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이 동네 이런저런 차 이야기

제가 종종 주차를 하는 옆집 공터 입니다. 여기 시골마을은 대체로 주차가 관대하고, 저의 주인집에서 여기 주차를 하라고 해서 가끔 주차를 여기에 합니다. 

여기 집들이 정말 오래되고 낡았지만, 저 주인분은 집보다는 차를 더 중요시하는 분 같습니다. 멋진 사냥개도 몇 마리 있고, 좀 비싼 SUV 도 있습니다. 그리고 SUV 옆에 보면 모래사장 같은 곳에서 운행하는 4륜 오토바이? 같은 것도 있습니다. 이런 차량에 관심 많으신 분들은 좋아할 만한 조합이죠. 또 저 SUV 외에도 픽업트럭도 있는데요. 

주인분의 차에 대한 성향은 확실히 알 수 있겠네요. 저 주인분이 성격도 좋아서 평소 저와도 인사를 자주 나눕니다. 

태국에서는 저런 픽업트럭이 정말 많죠. 가끔 한국에서도 포드 대형픽업 타시는 분을 봤는데, 차가 커서 도심에서는 쇼핑몰, 백화점 등등에서 주차하기 어렵습니다. 좌우 공간이…

저런 차량은 미국, 캐나다, 태국 같은 나라의 지방에서 타야 제 능력을 발휘하죠. 태국에서는 도로상태 안 좋은 곳이 너무나 많고 비포장길도 많아 경제적 능력만 되면 4륜 SUV, 4륜 픽업트럭 이 효율적이죠. 

솔직히… 대만도 비포장길이 거의 없습니다. 간혹 산악지대에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이상은 도로상태가 엄청 좋은 나라중 하나입니다. 

작년에 캐나다 친구와 대만자전거 일주 했는데, 그 캐나다 친구가 이 말을 하더군요.

“대만도로에서 아직까지 홀 을 보지 못 했다. 캐나다에서는 도로에 홀이 엄청 많다”

위의 SUV도 이번주에 주택가에서 찍은 건데요. 저런 SUV 한대 보유하고 있으면 든든할 것 같습니다. 

저도 아주 이전에는 세단이 좋다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SUV 같은 큰 차량이 좋아지더군요. 

제가 있는 여기 시골마을에는 소위 말하는 고급차가 아주 많습니다. 시골이라고 가난할 거라는 선입견이 무색할 지경입니다. 그리고 부모들도 경제적으로 부유한 분들이 많아서 자식들도 대부분 좋은 차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며칠전에는 저의 이웃중 한 분이 신형 SUV 를 타고 오더군요. 벤츠, BMW, 아우디 등등… 

그 와중에 여기 동네 손님 중에는 약간 ‘돈자랑’ 하려는 분들도 있습니다. 평소에 동네에서 얼굴보며 인사하던 분인데, 제가 저의 카페에 커피한잔 하시러 오세요 라고 했더니 어느날 차를 끌고 왔더군요. 저의 카페 바로 앞에 주차를 했는데, BMW7 시리즈…  본인의 능력이 출중해서 BMW7 시리즈를 탈 수도 있겠지만, 나이가 20대후반, 30대초반인데 스스로 무언가를 해서 7시리즈를 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네요. 

하.지.만. 돈자랑 차자랑을 하러 같은 작은 동네임에도 굳이 차를 가지고 와서 커피한잔을 팔아주면 저는 감사합니다. 

이 분 외에도…

종종 오셔서 늘 돈 많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동네주민이 계십니다. 그 분은 커피보다는 그냥 와서 대화를 하고 싶은데, 대화의 주제가 거의 자식이 능력이 좋아 돈을 많이 번다. 나도 돈이 많은데 투자할 곳을 찾고 있다. 이런 류의 이야기인데요. 뭐 저는 이런 말들을 100% 다 믿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 분은 행복하지가 않죠. 왜냐하면…

자식이 타이베이에 살고 있는데, 자식 얼굴을 보러 못 갑니다. (가고 싶은데) 아들 여자친구가 7억 정도 되는 집을 사 주면 아들과 결혼을 하겠다. 그래서 반대를 했더니 부모욕을 엄청 하고 안 만나려고 한다더군요. 그 분도 그동안 큰아들을 위해 많은 걸 해주고, 심지어 본인은 20년된 차를 지금 끌고 다니는데 아들에게는 비싼차를 사 준 것 같더군요. 그런데 집을 사주는 조건으로 아들 여자친구가 결혼을 하겠다고 하자 좀 난감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평소 차를 제 카페 앞에 주차를 하는데, 손님들이 차를 가지고 오면…

저기 주차를 합니다. 

무튼 그 동네주민분의 큰아들도 그런 상황인데, 최근에는 작은아들을 위해서 또 가게를 하나 열어 줬더군요. 그런데 확실히 시골분이시라 

“아들이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는데, 뭐 동종업계이직 금지서약서 같은 걸 써서 아들이 직장을 못 한다. 5년동안 동종업계에도 일 못 한다고 해서 가게를 하나 열어 줬다”

동종업계이직 금지 같은 소리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설명을 드리죠.

그 작은아들이 가게하나 열고 싶으니까 아버지에게 과장해서 겁을 줬나 봅니다. 그 아들이 아직 20대인데, 좋은차 가게 하나 부모로부터 받았으면 되었죠.

뭐 그래도 그 손님분이 돈이 많다고 하니 아들들 도와주는건 별 문제가 없습니다만… 그 분이 늘 저의 카페에 와서 돈자랑 이야기는 많이 하고 자식들이 다들 능력이 좋아서 월급을 엄청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월급이 한국돈으로 몇 천만원 이라던데… 뭐 저는 믿지 않습니다만.)

