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에 이어 오랜만에 6편을 올립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바쁜 일들로 태국배낭여행기를 올리지 못 했습니다.
내용은 1편부터 보시면 더 재미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에 있어서 어떤 전환점이 있었을 겁니다. 그게 아주 큰 life changer 인생의 큰 물줄기를 바꾸는 계기였든, 사소하게나마 무언가가 바뀌는 계기였던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겁니다.
저는 첫외국어인 일본어를 포기하고 중국어를 배우기로 길을 들어선 것이 하나의 큰 전환점이었구요.
전환점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사람들은 누구나 몇 번 정도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른채 그냥저냥 하루하루 살면서 지내는 시기가 있을 겁니다. 그럴때 가끔은 저런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할 계기가 찾아 온다든지, 스스로 무언가 ‘각성’ 을 해서 내 인생을 바꿀 행동을 한다든지… 이런 것들이 필요하죠. 저는 가끔 ‘각성’ 을 합니다. 그런 각성을 하게 되면 갑자기 나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면서 나의 인생을 바꾸게 되죠.
저 대만학생이 어쩌면 그런 상황일 수도 있겠네요.
태국 시골사람들이 하는 방식대로 낙시를 했습니다. 대나무를 잘라 낙시대를 만들고, 물에 들어가서 고기를 한 쪽으로 몰고.
저 학생이 다른 것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 하고 매사 늘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인데, 물놀이에는 항상 적극적이더군요.
저 학생의 어머니는 ‘여느 부모님들과 마찬가지로’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또 영어를 잘 하는 학생이 되는 바램이 있지만, 제가 지켜본 바로는 저 학생은 ‘아.직.은.’ 학교 공부에는 크게 흥미도 소질도 없어 보였습니다. 저도 고등학생때 방황을 많이 해서 저게 좋다 나쁘다 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잘하지 못 하는걸 계속 시키면 힘들죠. 물놀이를 저렇게 좋아하는데, 뭔가 물놀이처럼 할 수 있는 걸 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 아닐까요? 누구나 다 영어를 배울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이 모든걸 다 가르쳐 주고 주도해 준 저 태국시골 소녀… 대나무를 골라 잘라 다듬어 낙시대도 만들고, 심지어는 물속에도 들어가서 물고기들도 몰고, 또 저렇게 불도 피우고 요리도 하고…
도시에서 산 사람들은 쉽게 할 수 없는 것들을 척척 잘 하더군요.
저기 물에 들어가서 물고기를 쫓는 모습입니다. 안전튜브가 없으니 저런 플락스틱 통 2개를 줄로 엮어 튜브처럼 사용하더군요. 중국/태국 살면서 느낀건데, 한국은 정말 잘 사는 나라거든요. 캠핑을 취미로 한다고 해도 각종 장비도구를 비싼걸로 사용하고, 심지어는 일년에 두세번 앉을까 말까 하는 캠핑용 의자도 많은 돈을 주고 구입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죠. 그럼에도 불행하고 어렵다고 생각을 합니다. 근데 중국/태국 살아보니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정말 잘 사는 편입니다. 소비와 경제수준의 표준이 너무나 높고 다른거죠.
직접 잡은 물고기를 또 저렇게 불에 구워서 먹습니다. 돈 주고 그릴 살 필요도 없네요. 낙시대를 이용해서 불에 굽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감자튀김도 직접 썰어서 저 위의 사진처럼 직접 만들었습니다.
저 대만학생 만약 이 여름방학 동안 집에서만 지냈으면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맨날 밤 늦게 까지 게임만 하고 다음날 12시쯤 일어나서 밥 먹고 또 하루종일 집 안에서 게임만 했을 건데요. 저 학생도 보니까 사회성이 많이 결여되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못 하더군요. 딱 엄마 아빠 동생하고만 대화를 잘 하는 것 같았습니다.
뭐 또 그게 나쁜게 아니죠.
