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략 10분 전의 일입니다. 거의 50여일만에 체스를 다시 구독해서 온라인으로 게임을 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나와 등급이 비슷한 사람과 랜덤으로 경기를 하죠. 그런데 최근에 거의 매일같이 하루에 몇 게임씩 하고 나름 전략도 익히고 했던 게임인데, 오랜만에 해서 인지 기물의 길이 가물가물하면서 뭘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하나도 생각이 안 나더군요. 겨우 50여일 게임을 안 한 것 같은데 말이죠.
갑자기 체스를 꺼낸 이유는 유튜브에서 알고리즘으로 최근 수년간 체스세계챔피언 이었던 magnus carlsen 의 영상이 몇 개씩 보이길래, ‘아 이제 다시 체스를 할 시기가 왔나 보다’ 라고 생각하고 오늘 한 번 해 보았습니다. Magnus carlsen은 오랜기간 세계 1위의 위치에 있었는데 최근에 인도의 19세 신흥강자에게 게임을 지고 탁자를 내리치는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까지 Magnus가 다소 유리했었거든요.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기물을 희생해서 pawn(장기로 치면 졸)을 밀어 퀸으로 변경하려는 그런 계획이었는데, 엔드게임에서 졌죠. 아무튼…
오랜만에 장기를 두어서인지 기물의 길이 전혀 생각도 안 나고 뭐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처음 체스를 두는 사람같은 그런 한판이었습니다.

원래 체스 한 판 지면 좀 화도 나고 짜증도 나는데, 이번에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아무 느낌도 없고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싶더군요. 오죽했으면 게임 끝마치고 10분만에 글을 적겠어요. 그것도 최근 뜸하게 글을 올리는 상황에서.
제가 올 여름에 한국가서 나름 장기 고수이신 친척어르신과 한국장기를 두어서 이겼다고 차이컬쳐에 글을 올린 적이 있거든요. (보러가기)
한국장기는 한글을 배우기 전에 배워서 거의 머리에 각인이 되어 있는 상황이라 10년 20년이 지나도 기본실력은 나오는 것 같은데, 확실히 체스는 최근 1~2년 정도 배운거라 50일 정도 게임을 안 했다고 순간 전혀 생각이 나지 않더군요. 그 순간 외국어와 비슷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외국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한국어를 잊어 버릴 가능성은 낮죠. 모국어니까. 그런데 중국어나 영어는 조금 안 쓰면 말이 잘 안 나온다든지, 뭔가 버벅인다는 느낌이 있거든요.
이게 아주 어릴때부터 습득한거랑 나이가 좀 들어서 후천적으로 배운것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위의 사진을 딱 보시면 아무래도 내 모국어의 문구가 먼저 들어오시죠?
뭔가 머리가 복잡할 때 체스를 두면서 생각을 집중하고, 잡념을 지우는 효과도 있고, 또 뭔가 두뇌를 많이 쓴다는 기분도 들고, 한국장기와는 또 다른 재미도 있어서 하루에 3-4게임 정도 했는데, 오늘을 계기로 다시 체스를 해야 겠습니다. 바둑은 두는 법만 아는 정도이지만, 바둑 잘 두시는 분들 보면 일반인과 저런 고수간의 차이가 얼마나 큰가, 즉 사람의 두뇌능력이 저렇게도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되죠. Magnus의 체스게임 보고 있으면 저런 수들은 도대체 머리속에서 몇 수를 생각해야 나오는건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둑고수들은 머리속에서 100수를 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구요.
체스쪽도 보면 경기내내 눈을 가리고 기물이 움직인 장소만 말로 들으며 경기를 해서 이기는 영상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죠. 체스판을 보고 두어도 이길 수 없는데, 그 많은 기물들을 보지 않고 머리속으로 생각만 해서 게임을 한다는 건 일반인들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제가 즐겨 보는 체스플레이어도 눈가리고 게임을 하는데, 이 정도 되는 수준의 이 분도 ‘그랜드마스터’ 레벨에게는 거의 게임을 지더군요.
스타크래프트 로 예를 들면 일반인 래더고수가 아무리 날고 뛰고 해도 프로게이머가 설렁설렁 apm 300이하로 해도 이기는 그런 차이 이겠죠.
저야 체스를 취미로 재미삼아 뒤늦게 배워서 하는거지만 기왕 하는거 잘 하고 싶어서 생각을 많이 하고 배우는 편인데, 단 50여일 만에 기물 이동하는 방법이 순간적으로 생각이 나지 않는 것에 적잖게 당황해서 글도 주저리주저리 두서없이 길어 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