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주택가 골목길 풍경

태국의 어느 주택가 골목길을 걷다보니 이런 차가 보이더군요. 뮤직비디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폭스바겐 승합차 인데요. 거기에 서핑보드가 올려져 있었습니다. 제가 한번쯤 배워 보고 싶은 것이 서핑인데요. 그래서 가끔 유튜브의 서핑하는 모습들을 보며 힐링을 하곤 합니다. 어떨때는 비오는 산에서 캠핑하는 영상을 보면서 대리만족 하고 힐링 할 때도 있고, 한때는 서핑하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힐링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저는 저런 서핑이나 차량을 이용한 차박 등의 취미를 할 때도 ‘이동시간’ 이 너무 길면 별로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서울기준으로 봤을때, 야외 한 번 나가려면 주말오전  차 엄청 막히고 일요일 오후/저녁 돌아오는 길 엄청 막히고… 그러다보면 취미가 고생이 되어 버립니다.

제가 대만에서 카페를 차리고 거주지를 고려했을때, 바다와 산의 접근성을 조금은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대만 중부 지역 지방도시에 카페를 차렸는데요. 카페를 차리면 자주 수상스포츠를 즐길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는데, 막상 그것도 혼자 하려니까 바다까지 잘 안 나가게 되더군요.

그런데 저의 대만지인(카페 인근 대학생)의 경우는 정말 수시로 스킨스쿠버를 다닙니다. 또, 다른 지인은 주기적으로 산에가서 캠핑도 하구요. 

원래 제가 저런 삶을 기획하고 대만지방도시로 왔는데, 막상 살다보니 그게 잘 안 되더군요. 카페를 하게 되면 중형개를 키워서 산에도 다니고 바다도 다니고 하는 것이 목표였거든요. 그런데 예상치 못 하게 고양이 두녀석이 들어와서 집사생활 하다보니 강아지도 포기하게 되었구요. 제가 즐겨 보는 캠핑 유튜버가 강아지랑 비오는 날 산에서 캠핑하는데, 그걸 보면서 늘 저런 삶을 살아 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무튼 태국의 어느 주택가에 저런 차가 있어서 딱 제가 대만 정착할 때 목표로 했던 모습이어서 소개해 봅니다. 

태국 어느 주택가에 또 저렇게 키 높은 미류나무? 혹은 그 종류의 나무가 있어서 찍어 보았습니다. 

강변따라 키 높은 미류나무가 쭉 늘어서 있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구요. 바람이 불면 미류나무의 잎사귀 뒷면이 은색이라 소리를 내면서 반짝이는 느낌이 납니다. 우리나라 동요에도 ‘흰구름이 미류나무 꼭대기에 걸려 있다’ 라는 가사가 있듯이 미류나무는 높은 키가 특징입니다. 

바람이 불 때 미류나무 아래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정말 편해집니다. 도시생활 하다 보면 이런 경험할 기회가 별로 없죠. 저는 최근에 원숭이도시로 알려지 롯부리의 어느 유적지를 갔다가 대형 미류나무가 바람과 함께 내는 소리를 감상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함께 갔던 일행들 모두 그 소리를 감상하며 잠시 시간을 함께 한 적이 있었거든요.  

전체가 나무로 된 집입니다. 

저는 외국에 살고 있지만, 특히 이런저런…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소소하게 여행을 다니는 걸 좋아해서 남들보다 더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거든요.  이제 살아 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분.명.히. (획기적인 의학기술이 노화를 연장시켜 주지 않는 한) 더 적게 남은 이상 더 많은 곳들을 천천히 돌아다녀 보면서 사람사는 모습 보다가 삶을 마무리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또 그런 주택가 골목길을 걷다가 주택가 골목길에 있는 허름한 현지인들의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도 했습니다. 

차이컬쳐를 얼핏 보는 사람들은 ‘이 운영자는 돈이 엄청 많나 보다. 해외여행 엄청 다니네’ 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해외에 살면서 그 나라에서 국.내.여.행. 을 사부작사부작 많이 다니는 것 뿐입니다. 내가 사는 곳 주변을 많이 돌아다니는 것도 조금은 노력과 부지런함이 필요하거든요.

