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푸켓의 중국-포르투갈 양식의 100년 넘은 주택

푸켓하면 바닷가 휴양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저는 바다와 더불어 구시가지Old street 및 도심의 모습들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태국이지만 중화권문화가 짙게 남아 있고 거기에 유럽의 건축양식이 어우러져 있어서 태국이지만 서양느낌나는 중화권 국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싱가폴이나 홍콩의 느낌도 살짝 있습니다.

푸켓은 이전에 주석의 산지로 유명해서 중화권사람들 중에 광산업으로 부를 이룬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럽에서도 이곳의 항구를 통해 무역을 많이 했던 까닭에 유럽의 영향이 많았고, 특히 포르투갈의 영향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럽+중화권의 느낌이 강하게 남아 있는 곳입니다.
위의 건물도 건물주는 중화권사람인데, 건축양식은 중화권과 유럽이 혼재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00여년전에 이 곳 사람들이 어떤 경제수준이었는지는 제가 가늠할 수 없으나, 이 정도 크기의 주택에서 살았다고 하면 그 때도 상당한 부를 가지고 있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느낀건, ‘좋은 위치를 선점先占’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혼란할 때 좋은 곳에 자리를 잡으면 되는데, 그게 또 말처럼 쉽지 않죠.

이런저런 고택을 가 보았지만 이 집의 압권은 실내에 있는 저 연못이며, 거기에 지붕이 뚫려 있어서 채광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저 옆 테이블에 앉아서 차를 즐기는 삶이 부잣집의 삶이 아닌가 싶네요. 지금으로 치면 방배동 같은 곳의 정원있는 대형 단독주택의 삶? 이겠죠.

서울의 직사각형 아파트, 빌라에 익숙한 주거에서 이런 집을 보면 뭔가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지금은 후손들이 이 집을 이용해서 입장료수입도 올리고 있고, 그 옆에서 가게도 열어 장사도 하고 있으니, 조상의 덕을 잘 보고 있는 편입니다.

한국의 제사문화… 조상이 이 정도 물려주면 일년에 한 번 정도 가족들 모여 제사지낼만 하죠. 그렇지 않다면 괜히 죽은 조상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들 괴롭히지 말고, 살아있는 사람 먼저 즐겁고 행복하게 제사를 생략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사라는 문화를 부정 하려는 것이 아니라, 별 쓸데없는 허례의식으로 살아 있는 사람 힘들 필요 없다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당시 설명해주시는 분이 태국어로 설명을 해 주셔서 정확하게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저 침대의 저 철제빔은 당시에 어떤 재료를 사용해서 만든 거라고 했습니다.

일반서민의 주택들은 대체로 저 2층 올라가는 계단 아래쪽은 그냥 밋밋한 나무인데, 여기는 저기도 화려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단순히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이 사진을 보시는 분들은
‘저게 뭐 그리 대단해?’
라고 하실 수 있지만, 여러분이 직접 집의 인테리어나 가게의 인테리어를 내 돈 내고 한다고 하면 뭘 하나 하는데도 다 비용이 들어 갑니다. 저의 카페 전기배선을 사람불러 했었는데요. 배선마저도 좀 보기좋게 마감을 하는 견적과 그냥 선이 대충 나와 있는 마감의 가격이 또 다릅니다.
내 돈을 써서 뭘 해 보면 저런 ‘장식’에 돈을 쓴 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건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부잣집의 상징, 긴 식탁테이블. 가끔 영화보면 저런 긴식탁테이블 양쪽 가장 끝에서 두명이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뭐 호흡기감염질환 예방용인가요?

주방입니다. 주방쪽 공간이 저의 서울집 공간보다 넓…

여기 주방은 지금은 사용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정확한건 아니지만, 여기도 주방의 구조를 보니까 하인? 가정부? 명칭을 뭐라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주인말고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이런 규모의 집이라면 가정부 같은 사람들이 없으면 주인은 아마 청소하느라 엄청 힘들었을 것 같거든요.

설명해주신 분께서 저 문과 유리가 당시 특별히 제작되어 의미가 있다 라고 했는데, 물론 당시 태국어로 설명을 하고 있고, 저는 친구를 통해서 설명을 들은 거라 그 부분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여기 장식장들을 보면 중화권사람임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내부에 이런 오래된 물건들이 많이 있고, 잘 보존이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물건들도 고급스런 것들이 많아서 당시 꽤 경제적으로 부유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얼핏보면 선풍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얘는 무려 열풍기 입니다. 냉방의 목적이 아니라 난방의 목적으로 사용되어 진 것입니다. 태국… 그것도 말레이시아 가까운 남쪽에서 이런 열풍기를 사용했을 정도면 부자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열선이 있는 그런 히터는 아닌것 같고, 아래에 뜨거운 숯불? 뭐 그런걸 장착해서 팬으로 바람을 날려주는 그런 구조인 듯 합니다. 100년전 제품입니다.
100년전에 저런 열풍기가 있었서 라고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무려 2300여년전 진시황의 마차도 냉난방이 되었다고 하니까요.

많은 가족사진들이 있었는데요. 단연 눈길이 가는건…

이 분이더군요. 당시는 사진찍고 보정을 하지는 않았을테니 외모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실내 연못이 인상적이었던 100여년된 중국-포르투갈 양식의 고택이었습니다. 푸켓 가 보시는 분들은 바닷가/유흥거리 말고 이런 곳도 방문해서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생활상을 상상해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푸켓의 어느 입구 못 찾아 헤매였던 카페

걸어다니며 푸켓의 Old street를 구경하다가 잠시 다리도 좀 쉴 겸 카페를 가기로 했습니다. 지나다보니 Hidden coffee shop 이라고 저렇게 입간판이 있어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입구를 못 찾겠더군요. 저기 안쪽에 나무 문이 2개가 있고 요란한 음악소리가 들려 저기가 카페거니 하고 문을 열어 보려 했으나 잠겨 있었습니다. 순간… 무슨 카페가 회원제로 예약한 손님만 받는 그런 곳인가 생각도 했습니다.

이렇게 준비해 놓은걸 보면 분명 영업을 하고 있다는 뜻인데요. 그래서 2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계단을 걸어 올라가 보았습니다.

지금 저의 대만카페도 2층 3층 으로 올라가는 내부계단이 있는 구조입니다. 이전 이런 형태의 주택은 내부에 저런식으로 계단들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2층을 올라 왔어도 저렇게 테이블만 있고, 직원도 손님도 없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카페의 흔적도 보이지 않고 입구도 알 수 없었습니다.

방치되었다고 하기엔 잘 정리된 고가구들도 있어 어쨌거나 누군가 관리를 하고 있는 공간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라는 듯한 공간입니다.

옆으로 통로가 하나 있어 따라 가 봅니다.

건물이 낡았지만 나름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한 느낌이긴 했습니다.

2층에서 다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이고 그 아래 저런 소품? 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오래된 물건들이 나름 정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서야 카페의 바가 보입니다. 시간을 대략 20~30년 되돌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커피咖啡 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내부에 한자가 많은 걸로 봐서는 주인이 중화권쪽 인 듯 했습니다.

제가 갔을땐 남자 2명과 고양이 한 녀석이 주방에 있었습니다.

손님 한 분이 주인에게 사진을 요청하더군요.

여기 문구가 인상적이더군요. 저 위의 문구를 해석하기 전에 반대편에 있는 문구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먼 길을 가 봐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오랜시간이 지나봐야 그 사람의 본 마음을 알 수 있다.

이 카페는 인테리어에 큰 돈을 쓰지 않고, 기존의 낡고 오래된 물건들을 잘 정리해서 나름대로 개성적인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문도 오래된 것을 그냥 사용하고 손잡이만 새로 갈아 낀 것 같구요.

