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태국친구가 친구농장에서 큰 뱀을 잡았다며 사진을 보여 주더군요. 보니까 사탕수수밭 인 듯 한데요. 저도 태국친구의 시골집에 갔다가 저런 사탕수수밭을 간 적도 있고, 저런 농장에서 일을 도와 준 적도 있습니다. 그 때 마다 늘 머리속에는 뱀 생각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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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은 없는 뱀 같네요. 오히려 독이 있는 뱀보다는 저렇게 큰 뱀이 한 번 싸워볼 만하죠.
저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는 편인데, 지금도 뱀 잡으러 반바지 입고 숲속에 들어가거나, 뱀 잡으러 숲속, 물속 뛰어 들어가는 모습보면 저게 진짜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도 저 농장에 가서 일을 도와준 적이 있거든요. 태국에서도 그렇고 중국에서도 그렇고 이런 농장은 뱀도 무섭고, 저녁에는 살짝 무섭긴 합니다.
제가 이런 형태의 농장을 처음 가 본 것이 2000년 중국의 어느 시골 중의 시골마을 이었는데요. 친구집에 가 본다고 따라 갔었죠. 그 당시에는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처음 배울때 여서 이것저것 ‘중국인들처럼 해 보기’ 를 실천하던때라 시골마을 갈 기회가 있어서 가 보았습니다. 정말 시골입니다. 사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대만 이 곳을 ‘시.골’ 이라고 하지만 중국에서의 시골과는 비교과 되지 않습니다. 거기는…
위는 태국시골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2000년 그 당시 중국친구 시골마을은 주변이 온통 옥수수밭이었습니다. 그 때가 옥수수가 한창 높게 자랐던 시기였는데, 해가 질 무렵 옥수수밭 옆에서 옥수수밭 안쪽을 바라보니 살짝 공포스런 느낌이 들더군요. 들어가서 누가 죽어도 아무도 모를 정도의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 친구 시골집도 목조로 된 정말 다 쓰러져 가는 집이었거든요.
중국에서 간혹 친구집에 여행을 다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래도 자식이 외지에서 외국인친구 데리고 왔다고 하면 없는 살림이지만 조금 성대하게 음식도 차려 내어 주고 하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 부모님은 뭐랄까… 집이 찢어지게 가난한 그런 집이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그 부모님의 모습이나 집의 정확한 구조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거의 다 쓰러져 가는 목조건물 부엌에서 그 대학교친구와 쪼그리고 앉아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던 기억은 어슴프레 납니다. 그리고 마을 전체에 어둡게 펼쳐져있던 그 옥수수밭들… (참고로 중국의 시골 옥수수밭은 면적이 엄청 넓습니다)
제가 학생때도 그렇고 업무적으로도 그렇고 중국시골은 참 많이 다녔었거든요. (차이컬쳐 시즌1 부터 보신 분들은 그 수 많은 이야기들 아실 겁니다)
대체로는 시골을 가더라도 어떤 곳은 좀 목가적인 여유로움이 느껴 지기도 하고, 사람들의 표정이 해 맑기도 하고 그래서 즐겁게 있다가 오는데, 당시 저 중국친구의 고향집과 부모님의 얼굴표정은 그야말로 가.난.에.찌.든.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연태대학교에 있을때, 학교 한국여자후배와 함께 거기서 공부를 했었는데요. 어느날 그 여자후배가 저에게
“선배, 여기 여학생들 생리대가 없어서 휴지로 생리대를 대신해서 사용해요”
라고 하면서
“(우리 도와주는) *** 있죠. 걔도 보니까 생리대가 없어서 휴지로 사용해요”
라고 말을 하더군요.
전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여자들은 모두 생리대를 사용하는 걸로 생각을 했었고, 생리하면 당.연.히. 생리대라는걸 사용하는 거겠지 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여자들의 생리대에 대해서 자세히 관심조차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집에서 농장까지 거리가 좀 있어서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쉴때는 근처에 있는 이런 움막에서 간단히 음식도 해 먹으며 쉰다고 하더군요.
제가 차이컬쳐에서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요.
“저는 중국 다녀 와서 철이 들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라구요. 아무튼 그래서 그 중국친구는 학교에서 우리를 많이 도와줬던 친구라 저도 더 감사한 마음으로 밥도 사 주고 많이 도와 주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23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시골농장의 사탕수수/옥수수밭 이야기가 나오면 그 당시의 그 친구 시골이 생각납니다. 그 때 보았던 해가 진 직후의 옥수수밭의 공포스런 그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고, 그 가난이 찌들어 있는 부모님의 표정과 목조시골집이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갑자기 이야기가 삼천포로 흘렀는데, 아무튼 저런 옥수수밭이나 사탕수수밭은 실제로 들어가려고 하면 살짝 무섭습니다. 특히 해가 지고 나서는 정말 무섭습니다.
저 태국친구 말로는 이 고무농장의 일은 새벽3시 ~4시경에 나와서 일을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기후때문에 덥지 않을때, 저 고무관련 일을 하러 농장에 가야 하는데, 보니까 여자 혼자서 오토바이타고 가서 일을 하더라구요.
제가 무섭지 않냐고 하니까, 무섭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이런 깊은 시골 농장에 밤이 되면 무섭겠죠. 그것도 여자혼자서 일을 하는데 얼마나 무섭겠어요.
그리고 뱀 안 나오냐 물어보니 뱀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런 긴장화를 신는 거겠죠. 그런데 보통 뱀과 마주치는 순간에는 뱀이 먼저 도망을 간답니다.
저보고 새벽에 함께 나와서 일을 하자고 했었는데, 차마 새벽 3시에 농장일은 못 하겠더군요.
일하다가 힘들면 여기서 쉬어도 된다는데, 여기가 더 무섭…
저 해먹에 누워 있으면 왠지 뱀이 아래 위로 지나갈 것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태국시골, 중국시골 이야기를 좀 하면서 이전 중국시골 다녔던 생각을 떠 올리다 보니,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대만 여기는 ‘시골’이라 부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여기는 완전 번화한 대도시 느낌인데요.
태국은 2020년대에 돌아 다녔고, 중국은 2000년대에 돌아 다녀서인지는 몰라도, 중국의 시골들은 정말 시골이었네요. 그 당시에는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었고, 제 친구의 시골집에도 그 마을에서 전화기가 몇 곳만 있었고, TV가 흑백으로 이전 브라운관 TV 였으며 그나마 TV에 달린 안테나로 춘절관련 방송을 보는데 화질이 너무 안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태국친구의 시골도 엄청 시골이긴한데, 휴대폰이 있고, 휴대폰으로 인터넷이 가능하다보니 뭔가 고립된 느낌은 좀 덜 한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은 태국친구가 농장에서 뱀 잡은 사진을 보내 주길래 시골이야기 한 번 해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태국시골도 아직 엄청 가난합니다. 그리고 이런 시골지역 사람들의 경제상황, 주거환경들이 너무나 열악합니다.
제가 차이컬쳐에서 다 못 다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어떤 부분은 이야기를 하기가 너무나 민감한 부분도 있어서 차마 올리지 못 한 내용이나 사진들이 많습니다.
그런걸 보면서 저는 늘 경제적으로 엄청 부유하다 생각하며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중국생활하면서 물질보다는 ‘사람’ 이 먼저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또, 저의 차이컬쳐 전체 기조도 ‘사람’ 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