기다가 컴퓨터, 프린터 및 각종 사무집기를 두고 영업을 하고 있더군요. 
얼핏생각하면 저런 곳에서 영업하고 있으면 믿을 수 없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오히려 도심의 이상한 사무실에서 책상 하나 컴퓨터 하나 두고 하는것 보다야 더 신뢰가 가죠. 왜냐하면 저기는 자기땅에 자기집에 자기가족들이 다 2층에서 생활하는 곳에서 영업을 하는 거니까 일단 신분보장은 확실합니다.  

저기 보시면 갓 걸어 말리고 있는 빨래들도 보이고, 주방용품들도 보입니다. 가스통도 있구요.

여기도 설계견적도 받아 보았는데, 설계견적디자인 비용을 미리 받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설계디자인 비용은 받았다가 만약 계약이 진행되면, 설계디자인비용은 돌려 주는 보증금 형태더군요.

도시에서 설계사무소 하면 도심빌딩속만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런 태국시골에서는 이런 형태의 사무실도 있다는 걸 소개해 보았습니다. 코로나팬데믹 이후 사무실의 정의와 근무형태의 변화가 찾아 오긴 했죠. 

저도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라 노트북 펼칠 곳만 있으면 업무공간이 되기는 합니다. 태국친구 시골집에서 며칠 머물렀는데, 제가 방으로 사용했던 목조시골집 2층 저 공간에는 전등이 없더군요. 그래서 휴대하고 있던 스탠드를 키고, 테이블 같은 것이 마땅치 않아 생수팩을 놓고 컴퓨터를 했는데… 불편하죠. 허리 아프고…

전체가 목조건물이고 바닥도 목재라서 저렇게 아래층이 나무 사이로 보이는 형태입니다. 친구부모님 방이 나무틈 사이로 보이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태국친구 및 부모님, 언니, 여동생부부등이 밤에 일찍 잠을 자는데, 제가 컴퓨터 하거나 화장실 간다고 나무바닥을 밟으면 소리가 집안 전체에 크게 나서 조심조심 생활했습니다. 

당시 제가 머물렀던 2층 공간입니다. 모기장 안에서 머물렀죠. 시골간다고 전자모기향 2개를 가지고 갔었으나, 저렇게 넓은 공간에서 전자모기향은 무용지물 입니다. 그리고 벌레도 엄청 많고, 실내에 먼지도 많습니다. 낮에는 창문을 다 열어 놓으니까요. 그럼에도 저에게는 저런 곳에서 며칠간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태국친구와 자매들에게 물어 보았죠. 왜 이 오래된 집을 좀 현대식으로 개조하지 않냐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일단 경제적인 여유가 없고…

그리고 또 부모님이 돈이 조금 생기면 농지를 더 사지 집을 편하게 개조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해 드리면…  땅은 사 두면 나중에라도 오를 수도 있고, 농지는 거기서 수확을 해서 수입을 발생시킬 수 있죠. 그런데 집은 짓는 순간 그 때부터 감가가 발생이 되어서 계속 집의 건물가치는 떨어집니다. 그리고 건물은 유지보수비용도 들어가구요. 그래서 저런 시골어르신들은 평생 저렇게 살아 왔으니 그냥 저렇게 사시는거죠. 그럼에도 도시에서 살다 가끔 오는 딸들은 불편하고, 온수가 없어서 온수기를 사서 설치를 한 적도 있는데, 부모님은 온수기에 들어가는 ‘전기료’ 아낀다고 온수기 사용 안 하신다고 하시더군요. 사람 사는 곳 다 똑같습니다. 이전 저의 할아버지 집도 재래식 화장실이 너무나 불편했는데, 수세식변기를 주방에 설치를 해 놓고선 한번도 사용 안 하시고 끝까지 밖에 있는 재래식화장실만 사용하셨습니다. 

당시 저렇게 전등없이 지내니 지낼만 하더군요. 물론 며칠만 지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데 온수가 없으니까 그건 좀 불편했습니다. 더운나라 태국이라도 겨울철 아침저녁은 쌀쌀합니다. 특히 저 곳은 북부 시골이라 아침저녁은 좀 쌀쌀하죠. 그런데 찬물샤워를 해야 해서 그게 좀 힘들긴 했습니다. 