아까 언급한 대만지인이 자주 스킨스쿠버 하러 다니듯이 이런 것도 내가 좋아해야 자주 다닐 수 있는거죠.

차이컬쳐 시즌1 때는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거든요. 그래서 사진의 느낌도 더 좋았고, 조금은 더 현장감이 전달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차이컬쳐 시즌2 때는 카메라로 사진 찍지도 않고, 지금 휴대폰이 저가형이라 사진의 결과물이 좀 아쉬워서 현장의 느낌이 잘 전달이 되지 않네요.

위의 사진도 현장에서 보면 뭔가 도로의 분위기가 색다른데, 휴대폰으로 저렇게 찍어 놓고 보니 ‘이거 왜 찍었지?’ 라는 느낌입니다. 

차이컬쳐 시즌1 때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다른 블로그 보다 더 차별화된 컨텐츠로 많은 사람들을 유입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면, 차이컬쳐 시즌2는 그냥 제 사진과 제 글, 그리고 차이컬쳐 를 잊지 않고 가끔 찾아 주시는 분들을 위해 글을 올리다 보니 카메라를 안 꺼낸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동영상용 카메라와 일반 DSLR 두 대가 있는데, 요즘엔 둘 다 무거워서 잘 안 들고 다니게 되더라구요. 또 휴대폰을 많이 하지 않으니 좋은 휴대폰도 필요 없고… 그런데 사진이 좀 아쉽긴 합니다. 

한국이었으면 영어교습 광고를 하면 미국국기를 사용했을 텐데요. 저도 한국을 떠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영국식 영어’를 사용하는 구나 혹은 ‘미국식 영어’ 가 아닌 영어를 사용하는구나 를 느꼈습니다. 한국에서만 살 때는 영어는 미국영어로만 배워야 ‘표준’ 인 걸로 생각했었거든요.  넓은 세상을 접하다보니 세상에는 미국영어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어 배우는 분들이 ‘북경표준어’ 배워야 하느냐고 물어 보는 것과 비슷하죠. 물론 교재가 중국북경중국어 위주니까 그렇게 배우겠지만 실제로 살아보면 정말 다양한 중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중국본토를 떠나니까 이제는 중국북경중국어를 접할 기회가 더 적구요.

한국사람을 만나더라도 다 서울표준어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서울쪽에 산다고 다 표.준.어. 를 사용 하는 것도 아니듯이. 언어는 스펙트럼이 정말 넓습니다.  

오늘 오후 집에서 찍은 사진인데요. 하늘의 색상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찍어 보았는데, 저가휴대폰 카메라라서 색상들이 다 뭉개져서 보이고 하늘의 색상도 제대로 표현이 안 되었네요. 휴대폰 많이 사용하지 않는데, 카메라 때문에 기변을 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제가 찍은 사진을 보니 갑자기 이전 사람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납득이 되긴 합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걸 보기 위해서는 꽤 상당한 높이를 올라가야 하거든요. 이전 사람들이 눈으로 직접 지구가 둥글다 라는 걸 알아 채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더 놀라운 건 막대기 만으로도 지구가 둥글다 라는 걸 증명한 사람도 있고, 그걸로 지구의 크기도 측정을 한 사람도 있죠. 

태국에서 본 쌩마늘 나오는 중국식 면요리 식당

중국에서 거주를 하셨거나, 중국 도시가 아닌 혹은 저렴한 식당을 좀 다닌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중국면 식당에 가면 저렇게 생마늘이 구비가 되어 있는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저도 중국 안 가본지가 꽤 되어서 지금도 저렇게 생마늘을 면요리 먹을 때 내어 주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큰 대도시가 아니라면 아직도 저렇게 생마늘을 내어 주는 식당이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현대식 식당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면요리 먹을때 생마늘 손에 들고 함께 베어 먹거든요. 그냥 이빨로 씹어서 면과 함께 먹습니다.  저도 중국에서 한창 살 때는 저렇게 먹었었죠.

