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시골지역 송크란 여행기 1편 (멋진 꽃나무의 노부부 이야기)

2026 태국의 송크란 연휴를 맞이하여, 시골지역으로 자동차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차이컬쳐에 자주 오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저는 여행다니고 사람만나고 체험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문화, 역사, 인문학 등을 느끼고 배우는 걸 좋아합니다. 사람과 공감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태국의 북부끝, 서쪽끝, 남쪽은 푸켓/끄라비 까지는 자동차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동쪽지역은 가보지 못 했더군요. 그래서 캄보디아와 가까운 동쪽지역, 블랙핑크 리사의 고향이라는 부리람 을 가 보기로 했습니다. 

송크란 축제지역을 차로 이동했는데, 차가 저 지경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 시작해 봅니다. 

여행출발 전날 기름도 가득 넣었습니다. 최근 태국의 주유소 가격이 거의 평소대비 50% 정도 상승을 해서 송크란기간에 차량이 많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막히는 곳은 막히더군요. 그리고 송크란축제기간때는 많은 사람들이 차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제차가 mazda cx-30인데 평소 혼자 출퇴근 하고 여행다닐때는 작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태국친구들과 함께 장거리여행을 가니까 차가 좀 비좁더군요. 세명갈까 네명갈까 의논을 했었는데, 제가 차가 좀 작아서 네명은 장거리여행이 힘들수도 있다 라고 해서 세명만 가게 되었거든요. 세명도 짐들이 좀 있으니까 뒷좌석까지 짐들을 놓아야 하니까 네명 앉았으면 정말 공간이 없을 뻔 했습니다. 

태국친구들하고 여행하는걸 좋아하는데, 만약 네명이 여행을 가게 되면 차량 2대로 이동을 하거나 좀 큰 차를 빌려서 가야겠다는 생각을 이번에 하게 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차가 막히거나 밀리지는 않았습니다. 이전에 혼자서 자동차로 서북쪽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 때 보다 차가 덜 막히는 느낌이었습니다. 참고로 태국의 송크란은 신년연휴 입니다. 

왕복2차로 즉 중앙선 하나를 두고 각각 차로가 하나만 있는 길인데 차가 막힌다고 한쪽을 2개차로로 만들어 이동을 하게 임시로 만들어 놓았더군요. 그런데 첫번째 사진처럼 차들이 반대편 차로까지 진입을 해서 반대편차로를 다 막아 버렸습니다. 보통 이런 시골도로가 막히는 이유는 대체로 저쪽 끝에 병목현상이 있거나 교차로가 있어서 밀리기 시작하니까 정체가 길게 이어지는 건데, 저렇게 들어선다고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거든요. 저렇게 반대편 차선까지 진입을 해 버리면 어떡하나 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반대편에서 차들이 오니까 그제서야 가장 우측의 차들이 중앙으로 이동을 하면서 길을 터 주더군요. 반대편 차량기사분이 비키라고 손짓을 합니다. 

그렇다고 딱히 기분나쁘거나 짜증을 내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이런 것도 생활의 일부분인 듯 보였습니다. 

차가 막히는 곳에서는 저렇게 화장실을 유료로 해서 돈을 버는 사람도 있고, 저런 공터에 그냥 무료로 있는 화장실도 있더군요. 차가 막히니 화장실은 가게 되죠.

그런데 (자꾸 중국과 비교해서 죄송합니다만) 태국에 살면서 늘 놀라운 건 이런 국도변 무료로 방치된 화장실도 그렇게 지저분하지 않다는거. 오히려 한국보다 더 깨끗한 느낌도 있구요. 중국에서는 지방으로 출장가거나 여행다닐때 미친듯한 화장실 환경때문에 힘들거든요. 제가 차이컬쳐 시즌1에 올렸던 화장실 에피소드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태국은 화장실들이 정말 깨끗합니다. 사람들이 뒷처리를 잘 하는 느낌입니다. 

자동차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가다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대로 차를 세워서 사 먹고 또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는 것이죠.

저는 저렇게 분홍색 설탕물 뿌린 빙수 좋아하는데요. 그런데, 저런 곳에서 만드는 빙수류나 얼음이 들어가는 음식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얼음에서도, 물에서도, 만드는 기계 등등에서도 대장균이나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저때처럼 한낮 온도가 40도인 곳에서는 말이죠. 저는 저런 것에 대한 겁은 없는 편이라 그냥 먹는 편인데, 경험이 없거나 하시는 분들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골지역의 송크란축제도 장난 아니더군요. 오히려 방콕시내의 축제보다 더 재미있었습니다. 스님들에게도 물세례를 뿌리고, 저는 군인들에게도 물총을 쏘았습니다. 

뭐 그 이야기는 다음편에서 하기로 하고… 

오늘은 첫째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노부부 이야기로 먼저 시작을 해 봅니다. 

차를 타고 주택가를 지나가는데, 주택의 마당에 너무나 아름다운 꽃나무가 눈에 띄더군요. 잠시 차를 세우고 집 밖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집에서도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범상치 않은 느낌의 주인아저씨가

‘밖에서’ 남의 집 사진을 찍고 있으면 어떡하냐? 라고 호통을 치시면서

어서빨리냉큼 ‘안에서’ 찍지 못 하냐?

라고 해서 안으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실제로 보면 하얀색과 노란색이 살짝 섞인 느낌에 너무나 아름다운 꽃나무였습니다. 

하필 딱 만개를 해서 아름다움이 절정에 다달았더군요. 저 꽃나무가 지금 이시즌에 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란색꽃나무와 같은 품종이라고 하더군요. 원래는 혼자 따라 들어왔는데, 어르신의 태국어를 제가 알아 들을 수가 없어서 차에서 기다리고 있던 태국친구를 데리고 와 통역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교직생활을 하시다 은퇴하고 지금은 정원가꾸며 지내신다고 하시더군요. 아내분도 함께 나와서 정원 곳곳을 함께 설명해 주셨습니다. 

딸 한 명은 국외에서 살고 있고, 나머지 한 명은 저날 송크란이라 집에 온다면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시더군요.

한국기준으로는 상당히 넓은 마당이고, 나름 과실수, 꽃, 채소 등을 다양하게 키우고 계시더군요. 면적이 좀 있어서 주택가의 작은 놀이터 공원만 해 보였습니다. 

집에대한 역사, 조경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 등등을 나누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가더군요. 

저녁에 딸이 오면 주려고 직접 재배해서 키운 과일을 조금 나눠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다음에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집소개해 준 감사의 뜻을 전달하고 싶다고 하고 연락처까지 주고 받아 왔습니다. 다음에 한국에서 작은 선물 준비해서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이야기 나누려구요.

꽃 나무 아래에 들어가서 봐도 꽃이 너무나 아름답더군요. 마침 밝은 태양빛과 어우러져 더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어르신도 저렇게 직접 손으로 꽃의 감싸 안으며 제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기쁨을 표시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 여행을 위해서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DSLR을 꺼냈거든요. 배터리 없는데, 충전기도 없어서 온라인으로 구매해서 DSLR 가지고 왔습니다. 그나마 DSLR로 찍어서 저 정도로 색감이 나 온 것 같네요. 현재 사용중인 휴대폰이 너무나 저가형이라 사진색감이 안 좋아서 아쉬웠거든요.

아무리 사진기가 좋아도 현장에서 직접 느끼는 색감을 전달할 수 없죠.

멋진 오래된 주택에 저런 꽃나무가 있으니 참 분위기 있었습니다. 저걸 보고 오면서 태국친구에게 이야기를 해 줬죠. 한국은 50% 이상이 아파트에 살아서 내 집 마당에 저렇게 하고 사는 걸 경험할 수가 없는데, 저렇게 해 놓고 살 수 있는 것도 큰 행복인 것 같다 라고 말입니다. 

아파트에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과 아파트주변의 상가들을 보면 개성도 없습니다. 

가끔 한국가서 특히 출장가서 아파트단지 주변에 가 보면 ‘기시감’ 이 들 정도로 어디서 본 듯한 구조이고, 이 아파트와 상가가 이전에 어디서 보지 않았나? 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태국친구들이 숙소를 잡았는데요. 갑자기 농지 안 쪽의 비포장 도로로 들어가더군요. 소들이 풀 뜯고 있는 농지 안쪽으로 계속 들어가자 구글맵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위치…

여행의 첫날밤을 이렇게 멋진 풍경이 펼쳐진 곳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저기 숙소를 잡고 나서 저 지역에서 하고 있는 송크란축제를 가 보았는데요. 그 이야기는 다음시간에 해 보겠습니다. 이런 시골지역에 와서 송크란을 보내니까 외국인인 저로서는 정말 색다른 느낌과 경험이었습니다. 오늘 연휴를 마치고 돌아와서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다시 저런 곳으로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이 확 들더군요.