다 돈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저 부모님도 돈이 많으면 자식들 하고 함께 생활하는데 왜 현대식 편리한 집을 짓고 싶지 않겠습니까?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함께 살고 있는 딸부부가 최근에 임신을 해서 곧 손주도 볼 거라고 하는데, 돈이 많으면 새건물 짓고 싶겠죠. 부모세대라고 불편한 곳에 사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면 안 됩니다. 돌이켜 보면 저의 조부모, 부모님들도 그냥 가난하니까 참고 살았던 것 뿐입니다. 

태국친구가 친구의 농장에서 뱀 잡았다고 사진을 보내 왔네요

오늘 태국친구가 친구농장에서 큰 뱀을 잡았다며 사진을 보여 주더군요. 보니까 사탕수수밭 인 듯 한데요. 저도 태국친구의 시골집에 갔다가 저런 사탕수수밭을 간 적도 있고, 저런 농장에서 일을 도와 준 적도 있습니다. 그 때 마다 늘 머리속에는 뱀 생각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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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은 없는 뱀 같네요. 오히려 독이 있는 뱀보다는 저렇게 큰 뱀이 한 번 싸워볼 만하죠.

저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는 편인데, 지금도 뱀 잡으러 반바지 입고 숲속에 들어가거나, 뱀 잡으러 숲속, 물속 뛰어 들어가는 모습보면 저게 진짜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도 저 농장에 가서 일을 도와준 적이 있거든요. 태국에서도 그렇고 중국에서도 그렇고 이런 농장은 뱀도 무섭고, 저녁에는 살짝 무섭긴 합니다. 

제가 이런 형태의 농장을 처음 가 본 것이 2000년 중국의 어느 시골 중의 시골마을 이었는데요. 친구집에 가 본다고 따라 갔었죠. 그 당시에는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처음 배울때 여서 이것저것 ‘중국인들처럼 해 보기’ 를 실천하던때라 시골마을 갈 기회가 있어서 가 보았습니다. 정말 시골입니다. 사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대만 이 곳을 ‘시.골’ 이라고 하지만 중국에서의 시골과는 비교과 되지 않습니다. 거기는…

위는 태국시골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2000년 그 당시 중국친구 시골마을은 주변이 온통 옥수수밭이었습니다. 그 때가 옥수수가 한창 높게 자랐던 시기였는데, 해가 질 무렵 옥수수밭 옆에서 옥수수밭 안쪽을 바라보니 살짝 공포스런 느낌이 들더군요. 들어가서 누가 죽어도 아무도 모를 정도의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 친구 시골집도 목조로 된 정말 다 쓰러져 가는 집이었거든요. 

중국에서 간혹 친구집에 여행을 다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래도 자식이 외지에서 외국인친구 데리고 왔다고 하면 없는 살림이지만 조금 성대하게 음식도 차려 내어 주고 하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 부모님은 뭐랄까… 집이 찢어지게 가난한 그런 집이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그 부모님의 모습이나 집의 정확한 구조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거의 다 쓰러져 가는 목조건물 부엌에서 그 대학교친구와 쪼그리고 앉아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던 기억은 어슴프레 납니다. 그리고 마을 전체에 어둡게 펼쳐져있던 그 옥수수밭들… (참고로 중국의 시골 옥수수밭은 면적이 엄청 넓습니다)

제가 학생때도 그렇고 업무적으로도 그렇고 중국시골은 참 많이 다녔었거든요. (차이컬쳐 시즌1 부터 보신 분들은 그 수 많은 이야기들 아실 겁니다)

대체로는 시골을 가더라도 어떤 곳은 좀 목가적인 여유로움이 느껴 지기도 하고, 사람들의 표정이 해 맑기도 하고 그래서 즐겁게 있다가 오는데, 당시 저 중국친구의 고향집과 부모님의 얼굴표정은 그야말로  가.난.에.찌.든.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연태대학교에 있을때, 학교 한국여자후배와 함께 거기서 공부를 했었는데요. 어느날 그 여자후배가 저에게

“선배, 여기 여학생들 생리대가 없어서 휴지로 생리대를 대신해서 사용해요”  

라고 하면서

“(우리 도와주는) *** 있죠. 걔도 보니까 생리대가 없어서 휴지로 사용해요”

라고 말을 하더군요.

전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여자들은 모두 생리대를 사용하는 걸로 생각을 했었고, 생리하면 당.연.히. 생리대라는걸 사용하는 거겠지 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여자들의 생리대에 대해서 자세히 관심조차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집에서 농장까지 거리가 좀 있어서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쉴때는 근처에 있는 이런 움막에서 간단히 음식도 해 먹으며 쉰다고 하더군요.

