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카페에 손님이 족제비를 데리고와 저의 고양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끔 저의 손님들 중에 애완동물을 데리고 오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대체로 미리 ‘애완동물 데리고 가도 되냐?’ 고 문의를 주시는데요. 저의 카페에 이미 세녀석의 고양이가 있으니까 당연히 환영입니다. 

최근에 손님중에서 족제비를 데리고 왔더군요.

족제비가 오니 저의집 고양이들 난리가 났습니다. 나나(바닥의 회색)는 밥 달라고 할때만 하는 저 자세까지 해 가며 족제비를 보고 있습니다.

저의 카페에서는 여포인데, 막상 다른 동물들 오면 겁이 엄청 많습니다.  큰 녀석 호미는 원래 처음 입양할때부터 겁이 엄청나게 많은 녀석이라 이해를 하겠는데, 작은 두녀석은 평소에는 뭐든 다 공격하는 맹수처럼 보였지만, 다른 동물이 카페에 오면 완전 겁쟁이모드 입니다. 

겁쟁이모드를 동영상으로 올려 봅니다. 

그래도 손님들이 족제비를 꺼내서 더 적극적으로 저의 고양이들과 교류하게 해 주려 해서 감사했습니다. 

한국에서 호미를 처음 입양했을때, 호미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두려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죠. 

“나는 호미가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호미가 좀 더 많은 사람, 좀 더 많은 동물들과 교류해서 사회성을 키우길 바랍니다. 

저의 작은 두녀석도 마찬가지로 올해 4월 입양한 뒤로 혹시라도 집 안에서만 자라면 바깥세상의 모든 것을 두려워 하는 고양이가 될 까봐 어릴때는 주기적으로 안고 바깥에 데리고 나와 바깥의 소음도 느끼게 해주고 또 다른 풍경과 냄새도 맡게 해 주었습니다. 최근에는 이 녀석들이 커서 안기는걸 너무나 싫어해 좀 뜸하지만, 우리 고양이들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회성이 좋은 고양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있습니다

이 주인분도 족제비를 오냐오냐 키우지 않고, 저의 고양이들과 계속 교류를 하게 해 주더군요.

중국에 가보면 소황제 라고 해서 부모 2명, 조부모 4명이 자식 1명을 너무나 총애하고 오냐오냐 해서 키우다 보니 이 자식이 사회성이 없어지죠. 그러다보면 자식을 부모품에서 떠나 보내지 못 하고, 이 자식은 사회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경험축적이 안 되는 겁니다. 비단 중국소황제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모습이죠.

무튼 그런 족제비로 키우지 않겠다는 주인의 의지가 느껴집니다. 

제가 부산에 살 때 집이 마당이 있는 주택이었는데, 어느날 족제비 한마리가 마당으로 들어왔죠. 당시 저의 집에 강아지 2녀석이 있었는데, 한 녀석의 이름은 ‘누렁이’. 이 녀석이 평소에는 엄청 순둥순둥 했는데, 족제비를 보자 엄청 공격을 하더니 결국 족제비가 마당의 창고건물 안으로 들어가 숨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저의 집 세입자 아저씨가 쌀포대로 족제비를 잡아 고아 먹었습니다. 당시 어린이였던 저에게는 ‘허리를 다쳐서 먹는다’ 라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뭐 정력제 라고 생각해서 먹었을 것 같네요.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그 족제비를 삶는데 비린내가 심하게 났었다는 겁니다. 

저 손님에게 물어보니 족제비를 집에서 키워도 큰 문제는 없다고 하네요. 방에 풀어 놓아도 잘 놀고… 파충류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고,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고, 유튜브를 보면 더 다양한 동물들을 집에서 키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의 카페에 다양한 동물들이 찾아 주었으면 합니다. 

한달여사이에 저의 대만집 마을에서 세분의 어르신이 별세를 하셨네요

제가 살고 있는 동네의 집들은 대부분 이런 모습입니다. 저의 카페 맞은편 건물도 저런 기와지붕이죠. 그냥 시골마을입니다. 한집건너 한집이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이고, 최근에는 농사를 직접 짓지 않아도, 이전에는 농경관련 일을 하셨던 어르신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와중에는 간혹 젊은 30대 40대도 보이긴 합니다. 