이번 송크란 여행기는 나누어서 올려 보겠습니다. 방콕도심이나 파타야 푸켓 같은 곳에서 올리는 송크란 축제사진은 쉽게 보실 수 있지만, 이런 여행기는 차이컬쳐가 아니면 보기 힘들죠. 

태국 바닷가 어느 수산물시장

오늘은 태국의 해산물시장을 한번 돌아보겠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전통재래시장을 둘러보는 재미를 빼 놓을 수는 없습니다. 인문학에 관심이 많다보니 ‘식재료’와 ‘생활문화’ 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눈여겨 보는 편입니다. 바다가 전혀 없는 중국내륙지역 여행을 해 보시면, 해산물 이라는 개념이 희박합니다. 또, 똑같은 해산물 즉 같은 바다에서 나는 재료를 그 지역의 문화에 따라서도 양념의 강도도 다르고 먹는 것이 있고 먹지 않는 것이 있을 정도로 다르죠.

또, 같은 나라라고 하더라도 시대에 따라서 교통, 운송의 발달 상태에 따라 해안가의 식재료가 내륙이나 반대편 지역까지 전달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내륙지역 사람들이 보면 해산물, 특히 날 것으로 된 회 종류를 이전에는 잘 먹지 못했죠. 그런데 지금은 운송의 한계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서 중국내륙지역 사람들도 날 것으로 된 회를 먹는 사람들 비율이 (아마도) 20년 30년전에 비하면 많이 늘었을 겁니다. 

먼저 바닷가의 해산물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이런 풍경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에 감사를 하며 여행을 합니다. 어쩌면 이런 사소한 것에도 감사를 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여행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리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저 멀리 있는 유명한 관광지를 가는 것도 여행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주변부터 찬찬히 돌아보는 것도 좋은 여행입니다. 적은 경비로 충분히 멋진 여행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식당에서 좀 비싼 요리를 시켜 보았습니다. 

저는 랍스타요리 이런 비싼 요리들에 크게 환상이 없습니다. 어차피 먹어 보면 ‘게살맛’ 게살을 조금 고급스런 식당에서 우아하게? 먹는 것. 아마 랍스타 살을 발라서 일반 저렴한 게살과 블라인드테스트 하면 잘 구분 못 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요.

이전에 상해의 어느 고급식당에서 중국공장사장이 접대해 준다고 비싼 게요리를 시켜 주더군요. 동방명주, 와이탄이 보이는 그런 고급식당이었는데, 게요리를 너무 이상하게 했더군요. 양념이 너무 짜고 강해서 게살의 본연의 맛이 완전히 묻혀 버린 그런 요리였습니다. 그럴거면 그 비싼 식재료를 사용하는 의미가 없죠.

원래 고기도 고기등급이 조금 떨어지거나 안 좋은 고기를 사용해서 양념을 하거든요. 좋은 고기로는 생고기로 냅니다. 

어쨌던 물가싼 나라에서, 또 상대적으로 저렴한 식당이다보니 그 식당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대의 저런 게요리를 한 번 시켜 봅니다. 저런 게는 그냥 이런 저렴한 식당에서 먹는 것이 가성비가 좋습니다. 

내가 식당에서 먹은 식재료의 가격은 얼마일까? 인근에 있는 수산시장으로 와 보았습니다. 

이런 갑각류는 상대적으로 Kg당 가격이 높습니다. 아마도 대량으로 잡기가 쉽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 고무밴드는 잡자마자 해안가에서 바로 묶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기들끼리 싸워서 손상을 입힌다고 하네요.

아마 한국에서 사시는 분들은 실제로 보기 어려운 갑각류가 여기 태국에서는 흔히 판매가 되고 있습니다. 이름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투구게…

저는 저 투구게를 태국의 남부해안지역 푸켓인가? 끄라비 인가에서 먹어 봤는데, 당시에도 양념을 너무 강하게 해서 저 투구게가 정작 어떤 맛인지 느끼지를 못 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다른 곳에서 한 번 먹어 보겠습니다. 

투구게 하면 얼핏 화석으로만 볼 수 있는 생물인지 알고 있었는데, 태국에서는 많더군요.

지금도 발견이 되고 있는 ‘실러켄스’ 라는 고생대 어류처럼 바다속에는 멸종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되는, 혹은 우리가 알지 못 하는 생물들이 훨씬 많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Why Fish Don’t Exist’ 라는 책을 읽고 난 이후로는 ‘어류’ 라는 단어를 쓸 때 한 번 생각을 더 하게 되더군요. 사고의 전환을 하게 해 주는 책이니까 추천드립니다. 저렇게 사고의 전환을 하게 해 주는 책 중 유명한 책은 ‘팩트풀니스’ / ‘Factfulness’ 라는 책도 있죠. 빌게이츠가 추천을 해서 유명하기도 한 책인데, 저도 전자서적으로 구입을 해서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더 읽어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는 책입니다. 통계, 기존의 관념 들 중 많은 부분들이 잘 못 되었거나 사람들이 잘 못 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 주는 책인데요. 사고의 전환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들 입니다.

갑각류도 좋지만, 어패류를 빼 놓을 수 없죠. 해산물뷔페 가면 어패류를 집중적으로 먹곤 합니다. 

제가 방금 저 위의 ‘꼬막’ 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 구글에 ‘조개류 명칭’ 이라고 검색을 해서 ‘꼬막’ 이라는 단어를 찾았는데요. 한국에서는 꼬막도 많이 먹고, 가끔 한국들어가면 꼬막비빔밥인가 도 즐겨 먹는데, 자주 사용하지 않으니까 단어가 생각이 나질 않네요.

태국에서는 꼬막을 몇 번 시도했다가 별로 좋은 기억이 없어서 최근에는 잘 먹지는 않습니다. 한국에 가면 꼬막비빔밥 뿐만 아니라 반찬으로 나오는 위에 양념 올라간 꼬막 정말 좋아합니다. 

저 홍합도 한국식 국물있는 탕 좋아하구요.

이 녀석도 억지로 끌려 나와서 일을 하는 표정이네요. 일하기 싫은데 옷까지 입혀 가지고 휴일에 일하고 있으면 저런 표정 되죠.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저의 집 저 세녀석들도 엄청난 사료값을 감당하기 위해 영업시간에는 카페에 내려와 근무를 강요합니다. 하지만 이 녀석들 자기가 내려 오고 싶을 때만 내려 옵니다. 이 글 아래아래아래에 태국에서 유명한 보트고양이 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마땅히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사료비가 감당이…

오늘은 태국 바닷가에 위치한 해산물시장을 둘러 보았습니다. 여기서는 해산물을 구입하면 직접 조리를 해 주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아마도 대부분은 해산물시장에 가면 주변에 재료를 직접 조리를 해 주는 곳이 있을 겁니다. 물론 비용을 조금 내면요. 대만도 마찬가지 입니다. 섬나라인 대만도 곳곳에 바다항구를 중심으로 해산물시장이 형성이 되어 있는데, 거기서도 구입한 재료를 현장에서 조리를 해 주는 곳이 있습니다. 특히 대만은 열대생선, 특히 남부에 가면 날치가 많습니다. 

많은 나라를 가 보지는 못 했지만, 살고 있는 나라에서는 많은 곳들을 가보고 있습니다. 

저는 ‘세계테마기행’ ‘걸어서 세계속으로’ 같은 여행 프로그램을 좋아하는데요. 물론 인터넷으로, 책으로 세상여행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직접 현장에서 보는 것과 사진한장 영상한컷으로 보는 것과는 그 느낌이 완전히 다릅니다. 

태국 롭부리에 해바라기 평원이 유명한데요. 저는 거기도 다녀 왔었죠. 이전에 운남성 배낭여행 할 때 전기/수도 없는, 심지어 여관 같은 곳도 없어서 그 마을 촌장집에서 1박을 했던 그 마을에 아침일찍 일어나 뒤편 언덕을 올라 갔더니만 수많은 해바라기가 동시에 저를 쳐다 보는 그 광경. 사진이나 영상으로 그 느낌을 형용할 수 없습니다. 

여행지는 아닌데, 이전에 한국회사에서 근무를 할 때 중국 어느 지방도시 출장을 연구원이랑 함께 간 적이 있습니다. 어느 지방도시 작은 교차로에 서 있었는데, 왜 그랬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1960년대 1970년대 영상속으로 시간여행을 한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그 주변의 건물 모습과 차량의 모습 소음, 냄새, 분위기 속에서 뭔가 순간적으로 시간여행을 한 것 같은 감정이 들었습니다. 중요한 건 이 감정을 함께 갔던 그 연구원도 동시에 느끼고는 서로 그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죠. 그런 느낌은 사진에 담을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제가 수많은 여행사진이 있지만, 현장의 그 느낌이 전달되는 사진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간의 교류도 중요시 하는 편이라 사진, 영상, 인터넷 으로는 그 사람과의 감정교류를 하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체력이 될 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곳을 다녀 보려고 합니다.  