이런 중국식 식당을 태국에서 본 것도 놀라운데, 또 저렇게 직접 손으로 면을 뽑고 있더군요. 실제로 중국에 있는 면요리 식당 가면 손으로 뽑는 곳들이 많습니다. 그 당시에는 기계보다 ‘인건비’가 싸다 라는 생각에 이상할 것이 없는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인건비도 비싸졌고, 면반죽기, 면발뽑는 기계 들도 잘 되어 있을 건데 말이죠.

근데 이전 중국에 있을땐, 거의 대부분을 중국현지인 들이 가는 그런 가격대의 식당들만 다녀서 저는 저런 경험이 많죠. 그 많은 경험들을 차이컬쳐 시즌1에 많이 올렸었는데, 지금은 다 사라져 버렸네요.

그런데 여기까지 글을 보시는 분중에, ‘나도 중국에서 면 식당에서 마늘 내어 준 거 본 적 있어’ 라고 하실 분 계실 텐데요.

가끔 중국 면요리 식당에서 시켜 먹던 涼拌牛肉 도 있길래 냉큼 시켜 먹어 보았습니다.  엄청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가끔 먹던 비싼? 반찬이라, 저날 먹으면서 이전 중국에서 힘들게 지낼때 생각 나더군요. 저 고기반찬이 비싸니까 대체로는 감자채로 썰어 볶은거(중국의 일반 식당에 얘가 없는 곳이 있을까 싶은 중국국민반찬) 를 함께 먹죠.

확실히 추억 보정이 되는 건지, 그 당시에는 경제적으로 힘든 학생시절, 자영업시절 이어서인지 저 반찬 하나 먹으면 정말 행복했는데, 지금은 저 녀석의 금액을 어렵지 않게 지불할 수 있어서인지 그 때의 그런 감동은 밀려 오지 않더군요.

아무튼… ‘나도 중국에서 마늘 내어 주는 식당 가봤어’ 라고 하실 분도 계실텐데요. 어떤 허름한 식당가면 저런 조각 마늘들을 그냥 테이블 위에, 그릇에 담아 두지 않고, 너브러 놓은 곳도 있구요.  떼 내지 않은 통마늘을 주면서 ‘니가 직접 떼어 내고 껍질 까서 먹어’ 라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게 그 곳에서는 일반적인 모습인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늘 껍질을 다 까서 제공해 주는 곳은 한번도 본 기억이 없네요.

 

해조류 무침. 쟤도 감자채볶은것만 매일 먹으면 질리니까 번갈아 가면서 먹었던 음식입니다. 

중국에서 살다보면 가는 식당 반복해서 가야하는 상황이 많고, 그러다보면 음식 바꿔 먹는 것도 하나의 일이죠. 

그 당시에는 중국물가가 한국물가수준에 비하면 저렴한 시절이었음에도 지금 돌이켜 보면 저런 얼마 하지도 않았던 면요리 하나 반찬 하나도 마음 편히 못 시켜 먹었었네요. 그럼에도 저는 중국에서 사업 한다고 꿈을 가지고 도전했던 그 시절이 참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그 때 배웠던 것들이 지금 제가 좀 더 성숙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제 또래에서는 감히 흉내도 내지 못 할 ‘압도적인 다양한 경험’이 그 어느 비싼 아파트, 고급 차 보다 값지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경험은 그 나이대에서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나이가 너무 들면 할 수 없는 경험들이 있긴 합니다. 

다시 저의 대만카페 골목길에 식당하나가 오픈. 제발 흥하길.

대만 지방도시 시골골목에서 홀로 카페를 하며 고군분투 하고 있는데요. 

