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간의 한국출장을 마치고 대만으로 귀국을 했습니다. 늘 그랬듯이, 한국을 가면 출장가는 느낌, 여행하는 느낌이 들고, 대만 오면 내 집에 돌아왔다는 느낌이 듭니다.

말씀드린대로 모대만기업의 대규모품질이슈로 인해 납품했던 한국으로 가서 현지대응 했습니다. 저는 그 회사의 현지업무를 도와주러 간, 프리랜서? / 에이전트 역활이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업무경험이 쌓여서인지, 내가 해 보지 않은 제품, 내가 일을 해 보지 않은 공장의 업무도 대충 눈에 다 들어 오더군요. 심지어는 공장측에서 저렇게 대응하면 안 되는데, 라는 부분까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저는 사회초년생부터 엔지니어를 데리고 다니는 출장업무, 엔지니어와 함께 하는 업무미팅을 많이 해 와서 이번처럼 엔지니어와 함께하는 이런 류의 업무는 뭐  나름 경험이 많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업무를 해 오면서 주변의 PM(Project Manager), 영업 등을 보면 책상, 모니터에서 위주로 업무를 해 오다보니 현장경험이나 제조공장 현장업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꼭, 이런 직업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우리 삶에서도 인생을 딱 정해진 루틴에서 안전하게만 살아온 사람들이 있는 반면, 많은 경험과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산전수전 경험한 그런 삶도 있습니다. 

최근에 이런저런 업무를 하면서 보다보면 확실히, ‘경험’ 특히 ‘압도적인 경험’ 은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경험이 많이 없거나 책상/모니터 에서만 업무를 하는 직원들과 업무를 해 보면 그런 것들이 느껴 집니다. 

중국, 대만 직원들이 ‘한국치킨’ 을 먹고 싶다고 해서 교촌치킨에 갔는데요. 교촌간장치킨은 이전의 그 ‘감동?’ 이 없더군요. 이전의 교촌간장치킨 하면 압도적이었는데 말이죠. 이번에 먹으면서 좀 밍밍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런 맛이 어서 살짝 실망했습니다. 

A라는 회사의 품질이슈 업무 도와주러 한국 와 있는데, B라는 회사 전직장 동료가 자기공장 품질이슈에 대해 저에게 물어보더군요. 어떻게 고객사에게 대응리포터를 써야 할 지 모르겠다면서…  제가 해 보지 않은 제품이고, 그 회사 제조/품질 프로세스를 모르지만 품질이슈 내용을 들어보니 어느 프로세스와 어느 프로세스를 점검하고, 거기 관리 SOP 및 관리데이터 확인하고 또, 고객사 쪽에는 어떤 부분 확인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는 보이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조언을 해 주었더니 그 다음날 그렇게 해서 효과를 봤다고 감사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동시에 2 곳의 품질이슈를 점검해  주는 (내 주 업무도 아니면서) 일을 했네요.  

압도적인 경험  에서 나오는 거죠.

100원 이라는 예산으로 칫솔과 치약을 사라고 하면 저는 칫솔 80 : 치약 20 으로 소비를 합니다. 칫솔과 칫솔질이 치약보다는 훨씬 중요하니까요.

대만에는 이 칫솔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쟤를 오래 사용해서인지 손잡이, 칫솔모 등등이 제가 가장 익숙한데, 다른 칫솔들은 사용하기가 좀 불편합니다. 모가 괜찮다 싶으면 손잡이가 좀 불편하고, 모와 손잡이가 괜찮다 싶으면 저 목부위가 너무 약해서 전체가 휘어 버리고. 

그래서 가끔 한국가면 제가 평소 사용하는 칫솔을 한번에 구입을 해 오는 편입니다. 

그리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저는 대충 한달에 한두번은 칫솔을 교체하거든요. 2주? 3주? 한달을 넘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양치를 하루에 3~4회는 꼭 하니까요.  그런데 3개월마다 교체하라니… 저 칫솔 내구성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습니다. 대략 2주 3주 정도면 칫솔모가 누워 버리거든요.  누운 칫솔모는 양치효과가 확실히 떨어진다는 건 많은 치과의사들이 이미 입증을 한 부분입니다.  