한국내 불법체류노동자의 삶을 그린 태국영화 안녕에일리 후기

한국관련, 특히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태국영화가 이번주 태국에서 개봉을 해서 극장가서 보고 왔습니다. 태국 지인들과 함께 봤는데요.

한국과 관련이 있는 태국영화는 몇년전 ‘랑종’ 이라는 공포영화가 있었고, 그 외에도 제가 모르는 이런저런 영화가 있었겠지만, 마침 제가 태국에 거주를 하고 있는데 상영을 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마침 이 영화에도 랑종 영어제목이 무당/영매 를 나타내는 medium으로 알고 있는데, 그 medium 역할을 했던 여주인공이 저 화보속 여주인공의 엄마로 출연합니다.

마침 부산이 배경으로 나오기도 하고 영화의 소재가 한국에서 불법체류를 하면서 농장이나 술집, 마사지샵 등에서 일을 하는 그런 내용이라 더 관심있게 보았습니다. 저의 태국지인들 중에도 한국에서 저런 형태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영화 관련 사진은 이제 없으니까 영화와 무관한 사진들 올리면서 영화 이야기 조금 해 보겠습니다. 

확실히 한국에 태국사람들이 많습니다. 합법/불법 근로자들도 많고 최근 관광객도 많이 늘었죠. 다른 동남아 국가와는 달리 태국사람들은 관광비자로 90일 체류를 할 수 있는 혜택이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이전에 태국이 6.25 참전국가라서 혜택을 준다고 알고 있습니다. 

길을 가는데, 속초 라는 한자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순간 ‘저 한자가 한국의 도시 속초 맞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 저 저 束草 라는 한자 뜻이 내가 모르는 다른 뜻이 있나? 아니면  중국의 성어중에서 ‘결초보은’ 즉 풀을 묶어서 왕의 은혜에 보답한 신하의 이야기 인가? 짧은 순간에 머리속에 여러 생각들이 떠 오르더군요. 그래서 선촬영 후검색 을 해 보니 한국도시 속초의 한자가 쟤가 맞더군요. 걸으며 사진 찍으며 영어 뜻도 봤는데, 오른쪽 단어가 불분명해서 현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었는데, 지금 사진으로 보니 BADA surf 아마도 바다 서퍼 라는 뜻인것 같습니다. 

저의 태국지인 농장근무장소를 보니까 주로 강원도 경상남북도, 전라남도 쪽이 많더군요. 당연히 농장이 많은 지역이라 그럴 수 있겠지만요.

영화의 내용은 태국시골에서 가난하게 사는 여주인공과 그의 부모가 빚이 있고 여동생 학비 부양을 위해 한국으로 가서 돈을 번다는 내용인데요. 사실을 근거로 영화화 했더군요. 특히 그 영화속에서 태국의 인기가수가 한국에 와 공연을 하는데 그 장소를 급습해서 태국불법체류자 검거한 것도 그대로 묘사를 했더군요.

그 당시에도 검거 방식을 두고 옳다 그르다 말들이 있었죠.

요즘 태국에 중국인 근로자가 부쩍 늘었습니다. 그래서 공장이 있는 지역가면 중국사람들이 운영을 하는 식당이 부쩍 많아졌고, 저렴한 숙박업소에 중국어가 꼭 들어가 있는 모습도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요즘 탈중국 정세로 인해 중국공장들이 태국으로 많이 이전을 하거든요. 

중국음식 먹는데, 제가 중국에 있을때 자주 마셨던 王老吉 가 있어서 최근에 마셔 보았습니다. 중국살때 정말 자주 마신 음료였거든요. 한국에는 한때 저게 판매금지가 된 적도 있었는데, 성분중에서 한국에서는 판매를 할 수 없는 성분이 들어 있어 직수입 했다가 판매를 못 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저 영화를 보니 태국인들이 한국에서 사는 모습을 잘 묘사해 두었더군요. 특히 태국/동남아 식재료 파는 슈퍼부터해서, 태국사람들 모여서 저녁 만들어 먹는 모습들까지.

저 왕라오지 음료가 한국에서 성분이슈가 있어 판매금지가 된 적이 있어서 저도 성분표를 한번 보았는데요. 재미 있는건 보통 성분표에 있는 성분만 기입을 하잖아요. 그런데 저기는 굳이 없는 성분 0% 인 항목 3개를 넣어 두었더라구요.  제 추측은, 아마 중국판에서는 저 3개의 항목이 들어 있는데 태국수출판에서는 뺀 것가 싶기도 하고. 겉면을 보면 그냥 직수입한 제품같은데…  굳이 없는 성분을 0 으로 표기해 둔 이유가 궁금하긴 하더군요. 

불법체류자를 법무부가 콘서트현장가서 체포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 라고 단편적으로 생각을 할 수는 있는데요. 최근에 트럼프가 불법이민자, 불법체류자를 과도하게 체포하다가 자국에서도 역풍을 맞거나 반대여론에 휩싸이기도 했죠. 제가 최근에, 어느 순간부터는 인터넷의 별 쓸데없는 정보들에 시간소비 안 하는 삶을 살고 있어서 댓글들을 잘 보지는 않는데, 그 당시에 인터넷 커뮤니티 글들을 보면 저런 반대여론에 대해 꽉 막히게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국가정책도 그렇고, 외교관계도 그렇고, 여러 일들을 할 때도 항상 ‘명분’ 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역사책을 좀 보다 보면 ‘명분’ 이 없다고 반대를 하는 신하와 왕의 대립도 많이 볼 수 있고, 상대 조직을 치고 싶은데 ‘명분’ 이 없어서 그걸 먼저 만들려고 선작업을 하는 조폭세계도 볼 수 있죠. 이번 미국/이스라엘 과 이란간의 전쟁을 보면 이스라엘은 이렇든 저렇든 이란을 칠 ‘명분’ 이 조금은 있어서 저렇게 큰 소리 치면서 계속 공격을 하는데, 미국은 다소 ‘명분’ 이 약한 상태에서 전쟁을 하다보니 최근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는 모습입니다. 

당시 우리나라 법무부가 그 태국가수 콘서트장을 급습해서 체포를 했다고 했을때, 저 역시도 굳이 저렇게까지 했었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저도 해외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해외근로자로서의 측은지심 이 발동해서 일 수도 있구요.

최근 태국에 저 꽃들이 만개했습니다. 그런데 저 나무는 옆에 있는 나무 사이로 겨우 삐져 나와서 저렇게 꽃을 피웠더군요. 이전에 나무관련 글을 적은 적도 있는데, 도대체 나무들이 서로 소통하고 동물을 공격하고 또 자기들 동종끼리는 나뭇잎마저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성장을 하는 것들을 보면서 이해는 되지만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저 나무는 결국 저렇게 저 나무 사이로 빠져 나와서 햇빛과 벌같은 곤충이 수분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나와 꽃을 피운 거죠.

저의 태국지인들도 한국에서 돈을 벌어 가족들에게 송금하는 돈이 태국에서 몇 달을 벌어도 보낼 수 없는 돈이라고 하더라구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중에도 내 월급에서 생활비, 집값 차값 꼬박꼬박 다 떼내고 나면 돈을 모으기도 힘들고, 만약 부모나 형제를 위해 송금을 하라고 하면 그게 어려운 분들도 많을 건데요. 저의 태국지인들은 대부분이 부모에게 월급의 일부를 보내더군요. 심지어는 태국에서 근무하는 태국지인이 부모에게 월급의 30% 정도를 꼬박꼬박 보내는 모습을 보고 ‘너 그렇게 30%를 부모에게 송금하고 나면 저 생활비는 있냐?’ 라고 물어 본 적도 있거든요. 여러분들 중에도 내 수입의 30%를 부모에게 꼬박꼬박 보내기 쉽지 않잖아요.

다들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저렇게 큰 나무 사이를 비집고 나와 꽃을 피우려 하는 거겠죠.

제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을 것 같다 라고 하자 저의 태국지인이 여기에 데려다 주면서 프로젝트가 잘 되도록 소원을 빌어라고 하더군요. 말은 그렇게 할께 라고 했지만, 저는 신에게 소원을 빌지 않습니다. 늘 저의 카페를 찾아 주는 손님들을 생각하며 감사하게 생각하고 저에게 비즈니스 기회를 주는 회사, 고객사 에게 감사를 합니다. 신이 저의 소원을 들어 주지 않죠. 그냥 제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노력을 하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저 길이 꽤 길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30대 40대 때는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비중이 컸다면, 지금은 돌이켜 보니 운/때 도 어느 정도 많은 작용을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전처럼 그렇게 맹목적으로 무식하게 일을 하지 않죠. 차이컬쳐 시즌1 부터 봐 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참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열심히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더군요.

저 영화는 결국 해피엔딩 으로 끝이 납니다만, 현실은 영화처럼 해피엔딩이 아닐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태국지인들과 이야기를 좀 나눴는데요. 