처음 이렇게 아무런 카페나 식당, 상권이 전혀 형성되지 않았던 골목길에 카페를 하게 된 이유는 몇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소자본으로 경쟁을 피하려는 것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저 같은 개인카페가 프랜차이즈 대형카페와 맞붙으면 어려운 싸움이 될 수 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자영업은 초기투자금 뿐만 아니라 버틸 수 있는 ‘운영자금’도 중요하거든요. 자영업 초보자들, 개인사업 초보자들이 ‘운영자금’ 생각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돈 들고 들어와서 시작했다가 6개월 1개월 만에 문닫고 가는 것도 그 기간동안 운영을 못 해 낸다는 뜻입니다. 

이 도시에 있던 프렌차이즈 하나도 3개월여 만에 철수한다고 공지가 떳고, 주변에 3개월 6개월 1년이하에 문 닫고 나가는 상점이 많습니다. 

경쟁을 피해 여기까지 들어 와서 나름 거의 2년하고 6개월 이상을 끌고 오고 있는데요. 아쉬운건 이 골목에 약간의 상권이 형성이 되어서 소비자 들을 이 골목길로 유입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근데 최근에 저의 골목길 초입에 저렇게 가정집을 개조해서 식당을 하나 차렸네요. 저의 카페의 시야에서 보이는 현재로서는 유일한 식당입니다. 그 전에 저의 카페 옆건물에 작게 음식을 파는 젊은 여성분이 있었으나 대략 두달? 을 못 버티시고 철수하시더군요. 저는 간절히 그 곳이 잘 되기를 바랬거든요. 이 골목길에도 상권이 형성이 되면 사람들이 유입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번에 저렇게 다시 식당을 오픈한 걸 보고 제발 좀 흥해라 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사람들과 손님들의 반응을 들어보면 제가 여기서 기존 사람들의 관념, 여기 누가 커피 마시러 오냐? 이런 곳에 가게 연다고 장사가 되냐? 라는 생각을 완전히 깨 버렸다고 말들 많이 하시더군요.

차이컬쳐2 에서도 몇 번 설명했지만, 저는 소자본으로 창업을 하기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하고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타이베이에서 여기 기차역까지 와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돌아다니기도 했으니까요. 골목골목, 구석구석 가게를 할 수 있는 건물이나 터, 장소들이 있으면 하나하나 다 확인했었죠. 위치, 주변상권, 주변경쟁업체, 가게면적, 구조 등등까지 하나하나 계속 확인했고, 타이베이에서 와서 확인하기 쉽지 않아 3개월 여기 단기방을 구해서 머물며 매일같이 조사를 했었습니다. 

그럼 주택가 골목길에서 혼자 카페를 하는 어려운 점 외에 ‘외국’에 나와 카페를 하는 어려운 점을 하나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지금 저 위에 소개한 식당은 주인이 건물주입니다. 즉 자기 집에서 자기가 식당을 하는거죠. 어차피 저기는 주거용 주택이었고, 거기를 개조해서 식당을 하는것이기 때문에 별도의 임대료 부담은 적을 겁니다. 

저도 제 건물에서 카페를 하면 좋겠지만, 외국에 나와서 부동산 투자까지 하기에는 부담이 많습니다. 외국에서 집이나 건물을 구입하려면 아무래도 한국의 집을 처분해야하는 부담이 있는데,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리스크가 많죠.

지금 바로 위에 보이는 저런 카페. 보니까 엄마랑 아들이 둘이서 그냥 자기 건물에 카페 차려서 영업을 하는 것 같더군요. (직접 물어 보지 않았지만 정황증거상) 

저의 카페처럼 아래층에서는 영업을 하고 윗층에서는 주거를 하는 구조입니다. 새로 오픈했다는 같은 골목길 식당도 동일한 구조이죠. 영업+주거형 건물형태.

단지 저는 영업공간도 돈을 내야 하고 주거공간도 돈을 내야 하는, 즉 임대료가 계속 나가고 있다는 겁니다. 

프렌차이즈 카페나 좀 깨끗한 카페처럼 특별히 인테리어에 투자를 많이 하지도 않고, 소장하고 있던 물건들을 잔뜩 진열하는 방식으로 내부를 꾸몄습니다. 