제가 차이컬쳐에서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요.

“저는 중국 다녀 와서 철이 들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라구요. 아무튼 그래서 그 중국친구는 학교에서 우리를 많이 도와줬던 친구라 저도 더 감사한 마음으로 밥도 사 주고 많이 도와 주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23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시골농장의 사탕수수/옥수수밭 이야기가 나오면 그 당시의 그 친구 시골이 생각납니다. 그 때 보았던 해가 진 직후의 옥수수밭의 공포스런 그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고, 그 가난이 찌들어 있는 부모님의 표정과 목조시골집이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갑자기 이야기가 삼천포로 흘렀는데, 아무튼 저런 옥수수밭이나 사탕수수밭은 실제로 들어가려고 하면 살짝 무섭습니다. 특히 해가 지고 나서는 정말 무섭습니다. 

저 태국친구 말로는 이 고무농장의 일은 새벽3시 ~4시경에 나와서 일을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기후때문에 덥지 않을때, 저 고무관련 일을 하러 농장에 가야 하는데, 보니까 여자 혼자서 오토바이타고 가서 일을 하더라구요.

제가 무섭지 않냐고 하니까, 무섭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이런 깊은 시골 농장에 밤이 되면 무섭겠죠. 그것도 여자혼자서 일을 하는데 얼마나 무섭겠어요.

그리고 뱀 안 나오냐 물어보니 뱀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런 긴장화를 신는 거겠죠.  그런데 보통 뱀과 마주치는 순간에는 뱀이 먼저 도망을 간답니다. 

저보고 새벽에 함께 나와서 일을 하자고 했었는데, 차마 새벽 3시에 농장일은 못 하겠더군요.

일하다가 힘들면 여기서 쉬어도 된다는데, 여기가 더 무섭…

저 해먹에 누워 있으면 왠지 뱀이 아래 위로 지나갈 것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태국시골, 중국시골 이야기를 좀 하면서 이전 중국시골 다녔던 생각을 떠 올리다 보니,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대만 여기는 ‘시골’이라 부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여기는 완전 번화한 대도시 느낌인데요.

태국은 2020년대에 돌아 다녔고, 중국은 2000년대에 돌아 다녀서인지는 몰라도, 중국의 시골들은 정말 시골이었네요. 그 당시에는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었고, 제 친구의 시골집에도 그 마을에서 전화기가 몇 곳만 있었고, TV가 흑백으로 이전 브라운관 TV 였으며 그나마 TV에 달린 안테나로 춘절관련 방송을 보는데 화질이 너무 안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태국친구의 시골도 엄청 시골이긴한데, 휴대폰이 있고, 휴대폰으로 인터넷이 가능하다보니 뭔가 고립된 느낌은 좀 덜 한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은 태국친구가 농장에서 뱀 잡은 사진을 보내 주길래 시골이야기 한 번 해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태국시골도 아직 엄청 가난합니다. 그리고 이런 시골지역 사람들의 경제상황, 주거환경들이 너무나 열악합니다. 

제가 차이컬쳐에서 다 못 다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어떤 부분은 이야기를 하기가 너무나 민감한 부분도 있어서 차마 올리지 못 한 내용이나 사진들이 많습니다. 

그런걸 보면서 저는 늘 경제적으로 엄청 부유하다 생각하며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중국생활하면서 물질보다는 ‘사람’ 이 먼저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또, 저의 차이컬쳐 전체 기조도 ‘사람’ 이구요. 

태국 몽다리마을에서 배타고 둘러본 수몰지역(12)

몽다리마을에서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행사를 마치고, 배를 타고 수몰지역의 멋진 풍경들을 보러 갑니다. 이 지역은 댐이 생기기 전에는 육지였는데, 댐이 생겨 대규모 호수가 생긴 뒤에는 일부 수면위의 건물들이나 풍경들이 남아 오히려 멋진 장관을 연출하는 곳입니다. 
2회에 걸쳐 여길 여행했는데, 강수량/저수량 등등에 따라 보여지는 풍경이 다르더군요. 저는 첫번째 갔을때의 풍경이 더 좋았고, 특히 위 사진의 여기 풍경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이런 멋진 자연풍경을 감상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사진은 첫번째, 두번째 방문의 것을 함께 올려 보겠습니다. 

