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련, 특히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태국영화가 이번주 태국에서 개봉을 해서 극장가서 보고 왔습니다. 태국 지인들과 함께 봤는데요.
한국과 관련이 있는 태국영화는 몇년전 ‘랑종’ 이라는 공포영화가 있었고, 그 외에도 제가 모르는 이런저런 영화가 있었겠지만, 마침 제가 태국에 거주를 하고 있는데 상영을 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마침 이 영화에도 랑종 영어제목이 무당/영매 를 나타내는 medium으로 알고 있는데, 그 medium 역할을 했던 여주인공이 저 화보속 여주인공의 엄마로 출연합니다.
마침 부산이 배경으로 나오기도 하고 영화의 소재가 한국에서 불법체류를 하면서 농장이나 술집, 마사지샵 등에서 일을 하는 그런 내용이라 더 관심있게 보았습니다. 저의 태국지인들 중에도 한국에서 저런 형태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영화 관련 사진은 이제 없으니까 영화와 무관한 사진들 올리면서 영화 이야기 조금 해 보겠습니다.
확실히 한국에 태국사람들이 많습니다. 합법/불법 근로자들도 많고 최근 관광객도 많이 늘었죠. 다른 동남아 국가와는 달리 태국사람들은 관광비자로 90일 체류를 할 수 있는 혜택이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이전에 태국이 6.25 참전국가라서 혜택을 준다고 알고 있습니다.
길을 가는데, 속초 라는 한자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순간 ‘저 한자가 한국의 도시 속초 맞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 저 저 束草 라는 한자 뜻이 내가 모르는 다른 뜻이 있나? 아니면 중국의 성어중에서 ‘결초보은’ 즉 풀을 묶어서 왕의 은혜에 보답한 신하의 이야기 인가? 짧은 순간에 머리속에 여러 생각들이 떠 오르더군요. 그래서 선촬영 후검색 을 해 보니 한국도시 속초의 한자가 쟤가 맞더군요. 걸으며 사진 찍으며 영어 뜻도 봤는데, 오른쪽 단어가 불분명해서 현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었는데, 지금 사진으로 보니 BADA surf 아마도 바다 서퍼 라는 뜻인것 같습니다.
저의 태국지인 농장근무장소를 보니까 주로 강원도 경상남북도, 전라남도 쪽이 많더군요. 당연히 농장이 많은 지역이라 그럴 수 있겠지만요.
영화의 내용은 태국시골에서 가난하게 사는 여주인공과 그의 부모가 빚이 있고 여동생 학비 부양을 위해 한국으로 가서 돈을 번다는 내용인데요. 사실을 근거로 영화화 했더군요. 특히 그 영화속에서 태국의 인기가수가 한국에 와 공연을 하는데 그 장소를 급습해서 태국불법체류자 검거한 것도 그대로 묘사를 했더군요.
그 당시에도 검거 방식을 두고 옳다 그르다 말들이 있었죠.
요즘 태국에 중국인 근로자가 부쩍 늘었습니다. 그래서 공장이 있는 지역가면 중국사람들이 운영을 하는 식당이 부쩍 많아졌고, 저렴한 숙박업소에 중국어가 꼭 들어가 있는 모습도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요즘 탈중국 정세로 인해 중국공장들이 태국으로 많이 이전을 하거든요.
중국음식 먹는데, 제가 중국에 있을때 자주 마셨던 王老吉 가 있어서 최근에 마셔 보았습니다. 중국살때 정말 자주 마신 음료였거든요. 한국에는 한때 저게 판매금지가 된 적도 있었는데, 성분중에서 한국에서는 판매를 할 수 없는 성분이 들어 있어 직수입 했다가 판매를 못 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저 영화를 보니 태국인들이 한국에서 사는 모습을 잘 묘사해 두었더군요. 특히 태국/동남아 식재료 파는 슈퍼부터해서, 태국사람들 모여서 저녁 만들어 먹는 모습들까지.
저 왕라오지 음료가 한국에서 성분이슈가 있어 판매금지가 된 적이 있어서 저도 성분표를 한번 보았는데요. 재미 있는건 보통 성분표에 있는 성분만 기입을 하잖아요. 그런데 저기는 굳이 없는 성분 0% 인 항목 3개를 넣어 두었더라구요. 제 추측은, 아마 중국판에서는 저 3개의 항목이 들어 있는데 태국수출판에서는 뺀 것가 싶기도 하고. 겉면을 보면 그냥 직수입한 제품같은데… 굳이 없는 성분을 0 으로 표기해 둔 이유가 궁금하긴 하더군요.