저 테이블도 원래는 테이블이 아닌 물건을 가져와서 테이블로 사용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제가 카페를 준비하고 개업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이 조언, 충고, 훈수를 해 주셨는데, 사실 대부분의 말들이 ‘돈’ ‘비용’ 이 들어가야 하는 부분입니다. 개업준비를 하다 보니 비용이 제가 준비했던 예산보다 더 들어 가더군요. 뭔가를 하다보면 예상치 못 한 부분이 꼭 발생하니까요. 그런데 그럴바엔 돈을 더 써서, 기왕이면 더 비싼걸로 이런 말을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차 구입할 때 ‘그럴바엔 병’ ‘기왕이면 훈수’에 1,500cc 사러 갔다가 그랜저 뽑는 다는 말이 있죠.

이 카페 주인이 센스가 있더군요. 저 부분을 투명한 판으로 대어서, 햇볕이 들어오게 해 두니 내부 분위기가 더 좋았습니다. 가끔 이런 지붕의 카페를 가 보면 지붕 한 두 군데를 저렇게 햇볕이 들어오게 만들어 놓은 곳이 있었습니다. 이전에 대만타이동의 이런 건물카페를 갔을때도 지붕 기와 하나를 떼어 내서 저렇게 햇살이 들어오게 만들어 두었더군요.

이 카페의 반전은 뒤편에 작은 정원이 있고

뒷골목에서 들어가는 작은 문이 있었습니다. 큰대로변에서 여기로 오려면 계단올라 갔다가 내려와서 건물통로를 지나야 했지만, 사실은 이 카페는 여기가 정문인 셈입니다. 단지 여기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주택가 골목길이라 대로변에 출입구를 만들어 놓은 것이구요.

지금 대만의 저의 카페도 주택가 골목길의 40년된 건물을 이용해서 카페로 운용하고 있거든요.
아마도 이 주인도 적은 예산으로 이런 카페를 운영하려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건물주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들어올 때 약간의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저기 모자쓴 태국친구가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이 아닙니다. 박봉에 어렵게 살고 있죠. 그래서 함께 여행을 할 때 돈을 최대한 안 쓰려는 것이 눈에 보이더군요. 여기 카페를 들어 올 때도 “나는 그냥 밖에서 기다릴테니 너네끼리 커피 마시고 와라” 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우리가 여길 들어온 이유가 커피가 아니라 잠시 앉아서 쉬는 것이었거든요. 차마 친구만 남겨두고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커피는 제가 사는 걸로 하고 설득해서 함께 데리고 들어 왔습니다.

2000년도 1월… 제가 중국에 처음 가서 지낼때 중국 대학생친구 2명(두사람은 커플)과 청도시내 구경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겨울은 너무나도 추웠고, 잠시 몸을 좀 녹일겸 맥도널드에 들어가자고 했습니다. 그 친구들이 저에게 중국어를 가르쳐 주는 학생이었습니다.
제가 먼저 맥도널드를 들어갔는데, 그 친구 2명이 따라 들어오지 않고 한참을 밖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더군요. 왜 안들어 오냐 물으니,
“우리는 여기서 음료를 마실 여유가 없다. 이런 곳은 우리에겐 너무 비싼 곳이다. 우리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너 혼자 마시고 나와라” 라고 하더군요.
저도 그 당시 중국 처음 방문한 거라 이런 상황에 대한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배웠습니다. 세상에는 맥도널드 커피 한 잔도 비싸서 못 마시는 사람이 아주아주 많다는 것을요.

저는 중국가서 사람이 된 케이스 입니다.
극빈계층의 학생들을 너무나 많이 만나 보았거든요.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남긴 잔반을 모아서 먹는 학생들도 보았고,
생리대가 없어서 분홍색재생휴지 이용해서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그 때 처음 들었고,
집에 화장실 자체가 없어서 화장실 갈 때 마다 공동화장실 가는 학생집도 가 보았습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사람에 대한 겸손을 느끼게 되었구요.

중국에서 자영업할 때, 정말 옷 허름하고 머리도 지저분하게 하고 다니던 거래처 젊은사장이 BMW7 시리즈로 저를 태워 주는 걸 보면서 사람 외모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도 느꼈고,

허리에 차는 휴대폰케이스 만든다며 ‘작은 공장 하나 있어요’ 라는 사장이 벤츠S클래스를 모는 부자라는걸 보고서 어설프게 돈 좀 있다 라는 말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것도 느낀 곳이 중국입니다.

사람에 대한 존중을 하고, 돈이나 눈꼽만한 권력 좀 있다고 사람 무시하지 않는 법을 중국에서 배웠습니다.

푸켓에도 이전에 중화권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것 같더군요. 곳곳에서 화교의 흔적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여기 젊은 남자분들 장사 잘 되길 바랍니다. 저와 비슷하게 오래된 건물에 적은 비용으로 인테리어해서 카페를 하고 있어서 소개를 해 보았습니다 푸켓 가실 분들은 여기 한 번 가 보세요.

다음에는 집 내부에 무려 연못이 있는 부자집 화교의 집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어떤 이유로 여기 푸켓까지 와서 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동남아에 살던 화교들이 대체로 경제적으로 상위 계층이었습니다. 이 집을 보시면 이전 경제적 상위계층의 삶을 엿 볼 수 있습니다.

푸켓, 바다를 보고 Old street를 거닐다

푸켓하면 바닷가 해변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여기 Old street구시가지 풍경도 좋았습니다.
한국은 전쟁을 겪기도 했고, 시골에서도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구형 건물들을 시멘트벽으로 지어 버려서 아름다운 건물을 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물론 서울북촌에 한옥이 남아 있고, 시골지역에도 기와집들이 있지만, 한국은 어딜가나 아.파.트. 용적율 높인다고 성냥곽 같은 아파트가 너무 많아 전체적인 미관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아파트단지에도 녹지를 많이 넣고 지하주차장 을 지어서 외관을 아름답게 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으나 여전히 그 직사각형 콘크리트건물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푸켓은 바다에 인접을 하고 있어 바다를 볼 수 있는 장소가 많습니다.
저기 자전거를 타고 관광을 하는 사람이 보입니다. 푸켓은 언덕이 많아서 자전거 타기 난이도가 낮은 편은 아닙니다.

맑으면 맑은대로, 흐리면 흐린대로 다른 느낌이 있는 바다의 풍경입니다. 배가 절반쯤 선수부만 나온채로 가라 앉아 있습니다.

해변가에 무슨 게임을 하는 용도로 설치를 해 둔 것 같습니다. 보통 공원에 어르신들 막대기로 공을 치며 하는 그런 스포츠인 것 같습니다.

태국전역에서 이런 중화식 절을 볼 수 있습니다. 쟤는 손오공 인 것 같죠. 그런데 들고 있는 무기가 손오공이 사용하는 여의봉 이 아니라, 오히려 장비가 사용한 장팔사모 같은 느낌입니다.
참고로 여기서 우리가 많이 들어본 여의봉 의 한자뜻을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여의봉은 한자로 如意棒.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如 입니다. 사전찾아 보면 ‘같을 여’ 로 설명이 되어 있을 건데요. 저 단어에서 ‘여’의 의미는 “상황이 여의치 않다” 의 예문처럼 “상황이 내 생각과 같지 않다” “상황이 내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이런 뜻이며 여의봉은 ‘내 생각대로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조종하는 봉’ 정도로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우실 것 같습니다.
정작… 여의봉의 정식명칭은 如意金箍棒여의금고봉 이며, 용왕인가 한테서 받아서 평소에는 작게 만들어 귀에 보관하다가 싸울때는 길게 만들어 싸우기도 하고, (기억에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부처님손바닥 벗어나는 에피소드에서 엄청 길게 만들어 탈출할 때도 사용을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무튼 여의봉의 뜻을 생각할 때는 ‘상황이 여의如意치 않다’ 라는 예문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이 절의 나한들은 손바닥에 저런 절을 올려 두고, 거대한 용도 한 손에 움켜쥘 정도로 큽니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그렇게 날아서 멀리 갔었어도 부처님손바닥 안이었으니, 저 정도는 큰 것도 아닌거죠.

주차를 하고 본격적으로 푸켓 Old town을 거닐어 봅니다. 저기 표지판에 Phuket old town 1km 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이런 시골에 가 보면 차 위에 뭘 말리는 모습들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여기 대만시골에서 제 차 위에 청소기필터, 밀대걸레, 발판매트 등등을 올려 놓고 건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 날씨에 차 위에 올려 놓으면 정말 빨리 마릅니다. 제가 다이슨 청소기를 사용하는데, 그 안의 필터를 세척하고 말리면 평소에는 잘 안 마르거든요. 차위에 올려 놓으면 하루면 다 마릅니다.

