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저런 개인적인 일들로 인해서 대략 20일만에 대만학생과의 태국여행이야기 5편을 올립니다.
먼저 이 이야기는 1편부터 이어서 보시면 이해가 빠르구요.
이번 여행을 기획할 때 중점을 두려고 했던 부분 중 하나는 저 학생에게 ‘편안한 부모와의 생활’을 떠나 육체적인 고생을 하게 해 주는 체험이었는데요. 그래서 사전에 여기 시골에서 며칠간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한것이 저 대만학생과 제가 지내는 마을도 어찌보면 시골에 가까우나, 여기는 논밭은 있지만 여기 태국의 시골처럼의 시골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학생의 생활패턴도 집-학교-집 정도라서 이런 시골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을 할 기회가 많이 없죠.


시골로 이동을 하기전 방콕파타야의 유명한 놀이공원에 갔습니다. 거기서 코끼리체험을 하는 모습인데요. 저 독일소녀도 저런 체험이 처음인 듯 재미있어 하는 표정입니다.







딱 아이들이 좋아하게 만들어 두었더군요. 저런 규모의 공룡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공룡도 깃털공룡으로 복원을 해 두었더라구요.
이제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공룡에 깃털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화석증거로 많이 나왔습니다. 중국운남성인가에서도 발견된 화석들에는 깃털이 아주 완전한 상태로 보존이 된 화석들이 나왔었구요. 닭이 공룡이라는 건 이미 많은 곳에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공룡이 비행을 하게된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작은 먹이를 잡아 먹기 위해 점프를 하는 과정이라는 설도 있고, 나무위에 기어 올라 갔다가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점프를 하며 이동하는 과정에서 비행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자세한건 과학자들이 밝혀내겠죠.
그래서 비행을 하는 생명체가 많고 비행능력이라고 하면 ‘조류’ 의 능력 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비행능력이 가장 뛰어난 종은 의외로 박쥐라고 하죠. 박쥐가 조류들보다 비행능력이 훨씬 좋다고 하며, 곤충중에서는 단연 잠자리가 상위권입니다.
그리고 중간에 입이 넓직하게 생긴 저 녀석… 이 글을 쓰기 위해 일부러 찾아 보지는 않았는데, 아마 저 녀석이 초기 육상으로 올라온 양서형태의 공룡일 겁니다. 그리고 양서류 의 뜻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설명을 드리면요. 양서兩棲. 양쪽에서 서식을 한다. 즉 물과 뭍 양쪽에서 서식한다 라고 해서 양서 라고 합니다.



인원이 많아 차 한대를 임대해서 시골까지 이동했습니다. 거의 12시간 가까이 밤새 이동을 했는데요. 기사분이 자기 애견을 데리고 와서 휴게소에서 개 산책도 시켜주었고, 다들 힘들고 지루하니까 저렇게 이동중에 체스를 두기도 했습니다. 저 중1 독인학생도 체스의 기본은 알더군요. 그래서 저의 대만학생과 차에서 저렇게 시간을 보냈구요. 심지어는 기사분이 중간중간 피곤하다고 저보고 운전 대신해 달라고 해서 운전도 제가 대신해 주기도 했습니다. 보니까 이 기사분이 심야운전을 하려면 낮에 적극적으로 수면을 취해야 했는데 그러지않고 정상생활을 하고 온 것 같더군요. 그러니까 밤에 졸리죠.
전날 6시경인가 방콕파타야에서 출발했는데, 다음날 6시 정도에 도착을 했습니다. 저희도 도착하자마자 기절했습니다.




일단 시골에 왔으니 소들과 인사를 나누고, 아침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첫날부터 개구리요리가 있더군요. 이번 여행을 오기전부터 저 대만학생에게 개구리를 먹을 수도 있다 라고 이야기를 했었고, 그 때는 먹기로 했는데, 막상 먹으려고 하니 엄청 무서운 것 같더군요. 그래도 세마리나 먹었습니다. 저하고 먹기로 해서 어쩔 수 없이 먹었겠죠.
그런데 저런 동물들 저렇게 튀겨 놓으면 개구리인지 뱀인지 분간이 어렵습니다.