뭐 이런 골동품들을 소장하는 것도 어찌보면 자산이고 투자일 수는 있습니다만, 카페를 차리는 순간 인테리어비용을 위해 돈을 투자는 만이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이런 레트로감성? 골동품감성에 편승해서

이런 선풍기를 틀어 주더군요. 그래서 꺼 달라고 했습니다. 표면에 철가루도 너무 많은 것 같고, 팬에 먼지가 너무나 많더군요. 

만약 저의 카페 선풍기에 저 정도 철가루와 먼지가 팬에 있었다면 손님들이 위생상태에 대해 항의를 했을 것 같거든요.

더군다나 이렇게 밥도 팔았는데, 보니까 저 밥은 근처 식당과 협업?해서 그냥 식당에서 사 온 걸 이윤 남기고 판매하는 것 같더군요. 보통 많은 카페에서 케잌류는 직접 안 만들고 사와서 이윤남기고 파는 형태가 많잖아요. 

저의 카페는 케잌도 직접 만드는데 퀼러티가 사와서 파는 것 보다 훨씬 나으니까 손님들 사이에 입소문이 더 나는 거구요.

무튼 카페에서 음식을 함께 하려면 주방구조가 더 복잡하고 얼마 나가지도 않는 음식 제공하려고 자재준비도 해야해서 저렇게 사서 파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자기 건물에서 하니까 

커피 두잔 + 태국식 토스트 한접시 + 밥 이렇게 시켰는데, 따뜻한 차도 함께 제공해주고 차가운 차도 함께 제공을 해주고도 200밧.

스타벅스 벤티사이즈 아메리카노 한잔이 160밧임을 생각하면 미친 가성비 입니다. 

건물주를 이길 수가 없는 이유죠. 제가 저 음식을 먹으면서 제 카페에서 저 정도 가격으로 저렇게 구성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아무리 해 보고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건물주가 아니면 도저히 안 되겠더군요. 

심지어는 바로 저 위의 토스트와 소스를 저의 대만카페에서 해 보려고 시도도 해 보았는데, 도저히 경쟁력있는 가격을 내기가 어렵더군요. 그래서 포기했거든요.

저의 카페를 오는 한국사람들… 가족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왜 이런거 안 파냐?” “왜 저런거 하나 더 메뉴에 안 넣냐?” 이런 훈수/오지랖을 많이 주시는데…

주변에 김밥 한줄에 다 2000원 팔고 있는데, 내가 비슷한 김밥 한줄을 3,500원 정도에 팔아야 한다고 하면 이게 얼마나 부담이겠습니까? 주변 현지인들이 엄청난 양과 퀄러티의 볶음밥을 95대만달러에 팔고 있는데, 제가 어설픈 볶음밥 150 이상으로 팔고 있으면 학생들이 한두번 호기심에서는 먹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보면 어려울 겁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4000원 5000원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부담을 느끼고 1500원 2000원짜리 저가커피를 찾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한 같은 골목길 식당도 건물주가 주인이라고 하면, 그 가격경쟁력을 따라 갈 수가 없죠. 특히 이 골목길에 많은 분들이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이라 그냥 있는 공간에 소일거리로 하는 분들도 있어서요. 

아무튼 자영업을 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저는 2000년대 중반부터 프리랜서 비슷하게 자영업 생활을 많이 했는데, 직장인들은 휴일이 행복하지만 저는 휴일에 쉬고 있으면 그렇게 불안했거든요. 어디든 나가서, 무슨 일이든 받아서 일을 하고 싶은… 그래서 지금도 카페를 하면서 문을 하루 닫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아마 이건 내 건물에서 임대료 없이 장사를 해야 치료될 병인 것 같네요.

태국시골 경험들(6편)

5편에 이어 오랜만에 6편을 올립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바쁜 일들로 태국배낭여행기를 올리지 못 했습니다. 

내용은 1편부터 보시면 더 재미있습니다. 

