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도래지의 도래지 한자漢字는?

철새도래지 라는 단어에서 도래지 의 한자는 무엇일까요? 먼저… 요즘 하도 어려운 한국어어휘를 모른다는 말들이 심심찮게 나와서 설마 도래지 라는 단어를 모르시는 분은 없으시겠죠?

이전 태국회사 뒷편에 이런 곳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혼자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하면서 풍경을 즐기곤 했었습니다. 

회사 바로 뒷편이 바다이고, 고래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고래를 본 적은 없으며, 이런 염전은 볼 수 있습니다. 가끔 염전밭 이라고 할때도 있는데, 초가집 처럼 전田 이 이미 밭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염전밭 이라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염전에서 일 하는 것이 엄청 힘들다고 이야기는 하더군요. 오죽했으면 신안에서도 불법적인 방법으로 노동력을 착취하겠어요. 이런 동남아시아에서도 염전의 노동은 힘들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힘든 노동업무에 태국사람들이 일을 하지만, 태국에서는 이런 어렵고 힘든 일은 미얀마사람들이 들어와서 합니다. 들리는 말로는 이런 곳에서 일을 하는 대부분의 미얀마사람들은 불법으로 일을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거주했던 곳은 태국전역에서도 미얀마근로자가 가장 많은 곳이었습니다. 

염전도 있고, 이런 습지도 있어서 사진에서 잘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새들이 있습니다. 저는 회사주변 이런 곳도 가끔 자동차로 혼자 돌면서 감상을 했었습니다. 

서울에 살면서 집-회사-집-회사 이런 생활을 하니 매일 같은 풍경에, 7~8시 사이에 회사 들어가서 집에 오면 9~10시 이런 삶을 살던 기억이 있어서 살면서 이런 풍경을 평일날 볼 수 있단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건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이런 저의 삶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쟤네들이 철새인지, 토착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꽤 큰 녀석도 있고, 작은 녀석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습지에서 이런 수의 새를 보면 으레 철새 이려니 하죠. 일단 철새라 치고… 보통 철새도래지 라는 말을 하는데, 도래지… 과연 한자가 어떤 한자인지 아시겠나요?

도래 라는 단어는 얼핏 到來 라고 찍기 쉽지만 절대 유혹에 넘어 가면 안 됩니다. 철새도래지는

渡來地  입니다. 

저기서 도는 강을 건너다 라는 도하渡河 입니다.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는 익숙하시죠?  그런데 공무도하가 도 그냥 저렇게 붙여서 보면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는데…

公 님 / 당신 

無하지마라  渡河도하(강을 건너는 행위)를

대략 이렇다는 이야기인데… 뭐 쓰고 보니 별 재미는 없네요. 요즘 워낙 사람들이 한자에 관심이 없을 것 같아서요.

이런 잔교도 볼 수 있고…

그 옆으로 사람들도 개도 저렇게 누워서 낮잠을 즐기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피로할때, 저렇게 그늘에서 누워 있는 사람이 정말 부럽죠.

그런데 저런 곳 도마뱀이나 뱀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당시 저 쪽으로 가는 길이 비포장도로였는데, 지금은 포장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오늘은 이전 태국회사 부근에 가끔 바람쐬러 갔던 곳의 풍경을 소개해 보았습니다. 

 

한달여사이에 저의 대만집 마을에서 세분의 어르신이 별세를 하셨네요

제가 살고 있는 동네의 집들은 대부분 이런 모습입니다. 저의 카페 맞은편 건물도 저런 기와지붕이죠. 그냥 시골마을입니다. 한집건너 한집이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이고, 최근에는 농사를 직접 짓지 않아도, 이전에는 농경관련 일을 하셨던 어르신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와중에는 간혹 젊은 30대 40대도 보이긴 합니다. 

어제 보니까 저의 카페골목에서 마을입구쪽에 무슨 대형천막을 쳐 놓고 행사를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그 곳에 작은 절이 있어서 종종 절에서 행사를 하거든요. 또 이번에 절에서 행사하나 보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평소 항상 지나다니는 집이었는데, 거기 할머니께서 별세를 하셨더군요.  대략 한달사이에 저의 마을에서, 한번은 가게 오른쪽편집, 이번엔 가게에서 왼편집, 2~3주전인가?는 한골목 돌아서 모퉁이에 있는 집의 어르신이 별세를 하셨습니다. 한달(아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여 만에 마을의 3명의 어르신이 별세를 한 건데요. 