태국시골에서 첫째날 저녁을 직접 해 먹는데, 참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마침 저희가 갔을때 계속 흐리거나 비가 중간중간 내리는 시간이 많아 비오는 야외에서 저렇게 음식을 해 먹으니, 일상의 도시생활에서는 느껴보기 어려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니까 더 재미있었습니다.
함께 갔던 친척동생도 엄청 즐거워 하더군요. 저 친척동생도 유럽배낭여행도 오래하고, 가끔 해외여행도 하는 것 같던데, 아마 이런 형태의 여행은 해 볼 경험이 없었을 겁니다. 저는 보통 이런 사람을 만나고 교류하는 형태의 여행을 좋아해서 중국에 살 때 부터 현지인들과 많은 교류를 하려고 노력했었습니다.




그리고 노동체험도 했습니다. 저 대만학생에게는 이런 농사일이 처음이겠지만, 저도 정말 오랜만에 이런 일을 해 보았습니다. 몇년전 부산 어머니의 고구마밭에 가서 반나절 도와준 적이 있는데, 평소 이런 일을 하지 않다가 고구마캐기를 한번하니까 온 몸이 쑤시더군요.
그리고 저기 머무르는 동안 저 옆에 앉는 오토바이를 자주 이용했습니다. 몇명이 함께 이동을 하기에는 유용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새롭고 낯선 환경에 잘 적응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새롭고 낯선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겁니다. 저 대만학생이 언제까지 엄마의 보호아래서만 살아갈 수만은 없거든요. 당장 지금 9월 대만의 신학기에 저 대만학생은 살고있던 엄마의 집을 떠나 새로운 고등학교근처에서 혼자 살거나 기숙사생활 하거나 다른 환경에서 독립해서 살아가야 하거든요. 부모들은 자식이 독립을 하기전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해 주는 것이 부모로서의 의무이기도 하죠. 무조건 오냐오냐 감싸고 도와주는 것이 자식을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신학기 독립이야기가 나온 김에…

저의 카페 단골손님이었던 저 고등학생이 8월말 ‘이제 대학교 입학을 위해서 다른 도시로 간다’ 면서 찾아 왔더군요. 한참 입시준비할 때 제가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대학 결과가 나오면 꼭 알려 달라” 라구요.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음주 대학교 기숙사로 들어간다면서 와서 말도 해 주고 늘 자주 마시던 달고나라떼도 시켜서 마셨습니다.
너무 감사하더라구요. 가끔 오는 카페주인에게 떠난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일부러 자전거를 타고 오는 그 정성이 감사해서 제가 소장만 하고 있던 저 카메라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대학교에 가면 사진동아리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길래 소장하고 있던 저 카메라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4편에서는 제가 소장하고 있던 시드니에서 구입한 부메랑을 저의 과외학생들에게 주었다고 글을 올렸었는데요. 저는 물건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물건이라는 것을 반드시 소유하고 그걸로 자랑하고 내 성공여부를 남에게 자랑하는 생각은… 저도 20대 30대때는 했던 것 같습니다만, 이젠 그것보다는 무형의 가치에 더 의미를 두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더 많은 교양과 인격을 쌓아 나가는 것에 남은 인생을 사용하고 싶지 물건/물질에 목매달고 그걸로 자랑하는 건 20대 30대 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장하던 카메라도 저 학생에게 주면서 ‘아마 너에게 가서 잘 활용되면 저 카메라도 좋아할 것 같다’ 라고 해 주었습니다.
저 학생과는 카페를 처음 오픈했을때 부터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확실히 고등학생이라도 대화의 깊이와 혹은 대화가 연속적으로 잘 되는 경우였습니다. 그래서 진로에 대한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었죠. 아마 저 학생은 나중에 보면 자신이 원하는 멋진 삶을 살고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