1편. (보러가기)

2편 친척동생 합류 (보러가기)

3편 대만학생 잠시 잃어버린 이야기 (보러가기)

4편 원숭이에게 안경뺏김 (보러가기)

5편 드디어 태국시골 도착(보러가기)

이 글을 읽으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에 있어서 어떤 전환점이 있었을 겁니다. 그게 아주 큰 life changer 인생의 큰 물줄기를 바꾸는 계기였든, 사소하게나마 무언가가 바뀌는 계기였던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겁니다. 

저는 첫외국어인 일본어를 포기하고 중국어를 배우기로 길을 들어선 것이 하나의 큰 전환점이었구요.

전환점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사람들은 누구나 몇 번 정도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른채 그냥저냥 하루하루 살면서 지내는 시기가 있을 겁니다. 그럴때 가끔은 저런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할 계기가 찾아 온다든지, 스스로 무언가 ‘각성’ 을 해서 내 인생을 바꿀 행동을 한다든지… 이런 것들이 필요하죠. 저는 가끔 ‘각성’ 을 합니다. 그런 각성을 하게 되면 갑자기 나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면서 나의 인생을 바꾸게 되죠.

저 대만학생이 어쩌면 그런 상황일 수도 있겠네요.

태국 시골사람들이 하는 방식대로 낙시를 했습니다. 대나무를 잘라 낙시대를 만들고, 물에 들어가서 고기를 한 쪽으로 몰고.

저 학생이 다른 것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 하고 매사 늘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인데, 물놀이에는 항상 적극적이더군요.

저 학생의 어머니는 ‘여느 부모님들과 마찬가지로’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또 영어를 잘 하는 학생이 되는 바램이 있지만, 제가 지켜본 바로는 저 학생은 ‘아.직.은.’ 학교 공부에는 크게 흥미도 소질도 없어 보였습니다. 저도 고등학생때 방황을 많이 해서 저게 좋다 나쁘다 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잘하지 못 하는걸 계속 시키면 힘들죠. 물놀이를 저렇게 좋아하는데, 뭔가 물놀이처럼 할 수 있는 걸 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 아닐까요? 누구나 다 영어를 배울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이 모든걸 다 가르쳐 주고 주도해 준 저 태국시골 소녀… 대나무를 골라 잘라 다듬어 낙시대도 만들고, 심지어는 물속에도 들어가서 물고기들도 몰고, 또 저렇게 불도 피우고 요리도 하고…

도시에서 산 사람들은 쉽게 할 수 없는 것들을 척척 잘 하더군요.

저기 물에 들어가서 물고기를 쫓는 모습입니다. 안전튜브가 없으니 저런 플락스틱 통 2개를 줄로 엮어 튜브처럼 사용하더군요. 중국/태국 살면서 느낀건데, 한국은 정말 잘 사는 나라거든요. 캠핑을 취미로 한다고 해도 각종 장비도구를 비싼걸로 사용하고, 심지어는 일년에 두세번 앉을까 말까 하는 캠핑용 의자도 많은 돈을 주고 구입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죠. 그럼에도 불행하고 어렵다고 생각을 합니다. 근데 중국/태국 살아보니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정말 잘 사는 편입니다.  소비와 경제수준의 표준이 너무나 높고 다른거죠.

 직접 잡은 물고기를 또 저렇게 불에 구워서 먹습니다. 돈 주고 그릴 살 필요도 없네요. 낙시대를 이용해서 불에 굽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감자튀김도 직접 썰어서 저 위의 사진처럼 직접 만들었습니다. 

저 대만학생 만약 이 여름방학 동안 집에서만 지냈으면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맨날 밤 늦게 까지 게임만 하고 다음날 12시쯤 일어나서 밥 먹고 또 하루종일 집 안에서 게임만 했을 건데요. 저 학생도 보니까 사회성이 많이 결여되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못 하더군요. 딱 엄마 아빠 동생하고만 대화를 잘 하는 것 같았습니다. 

뭐 또 그게 나쁜게 아니죠.

