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13일간의 태국 북부, 서부 산골, 시골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방콕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 아내와 함께한 2주간의 여행은 정말 새로웠습니다. 특히 아버지와는 이렇게 여행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겨우 2주 남짓만에 방콕 돌아왔다고 아내는 ‘문명세계에 다시 돌아 왔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호텔로비에서 찍은 건데요. 흡사 박물관의 어느 모습 같지만 호텔로비입니다. 여기가 차이나타운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아마 중국계 사람이 사장인 듯 보였습니다.
얼핏 사진만 봐서는 중국 어느 지역의 사진 같이 느껴집니다. 제가 방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아서 방콕의 호텔에서 숙박을 한 적이 거의 없는데요. 이 호텔은 로비와 식당이 나름 고풍스럽게 느낌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번 가족여행에 태국북부, 서부 및 산골, 시골 위주로 일정을 짠 이유는 방콕은 나이가 조금 들어도 언제든 쉽게 다시 올 수 있거든요. 하지만 이번 여행일정을 보았듯이 다른 곳들은 차량이 없거나, 체력이 안 좋거나, 시간이 많이 없으면 가기가 쉽지 않거든요.
여기도 중화권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인 듯 합니다. 붉은등이며 가게 앞에서 통에 종이돈을 태우는 모습까지…
골목구석구석 천천히 걸으며 구경을 해 봅니다. 저는 태국에 살면서 태국영화들을 좀 봤었는데요. 태국 서민들의 집을 묘사할 때는 보통 위의 사진과 같은 곳에서 촬영을 많이 하더군요. 한국드라마 보면 서민의 집 = 산동네주택 이 많듯이요.
꼭 여기가 차이나타운이라서가 아니라, 태국전역에 중화권사람들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저 차는 운행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가게안쪽에 장식처럼 둔 것 같구요.
이 차는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혹은 기념으로 문 앞에 둔 듯 합니다. 깨끗한 쇠사슬이 채워져 있다는 건 누군가가 관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도심에서 살면서 저렇게 차를 한 대 방치해 둘 장소를 찾기가 쉽지도 않은 것이 현실인데요.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치를 할 수록 유물이 되겠네요.
고양이 한 녀석이 주택가에 세워둔 지게차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런 건물들 보면 뭔가 100년전의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제가 서울에 있으면서 느끼는 건데, 주변 건물들의 아름다움은 지금 지어지는 건물들이 이전보다 못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파트주변 상가들 건물보면 특색없이 그냥 직사각형이죠.
나는 그냥 아파트에 화장실 깨끗한 현대식 상가가 좋아요 (라고 실제로 저렇게 말을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라는 사람들이 많으니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는 거겠죠.
위의 가게와 나무는 정말 분위기 있지 않나요?
도심에 연못이 하나 있는데, 연꽃과 새들이 작은 오아시스와 같은 쉼터를 제공해 주네요.
걷다보니 차이나타운 중심부까지 왔습니다. 차이나타운 답게 중화권 냄새가 물신 납니다.
며칠전 강남홍보물에서 ‘비싼 냄새가 난다’ 라고 했다가 욕 얻어 먹고 그 표현을 삭제한 것 같던데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중화권 냄새’ 라고 적었는데, 냄새 라는 표현은 이렇게 사용하면 무난하지 않을까요? ‘비싼 냄새’ 로 강남을 묘사라… 그럼 가난한 사람들 구역가서는 ‘싼 냄새/저렴한 냄새’가 난다 라고 할건지… 세상 모든 걸 가진 돈으로 우월을 논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진게 돈 밖에 없어서일까요? 인생에서 가지고 싶은 것이 돈 뿐이라서 그런걸까요?
색다른 느낌이 나는 카페가 있다고 해서 찾아와 보았습니다. 중화권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벽화입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으로 보이는 문구의 家가 살짝 틀어져 있는 모습이죠?
그 옆으로는 중국 쿵푸 연습용 기구가 서 있습니다. 전체적인 색상과 분위기가 독특합니다.
카페를 하나 운영해 보니까, 이 정도 건물 하나에 이 정도의 인테리어를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겠더군요.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그런 멋지고 중화풍이 물씬 느껴지는 그런 카페였습니다.
저는 100 ~200년 전의 아시아배경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중화권영화는 조금 봤었고, 태국살면서 태국영화도 조금씩 보기 시작했는데요. 물론 태국영화중에는 B급 느낌나는 코미디영화들도 좋아합니다. 태국영상물들이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시원한 커피도 마셨으니, 이제 시장통을 한 번 둘러 봅니다.
라고 썼지만, 사실 시장통을 카페보다 먼저 갔습니다. 그냥 사진스토리 흐름상 저렇게 적었는데요. 그래서 제가 차이컬쳐에서 늘 말씀을 드리는 거지만, 인터넷상에 누군가 자랑삼아 올리는 SNS등을 보고 그걸 다 믿을 필요도 없고 부러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진 한장만 보고 판단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튼 원활한 스토리전개?를 위해서 커피 마시고 시장통 둘러 봤다고 칩시다.
차이나타운에는 몇 구역의 시장통이 있는데요. 바쁘신 분들은 보통 차이나타운의 화려한 간판 많은 큰 도로만 둘러 보시고 이동을 하시지만, 사실 구석구석 시장통도 볼거리가 많습니다.
다양한 식품류를 파는 잡화점입니다. 저는 늘 이런 생각을 합니다. 도대체 이런 곳의 저런 제품들은 팔리기는 하는 걸까? 저 많은 제품들 유통기한은 어떻게 관리하며 재고처리는 어떻게 할까? 뭐 이런 것이 시장의 묘미라면 묘미일 수도 있고, 여기 상인들은 또 그들만의 경영방식이 있겠죠.
해외에서 차이나타운을 가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차이나타운이라고 해서 100% ‘차이나’의 느낌만 나는 건 또 아닙니다. 현지의 문화와 적절히 혼합이 된 차이나타운의 느낌이죠. 그래서 각 나라마다 차이나타운의 느낌이 조금씩은 다릅니다. 당연히 여기는 태국 및 다른 동남아권 느낌이 많이 나구요.
싱가폴의 차이나타운을 가면 당연시 중화권 화교의 국가니까 중화권의 색깔이 짙지만 그 와중에 서구권의 느낌도 조금 나는 것 같구요. 홍콩만 하더라도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분명 동아시아국가 이지만 외국인들이 너무나 많아서 거의 전세계 문화가 섞여 있는 느낌도 받습니다. 태국차이나타운도 처음 왔을때는 한국의 차이나타운과는 확연히 다른 규모와 색깔이 좋아 자주 왔었죠.
흡사 왼쪽엔 태국국왕의 사진을 걸어 둔 태국식당과 오른쪽엔 중국 춘리엔 같은 한자문구를 걸어 놓아 태국과 중국이 한 골목에서 영업을 하는 모습입니다.
14일간의 태국자동차여행을 방콕에서 마무리하였습니다. 방콕에서 출발하여 롯부리-수코타이-치앙마이-치앙라이-깐자나부리-몽마을 까지 길고 먼 여정을 자동차로 여행을 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하다보니 가급적 좋은 호텔에서, 가급적 좋은 음식들 위주로 식사를 했구요. 아버지도 잠자리와 음식에 그렇게 까다로운 분이 아니시라 무난하게 여행을 한 것 같았습니다. 저는 거의 운전기사+가이드 같은 역활로 여행을 하다보니 꽃보다 할배 에서 이서진씨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길 못 찾으면 좀 긴장하고…
그럼에도 위의 문구처럼, 아버지와 아내가 함께 하는 여행이다보니 좀 더 깊고 좀 더 현지인들과 가까이 하는 여행을 하지 못 한 것은 아쉬움이 있어서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여행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산골시골 같은 곳을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무튼 이번 여행기는 여기서 마무리를 하고 중간중간 올리지 못 한 사진들은 다음에 소개를 해 보겠습니다. 다음엔 다른 여행편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일요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태국 깐자나부리는 방콕에서 서북쪽에 위치한 산악지역입니다. 태국살때 당일치기 여행을 자주 갔었던 곳이긴 한데, 깐자나부리의 면적이 경상도전체면적과 비슷합니다. 더군다나 산악도로가 많고, 꾸불꾸불한 지방국도여서 지도에서 보이는 거리보다 이동시간은 더 걸리는 곳입니다. 이동중의 풍경들도 아주 아름다운 지역입니다.
