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시골지역 대학교부근에서 카페를 하고 있습니다. 대학교 주변이다보니 아무래도 학생들이 주요 고객입니다. 그동안 카페를 하면서 보니까, 학생들이 지우개를 많이 사용하더군요. 저는 언제부터인가 지우개를 거의 사용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여기 학생들은 지우개를 많이 사용하는 듯 했습니다.
테이블위와 바닥에 지우개똥 이라고 하나요?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청소 하나만큼은 깔끔하게 하니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 이 글을 적는 이유는, 최근 어떤 손님이 지우개똥을 담는 통을 직접 만들어 지우개똥들을 다 모아 두었더군요.
저렇게 종이를 접어 지우개똥을 다 담아 두었습니다. 저는 제 성격상 카페에서 지우개로 뭘 지우더라도 저렇게는 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손님들이 지우개로 지운 흔적을 남겨왔지만, 저렇게 종이를 접어 담아 놓은 손님은 저 학생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카페주인 입장이지만, 손님이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 생각합니다. 어차피 커피값에 청소비도 포함이 되어 있다고 보면 되거든요. 저런 청소는 카페측에서 하는 것이 맞죠.
이 학생손님은 저의 단골입니다. 그래서 늘 제가 감사하게 생각을 하죠. 아마도 이 학생도 저의 카페에 자주 오니까 조금이라도 깔끔하게 사용하고 가려고 저렇게 수학연습한 종이를 접어 담아 둔 것 같은데, 제 입장에서는 그저 손님이 편하게 있다가 가는 것이 좋죠. 혹시 이런걸로 부담을 가지면 오히려 제가 더 마음이 안 좋습니다.
얼마전 누가 댓글로 ‘시골도 아니면서 왜 시골이냐고 말을 하냐?’ 라고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의 근거는 실내체육관이 있는데 시골이냐? 는 논지인데요.
1. 논밭 – 먼저 저의 카페에서 100m 도 되지 않는 곳에 논이 있습니다. 저의 카페에서 논이 보입니다. 그리고 약 300m 정도면 온통 논밭입니다.
2. 농민들 – 위의 사진은 저의 카페 바로 옆집입니다. 저의 바로 옆집 이웃뿐 아니라 이 동네 분들이 농민이 많습니다. 농사일 하고 온 장화도 보이고, 저기 차량에는 농기계 싣고 다니십니다.
3. 농업종사 이웃들 – 위의 사진은 저의 카페 바로 대각선에 사는 이웃의 차량입니다. 저 분들은 농지를 돌아다니면서 농약을 쳐 주는 일을 합니다. 농민들에게 돈을 받고 전문적으로 농약만 쳐 주는 일을 합니다.
아래 하얀트럭도 마찬가지입니다. 약간 안쪽 골목에 세워져 있는 트럭인데요. 제가 평소 전화를 받거나 카페에서 잠시 쉬려고 할 때 저 장소에 서서 저기 풍경도 바라보며 전화도 받고 하는 곳입니다.
4. 동네풍경 –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이런 집들이 대부분입니다. 저의 스트라이다를 세워두고 사진 한 장 찍었네요. 물론 최근에 지어진 현대식 건물이 몇 동 있습니다. 여기가 대학교 후문쪽이라 대학생들 원룸업을 하려고 현대식 건물로 지어 올리는 곳들이 있습니다.
요즘 시골에도 프렌차이즈 카페도 있고 마트도 있습니다. 시골이라고 다방만 있지 않습니다.
저 녀석은 항상 어딜 올라가는 걸 좋아합니다.
5. 현지사람들 질문 – 제가 여기서 카페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어쩌다 이런 시골에 오게 되었어요?” 입니다. 어제도 여기서 학창시절을 보냈다가 타이베이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웃주민이 장례때문에 돌아왔다가 “도대체 어쩌다 한국사람이 이런 시골까지 와서 카페를 합니까?” 그러면서 “이 골목에 카페가 들어설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못 했는데 어떻게 이런 시골동네 골목에 카페를 열 생각을 했나요?” 라고 질문을 해 왔습니다.
여기 사는 분들은 모두 여기가 시골이라고 말을 합니다. 단, 시골과 도시의 기준이 뭔가요? 어디까지는 시골, 어디까지는 도시라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곳은 이름만 시이지, 가보면 완전 시골같은 곳도 있습니다.
특히 태국은 방콕을 조금만 벗어 나는 순간 20~30년 시간을 거슬러 가는 느낌을 받는 곳도 많구요.
제가 이전에 유학을 했던, 중국 산동연태시는 물론 시라는 이름이 있지만, 23년전 그 당시 연태시의 풍경은 한국의 60년 70년대 풍경의 시골이었죠.
며칠전 카페골목 입구에서 인형극을 하는 모습입니다. 시골동네 작은 사원 앞에서 인형극을 하고 있습니다. 저렇게 보는 사람 없는 인형극을 하는 이유는, 사람보라고 하는 인형극이 아니라, 신이 보라고 하는 인형극이기 때문입니다. 신에게 기원을 하는 사람이 저 인형극하는 사람에게 돈을 지불하고 신전 앞에서 저렇게 인형극을 하면서 신에게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종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저의 카페 바로 옆집에서는 장례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서 물어보니 다행히 호상好喪 이라며 다들 웃으며 장례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괜히 저만 좀 엄숙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찾아 갔는데, 호상이라며 밝은 표정으로 또 제가 한국사람이라고 이런저런 (한국의) 장례절차에 대해서도 질문들을 많이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도시에서는 장소가 없으니 보통 장례식장 같은 곳에서 장례를 치르는데, 이런 시골에서는 어차피 터가 넓으니 이렇게 집에서 한다고 하더군요.
여기는 행정구역에는 시라고 되어 있지만, 시골이라고 해도 됩니다. 현지인들이 다들 시골이라고 하거든요. 정말 시골인지 아닌지 알고 싶으시면 저의 카페 한 번 오세요. 제가 논밭구경, 봄/여름 정도에는 가로수로 자라고 있는 엄청난 망고들도 보여 드릴 수도 있고,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엄청난 벌레도 짝짓기 시기에는 보실 수 있습니다.
저의 카페는 雲科大學 라고 국공립 대학입니다.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 사립대학이 하나 있는데요. 위의 저 대학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내년에 폐교를 합니다. 대만도 지방에는 학생수가 감소를 하고 있다고 하네요.
제가 처음 이 지역을 왔을때, 3곳의 대학교를 두고 검토를 했었거든요. 당연히 위의 저 대학도 저의 카페장소로 물색을 했던 곳인데, 다행히 저 곳에서 카페를 열지 않았습니다. 제가 카페를 알아 보고 있을때는 폐교소식을 몰랐습니다.
대만의 어느 시골소재 대학교 후문에서 카페를 하고 있습니다. 뭐라 부르던 상관 없습니다. 농민들 이웃속에서 논밭을 보며 살고 있으니, 저는 시골살이 기분을 한껏 느끼고 있습니다.
중요한건… 세상을 인터넷으로만 보며 판단하지 말고 직접 경험해보고 접해보고 사람들과 만나서 그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듣고 공감하는 그런 것들이 필요 하죠. 세상을 인터넷으로만 배울 수 없는 거거든요. 인터넷으로만 세상을 판단하니 공감능력도 떨어지고, 현실과 동떨어진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사람과 소통을 하고 공감을 할 수 있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