어제 보니까 저의 카페골목에서 마을입구쪽에 무슨 대형천막을 쳐 놓고 행사를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그 곳에 작은 절이 있어서 종종 절에서 행사를 하거든요. 또 이번에 절에서 행사하나 보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평소 항상 지나다니는 집이었는데, 거기 할머니께서 별세를 하셨더군요.  대략 한달사이에 저의 마을에서, 한번은 가게 오른쪽편집, 이번엔 가게에서 왼편집, 2~3주전인가?는 한골목 돌아서 모퉁이에 있는 집의 어르신이 별세를 하셨습니다. 한달(아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여 만에 마을의 3명의 어르신이 별세를 한 건데요. 

가뜩이나 여기도 인구가 감소하고 빈집이 곳곳에 많은데, 한달여만에 골목길 하나를 두고 3명의 어르신이 별세를 하셨네요. 평소 그 분들이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셨거든요.

지난번 카페 오른편 집에서 상을 당했을때도 그 앞의 절에서 하는 행사인가 하고 가보니 초상을 치르고 있어서 순간 급숙연해졌었거든요.

저는 살짝 당황했었는데, 정작 유족들은 호상이라면서 웃고 저에게 말도 건네주고 해서 이야기 많이 하다가 왔습니다. 

이번에는 위의 사진처럼 왼쪽편의 집에서 어르신이 상을 당하셨습니다. 도시에 살면 한 아파트, 혹은 이웃이 상을 당해도 집에서 장례를 치르지 않기에 상을 당했는지 알 수가 없는데, 이런 시골마을은 집앞에 크게 천막을 펼쳐놓고 장례를 지내니까 바로바로 알 수가 있어서 더 체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장례를 치르는 빈도는 도시의 나의 집 부근이 더 많을지는 몰라도, 도시에서는 이웃이 장례를 치르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저도 이런 시골에 온지 대략 일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최근에 갑자기 추워지고 기온차가 많이 나서 그런건지 어르신 사망이 3건이나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 죽음을 논할 그런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은 하는데,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너무나 큰 후회는 하지 않고 미련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살려고는 하고 있습니다. 

달고나모양내서 이웃집 꼬마에게 선물로 줬더니…

저의 카페 이웃꼬마에게 달고나를 만들어 선물로 줬는데, 그걸 또 뽑아서 가지고 왔더군요.

저의 카페에서 인기있는 음료가 달고나라떼인데요. 달고나는 제가 직접 만들어서 라떼로 만듭니다. 그래서 가끔 저렇게 모양을 내기도 하는데, 저 이웃집꼬마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서 뽑기를 해서 가지고 왔네요. 

제가 어릴때는 동네 공터에 저 달고나 하는 아저씨가 꼭 있었습니다. 부산에서는 쟤를 달고나라고 하지 않고, ‘쪽자’ 라고 했습니다. 집 앞 공터가 있었는데 거기에 쪽자아저씨가 오면 그걸 해서 먹곤 했었죠.

요즘 오징어게임 때문에 저 달고나가 대만에서도 인기가 있는데, 이번주에 ‘오징어게임 챌린지’ 가 에피소드5까지 나와서 다 보았습니다. 

저의 카페에는 하트와 원형틀이 있어서 두 종류만 만들어 보았습니다. 

저도 한 번 뽑아 보려구요.

아주 어릴적에 해 본 것이지만 이상하게 몸이 기억을 합니다. 그리고 그 어릴때 만들어 먹던 그 맛도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머리속에 뭔가 각인이 된건지, 아주 오래전에 먹었던 맛 이나, 냄새 등이 30년, 40년이 지나서도 기억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번주에 여기 우체국택배 직원이 물건을 하나 주고 갔는데, 그 분 몸에서 제가 초등학생 중학생때 유행했던 프로스펙스, 르까프 이런 신발의 좋은 향 냄새와 똑같은 냄새가 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 냄새와 똑같더군요.