문제는 아내와도 별로인 것 같고, 큰아들도 보러 가지 못 하고, 정작 본인은 차를 하나 바꾸고 싶은데 자식들 도와 주려고 하는건지 차도 바꾸지 못 하고… 자식들은 계속 손을 벌리는 것 같고.

그 손님이 사고 싶어 하는 차가 있는데, 그거 하나 사서 남은 여생 즐기며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네요. 가지고 있는 돈이 그렇게 많다고 하면서 사고 싶은 차 하나 못 사는 상황이라면 뭔가 불행한 것 아닌가요?

최근 대만에도 한국차가 부쩍 많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의 동네주민중 저랑 대화를 좀 많이 나누는 분이 계신데, 최근에 한국차를 구입하셨더군요. (위의 차는 그냥 동네에서 찍은 것) 그 분도 현대 SUV를 구입하고 엄청 만족하시더군요. 기존차대비 차가 커서 산지 이제 몇달밖에 안 되었는데 지하주차장 코너 돌다가 2번이나 옆구리 찍었다고 하더라구요. 본인이 아니라 남자친구가…

여기 SUV가 다들 좀 비쌉니다. 한국대비 2배~3배 정도는 될 겁니다. 그래도 본인의 즐거움을 위해 구입하면 좋죠.

그 단골손님처럼 매번 돈 많다, 자식들이 다들 성공해서 돈 많이 번다, 만나면 대화의 95%가 돈이야기 인데요. 그 분은 저의 단골손님이니까, 본인 사고 싶다던 그 차나 구입해서 본인인생을 위해 사셨으면 좋겠는데, 몇 달 전에도 작은아들을 위해 가게를 열어 줬다고 하니…

제가 이 시골동네 와보고 놀란 것 중 하나가 비싼차들이 많다는 거였는데요. 동네주민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모아보면 역시…

부.동.산.

땅.

빈집이 그렇게 많아도 안 팔고 가지고 있는 이유도 땅값은 계속 오른다는 믿음이 있어서이구요. 

저는 차에 대한 욕심은 점점 없어져가는데, 다시 차를 구입하더라도 SUV 큰 차량으로 구입을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지방도시, 시골, 여행다니기에는 SUV 큰 차량이 좋죠. 아주 어릴때 제가 좋아했던 맥가이버가 JEEP 을 타고 다녀서 나중에 크면 JEEP 을 타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으나, JEEP은 충돌안전도테스트 결과들을 보면 하나같이 처참합니다. 언젠가 레저용으로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는데, 안전도테스트 결과가 너무 안 좋습니다. 

차량 안전 이야기가 나온김에 안전운행 이야기 하나 해 봅니다. 

이번주 타이베이 가는 고속도로에서 블랙박스로 찍은 영상인데요.

운전을 잘 한다는 것?
10대 20대때는 저도 지그재그로 빨리 차량사이를 비집고 속력을 내는 것이 운전을 잘 한다고 객기를 부린 적도 있었지만, 인생의 경험이 쌓이고 보니 생각이 바뀌었죠. 안전하게 운전하고 타인에게 매너있게 운전하는 것이 운전을 잘 하는 것이죠.

영상을 보시면 도로가 합류되는 지점에서 우측차선의 차가 방향지시등을 넣고 차선 변경을 합니다. 너무 가까워질 것 같아 저도 방향지시등을 넣고 좌측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앞 차가 방향지시등을 “지.속.적.으.로” 켠 상태로 2개의 차선을 한번에 변경을 하더군요.

올바른 차선변경 방법은요.

일단 하나의 차선을 변경한 뒤, 방향지시등을 잠시 끈 상태로 주행하다 다시 방향지시등을 켜서 차선변경을 해야죠. 그러면 뒷차도 앞차량이 2번 차선변경을 할 거라 예측을 할 수 있습니다. 

중간에 끄지 않고 계속 방향지시등 켠 상태로 2개 3개 차선을 연속으로 갑자기 이동을 하면 뒷차량은 예측하기가 어렵죠.

이게 안전운전 매너운전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아서 소개를 해 봅니다. 

저의 카페 Homi House 개업 1주년 입니다.

2023년 5월 19일 카페를 처음 오픈한 이래로 1년이 되었습니다. 

건물을 알아보는데 대략 3개월, 계약하고 준비하는데 대략 2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태국에서 건너와 6개월 정도를 임시숙소에서 머물며 타이베이와 지금 이 곳 운림현을 왔다갔다 하며 가게를 알아 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비용이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도 가게를 엄청 많이 돌아 보았고, 중간에는 다른 지역도 둘러 본 적도 있었죠. 자전거로 오토바이로, 차로 도보로 골목골목 엄청 돌아 보았습니다.

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 그것도 가족, 친구들이 있고, 이전에 살았던 타이베이가 아니라 중부 시골마을에서 가게 준비를 하려니 뭐 모든걸 하나하나 다 직접 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 계약했을때는 아무것도 없는 깡통건물 이었거든요. 

또, 카페에 필요한 자재 구입도 직접 발품 팔아가며 하나하나 찾기 시작했습니다. 

가게를 오픈하니 많은 아내의 지인, 가족 들이 화환을 보내주시더군요.

카페 준비를 하면서, 1층 전면유리를 설치하고 나니까, 뭔가 이제 카페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전에는 1층이 뻥 뚫려 있어서 외부 먼지, 소음 등이 그대로 다 들어 왔었거든요. 통유리 설치를 하고 나니 실내가 드디어 아늑해 졌습니다. 

조명도 설치하고, 간판도 달고, 주방도 세팅하는 와중에 또 주거공간도 새롭게 세팅을 하다보니 할 일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

4월 20일 이 두녀석을 차 하부에서 구조하게 되면서, 일이 더 많아졌죠. 당시 저 두녀석 돌보느라 정말 정말 힘들었습니다. 갓 출생한 녀석이라 손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가더군요. 