코로나 마지막 시기여서 거리에 사람들이 ‘적당히’ 있어 좋았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외벽을 볼 수 있습니다. 서울은 도심의 건물들이 대체로 직사각형이고 저런 외벽이 별로 없죠.

카페옆에 오토바이 수리점 입니다. 태국도 오토바이가 많아서 저런 오토바이 수리점이 일반가게 중간중간 있는 경우가 있는데요. 대만도 마찬가지로 오토바이 수리점이 카페, 식당 중간에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鷄飯 닭요리덮밥 집인 듯 합니다. 사람들의 복장이 전형적인 휴양지 관광객복장입니다.

시선을 끄는 카페입니다.

여행을 다니면 이런저런 다양한 음식들을 먹어 보고 싶은데, 하루에 먹을 수 있는 양이 한정적이라 그런 것들이 조금 아쉽긴 합니다. ‘맛있는 녀석들’ 이라는 먹방프로를 보면 하루만에 엄청난 양의 음식들을 시켜서 먹던데, 보통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행을 할 수만 있다면 4명정도 다니며 음식점을 가더라도 여러 음식을 시켜서 먹는걸 좋아합니다.
저런 목재간판의 느낌 좋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가게들이 있습니다.

저날 날씨가 무척 더웠는데, 털복숭이 강아지 두마리가 지나가자 사람들이 다들 눈길을 주는 모습입니다.

이전 한국건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세로로 긴 창문이라 더 이국적입니다. 한국은 정사각형 혹은 가로로 긴 형태의 창문이 더 많죠, 건물구조상… 저기 노랑색은 창문일까요? 아니면 그냥 문일까요? 그냥 문이면 상당히 위험해 보입니다.

저는 만약 제가 집을 짓게 된다면 저런 식으로 유리창 바깥쪽에 저런 문을 만들고 싶습니다. 인터넷에서 태풍방지용으로 봤는데, 유용해 보이더군요. 태풍등에도 대비를 할 수 있고, 방범용으로도 유용해 보였습니다. 방범용 쇠창살은 풍경도 그렇고 내가 갇혀 있는 느낌인데, 저런 문으로 닫아 버리면 밤에는 소음도 차단하고 암막역활도 해서 숙면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전통건물중에는 창문이 저렇게 세로로 긴 형태가 드물죠. 오래전 무슨 관공서였거나, 돈 많은 사람의 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얘는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집 같은데요. 그럼에도 외관을 멋있게 지었습니다. 사실 외관을 저렇게 설계를 한다는 자체가 다 비용이긴 합니다. 건물을 짓고, 실거주를 하는 입장에서 봤을때는 그냥 직사각형 성냥갑 처럼 만드는 것이 효율이 높긴 할텐데… 저렇게 설계하고 짓는 것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는걸 인정합니다.
제가 중고등학생 시절, 아버지가 건축설계사 인 친구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요. 아버지가 직접 주택을 지었는데, 2층인가 3층으로 되어 있고, 지금도 기억나는데 건물 내부에 계단이 있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멋지게 지어서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제 초등학교 시절 친구집이 내부에 계단있고, 정원에 연못 있는 그런 주택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정말 부자였네요.

여기 건물들이 대체로 오래되고 낡았습니다. 그래서 여기 카페들보면 그 ‘오래된’ 느낌을 남겨 두고 인테리어를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카페는 테이블도

이 가게에서 이전에 사용했던 공구함?을 재활용했습니다.

여기 이 카페도 오래된 건물의 내부를 그대로 살려서 운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카페는 정말 들어가는 입구가 독특해서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 카페는 다음에 별도로 소개를 해 보겠습니다.

지금 제가 대만시골지역에서 거의 40년된 좀 낡은 3층건물에서 카페를 하고 있는데요. 한국사람들은 주거의 기준을 아.파.트 에 두다보니 이런 주택에서의 생활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한국식아파트 보다는 이런 주택이나 연립공동주택 등에서 사는 사람들이 더 많고, 다양한 주거형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파트, 그것도 서울의 아파트에 목표를 두다보니 삶의 질이 낮아지고 삶의 행복도가 더 낮아 지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제가 3층 주택에 살아보니 아파트에서는 느끼지 못 하는 장점도 많거든요.
여행을 다니고,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이런 것들을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푸켓, 자동차로 가는길에 들린 장소들

방콕에서 푸켓까지 이틀동안 900여 키로미터를 자동차로 달렸습니다. 좀 느긋하게 운전을 했고, 중간중간 볼만한 장소가 있으면 구경도 하면서 즐겼습니다. 중간중간 이런 곳을 들리지 않을 거였으면 방콕에서 푸켓까지 비행기로 갔죠. 비행기로 가는 것이 더 저렴합니다.

1편에서 소개했던 호텔 앞마당은 저런 버스터미널 이더군요. 주로 근거리 외곽을 이동하는 버스입니다.

버스터미널이니 당연히 이런저런 음식을 파는 상점이 있습니다.
버스들 지붕을 보면 여분의 타이어가 있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이곳 도로사정을 보면 여분의 타이어를 싣고 다니는 이유를 아실 수 있습니다. 도로마다 파인 웅덩이가 너무나 많습니다. 저도 운전을 하면서 늘 긴장을 하는 부분중 하나입니다. 태국에서 여행을 하려면 차체가 높고 타이어인치도 조금 큰 SUV 를 추천합니다. 차체 낮은 차량은 높은 확율로 바닥 긁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어제밤에 느꼈던 으시시한? 느낌은 없고, 아침에 보니 복고적인 그런 느낌의 멋진 인테리어입니다. 보통 공포영화를 보더라도 밤새 그렇게 무서운 사건들이 발생했음에도 아침에 보면 굿모닝 하면서 평온한 느낌으로 인사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많죠.

시간여행을 한 듯한 그런 느낌의 호텔이었습니다. 호텔 구조도 현대식이 아닌 이전 건물구조라서 영화배경으로 어울립니다.

이 도시에서 유명하다는 온천마을을 가 보았습니다. 산 중턱에 작은 온천마을이 있더군요.

X마크가 당시 사회적거리두기 를 보여 줍니다. 저기 물이 너무 뜨겁더군요. 발을 잠시 담그고 있었는데도 발이 익어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들 발만 살짝 담그는 온도인데, 거길 들어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즐기는 동네주민이십니다. 동네에 이런 온천 하나 있으면 좋겠더군요. 저렇게 매일 무료로 온천도 즐기고…

온천도 좋았지만, 주변의 전체적인 풍경과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산속에 들어 앉아 있어 뭔가 아늑한 느낌을 주는 그런 온천마을이었습니다.

그 다음 코스로는 100년 고택이 있다고 해서 가 보았습니다.

오래된 고택을 후손들이 잘 보존해서 그걸로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그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방식으로 운영을 하더군요. 아주 머리를 잘 쓴 모습입니다.

내부 가구들도 그렇고 소품들이 보존상태가 아주 좋았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단기관광객이 여기를 일부러 찾아가기는 어렵겠지만, 방콕에서 푸켓으로 이동을 하다가 잠시 시간내서 들려볼 가치는 있었습니다. 입장료도 없습니다.

내부 곳곳에 사진으로 찍으면 아름다운 장소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오래된 물건들을 보면서 100여년전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을 했을까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집 주인은 당시에도 경제적으로 상류층이었을 것 같습니다. 우물이 집 정원에 있더군요. 당시 공동우물이 아니라 자가 우물이 있다는 건 어찌되었건 큰 자산이거든요.

조상세대에서 ‘어찌어찌’ 좋은 장소에 집과 땅이라도 소유를 하고 있으면 집안대대로 경제적으로 여유있게 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내 조상이 ‘어찌어찌’ 좋은 장소에 집과 땅이 없다고 하더라도 원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당시에도 삶이란 경쟁으로 치열했을거거든요. 지금 내가 ‘어찌어찌’ 집하나 땅 한평 제대로 마련하기 어렵듯이 그 당시에도 그랬을 겁니다.