대형 호수도 있고, 곳곳에 크고 작은 호수들이 많습니다. 산악지대이지만 물이 많아서 이런 볼거리가 있습니다.
아마 이 호수도 댐으로 인해 수몰된 지역이라 이전에 육지에서 자랐던 나무의 흔적이 물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그런 풍경을 연출해 줍니다.
이 사진을 찍은 호수는 차도에서 많이 들어온 내부에 있습니다. 심지어 차를 주차해 놓은 장소에서도 조금 걸어들어와야 하는 곳이죠. 그래서 인적이 아주 드문 (외국인들은 알기 힘든) 장소인데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마침 어떤 두 사람이 호수 가까이까지 가서 산책을 하는 모습입니다. 저 분들도 여기 풍경이 좋았나 봅니다. 그리고 특이했던 건 저 호수에 있던 저 순간, 인공적인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간간히 들리는 새소리 바람소리 빗소리 외에는 일체의 인공적인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적막감이라는 것을 느껴 보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를 가더라도 인공적인 소리를 듣지 않기가 쉽지 않거든요.
인공적인 소음이 들리지 않아서인지 저 호수와 건너편의 풍경에 더 몰입이 되고 빠져드는 것 같았습니다.
또, 여기는 다양한 형태의 폭포도 많습니다. 산악지대이고, 비도 많고 물도 많아 폭포가 없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이죠. 곳곳에 많은 폭포들이 있으며, 저는 몇 군데 가 보았습니다. 주로 현지인들이 폭포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폭포의 시원한 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한잔 마십니다.
산길을 가고 있는데, 도로 옆 좁은 공간에 소가 있더군요. 야생소는 아닌 듯 하고 인근 주민이 풀어 놓은 소처럼 보였습니다. 마침 차에 남아 있던 소먹이들이 남아 있어서 그걸 주려고 뛰어 가는 아내입니다.
가끔 이런 도심이 나오면 뭔가 ‘문명세계’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 산속드라이브 입니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잠시 들린 주유소 입니다. 주유소가 소박합니다. 파란색 기름탱크에 있는 기름은 오토바이나 주변 농기계류의 것으로 생각되네요.
반나절내내 산길을 달린 적이 있는데, 현대식 주유소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드물긴 하지만, 산길을 들어갈 때는 가급적 주유를 미리 하고 들어가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편합니다.
산 속 도로에는 이렇게 뭔가 상점이 있으면 그 곳이 곧 휴게소가 됩니다. 마침 도로변에 각종 과일과 채소를 파는 상점이 있어 화장실도 갈 겸…
두리안도 먹을겸 차를 세웠습니다. 태국에 살면서 늘 두리안이 보이면 사서 먹는 편이었습니다. 태국 떠나면 먹기 힘든 과일이니까요.
달리다 좋은 풍경이 있으면 잠시 차를 세워두고 감상하고 사진도 찍습니다. 이런 곳을 드라이브할 때는 경부고속도로처럼 그냥 앞만 보고 이동만을 위해 달리지 않습니다. 주변 풍경도 눈에 담아 가면서 운전을 하죠.
물이 있는 곳은 저렇게 수상가옥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풍경은 대만,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제가 이전 독일에 출장을 갔을때,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퀼런으로 이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공항에서 퀄런으로 갈 때는 아우토반을 타고 가서 주변 풍경이 별로 기억이 나지 않더군요. 그런데 공항으로 돌아올 때는 일부러 그 무슨 강이죠? (이름이 생각 안 나네요) 로렐라이 언덕있는 강 따라 지방국도를 타고 운전을 했는데, 강 주변의 풍경, 산의 색상, 중간중간 오래된 성들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비가 엄청 내리는 도로변의 상점입니다. 빗줄기가 쏟아지는 현장에서는 장관인 광경이었는데, 뭐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그 느낌이 다 전달이 안 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사진 몇 장으로 여행지를 판단하지 말고,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직접 가 보는 것이 좋죠.
아무튼 깐자나부리와 몽다리마을의 여행을 이렇게 마치고 다시 방콕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도 방콕을 몇 번 온 적이 있고, 아내도 방콕은 여러차례 온 적이 있어서 14일간의 여행은 방콕외곽지역 위주로 다녔습니다. 여행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좋았다고 하더군요. 방콕도 볼 거리가 많기는 하지만 13일간 차로 여행한 곳들의 풍경들이나 경험들이 너무나 다양하고 재밌었거든요. 또 다들 나름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이런 시골지역, 산골지역의 여행들이 색다르게 느껴졌을 겁니다.
무엇보다 나름 여행을 많이 다닌 제가 운전도 하고 가이드를 했으니까요.
해외여행이 많지 않거나 익숙치 않은 분들은, 저같은 로컬가이드를 통해서 여행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단체여행사가 아닌 개별로컬여행가이드들이 있거든요. 그 사람들은 현지에서 오래지낸 사람들이거나 저처럼 여행을 많이 해 본 사람들이라 초보여행자들의 소중한 돈과 시간을 아껴 줄 수 있거든요. 또, 몇 년만에 해외여행을 나왔는데, 하루 현지에서 바가지를 쓰거나 현지인들과 불미스런 일들이 벌어지면 여행자체의 기분을 다 망쳐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의 여행경험기가 재미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사진은 참 많은데, 짧은 블로그를 통해서 많은 사진들을 다 소개할 수 없어서 단편적으로 조금씩만 소개를 해드렸고, 앞으로 기회가 있을때 마다 좋은 사진들이 있으면 올려 보겠습니다.
대만시골에서의 생활은 비교적 느리고 단순합니다. 도시생활보다 복잡할 것도 없고, 사람들도 도시처럼 그렇게 날이 서 있지 않아 사람으로 오는 스트레스도 별로 없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행복지수’를 올리는 방법 중 하나가 좋은 기후, 좋은 자연환경에서 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에 지금 여기 살면서 행복지수가 올라간 건 사실입니다. 저의 카페에서 자전거로 3분 정도 거리의 풍경입니다.
주변에 고층건물도 많지 않고 오래된 건물들도 많아서 저처럼 아파트건물이나 고층빌딩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곳이 좋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도시를 떠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빈곤할 때 도시를 떠나는 건 정말 쉽지 않습니다.
가끔 쉬는날에는 카페주변이 아닌 다른 식당을 한번씩 가는 편입니다. 저의 카페는 한국으로치면 읍/면 정도되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중심가라고 해봤자 대형마트 하나, 조그마한 극장하나가 전부 입니다.
귀농, 시골살이 이런걸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도시생활보다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도시생활과 시골생활의 장단점이 있어서 시골생활의 단점을 감수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죠.