입양하지 않으면 밖에서 죽을 것이 뻔했기에 입양해서 키우기로 했습니다. 

개업 당일 아침, 저렇게 직접 만든 저희의 음료를 카페근처 토지신에게 가져가 장사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면서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 보면 ‘3년 망하지 않고 버티면 된다’ 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제 1년 지났네요.

이전에 해외에서 식당하시는 분에게 물어보니 ‘1년 이상은 매일 적자 본다는 계산으로 운영자금을 가지고 시작해야 된다’ 라는 조언도 해 주시더군요.

아무튼 현재까지는 많은 손님들이 찾아 주시고, 또 저의 카페에 대한 평가도 좋으셔서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시골카페에서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고, 향후 미래를 위해서 경험 쌓고 배워 나가는 공간이라 생각하며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의 카페 Homi House 1년 되었습니다.  

대만윈린현에서 참가한 자영업 전시회 활동 이모저모

지난 12월 24일에는 제가 사는 대만윈린 더우류시에서 자영업자, 소상공인, 청년창업 자들의 야외활동이 있었습니다. 
주최측에서 마련한 장소에 30여개의 자영업자들이 각자의 부스를 꾸며 손님들에게 홍보를 하는 그런 활동이었습니다.

위의 사진처럼 저의 카페도 참가를 해서 홍보를 했습니다. 

<제목을 우클릭해서 새 탭에서 열어보기를 하시면 사진들을 더 크게, 다른 글들을 더 편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행사를 하기 대략 한달전부터 등록을 하고 주최측에서 주관하는 회의도 참석을 했었습니다. 주최측은 이 지역 대학생들과  이 지역에서 이런저런 정치관련 일도 하고 경제인들과도 협력하고(이런 사람을 뭐라고 해야 하는지…) 이런저런 지역사회에서 영향력?을 키워 나가는 그런 사람이 후원을 하는 것 같더군요.

이번 활동의 모토인 一起辦市集 라는 문구에 각자의 방식대로 색칠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태극기를 그려 넣었습니다. 

행사당일에는 저렇게 전시를 해 두더군요. 제가 그림솜씨가 없어서 태극기가 조금 비뚤어진 것 같은데, ‘예술의 영역?’ 으로 봐 주면 감사하겠습니다. 

몇주전부터 참가자들이 모여 어떤 식으로 활동을 하고 어떤 제품을 어떻게 홍보할 건지에 대해 회의를 했었는데, 분위기를 보니까 몇몇은 이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능숙하게 준비를 잘 하고, 또 다들 2인이상으로 참가를 하더군요. 저는 행사당일 아내가 카페를 봐야해서 원래는 혼자서만 참가를 하려 했었거든요. 여기 연고도 없어서 도움을 청할 친구나 지인도 없어 기획초기에는 저 혼자서 행사를 하려 했었습니다. 다른 참가업체의 안을 보기 전까진 말이죠…

저는 이런 활동도 처음이고 어떻게 무엇을 준비를 해야할지, 또 나의 부스만 너무 초라하게 보이진 않을지, 다른 부스는 사람이 많은데 나의 부스는 썰렁하진 않을지 등등… 살짝 걱정이 되더군요. 이왕하는거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지, 못 한다는 소리 듣기는 싫거든요.

그래서 저는 저의 카페 컨셉인 “한국음식과 문화” + “태국음료” 를 현장에서 소개하기로 기획을 하고 저의 태국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아무래도 혼자서 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움이 있더군요.

드디어 행사당일… 며칠간 흐리고 추운 날씨가 거짓말처럼 화창하고 포근해졌습니다. 

주최측직원들도 분주히 움직이고, 참가업체들도 분주히 준비를 하더군요.

최대한 남들보다 안 꿀리게? 부스를 꾸미려 했습니다. 기업에서 전시회부스를 꾸며봐도 좀 성의 없는 부스가 있고, 잘 꾸며진 부스가 있어서 성의 없어 보이는 부스는 발길이 가질 않습니다.

이왕하는거 잘 해야죠. 

저의 태국친구가 재료와 기구들을 가지고 와서 잘 꾸며 주었습니다. 꾸미기만 잘 한 것이 아니라 음료도 꽤 많이 팔았습니다. 

시선을 끌려고 스트라이다도 가져다 두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손님들이 ‘한국인이 어쩌다 여기에서 카페를 하게 되었냐?’ 라고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 그럴때마다 스트라이다 타고 타이베이에서 대만남단까지 종주한 이야기를 해 줍니다. 

드디어 첫 손님이 태국음료를 주문했습니다. 

저 태국친구의 태국카페가 외부노점형 스타일이라 이런 환경에서 음료를 잘 만들더군요. 저 친구의 카페운영경험이 여기서는 빛을 발하더군요. 만약 제가 저기서 음료를 만들었으면 엄청 버벅거렸을 것 같습니다.

저는 책갈피에 오시는 손님들의 이름을 한글로 적어 드리는 이벤트를 했으며, 저 책갈피를 다음에 가지고 오면 모든 음료 20% 할인행사도 했습니다. 

반응이 좋더군요.

그리고 저의 카페 달고나를 포장해서 제공을 해 드렸는데요. 달고나도 대성공이었습니다. 모두들 맛있다고 하시더군요. 

저의 부산집 바로 앞이 공터(최근엔 놀이터)였는데, 제가 초등학생때 항상 거기 달고나(부산에서는 쪽자 라고 불렀습니다) 아저씨가 판을 깔고 달고나를 팔았죠. 당연히 저도 쪽자 엄청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있고, 그 맛도 정확히 기억을 합니다. 