이런 주판은 여느 가게나 가정집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던 물건인데요. 저는 상열 1개 주판은 배운적이 있는데, 상열 2개 주판은 접해본 적이 없습니다. 중화권에서는 종종 보이더군요.

이 집 조상들이 부자였을거라 추정하는 이유중 하나가 저 ‘인체공학적’인 주판때문입니다. 원래 키보드도 인체공학을 고려해 휘어져 있는 것이 비싸잖아요… 는 농담입니다.

중화권집들에게서 볼 수 있는 세면대와 요강입니다. 요즘은 중국에서도 현대식으로 바뀌고 있어 저런 세면대를 사용할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중국에서 생활 좀 해 봤다 라고 하시는 분들은 저 세면대를 사용할 기회가 없었을 것 같은데요. 저는 무려 실생활에서 저 세면대를 사용해 보았죠. 겨울에 저기에 찬물 부은 뒤 뜨거운물 부어서 미지근하게 만들어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했는데, 겨울이면 엄청 춥습니다. 옷을 입고 머리를 감는 것이 익숙치 않아 조심한다고 해도 옷이 물에 젖기 마련인데요. 그러면 계속 춥습니다.

이동을 하다가 그 지역에서 분위기 있다는 카페를 가 보았습니다. 현지인 친구들과 다니면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카페, 맛집 들을 잘 찾으니 저는 편합니다. 그냥 운전만 하면 되거든요.
조금 비싸보이는 호텔내 카페였습니다. 한국이었으면 그런 호텔카페에 가면 메뉴판에서 가장 저가의 음료(일반적으로 아메리카노죠)를 시켰을텐데, 태국여행의 장점이 물가가 저렴하다는것… 그래서 과감하게 커피와 제가 좋아하는 땡모반(수박쥬스)을 함께 시키는 사치를 부려 봅니다.

태국은 이런 형태의 리조트호텔이 많습니다. 가격도 적당해서 현대식 건물의 호텔에 식상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형태의 리조트호텔이 좋습니다.

태국의 웬만한 리조트호텔에는 저렇게 수영장이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찍은 사진은 SNS 업로드용이 됩니다. 사진 잘 찍어 올리면 남들이 보기에 ‘쟤는 또 엄청 비싼 곳 가서 맛있는 거 먹나 보다’ 라고 만들 수 있거든요. 인생을 SNS 로 판단하실 필요 없습니다. 내 삶은 내 위주로 살면 되는거고, 남들과 비교할 필요도 전혀 없습니다.

불교국가인 태국이지만, 남쪽으로 가면 이슬람사원을 많이 볼 수 있고, 이슬람전통복장을 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건물의 구조나 형태가 북쪽과는 또 다릅니다.

어떤 지역을 가면 문화가 약간 ‘섞여있다’ 라는 느낌을 받는 곳이 있습니다. 태국남쪽도 약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홍콩을 가면 아시아문화와 유럽문화가 좀 섞여 있다는 느낌도 받고 20여년전 홍콩은 거리에 전세계에서 온 외국인들이 많아 거리의 느낌이 이국적이었죠. 반면 바로 그 옆 심천은 확실히 중국사람의 비율이 월등히 많구요.
싱가폴도 뭔가 문화도 그렇고 인종도 그렇도 좀 섞여있다 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단일민족의 자부심을 내세우는 교육을 하던 시기도 있었고, 지금도 외국인이나 외국문화에 대한 배척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걸로 알고 있는데… 이젠 그렇게 살기엔 세상이 너무 바뀌지 않았나요?

뭔가 ‘창조의 기둥’ 같아서 찍어 본 푸켓의 하늘입니다.

푸켓의 해변도로인데요. 막 사고가 났습니다. 태국은 우핸들이니 저 앞의 승용차가 중앙선침범을 했네요. 저 녹색번호판이 렌트카로 알고 있는데… 제주도도 그렇게 교통사고가 많이 난다고 하죠. 외지에서 렌트한 운전자들 때문에.
만약 저 승용차가 추월을 시도했다고 한다면 –> 실선중앙선에 커브구간이죠. 저기서 추월을 한다는 건 기본 운전상식이 없다고 밖에.
만약 저 승용차가 커브길을 과속하다가 중앙선을 넘었다고 한다면 –> 운전기술이 없는 초보일수도 있겠죠. 이전에 어떤 차량은 고속도로 빠져나가는 램프 회전구간에서 속도를 못 줄이고 벽을 들이 받던데요.

최근에 아는 지인 2명이 각각 독일과 태국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했는데요. 거의 같은 시기에 운전면허를 취득했는데, 독일은 시간이 엄청 걸리고 엄청 힘들더군요. 반면 태국은 학원 등록한게 엊그제 같은데, 주말에 몇 번 가더니만 (기억에는) 학원 두세번 가고 면허증 받아 오더군요.

한국도 운전면허취득 간소화 정책으로 인해 한 때는 중국에서도 한국으로 면허증 따러 오는 그런 상황이 있었는데, 운전면허취득을 경제적인 정책을 위해 간소화 하는건 참 어이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내 가족이 저런 차량에 사고를 당해봐야 알겠죠.

당시 코로나가 점차 완화되는 시기였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끼고 있던 시기임에도 여기는 마스크를 끼지 않은 서양인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유흥을 그다지 즐기지 않아서 거리 구경만 했는데, 유흥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이런 곳은 천국이겠더군요. 여기 사람들 복장이 꽤나 선정적이던데, 의외로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온 사람들도 많아 살짝 놀랐습니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푸켓은 휴양도시로서 혹은 단기로 살아보기에는 좋은 선택지인 것 같았습니다. 외국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거의 다 구비가 되어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외국인들이 단기로 생활할 때 필요한 상업적인 공급이 충분해 보였습니다.

제가 묵었던 호텔에서 본 풍경입니다. 푸켓이야기는 다음편에 계속 해 보겠습니다.
방콕에서 푸켓까지 차량으로 900Km 이상 이틀간 이동을 하면서 참 많은 것들을 봤습니다. 여기 사진으로는 몇 장 이지만 사진에 담지 못 한 것들이 더 많거든요. 태국에서 살고 있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자동차여행도 추천해 봅니다.

태국 남쪽 푸켓 자동차로 가 보셨어요?

이 앞 글 ‘후아힌해변’ 이야기 나온김에 태국남쪽 자동차여행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태국은 방콕을 중심으로 동남쪽 해변 파타야쪽이 있고, 서남쪽 후아힌, 푸켓쪽이 있습니다. 푸켓이야 워낙 유명한 해변이고 가보니 왜 서양인들이 거기서 장기투숙하며 머무는지 알겠더군요. 그냥 한달정도 방 구해서 쉬고 놀고 먹고 하기에 딱 좋았습니다.
지도에서 보면 태국서남쪽 저렇게 길게 생긴 지형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지도로 보면 ‘좀 기네’ 싶은데 막상 차로 달려보니 장난아니더군요. 구글타임라인으로 확인을 해 보니 첫날은 11시간동안 623Km를 달렸습니다.

이른 아침에 출발했는데, 오후가 되어서야 미얀마의 거의 최남단지역 국경까지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는 바다건너 미얀마의 최남단 국토를 볼 수 있습니다.

끄라부리강 을 경계로 이쪽은 태국, 저쪽은 미얀마 그렇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월경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가까운 곳은 위의 사진처럼 가깝습니다.

우리 일행은 작은 언덕위의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풍경을 보았습니다. 마침 해가 떨어지고 있어 미얀마쪽의 석양이 아름답습니다.

언덕위에 몇몇 차량과 오토바이가 있습니다. 올라오는 도로가 너무나 협소하더군요. 운전이 조금 서툰 사람들에게는 올라오기가 다소 어려울 수도 있었습니다.