카페에 가스버너가 없어서, 휴대용 가스버너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첫번째는 화력조절 실패… 두번째 부터는 쉽게 만들어 지더군요.

평소 음료용 달고나는 냄비에 대량으로 만듭니다.  저렇게 국자에 만들지 않습니다. 

원형은 성공을 했습니다. 먹어보니 맛도 좋네요.

카페하면서 달고나 엄청 만들고 있습니다. 가장 인기음료이기도 해서요.

그런데 지난번 한국들어가서 달고나라떼를 파는 곳이 있어 한번 시켜 보았는데, 달고나는 없고, 그냥 달고나 부스러기만 위에 올려 두었더군요.

그리고 달고나도 보니까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마트에서 파는 그런 제품인 것 같았습니다. 제가 처음 달고나라떼를 준비할 때 마트용도 하나사서 맛도 보고 만들어 보았는데요. 제가 기대하던 그런 달고나 맛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걔는 배제를 했습니다. 그냥 제가 만드는 것이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전통 이전의 그 달고나 맛이 납니다. 그리고 저는 달고나 저렇게 깨작깨작 부스러기만 올리지 않습니다. 

저는 라떼 안에 이미 저 정도는 넣어주고, 위에 큰 달고나를 추가로 올려 줍니다. 그렇게 해야 최소한 ‘달고나 맛’ 이라도 나거든요.  가끔 어떤 음료들 보면 0.1% 성분 넣어두고 그 이름을 크게 박아넣어 파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어떤 경우에는 기만에 가깝죠.

참치라면을 끓였는데,  참치는 커피스푼으로 한스푼 넣어 놓고 참치라면 이라고 하면 그건 군대에서나 하는 기만행위 입니다. 

아무튼… 최근 오징어게임챌린지 가 넷플릭스에 올라왔길래, 달고나 틀모양을 한번 만들어 이웃꼬마에게 주었습니다. 

대만시골에서 카페준비한 모습

대만시골지역으로 와서 카페를 차리면서 이런저런 시공업체와 업무를 했었습니다. 간판업체, 전기, 주방, 전면유리샷시 등등…
이런걸 총괄해서 대행해주는 인테리어업체 견적도 받았으나 너무나 비싸길래 그냥 제가 다 했습니다. 
제가 워낙 오랜 해외생활로 이런 업체들/사람들을 의심하고 경계하는 습관이 있어서인지, 이번에 저의 가게 시공을 해 주었던 사람들은 다 사람들이 좋아 보이더군요.

참고로 저는 중국본토에서 오래 있었습니다. 중국은… 사기/기만/속임/바가지 가 일상인 곳입니다. 

시공을 해 주시는 분들도 하루종일 시공을 하면서 다들 친절하고 성의껏 잘 해주시더군요. 저 에어컨 설치하는 날은 좀 많은 사람들이 왔는데요. 에어컨 댓수가 많아서인지 한번에 여러사람들이 와서 함께 작업을 하더군요.

중국본토에서는 이런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 가정용 LPG 가스통을 설치하는데, 아파트인근에 있는 업자를 불렀죠. LPG  가스통을 부엌 싱크대 안쪽에 설치하더군요. 부엌외부에 싱크대를 설치할 공간도 없고, 그 때는 그 업자가 그렇게 설치를 해 줘서 그러려니 했었습니다. 그렇게 설치를 하고 사용을 하는데, 갑자기 가스가 새는 소리가 심하게 들리더군요. 놀라서 싱크대 아래 문을 열어보니 LPG 가스 압력에 가스호스가 빠져서 가스가 본체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보통은 가스관을 끼우고 철로된 고정클립을 끼워서 고정을 해야 하는데 그 기본적인것도 안 해 두었더군요.  그 업자 찾아가서 따지니 실실 웃으면서 사과도 하지 않고… 그날 정말로 그 사람 때리고 싶었습니다. 