가뜩이나 여기도 인구가 감소하고 빈집이 곳곳에 많은데, 한달여만에 골목길 하나를 두고 3명의 어르신이 별세를 하셨네요. 평소 그 분들이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셨거든요.

지난번 카페 오른편 집에서 상을 당했을때도 그 앞의 절에서 하는 행사인가 하고 가보니 초상을 치르고 있어서 순간 급숙연해졌었거든요.

저는 살짝 당황했었는데, 정작 유족들은 호상이라면서 웃고 저에게 말도 건네주고 해서 이야기 많이 하다가 왔습니다. 

이번에는 위의 사진처럼 왼쪽편의 집에서 어르신이 상을 당하셨습니다. 도시에 살면 한 아파트, 혹은 이웃이 상을 당해도 집에서 장례를 치르지 않기에 상을 당했는지 알 수가 없는데, 이런 시골마을은 집앞에 크게 천막을 펼쳐놓고 장례를 지내니까 바로바로 알 수가 있어서 더 체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장례를 치르는 빈도는 도시의 나의 집 부근이 더 많을지는 몰라도, 도시에서는 이웃이 장례를 치르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저도 이런 시골에 온지 대략 일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최근에 갑자기 추워지고 기온차가 많이 나서 그런건지 어르신 사망이 3건이나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 죽음을 논할 그런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은 하는데,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너무나 큰 후회는 하지 않고 미련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살려고는 하고 있습니다. 

대만스트라이다 동호회분들이 저의 카페를 찾아 주셨습니다

대만에서 스트라이다동호회 사람들과 오랫동안 교류하며 스트라이다를 타오고 있습니다. 타이베이에 있을땐, 저 동호회사람들과 자전거 자주 탔었죠.

올해는 타이중지역 자전거를 타기도 했습니다. 아래에 유튜브링크 걸어봅니다.

대만 각 지역에서 제가 살고있는 운림고속철도역까지 기차를 타고 와서 자전거라이딩을 시작했습니다. 저도 저 때 부터 참가를 하고 싶었는데, 이 앞에 고양이에게 할퀴어져 병원가서 파상풍주사 맞고 하던 순간이 마침 이 분들이 여기 모이는 순간이라 저는 부득이 처음부터 참가를 하지는 못 했습니다.

최근 운림지역의 기온은 온화합니다. 아침/밤에는 약간 쌀쌀함을 느끼는 기온이지만 대체로는 온화한 날씨라 야외활동하기에 딱 좋습니다. 주변에 꽃들이 만개를 해서 꽃향기도 많이 흩날립니다.

여기 운림현의 명물중 한 곳이 호미의 철로에서도 기념사진을 찍었네요.

그런다음 특별히 저의 카페까지 오셔서 음료도 한잔씩 주문을 하셨습니다. 

모두다 저 달고나라떼 맛있다고 극찬을 해 주셨습니다. 대만에서 처음 먹어 보는 맛인데, 너무 맛있어서 집에 싸서 가져가고 싶다고들 하시더군요.

오후에는 제가 가이드를 해서 이 지역에서 유명한 식당에 가서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저는 여기 동호회활동을 대만에 처음 왔을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있거든요. 중간에 대만을 떠난 적도 있었고, 매번 활동을 다 참가하지는 못 해도 단체대화방에서 꾸준히 교류는 하고 있습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함께 동호회활동을 하는 건 좋죠.

그런데 가끔 한국의 커뮤니티의 글들을 보면…

나이가 얼마 이상인데, 동호회나가면 민폐 아닐까요? 나이가 얼마 이상인데 동호회 참가하면 이상하게 볼까요? 라는 글들이 있는데, 나이가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저는 이런 모임에서 나이 물어보지도 않고, 나이엔 별 관심이 없거든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이런저런 인생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그렇지 않으면 이런 사회모임의 지인들도 필요하고, 이런 모임을 통해 사람들과 교류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더군요.

어쨌든 대만 각지에서 일부러 저의 카페를 찾아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저의 집 고양이덕분에 대만에서 파상풍주사를 맞았습니다

저의집 고양이덕분에 대만에서 파상풍주사를 맞았습니다. 
오전에 카페 오픈준비를 하느라 잠시 카페문을 열어놓고 있었는데, 그 잠깐사이에 저의 호미가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3층 전층을 다 뒤졌으나 없더군요. 