여기 서남쪽도로는 고속도로도 아니라 속도를 많이 낼 수도 없고, 풍경들이 좋아서 그냥 감상하며 운전한다 생각하고 왔습니다. 비행기라는 더 싸고 더 편리한 교통수단이 있지만, 태국에 살고 있는 동안 구석구석 차로 직접 둘러 보고 싶었습니다.
중국서쪽 여행할 때도, 그 여행지가 좀 더 감동적인 이유는 현지에서의 이동이 쉽지 않기 때문이고, 유명관광지 위주로 포인트 포인트 로 둘러 볼 수도 있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면 의외의 장관도 볼 수 있습니다.

운전을 하다가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경로를 잠시 벗어나 둘러 봅니다. 위의 이 작은 마을도 인상깊더군요.
2000년도 중국운남성 리장에서 샹그리라 라는 지역을 갈 때 시골 작은 승합차가 도로에서 몇 번을 이상이 생겨 멈춰 수리하고 달리기를 반복해서 샹그리라 라는 지역에 도착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비포장도로가 많아서 그 작은 승합버스가 엄청 힘들었는데, 그것도 추억이었고, 현지인들과 서양관광객들이 같은 버스에 오래 있으니 은근 정도 들고…
그러다 샹그리라 거의 다 와서 화장실 간다고 차를 세웠는데, 그 때까지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지저분한 분뇨가 화장실 입구까지 가득차 있는 도로변 화장실도 기억에 남고, 그 당시 거기서 보았던 풍경이 23년이 지난 지금도 머리에 남아 있습니다.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수상가옥에서 살고 있는 현지인 여자분께서 아기를 안고 저희에게 수상가옥 구경을 시켜 주는 모습입니다.
제가 운남성은 세 번 여행을 했었는데요. 그 중 한번은 메리설산梅里雪山 이 있는 더치엔德欽 이라는 지역을 한 적이 있는데, 최근에 제가 자주 보는 세계테마기행에서 그 곳을 소개해 주더군요. 거기 내용중에도 보면 도로공사로 인해서 8시간 걸릴 거리를 돌아서 16시간만에 갔다는 에피소드가 나왔습니다.(영상보기) 일단 저런 곳은 저렇게 고생스런 이동을 해 보다보면 도착지의 풍경이 더 아름답습니다.

수상가옥에서 바로 주차장, 선착장으로 내려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살면 주차문제는 없겠네요.

함께간 친구들은 태국북쪽 시골사람이라 여기 남쪽여행이 재밌었다고 하더군요. 태국도 땅이 넓은 나라이고 북쪽과 남쪽은 또 다릅니다.
얼마전에 베트남사람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호치민과 하노이는 완전히 다르다면서 제가 하노이만 가 보았다고 하니 호치민 꼭 여행가 보라면서 하노이와는 또 다르다 라고 하더라구요.

가정집을 개조해서 식당으로 운영을 하고 있더군요. 장거리 이동중 잠시 쉴 겸해서 이런 도로변 식당을 이용합니다.

작은 규모의 카페가 도로변에 있어서 커피도 한잔 마시며 쉬어 갑니다. 1인카페로는 손색이 없습니다.

어차피 시골지역이라 땅은 넓고, 저렇게 간단히 건물을 지어 올려 카페로 운영을 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느낀건 ‘땅’ ‘위치’ ‘지리적 조건’ 이런 것이 엄청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총균쇠’ 를 읽기 전부터 저는 인생경험을 통해서 땅, 위치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땅이 있으면 인생의 운신폭이 넓어 집니다. 조상님들이 세상 막 혼란스러울때 땅 한조각 이라도 어떻게 잘 확보했으면 후손들이 두고두고 잘 살 수 있을 터전이 될 텐데 말이죠. 하지만 역사를 보더라도 그런게 쉽지 않죠. 지금도 쉽지 않지만 그 때도 쉽지 않았습니다.

첫째날, 623Km를 달려 도착한 도시입니다. 이 작은 도시도 뭔가 느낌이 있었습니다. 일단 가로등이 길의 중앙부에 전선에 매달려 있습니다. 가끔 영화속에서나 보던 그런 형태의 가로등이잖아요.

태국친구들이 예약을 한 호텔도 이름이 Mansion 이고 주변풍경과 건물형태 로비 등이 뭔가 추리소설에서나 나올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특히 저렇게 베란다를 통해 옆 방으로 이동할 수 있는 저런 호텔에서 사건사고가 많이 나는 걸 여러 추리영화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어둠침침한 마을도로를 조금 이동하자 현대식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태국친구들이 인터넷을 보고 찾은 건데요. 통상 대도시의 경우 이런 중심가가 대체로는 밝은 편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가로등이 충분하지 않아 번화가라고 해도 많이 어둡습니다. 이런 큰 레스토랑이 있는 번화가거리임에도 건물의 벽면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습니다.

가로등이 도로의 중앙쪽에 하나만 있다보니 도로만 밝고 인도나 건물쪽은 어두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느낌 좋아하시면 한 번 가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실제로 보시면 아마도 ‘영화속 배경’ 이라는 느낌이 들겁니다.

우리가 갔었던 식당입니다. 독특한 느낌의 건물에 인테리어도 좋았습니다.

내부가 터인 2층 구조의 식당입니다.

최근 저의 대만지인들중에 50이 넘어서는 장거리운전하기 싫어하는 남자분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타이베이에서 저의 아내 친구부부가 저희 카페에 겸사겸사해서 오는데, 남편이 장거리 운전하기 싫다고 대중교통으로 여기까지 온다고 하더군요. 저 부부 말고도 최근에 저희 카페 개업축하하러 온 부부들 중에 남자분들이 장거리 운전 너무 힘들어해서 여기까지 오는데 부담을 많이 느꼈다고 했습니다. 타이베이에서 약 3시간 거리입니다.

저 때 방콕에서 푸켓까지 이틀에 거쳐 운전해서 갔었는데, 저는 아직까지는 운전하면서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다. 특히 태국에서는 없습니다. 가끔 한국수도권에서 운전할 때는 좀 힘듭니다. 차가 너무 막히니까요.

장거리운전하면서 아쉬운점이 있다면 누군가 운전을 해 주면 저런 스쳐가는 풍경도 조금 자세히 볼 수 있다는 거죠. 저기 폐비행기가 보입니다.

당연히 장거리여행할 때 함께 운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저렇게 잠도 잘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뒷좌석에서 안전벨트 잘 안 매는데, 저는 제가 운전하는 차량에서는 꼭 뒷좌석에서도 안전벨트를 매라고 합니다. 물론 한두번 이야기를 했는데 그 뒤로 안 매면 그냥 둡니다.

동네주민이 아이와 마실나와 원숭이를 구경하는 모습입니다. 해질무렵 아이 손잡고 나와 원숭이를 볼 수 있는 환경이라…

오토바이를 타고 나와 강변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현지 청춘남녀 입니다.

어디서인가 배를 타고 이동을 하는 현지 청년들이 보입니다. 해가 지고 있는걸 봐서는 아마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데요. 이 지역은 수상가옥들이 많은 마을이라 마을간 이동때 차량보다는 배가 더 빠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문 사진에도 보시면 수상가옥에서 바로 선착장으로 내려갈 수 있거든요. 자전거 오토바이 타듯이 배를 탑니다.

태국 푸켓까지 보통은 비행기로 여행을 하고, 실제로 방콕에서 비행기로 이동을 하는 것이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 보다 더 저렴합니다. 그럼에도 태국에 사는 동안 차도 있고 시간도 있으니 자동차로 구석구석 돌아 보고 싶었고, 저의 여행스타일에도 맞아 자동차로 가 보았습니다. 계속 운전을 하느라 사진에 많이 담을 수는 없었지만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도 많았고, 태국북부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여행1일차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태국 어느 어촌의 오래된 마을 모습

각 지역이나 마을을 가 보면 오래전에 형성된 구역이 있고, 최근에 형성이 된 구역이 있습니다. 한국의 좋은 예는 서울 종로를 위시한 그 주변 4대문은 구도심이고, 강남 압구정 이런 쪽은 신도심 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각 지역을 다녀보다 보면 대체로, 기차역 혹은 버스터미널이 있는 지역은 구도심으로 오래전부터 마을이 형성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지역 정부는 이렇게 이 구역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 어느 어르신이 신문을 읽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최근 종이신문을 읽는 사람 찾기가 쉽지 않아 졌습니다.