제가 기획한 것들이 반응이 좋아 보람을 느꼈습니다. 

저의 카페 주변 한국식당의 대만인사장과 이번에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그 사장님은 떡볶이를 현장에서 판매하고 홍보하시더군요.

주최측 직원들 사진입니다. 토끼들고 있는 여자분과 다른 여자분도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음료도 나눠주고 집에서 입던 옷가지를 가지고 와서 팔고 있더군요.

저 주최측 직원들이 모두 저의 카페옆 대학교학생들인데요. 아마도 대학생때 이런 사회활동을 통해서 학교생활 커리어를 쌓아 가려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대학생때 이런 학창생활을 다양하게 해 보는 것이 보기 좋지 않나요?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거나 주구장창 술만 마시는 그런 대학생활은 별로 입니다. 

저 여학생들은 KPOP에도 관심이 많은지 한국노래가 나오면 가사도 흥얼거리면서 춤도 따라 추는 등 끼와 재능이 있어 보였습니다. 

저의 이웃부스, 태국친구와 함께 찍은 샷입니다. 저의 이웃부스 커플은 저런 화분을 키워 판매를 하더군요. 

아래에는 행사장, 사진위주로 올려 보겠습니다.

어떤 물건을 팔든, 무슨 장사를 하든, 결국은 사람이죠. 나이가 많든 나이가 적든 남녀할 것 없이 모두 모여서 하루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이 곳 분들이 저와 태국친구 두 명의 외국이이 나와서 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셔서 많은 분들과 이야기도 나누었고, 음료도 꽤 많이 팔았습니다. 

보다 더 많은 분들이 저의 카페를 알고 찾아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큽니다. 아무래도 장사를 하다보니 매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저의 아내와 태국친구와 함께 준비를 잘 해서 처음 하는 이런 행사를 잘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이런 활동을 해 본다는 것이 특별한 경험이죠. 

늘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 수 있음에 감사를 합니다. 

장례식장때문에 카페에 손님이 오지 않는다???

제가 12월 13일자에 저의 카페부근에서 최근들어 세분의 어르신이 사망을 하셔서 집 앞에서 장례식을  치른다는 글을 적은 적이 있는데요. 
그 글 보러가기

앞 번 장례식은 삼사일 만에 끝난것 같은데, 지금 저 골목길에서 보이는 장례식은 2주가 넘도록 계속 저렇게 진행을 하더니만…

어제부터인가 그저께부터는 도로를 완전히 차단을 해서 모든 차량이 우회를 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오토바이나 작은 차량은 통행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 놓았었거든요. 중요한건…

저의 대만아내가 

“저기 장례식을 오래 하니까 카페에 손님들이 확 줄었다” 

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무슨 장례식을 하고 있다고 카페 오려는 손님이 안 오겠어?” 

라고 하니, 자기는 이런 상황이면 우리 카페에 안 올거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자기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니 많은 사람들이 동의를 했다고 하네요.

저는 딱히 종교나, 미신, 이런 류의 귀신을 믿지 않는 편이라 전혀 개의치 않을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런 걸로 불길하게 느끼거나 부정탄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나 보네요.

이전에는 불길하다, 부정탄다 이런 미신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소금을 뿌린다든지, 장례식에 다녀온 사람은 돌잔치인가? 뭐 백일잔치인가 그런 곳도 가면 안 된다고 했고, 장사하는데 첫손님이 여자면 재수 없다고 생각하던 때가 불과 얼마전의 일이었는데요.

저는 이렇게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대로변에서 들어오는 저 도로를 막아 버리니 손님들이 불편해서 오지 못 할 수는 있겠구나… 라고 생각은 했는데, 카페 가는 길에 장례식이 있어서 안 간다는 생각은 좀 신선하긴 합니다. 저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 한 부분이었거든요.

저는 오히려, 이런 지역이니까 저렇게 도로를 하나 완전히 막아두고 며칠동안 저렇게 행사를 해도 되는구나 라고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도시에서 개인이 일반도로를 완전히 막고 며칠동안 저러고 있으면 민원이 들어가도 벌써 들어갔을테지요.

오늘 저의 옆집에서 무언가를 말리고 있더군요. 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여기가 시골인지, 그렇게 시골은 아닌 지방도시인지는 도시의 건물이나 상점의 수로는 판단할 수 없지만, 제가 살고 있는 이 마을의 “정서” 는 ‘시골정서’ 임은 분명합니다. 

저의 카페 옆에 절이 하나 있거든요. 그 절에서 한두달에 한번 정도 밤 12시경에 무슨 제례행사를 합니다. 음악을 크게 틀고 무슨 불경을 읽는건지 많은 사람들이 행사를 합니다. 무려 밤 12시 이후에 바로 주택가 중심에서…

시골이라 생각을 하니, 제 카페로 들어오는 도로를 하나 막고 있어도, 집 바로 옆 절에서 밤12시에 큰 소리로 행사를 해도 그게 크게 거슬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그저 ‘이렇게 사는 것도 문화고, 저렇게 사는 것도 사람사는 모습이다’ 라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좀 차분해지고 느려졌다고나 할까요?

바로 위의 사진속 절입니다. 저 절 옆으로 저의 카페건물이 보입니다. 저 공터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를 자주 하는데, 아주 가끔은 밤12시에 합니다. 

화분에 알이 2개 보이시나요?

이 집에 오리인지 거위인지 털이 많이 빠진 두녀석이 사는데요. 평소에는 집주변 도로주변을 그냥 돌아다닙니다. 아마 그 녀석들이 낳은 알이 아닌가 유추를 해 봅니다. 

오리이야기가 나와서…

오늘 대학교내 산책을 했는데요. 호수에 오리도 거위도 아닌 새들이 있더군요. 얼핏 얼굴은 칠면조?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전에는 못 본 것 같았는데, 오늘보니 있더군요.

