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대만학생에게 원숭이를 보여주면 좋겠다 싶어서 태국롯부리에 왔습니다. 태국롯부리에 가족들 지인들 데리고 오면 다들 인상깊어 했거든요. 한국에서는 혹은 일반적인 나라에서는 도심에 이렇게 수많은 원숭이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많은 않거든요.
이번에는 원숭이들이 거의 다 사라졌더군요. 정부에서 강제이주를 시킨 것 같은데, 이전과 같은 많은 원숭이들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몇 안 남은 원숭이들과 시간을 잠시 보내고 있는데, 저의 학생이 원숭이에게 안경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원숭이 손에 안경이 있습니다. 안경을 들고 저 위로 올라가니 찾을 수가 없었죠.
먼저 이 이야기는 1편부터 보시면 더 재미있습니다.
다행히 그 원숭이가 건물 꼭대기에서 안경을 떨어뜨려 줘서 회수해 올 수 있었습니다. 안경알도 빠지고 테에도 이빨자국이 있었지만 되찾은 것이 어딥니까? 저 학생이 안경 없으면 거의 뭘 볼 수가 없는 시력이거든요.
그래서 여행전 준비물에 여분안경을 강조해서 알려 줬는데, 안경분실 되는 순간 남은 2주이상의 여행일정이 걱정될 정도였고, 저 학생에게도 “내가 왜 여분안경 하나 더 준비하라고 몇 번을 이야기 했는지 이제 알겠냐?” 라고 하니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다행히 안경 되찾아서 정상적으로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롯부리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방콕으로 돌아갑니다. 마찬가지로 빠듯한 경비예산에 기차를 탔는데요. 저 녀석 피곤한지 기차에서 계속 자는 모습입니다.
뒷편의 아이가 귀여운 모습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런 완행열차는 이런 재미가 있죠. 에어컨도 없고, 도중에 비가 내려서 많이 후덥지근했지만 2시간 남짓의 이런 기차여행은 일상에 재미를 줍니다.
제가 중국에서 이런 형태의 기차를 52시간 연속으로 내리지 않고 탄 적이 있는데요.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 내리고 싶은 마음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통로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꽉차서 앉아 있고, 심지어는 화장실 앞에도 앉아 있고, 화장실은 또 엄청 지저분하고… 그때의 52시간에 비하면 2시간 남짓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한국에서 기껏 고작해봐야 부산-서울 기차탄 것이 전부였는데, 20여년전 산동연대에서 상해까지 25시간인가? 기차를 타니까 도착하기 2시간전에 사람들이 내릴 준비 하느라 짐 정리 하더군요. “2시간” 전에.
이번 대만학생의 여행을 기획할 때 최대한 이 학생에게 영어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에 목표를 두었고, 그래서 저의 태국친구 가족들과 여행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독일국적의 저 가족들이 태국에 여행을 온다고 해서 제가 일정을 주선했습니다.
그리고 사전에 ‘저의 대만학생이 영어를 잘 못 할 수 있으니 이해를 해 주고 잘 좀 대해달라’ 고 부탁도 했습니다. 다들 저의 딱한? 사정을 이해하고는 함께 있는 동안 잘 해 주어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방콕 도심을 가로지르는 강의 유람선에서 뷔페저녁을 했습니다. 배낭여행 예산으로 왔다가 호화크루즈뷔페를 즐겨서 경제적 타격은 있었지만…
저날 저녁을 엘레강스 하게 즐기려고 했는데, 엄마에 안겨 있는 녹색옷 입은 7살짜리 남자애가 보통이 아니더군요. 쟤를 만나기 전에 친척동생이 ‘형, 저 꼬마녀석이 장난이 아니에요. 누구의 말도 안 듣고 떼쓰고, 울고 소리지르고 때리고’
저날저녁 강변에서 처음 만났는데, 첫인상부터 장난 엄청 치게 생겼더군요. 첫만남부터 저한테도 도발?을 하더군요. 그래서 계속 관찰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휴대폰게임을 못 하게 했나? 그런 유사한 상황에서 엄마의 얼굴을 때려 피가 나고 누나 머리 잡아 당기고 이모얼굴 때려서 안경 떨어지고… 아무도 제어를 못/안 하더군요. 당연히 선을 넘었죠. 저 가족들과는 처음 만났지만 제가 데리고 나가서 훈육을 시키고 오겠다고 저의 태국친구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리고는 화장실 입구에 데리고 가서 세워놓고 무려 한.국.말 로도 야단을 쳤습니다. 그랬더니 지 엄마나 누나들에게 하는 것처럼 더 큰 소리로 대들면서 엄마한테 가겠다고 하더군요. 제가 딱 부러지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똑바로 행동 하지 않으면 여기서 못 벗어난다. 그러고는 물리적으로 못 움직이게 막았죠.
이번 시리즈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결과적으로는 여행내내 저 7살짜리 아이와 저, 그리고 저의 친척동생과는 아주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오냐오냐만 하고 총애하는 걸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 아이를 야단치고 나서 저는 계속 저 아이를 관찰했습니다. 제가 육아전문가는 아니지만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관찰했습니다. 저라고 남의 집 귀한 아들 야단치고 마음이 편했겠습니까?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함께 날리고 나니 그 뒤로는 제 손까지 잡고 배에서 내리더군요. 며칠전에도 영상통화 한 번 했는데, 저와 저의 친척동생 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이번에 제가 데리고 온 대만학생도 교육문제로 어머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고, 저 7살짜리 아이도 그렇고… 자식교육이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이 태국계독일국적의 이 학생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중학생인데 모국어 독일어에 영어/태국어를 잘 해서 통역의 역할도 잘 했고, 같은 중학생 또래라 서로 어울리기도 딱 좋았습니다.