그 중 한명은 아직 해외에서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이야기를 해 주었죠. ‘해외에 여행 가는 것이랑 거기서 돈을 버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저 사람들에 대해 짧게 묘사를 해 두었지만, 해외에서 오래 일을 한 입장에서 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지 조금 짐작이 간다’ 라고.

저는 해외생활 오래했지만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위의 사진은 이 영화와는 무관하게, 그냥 태국시골지역 여행다니다 우연히 보고 찍은 건데요. 담벼락에 페인트로 저렇게 적혀 있더라구요.

“김천시새마을”

가정1. 여기 살고 있는 한국사람이 적었을 것이다. 

가정2. 한국농촌에서 일을 했던 태국사람이 돌아와서 그냥 자기가 지냈던 농촌에서 자주 보던 저 글귀와 문양을 그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해외 유학생활 하다 한국돌아오면 그 당시 살았던 곳의 단어, 이름, 거리모습 들이 생각날 때 있으니까요.

오늘도 태국에서의 하루하루 삶은 재미있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이 글을 쓰다보니 세월이 지났음에도 중국에서 외노자생활, 대만에서 외노자 생활도 떠 오릅니다. 

태국 시골의 어느 장작화덕 피자가게

지금 대만의 카페도 오픈을 하기 수년전부터 준비를 했었습니다. 언젠가는 해외에서 카페 식당을 하거나, 혹은 국내 한국에서 카페 식당을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예상을 하고 준비를 했었죠. 그래서 시드니 가서 조금이나마 배우고 왔었구요.

그래서 저는 카페나 식당을 가면, (카페, 식당이 아니더라도…) 유심히 관찰을 합니다. 

이번에 태국 어느 시골마을에 조금 독특하다는 피자가게가 있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 왔습니다. 

주차장 바로 옆에 쌓여 있는 나무들이 뭔가 화덕피자가게의 믿음을 강하게 주더군요.

시골이라 혹.시.라.도. 직접 채벌을 하는건가 물어보니 나무는 사 온다고 하더군요.

여기까지 차를 몰고 오는데, 주변이 너무나 논과 들판 밖에 없어서 도대체 이런 곳에 무슨 인터넷에서 봤던 그런 느낌의 레스토랑이 있을까 의구심도 가졌고, 거의 다 도착을 했을때는 무슨 공장건물 같은 건물 사이의 비포장 도로를 들어와서 태국친구에게 농담삼아 ‘우리 지금 안전한 지역 가고 있는것 맞지?’ 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같은 고기도 숯불에 구우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피자도 뭔가 저렇게 장작때세 화덕에 구우면 더 맛있어 보입니다. 

대만 저의 카페 주변에서 트럭에 화덕을 만들어 피자를 팔던 프랑스 아저씨 생각이 나네요. 그 분 최근에 피장장사를 접었다는 소식만 접한 뒤로 소식이 궁금했거든요. 대만 지방도시에서 프랑스 아저씨가 저런 장사를 하고 있으면 같은 외국인으로서 더 관심이 가죠.

저렇게 트럭에다가 화덕을 만들어 직원 2명 고용해서 피자를 팔던 프랑스 아저씨 였는데, 한 때 저 분에게 피자 만드는 법, 운영노하우 등등을 좀 배울까 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미래를 위해서…

아주 낡은 건물을 최대한 보존한 상태로 개조를 했더군요. 그래서 주변은 아주 뭐랄까 오래된 지저분한 느낌의 이전 집터입니다. 거기에 조금 레스토랑 느낌이 나게 개보수를 했더군요.

한국으로 비유를 하면, 어느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넓은 시골집 + 농장건물 을 개조해서 레스토랑으로 운영을 하는 형태더군요.

여기 접근성은 나는 모르겠고, 그냥 내 건물에 우리 가족끼리 레스토랑 하나 하고 있을테니 손님들 일부러라도 여기까지 찾아 올테면 찾아 와봐.

라는 느낌을 하는…

주거하는 공간도 저기 있고, 저 화덕도 저기 주인아저씨가 직접 만들고, 심지어는 목재로 하는 인테리어 아웃테리어 공사도 저 주인아저씨께서 직접 하셨다고 하더군요.

보니까 식당은 부인분과 자녀분들이 하고 있구요.

제가 차이컬쳐에서도 수차례 언급을 했지만, 가능만 하면 부모의 재력, 집, 땅 + 자녀들의 창의성, 아이디어, 사업능력 으로 패밀리비즈니스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제가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저렇게 살아가는 사례도 정말 많이 보아 왔습니다. 

보니까 이전에 이런 목공소 하는 장소였는데, 그 공간을 활용해서 피자가게를 하고 있더군요. 주인아저씨께서 저에게 목공소 내부 구경을 시켜 주시더군요.

차이컬쳐 시즌1 때 부터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중국에서 목재/목분 관련 일도 조금 했었죠. 하다가 망했… 하지만 엄청난 경험을 축적…

트럭뒤에 나무가지로 만든 건 등갓 이라고 하네요. 내부에 등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시골의 자기 건물, 자기 땅에서 자식들과 장사가 잘 되든 잘 안 되든 그냥 열어 놓고 버는 만큼 벌면서 인생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도시에서 월급쟁이 생활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딱히 하나의 길로만 얽매여 살다보면 고달프게 되죠. 그러다 거기서 나오게 되면 할 것 없어 고민하고 힘들어 하구요.

제가 이런 곳들을 다니면서 공부하고 관찰하는 이유도, 회사가 나를 평생 책임지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저는 늘 다양한 수입원을 가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제는 ‘노동수입’ 혹은 ‘월급수입’  “만” 가지고 인생설계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반복해서 드리는 말씀은 젊으신 분들 중에 이 길 아니면 내 인생 끝나 라는 절망과 우울감에 인생을 살지 말라는 겁니다. 제가 중고등학생 시절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라는 책도 있었고, 영화도 있었는데, 전 그 당시에는 대학 못 가면 혹은 좋은 대학 못 나오면 인생 끝나는 줄로 주입을 받았었거든요. 그래서 그 당시 자살하는 고등학생도 많았죠.

세상은 살아 보니 다양한 길들이 있습니다. 

시골지역이니까 이런 넓은 공간에 단 두명이서만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도 만들 수 있는 것이겠죠. 면적=돈 이잖아요.

제가 저 레스토랑의 주인아저씨를 만나기 전에 들어와서 벽면을 두들겨 보고 내부인테리어 들을 보면서 속으로

‘업자를 고용해서 만든 것 치고는 너무 좀 엉성하고, 개인이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좀 잘 만들었는데’ 

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인테리어를 살펴보면서요…

아니나 다를까 업자는 아닌데, 목공소 경력이 있는 주인아저씨가 직접 하다보니 전문가는 아니지만 저 정도로 만들 수는 있는 것 같았습니다. 

외부가 생활도구, 생활쓰레기 이런 것들로 지저분하고 주거물품들이 많이 널려 있는거야, 이런 시골집 개조한 레스로랑이니까 그것도 하나의 감성? 이라고 넘어 갈 수는 있는데…

저는 저의 대만카페를 하면서, 혹은 저의 확고한 원칙 하나가, ‘화장실이 지저분 하면 가게 접는다’ 라는 각오를 하고 화장실을 청결하게 운영하거든요.  

이전에 백종원이 자기의 ‘새마을식당’ 맛 점검 한다면서 돌아다니며 음식 먹어 보면서 레시피 조정 하는 프로그램을 찍던데…  새마을식당 홍대점 같은 경우는 화장실 먼저 청결하게 유지를 하는 것이…

일단 시킨 피자가 너무 짜더군요. 피자가 짠게 아니라 토핑의 재료가 무슨 소금에 절인 것처럼 짜더군요. 일단 피자가 너무 짜니까 맛을 느끼기가 어려웠습니다. 피자는 안 되면 그냥 치즈맛으로라도 먹으면 되는데… 도대체 간을 안 보는건지 너무 짜서 음료 없이는 먹기가 어려웠구요.

다른 피자 맛은 어떤지 또 시켰는데, 이번에는 피자 중간에서 긴 머리카락이 도우와 치즈와 사이에 있더군요. 저도 카페를 하는 입장에서 이런 부분은 최대한 이해를 하려고 합니다. 저도 음료나 음식에 머리카락이나 이물질이 들어갈까봐 엄청 주의를 하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은 보류를 하죠.

가게 운영 한 이래로 평생 없던 머리카락이슈가 처음 발생했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위의 사진을 보시면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이 머리카락 감싸는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조리를 하시더라구요.  속으로 ‘시골에서 식당을 하시면서 저렇게 위생관리를 하시는 구나’ 라면서 별점 하나를 줬거든요.

그래서 일단 머리카락이슈는 조금 보류를 했습니다.  이 부분은 저도 카페를 하다보니 음료에 머리카락 하나 이물질 하나 단 한번도 안 들어 갔을까? 라고 생각을 해보면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긴 하거든요.