그리고 오늘 저의 카페 바로 앞에 있는 작은 하천을 보니, 부레옥잠이 가득 떠 있더군요. 부레옥잠이 이렇게 가득 있을때도 있고, 없을때는 하나도 없고… 오늘은 부레옥잠이 하천을 가득 뒤 덮고 있어서 사진한장 남겨 보았습니다. 

시골에서 살다보니 주변의 이런저런 일에 조금은 둔감하게 받아들이게 되더군요. 도시에 살면 사람과 사람사이에 무언가 날이 서 있어서 조금이라도 뭔가 내 생각과 맞지 않거나, 내 영역을 침범하거나, 내 이익에 손해가 될 것 같으면 공격적이고 신경질적이 되기 쉬운데요. 

시골에 살다보니 마음이 조금은 이전보다는 여유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대만과 태국은 크리스마스가 휴일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저의 대만카페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한국에서 여기 대만중부 작은 마을까지 일부러 찾아 주셨습니다. 

제가 대만 타이페이에서 살고 있을때 부터 알고 지내던 한국인 부부이신데, 이번에 저의 카페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외국에서 오래 살고 계신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한국에서 누군가가 찾아 주시면 참 반갑습니다. 

저의 카페에서 커피한잔 하고, 인근 후웨이 구경을 잠시 했습니다. 시간이 짧아서 구석구석 오래는 보지 못 하고 짧게 구경을 했는데요.

위의 사진은 후웨이 오면 다들 남긴다는 철로인증샷 입니다. 

후웨이는 외국인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지만, 나름 오래된 도시의 흔적이 남아있어 하루정도 둘러보기엔 괜찮은 곳입니다. 

저날은 시간이 없어 못 갔지만, 후웨이에는 이전 일제시대 군인들이 사용하던 숙소건물지역도 있어 가 볼만하죠. 

타이베이에서 만났을때는, 캡슐커피머신을 선물해 주셔서 저를 캡슐커피의 세계로 인도를 해 주셨는데…

이번엔는 이케아기프티카드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의 대만아내쪽 가족, 친구, 지인들은 여기 카페를 많이 찾아 주셨는데요. 지난주 일요일에도 4분이 찾아 주셨죠.  한국분이 찾아 주신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런 좋은 기운을 받아 저의 카페도 더 잘되기를 바랍니다. 

저의 카페에 손님이 족제비를 데리고와 저의 고양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끔 저의 손님들 중에 애완동물을 데리고 오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대체로 미리 ‘애완동물 데리고 가도 되냐?’ 고 문의를 주시는데요. 저의 카페에 이미 세녀석의 고양이가 있으니까 당연히 환영입니다. 

최근에 손님중에서 족제비를 데리고 왔더군요.

족제비가 오니 저의집 고양이들 난리가 났습니다. 나나(바닥의 회색)는 밥 달라고 할때만 하는 저 자세까지 해 가며 족제비를 보고 있습니다.

저의 카페에서는 여포인데, 막상 다른 동물들 오면 겁이 엄청 많습니다.  큰 녀석 호미는 원래 처음 입양할때부터 겁이 엄청나게 많은 녀석이라 이해를 하겠는데, 작은 두녀석은 평소에는 뭐든 다 공격하는 맹수처럼 보였지만, 다른 동물이 카페에 오면 완전 겁쟁이모드 입니다. 

겁쟁이모드를 동영상으로 올려 봅니다. 

그래도 손님들이 족제비를 꺼내서 더 적극적으로 저의 고양이들과 교류하게 해 주려 해서 감사했습니다. 

한국에서 호미를 처음 입양했을때, 호미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두려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죠. 

“나는 호미가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호미가 좀 더 많은 사람, 좀 더 많은 동물들과 교류해서 사회성을 키우길 바랍니다. 

저의 작은 두녀석도 마찬가지로 올해 4월 입양한 뒤로 혹시라도 집 안에서만 자라면 바깥세상의 모든 것을 두려워 하는 고양이가 될 까봐 어릴때는 주기적으로 안고 바깥에 데리고 나와 바깥의 소음도 느끼게 해주고 또 다른 풍경과 냄새도 맡게 해 주었습니다. 최근에는 이 녀석들이 커서 안기는걸 너무나 싫어해 좀 뜸하지만, 우리 고양이들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회성이 좋은 고양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있습니다

이 주인분도 족제비를 오냐오냐 키우지 않고, 저의 고양이들과 계속 교류를 하게 해 주더군요.

중국에 가보면 소황제 라고 해서 부모 2명, 조부모 4명이 자식 1명을 너무나 총애하고 오냐오냐 해서 키우다 보니 이 자식이 사회성이 없어지죠. 그러다보면 자식을 부모품에서 떠나 보내지 못 하고, 이 자식은 사회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경험축적이 안 되는 겁니다. 비단 중국소황제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모습이죠.

무튼 그런 족제비로 키우지 않겠다는 주인의 의지가 느껴집니다. 

제가 부산에 살 때 집이 마당이 있는 주택이었는데, 어느날 족제비 한마리가 마당으로 들어왔죠. 당시 저의 집에 강아지 2녀석이 있었는데, 한 녀석의 이름은 ‘누렁이’. 이 녀석이 평소에는 엄청 순둥순둥 했는데, 족제비를 보자 엄청 공격을 하더니 결국 족제비가 마당의 창고건물 안으로 들어가 숨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저의 집 세입자 아저씨가 쌀포대로 족제비를 잡아 고아 먹었습니다. 당시 어린이였던 저에게는 ‘허리를 다쳐서 먹는다’ 라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뭐 정력제 라고 생각해서 먹었을 것 같네요.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그 족제비를 삶는데 비린내가 심하게 났었다는 겁니다. 