하지만 사람이 어느 정도의 사회화 교육, 훈련, 경험도 쌓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 꼭 사회성이 좋아야 하나? 이렇게 생각하실 분들도 계실테지만 정작 본인의 자식이 하루종일 방안에서 게임만 하고 나오지도 않고 12시나 되어 일어나고 하면 그걸 받아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남 이야기니까 쉽게 할 수 있지만 본인의 가족 이야기면 그렇게 쉽게 못 하죠.
왜냐하면 내 자식은 그렇게 살아도 상관없을 ‘용기’ 가 없거든요.
다양한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이런 곳도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아직 저 학생에게는 이런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감수성이 발달이 안 되어 있는 것 같더군요. 이 학생과 어디를 가더라도 별로 흥미가 없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딱 물놀이, 쇼핑몰 안에 있는 장난감뽑기 이런 것에만 관심을 가지더군요. 이 학생을 인솔해 온 입장에서는 조바심이 많이 났습니다.
제가 여러 한국관광객들 데리고 차량운전가이드 를 해 보니까 많은 학생나이대의 친구들은 이동중 차에서는 휴대폰만 보고 있고, 차에서 내리면 그 휴대폰으로 SNS 에 올릴 사진 몇 장 찍고, 또 그걸 찍고 나면 SNS 에 올릴 사진 고르고 있고… 관광지의 풍경이나 그 지역의 역사, 문화 스토리 등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나이가 40 정도 되는 사람중에도 저런 형태가 있었구요.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나이가 어린 학생들 중에서도 함께 다녀 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래된 건물을 하나 보더라도 유심히 관찰을 한다든지… 저는 평소 늘 저런 것들을 관찰 하는걸 좋아하거든요.
동굴이 있길래 동굴도 한 번 들어가 보았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태국북부에서 축구부 학생과 지도교사가 동굴에 들어갔다가 폭우에 불어나 물에 갇혀서 극적으로 구조된 사건이 있었죠. 태국에 살아서인지 다큐도 보고 영화도 봤거든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인간이 의외로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집에서는 다같이 요리도 함께 하고 그걸 다같이 준비해서 함께 나눠 먹기도 했습니다.
저 학생의 ‘보호자’ 입장으로 여행을 떠나 온건데… 남들 다 즐겁게 대화하며 즐기고 있는데, 영어를 못 해서 참여하지도 못 하고, 남들 다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는데 원래 편식도 심한 편에다 낯선 음식을 저렇게 ‘연구’ ‘분석’ ‘경계’ 하며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만약 제가 저 학생의 친부모였다면 참 가슴이 아프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것을 개선할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저의 경험으로 봤을때는 인생에 있어 뭔가 전환점이 될 만한 사건사고, 계기, ‘각성’ 나락으로 떨어진 절박한 상황 등등 이었거든요. 서술한 내용은 좀 부정적이고 극한 상황이고, 아니면 ‘압도적인 경험’ 이더군요.
제가 차이컬쳐에서 늘 자주 하는 이야기 ‘압도적인 경험’
회사에 들어와서 직장인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뭔가 비즈니스 전문가 같은 ‘말’ 을 많이 하지만 한발짝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보고 있으면 결국 ‘서바이버에서는 다같이 요리도 함께 하고 그걸 다같이 준비해서 함께 나눠 먹기도 했습니다.
저 학생의 ‘보호자’ 입장으로 여행을 떠나 온건데… 남들 다 즐겁게 대화하며 즐기고 있는데, 영어를 못 해서 참여하지도 못 하고, 남들 다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는데 원래 편식도 심한 편에다 낯선 음식을 저렇게 ‘연구’ ‘분석’ ‘경계’ 하며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만약 제가 저 학생의 친부모였다면 참 가슴이 아프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것을 개선할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저의 경험으로 봤을때는 인생에 있어 뭔가 전환점이 될 만한 사건사고, 계기, ‘각성’ 나락으로 떨어진 절박한 상황 등등 이었거든요. 서술한 내용은 좀 부정적이고 극한 상황이고, 아니면 ‘압도적인 경험’ 이더군요.