유명관광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외지의 사람들이 찾아 오는 곳이라 관광객들을 위한 안내소도 있고, 카페, 레스토랑 등도 있었습니다. 당시 코로나기간이라서인지 혹은 비가 내려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았습니다.

연의 열매에 앉아 있는 고양이 입니다.

개인이 운영을 하는 곳인지 시에서 운영을 하는 곳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렇게 오래된 물건들을 모아두고 전시해 둔 곳이 있었습니다.

짧게는 40~50년, 길게는 대략 100년전 물건들인 듯 한데, 보존을 좀 더 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태국을 돌아다니다보니 이런 물건들이 종종 보이긴 하더군요.

이전 한국 시골에도 이런 물건들이 많이 있었는데, 일단 한국은 전쟁을 한 번 겪으면서 이런 물건들의 유실, 소실이 많이 되기도 했고, 이런것들만 전문적으로 돌아다니며 사모으는 업자들이 많이 수거해 갔다고 하더군요. 당시 가난하다보니 당장 돈과 식량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물건들을 장기적으로 보존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거겠죠.

태국 여행하시면 이런 오래된 물건들 보시면서 당시에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나 되짚어 보시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것 같습니다. 물건들 자세히 보시면 태국도 중화권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중국쪽 느낌이 나는 물건들이 꽤 있습니다.
아유타야에 가보시면 (대략)500여년전부터 이미 일본인들이 들어와 형성된 마을이 있을 정도로 일본쪽 문화도 오래전부터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 사용하던 가구들을 그대로 보존해 두었습니다. 가끔 100~200년 전의 근대배경 영화속에서 보던 모습입니다.

이런 가방들 영화에서나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배경영화 하면 ‘연인 The lover’ 가 먼저 떠 오릅니다. 딱, 영화 연인 에서 볼 수 있을 듯한 가방입니다.

이런 건물들이 잘 보존이 되지 않는 이유는, 이런 목조 건물들은 ‘상업적 가치’ 가 별로 없거든요. 쉽게 말하면 건축물의 가치는 별로 되지 않고, 주로 땅값이 비쌉니다. 그러다보니 땅 사서 건물 신축으로 올려 장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이런 건축물들은 잘 보존이 안 되는거죠.

이런 건물의 가치를 정부에서 보존해 줘서 지원금을 주지 않으면 집주인으로서는 그냥 새롭게 지어 올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집주인 입장에서 보면요…
올해초, 영국에 살고 있는 영국친구의 집 유리창이 깨어 졌습니다. 그런데도 개인이 함부로 유리를 바꿀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 지역 건축물들이 정부의 관리하에 있어서 외관을 바꿀때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해서 유리창 하나도 함부로 바꾸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저렇게 하니까 유럽에 가면 100년 넘은 건물들이 아직도 잘 건사되고 있는거죠.

벽에 있는 그림들로 당시 생활상을 엿 볼 수도 있습니다. 저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는 저 모습은 화가가 사진을 보고 그린걸까요? 아님 그냥 저런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걸가요?
일단 저는 적어도 사진같은 걸 보고 그렸다에 100원 걸어 봅니다. 왜냐하면요.
저 우물도르래 부분… 밧줄이 감겨 있는 저 부분이 원통형으로 되어 있죠. 저렇게 되어 있어야 줄이 바깥쪽으로 벗어 나지 않거든요. 저런건 실제로 경험이 없거나, 실제 우물의 저런 도르래 사진을 보지 않고서는 저렇게 저 부분을 원통형으로 그리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적어도 우물도르래를 사용해 보지 않은 세대라면요.

저 날 보았던 인상적인 벽화인데요.

테이블이 하나 있는 테이크아웃 위주의 카페인 듯 합니다. 말씀드렸듯이 태국에도 중화권 문화가 많이 있어서 여기는 중국본토에서 ‘물리적으로’ 꽤 떨어진 태국임에도 커피점咖啡店 이라는 한자가 적혀 있습니다.
제가 지금 대만시골지역에서 작은 카페를 하고 있지만, 저런 작은 카페 하나 열어서 동네사람들과 이야기나 나누며 적당히 먹고 살 정도만 되면 저런 카페의 사장이 되어 인생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생각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그 꿈을 소박하게나마 이루어서 작은 카페하면서 오시는 손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 많이 나누고 있습니다. 시골지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한국사람이라 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시려는 손님들이 많아 재미있습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압권이었던 카페는 바로 위의 카페였습니다. 저는 카페의 조건중에 커피의 맛 보다는 ‘멋진풍경’ 이나 ‘아름다운 자연’ 을 더 위에 두거든요. 그 중에서도 이런 ‘나무’는 일부러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한두달만에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나무와 건물이 하나가 되어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건물 앞이나 위에 이런 멋진 나무가 있는 건 축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건물의 벽을 따라 자란 나무가 하나 있으면 비싼 아웃테리어 부럽지 않습니다.

대체로 이런 큰 수목은 지역 사람들에게 신성시 되는 대상이죠. 음식을 나무에게 바치는 모습입니다.

꽃을 물 위에 띄워둔 저 장식도 눈길이 한 번 더 갔습니다.
아무튼 도심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그런 풍경의 카페와 레스토랑입니다.

오래된 느낌이 나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전형적인 태국 시골마을의 하천변 건물 입니다. 비가 내린 오전이라 날씨도 선선해서 이런 야외식당에서 앉아 식사를 하니 참 좋았습니다. 저기 반대편에

누군가 낚시를 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아주 바쁜 사람은 아닌데, 이런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가끔은 여유롭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동시에,
뱀은 없는가?
물고기가 잡히긴 잡히는가?
도대체 이런 하천에서 잡은 물고기는 먹으려고 잡는건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긴 합니다.

식사후 동네의 어느 카페에서 커피한잔을 마셨습니다. 저는 늘 마음속에 언젠가는 월급쟁이를 그만두고 자영업을 한다는 준비를 하고 있어서 이런 곳들을 다닐때도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눈여겨 보았습니다. 지금 제가 딱 이 정도 규모의 카페를 운영하고 있네요.

유튜브 같은 곳에 보면 ‘카페 이렇게 하면 망한다’ ‘식당 성공을 위한 3가지 필수 비법’ ‘여러분은 절대 카페 하지 마세요’ 이런류의 영상들을 보실텐데요.
그중 이해가 안 되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어차피 그런 영상들 중 많은 영상들은 조회수를 위한 자극적인 제목을 뽑은 것들이거든요. 하지만 많은 영상들 중에 ‘절대 카페 창업하지 말라’ 고 하는 유튜브가 많은데, 내용을 보면 카페 너무 힘들다, 경쟁이 너무 심하다 이런 내용들인데…
세상 살다 보면 경쟁이 없는 업종도 적고, 직장인을 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흡사 카페사장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것처럼 묘사한 유튜브들 있는데, 어느 업종을 해도 힘들고, 직장인을 해도 힘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저 곳을 여행할 때만 해도 저런 식으로 1층에 가게 2층에 주거공간인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라고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지금은 대만에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카페가 이쁘긴 한데, 제 스타일은 아닙니다. 저는 조금 간결한걸 좋아해서 물건 많이 두는걸 별로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작은 마을인데, 소소하게 걸어다니는 재미가 있는 곳입니다. 이런 곳은 그냥 걸어다니면서 그 곳의 독특한 풍경들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좀 낡았으면 낡은대로, 좀 지저분하면 지저분한대로…
그런게 인생이더군요.
많이들 아시겠지만 저 복福 을 거꾸로 적어 두거나, 붙여 둔 곳들이 많은데요. 그건 복이 들어오라倒는 의미로 거꾸로 붙여 놓은 것이며 倒福 입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마을 전체에 이 복福 을 많이 사용하고 있더군요. 여기는 병음표시와 함께 2성이라는 성조까지 적어 두었습니다.

복을 기원하는 중화권문화를 느껴 볼 수 있는 태국 어느 오래된 시골마을이었습니다.