에어컨시공하시는 분들이 옆집에서 저렇게 앉아 음료판을 깔아 놓고 일하면서 쉬더군요. 보통은 남의집 문앞에 저렇게 판을 깔지도 않을 뿐더러, 주인도 항의를 할 텐데 여기는 전혀 그러지 않더군요. 항의를 하지 않는 주인도 놀랍고, 남의 집에 저렇게 하루종일 판을 깔아 놓고 술과 음료를 마시고 있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중국본토에서는 그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중국도 조금 달라졌다고 하지만, 20여년전의 중국은 ‘서비스정신’ 이라는 것이 희박했습니다. 은행가면 번호표도 없고 줄을 서야 했는데, 줄을 서는 개념이 없어서 그 조그마한 창구구멍으로 손을 먼저 집어 넣는 사람의 업무가 먼저 처리가 되는 시절이었습니다. 에이 과장하고 있네 라고 하실 분이 계신데, 그 상황을 직접 보시면 현장은 더 심하다고 보면 됩니다. 은행창구의 작은 구멍으로 사람들이 원형으로 둘러싸고 손을 먼저 집어 넣으려고 몸싸움을 하는 모습입니다. 은행 한 번 다녀오면 진이 빠지고 시간도 엄청 걸리던 시절이었죠. 그 뒤로는 중국에서도 번호표를 사용하긴 하더군요.

대만에서는 육체노동을 하시는 분들이 ‘삔랑’ 이라는 열매를 많이 먹습니다. 비닐컵에 붉은색으로 보이는 것이 삔랑 씹고 뱉은 것이며 바닥에 붉은색도 삔랑물이 벤 것입니다. 아침에 가게 앞에 나가보면 꼭 삔랑을 거리에 뱉어 놓아 바닥이 붉게 된 걸 볼 수 있습니다. 
삔랑이 레드불 같은 각성효과를 내는데요. 실제로 레드불 같은 각성음료를 마시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기도 그런 음료가 보입니다. 

시골에서는 시골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속도가 있습니다. 
중국본토도 마찬가지였죠. 처음엔 저의 사고방식과 속도가 중국사람들과 맞지 않아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해를 하게 되고 내가 맞추어 가게 되더군요.

해외에서 한국업체랑 일을 해 보면 평생 한국에서만 일을 한 사람들은 중국이나 태국의 업무속도나 방식을 이해하지 못 하고 자기회사의 기준으로만 업무를 시키려 하지만, 그게 쉽게 됩니까? 책상에 앉아서 말로는 이론적으로는 다 될 것 같지만 그 나라에는 그 나라의 문화가 있고, 방식이 있는거죠. 

오늘은 비가 그치고 태양이 보이는 오전입니다. 매일 일기예보앱을 보는데요.

오늘 오전 일기예보앱에 오류가 있는지 -1000도 라고 되어 있어 올려 봅니다. 
현재 여기는 대체로 낮에는 30도 입니다. 추석전에는 35~30도 였는데, 태풍이 지나간 뒤로 30도까지 떨어지는 다소 선선한? 기온입니다. 그래서 오늘 긴팔입고 카페에 나왔습니다.

대만생활 근황 및 카페운영 3주차 소고

대만에서 카페를 개업한지 3주가 지났습니다.
인생이 늘 그렇듯이
준비를 한다고 했음에도, 하다보면 좀 부족함이 보이고…
열심히 한다고 했음에도, 그 때 이렇게 할 걸 이란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내의 친척, 친구들이 수차례 다녀 갔습니다. 이런 먼 시골지역에 카페를 열었음에도 여기까지 직접 방문을 해 준 친구들이 진정한 친구라 할 수 있겠네요. 특히 저 친구들 개업화환을 보내 주어서 음료비는 안 받으려고 했는데, ‘영업하는 가게에 와서 돈 안 내고 먹는 것 아니다’ 라고 하면서 끝까지 돈도 다 지불했습니다. 아이들 남편들 다 데리고 와 많이 시키고 돈도 다 지불하더군요.