무튼 다양한 형태의 카페 식당 들을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나중에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이런 글을 빌어 저의 대만카페를 꾸준히 찾아 주시는 손님들께 저는 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국의 독특한 분위기이 媽祖廟

아는 동생이 가족들 데리고 태국에 여행을 오겠다고 해서 여행에 대한 글을 써 봅니다. 당연히 그 동생도 차이컬쳐 장기 구독자 이구요.

저는 살면서 많은 곳을 가 보고 많은 것을 체험해 보고 사람들이 사는 모습들을 함께 느껴 보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제가 얼마나 많은 곳을 돌아 다녔는지는 이번에 태국온다는 그 동생이 잘 알죠.

그런데 제가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이렇게 말을 하지만 유튜브에 보면 빠니보틀, 곽튜브 이런 사람들에 비할바가 아니긴 합니다. 전업 혹은 반전업 여행가랑 저처럼 평소에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행을 다니는 것과는 차이가 많이 나죠. 그럼에도 저는 시간이 나면 내가 거주하는 공간을 좀 벗어나서 다야한 곳을 가 보려고 합니다. 

많은 곳을 다니다 보면, 뭐라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뭔가 인생에 견문이 조금씩 넓어진다는 걸 느낍니다. 

제 친척 중에는 ‘말 그대로’ 세상을 컴퓨터모니터를 통해서만 통달한 녀석이 있는데, 저는 그런 지식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직접 체험을 해 보는 지식도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수영을 자전거를 책과 인터넷으로만 배울 수 없듯이, 세상에는 직접 체험해 보지 않으면 배우고 느낄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특히 저는 실패와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운 것들에서 지금도 많은 걸 참고하고 있구요. 중국에서 일하고 사업하면서 사기 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당했던 경험들이 지금도 큰 자산입니다. 차이컬쳐 시즌1에 나름 많은 분들이 찾아 주셨던 이유도 저의 그 파란만장하고 제 또래에서는 체험해 볼 수 없는 압도적인 경험/이야기 들 때문일텐데요

저는 여행을 삶의 일부라고 생각을 하다 보니 더 많은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늘 제가 사는, 혹은 제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쉽게 저렴하게 갈 수 있는 곳들 부터 하나씩 가 보거든요. 

그런 곳에서 특별함을 찾고, 일상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찾는거죠. 

위의 사진처럼 별거는 아니지만 수수하게 피어 있는 꽃들 사이로 연이 매달려 있으니 나름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잖아요?

차이컬쳐 시즌1 때와는 달리 최근에는 저가형 중국산폰을 사용하고 있어서 뭘 찍더라도 카메라의 화질이 실제 느낌을 담지 못 하네요…

라고 적고 싶은데, 달리보면 차이컬쳐 시즌1 때 사용했던 카메라나 휴대폰보다 지금 기술의 저가형 휴대폰의 카메라가 뒤쳐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즌1 때 보다는 조금 게을러 져서 DSLR을 들고 나가는 비율도 현저히 줄어 들었고, 작은 카메라라도 들고 나가는 습관이 확 줄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카메라 좋은 휴대폰으로 바꾸거나 이전 소니 작은 카메라 하나 구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여행을 다니는 목적과 여행을 다니면서 얻는 것들이 다를 겁니다. 저는 여행을 다닐때 어떨 때는 ‘감상’ 을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분석’ 을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좀 깊이 있는 분석’ 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종교적인 장소에 오면 저 역시도 마음을 내려 놓고 인생이란 무엇인가? 라는 ‘철학적’ 감상에 빠지기도 하구요.

위의 이런 풍경을 보면서는 고대 어류가 조수간만의 차이로 양서동물로 변환을 ‘당하는’ 과정을 머리속으로 상상해 봅니다. 

진화는 내가 주도적으로 하기 보다는 환경에 의해서 ‘당하는’ 부분이 많거든요. 조수간만의 차가 어류를 육지로 올라오게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어설프게 폐 비슷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던 녀석들이 폐로 발달이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니까요. 

사진에서 원숭이들이 잘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자세히 보시면 기둥 중간에 모두 원숭이들이 있구요.

특히 마지막 사진에서 트럭 아래에도 원숭이 한녀석이 누워 있습니다. 저기 강아지가 마침 그 원숭이와 가까이 있었는데 별로 싸우는 것 같지는 않더라구요. 늘 생활을 함께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런 모습을 보면 ‘견원지간’ 이라는 한자성어도 떠올리기도 합니다. 

대만에서는 제 차 안에 갓 태어난 새끼고양이 두 녀석이 있어서 입양한게 지금의 니니/나나 이구요. 

태국에서는 저런 곳에 주차했다가 혹시 원숭이가 내 차 아래에는 없는지 혹은 주행중 저렇게 원숭이를 칠 일은 없는지를 주의하면서 운전을 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죠. 저는 지금도 한국야생에 원숭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제가 묵었던 호텔 마당에서 저렇게 주민들이 망고를 따는 모습을 볼때면 ‘매달려 있는 망고 중 부실하거나 작은 녀석들 빨리 잘라내면 남은 망고의 당도나 크기가 더 커질텐데’ 라는 그런 생각도 합니다. 

저기 주민이 저에게 망고 하나 주시겠다고 하는걸 마음만 받았습니다. 

제가 많은 곳을 다니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입지’ 의 중요성 인데요. 혹시 ‘총균쇠’ 라는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서 요약을 해 드리면. 그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입지의 중요성’ 에 대해서 그 두꺼운 분량을 할애하며 설명을 합니다. 

위의 절은 위치도 절묘하고 마침 거기에 거대 화목이 우뚝 솟아있어서 없던 불심도 들게 하더군요.

이런 입지에 이런 절을 세운 분은 선견지명이 있으신거죠. 

저는 지금도 돌아다니면서 ‘무언가를 할 만한 입지’를 찾거든요. 지금은 막 발전되어 있지 않지만 10년 뒤에는 뭔가 발전이 될 것 같은 ‘입지’ 를 찾는 안목을 키우려 노력합니다. 

살다보니 지식도 중요하지만 무언가를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이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대만도 바다로 둘러 싸여 있어서 위의 사진처럼 媽祖廟가 많습니다. 특히 유명한 곳이 대만동부, 이란이라는 지역 약간 남쪽에 南方澳 곳에 있는媽祖廟가 유명하죠. 거기도 주변 풍경이 아기자기해서 여행하기 좋은데요.

여기도 바다가 보이는 사당에 媽祖廟 가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 같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는 큰 불상… 부산에도 비슷한 곳이 있죠. 해동용궁사 라고…

대학생시절 약간 관심이 있는 여학생이 있으면 밤12시 가까운 시간에 차를 몰고 해동용궁사에 가서 데이트를 하곤 했는데요. 그 독특한 분위기에 수많은 여성분들이 좋아했었죠.


 

대만/태국에 살면서는 어느 곳을 여행하더라도 겨울에 다시 와 봐야지, 가을에 오면 다른 느낌이겠다 라는 생각은 덜 하게 되는데요.

그럼에도 저는 어느 장소를 가면 ‘비 내리는 날 오면 풍경이 더 멋있겠다’ 라는 생각은 많이 합니다. 비가 내릴때 이 곳의 느낌이 어떨까 혹은 밤에 오면 어떤 느낌일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죠.

이전 독일퀄런성당인가를 낮에 보고, 숙소가 근처에 있어서 밤에 다시 왔는데, 낮에 봤던 그 성당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느낌이더라구요. 밤에 본 그 퀄런성당의 느낌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도 어느 지역을 한 번 다녀간 것이랑 살면서 여러번 방문하는 것이 다르게 느껴지죠.

그럼에도 우리가 해외여행을 자주 나갈 수도 없고, 먼 지역을 여행하기도 살면서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곳 부터 여행을 해 보는 것이 추천드립니다. 

요즘 한국에서 ‘왕과 사는 남자’ 라는 영화가 흥행을 하고 있더군요. 혹시라도 태국에서 방영을 하나 찾아 봤는데 없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에 한국 갈때 여전히 상영을 하면 극장에서 보든지, ott에 올라오면 구입해서 봐야 할 것 같은데요. 그 영화때문에 위의 장소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단종유배지와 영월섶다리 를 가 보았거든요. 그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기가 고즈넉하니 참 좋았거든요. 그래서 속으로 ‘이런 곳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한국에서 지낼때는 한국 이곳저곳 참 많이 다녔던 것 같구요. 중국/대만/태국에 살면서는 정말 많이 다녔네요. 

오늘은 아는 동생녀석이 태국여행 온다고 하여 여행에 관한 소회를 풀어 보았습니다. 