 

 

하지만 사람이 어느 정도의 사회화 교육, 훈련, 경험도 쌓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 꼭 사회성이 좋아야 하나? 이렇게 생각하실 분들도 계실테지만 정작 본인의 자식이 하루종일 방안에서 게임만 하고 나오지도 않고 12시나 되어 일어나고 하면 그걸 받아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남 이야기니까 쉽게 할 수 있지만 본인의 가족 이야기면 그렇게 쉽게 못 하죠. 

왜냐하면 내 자식은 그렇게 살아도 상관없을 ‘용기’ 가 없거든요.

 다양한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이런 곳도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아직 저 학생에게는 이런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감수성이 발달이 안 되어 있는 것 같더군요. 이 학생과 어디를 가더라도 별로 흥미가 없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딱 물놀이, 쇼핑몰 안에 있는 장난감뽑기 이런 것에만 관심을 가지더군요. 이 학생을 인솔해 온 입장에서는 조바심이 많이 났습니다. 

제가 여러 한국관광객들 데리고 차량운전가이드 를 해 보니까 많은 학생나이대의 친구들은 이동중 차에서는 휴대폰만 보고 있고, 차에서 내리면 그 휴대폰으로 SNS 에 올릴 사진 몇 장 찍고, 또 그걸 찍고 나면 SNS 에 올릴 사진 고르고 있고… 관광지의 풍경이나 그 지역의 역사, 문화 스토리 등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나이가 40 정도 되는 사람중에도 저런 형태가 있었구요.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나이가 어린 학생들 중에서도 함께 다녀 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래된 건물을 하나 보더라도 유심히 관찰을 한다든지… 저는 평소 늘 저런 것들을 관찰 하는걸 좋아하거든요.

동굴이 있길래 동굴도 한 번 들어가 보았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태국북부에서 축구부 학생과 지도교사가 동굴에 들어갔다가 폭우에 불어나 물에 갇혀서 극적으로 구조된 사건이 있었죠. 태국에 살아서인지 다큐도 보고 영화도 봤거든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인간이 의외로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집에서는 다같이 요리도 함께 하고 그걸 다같이 준비해서 함께 나눠 먹기도 했습니다. 

저 학생의 ‘보호자’ 입장으로 여행을 떠나 온건데… 남들 다 즐겁게 대화하며 즐기고 있는데, 영어를 못 해서 참여하지도 못 하고, 남들 다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는데 원래 편식도 심한 편에다 낯선 음식을 저렇게 ‘연구’ ‘분석’ ‘경계’ 하며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만약 제가 저 학생의 친부모였다면 참 가슴이 아프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것을 개선할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저의 경험으로 봤을때는 인생에 있어 뭔가 전환점이 될 만한 사건사고, 계기, ‘각성’  나락으로 떨어진 절박한 상황 등등 이었거든요. 서술한 내용은 좀 부정적이고 극한 상황이고, 아니면 ‘압도적인 경험’ 이더군요.

제가 차이컬쳐에서 늘 자주 하는 이야기 ‘압도적인 경험’ 

회사에 들어와서 직장인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뭔가 비즈니스 전문가 같은 ‘말’ 을 많이 하지만 한발짝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보고 있으면 결국 ‘서바이버에서는 다같이 요리도 함께 하고 그걸 다같이 준비해서 함께 나눠 먹기도 했습니다. 

 

저 학생의 ‘보호자’ 입장으로 여행을 떠나 온건데… 남들 다 즐겁게 대화하며 즐기고 있는데, 영어를 못 해서 참여하지도 못 하고, 남들 다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는데 원래 편식도 심한 편에다 낯선 음식을 저렇게 ‘연구’ ‘분석’ ‘경계’ 하며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만약 제가 저 학생의 친부모였다면 참 가슴이 아프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것을 개선할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저의 경험으로 봤을때는 인생에 있어 뭔가 전환점이 될 만한 사건사고, 계기, ‘각성’ 나락으로 떨어진 절박한 상황 등등 이었거든요. 서술한 내용은 좀 부정적이고 극한 상황이고, 아니면 ‘압도적인 경험’ 이더군요.