저 손님에게 물어보니 족제비를 집에서 키워도 큰 문제는 없다고 하네요. 방에 풀어 놓아도 잘 놀고… 파충류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고,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고, 유튜브를 보면 더 다양한 동물들을 집에서 키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의 카페에 다양한 동물들이 찾아 주었으면 합니다. 

단골손님 미국인학생으로부터 체스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저의 카페 단골인 저 미국인 학생이 저에게 체스판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크리스마스선물겸 주는 거라고 하는데요. 이 친구가 저의 카페에서 몇 번 대만식장기와 체스를 두었습니다.  장기둔 이야기도 얼마전에 차이컬쳐에서 소개를 해 드렸었는데요(보러가기)

예상치 못 하게 체스선물을 받으니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체스판도 목재로 만들어져 있어, 실제로 보면 싸구려 느낌이 나지 않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저의 카페손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고, 지난번 말레이시아소녀의 선물 이후로 참 기분이 좋습니다.(보러가기) 선물은 줄때도 기분이 좋다고 하지만 받아도 기분이 좋네요.

저 친구가 미국에서 이공계쪽 박사과정 밟으면서, 지금은 국비로 대만에서 영어도 가르치며 중국어도 배우고 있는데요.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뭔가 체계적이고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단어를 하나 암기하더라도 수식표를 만들어서 그걸로 암기를 하고, 무언가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면 엄청 체계적으로 깊이있게 파고드는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박사과정을 밟는 거겠죠. 
저에게 이전 체스세계챔피언이었던 소련사람이 쓴 책도 pdf파일로 보내 주고, 유튜브채널, 체스강의 싸이트도 알려 주더군요. 체스강의싸이트의 경우 기물의 이동에 따른 승리확율도 실시간으로 계산을 해 주어서 내가 이동한 수가 좋은건지 나쁜건지도 바로바로 알려주어 좀 더 체계적으로 학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유치원생때 장기를 배울때는 그저 주변 어른들로 부터 어깨너머, 훈수, 사람대사람 이런 식으로 장기를 배운 것에 비하면 지금은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한국장기, 중국식장기에 이어 이제는 서양식체스를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7년전에 대만친구와 대만장기를 둔 사진입니다. 결과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제가 이겼을 것 같습니다. 

집에서 키운 양을 갓잡아서 오토바이에서 내다팔고 있는 동네주민 모습

아침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에서 누군가가 고기를 팔고 있더군요. 저렇게 생고기를 썰어 파는 모습은 낯선 모습이 아닌데, 오토바이 위에 놓고 소량을 썰어 팔고 있길래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거라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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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근처 이 나무 아래에는 저 옆에 보이는 조식파는 스탠드만 있는데, 오늘은 저렇게 고기를 썰어 팔고 있었습니다. 
물어보니 인근 농장에서 직접 키운 양을 갓잡아서 냉동시키지 않고 내다 파는 것이라고 하네요. 고기를 사시는 분께서 저를 알아 보시고는 (작은 동네라 많은 분들이 저를 알아 보십니다. 한국사람이라서요)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시더군요. 한국에서도 양고기를 먹냐 라고도 물어 보시더군요.

외부시장에도 양고기를 팔지만 거기는 잡은지도 오래되고 유통과정중 냉동을 시켰다가 파는 것이라 이 아주머니의 양고기를 더 선호한다고 했습니다. 저렇게 내다판지가 10년이 넘었다고 하시네요. 

저의 카페 부근에는 저런 나무아래에 토지신을 모신 곳이 몇 곳 있습니다. 

저도 양꼬치를 좋아합니다. 중국에 있을때는 자주 먹었죠. 특히 중국으로 출장가면 첫날 저녁은 가급적 양꼬치를 먹으러 갈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혹시라도 신장지역 사람들이 운영하는 양꼬치집이 있으면 갈 만합니다. 거기는 양꼬치를 제대로 해 주거든요. 제가 몇 군데 가서 물어보니 자기들은 양을 신장지역에서 직접 공수해서 판다고 하더군요. 

아침부터 양고기를 보니 갑자기 또 양꼬치가 생각이 납니다. 

오늘 아침에 아주 살짝 빗방울이 흩날렸습니다. 비가 내릴것 같아 고고로와 스트라이다를 가게처마 안 쪽으로 들여 놓기도 했는데, 비가 살짝 흩날리다 그쳤네요. 그래도 날씨가 흐리니까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아주 화창하고 맑은 날보다는 구름이 많고 바람이 좀 부는 날이 더 좋습니다. 

지우개똥을 치우려 종이를 접은 대만카페손님

대만시골지역 대학교부근에서 카페를 하고 있습니다. 대학교 주변이다보니 아무래도 학생들이 주요 고객입니다. 그동안 카페를 하면서 보니까, 학생들이 지우개를 많이 사용하더군요. 저는 언제부터인가 지우개를 거의 사용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여기 학생들은 지우개를 많이 사용하는 듯 했습니다. 

테이블위와 바닥에 지우개똥 이라고 하나요?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청소 하나만큼은 깔끔하게 하니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 이 글을 적는 이유는, 최근 어떤 손님이 지우개똥을 담는 통을 직접 만들어 지우개똥들을 다 모아 두었더군요.

저렇게 종이를 접어 지우개똥을 다 담아 두었습니다. 저는 제 성격상 카페에서 지우개로 뭘 지우더라도 저렇게는 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손님들이 지우개로 지운 흔적을 남겨왔지만, 저렇게 종이를 접어 담아 놓은  손님은 저 학생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카페주인 입장이지만, 손님이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 생각합니다. 어차피 커피값에 청소비도 포함이 되어 있다고 보면 되거든요. 
저런 청소는 카페측에서 하는 것이 맞죠.