이런 시골 구멍가게에서 직접 물건도 사보고
대만 같은 좁은 나라에서와는 달리 불편한 차에서 장거리 여행도 해 보고
트럭 짐 칸에서 이동도 해 보고
식사 후 저런 해먹에 누워 낮잠도 자 보고
평생 단 한번도 하지 않았던(학생 어머니가 해 준 이야기 입니다) 남들을 위해 모팅커피도 준비를 해 보고
글 첫머리에서 언급을 했던, 인생을 어떻게 하면 바꾸거나 업그레이드 할 계기를 가질 수 있을까?
저의 경우에는 ‘각성’ 과 ‘압도적인 경험’ 이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 보니.
‘각성’을 설명 드리자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때가 몇 번 있었거든요. 통장에 잔고 0원에 빚이 있었고, 매달 독촉을 당하던 시절. 사업하다가 다 날리고 남은 사무실 집기 박스에 정리하면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그 시절. 직원들 월급날은 다가오는데, 당장 내 생활비도 없는데 직원들 월급은 먼저 줘야 하니까 이리저리 뛰어 다니던 시절.
저는 아침에 눈 뜨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저는 눈을 뜰 때 ‘너 이런 것도 지금 못 일어나면 니 인생 다시 저 시절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한마디면 몸이 저절로 일으켜 세워지거든요. (오늘도 일요일인데 5시에 일어나서 아침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 날 학생과 단 둘이 좀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 학생도 뭔가 공부도 안 되고, 어머니가 요구하는 영어도 안 배워지고 (언어에 큰 흥미가 없어 보이더군요). 당장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옆에 휴대폰이 있으면 게임은 하고 싶고. 게임 하고 있으면 세상 제일 행복하고.
더 잘 하고 더 배워야 한다고 다그치는 여행만 하다가 저 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사실 인생은 다양한 길이 있다. 꼭 대학 안 가도 되고, 모두가 다 영어를 배우지 않아도 된다. 니가 대만 돌아가서 ‘각성’ 해서 니가 하고 싶은 걸 찾는 것만 해도 너의 고등학생 시절은 성공인거다 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저는 고3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방황만 하고 부모에 대한 반항만 했었거든요.
또 저 날 오전에 어머니와 영상통화를 하게 해 주었습니다. (학생은 휴대폰이 없었거든요) 어머니도 울고, 학생도 울고…
그렇게 태국시골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다시 방콕으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습니다.
한시간 넘는 거리인데 차량이 픽업트럭 밖에 없어 여느 태국사람들처럼 짐칸에 앉아서 가려고 했는데, 마침 폭우가 쏟아지네요. 비행기 타러 공항가는데 폭우 쏟아지는 날 우의 입고 픽업트럭으로 가 본 경험 거의 없으시죠?
남자인 제가 짐칸에 타려고 했는데, 태국여자분들이 뒤에 타겠다고 해서 저는 실내에서 앉아 왔습니다.
저 역시도 며칠간이 태국시골 생활이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이렇게 한달 배낭여행 하기도 쉽지 않고, 또 이런 시골에 가서 일주일 체험 하기도 쉽지 않잖아요.
함께 간 동생은 피부에 뭔가 트러블 생겨서 계속 약 바르고, 저는 상처 나고, 벌에 손가락을 쏘였는데 퉁퉁 붓고 엄청 아파서 계속 아이스찜질 했었습니다. 벌 한마리에 쏘였는데도 저렇게 고통이 심하고 오래 가는데, 벌집 잘 못 건드리면 안 되겠구나를 간접 ‘경험’ 했습니다.
지금 11월. 함께간 대만학생은 결국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해서 대학진학과는 조금 거리가 있을 것 같더군요. 최근에 연락을 못 해 봤는데 오늘 저 학생과 연락 한 번 해 봐야 겠습니다.
더 재밌는 이야기 계속 올릴 예정이고, 많은 사진들 중에서 스토리에 쓰이지 못 해 올리지 못 한 사진들은 별도로 또 올려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