곳곳에 보면 성씨별 종친회가 있는데, 이젠 이런건 유명무실한 것이겠죠? 제가 어릴때 수천번은 ‘밀양박씨 ###종파 몇 대 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지만 도대체 그 종파는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지, 과연 실체는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번도 저의 성씨 종친회와 연관되어 본 적이 없습니다.

태국 해변마을의 낭만적인 풍경

오늘 23년 6월 17일 오전, 제가 살고 있는 곳은 비가 내립니다. 최근에는 거의 매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겨울철에 처음 왔을때는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조금 힘들었는데, 여름이 다가올 수록 비가 내리는 횟수도 많고, 최근에는 거의 매일 구름이 가득한 날씨입니다. (제가 이런 날씨를 좋아합니다)
여기 지명이 雲林 구름과 숲 이듯이 구름이 많은 건 어쩌면 오래전부터 지형적으로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실제로 지형적으로 어떤 지형은 구름이 많고, 어떤 지형은 구름이 적은 곳들이 있기도 합니다. 바다와 산이 있으면 산의 한쪽은 비가 내리지 않는데, 습기가 많은 공기가 산을 넘어 가면서 반대편에는 지속적으로 구름을 형성하고 이슬을 맺히게 하며 비를 뿌리는 그런 지형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막지역에는 그런 이슬을 먹고 사는 동물들도 있죠.

태국 어느 해변의 호텔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호텔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멋있더군요. 구름, 안개가 꽉 낀 상태에서 비가 내리는 바다의 풍경이 멋있었습니다. 이런 구름이 많은 풍경을 보고 운치雲致있다 고 합니다. 원래 운치있다 라는 표현이 구름이 많은 풍경을 보고 나온 단어 이거든요.

아닙니다. 인터넷상에서 잘못된 정보나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이유죠.

운치의 한자는 韻致 입니다.

우리가 풍경을 “시각적”으로 보고 운치있다 라는 표현을 쓰지만, 운韻 의 한자는 ‘소리’音 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원을 찾아 보니 입으로 어떤 물체를 불어 나오는 소리 라고 하네요.

호텔 맞은편 건물인데, 건물 가운데, 큰 나무 두 그루를 심어 두었습니다. 건물주가 대단한 희생?이네요. 한국의 건물들이 직사각형 상자처럼 만드는 이유도 최소한의 공간으로 최대한 돈을 벌기 위해서인데요.

비가 조금 그친 뒤의 풍경도 아름답습니다.

비가 조금 그치자 하천길따라 걷는 사람들도 보이고

이른 아침이지만 나와서 해변을 즐기는 모습도 보입니다.

작은 배를 타고 나가는 사람도 보이고,

이른 아침부터 낚시를 하는 사람도 보입니다.

호텔수영장에서 벌써부터 수영을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뭐 이런 곳에 왔으면 부대시설도 많이 이용해 봐야죠

아침의 고요한 모습과는 달리 밤에는 많은 사람들이 낭만적으로 식사를 하는 해변입니다.

해변을 따라 많은 식당들이 이렇게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태국에 왔으니 이런곳에서 저녁을 먹어 줘야죠.

가끔 여행와서 이번 바닷가 야외에서 식사하고 앉아 있으면 정말 좋습니다. 이런 곳에 한두달 방 빌려서 지내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죠. 저의 지인도 이번주에 태국으로 두달? 정도 머무는 일정으로 도착을 하는데요. 저도 가끔은 이런 곳에 장기로 방 빌려서 두세달 정도 머물면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최근에 저의 유럽지인커플이 푸켓에서 그렇게 몇달 지내고 돌아갔는데요. 실제로 푸켓가서 보니 그렇게 한두달 지낼만 하겠더군요.

그날 먹은 저녁입니다. 이런 곳에 왔으니 해산물을 많이 먹어줘야 합니다. 해산물 좋아하는데, 일본이 바다에 오염수 방류하겠다니…

해변식당의 주방입니다. 뭔가 정겹습니다.

혼자와서 음식을 주문하고 혼자서 뭔가를 읽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 주민이 굳이 이런 비싼 자리세 내가며 식사를 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고, 혼자 여행을 오신 분인듯 합니다. 혼자여행도 좋긴한데, 가끔은 불편하고 외로울때도 있습니다. 이전에 유럽갔을때, 멋진 풍경이 있는 관광지를 갔었는데, 좁은 도로를 우연히 한국여성분과 함께 걷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성분께서 저에게 혼자여행오니 외롭고 심심하고 불편하다 라며 불평을 늘어 놓으시더군요. 그 곳 풍경이 혼자서 보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거든요.

다음엔 이 해변어촌마을에 오래된 주택가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이전에 형성된 마을인데 건물들이 이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지역정부에서도 보존을 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여기는 이전에 형성이 된 마을이라는 걸 짐작하게 해 주는 부분이 도로가 차 2대가 동시에 지나기엔 좁습니다. 그 뜻은 이전에 이렇게 집들이 이 정도 좁은 도로가 충분했던 시절에 형성이 되었다는 뜻이죠. 그러다 이제 차들이 지나다니니 중앙선은 그어야겠고, 긋다보니 차 2대가 지나기에는 폭이 좁습니다. 이런 도로는 보통 일.방.통.행. 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는데요.

한적한 이른 아침 태국 어느 어촌마을 풍경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아침 어촌마을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휴양지 바다의 이면에는 이런 어촌의 풍경도 있습니다.

크지 않은 작은 어촌마을입니다. 바다와 바다사이에 마을을 잇는 좁은 다리가 있습니다. 아직 가로등이 미쳐 꺼지지 않은 오전인데요.

일부 배들은 출항준비를, 일부 배들은 정박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모두 작은 어선들 위주더군요. 여기 항구가 수심이 그다지 깊지가 않았습니다.

이 배는 출항을 위해서 얼음을 싣고 있더군요.

얼음을 배로 넣고 있는 모습입니다. 가끔 동남아에서 얼음이나 물 조심하라고 하는 이유는 저런 비식용 얼음을 음료에 넣어서 사용하는 곳들이 있거든요. 비식용 얼음은 싸니까요.
저도 저의 카페에서 사용하는 얼음을 외부에서 구입해서 사용합니다.

저는 재료는 다 믿을만한 업체에서 구입을 하고, 아주 저가 혹은 싸구려 재료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제가 중국/태국 이런 곳에서 생활하면서 위생에 대한 개념에 눈을 뜨기 시작한 이후로는 재료들은 다 믿을만한 업체에서 구입을 합니다. 저희 얼음업체도 정부에서 정기검사를 받는 업체의 얼음을 사용합니다. 저도 거의 매일 저 얼음을 먹으니까요.

저 배는 만재흘수선 까지 내려와 있는 것으로 봐서 생선을 잡고 귀항하는 것 같습니다.

재밌는건 만재흘수선 이라는 단어는 대학교 전공때 엄청 많이 들었던 이야기인데요. 그 당시에는 저런 단어의 한자뜻을 가르쳐주는 교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 교수들도 이공계열이다 보니 한자에는 별로 관심이 없거나 한자를 잘 모르거나 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처럼 이공계, 어문계를 모두 섭렵한 사람에게는 저런 단어도 흥미롭습니다. 저는 단어를 보면 한자를 꼭 보거든요. 滿載吃水綫 만재흘수선,

만재滿載의 뜻은 아실 것 같고 흘수吃水 의 吃는 중국어를 하시는 분이라면 기본단어 중의 기본단어인데요. 먹다 라는 뜻도 있지만 물에 잠기다 라는 뜻도 있습니다.

잡아온 수산물은 이런 현장에서 경매로 해서 도소매상에게 판매를 하구요.

저기 수산물과 저울이 나타내는 뜻은 바가지를 씌우지 않고 정확하게 판매하겠다는 그런 뜻인가요? 최근 한국의 소래포구는 해마다 바가지요금으로 올해도 뭐 자정작업을 하겠다고 하던데. 평소 얼마나 바가지를 씌웠으면 스스로 ‘올해는 바가지를 씌우지 않겠습니다’ 라고 호소를 하나요?