노욕

아주 최근에 가까운 지인의 아버지가 자다가 급사를 했습니다. 정확한 사인은 모르는데, 혼자살고 있는 지인의 아버지가 며칠동안 연락이 없자, 친척이 집엘 가 보았는데 심한 부패냄새와 함께 시신으로 발견이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침대에 누워 있었던 걸로 봐서는 자다가 급사를 한 걸로 추정을 한다네요.  저 분이 저랑 나이가 동갑이라 내 나이에도 저렇게 심장마비 등으로 사망을 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죠. 주변에 40대 50대때 사망하신 분들이 적지 않아서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만약 자다가 급사를 했다면, 인생에 대한 후회를 할 시간적 겨를이 없을테지만, 만약 지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을 한다면 인생에 돌아보면서 많은 후회를 하는 것이 보편적일거라 생각합니다.  그에 대한 연구도 꽤 많이 볼 수 있구요.

태국도 화장을 많이 하더군요. 태국 문화를 알아가려고 태국영화, 드라마 를 자주 보는 편인데요. 지난달에 봤던 태국영화 ‘undertaker’  도 보시면 태국, 특히 태국이산시골지역의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한국 netflix에 올라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래 포스터는 좀 공포영화스런 느낌인데 전혀 공포영화가 아닙니다. 

무튼 갑작스런 아버지의 사망에 지인은 엄청 울고 슬퍼했습니다. 

자… 저렇게 갑작스레 사망을 하고 나니 아버지를 위해 더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 하고 더 잘해 주지 못 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 왔을 겁니다. 

한편 아버지도 만약 사망을 하기전 임종의 시간을 가졌다면 마찬가지로 자식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 한 것에 대한 회한이 밀려와 눈물이 났을 것 같습니다. 

저는 대략 제 나이 40을 조금 넘어서면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방향성을 정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가 있는데 오늘은 노욕老慾 에 대해 한 번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최근에 태국지인이 집을 개조하고 있다면서 저에게 고민상담을 해 왔습니다. 요지는

부모와 자매부부가 함께 실거주를 하고 있는데, 건물이 너무 낡아 미래를 위해 자매들이 돈을 각출해서 리모델링을 계획을 한다더군요. 

이전 중국에 이런 말이 있었죠. 부부가 집 리모델링, 인테리어를 하면 반드시 대판 싸운다고… 한국에서 부부끼리 자동차운전 가르쳐주면 대판 싸우는 것과 비슷한?

문제는 실거주를 하지도 않고, 실거주를 하지도 않을 큰언니가 이런저런 간섭?을 하면서 특히 주방의 위치를 무려 풍.수.지.리. 에 입각? 해서 어디어디로 옮겨야 한다고 해서 다들 곤란해 한다고…

정작 실거주를 하는 사람들과 향후 거주를 할 사람들은 거기 주방있으면 너무나 불편하다고 하는데, 무려 풍.수.지.리. 를 앞세워서 반드시 거기에 해야 한다고…

그 큰언니가 했다는 말을 번역해 보니… (말로 전해 들은 내용에는 전달자의 왜곡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번역을 해 보니 정말로 전달자의 말처럼 dragon 이라는 단어를 썼네요. 용의 어떤 위치에 따라 부엌이 집의 왼쪽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는데요.

저는 늘 문제를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도면을 검토해 보니 왼쪽 오른쪽의 개념을 잘 못 알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제가 직접 휴대폰으로 저렇게 적어서 보내 주었습니다. 큰언니가 생각하는 왼쪽은 front에서 바라 봤을때 B 라는 글자쪽이 왼쪽이라고, 즉 자신의 방향에서 왼쪽이라고 생각을 한 것 같더군요. 그리고 B와 R 의 위치에 부엌을 만들어야 한다고 계속 고집을 한다네요. 정작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저기 주방있으면 너무나 불편하다고 하는 상황인데요.

그래서 저의 지인에게 왼쪽 오른쪽의 개념이 잘 못 되었다고 설명을 해 주니 좀더 반대파에 힘이 실리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뭔가 이상하지 않으세요.

만약 이런 집을 리모델링 한다고 하면, 나이나 서열이나 이런걸 떠나서 실거주자 들이 편하고 하고 싶은 대로 디자인을 하고 가구배치를 하는 것이 더 현명한 것 아닐까요? 살지도 않는 큰언니가 무려 풍.수.지.리. 를 앞세워 자기 주장을 내세울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제가 왼쪽/오른쪽 방향이 틀렸다고 하자, 그 뒤에는 ‘무당/점쟁이 가 저기에 해야 한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네요.  

노욕老慾

만약 앞으로 한창 살아가야 할 자식과 곧 내일모레 하는 부모가 이런 주제로 부딪혀서 감정싸움이 된다고 하면 누가 양보를 하는 것이 더 나을까요? 

그냥 차라리 ‘너네가 살 집이니까 너네가 잘 꾸미고 살아봐라’ 라고 하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일까 ‘비록 나는 내일모레 죽을 수도 있고 나는 살지 않을 거지만 풍.수.지.리. 점.쟁.이. 무.당. 이 여기로 하라고 했어’ 라고 하면서 자식들이 하기 싫은걸 억지로 강요하는 것이 좋을까요?

대략 10여년전경 부터 확실하게 향후 노년에 대한 삶을 설계하기 시작했던 것 같고, ‘노욕’ 없는 그런 어른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과 계획과 나름의 실천을 해 왔던 것 같습니다. 대만 카페에 대한 구상도 대략 10여년전 부터 구상을 하고 준비를 했었구요. 

주변에 보면 어른으로서  현명하고 존경할만한 분들이 계시죠. 반면 그런 현명함과 인품들이 나이와 비례하지 않는 다는 것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가 저 나이에 저런 위치가 된다고 하면 저의 개인 욕심보다는 더 젊고 어린 세대들이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많은 곳을 다녀보고 경험해 보면서 물질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것 보다는 그 보다 더 가치있는 무언가를 위해 사는 것이 더 낫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또, 가진 것이 많아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아도 행복하고 화목하게 잘 사는 사례도 너무나 많이 봤거든요. 

지난 2주간 이런저런 일들 특히 저의 지인 아버지(저랑 동갑)가 자다가 급사한 사건이 최근 머리속에 많이 남아 있어서 유언아닌 유언도 하나 남겨 두기도 했네요.

조금 늦은 태국 춘절 모습

태국의 구정, 중국춘절기간동안에는 중화권의 느낌이 물씬 납니다. 오래전부터 중화권, 특히 중국본토의 사람들이 동남아로 이주를 해서 정착해 살아온 탓에 베트남이나 태국에도 중화권사람들의 문화가 많이 남아 있고 태국 전역을 돌아다녀 보더라도 중화권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구정/춘절기간 동안에 쇼핑몰이나 도심에 가 보면 중화권 춘절문화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중국본토-대만-태국 에서 수차례 춘절을 보내면서 역시 춘절은 중화권 문화가 확실히 볼 거리가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최근에는 구정을 보내 본 경험도 적고, 그나마 십여년전 한국에서 구정을 보낼때도 어릴적 구정의 그런 느낌이 들지 않더군요.

하지만 중화권에서는 여전히 그 문화를 강하게 느낄 수 있죠. 대만에 있는 지인이 “밤새 폭죽을 터뜨려서 개들이 잠을 못 자고 짖는다” 라면서 메세지를 보내 올 정도로 대만에서도 춘절기간에는 굉장하죠. 또 중화권사람들은 여전히 춘절이되면 귀향해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들이 많은 것 같구요.

태국의 쇼핑몰인데요. 중화권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중화권 공연이라고 하면 두사람이 사자탈 쓰고 뛰는 그것 많이 하구요. 이번에는 변검공연도 하더군요. 

사자탈 쓰고 하는 공연은 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고 춘절 전에는 곳곳에서 연습을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저 아이는 사자탈 코스튬을 쓰고 돌아다니는 모습입니다. 

양초인지, 폭죽인지 모르겠지만 중화권 춘절에는 폭죽도 대단합니다. 제가 사는 태국주거지에는 폭죽소리를 듣지 못 했는데, 방콕차이나타운에는 아마도 폭죽을 많이 터뜨리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런저런 문화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춘절에는 귀향을 해서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그런 모습이 좋죠. 

저는 오랜기간 춘절, 추석 이라고 특별히 부모님을 찾아가지 않은 기간이 꽤 오래 되었습니다. 제가 부모님을 찾아가지 않는건 어찌보면 그들의 ‘업보?’ 일 수도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돈’ 이 우선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 ‘돈’을 자식들에게 많이 남겨 주는걸 부모의 가장 큰 역할 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현재/지금의 많은 소중한 것들을 많이 잃어 버리고 살죠. 돈으로 미래의 행복을 보며 살고 있으니까요.

오늘 이글을 쓰는 이유는, 오늘 오전 저의 지인 아버지가 사망을 했다면서 회사에 출근 했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영상통화를 했는데, 많이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었더군요. 

