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도 중화권의 문화가 많이 남아 있죠. 경험상 태국 어디를 가더라도 중화권문화의 흔적을 볼 수 있죠. 차이컬쳐… 차이나+컬쳐 인만큼 어디 있더라도 중화권문화에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의 모형은 태국에 있는 중국식절 앞의 시장풍경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유럽에도 성당주변이 지역주민들이 모여서 시장상권을 형성한다고 하는데, 여기도 비슷한 맥락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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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 중화권사람들이 모여살기 시작한 시기를 1782~1851 경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네요.

당시 태국방콕의 노동인력 부족현상과 맞물려 중국본토의 이런저런 불안정세 등으로 중국의 해남성, 광동성, 복건성 부근의 사람들이 태국으로 이주를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중국의 무역상인들도 활발하게 동남아로 진출을 하기도 했었구요.

당시 태국으로 와서 정착을 했던 중국인들의 민족별로 나누어 두었습니다. 

두번째 사진을 보시면

복건인 : 복건성
조주인 : 광동성동북
객가인 : 광동성북부
광동인 : 광동성중부
해남인 : 해남섬동북부

기존에는 그냥 광동성에서 온 사람으로 퉁쳐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광동성에서도 저렇게 지역을 나누어 구분한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당시에 이런 형태의 범선을 타고 동남아등지로 무역을 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무역을 하다가 난파를 당해 실종된 사람도 많고, 그 당시에 각 나라별로 난파된 사람들을 모아서 관리하는 곳들도 있었다고 하구요.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일본, 청 등지로 해상무역을 하던 사람도 있고, 그 와중에는 난파를 당해 일본-필리핀 으로 일찍부터 해외의 발달된 문물을 보고 온 조선사람들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도 좀 더 일찍부터 청/일분뿐 아니라 더 넓은 세계로 해상무역에 눈을 떴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죠. 네델란드표류인이 자국에는 대형선박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고 하자 허풍이라고 조선왕뿐아니라 고위관리들이 비웃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바로 위 사진을 보면 남자는 중화권사람이고 여자는 태국쪽 사람인 것 같습니다. 보통 태국쪽 여자들이 저렇게 옷을 입으니까요. 그리고 저 당시에 중화권-태국사람간의 혼인도 있었다고 하며 1909년도 부터인가 아버지가 중국사람이면 해외에서 출생한 아이도 중국국적을 따르게 한다는 법이 제정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화라는 것은 대체로 한쪽방향으로만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서로가 영향을 받기도 하고, 어떨때는 두개의 다른문화속에서 다른 형태의 문화가 형성이 되기도 하죠. 언어도 마찬가지로 두개의 다른 언어가 공존하는 지역에서는 상호간섭을 일으키기도 하고, 기존에 없던 언어나 문자형태가 생성된다고도 합니다. 

당시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의 삶은 많이 힘들고 고달펐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기술이 안 되어 있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집떠나서 객지에 사는 것 만으로도 힘든데, 이런 먼 해외에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삶은 지금의 저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형으로 잘 묘사를 해 두었네요. 그 당시의 병원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육체노동자들이 혼자살면서 병치레 하는 경우가 많아 중화식병원을 설립해서 운영을 했다고 합니다. 

약탕기가 있는걸 봐서는 중의의원 인 것 같네요.

아울러 늘어나는 중화권이주자들의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학교도 설립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태국 전역에 여행을 하다보면 오래된 화교학교들이 약간은 뜬금없는 지역에 있는걸 볼 수 있는데요. 무언가 그 지역에 수요가 있으니 화교학교를 만들었겠죠.

한국에도 인천과 부산에 보면 화교학교가 있듯이 말이죠.

저 인형모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사람들의 탁구사랑…

중국의 시골학교들 가보면 운동장에 대부분 탁구대가 있습니다 문제는 야외탁구대라서 바람불면 좀 치기가 힘들고, 또 큰 돌을 사각형으로 만들어 탁구대로 사용하는데 표면도 울퉁불퉁해서 이런 환경에서 어릴때부터 탁구를 연습하니까 수많은 고수들이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게 합니다.(농담입니다)

그러면서 중화식 절도 많이 설립을 한 것 같구요. 확실히 태국에서도 중화식 절과 태국식 절은 확연히 다르죠.

그러면서 이런 연극공연장도 생겨나서 여가생활을 보낼 수 있는 환경도 점차 마련이 된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도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빈부의 격차가 있어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의 집과 가난한 사람들의 집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태국전역 돌아다니다보면 볼 수 있습니다. 조만간 230년된 중화권 부자집의 주택을 한 번 소개해 보겠습니다. 