저의 카페 골목길 풍경입니다. 대체로 집들이 이런 오래된 시골집입니다. 그래서 풍경은 아주 정답습니다. 사람의 취향에 따라서 말이죠. 저는 어느 곳에서나 적응을 좀 잘 하는 편입니다. 지금까지 부산을 떠나 살면서 적응을 가장 못 한 곳이 서울인 것 같구요. 서울에서 아침저녁 지하철로 출퇴근할 때 사람들의 멍한 우울할 표정을 보고 있으면 늘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대만은 여전히 주 교통수단이 오토바이와 자전거입니다. 특히 이 곳처럼 대중교통이 없다시피한 곳에서는 오토바이 자전거는 필수 교통수단입니다. 한국사람들이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가 자동차문화도 한 몫을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30대 처음 들어갔을때, 주변에서 ‘차 한대는 있어야지’ 라고 부추기더군요. 이제 갓 직장 들어가서 수중에 돈도 없는 사회초년생인데, 차 없으면 무슨 무능한 사람처럼 이야기를 하는 그런 문화에 등 떠밀려 저도 대출로 차를 구입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저도 인생관이 아직 제대로 수립되지 않은 어리버리한 사회초년생 시절 이었습니다.
종종 운동하러 가는 동네놀이터 맞은편에 있는 빈집입니다. 여기도 빈집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식들은 떠나고, 노인들은 죽고… 빈집으로 방치되어 있는 집이 많습니다. 저의 시골할아버지집도 저렇게 방치가 되어 있는데요. 사실 자식들이 시골로 돌아가려고 해도 ‘돈’ 이 있어야 시골로 돌아갈 수 있는 겁니다.
마을 지명에 용이 들어가서 인지 용 그림이 있습니다. 이전 제가 아주 어릴때도 시골사람들이 어느어느 우물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봤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 거.짓.말.
논밭이 많습니다. 그래서 각종 유실수들도 많은데요. 봄~여름사이 한창 망고가 열렸다가, 최근에는 다른 과일들이 열려 있습니다.
마을에 이런 키 높은 야자, 삔랑 나무들도 있어서 얼핏보면 한국의 시골과 별 다를바 없어 보이는 풍경을 좀 더 이국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동네 놀이터에서 올려다 본 모습입니다.
작은 마을에 이런 무속사당이 많습니다. 저는 늘 이런 곳들을 볼 때 마다 도대체 어떻게 운영하고 비용을 충당하는지 궁금합니다. 누군가 돈을 기부하거나, 수익이 있으니 이런 작은 곳이라도 유지가 될 것 같은데요.
저녁이나 점심시간에는 도로변 식당에 많은 학생들이 모여 식사를 합니다. 아무래도 여기가 대학교주변이다 보니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저렴한 식당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볶음밥을 시키면 양이 많은 곳들이 많습니다. 학생때는 아무래도 품질 보다는 양이 우선시 되는 시기니까요.
오늘은 대만의 국경일 휴무입니다. 한국은 어제까지 한글날 휴무를 마치고 오늘부터 출근한 분들이 많은 것 같던데, 최근 긴 연휴 보내고 출근하려면 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기 보이는 몽다리마을의 여행을 마치고 그 주변을 둘러봅니다. 여기는 미얀마와 인접해 있는 곳이라 미얀마사람들도 있고, 미얀마의 문화흔적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위의 사진을 찍은 언덕에 미얀마식당이 있어서 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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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식당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도 아름다우니 한번 가 보시는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몽다리의 야경이 보이는 식당에서도 식사를 했습니다. 아버지도 여기 풍경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시더군요.
인근에 있는 거대하고 화려한 절에 와 보았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동자승들이 분주히 수업 또는 기도를 하러 이동을 하는 것 같더군요.
꼭 이런 절이 아니더라도, 태국은 절에서 세운 정규학교도 있어서 거기서도 불교관련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일반불교학교에서는 그냥 불교도 가르치는 정도이고, 이런 절은 아예 입적을 해서 나중에 스님이 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태국의 많은 절들이 그렇지만, 절이 규모도 아주 크고 또 화려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세하게 독특한 조각이나 장식 등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 줍니다. 아주 멋진 촛대입니다.
스님들이 저 곳으로 들어가서 단체로 식사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여기 오전시간대에 갔었는데, 아마도 이른아침에 탁발로 얻어온 음식들을 함께 나눠 먹는 걸로 보이더군요. 들어갈때는 저기 물로 발을 씻고 들어갔습니다. 탁발을 할 때도 맨발로 하고, 태국사람들이 대체로 맨발로 많이 돌아 다닙니다. 그래서 발바닥이 늘 시커먼 편이죠. 여기 저의 카페주변 대만시골주민들 중에서도 집앞도로를 맨발로 돌아다니는 분들이 많습니다. 얼마전에 도로에 쥐 한마리가 차에 깔려 죽었던데, 그 주변을 또 맨발로 걸어다녀서 보는 제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런데 캐나다 살때도 그렇고 북미권 사람들도 그렇게 외부를 맨발로 돌아다니더군요.
스님들이 식사를 하려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티벳불교도 그렇고 스님들의 복장이 저렇게 한쪽 어깨가 드러나 보이는 형태가 많은데, 그건 아마도 이 복장의 기원지가 따뜻한 나라였기 때문이겠죠? 정작 중국운남성 라마승들이 지내는 곳은 여름에도 추워서 실내에 불을 지펴야 하던데, 제가 보기에는 추울 것 같습니다. 사실 저 날도 오전에 비가 내리고 해서 제 기준으로는 약간 쌀쌀했거든요.
이 절에는 몽다리에서 했던 불교행사들의 사진을 전시해 두었습니다. 천천히 사진들을 보니까 몽다리가 건설된 모습과 각종 관련행사들의 역사를 이해하기 좋더군요.
아마 몽다리가 건설되기 전에는 옆에 부교의 형태로 다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교는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죠. 그래서 주민들이 다리를 건설한 것 같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저 다리가 정부에 의해 건설된 것이 아니고 주민들 자체적으로 건설이 된 거라고 하는데요. (저도 태국친구에게 들은거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 다리가 낮지 않은데 다이빙을 한 사람이 있네요. 요즘 sns 유행해서 어디서든 뛰어 내려 영상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서도 이렇게 뛰어 내리네요.
다리가 건설되기 전의 사진입니다. 양쪽에서아래부터 쌓아 올려 연결을 한 것 같습니다. 한국에도 이전에 섶다리를 가본적이 있는데, 섶다리 건설 난이도와는 조금 차이가 있을 것 같네요. 아무리 시골의 목조다리라고 해도, 양쪽에서 저렇게 지으려면, 방향과 높이 이런걸 측량을 통해서 계산해야되지 않나 싶은데 말이죠.
아래 두 사진은 영월에서 찍은 섶다리 입니다. 한국의 섶다리는 웅장하지는 않지만 또 다른 멋이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특별한 대규모 행사가 있을때 다시 가보고 싶긴 합니다.
이번엔 미얀마 국경입니다. 저기 철담 건너편이 미얀마이며, 저기 미얀마의 수지여사의 사진도 보입니다.
철담은 그냥 ‘상징적’인 구분선일뿐, 그냥 저렇게 지나다닐 수 있도록 열려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 ‘국경?’ 을 너머 자유롭게 왕래를 하더군요. 심지어는 가게에 문이 있어 아예 미얀마편으로 열려 있습니다.
저렇게 미얀마쪽으로 문이 있어서 사람도 물건도 자유롭게 왕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여기까지 오는 도로에는 군인들이 도로에서 불법미얀마체류자들을 검사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는 상업활동으로 인해 물건과 사람들의 왕래를 어느 정도 암묵적으로 허용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렇게 미얀마쪽으로 문이 있어서 사람도 물건도 자유롭게 왕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여기까지 오는 도로에는 군인들이 도로에서 불법미얀마체류자들을 검사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는 상업활동으로 인해 물건과 사람들의 왕래를 어느 정도 암묵적으로 허용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때 코로나로 국경이 폐쇄되어 미얀마쪽을 가보지 못 한 것이 아쉽습니다. 라오스국경을 갔을때도 코로나로 국경폐쇄되어 못 넘어 갔었거든요. 인생은 운때도 맞아야 하는 겁니다.