드디어 이 녀석들이 3층 칸막이벽을 뛰어 넘어 2층 1층으로 내려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2층 주거공간과 카페사이에 문에 판을 덧대어 카페로 못 내려오게 했는데, 이제 제법 성장을 해서 그 문도 뛰어 올라 나옵니다. (영상은 다음에 별도로 올려 보겠습니다)

고양이들이 카페 공간으로 내려 오는 걸 지양하고 있어서 다시 2층 3층 주거공간까지만 활동할 수 있도록 분리를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고양이를 싫어 하는 손님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요즘 가끔 저 녀석들을 안고 제 자전거로 동네 한바퀴 돕니다. 저 녀석들이 평소에는 밥 줄 때만 저에게 오는데, 밖에 데리고 나가면 환경이 낯선지 저에게 딱 안겨서 가만히 있습니다.
고양이는 지가 오고 싶을때만 저한테 옵니다.

원래 주거공간과 카페공간을 저 문으로 분리시켰는데, 저 녀석들이 3층의 벽을 뛰어 넘어 여기 까지 내려 와서 저 틈 사이로 못 나오게 벽을 만들었는데 아예 저 문을 뛰어 올라서 나옵니다.
4월 20일 제대로 걷지도 못 할 때 구출해서 데리고 키웠는데, 이 글을 쓰는 6월 8일 현재 저 정도의 높이도 뛰어 오를 정도로 컸습니다. 저 녀석들의 엄청난 활동모습도 조만간 영상으로 소개를 해 보겠습니다.

세 녀석 모두 지네들이 오고 싶을때만 옵니다. 제가 밥그릇 들고 있으면 그 때는 알아서 찾아 옵니다. 사료통 소리만 들려도 어디서든 달려 옵니다.

이 녀석들 하도 뛰어 다녀 어렵게 셀카 함께 찍었습니다. 흔치 않은 기회 입니다.

대만은 요즘 수박과 파인애플 철입니다. 특히 파인애플은 답니다.
저는 원래 파인애플은 신맛의 과일인 줄 알았습니다. 대만 오기전에는요.
대만에 와서 파인애플이 단맛 과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자주 가는 과일가게 입니다.

요즘 대만에는 망고가 한창 입니다. 이 지역 가로수가 대부분 망고인데, 망고가 가득 열려 있습니다. 가로수가 망고이고 비싸다는 망고가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진풍경이 펼쳐집니다.

카페를 하지만 매 끼 챙겨 먹는 건 하나의 일입니다. 매일매일 뭐 먹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도 가장 무난한 건 볶음밥 입니다. 대학교 주변이라 이런 저렴한 볶음밥 식당들이 있어 종종 사 먹습니다.

여기는 자전거든 오토바이든 뭐라도 있어야 합니다. 없으면 생활이 불편합니다.
저는 가게 앞에 스트라이다를 세워 두고 가까운 곳은 자전거로 다닙니다. 통유리 가게를 바라보고 있으면 대부분이 자전거/오토바이로 이동을 합니다. 걸어다니는 사람의 비율이 정말 낮습니다.
아이는 저런 의자를 만들어 앞 뒤로 태우고 이동을 합니다.

카페 2층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요즘 우기라 비가 자주 내립니다. 비가 내려도 자전거/오토바이는 여전히 많이 타고 다닙니다. 비옷을 입거나 우산을 쓴 채로 자전거/오토바이를 탑니다.

2층 다른 방향으로 바라본 풍경인데요. 저기 지붕위의 신발 2짝이 늘 눈에 거슬렸었는데, 최근에 저 신발을 제거 했습니다.

그동안 저 신발 2짝을 방치했던 이유는 저런 것도 이 곳 시골 오래된 집의 일부다 라는 생각도 있었고, 여기 사람들은 이런 것까지 신경 안 쓰겠지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 손님의 방문후기를 보니 2층 창문에서 바라보는 오래된 건물지붕이 ‘아름답다’ 라고 적어 두었더군요. 그래서 더 아름답게 보일 수 있게 신발제거를 했습니다.