 이런 시골 구멍가게에서 직접 물건도 사보고

대만 같은 좁은 나라에서와는 달리 불편한 차에서 장거리 여행도 해 보고

트럭 짐 칸에서 이동도 해 보고

식사 후 저런 해먹에 누워 낮잠도 자 보고

평생 단 한번도 하지 않았던(학생 어머니가 해 준 이야기 입니다) 남들을 위해 모팅커피도 준비를 해 보고

글 첫머리에서 언급을 했던, 인생을 어떻게 하면 바꾸거나 업그레이드 할 계기를 가질 수 있을까?

저의 경우에는 ‘각성’ 과 ‘압도적인 경험’ 이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 보니.

‘각성’을 설명 드리자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때가 몇 번 있었거든요. 통장에 잔고 0원에 빚이 있었고, 매달 독촉을 당하던 시절. 사업하다가 다 날리고 남은 사무실 집기 박스에 정리하면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그 시절. 직원들 월급날은 다가오는데, 당장 내 생활비도 없는데 직원들 월급은 먼저 줘야 하니까 이리저리 뛰어 다니던 시절. 

저는 아침에 눈 뜨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저는 눈을 뜰 때 ‘너 이런 것도 지금 못 일어나면 니 인생 다시 저 시절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한마디면 몸이 저절로 일으켜 세워지거든요. (오늘도 일요일인데  5시에 일어나서 아침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 날 학생과 단 둘이 좀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 학생도 뭔가 공부도 안 되고, 어머니가 요구하는 영어도 안 배워지고 (언어에 큰 흥미가 없어 보이더군요). 당장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옆에 휴대폰이 있으면 게임은 하고 싶고. 게임 하고 있으면 세상 제일 행복하고.

더 잘 하고 더 배워야 한다고 다그치는 여행만 하다가 저 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사실 인생은 다양한 길이 있다. 꼭 대학 안 가도 되고, 모두가 다 영어를 배우지 않아도 된다. 니가 대만 돌아가서 ‘각성’ 해서 니가 하고 싶은 걸 찾는 것만 해도 너의 고등학생 시절은 성공인거다 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저는 고3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방황만 하고 부모에 대한 반항만 했었거든요. 

또 저 날 오전에 어머니와 영상통화를 하게 해 주었습니다. (학생은 휴대폰이 없었거든요) 어머니도 울고, 학생도 울고…

 그렇게 태국시골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다시 방콕으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습니다. 

한시간 넘는 거리인데 차량이 픽업트럭 밖에 없어 여느 태국사람들처럼 짐칸에 앉아서 가려고 했는데, 마침 폭우가 쏟아지네요. 비행기 타러 공항가는데 폭우 쏟아지는 날 우의 입고 픽업트럭으로 가 본 경험 거의 없으시죠?

남자인 제가 짐칸에 타려고 했는데, 태국여자분들이 뒤에 타겠다고 해서 저는 실내에서 앉아 왔습니다. 

저 역시도 며칠간이 태국시골 생활이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이렇게 한달 배낭여행 하기도 쉽지 않고, 또 이런 시골에 가서 일주일 체험 하기도 쉽지 않잖아요.

 함께 간 동생은 피부에 뭔가 트러블 생겨서 계속 약 바르고, 저는 상처 나고, 벌에 손가락을 쏘였는데 퉁퉁 붓고 엄청 아파서 계속 아이스찜질 했었습니다. 벌 한마리에 쏘였는데도 저렇게 고통이 심하고 오래 가는데, 벌집 잘 못 건드리면 안 되겠구나를 간접 ‘경험’ 했습니다. 

지금 11월. 함께간 대만학생은 결국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해서 대학진학과는 조금 거리가 있을 것 같더군요. 최근에 연락을 못 해 봤는데 오늘 저 학생과 연락 한 번 해 봐야 겠습니다. 

더 재밌는 이야기 계속 올릴 예정이고, 많은 사진들 중에서 스토리에 쓰이지 못 해 올리지 못 한 사진들은 별도로 또 올려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