방콕 차이나타운 하면 저 위의 사진거리가 대표거리풍경이죠. 야경이 멋진 거리인데요. 저 거리를 The Gold Road 라고 하는데 실제로 금을 매매하는 가게가 많습니다. 달리 황금거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금매매를 많이 했던 것 같네요.

금매매가게도 저렇게 모형으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금은 현금이상의 가치를 가집니다. 태국의 불상들 중에 금으로 만든 것들은 도난을 피하기 위해 겉에 다른 재료로 위장을 해 두는데, 그래서 불상의 머리를 많이 약탈했다고도 합니다. 아시는분도 많겠지만… 태국에서 불상머리 매매는 범죄행위입니다. 

저 시대의 사진기록이 많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태국에서 중화권 사람들의 생활상은 어딜가나 저런 사진기록으로도 엿볼수 있어서 나름 고증하기는 쉬울 것 같습니다. 

아래사진은 태국에 살고 있는 화교들의 직업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네요.

그 당시 태국에서 발급한 비자인데요. 기록을 보니 10밧인가?로 2년간 거류비자를 발급했다는 기록도 있고, 비자발급을 위한 인세도 20~400밧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날 여기서 이런저런 이전 기록에 대한 설명을 읽어 보았는데, 이민1세대 중화권사람들의 삶은 엄청 힘들었다고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원래 이민1세대는 고생하는 세대이고 2세대 3세대는 그걸 누리는 세대라고도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가끔 1900년대 전후의 중국상해지역, 광동/홍콩지역, 또 태국, 말레이시아 지역의 삶으로 돌아가서 살아 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기는 합니다. 그건 제가 중화권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일 수도 있는데요. 

만약 제가 100년전 200년전 저 당시 사람이었고, 중국본토의 삶이 시궁창이었다고 한다면 저 역시도 어딘가로 떠나서 인생을 개척하려 했을 것 같습니다. 저의 성향상…

저 당시 아편전쟁 패배로 청나라는 국고를 채우려고 백성들을 상대로 세금도 많이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삶이 아주 피폐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정부는 국민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는 정책을 사용했는데, 상대적으로 북경에서 먼 광동 및 남쪽까지는 그렇게 제한할 수 없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저 여자분의 이름은 木 木 燕 이 아니라 林燕 인 것 같습니다. 나무목木 2개를 좀 더 붙여써야 할 것 같은데… 본인이 직접 썼다면 교육을 많이 못 받은 사람이었거나, 한자를 평소에 많이 써 보지 않은 태국사람이 저 문서를 작성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燕은 제비 라는 뜻이고, 이전에 황제의 딸 이라는 TV 드라마에서 딸의 이름도 저 燕 이 있었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여기 태국의 대중국수출물품 중 하나에 제비집이 있었다고 하죠.

그래서 방콕 차이나타운에 가면 이 제비집 파는 상점과 제비집요리식당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 제비집은 해안가에 사는 제비의 집으로 우리 시골에서 사는 그 제비집과는 다릅니다. 주로 해안가의 생물과 본인들의 침을 섞어 만들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공급량이 극히 적고 채집하기가 어려워 가격이 비싼 것이지, 뭐 딱히 약용효과는 없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한번 제비집요리를 먹어 보았습니다. 

잠시나마 100년 200년전으로 태국이주한 중화권사람들의 삶으로 시간여행을 한 김에,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화권느낌 물씬나는 카페에서 음료도 마시고. 빵도 먹었는데요. 저 빵에 제공된 저 소스가 너무나 맛있더군요.

자칫했으면 하나 더 시켜 먹을뻔 했습니다. 저의 대만카페메뉴로 만들어 볼 생각으로 이미 만드는 법은 배웠습니다. 

다시 첫번째 사진으로 돌아가서…

그 당시의 삶이 얼머나 힘들었으면, 중간의 하늘색옷 입은 여자분은 시장통 한가운데서 쓰러져 있습니다. 

오늘은 태국에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게 된 역사적배경과 그들의 삶을 짧게나마 훑어보았습니다. 

뭐가 어찌되었던간에 내 나라를 떠나 외국에서 정착하고 살아간다는 건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어려운 환경에 어쩔 수 없이 떠밀려 해외로 나온 사람들도 있을거구요.

방콕 차이나타운에 오시게 되면 이런 역사적배경도 생각하시면서 둘러보시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