갔을때, 한국사람이라고 하니까 반대편 미얀마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주며 오라고 하더군요.
국경옆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이곳 숲속으로는 그냥 미얀마로 걸어 들어갈 수 있구요. 그리고 여기는 미얀마와 태국의 사람들이 함께 사는 모습입니다. 저기 오토바이의 번호판은 미얀마번호판 이네요. 코로나로 인해 미얀마를 못 가 본 아쉬움을 인근 마을구경으로 대신해 봅니다.
이번엔 또 다른 작은 절에 가 보았습니다. 약간 해질무렵이라 주변이 음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각 지역별로 부처나 사람의 표정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저 남자가 부처와 같은 힘을 가지기 위해 101명의 사람을 죽여야 하는데, 그 마지막이 저 남자의 엄마였고, 자신의 욕망에 눈이 멀어 자신의 엄마까지 살해를 하려하자 부처가 제지했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현지인과 함께 기도를 드리는 태국친구의 모습입니다. 이날 해질무렵이었는데, 누군가 실내에서 종인가 어떤 악기를 은은하게 치고 있어서 내부의 분위기가 아주 독특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쟤를 치는 소리였던 것 같습니다. 실내에 은은하게 울려서 가뜩이나 어둑어둑해지고 주변 분위기가 신비로워 죽겠는데, 종소리가 더 신비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산골중에서도 정말 깊은 산에 있는 산골학교입니다. 학생들이 없고 해가 져서인지 분위기가 많이 음산했습니다. 당시 운전을 하고 들어가다가 공동묘지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나무가 울창한 곳이어서 정말 무섭긴 하더군요. (참고로 저는 귀신 이런건 무서워 하지 않습니다)
이른아침 이렇게 학생들이 등교도 합니다. 산골마을이지만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아침 등교하느라 고생이 많네요. 그리고 보니까 꽤 걸어가더군요.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몽다리마을에서 찍은 위의 두 학생이 차로 한참을 이동을 해서 또 사진에 찍혀 있더군요. 사진기록을 보니 이미 20분이 지났고, 저 전후로도 10~20분을 더 걷는다고 하면 등교시간만 최소 30~40분을 빗속에서 걸어가는 셈인데요. 하필이면 우산도 하나밖에 없어 한쪽 어깨쪽이 젖었는지 아래 사진에서는 자리를 바꾸어 걷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위 사진에서는 비가 적게 와서 조금 떨어져 걷고 있는데, 아래에서는 비가 더 많이 쏟아지니까 딱 붙어 걸어가고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등교를 하는 같은 시간대에 새벽부터 나와서 일을 하는 이 아이들은 학교를 안 가는 걸까요? 아님 학교가기전 새벽에 일을 하고 학교를 가는 걸까요?
위의 마지막 사진에 다른 사람의 사진을 찍어 주고 있는 저의 모습이 있네요. 저 여자분은 혼자와서 저렇게 사진을 찍어 줄 사람이 없더군요. 저 넓은 창모자 은근히 유용했습니다. 우산보다 손이 자유로와 더 편리하더군요.
사진이 좀 많아졌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소개를 하고 다음편에는 몽다리마을을 오가기 위해 이동하면서 보았던 또 다른 풍경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이동하는 동안의 풍경이 참 아름답습니다. 깊은 산도 있고, 넓은 호수도 있고, 중간중간 사람사는 마을도 있어서 비 오는 날 꾸불꾸불한 산길 운전하는 걸 종아하는 제가 한나절 드라이브 하기엔 딱 좋은 코스입니다. 방콕에서는 쉬엄쉬엄 커피도 마시고, 식사도 하고 풍경 구경도 하려면 8시간 정도는 차로 이동을 해야 하며, 비가 내리고 운무가 많을 땐 운전 더 조심해서 천천히 해야 합니다.
대만시골지역으로 와서 카페를 차리면서 이런저런 시공업체와 업무를 했었습니다. 간판업체, 전기, 주방, 전면유리샷시 등등… 이런걸 총괄해서 대행해주는 인테리어업체 견적도 받았으나 너무나 비싸길래 그냥 제가 다 했습니다. 제가 워낙 오랜 해외생활로 이런 업체들/사람들을 의심하고 경계하는 습관이 있어서인지, 이번에 저의 가게 시공을 해 주었던 사람들은 다 사람들이 좋아 보이더군요.
참고로 저는 중국본토에서 오래 있었습니다. 중국은… 사기/기만/속임/바가지 가 일상인 곳입니다.
시공을 해 주시는 분들도 하루종일 시공을 하면서 다들 친절하고 성의껏 잘 해주시더군요. 저 에어컨 설치하는 날은 좀 많은 사람들이 왔는데요. 에어컨 댓수가 많아서인지 한번에 여러사람들이 와서 함께 작업을 하더군요.
중국본토에서는 이런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 가정용 LPG 가스통을 설치하는데, 아파트인근에 있는 업자를 불렀죠. LPG 가스통을 부엌 싱크대 안쪽에 설치하더군요. 부엌외부에 싱크대를 설치할 공간도 없고, 그 때는 그 업자가 그렇게 설치를 해 줘서 그러려니 했었습니다. 그렇게 설치를 하고 사용을 하는데, 갑자기 가스가 새는 소리가 심하게 들리더군요. 놀라서 싱크대 아래 문을 열어보니 LPG 가스 압력에 가스호스가 빠져서 가스가 본체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보통은 가스관을 끼우고 철로된 고정클립을 끼워서 고정을 해야 하는데 그 기본적인것도 안 해 두었더군요. 그 업자 찾아가서 따지니 실실 웃으면서 사과도 하지 않고… 그날 정말로 그 사람 때리고 싶었습니다.
에어컨시공하시는 분들이 옆집에서 저렇게 앉아 음료판을 깔아 놓고 일하면서 쉬더군요. 보통은 남의집 문앞에 저렇게 판을 깔지도 않을 뿐더러, 주인도 항의를 할 텐데 여기는 전혀 그러지 않더군요. 항의를 하지 않는 주인도 놀랍고, 남의 집에 저렇게 하루종일 판을 깔아 놓고 술과 음료를 마시고 있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중국본토에서는 그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중국도 조금 달라졌다고 하지만, 20여년전의 중국은 ‘서비스정신’ 이라는 것이 희박했습니다. 은행가면 번호표도 없고 줄을 서야 했는데, 줄을 서는 개념이 없어서 그 조그마한 창구구멍으로 손을 먼저 집어 넣는 사람의 업무가 먼저 처리가 되는 시절이었습니다. 에이 과장하고 있네 라고 하실 분이 계신데, 그 상황을 직접 보시면 현장은 더 심하다고 보면 됩니다. 은행창구의 작은 구멍으로 사람들이 원형으로 둘러싸고 손을 먼저 집어 넣으려고 몸싸움을 하는 모습입니다. 은행 한 번 다녀오면 진이 빠지고 시간도 엄청 걸리던 시절이었죠. 그 뒤로는 중국에서도 번호표를 사용하긴 하더군요.
대만에서는 육체노동을 하시는 분들이 ‘삔랑’ 이라는 열매를 많이 먹습니다. 비닐컵에 붉은색으로 보이는 것이 삔랑 씹고 뱉은 것이며 바닥에 붉은색도 삔랑물이 벤 것입니다. 아침에 가게 앞에 나가보면 꼭 삔랑을 거리에 뱉어 놓아 바닥이 붉게 된 걸 볼 수 있습니다. 삔랑이 레드불 같은 각성효과를 내는데요. 실제로 레드불 같은 각성음료를 마시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기도 그런 음료가 보입니다.
시골에서는 시골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속도가 있습니다. 중국본토도 마찬가지였죠. 처음엔 저의 사고방식과 속도가 중국사람들과 맞지 않아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해를 하게 되고 내가 맞추어 가게 되더군요.