개업식때 저 그림을 그려서 보내주신 이웃주민이 있었는데 3주가 다 되어 가도록 누가 주었는지 몰랐습니다. 저 그림을 가게 앞에 놓아 두고는 옆 가게 주인에게 이야기만 하고 가셨다고 하더군요. 개업전 저랑 대화를 나눈 이웃분이라고 하셨는데, 제가 이웃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서 얼굴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저 그림을 그려서 주신 분께서 친구분들을 데리고 찾아 주셨습니다.

함께 찍은 사진도 있지만 얼굴 안 나온 사진으로 대체해서 올려 봅니다. 바로 저의 가게 근처에 사시는 이웃이시더군요. 음료를 주문하고 계산 후에 말씀을 하셔서 돈을 받았는데, 미리 알았으면 음료비용을 안 받았을 건데요.

저는 저 그림의 배경이 이 곳 어느 지점이라 생각을 했었습니다. 올 해 자전거 대만일주 할 때 타이동에서 화련으로 올라가는 해변길과 많이 닮았더군요. 그런데 여기가 아니고 대만 인근 섬의 풍경이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직접 그린 그림을 선물로 받아서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범죄도시3 도 여기 마을에서 상영을 했습니다. 그래서

집주변 유일한 극장엘 가서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극장 규모는 아주 작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형몰 내부의 그런 극장이 아닙니다. 극장 입구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입니다. 풍경이 정겹기 그지없습니다. IMAX 영화를 볼 때는 인근 큰 도시로 차를 타고 가서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번잡하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대만은 한국처럼 극장이 그렇게 붐비지를 않습니다. 웬만한 대작이 아니면 한산하게 볼 수 있고, 한국은 IMAX 좋은 자리 예약전쟁을 해야 하지만 대만은 그 정도는 아닙니다.

집근처 베트남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가끔 사 먹는 ‘반미’ 입니다. 세끼 챙겨 먹는 것도 하나의 일입니다. 다양한 음식들을 시도하는데, 베트남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의 반미도 먹어 봅니다. 며칠전 다른 베트남계 대만사람이 운영하는 곳도 가서 사 먹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외국계 사람들은 한국인인 제가 이런 시골에서 카페를 개업했다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대화를 시작하면 할 이야기가 참 많더군요. 외국인의 신분으로 이런 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거니까요.

집 주변 다른 카페의 메뉴판인데요. 자세히 보시면 영업시간이 11시부터 19시 즉 8시간 입니다. 다른 카페도 영업시간이 9시부터 6시까지 9시간인데요. 대만은 자영업 가게도 8시간 정도로 일반 직장인들의 업무시간과 동일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의 가게시간에 익숙한 저에게는 낯선 모습입니다. 저는 8-8 즉 12시간 운영을 하거든요. 특히 대만은 식당의 경우는 중간에 휴식시간이 3~4시간 있어서 실제 운영시간은 짧습니다.
저는 12시간 카페운영시간이 익숙한데, 가끔 저에게 그렇게 12시간씩 운영하면 엄청 힘들겠다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그 사람들이 정상인거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저의 부모님도 식당을 거의 14시간씩 열어 두셨거든요.
지금은 제 가게이니까 12시간 열고 있어도 아직은 괜찮습니다만, 영업시간은 추후 보고 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차이컬쳐 시즌1편 부터 보신 분들에게는 익숙한 샤오위양을 여기서 만났습니다. 샤오위양이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고 부모님과 남동생이 여기 살고 있어 아직도 자주 여기를 오는데요. 샤오위양 집이 바로 저의 카페 부근이더군요. 타이베이에서도 바로 저의 집 근처에서 살았는데 인연이네요.

샤오위양이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해서 샤오위양 부모님과 함께 음식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샤오위양 성격이 어머님을 닮았더군요. 아주 쾌활하고 성격이 좋으셨습니다.

샤오위양과는 별도로 카페에 와서 이런저런 그동안 살았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샤오위양도 이전에 알았을때는 어린 학생이었는데 이제는 성인이 되었더군요. 세월이 많이 지났습니다.