돈만 아주 많다면 칫솔은 2주에 한번 정도 바꾸고 싶을 정도이거든요.

이전에는 한국오면 제가 좋아했던 던킨도너츠 에서 커피와 도넛 한번씩 먹었는데, 이제는 SPC는 불매를 해 줘야 할 것 같아서 최근에는 안가게 되더군요. 특히 인천공항에서도 그 던킨도너츠 매장에서 앉아 비행기 기다릴 때도 있었는데, 당분간은 SPC 니까 불매를 해 줍니다. 

덕분에 공항에서 늘 소비하던 5000원 아낄 수 있었습니다. 

타오위안공항에서 고속철도를 타고 대만중부 운림까지 와서 거기서 택시를 타고 집에까지 왔는데요.

약간 연세가 있으신 택시기사분께서 내려서 캐리어도 실어 주시고, 라디오를 들으시다가 제가 탑승을 하니 뭔가 고상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줘서 주변의 논밭을 바라보며 잠시 감상에 젖어 드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요.

저 영상 이전에 수차례 저렇게 고개를 떨구어서 졸음운전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대학졸업 할 때쯤 IMF 가 터졌었죠. 그래서 학교가기전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우유배달을 해야만 했었습니다. 3시 30분 부터 일어나 우유배달 하고 집에오면 7시전후. 그리고 저녁에는 수금을 하러 돌아야 했구요.  암튼 그렇게 우유배달하던 지역에 중고등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교무실에 선생님들이 출근하기 전에 우유, 요쿠르트 책상에 올려 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수금을 하려고 여자영어선생님과 직접 마주친 적이 있는데, 정말 어리더군요. 저는 군대도 다녀 오고 휴학도 두번인가 하고 해서 졸업이 좀 늦은 편이었으니까요.

그 때 처음으로 ‘선생님’ 이라는 사람이 그냥 보통의 직업군 중 하나. 특히 저 영어선생님도 내 주변의 선후배 중 학교에서 공부 좀 잘 하고 교원자격증 따서 저 위치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 이라는 생각이 들자, 어린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선생님’ 이라는 경외심이 한번에 사라지더군요. 

좋게 말하면, ‘선생님’ 이라는 직업도 별거 아니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업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열심히 하면 선생님보다 더 잘 할 수 있겠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제조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그 당시에는 차장/부장급 혹은 임원급 하면 뭐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 제조업의 품질부서 사람들은 아주 대단한 지식, 재능 이 있는 사람이구나 막연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는데요.

최근에 그 쪽 사람들 보면, 또 다 고만고만 한 능력치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장에서 차장 부장 이라고 해 봤자, 그냥 거기서 반평생 딱 그일만 해오다 보니 지식이나 사고가 편협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찌보면 월급쟁이의 한계 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안주하게 되거든요. 매너리즘에 빠져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지도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그릇은 딱 밥그릇 정도 크기인데, 그나마 기존에 알고 있던 오래된 지식은 비우고 새로운 지식으로라도 배워서 채워 넣어야 할텐데, 많은 공장의 소위 엔지니어 라는 사람들이 보면 그나마 가지고 있는 밥그릇 이라도 챙기려고 그걸 비우지 않고, 끌고 안고 그걸로만 평생 그 조직에서 자기 자리 유지하려 하니 발전이 없는거죠.

내가 알던 그 작은 밥그릇에 담긴 걸 빨리 비워서 그건 아랫사람이 하도록 전수해 주고 나는 새로운 걸 담아서 그걸로 더 발전된 일을 해야 하는데, 월급쟁이 타성에 빠지면 그게 안 되고, 그렇지 못 한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러다보니 조금의 외부변화에 어려워 하고 힘들어 하고 그 직장을 그만두면 할 것이 없다고 두려워 하는 것이죠.

택시를 20년 몰았다고 ‘미하헬 슈마허’ 처럼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