이 학생손님은 저의 단골입니다. 그래서 늘 제가 감사하게 생각을 하죠. 아마도 이 학생도 저의 카페에 자주 오니까 조금이라도 깔끔하게 사용하고 가려고 저렇게 수학연습한 종이를 접어 담아 둔 것 같은데, 제 입장에서는 그저 손님이 편하게 있다가 가는 것이 좋죠. 혹시 이런걸로 부담을 가지면 오히려 제가 더 마음이 안 좋습니다. 

얼마전 누가 댓글로 ‘시골도 아니면서 왜 시골이냐고 말을 하냐?’ 라고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의 근거는 실내체육관이 있는데 시골이냐? 는 논지인데요.

1. 논밭
 – 먼저 저의 카페에서 100m 도 되지 않는 곳에 논이 있습니다. 저의 카페에서 논이 보입니다.  그리고 약 300m 정도면 온통 논밭입니다. 

2. 농민들
– 위의 사진은 저의 카페 바로 옆집입니다. 저의 바로 옆집 이웃뿐 아니라 이 동네 분들이 농민이 많습니다. 농사일 하고 온 장화도 보이고, 저기 차량에는 농기계 싣고 다니십니다. 

3. 농업종사 이웃들
– 위의 사진은 저의 카페 바로 대각선에 사는 이웃의 차량입니다. 저 분들은 농지를 돌아다니면서 농약을 쳐 주는 일을 합니다. 농민들에게 돈을 받고 전문적으로 농약만 쳐 주는 일을 합니다. 

아래 하얀트럭도 마찬가지입니다. 약간 안쪽 골목에 세워져 있는 트럭인데요. 제가 평소 전화를 받거나 카페에서 잠시 쉬려고 할 때 저 장소에 서서 저기 풍경도 바라보며 전화도 받고 하는 곳입니다. 

4. 동네풍경
–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이런 집들이 대부분입니다. 저의 스트라이다를 세워두고 사진 한 장 찍었네요.  물론 최근에 지어진 현대식 건물이 몇 동 있습니다. 여기가 대학교 후문쪽이라 대학생들 원룸업을 하려고 현대식 건물로 지어 올리는 곳들이 있습니다. 

요즘 시골에도 프렌차이즈 카페도 있고 마트도 있습니다. 시골이라고 다방만 있지 않습니다. 

저 녀석은 항상 어딜 올라가는 걸 좋아합니다.

5. 현지사람들 질문
– 제가 여기서 카페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어쩌다 이런 시골에 오게 되었어요?” 입니다. 어제도 여기서 학창시절을 보냈다가 타이베이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웃주민이 장례때문에 돌아왔다가 “도대체 어쩌다 한국사람이 이런 시골까지 와서 카페를 합니까?” 그러면서 “이 골목에 카페가 들어설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못 했는데 어떻게 이런 시골동네 골목에 카페를 열 생각을 했나요?” 라고 질문을 해 왔습니다. 

여기 사는 분들은 모두 여기가 시골이라고 말을 합니다. 단, 시골과 도시의 기준이 뭔가요? 어디까지는 시골, 어디까지는 도시라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곳은 이름만 시이지, 가보면 완전 시골같은 곳도 있습니다. 

특히 태국은 방콕을 조금만 벗어 나는 순간 20~30년 시간을 거슬러 가는 느낌을 받는 곳도 많구요.

제가 이전에 유학을 했던, 중국 산동연태시는 물론 시라는 이름이 있지만, 23년전 그 당시 연태시의 풍경은 한국의 60년 70년대 풍경의 시골이었죠.

며칠전 카페골목 입구에서 인형극을 하는 모습입니다. 시골동네 작은 사원 앞에서 인형극을 하고 있습니다. 저렇게 보는 사람 없는 인형극을 하는 이유는, 사람보라고 하는 인형극이 아니라, 신이 보라고 하는 인형극이기 때문입니다. 신에게 기원을 하는 사람이 저 인형극하는 사람에게 돈을 지불하고 신전 앞에서 저렇게 인형극을 하면서 신에게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종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저의 카페 바로 옆집에서는 장례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서 물어보니 다행히 호상好喪 이라며 다들 웃으며 장례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괜히 저만 좀 엄숙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찾아 갔는데, 호상이라며 밝은 표정으로 또 제가 한국사람이라고 이런저런 (한국의) 장례절차에 대해서도 질문들을 많이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도시에서는 장소가 없으니 보통 장례식장 같은 곳에서 장례를 치르는데, 이런 시골에서는 어차피 터가 넓으니 이렇게 집에서 한다고 하더군요.

여기는 행정구역에는 시라고 되어 있지만, 시골이라고 해도 됩니다. 현지인들이 다들 시골이라고 하거든요. 정말 시골인지 아닌지 알고 싶으시면 저의 카페 한 번 오세요. 제가 논밭구경, 봄/여름 정도에는 가로수로 자라고 있는 엄청난 망고들도 보여 드릴 수도 있고,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엄청난 벌레도 짝짓기 시기에는 보실 수 있습니다. 


저의 카페는 雲科大學 라고 국공립 대학입니다.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 사립대학이 하나 있는데요. 위의 저 대학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내년에 폐교를 합니다. 대만도 지방에는 학생수가 감소를 하고 있다고 하네요.

제가 처음 이 지역을 왔을때, 3곳의 대학교를 두고 검토를 했었거든요. 당연히 위의 저 대학도 저의 카페장소로 물색을 했던 곳인데, 다행히 저 곳에서 카페를 열지 않았습니다. 제가 카페를 알아 보고 있을때는 폐교소식을 몰랐습니다.