해외에서 한국업체랑 일을 해 보면 평생 한국에서만 일을 한 사람들은 중국이나 태국의 업무속도나 방식을 이해하지 못 하고 자기회사의 기준으로만 업무를 시키려 하지만, 그게 쉽게 됩니까? 책상에 앉아서 말로는 이론적으로는 다 될 것 같지만 그 나라에는 그 나라의 문화가 있고, 방식이 있는거죠.
오늘은 비가 그치고 태양이 보이는 오전입니다. 매일 일기예보앱을 보는데요.
오늘 오전 일기예보앱에 오류가 있는지 -1000도 라고 되어 있어 올려 봅니다. 현재 여기는 대체로 낮에는 30도 입니다. 추석전에는 35~30도 였는데, 태풍이 지나간 뒤로 30도까지 떨어지는 다소 선선한? 기온입니다. 그래서 오늘 긴팔입고 카페에 나왔습니다.
몽다리마을에서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행사를 마치고, 배를 타고 수몰지역의 멋진 풍경들을 보러 갑니다. 이 지역은 댐이 생기기 전에는 육지였는데, 댐이 생겨 대규모 호수가 생긴 뒤에는 일부 수면위의 건물들이나 풍경들이 남아 오히려 멋진 장관을 연출하는 곳입니다. 2회에 걸쳐 여길 여행했는데, 강수량/저수량 등등에 따라 보여지는 풍경이 다르더군요. 저는 첫번째 갔을때의 풍경이 더 좋았고, 특히 위 사진의 여기 풍경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이런 멋진 자연풍경을 감상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사진은 첫번째, 두번째 방문의 것을 함께 올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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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을 마친 뒤 민박에 가서 옷을 갈아 입고 저기 보이는 몽다리 아래 선착장으로 갑니다. 배는 민박을 통해 구했습니다. 첫번째 태국친구의 가이드로 와 봤다고 두번째는 수월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태국어가 전혀 안 되고, 여기 분들도 영어가 안 되어서 전화로 태국친구의 도움을 받아가며 여행을 다녔습니다. 중국어를 배우던 젊은 시절 중국에서 여행을 다닐때는 중국어를 잘 못 해도 스스로 해 나가며 중국어를 습득했었는데, 저도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인지 태국어에 대한 열정은 이전만큼 아니어서인지, 좀 편하게 여행다니는 것이 좋네요.
배를 타고 수몰지역을 다니는 거라 신발이 젖을 수도, 옷이 젖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저는 두번다 비가 내린 날이라서 방수되는 겉옷을 준비했었는데요. 그리고 두번다 여름이었지만 방한에 대한 준비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비가 내리고 바람불면 여름이라도 꽤 쌀쌀하게 느껴집니다.
아버지도 반팔만 입고 있다가, 배를 타고 달리니 바람막이를 입은 모습입니다. 제가 계속 바람막이 챙기라고 말을 해도 ‘더운데 뭐하러 귀찮게 이걸 들고 다니노?’ 라고 하시지만… 산악지대 이런 곳은 날씨 변화가 심합니다. 아내는 머리에 왜 수건을 매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현지인이 작은 배를 타고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동을 하고 있는건지, 낚시를 하고 있는건지는 모르겠으나 동력이 없는 작은 배인걸 봐서는 가까운 곳을 가는 것 같습니다.
배를 세워두고 수몰을 피한 오래된 절에 도착을 했습니다.
작은 절인데 노인 한분이 바닥을 쓸고 계시더군요. 저기서 바라보는 호수의 전경이 평화롭기도 하고, 뭔가 기괴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다시 배를 타고 간신히 수몰을 피한 절터를 찾아 갑니다. 저기 다른 관광객들을 태운 배가 보입니다. 전체 풍경은 정말 장관입니다. 현장에서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그런 모습입니다.
위에 보이는 저 곳은 두번째 갔을때는 물에 저렇게 완전히 잠겨서 들어가 보지는 못 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두번째 갔을때 모습입니다. 건물의 절반이 물에 잠겨서 저 곳에는 가보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첫번째 갔을때 저길 들어가 볼 수 있었습니다. 아래사진처럼 말이죠.
배가 접안을 하자 여기서 엄마를 따라 물건을 팔고 있는 아이들이 배를 당겨 줍니다.
호수의 수위에 따라 볼 수 있는 풍경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방문시기의 운/때 도 좀 맞아야 하죠. 우리 인생처럼 말입니다.
제가 이전에 중국운남성 호도협계곡을 가려고 했을때 며칠간 계속 비가 내려서 같은 숙소에서 묵었던 홍콩TV촬영팀이 호도협을 들어가지 못 하고 계속 대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거기는 비가 많이 내리니까 산사태 등의 위험으로 입구부터 아예 통제를 해 버리더군요. 저는 통제 풀리고 들어갔었는데, 실제로 곳곳에서 언덕위에서 돌들이 굴러 떨어져 도로에 나딩굴어져 있고, 심지어는 도로가 막혀서 차량은 아예 이동이 안 되는 구간도 있었습니다.
절터만 남은 곳에 저렇게 부처를 모시고 제단이 꾸며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길 와서 기도를 드립니다.
저의 아내도 정성스레 기도를 드립니다.
이곳은 그나마 물에 잠기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와서 기도를 드릴 수 있었는데요. 여기도 상당부분은 수몰이 된 상태입니다. 저기 보이는 저 문도 처음에 왔을때는 아래사진처럼…
저렇게 걸어서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수위가 조금 낮았던 시기의 풍경들이 더 멋있고 볼거리가 많습니다.
건물 외부에 저런 제단도 있습니다. 한곳한곳 다니며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태국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건물내부에도 이전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그런것들까지 하나하나 보시면 더 흥미로운 여행이 될 겁니다.
아래사진은 두번째 방문했을 때 찍은 같은 장소입니다.
또 다시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합니다.
여기는 산중턱에 있는 인자한 오래된 불상이 인상적인 곳입니다.
배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그 불상을 볼 수 있습니다. 저 멀리 산 위에 거대한 불상이 보이네요.
여기서 살고 있는 현지인들이 옷을 입지 않고 있는 아기와 함께 빨래를 하는 모습입니다. 배에 빨래들이 쌓여 있습니다.
옛날 저의시골에서는 아주머니들이 집근처 시내가 빨래터에서 해가 지면 빨래도 하면서 간단히 목욕도 했었거든요. 여기도 저녁이 되면 호수에서 목욕도 함께 하는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불상을 보러 올라가는 길에 현지인들의 집에 갓 태어난 새끼고양이가 있습니다.
목재로 된 불상인데요. 이 불상을 처음 봤을때, 뭔가 자주 보던 금속재질의 불상이 아니어서 그런지, 조금은 어렵게 어렵게 도착한 뒤 봐서 그런지 뭔가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종교가 없는 저도 그런 느낌이 드는데, 불심이 깊은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고생해서 와 볼만한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빛의 방향에 따라 느껴지는 표정도 다르고, 내부의 풍경과 주위의 느낌이 확실히 여느 절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물론 여기는 폐가가 된 절이고 동네주민들이 관리를 한다고 합니다.
낮게 드리워진 구름이 멋있는 풍경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입니다. 아쉽게 두번째는 이 곳이 완전히 물에 잠겨서 아버지와 아내에게 보여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나무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수몰이 되기 전에는 저 뒤의 나무들처럼 울창한 숲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방목을 해서 키우고 있는 소떼들이 저기 언덕에 보입니다.
탁트인 초원의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이전 건물터의 흔적만 남아 있네요. 그리고 아래둥치만 남은 나무들의 흔적이 풍경의 느낌을 더 살려 줍니다.
그 와중에 줄기가 많이 남아 있는 나무들도 있습니다.