<제목을 클릭하면 아름다운 사진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공양을 마친 뒤 민박에 가서 옷을 갈아 입고 저기 보이는 몽다리 아래 선착장으로 갑니다. 배는 민박을 통해 구했습니다. 첫번째 태국친구의 가이드로 와 봤다고 두번째는 수월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태국어가 전혀 안 되고, 여기 분들도 영어가 안 되어서 전화로 태국친구의 도움을 받아가며 여행을 다녔습니다. 
중국어를 배우던 젊은 시절 중국에서 여행을 다닐때는 중국어를 잘 못 해도 스스로 해 나가며 중국어를 습득했었는데, 저도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인지 태국어에 대한 열정은 이전만큼 아니어서인지, 좀 편하게 여행다니는 것이 좋네요.

배를 타고 수몰지역을 다니는 거라 신발이 젖을 수도, 옷이 젖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저는 두번다 비가 내린 날이라서 방수되는 겉옷을 준비했었는데요. 
그리고 두번다 여름이었지만 방한에 대한 준비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비가 내리고 바람불면 여름이라도 꽤 쌀쌀하게 느껴집니다. 

아버지도 반팔만 입고 있다가, 배를 타고 달리니 바람막이를 입은 모습입니다. 제가 계속 바람막이 챙기라고 말을 해도 ‘더운데 뭐하러 귀찮게 이걸 들고 다니노?’ 라고 하시지만…  산악지대 이런 곳은 날씨 변화가 심합니다.
아내는 머리에 왜 수건을 매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현지인이 작은 배를 타고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동을 하고 있는건지, 낚시를 하고 있는건지는 모르겠으나 동력이 없는 작은 배인걸 봐서는 가까운 곳을 가는 것 같습니다. 

배를 세워두고 수몰을 피한 오래된 절에 도착을 했습니다. 

작은 절인데 노인 한분이 바닥을 쓸고 계시더군요. 저기서 바라보는 호수의 전경이 평화롭기도 하고, 뭔가 기괴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다시 배를 타고 간신히 수몰을 피한 절터를 찾아 갑니다. 저기 다른 관광객들을 태운 배가 보입니다. 전체 풍경은 정말 장관입니다. 현장에서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그런 모습입니다. 

위에 보이는 저 곳은 두번째 갔을때는 물에 저렇게 완전히 잠겨서 들어가 보지는 못 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두번째 갔을때 모습입니다. 건물의 절반이 물에 잠겨서 저 곳에는 가보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첫번째 갔을때 저길 들어가 볼 수 있었습니다. 아래사진처럼 말이죠.

배가 접안을 하자 여기서 엄마를 따라 물건을 팔고 있는 아이들이 배를 당겨 줍니다. 

호수의 수위에 따라 볼 수 있는 풍경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방문시기의 운/때 도 좀 맞아야 하죠. 우리 인생처럼 말입니다. 

제가 이전에 중국운남성 호도협계곡을 가려고 했을때 며칠간 계속 비가 내려서 같은 숙소에서 묵었던 홍콩TV촬영팀이 호도협을 들어가지 못 하고 계속 대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거기는 비가 많이 내리니까 산사태 등의 위험으로 입구부터 아예 통제를 해 버리더군요. 저는 통제 풀리고 들어갔었는데, 실제로 곳곳에서 언덕위에서 돌들이 굴러 떨어져 도로에 나딩굴어져 있고, 심지어는 도로가 막혀서 차량은 아예 이동이 안 되는 구간도 있었습니다. 

절터만 남은 곳에 저렇게 부처를 모시고 제단이 꾸며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길 와서 기도를 드립니다. 

저의 아내도 정성스레 기도를 드립니다. 

이곳은 그나마 물에 잠기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와서 기도를 드릴 수 있었는데요. 여기도 상당부분은 수몰이 된 상태입니다. 저기 보이는 저 문도 처음에 왔을때는 아래사진처럼…

저렇게 걸어서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수위가 조금 낮았던 시기의 풍경들이 더 멋있고 볼거리가 많습니다. 

건물 외부에 저런 제단도 있습니다. 한곳한곳 다니며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태국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건물내부에도 이전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그런것들까지 하나하나 보시면 더 흥미로운 여행이 될 겁니다. 

아래사진은 두번째 방문했을 때 찍은 같은 장소입니다.

또 다시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합니다.