대만의 어느 시골소재 대학교 후문에서 카페를 하고 있습니다. 뭐라 부르던 상관 없습니다. 농민들 이웃속에서 논밭을 보며 살고 있으니, 저는 시골살이 기분을 한껏 느끼고 있습니다. 

중요한건… 세상을 인터넷으로만 보며 판단하지 말고 직접 경험해보고 접해보고 사람들과 만나서 그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듣고 공감하는 그런 것들이 필요 하죠. 세상을 인터넷으로만 배울 수 없는 거거든요. 인터넷으로만 세상을 판단하니 공감능력도 떨어지고, 현실과 동떨어진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사람과 소통을 하고 공감을 할 수 있어야죠.

대만시골에서 카페준비한 모습

대만시골지역으로 와서 카페를 차리면서 이런저런 시공업체와 업무를 했었습니다. 간판업체, 전기, 주방, 전면유리샷시 등등…
이런걸 총괄해서 대행해주는 인테리어업체 견적도 받았으나 너무나 비싸길래 그냥 제가 다 했습니다. 
제가 워낙 오랜 해외생활로 이런 업체들/사람들을 의심하고 경계하는 습관이 있어서인지, 이번에 저의 가게 시공을 해 주었던 사람들은 다 사람들이 좋아 보이더군요.

참고로 저는 중국본토에서 오래 있었습니다. 중국은… 사기/기만/속임/바가지 가 일상인 곳입니다. 

시공을 해 주시는 분들도 하루종일 시공을 하면서 다들 친절하고 성의껏 잘 해주시더군요. 저 에어컨 설치하는 날은 좀 많은 사람들이 왔는데요. 에어컨 댓수가 많아서인지 한번에 여러사람들이 와서 함께 작업을 하더군요.

중국본토에서는 이런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 가정용 LPG 가스통을 설치하는데, 아파트인근에 있는 업자를 불렀죠. LPG  가스통을 부엌 싱크대 안쪽에 설치하더군요. 부엌외부에 싱크대를 설치할 공간도 없고, 그 때는 그 업자가 그렇게 설치를 해 줘서 그러려니 했었습니다. 그렇게 설치를 하고 사용을 하는데, 갑자기 가스가 새는 소리가 심하게 들리더군요. 놀라서 싱크대 아래 문을 열어보니 LPG 가스 압력에 가스호스가 빠져서 가스가 본체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보통은 가스관을 끼우고 철로된 고정클립을 끼워서 고정을 해야 하는데 그 기본적인것도 안 해 두었더군요.  그 업자 찾아가서 따지니 실실 웃으면서 사과도 하지 않고… 그날 정말로 그 사람 때리고 싶었습니다. 

에어컨시공하시는 분들이 옆집에서 저렇게 앉아 음료판을 깔아 놓고 일하면서 쉬더군요. 보통은 남의집 문앞에 저렇게 판을 깔지도 않을 뿐더러, 주인도 항의를 할 텐데 여기는 전혀 그러지 않더군요. 항의를 하지 않는 주인도 놀랍고, 남의 집에 저렇게 하루종일 판을 깔아 놓고 술과 음료를 마시고 있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중국본토에서는 그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중국도 조금 달라졌다고 하지만, 20여년전의 중국은 ‘서비스정신’ 이라는 것이 희박했습니다. 은행가면 번호표도 없고 줄을 서야 했는데, 줄을 서는 개념이 없어서 그 조그마한 창구구멍으로 손을 먼저 집어 넣는 사람의 업무가 먼저 처리가 되는 시절이었습니다. 에이 과장하고 있네 라고 하실 분이 계신데, 그 상황을 직접 보시면 현장은 더 심하다고 보면 됩니다. 은행창구의 작은 구멍으로 사람들이 원형으로 둘러싸고 손을 먼저 집어 넣으려고 몸싸움을 하는 모습입니다. 은행 한 번 다녀오면 진이 빠지고 시간도 엄청 걸리던 시절이었죠. 그 뒤로는 중국에서도 번호표를 사용하긴 하더군요.

대만에서는 육체노동을 하시는 분들이 ‘삔랑’ 이라는 열매를 많이 먹습니다. 비닐컵에 붉은색으로 보이는 것이 삔랑 씹고 뱉은 것이며 바닥에 붉은색도 삔랑물이 벤 것입니다. 아침에 가게 앞에 나가보면 꼭 삔랑을 거리에 뱉어 놓아 바닥이 붉게 된 걸 볼 수 있습니다. 
삔랑이 레드불 같은 각성효과를 내는데요. 실제로 레드불 같은 각성음료를 마시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기도 그런 음료가 보입니다. 

시골에서는 시골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속도가 있습니다. 
중국본토도 마찬가지였죠. 처음엔 저의 사고방식과 속도가 중국사람들과 맞지 않아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해를 하게 되고 내가 맞추어 가게 되더군요.

해외에서 한국업체랑 일을 해 보면 평생 한국에서만 일을 한 사람들은 중국이나 태국의 업무속도나 방식을 이해하지 못 하고 자기회사의 기준으로만 업무를 시키려 하지만, 그게 쉽게 됩니까? 책상에 앉아서 말로는 이론적으로는 다 될 것 같지만 그 나라에는 그 나라의 문화가 있고, 방식이 있는거죠. 

오늘은 비가 그치고 태양이 보이는 오전입니다. 매일 일기예보앱을 보는데요.

오늘 오전 일기예보앱에 오류가 있는지 -1000도 라고 되어 있어 올려 봅니다. 
현재 여기는 대체로 낮에는 30도 입니다. 추석전에는 35~30도 였는데, 태풍이 지나간 뒤로 30도까지 떨어지는 다소 선선한? 기온입니다. 그래서 오늘 긴팔입고 카페에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