구름이 많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이런 날씨와 어울리는 풍경입니다. 혹시 모르죠. 햇살이 화창한 날에는 또 다른 느낌일지…
저희는 옷을 갈아입고 왔는데, 전통복장을 입고 여기까지 온 사람도 있습니다. 확실히 전통복장을 입고 와서 사진을 찍으면 더 잘 나오긴 할 것 같습니다.
거시적인 풍경도 멋있지만, 미시적인 세세한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저 때 마침 새싹들이 솟아 나고 있었거든요. 넓은 초원에 새싹들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습니다. 혹시 넓은 초원에 가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넓은 초원에(인공적으로 조성되지 않은) 작은 여러 색상의 꽃들이 피어 있으면 그것도 나름 장관이거든요. 저는 여행하다가 초원에 꽃들이 피어 있는 모습들을 본 적이 있는데요, 꾸며지지 않은 그런 초원은 정말 멋있습니다. 또한, 꽃이 아니더라도 초원의 풀들이 각각 다른 색상으로 변해서 엄청 넓은 면적을 뒤덮고 있는 그런 모습도 정말 장관입니다.
가끔 사람들이 많이 없는 이런 곳에 와서 시간을 보내고 싶을때가 있죠. 저도 여기서 한참을 풍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고요하고 인간세계와 잠시 떨어진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배를 타고 몽다리마을로 돌아갑니다. 많은 곳들을 둘러 보았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더 많은 사진들을 올려 보겠습니다.
여기는 그나마 나무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네요. 아마 물 속에 남아 있는 집터라 도로의 흔적들이 많이 있을것 같습니다. 그걸 보려면 여기 이 큰 호수가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나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자연재앙이겠죠. 미국의 어느 큰 호수가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내자 호수바닥에서 각종 물건들이 나왔다는 기사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몽다리가 높이가 아주 높습니다. 저기서 뛰어 내리는 사람도 있는데요.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서 주변이 뿌옇게 보일 정도입니다. 갑자기 비가 내리자…
급하게 집을 기둥에 묶는 사람도 있습니다. 수상가옥들이 물에 떠 있는 형태이고, 이동도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급하게 배를 기둥에 묶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곳의 풍경은 정말 멋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마침 구름으로 인해 산들의 색상이 수묵화처럼 농담이 다르게 보입니다. 이전 사람들이 이런 산의 색상을 보고 산수화를 그렸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수몰지역 배여행을 마치고 다시 몽다리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들 구경을 하러 갑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편에 소개해 보겠습니다.
4일 5일 대만에 태풍이 통과한다고 해서 연일 기상예보에서 보도를 했었습니다. 대만동쪽바다에서 발생한 태풍이 대만의 남쪽과 중부지역을 관통한다는 예보였는데요. 이로인해 오늘 5일 운림현雲林縣은 직장휴무, 학교휴무 조치가 이루어졌습니다. 4일 해질무렵 하늘이 분홍색과 보라색으로 변했고, 밤에 태풍이 온다고 해서 저도 준비를 했습니다.
가끔 태풍이 온다고 하면 철문을 내립니다. 외부에 화분, 메뉴판도 있고, 또 혹시나 모를 바람에 물건들이 날려 유리가 파손될걸 예방하기 위해 철문을 내려 놓습니다. 올해 몇 번 태풍예보가 있었는데, 이번 태풍을 포함해서 아직까지는 크게 태풍의 피해는 없었습니다. 제가 이전 타이베이에 살 때 한 번 태풍으로 가로수 쓰러지고 간판들 다 부서지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나와 보니 이웃집 이발소 앞의 화분이 쓰러져 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일으켜 세워주었습니다.
밤새 눈을 떠서 혹시 태풍의 피해가 없는지 창문열어 확인했는데, ‘기대?와는 달리’ 바람도 없고 심지어는 비도 한방울 안 내리더군요. 지역정부는 이미 오늘 5일 휴교, 직장휴무 조치를 4일 18:00를 기해 발표해 둔 상태였는데요. 아침에 일어나 보니 너무나 평온해서 살짝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어제오늘 바람도 많이 불고 기온도 30도 이하로 떨어져 28도 정도로 선선함을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제가 비오는 날씨를 좋아하는데, 여기는 비가 내리면 카페에 손님이 뚝 떨어집니다. 비내리는 날 카페에서 커피한잔 하면 좋을텐데, 비오는 날은 손님이 확 줄어들어서, 개인적으로는 비오는 날을 선호하는데, 카페매출 입장에서 봤을때는 비오는 날이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태풍소식에 오늘 5일 이 지역 휴교, 휴무령이 내려졌지만 정작 흐리기만 할 뿐 비한방울 내리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도 대만사람들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데요. 대만사람들은 대체로 태풍휴교령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시행을 합니다. 한국은 태풍이 와도 휴교 그런게 어디있어? 학교는 가야지. 라는 관념이 있어서인지 대만은 대체로 태풍이 온다고 하면 휴교, 휴무 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안전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것이 좋죠. 이렇게 예보가 빗나가도 가끔 하루정도 이렇게 쉬는 여유도 즐기구요. 한국은 태풍이 와도 등교/출근, 몸이 아파도 등교/출근 하는 걸 ‘미덕’으로 삼는 문화가 있고, 저도 이전에는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그렇게 주입을 당하며 자랐으니까요. 지금 돌이켜보면 아프면 좀 쉬고, 힘들면 잠시 내려 놓는 그런 여유도 필요하더군요. 그렇게 산다고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구요.
(10)편에 이어 태국 몽다리마을 계속 소개해 보겠습니다. 저기 보이는 몽다리 입구에 이른아침 인근스님들이 탁발을 하러 옵니다. 여기는 그 스님들에게 아침공양을 하는 것이 유명합니다. 각자 종교가 있고, 신앙이 있고, 마음속에 믿음이 있습니다. 꼭 종교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이런 곳에 와서 공양을 하면서 ‘덕’을 쌓는다는 마음을 가지면 나쁠 건 없습니다.
<제목을 클릭하면 사진들을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동네아이들은 저렇게 사진찍어 주고 돈을 버는 일을 합니다. 중국도 태국도 시골지역은 무척 가난합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늘 집에서 부모를 도와 노동을 해야 합니다. 논밭에 나가서 노동을 하든, 저런 일을 해서 노동을 하든 이런 지역의 아이들은 대체로 ‘노동’을 하는 시간이 도시에 사는 아이들보다는 많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태국지인들 가족도 올해 아이의 학비를 낼 여력이 없어서 학업을 그만두니 마니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난한 농촌의 현실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런 가난에 대해 관심이 많아 주변지인들의 이런 상황들을 물어 보는 편인데요.
중국에 있을때, 저랑 함께 있었던 대학생들의 가난의 참혹함은 직접 제가 옆에서 볼 수 있었죠. 식대를 아끼려고 남들이 먹고 남은 잔반만 먹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비가 내렸습니다. 2번 왔는데, 2번 다 날씨가 동일하네요. 도착한 날 비가 내리거나 흐렸고, 다음날 아침도 딱 이렇게 비가 내리다가 그치다 비가 내리는… 저는 이런 날씨를 좋아해서 아침의 신선한 공기의 느낌이 좋았습니다.
오늘 대만 저의 지역 날씨가 낮은 검은 구름과 바람이 부는 선선한… 딱 제가 좋아하는 날씨입니다.
이른 새벽 일어나 전통복장으로 갈아 입을 준비를 합니다. 인근 가게들마다 저렇게 옷을 대여해 줍니다. 저희는 묵었던 민박집에서 옷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저게 한복과 마찬가지로 처음 입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아주머니께서 잘 도와 주셔서 문제가 없었습니다.
옷을 갈아 입기전 아침 커피를 마셔 봅니다. 이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계란커피를 아버지와 아내에게 권해 봅니다.