영어 한문장 못 하는 저의 대만학생을 보다가 이렇게 독일어/영어/태국어… 그리고 지금 중국어도 배우고 있는 중학생을 보니까, 많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간혹 제가 외국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있는 걸로 알고 계시는 분이 계신데, 저도 중국에서 4개월 어학당, 캐나다에서 총 8개월 어학당이 전부입니다. 특히 캐나다의 어학당은 그냥 빌딩안에 교실 몇 개 있는 그런 사설 영어학원이고 모두 외국인들이라 제대로 된 외국의 교육기관에서 한번 공부를 해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어학당 몇 개월 해서는 어학이 제대로 늘지 않습니다.
저 녀석 또, 오징어게임을 좋아하더군요. 그래서 미리 준비해 간 오징어게임 공기놀이 세트도 선물로 주었습니다. 종이비행기도 만들어 주고 딱지도 만들어 주고 종이로봇도 만들어 주었거든요.
관찰을 해 보니 저 녀석에게는 자기랑 함께 남.자.처.럼. 놀아줄 ‘아빠’ 혹은 ‘형’ 이 필요한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저의 친척동생과 저와 많이 친해지고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저의 일행과 저쪽 일행 함께 섬에 들어가서 1박을 하기로 했습니다. 태국은 육지연안에 섬이 많고, 섬에 들어가서 휴양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며칠전 이미 배타면서 배멀미를 한 적이 있어서 이날도 살짝 걱정을 했습니다. 특히 비바람이 불어서 배가 더 많이 흔들리더군요.
휴대폰이 좀 저가형이다보니 광량이 조금만 적으면 사진의 상태가 아주 안 좋습니다.
섬의 저녁은 참 분위기 있더군요. 그리고 저의 대만학생과 그 독일자매 모두 중학생정도라서 물놀이를 좋아하더군요. 그리고 그 7살 꼬마녀석도 물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곳에 왔으면 그냥 이런 야경과 섬의 바다를 즐길 줄도 알아야 하는데, 저 당시 이런저런 생각할 것이 많아서 고스란히 저 밤바다를 즐기지 못 했습니다.
저 녹색옷 개구쟁이 꼬마녀석은 표정에서도 나타나죠. 저 녀석 엄청 말썽 많이 부리고 땡깡도 많이 부리는데, 저 두 중학생 누나들이 그래도 잘 보살펴 주더라구요. 그 모습을 보니 참 기특했습니다.
자식 셋을 키운다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고, 저렇게 자식 셋을 데리고 집떠나 해외여행을 나온다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고, 무엇보다 자식셋을 낳는다는 것 자체도 요즘엔 쉬운일이 아니죠.
다음날 아침, 아니 무슨 또 물놀이를 이른 새벽부터 하더군요. 정오경에 배타고 섬을 떠나기로 했는데 말이죠. 확실히 아이들은 아이들인가 봅니다.
저도 마음의 여유만 있었으면 함께 물놀이를 해 보고 싶었는데, 저 섬에 들어갔을때 이상하게 이런저런 걱정꺼리 들이 있어서 이 섬의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을 제대로 즐기지 못 했습니다. 너무 아쉬워서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저 섬은 다시 한 번 가 보려고 합니다. 모래사장의 모래가 너무나 곱더군요.
배타기 전 비가 미친듯이 퍼 부었는데, 다행히 배를 탈 때쯤 되니 비는 그쳤습니다. 그럼에도 사진에서 느껴지듯이 바람이 또 미친듯이 불더군요. 제가 비행기를 제외한 교통도구멀미를 좀 하는 편이어서 배타기 전 살짝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제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 모두를 만났습니다. 다른 두 학생의 경우에는 어머니도 함께 오셔서 여름방학 후 처음 함께 자리를 했습니다. 그 어머니께서
“아들이 이번 미국 여름캠프에서 영어를 많이 사용하고 왔는데, 선생님의 수업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라면서 저에게 감사인사를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일반 영어학원 보내다가 선생님께 맡겼는데, 20여시간 수업을 하고 미국갔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영어에 큰 자신감도 있고, 듣기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없었다”
라고도 하시더라구요.
저의 개인사정으로 당분간 수업을 못 할 것 같다고 저 두 학생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제가 호주 시드니에서 구입하고 지금까지 소장해 왔던 부메랑을 각각 하나씩 주었습니다. 제가 정말 기념으로 간직하던 것이었는데, 제가 그냥 ‘보관’만 하는 것 보다는 저 학생들하고 함께 날아다니는 것이 저 부메랑이 태어난 이유에 더 부합할 것 같기도 해서 저의 학생들에게 주었습니다.
오늘 지금 이 여행의 주인공인 그 대만학생도 만나서 마지막 수업을 했습니다.
저의 수업으로 영어학습에 새로운 방법을 찾은 것 같다며, 절대 다시는 학교주변 영어학원에 또보내지 않을 거라며 저보고 수업이 다시 가능할 때 연락을 꼭 달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여느 과외선생들처럼 수업시간 늘려서 돈이나 더 벌려고 하는 그런 수업을 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저의 학생들이 어학을 통해서 인생업그레이드 할 수 있게끔 도움을 주고 싶어서 다방면으로 노력을 하거든요. 그걸 알아봐 주시고 인정해 주셔서 아들 맡겨서 해외배낭여행도 보내신 거구요.
오늘 마지막 저의 수업을 마친 기념으로 한마디 해 봅니다.
저는 제가 영어를 중국어를 아주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 인생 뒤늦게 각성하고 나서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영어/중국어를 미친듯이 했습니다. 특히 저의 중국어는 여느 사람들과 그 무게가 다를겁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경험’ 을 하면서 배운 중국어라서요. 오늘 마지막 인사를 각 학생들과 하고 나니 제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