여기는 산중턱에 있는 인자한 오래된 불상이 인상적인 곳입니다. 

배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그 불상을 볼 수 있습니다. 저 멀리 산 위에 거대한 불상이 보이네요.

여기서 살고 있는 현지인들이 옷을 입지 않고 있는 아기와 함께 빨래를 하는 모습입니다. 배에 빨래들이 쌓여 있습니다. 

옛날 저의시골에서는 아주머니들이 집근처 시내가 빨래터에서 해가 지면 빨래도 하면서 간단히 목욕도 했었거든요. 여기도 저녁이 되면 호수에서 목욕도 함께 하는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불상을 보러 올라가는 길에 현지인들의 집에 갓 태어난 새끼고양이가 있습니다. 

목재로 된 불상인데요. 이 불상을 처음 봤을때, 뭔가 자주 보던 금속재질의 불상이 아니어서 그런지, 조금은 어렵게 어렵게 도착한 뒤 봐서 그런지 뭔가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종교가 없는 저도 그런 느낌이 드는데, 불심이 깊은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고생해서 와 볼만한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빛의 방향에 따라 느껴지는 표정도 다르고, 내부의 풍경과 주위의 느낌이 확실히 여느 절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물론 여기는 폐가가 된 절이고 동네주민들이 관리를 한다고 합니다. 

낮게 드리워진 구름이 멋있는 풍경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입니다. 아쉽게 두번째는 이 곳이 완전히 물에 잠겨서 아버지와 아내에게 보여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나무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수몰이 되기 전에는 저 뒤의 나무들처럼 울창한 숲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방목을 해서 키우고 있는 소떼들이 저기 언덕에 보입니다. 

탁트인 초원의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이전 건물터의 흔적만 남아 있네요. 그리고 아래둥치만 남은 나무들의 흔적이 풍경의 느낌을 더 살려 줍니다. 

그 와중에 줄기가 많이 남아 있는 나무들도 있습니다. 

구름이 많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이런 날씨와 어울리는 풍경입니다. 혹시 모르죠. 햇살이 화창한 날에는 또 다른 느낌일지…

저희는 옷을 갈아입고 왔는데, 전통복장을 입고 여기까지 온 사람도 있습니다. 확실히 전통복장을 입고 와서 사진을 찍으면 더 잘 나오긴 할 것 같습니다.

거시적인 풍경도 멋있지만, 미시적인 세세한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저 때 마침 새싹들이 솟아 나고 있었거든요. 넓은 초원에 새싹들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습니다.
혹시 넓은 초원에 가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넓은 초원에(인공적으로 조성되지 않은) 작은 여러 색상의 꽃들이 피어 있으면 그것도 나름 장관이거든요. 저는 여행하다가 초원에 꽃들이 피어 있는 모습들을 본 적이 있는데요, 꾸며지지 않은 그런 초원은 정말 멋있습니다. 또한, 꽃이 아니더라도 초원의 풀들이 각각 다른 색상으로 변해서 엄청 넓은 면적을 뒤덮고 있는 그런 모습도 정말 장관입니다. 

가끔 사람들이 많이 없는 이런 곳에 와서 시간을 보내고 싶을때가 있죠. 
저도 여기서 한참을 풍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고요하고 인간세계와 잠시 떨어진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배를 타고 몽다리마을로 돌아갑니다. 많은 곳들을 둘러 보았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더 많은 사진들을 올려 보겠습니다. 

여기는 그나마 나무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네요. 아마 물 속에 남아 있는 집터라 도로의 흔적들이 많이 있을것 같습니다. 그걸 보려면 여기 이 큰 호수가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나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자연재앙이겠죠.
미국의 어느 큰 호수가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내자 호수바닥에서 각종 물건들이 나왔다는 기사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몽다리가 높이가 아주 높습니다. 저기서 뛰어 내리는 사람도 있는데요.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서 주변이 뿌옇게 보일 정도입니다. 갑자기 비가 내리자…

급하게 집을 기둥에 묶는 사람도 있습니다. 수상가옥들이 물에 떠 있는 형태이고, 이동도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급하게 배를 기둥에 묶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곳의 풍경은 정말 멋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마침 구름으로 인해 산들의 색상이 수묵화처럼 농담이 다르게 보입니다. 이전 사람들이 이런 산의 색상을 보고 산수화를 그렸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수몰지역 배여행을 마치고 다시 몽다리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들 구경을 하러 갑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편에 소개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