커피도 팔고 음식도 파는 현지스타일의 식당입니다. 가게 앞에는 이미 탁발을 위한 음식들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커피와 계란과 연유 같은 걸 섞어서 마시는 형태입니다. 비 내리는 이른 아침 이런 독특한 커피를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을 바라보며 마시는 것이 여행의 재미입니다.
사진들은 2회에 걸쳐 찍은 사진들을 함께 올려 보겠습니다.
비가 내려서 저 모자도 빌렸습니다. 손에 카메라가 있으니 우산보다는 저 창이 넓은 모자가 더 편합니다. 작은 사이즈도 있고, 큰 사이즈도 있는데 비가 내릴때는 큰 사이즈가 더 유용합니다.
엄마를 도와 꽃을 파는 아이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민박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옷을 입습니다. 태국전통복장을 몇 번 입어 봤는데, 가장 문제는 화장실 갈 때죠. 그건 한복도 마찬가지일텐데, 허리춤을 잘 잡고 있어야 합니다. 도대체 한복입은 여자분들은 어떻게 화장실을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색상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외국사람들이 한국오면 한복 입어보는 체험을 알 수 있습니다.
탁발을 하려는 사람들이 강 건너편 마을에서도 걸어 오는 모습입니다.
탁발을 하는 스님들은 항상 맨발로 합니다. 마찬가지로 공양을 하는 사람도 신발을 벗는걸 예의로 생각하고 신발을 벗습니다. 받은 음식을 모아서 가지고 가는 수행하는 사람이 뒤 따릅니다. 보통은 바퀴가 달린 손수레 같은 걸 이용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사진에는 아이들이 큰 바구니로 나르는 모습입니다.
저렇게 공양을 합니다. 관광객뿐 아니라 주민들도 공양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태국에서 사시는 분들은 이른 아침 거리에서 탁발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죠. 지금 공양을 하고 있는 저 여자분도 방콕에서 왔다고 하더군요. 새벽에 함께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라고 쓰고 나니 어감이 이상하네요… 새벽에 같은 가게에서 옷을 대여해서 갈아 입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복장을 입고 공양을 하는 모습입니다.
저의 아내도 진심으로 덕을 기원하며 공양을 합니다. 많은 대만사람들도 이런 류의 신앙을 가지고 있고, 각종 신앙행사도 주기적으로 하고 있는걸 알 수 있습니다.
절에 가면 이런 동자승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2000년도 여름 중국운남성 샹그릴라의 티벳사원에 간 적이 있는데요. 그 날 비가 엄청 내렸고, 날씨가 상당히 추웠습니다. 7월인가 그랬는데, 날씨가 추워서 자켓을 구입해서 입었습니다. 그 당시 절은 관광객을 위한 통로를 지정해 두었는데, 저는 함께 갔던 중국친구와 학생라마가 머무는 방에 들어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티벳의 라마도 위의 사진같은 한쪽어깨가 드러나는 그런 옷을 입었는데 당시 날씨가 추워서 방에는 불을 피워 놓고 있었습니다.
당시 운남성 샹그릴라의 그 절의 학생라마의 방이 딱 위의 사진과 같은 형태였습니다. (위의 사진은 샹그릴라 다른 곳에서 찍은 겁니다)
위의 사진도 겨울은 아니었지만 집 내부에 불을 피워야 할 정도로 저 곳은 고산지대라 쌀쌀합니다. 아무튼 그 당시 학생라마와 중국인 친구의 통역을 통해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 볼 수가 있었는데요. 어린 학생인데, 어쩌다 불교에 귀의해서 이렇게 수행의 생활을 하는지에 대해 물어 보았습니다. 당시 그 학생라마가 티벳전통차를 내 주어서 불가에 앉아 마셨습니다. 위의 사진 보면 불 위에 치즈가 보입니다.당시 비바람이 몹시 불어 추웠는데, 저렇게 방 안에 저런 불을 피워서 둘러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니 정말 특별하더군요.
무튼 태국도 절에 가보면 어린 동자승이나 학생스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몽다리의 풍경은 참 아름답습니다. 가끔 보면 어느 여행지를 갔다가 너무 아름다워서 거기서 아예 눌러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요. 이전에 중국 운남성 리장에 갔을때, 한국여자분도 거기 너무 좋아 거기서 식당과 민박을 시작했고, 13년 후에 갔을때는 사업체가 제법 커져 있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사람들이 많지 않은 그런 관광지에 외국인이 거기서 자리를 잡고 사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는데요. 어디서 살든 행복하면 그만이죠.
그렇게 공양을 마치고… 마을을 둘러 봅니다. 마을은 크지 않아서 천천히 걸어서 둘러 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등교를 하는 모습입니다. 학교 주변을 보니 실제로 저런 전통의상을 입은 학생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마을과 마을을 이어 주는 작은 다리인데, 저 강아지들이 사람은 통과를 시키고, 이쪽편의 강아지들은 못 오게 막는 것 같더군요. 양쪽 강아지들의 신경전이 대단했습니다.
부식을 파는 가게 입니다. 비가 내리는데 아이를 안고 와서 찬거리를 사는 모습이네요. 가게의 건물이 특색있습니다.
동네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식을 파는 작은 가판대 입니다. 흑미가 보이네요. 그리고 남자들 중에서도 전통의상을 입은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수상가옥에 사는 사람이 걸어서 마을쪽으로 나오고 있는 모습입니다.
비내리는 이른 아침, 도시를 떠나 여기서 이런 풍경을 바라보니 참 평화로운데요. 여기서 사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 곳 사람들은 막연하게 대도시로 나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어차피 세상은 저를 중심으로 제가 주인공인 삶이니까 여기 풍경과 사람들은 평화롭다 라고 감상해 봅니다.
사진이 너무 많아진 것 같네요. 다음편에 이어서 배를 타고 가본 주변 수몰지역 풍경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제가 여길 두번 왔었는데, 보니까 강수량이나 저수량에 따라 수몰지역의 풍경이 달라지더군요. 첫번째 왔을때는 수몰지역의 풍경들이 멋있었는데, 두번째는 수위가 너무 높아져서인지 좋았던 풍경들이 모두 물 속에 잠겨 버렸습니다. 추석연휴 잘 보내셨나요? 명절은 산 사람이 즐겁게 지내면 되는 겁니다. 서로에게 감정상하는 말을 하고 상처를 주고 할 필요가 없는데,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도 그런걸 ‘깨닫지’ 못 하고 어리석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아직 많이 어리석지만, 인생 경험이 쌓이다보니 적어도 가진 재산가지고 인생 불행하게 살지는 않게 되더군요. 그걸 깨우치는데 많은 시간과 인생수업료를 냈지만, 그렇게라도 배우고 깨달은 것만으로도 인생 헛살지 않았다는 생각은 드는데요.
인생은 반드시 어떻게 살아야한다, 반드시 누구처럼 성공해야한다, 반드시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져야 한다 라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걸 깨우치면 이 힘든 인생이 조금은 더 쉬워질 수 있는데, 나이가 어린 사람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생을 그렇게 살았음에도 여전히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많다고 존중받을 자격이 다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을 계속 하는 겁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여행지 태국의 Mon Bridge 몽다리를 소개해 봅니다. 이번 14일간의 자동차여행에서 제 대만아내가 가 보고 싶은 곳 이라며 콕 찍은 곳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미 한 번 다녀온 곳이었고, 이 곳을 여행일정에 넣을까 말까 고민을 했었습니다. 태국북부여행이 주된 경로였는데, 여기를 일정에 넣어 버리면 여행동선이 아주 길어져 버리거든요. 그럼에도 여기는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되어 일정에 넣었습니다. 태국북부에서 깐자나부리까지 이동을 하던 날에는 하루온종일 차로 이동만 했습니다. 저는 태국에서 하루에 600여키로, 700여키로 운전을 한 적이 여러번 있기도 했고, 아직 장거리운전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은데요, 동승했던 아버지와 아내는 차에서 힘들었을 것 같긴 합니다.