안타까운건, 그 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한 사람이 친척인데, 너무 오랫동안 연락이 없어서 혼자 사는 그 아버지의 방에 가보니 이미 사망을 해서 시신이 좀 부패했다고 하더라구요. 아마도 사망한지 최소 3-4일은 지났는지 부패한 냄새가 사방에 진동을 했었다고 하네요. 

저는 명절이라 일부러 부모님을 찾지 않습니다. 이번 구정/춘절 연휴에도 저는 일을 했었죠. 그러다 이번 한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일부러 일요일 밤에 도착해서 아버지랑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거해서 따로 사시는데, 서로 명절에도 혼자서 지내시더군요. 그런데 어머니는 저랑 통화하면서 ‘왜 아직도 외국에서 사냐? 이제 한국에 들어와서 살아라’ 라고는 하시는데, 아버지는 뭐 ‘나는 잘 살고 있다’면서 가족들이 함께 모이지도 못 하는데 본인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며 허허 웃는 모습을 보니 내일모레 80살, 이제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를 나이임에도 아직 가족들의 그런 아픔을 공감을 못 하는건지… 

내일모레 80. 이제는 언제 죽을지도 모를 사람이 최근 주가가 많이 오른건 알아서 평생 한번도 안 했던 주식투자를 해 봐야 겠다면서 기웃거리더라구요. 

제가 만약 80이고 본인때문에 온 가족들이 겪은 힘듬, 아픔으로 다들 따로 살고 있다면 80살에 돈을 더 벌어보려고 주식투자를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인생을 마무리 하고 정리하고 남은 인생 주위 사람들과 좀 더 의미있는 삶을 살다가 인생을 마무리 할 생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거든요.

저의 부모님은 자식을 위해서 또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 돈을 많이 준비해 두는 것이 부모의 의무이자 도리라고 생각을 하는건데… 

오늘 지인의 아버지도 나이가 50전후 거든요. 50이 안 되었을 수도 있는 그런 나이인데, 혼자 살다가 사망을 했습니다.

나이가 80이라도 나는 100살까지는 살 수 있으니까 아직 20년 더 남았다 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죠. 그런다고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며 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저의 아내 가족들은 늘 자주 모이고, 늘 함께 하며 다들 경제적으로 여유있지 않아도 작은 과자를 몇 개 사더라도 항상 나눠서 먹곤 하거든요. 저의 아버지는 자식에게 늘 저런 한우, 비싼 물건, 많은 돈을 줘야 부모라고 생각을 하는 자체가 참 불행하게 살아 왔다는 증거죠.  늘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며 살아온 인생…

모기 발견 후 바로 구입한 식충식물…

제가 어릴적부터 꼭 한 번은 직접 키워 보고 싶었던 식충식물 입니다. 도대체 식물이 저런 식으로 진화, 저 식충식물들 사이에서는 수렴진화가 된 경우인데요,가 될 수 있는지 놀라운 녀석입니다. 

잎에 작은 돌기가 돋아나, 혹은 표면에서 끈끈한 액체가 분비되어 곤충을 잡는 형태는 어찌어찌 이해를 한다고 하더라도, 저런 식으로 함정을 만드는 형태로 진화를 한 건 그저 놀랍기만 하죠. 진화라는 것이 ‘발전’ 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 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고, 그러다 보니 다양한 생물들이 다양한 환경에 정말 놀라운 형태로 적응을 한 사례를 무수히 많이 봐서 이해를 할 법도 한데, 쟤는 보면 볼 수록 신기합니다. 

얼마전 우연히 저 식충식물을 팔고 있길래 기회가 되면 하나 구입을 해야 겠다 생각을 했었습니다. 

모기때문에 식충식물 구입했다는 제목은 방문자를 저 식충식물처럼 낚기 위함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살면서 얘를 직접 본 적이 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마침 이렇게 판매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최근에 식물파는 가게에 가 보았습니다. 

제가 사는 방에 딱히 벌레가 없긴 한데, 최근에 모기 한마리가 방에서 돌아다니더군요. 그래서 산다산다 마음만 먹다가 실행에 옮겨 보았습니다. 

물론 쟤 하나 방에 두었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곤충을 잡을거라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냥 어릴적부터 한번은 직접 키워 보고 싶었던 꿈을 한 번 실현하는 생각으로 구입했습니다. 

화초가게에 가니 마침 팔고 있더군요.

저렇게 붉은색이 도는 녀석과

이렇게 녹색이 있었습니다. 일단 붉은색의 것으로 하나 구입을 해 보았습니다. 

식물이 화학물질을 분비하고, 화학물질로 서로 소통도 하고 자신을 해치려는 곤충, 곰팡이 등등으로 부터 방어를 한다는 건 많이들 알고 있는 사실이죠. 오래전에 봤던 영상인데 같은 종의 나무들이 서로 조밀하게 자라면서 자신의 이파리들과 옆 나무의 이파리가 닿지 않게 절묘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군락을 이루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 뿌리를 통해 화학물질로 소통을 한 결과라는 걸 본 적이 있는데요. 그 나무간 거리를 맞추어 자라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무튼 식충식물도 기본적으로는 화학물질을 통해서 곤충을 유인하고 잡아 먹겠죠.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이런 식충식물 종류별로 몇 개 사서 키워 보시는 것도 재미 있을 것 같습니다. 

구입한지 대략 2주가 지났는데요. 아직까지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게주인이 물을 자주 줘라고 해서 이틀에 한번씩은 주려고 하거든요. 화초를 키운다는 것이 쉽지가 않아서 어떨때는 이유없이 갑자기 죽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의 대만카페 인테리어용 다육이, 선인장류가 있는데, 얘네들도 잘 자라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확 시들어서 죽어 버리기도 하더군요. 

이 글 쓰기 전에 찍은 사진인데요. 아직까지는 잘 자라고 있는 모습입니다. 

쟤네들이 곤충으로만 영양소를 얻는 형태가 아니라서 방에 곤충이 없어도 영양소를 얻는데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쟤네들을 위해서 방에 곤충을 들일수도 없구요.

식물들이 곤충 혹은 동물들과 공생도 하고 싸우기 위해 여러 기작들을 진화시켜 나간다는 건 알고 있지만, 쟤는 보면 볼 수록 참 신기합니다. 

직장그만두고 자영업? 아래 표 먼저 보시고 Taipei 101 올라가 보시고

이번주에 어떤 분이 프렌차이즈커피를 마시면서 ‘이 프렌차이즈 매장 한 번 열어 보려고 알아 본 적이 있다’ 고 말문을 열면서 초기개업비용을 알려 주더군요. 대만에서 스스로 카페를 한 번 열어 본 입장에서는 확실히 비싸긴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영업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직장인들이 오랜 직장생활 그만두고 가맹점 형태로 자영업을 해도 많은 사람들이 기대보다 수입이 좋지 않고 망하는 사람들이 많다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잠시 설명을 해 드리면요.

먼저 위의 기록지를 한 번 보시겠습니다. 

이전 제가 대만 처음 갔을때 잠시 일을 했던 조직에서 커피주문이 들어오면 저렇게 수기로 기록을 하고 있더군요.

왼쪽에 주문수량만 적고 하루 마감할때 오른쪽의 누적수량을 적으면 업무량이 훨씬 줄어 들겠죠. 한창 바쁠때 주문 받으랴 저거 수기로 적으랴… 정신이 없거든요. 그래서 그 당시 매니저급 직원에게 ‘아니 도대체 너희들 왜 매 칸마다 저 총합계를 적으라고 하는거냐? 그냥 주문 수량만 기록하고 마감할 때 더해서 총합계 한 번만 더 적으면 되지 않냐?” 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이거 원래 이렇게 해 오던 건데요”

숫자를 자세히 보시면 중간중간 합산을 틀리게 해서 누적수량도 틀립니다. 바쁜 와중에 적다보니 숫자가 틀리죠. 35046 +1 했는데 그대로 35046 이고 35051 +1 했는데 그대로 35051 이죠. 

제가 저기서 일을 할 때 이 짓을 왜 하고 있는지 현타가 온 게 한 두번이 아니고 숫자들도 늘 틀립니다. 

이번엔 어느 숫자가 틀렸는지 찾으실 수 있겠어요?

도대체… 오른편 총합계는 왜 매 칸 마다 하라고 하는지, 그걸 지시하고 있는 사장이나, 사장이 시켰다고 개선의견을 내는데도 관행이라며 바꾸지 않고 하고 있는 매니저급들이나…

저도 직원들 월급을 주면서 개인사업도 했었지만, 제 직원이 이 짓을 하고 있으면 좀 짜증이 났을 것 같네요.

31055 –> 31027 –> 35029 의 드라마틱한 (이라고 쓰고 대환장의 파티)가 보이시나요?

제가 저걸로 저기 매니저에게 몇 번 이야기 했는데, 회사업무규정이고 관행이라고 하는 걸 보고 쟤는 함께할 인력이 아니구나 라고 결론을 내린 적이 있죠.