작은 어촌마을이라 도로도 한적합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대만의 시골마을도 딱 저렇게 한산합니다.

오토바이에 많은 짐을 싣고 이동을 하는 모습입니다.

오늘은 태국의 어느 한적한 해변 어촌풍경을 소개해 보았습니다. 다음엔 이 해변의 낭만적인 풍경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태국 수코타이 야경 및 현지가정집 방문기

유명관광지이다 보니 밤에도 등으로 장식을 잘 해 놓고 각종 행사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저 날이 1월 1일 이어서 더 특별하게 행사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호수가에 앉아서 음식을 나눠 먹으며 야경을 즐기고 있습니다. 저기 호수위에서 밴드들이 공연도 해서 더 운치가 있었습니다.

그 옆 절에서는 등불도 많이 걸어 야경을 더 아름답게 해 주고 있었습니다.

등불과 불상 뒤로 탑이 웅장하게 서 있네요.

분위기가 특별합니다. 저렇게만 놓고 보면 무슨 영화의 배경화면 같은 느낌도 듭니다.

수코타이가 한국의 경주같은 그런 이전왕국의 수도인데요. 도시전체가 잘 보존이 되어 있었습니다. 도시 외곽에도 볼 거리가 많고, 아직 도시전체를 감싸고 있는 성곽터도 남아 있었으며, 이전에 도자기를 여기서 많이 구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면 도자기 가마터도 남아 있습니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밤에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좀 몰려있는 식당을 찾아 조식을 먹었습니다.

스트라이다를 타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있는데, 마침 주변을 지나는 한 아주머니께서 자기집에 가서 밥 먹고 가라고 하시더군요.

저 강아지마냥 좋다고 냉큼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저 대나무로 된 다리를 건너 숲으로 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뭔가 공포스럽습니다. 공포영화보면 꼭 저런 곳 따라 들어가서 각종 사건들이 펼쳐지는데요. 제가 기대하던 바입니다. 그래서 냉큼 따라 들어가보았습니다.

숲을 빠져 나오자 이 아주머니 집에서 키우는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숲 속에 이런 집이 한 채 있었고, 12월 31일 밤 늦게까지 사람들끼리 모여서 음식과 술을 마셨다고 하더군요. 딱 보니까 그 흔적이 보였습니다.

축제용 데코장식과 밤새 먹고 미처 치우지 않은 술병, 음식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숯불구이도 해 먹었다는 걸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집주변 하천옆에 저렇게 주방이 있고 점심을 준비하시네요. 하천에 큰 물고기가 보입니다. 쟤네들이 가끔 식재료가 된다고…

식사가 나오기전 수박을 먹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사진을 보니 제가 저때도 플립을 사용중이었네요. 근데 이 놈의 플립은 액정보호지가 계속 일어나서 액정은 문제가 없다고 하나 액정보호지가 늘 일어난 상태가 실질적으로는 늘 중간에 선이 보이는 상태입니다.
한국에 갔을때 삼성서비스센터 가서 액정보호지를 교체했는데, 붙이고 얼마나 보증을 해 주냐 물어보니 일주일이라고… 일주일 지나서 액정보호지 들뜨면 소비자가 부담하고 교체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더군다나 여기 제가 살고 있는 대만중부도시는 삼성서비스센터도 없어서 큰 도시 나갈때 교체를 해야 합니다.

점심을 정말 잘 먹었습니다. 저는 운이 좋은건지 이런 곳에 낯선 사람 따라 오면 뭔가 ‘유튜브각’ 나오는 사건사고가 나지 않고 이렇게 융숭한 대접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국에서 어딜가면 사건사고 보다는 좋은 대접을 받았던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런 시골집은 이런게 좋습니다. 일단 부지도 넓고 사람들 모여서 뭘 하기도 좋구요.

뭔가 대형스피커로 노래도 불렀던 모습인데요. 저도 빌라,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이번 대만에서 단독3층주택에 살다보니 좋은게 층간소음 이런거 신경쓸 일도 없고 밤 12시에 세탁기나 청소기를 돌려도 아래위 피해를 줄 일이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오랜 습관때문인지 아내가 밤 12시 가까이 되어 갑자기 청소기를 돌리면 순간 나도 모르게 ‘이거 뭐 하는 짓이지?’ 라고 긴장했다가 곧 여기 단독주택이지 라고 생각을 하며 안심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심의 빌라에서의 삶은 이제 못 할 것 같습니다. 주차문제로 늘 신경쓰는 것도 그렇고 층간소음, 쓰레기문제 등등…

작은 도시/마을인데 도시전체가 이런 식으로 녹지가 잘 형성되어 있고, 볼거리도 많았습니다. 좀 느리게 여유롭게 자전거로 구경하기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태국 중부지역 왕조수도 수코타이 여행

수코타이는 이전 태국의 수도였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경주같은 그런 여행지인데요. 엄밀히 말을 하면 수코타이는 한국의 고려시대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태국의 시암왕조가 조선시대라고 하면 그 이전 고려시대와 비슷한 시기에 수코타이왕조가 존재를 했었거든요. 갈 수만 있으면 개경과 같은 그런 역사적인 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 수도답게 수코타이 전체에 많은 유적지가 있고, 그 중에서도 절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넓은 지역인만큼 한 번 방문으로 많은 곳을 깊이 있게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여기 자전거로 여행하면 더 좋다고 하여 미리 스트라이다를 가지고 갔었습니다.

저 날이 1월 1일 아침이라 이래저래 의미가 있었습니다.

오토바이에 긴 칼을 장착해 놓았네요.

자전거를 타고 입장할 수 있는 공원이라, 공원 외부에 자전거대여소가 많으니 그냥 대여하셔도 됩니다.

여기 혼자서 가보고 좋아서 그 뒤에 아버지와 아내를 데리고 한 번 더 방문을 했었습니다. 그 때는 외부에서 자전거를 대여해서 탔는데요. 이런 곳에서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면 누구나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습니다.

보존과 관리가 잘 되어 있고, 탁 트인 공간이 여유로웠습니다.

불상을 바라보고 있는 두 남자의 모습입니다.

이런 건축물들이 아주 많습니다. 단기여행으로 오게 되면 아무래도 늘 일정에 쫓기니까 이런 곳에 오더라도 전체를 둘러보는 정도로 머물다 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아무래도 현지에 살다보니 제가 살았던 아유타야도 그렇고 세부적인 부분을 자세히 보게되는 여유가 있습니다.

어떤 조각들은 파손된채, 어떤 조각들은 후대에 수리를 한 것들도 있습니다. 이런 조각상 하나하나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저는 이런 곳 오면 건축물도 건축물이지만, 이런 나무들을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건축물이야 후대 사람들이 수리하며 이전것처럼 만들 수 있지만, 이런 나무들은 후대사람들이 수리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태국에는 머리가 없는 불상이 많이 보이는데요. 이전 전쟁때 적국들이 침략해서 파손을 해서 그렇다고 하며, 지금도 태국에서는 불상의 머리를 매매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들었습니다.

건축물과 나무의 조화로운 풍경이 이국적입니다.

불상을 향해 기도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한국 관광객들이 대체로 방콕과 치앙마이 쪽으로 많이 가니까 여기 수코타이는 한국단기관광객들이 그렇게 많이 찾는 곳은 아니지만 꽤 괜찮은 여행지입니다.

한적하게 여행하기 좋았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런 곳에서도 한 번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제가 거주를 했었던 아유타야와 다른 형태의 건축물이 바로 위의 사진과 같은 불상의 형태더군요. 아유타야에서는 이런 형태로 된 불상이 없는데, 수코타이의 불상들 중에는 이런 식으로 된, 건물 사이에 불상이 들어 있는 형태가 많이 보이더군요.

다음엔 아름다운 수코타이의 야경풍경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동남아시아에 살았던 인류들이 대만섬의 원주민들이 건너가서 자리를 잡은 것이라는 거죠. 대만섬은 의외로 오래전부터 원시인류들이 살고 있었고, 그 영역을 지금의 동남아시아로 확장해 나갔다고 하는데, 그 시대의 항해기술로 어떻게 그 먼 곳까지 갔는지 놀랍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