이 앞편에서 소개해 드렸던 깐자나부리 ‘콰이강의 다리’ 에서 여기까지 4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방콕에서 출발을 하면 거의 반나절이상은 이동을 해야 합니다.
<제목을 클릭하면 아름다운 사진들 크게 볼 수 있도록 설정해 두었습니다>
미얀마에 인접해 있는 태국서쪽의 작은 마을인데, 강을 마주하고 있는 두마을 주민들이 나무로 저 다리를 만들어 왕래를 하면서 외지인들이 저 다리를 보러 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이 다리외에도 인근의 여러 장소들이 관광지가 되어 저 같은 외국인도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마을이 참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이런 곳을 2번이나 올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를 합니다. 사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평생 한 번 가 보고 싶다는 중국운남성도 3번이나 가 보았습니다. 중국운남성 샹그리라, 리장 이런 곳은 정말 좋습니다.
여기는 새벽에 일찍 나와 스님들의 탁발하는 행사에 참여해 보면 더 특별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해가 뜨기 전 다리입구에 스님들이 탁발을 하기 위해 오는 외지인들도 많다고 하더군요.
먼저 숙소는 마을에 있는 민박을 잡았습니다. 이 마을에는 이런 류의 민박밖에 없습니다. 차로 20분 정도 나가면 2성 3성급 호텔도 있긴 합니다만, 이런 민박체험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한번 해 보았습니다.
민박의 옆집입니다. 지붕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을 모아 담는 호스가 보입니다. 태국사람들은 물을 모아 두었다가 그걸 퍼 쓰는 생활방식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설겆이할 때도 물을 담아서 재활용 합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생활방식이 존재 하고, 아직 제가 가 보지 못 한 다양한 생활방식이 있다는 걸 잘 압니다. 분명한 건, 일부의 사람들은 SNS상에 다른 사람이 올리는 자랑질용 게시물 들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부러워 하며 살지만… 저는 세상을 경험하고 배우면서 내가 얼마나 부유하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가를 느끼고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이 마을의 수위가 이렇게 높지 않았습니다. 인근에 댐이 건설되면서 마을 주변이 이렇게 물에 잠기게 되어 새로운 형태의 마을이 조성되었습니다. 두 마을 사이의 이 호수도 댐으로 인해 형성이 되었습니다. 이 몬다리 Mon Bridge도 그 이후에 마을사람들이 목재를 이용해서 건설한 겁니다. 또한, 수몰이 된 지역들 일부는 배를 타고 들어가 구경을 하는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2번 왔었는데, 2번 모두 날씨가 딱 이랬습니다. 흐리거나 비가 내리는… 그래서 아주 운치있는 모습입니다. 댐으로 형성된 이 호수의 면적이 아주 넓습니다. 이 지역 전체적으로 수상가옥이 형성이 되어 있습니다.
현지인들이 지내는 집을 저렇게 볼 수 있습니다. 태국의 많은 가옥들이 저렇게 2층에서 지내는 구조로 된 곳이 많습니다. 중국의 운남성을 가도 가옥의 구조가 2층에서 지내도록 되어 있고 1층은 가축이나 창고 등으로 활용하는 형태가 많습니다. 저렇게 집을 짓는 이유는 살아오면서 어떤 이유나 필요에 의해 강제되었다고 유추를 할 수 있죠.
적은 수의 가옥들로 마을들이 형성이 되어 있습니다. 처음 왔을 때 위에 보이는 마을까지 걸어간 적이 있었는데요. 당시, 다리 건너편 마을들의 강아지들이 서로 격렬하게 짖으며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리적 충돌 없이 그냥 소리로만 세력 싸움을 하더군요.
당시 찍었던 사진 입니다.
비가 내리는 오후 아이들이 집에서 놀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기 호수도 강우량이나 댐의 저수상황에 따라 수위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합니다. 당연히 수상가옥들도 수위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져 있고, 심지어는 이동까지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전에 여기 수상가옥에 살았던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그냥 물에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그래서 가끔 떠내려 오는 시체도 볼 수 있다고… 물론 화장실은 물로 바로 떨어지는 형태입니다. 화장실이 물로 바로 떨어지는 형태인건 친자연적이라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이 또 집 앞에서 수영도 하고 해서…
수상가옥이지만 전기도 있어서 기본적인 생활은 다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늘 궁금한 것이 저기 ‘주소’가 있냐고 물어보니 태국친구도 자세히 모르더라구요.
댐으로 형성된 호수의 면적이 아주 넓습니다. 이 마을까지 차로 이동을 하면서 호수가를 따라 달리는 구간이 있는데요. 호수 전체로 이런 수상가옥들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5시간 운전을 하지만 서울-부산 5시간 운전하는 것과 여기를 5시간 운전하는 것은 그 느낌이 완전히 다릅니다. 특히 제가 비오는 날 운전하는 걸 좋아해서인지 2번 모두 비가 내려서 더 좋았습니다.
비가 내리면 잠시 비를 피해 쉬면 됩니다.
반면 동네아이들은 비가 내려도 즐겁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어떤 사람들을 배를 타려고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모습입니다.
다리 건너편 낮은 언덕쪽에 미얀마식당이 있더군요. 여기가 미얀마와 인접한 국경지대라 미얀마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역사적으로 보면 이 지역도 분명히 미얀마의 땅이었다가 태국 영토가 되는 뺏고 뺏기는 지역이었을 겁니다. 지금이야 ‘국경’ 이라는 개념이 명확하지만 이전에는 이런 지역 사람들은 서로 교류하고 살았을 거라 생각이 됩니다.
미얀마식당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이 아주 멋있습니다. 갑자기 비가 더 많이 쏟아져서 장관입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무언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보이고…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물 속에서 배를 고정시키는 사람도 있으며…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배를 타고 관광지로 가는 관광객도 보이며…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수상카페에서 (아마도) 손님을 기다리는 카페주인도 보입니다.
다리위를 오다니던 강아지도 비가 내리니 다리위의 저 곳에 몸을 피하고 있습니다.
비가 내려도 멋진 가죽 모자를 쓰고 걸어가고 있는 어르신도 보이고…
비가 내려도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고 돈을 벌려고 준비를 하는 동네아이들도 보입니다. 이 동네 아이들이 대체로 표정들이 다 좋더군요.
보니까 이 동네아이들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물건을 팔거나 사진을 함께 찍어주고 용돈벌이를 하는 것 같더군요. 물론 돈은 부모들이 관리를 하겠지만,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면 보통 이런 시골의 아이들은 논밭에 나가서 일을 하거나 다른 일들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일들이 더 나아 보입니다.
사진이 많아졌네요. 다음편에 이어서 몽다리마을 이야기 계속 올려 보겠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하는 스님에게 공양하는 모습도 이어서 소개해 보겠습니다.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문화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외국에 처음 나가 해외생활을 얼마하지 않은 초보단계에서는 ‘한국과 비교’ 를 하게 되죠. 저도 중국처음 갔을땐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한국은 이런데 여기는 왜 이래?’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고, 어떨 때는 ‘우월’을 따지게 됩니다. 조금만 한국과 다르면 ‘이상하다’ 라고 유튜브에 자극적인 제목으로 소개를 합니다.
저도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문화를 바라볼 때는 그 기원에 대해 궁금하게 되고, 이런 문화가 형성되게 된 환경/역사 등등의 배경을 보게 되더군요. 조금 해외생활에 경험치가 쌓이고, 시야가 넓어졌다고나 할까요? 그러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누릴 수 있는 것들에 늘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게 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