카페 오픈 전 처제가 타이베이에서 와서 커피 시음도 해 주었습니다. 저 처제가 저의 집안에서는 모든 방면에서 가장 까다롭고 깐깐합니다. 저 부부가 ‘자칭’ 커피전문가라 특별히 방문해서 시음을 하는 모습입니다.

여기는 대도시와는 조금 다른 삶의 속도입니다. 손님도 엄청 많고, 영업도 엄청 바쁘고 매출도 엄청 많이 나오는걸 목표로 한다면 여기서는 쉽지 않습니다. 여기는 스타벅스에도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여기는 이런 자연풍경 감상하고 좀 느긋하게 살기에 적합한 곳입니다.
有一個遠遠的記憶,叫 從前 아주 오래전 하나의 기억,

마지막으로 카페를 3주 운영하면서 느낀건 의외로 여학생들의 비율이 많다는 거였습니다. 여기가 과학기술대 소위 이공계열 종합대학이라 아무래도 남학생 위주일거라 생각을 했는데, 오는 손님들 비율은 여학생들이 더 많고, 여학생들이 적지 않더군요.
그럼에도 1만여 학생들이 있는 종합대학 치고는 대학상권이 그렇게 한국대학상권처럼 형성은 안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확실히 한국대학생들이 소비는 더 많이 하는듯 합니다. 대만 대학교 주변은 술집이 거의 없고, 학생들이 술을 거의 안 마십니다.
마지막으로 카페를 3주 운영하면서 느낀건 의외로 여학생들의 비율이 많다는 거였습니다. 여기가 과학기술대 소위 이공계열 종합대학이라 아무래도 남학생 위주일거라 생각을 했는데, 오는 손님들 비율은 여학생들이 더 많고, 여학생들이 적지 않더군요.
그럼에도 1만여 학생들이 있는 종합대학 치고는 대학상권이 그렇게 한국대학상권처럼 형성은 안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확실히 한국대학생들이 소비는 더 많이 하는듯 합니다. 대만 대학교 주변은 술집이 거의 없고, 학생들이 술을 거의 안 마십니다.

이상 대만생활 근황이었습니다.

대만카페, 처음으로 외부손님 초청해서 시음회를 했습니다.

카페오픈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5월 중순에 오픈을 해서 일정기간 테스트운영을 할 예정인데요. 그전에…
친척의 친구가 저의 카페 인근대학교 학생이라 시음회를 부탁했습니다. 아쉽게 친척의 친구가 저의 카페가 있는 곳의 대학교 학생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은 방문을 할 수 있는 거리에 있어서 앞으로 친구들 데리고 방문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카페 준비를 하고 나서 가장 많은 사람이 동시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날이었습니다.
그동안 늘 아내와 둘이서만 준비를 하고 시음을 하고 해서 조금은 고독하고 외로웠다고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타이페이에서 처제도 와서 시음하는것 도와주고, 친척의 친구들도 많이 찾아와서 왁자지껄 하고 있으니 뭔가 사람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희 카페가 대학교상권이라 먼저 대학생들을 초청해 보았습니다. 대학생고객’만’ 으로 영업을 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대학생들이 주요 고객층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대학생들과 이런저런 교류도 할 예정인데, 아직은 해야할 일들이 많네요.

카페 2층 입니다. 이번에 처제가 타이페이에서 놀러 와서 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2층 쇼파 입니다.

2층 2인석 테이블입니다. 학생들 앉아서 공부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오늘 방문했던 학생들도 2층 아늑하다고 하더군요.

1층 쇼파자리 입니다. 제 카페라서가 아니라, 이 쇼파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이 참 좋습니다.

1층 포인트… 거울입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대만 중부와서 가게와 집을 찾고, 계약하고, 인테리어 직접 하면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아마 모르는 지역에 가서 처음으로 이런 가게를 하나 오픈하려면 쉽지 않잖아요. 저는 외국인인데 오죽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재미도 있고, 보람이 있습니다.

이제 거의 오픈을 한다고 생각하니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