엑셀에 숫자를 넣으면 자동연산이 되지만 그럴 환경이 안 되어서 수기로 적는다고 하면 그냥 하루에 판매한 숫자만 기록하고 마지막에 총합누적을 기록하는 것이 틀릴 가능성도 적고 틀릴 폭도 적죠.

직장인들 중에 이런 생각으로 반평생 일을 하다가 갑자기 나와서 내가 월급을 줘야 하고 나가는 모든 비용을 내 호주머니에서 지출하다 보면 마음이 조급해 지고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하게 되는거죠.

차이컬쳐시즌1에 적었던 내용을 다시 소환해서 적어 보았습니다. 

최근에 재미있게 본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Alex Honnold Skyscraper 인데요.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Taipei101 건물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내용입니다. 

근데 보니까 쟤 별거 아니더군요. 그냥 딱 지 키 높이 정도 되는 유리블럭을 반복적으로 올라 간 거잖아요.  누구나 저 정도 하개 유리블럭은 올라 갈 수 있겠던데요. 연습 조금만 하면…

1층 바닥에서 올라갑니다. 101층 높아 보이지만 한개 유리블럭은 대략 저 정도 입니다. 저 정도는 연습만 조금 하면 일반인들도 올라갈 수 있지 않나요?

가령 예를 들어 저 101개의 유리블럭을 바닥에 모두 넓게 깔아 놓고 101번 올라가는 거랑 비슷하잖아요. 저기서 떨어진다고 죽지도 않을테고, 바닥에 101개의 유리블럭 깔아놓고 올라가는 거랑 저 빌딩을 저렇게 기어 올라가는 거랑 ‘원리’는 같지 않나요?

라고 혹시나 생각할 직장인분들이 계실까봐 차이컬쳐시즌1에서 썼던 내용을 다시 한 번 소환하면요.

자영업을 하면 아래에 아무런 그물이나 내 몸에 밧줄등의 안전장치 없이 고층건물과 건물사이의 줄을 걸어서 건너는 느낌입니다. 직장인들을 관찰해보면 지금 회사가 부도의 위기에 처해 있어도 마음 편하게 직장생활할 수 있죠.

그런데 경영이 어려워 당장 이번달 직원들 월급줄 돈이 없을때는 정말 심리적으로 힘듭니다. 사장이 되어 보니 월급날은 왜 이렇게 자주 오는건지…

직장생활은 저 유리블럭 101개를 바닥에 쫙 깔아놓고 그거 올라가는 행위를 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좀 완곡한 표현을 썼습니다. 안 그런 직장인들도 있기 때문에)

하지만 여러분이 사장이 되고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입장이 되면 저 101개의 유리블럭이 딱 저렇게 수직으로 쌓여 있게 되고 저걸 안전장치 없이 올라가야 하는 거죠.

특히 창업을 하고 개인사업을 해서 실패를 하면 여러분들이 딱 예상하는 것처럼 사회안전장치가 별로 없습니다. 

저는 직장생활하면서 개설해 놓은 마이너스통장을 개인사업을 시작하니까 은행에서 바로 해지를 시켜 버려서 당시 예상치 못 하게 마이너스통장이 사라져서 그 돈 메꾸느라 정말 힘들었고 그 하나은행 직원에게 그렇게 통사정을 하고 내가 뭐 연체한 것도 아닌데 왜 마이너스통장을 해지하려고 하냐고 읍소를 해도 사정 봐 주지 않더군요. 은행은 비올때 우산 뺏어 갑니다. 

저 분은 대단하더군요. 저길 맨손으로 오르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저 미소를 유지하면서 올라가더라구요.

저는 개인사업/자영업 하면서 정말 힘들었거든요. 저의 자영업 힘든 역사를 이 글을 읽고 있는 아는 동생녀석이 잘 알고 있고, 제 아내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그 당시 제대로 웃어 본 적도 없고, 사람들 앞에서 웃어도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렵고 힘들다는 걸 감추기 위해서’ 웃은 거라 저 분의 영상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 영상 넷플릭스에 올라오고 나서 이런 이야기를 한 번 적어야지 마음은 먹고 있었는데, 마침 지난주에 어느 직장인이 프랜차이저 카페 개업 이야기를 하길래 글을 올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제가 아는 사람중에도 보니까 직장생활 하고 있는데, 카페를 운영하는 분도 계시더군요. 평일에는 직장다니고 주말에는 카페나가서 직접관리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직장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은 생각이 협소해 질 수 밖에 없죠. 페인트볼 서바이벌게임 잘 하는 거랑 실제 전쟁터에서 작전수행 하는 거랑은 다르 잖아요. 저 유리블럭 1개 평지에서 못 올라 가겠어요? 떨어져도 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 글 쓰기 바로 직전 오늘 저의 대만카페 매출금액을 봤는데, 현재 그 지역 대학교가 방학이라 사람도 없고, 춘절을 앞 두고 있어 다들 집으로 돌아갔을 시기임에도 매출이 이전처럼 꾸준히 나와주어서 감사하고 다행스런 마음에 글 올려 보았습니다.

대학교 방학이면 이 인근 많은 식당/카페/상점들이 한달동안 휴무를 하거나 단축영업을 하거든요. 심지어는 저의 카페 바로 근처에 있는  대만 최대의 프렌차이저카페인 쟤도 휴무일도 많고 단축영업을 하더라구요.

그런걸 보면 다행히도 작은 규모이지만 많은 손님들이 꾸준히 찾아 주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리면, 반평생 월급쟁이 생활 하다가 (준비없이) 퇴직금 투자해서 가맹점 뛰어 들었다가 피 보신 분들 많습니다.  영세자영업 쉽지 않습니다. 

고도의 직업훈련을 받은 고양이들과 함께 보트를

고양이와 보트를 함께 탈 수 있는 태국의 어느 마을을 왔습니다. 이 곳은 태국의 여느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수로를 따라 주택가, 상점 들이 있는 그런 마을인데요. 여기에 고양이와 함께 보트를 탈 수 있다는 곳이 있어서 와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전문직업교육’ 을 받은 녀석들이더군요. 고도의 강도 높은 특수한 훈련을 통과한 녀석들만 선별해서 직업전선에 투입이 된 듯 했습니다. 

손님의 등에 올라가기, 보트사이를 뛰어 다니기, 먹기 싫은 풀 뜯어 먹기 등등… 엄청난 스킬 들을 발휘하더군요. 그 중에서도 압권인 것은 일부러 물에 빠져 손님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그런 교육도 받았습니다. 

위의 영상을 보시면 충분히 뛰어 건널 수 있는 거리임에도 손님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일부러 물에 빠지는 몸개그를 합니다. 

저의 대만 카페에 고양이 세녀석이 있는데, 마땅히 보고 배워서 저의 카페운영에 도움이 될만한 그런 자세인 것 같습니다. 살묘성인하는  자세로 주인의 영업에 도움을 주려는 저런 자세…

제가 평소 저의 카페 고양이들에게 영업시간에 방에서 잠만 자지 말고 가끔 내려와서 손님들하고 어울리고 하라고 그렇게 말을 하는데도 듣질 않거든요.

손님들에게 보여주려고 풀을 뜯어 먹는 녀석입니다. 저의 카페 고양이 중 한 녀석은 사료도 딱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안 먹는 녀석이 있는데 이렇게 손님들에게 풀먹는 공연도 기꺼이 하는 주인입장에서 보면 바람직하고 연말보너스를 더 챙겨주고 싶은 고양이 입니다. 

혹시라도 ‘에이 고양이가 무슨 풀을 뜯어 먹어? 그냥 풀을 입에 넣어 놓고 사진한장 찍은 주작이겠지’ 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아래 영상도 함께 올립니다. 

작은 수로를 따라 고양이들과 배를 타고 천천히 거닐다 보니 저 순간만큼은 일상의 바쁜 잡념들로 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노를 저어 주시는 분들이 간단한 영어도 하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고양이 이름도 알려주고, 고양이들이 배들 사이로 오갈 수 있도록 서로 조율을 하면서 이동을 하더군요.

셀카를 찍을 때 저렇게 자세도 잡아 주네요.

저희는 저 분들과 서로 사진을 찍어 주기로 하고 배에서 내려 사진을 교환했죠. 다른 배의 사람들과 서로 사진찍어 주기 아이디어는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탄 배의 전체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까요.

저렇게 잘 뛸 수 있는 녀석이 일부러 물에 빠지는 연기를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점점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많이 보이더군요. 주변에 학교들이 많아서인지 다양한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해가 지기 시작할 때의 풍경도 멋있더군요. 

고양이들과 함께 보트를 탈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구요.

어떤 관광지는 지불한 돈에 비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는데, 이번에는 여기 와 보길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재미를 위해서 왜곡, 과장, 허위사실 등이 다수 들어 있음을 밝힙니다. 저의 카페 고양이들도 나름 카페에 내려 와서 손님들과 교류?도 하고 영업의 20% ? 정도의 지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