불법체류자를 법무부가 콘서트현장가서 체포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 라고 단편적으로 생각을 할 수는 있는데요. 최근에 트럼프가 불법이민자, 불법체류자를 과도하게 체포하다가 자국에서도 역풍을 맞거나 반대여론에 휩싸이기도 했죠. 제가 최근에, 어느 순간부터는 인터넷의 별 쓸데없는 정보들에 시간소비 안 하는 삶을 살고 있어서 댓글들을 잘 보지는 않는데, 그 당시에 인터넷 커뮤니티 글들을 보면 저런 반대여론에 대해 꽉 막히게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국가정책도 그렇고, 외교관계도 그렇고, 여러 일들을 할 때도 항상 ‘명분’ 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역사책을 좀 보다 보면 ‘명분’ 이 없다고 반대를 하는 신하와 왕의 대립도 많이 볼 수 있고, 상대 조직을 치고 싶은데 ‘명분’ 이 없어서 그걸 먼저 만들려고 선작업을 하는 조폭세계도 볼 수 있죠. 이번 미국/이스라엘 과 이란간의 전쟁을 보면 이스라엘은 이렇든 저렇든 이란을 칠 ‘명분’ 이 조금은 있어서 저렇게 큰 소리 치면서 계속 공격을 하는데, 미국은 다소 ‘명분’ 이 약한 상태에서 전쟁을 하다보니 최근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는 모습입니다.
당시 우리나라 법무부가 그 태국가수 콘서트장을 급습해서 체포를 했다고 했을때, 저 역시도 굳이 저렇게까지 했었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저도 해외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해외근로자로서의 측은지심 이 발동해서 일 수도 있구요.
최근 태국에 저 꽃들이 만개했습니다. 그런데 저 나무는 옆에 있는 나무 사이로 겨우 삐져 나와서 저렇게 꽃을 피웠더군요. 이전에 나무관련 글을 적은 적도 있는데, 도대체 나무들이 서로 소통하고 동물을 공격하고 또 자기들 동종끼리는 나뭇잎마저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성장을 하는 것들을 보면서 이해는 되지만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저 나무는 결국 저렇게 저 나무 사이로 빠져 나와서 햇빛과 벌같은 곤충이 수분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나와 꽃을 피운 거죠.
저의 태국지인들도 한국에서 돈을 벌어 가족들에게 송금하는 돈이 태국에서 몇 달을 벌어도 보낼 수 없는 돈이라고 하더라구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중에도 내 월급에서 생활비, 집값 차값 꼬박꼬박 다 떼내고 나면 돈을 모으기도 힘들고, 만약 부모나 형제를 위해 송금을 하라고 하면 그게 어려운 분들도 많을 건데요. 저의 태국지인들은 대부분이 부모에게 월급의 일부를 보내더군요. 심지어는 태국에서 근무하는 태국지인이 부모에게 월급의 30% 정도를 꼬박꼬박 보내는 모습을 보고 ‘너 그렇게 30%를 부모에게 송금하고 나면 저 생활비는 있냐?’ 라고 물어 본 적도 있거든요. 여러분들 중에도 내 수입의 30%를 부모에게 꼬박꼬박 보내기 쉽지 않잖아요.
다들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저렇게 큰 나무 사이를 비집고 나와 꽃을 피우려 하는 거겠죠.
제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을 것 같다 라고 하자 저의 태국지인이 여기에 데려다 주면서 프로젝트가 잘 되도록 소원을 빌어라고 하더군요. 말은 그렇게 할께 라고 했지만, 저는 신에게 소원을 빌지 않습니다. 늘 저의 카페를 찾아 주는 손님들을 생각하며 감사하게 생각하고 저에게 비즈니스 기회를 주는 회사, 고객사 에게 감사를 합니다. 신이 저의 소원을 들어 주지 않죠. 그냥 제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노력을 하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저 길이 꽤 길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30대 40대 때는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비중이 컸다면, 지금은 돌이켜 보니 운/때 도 어느 정도 많은 작용을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전처럼 그렇게 맹목적으로 무식하게 일을 하지 않죠. 차이컬쳐 시즌1 부터 봐 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참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열심히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더군요.
저 영화는 결국 해피엔딩 으로 끝이 납니다만, 현실은 영화처럼 해피엔딩이 아닐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태국지인들과 이야기를 좀 나눴는데요.
그 중 한명은 아직 해외에서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이야기를 해 주었죠. ‘해외에 여행 가는 것이랑 거기서 돈을 버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저 사람들에 대해 짧게 묘사를 해 두었지만, 해외에서 오래 일을 한 입장에서 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지 조금 짐작이 간다’ 라고.
저는 해외생활 오래했지만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위의 사진은 이 영화와는 무관하게, 그냥 태국시골지역 여행다니다 우연히 보고 찍은 건데요. 담벼락에 페인트로 저렇게 적혀 있더라구요.
“김천시새마을”
가정1. 여기 살고 있는 한국사람이 적었을 것이다.
가정2. 한국농촌에서 일을 했던 태국사람이 돌아와서 그냥 자기가 지냈던 농촌에서 자주 보던 저 글귀와 문양을 그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해외 유학생활 하다 한국돌아오면 그 당시 살았던 곳의 단어, 이름, 거리모습 들이 생각날 때 있으니까요.
오늘도 태국에서의 하루하루 삶은 재미있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이 글을 쓰다보니 세월이 지났음에도 중국에서 외노자생활, 대만에서 외노자 생활도 떠 오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