이럴땐 중요한 것이
어찌할바를 몰라해야 하고, 당황해야 하며, 허둥지둥해야 합니다.  CCTV 기록을 확인했죠. 잠깐 몇분 사이라서 몇분전 영상을 보니 이 녀석이 슬금슬금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찍혔더군요. 이 때 부터 영상의 방향으로 저와 아내가 동시에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두세번은 둘다 못 찾았습니다. 안 보이더군요. 저의 카페 바로 옆 건물인데 저렇게 폐허로 된 건물이 있습니다. 왠지 동선상 저기 있을 것 같더군요. 저 집안쪽으로 들어가서 호미를 발견하고 찾아 왔습니다. 녀석이 놀랐는지 제가 안으려고 하자 격렬히 반항하고 저를 공격하더군요. 물리기까지 했습니다. 

여기 야외에서 놓치면 다시 못 찾는다는 마음으로 물리든 할퀴어지든 저도 격렬하게 안았습니다.

호미를 찾는 동안 마음속으로 오만가지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도 오래 함께 했었다고 ‘공허’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반드시 찾는다는 마음으로 이동예상동선을 따라 하나하나 뒤져가며 추적을 했습니다. 추적끝에 눈이 마주쳤죠. 

특히 오른손을 많이 다쳤더군요. 그렇게 찾고 나니 이 녀석이 뭘 했는지 온 몸에 흙투성이고 악취도 나고 해서 저의 고양이들 가는 동물병원에서 목욕을 한 번 시키기로 하고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병원에 가서 파상풍 주사를 맞았습니다. 의사분께서 상당히 친절하고 꼼꼼하게 치료를 해 주시고 파상풍주사도 안 아프게 잘 놓아 주시더군요.  
한국의 의사들은 대체로 돈이 안 되는 손님은 대충 본다는 그런 인식이 있어서인지 상처치료를 흡사 학교다닐때 양호선생님이 해 주는 것처럼 꼼꼼하게 직접 해 주시더군요.

무엇보다 놀라운 건, 제가 대만의료보험카드가 있는데, 파상풍+병원치료는 150대만달러(6000원) 그리고 약국에서 먹는약 바르는약은 돈을 받지 않더군요. 보험료에 다 포함이 되어 있다고…

6000원이면 싼 거 아닌가요?

제가 2015년도에 파상풍 주사를 맞았다고 하자, 5년 지났으니까 안전하게 다시 한 번 맞으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2015년도에는 호주에서 파상풍주사를 맞았었거든요.

2015년 호주 에 있을때, 쓰레기봉투내에 있는 깨진유리병에 손이 찢어져서 병원에 갔었죠. 기억은 나지 않지만 병원치료비가 꽤 비쌌던 걸로 기억납니다. 그때 세바늘인가 꼬매기도 했습니다. 사진처럼…

더 놀라운 건…

그 당시 간호사가 한국분이었거든요. 저에게
“여기서 오래 근무를 했는데 한국분은 처음 봤습니다. 여기는 중국계 사람들이 많은 곳인데 어떻게 여기서 한국분을 만나네요” 라면서 오히려 그 간호사분이 더 놀라시더군요.

그러면서 상처 꼬매는날 저에게

“며칠뒤 의사가 붕대 교체해야 한다고 오라고 할 때 저에게 연락을 주세요. 여기 붕대 하나 교체하고도 돈 엄청 비싸게 받아요” 

라고 해서 사진처럼 병원 밖 공원벤치에 앉아 붕대를 교체해 주었습니다. 무료로… 

딱 저렇게 붕대만 새걸로 교체를 해 주는데 돈을 엄청나게 받는다고 같은 한국분이고 여기서 근무를 하면서 처음 한국분을 만나는 거라 도와주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저 당시에는 또 경황이 없어서 그저 고맙다는 인사만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지금 마음같아서는 찾을 수만 있다면 식사대접이라도 해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세월이 좀 지나서 이제는 저 병원에 안 계실 수도 있겠네요.

최근 두번 맞은 파상풍주사를 모두 해외, 한번은 호주,이번엔 대만에서 맞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호미를 찾고 있던 그 순간 만감이 교차를 하더군요. 평소에 늘 함께하던 저의 고양이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간절히 느끼게 되었고, 앞으로는 카페문을 열어 놓을때 좀 조심을 해야 겠습니다. 

단골손님 미국인학생으로부터 체스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저의 카페 단골인 저 미국인 학생이 저에게 체스판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크리스마스선물겸 주는 거라고 하는데요. 이 친구가 저의 카페에서 몇 번 대만식장기와 체스를 두었습니다.  장기둔 이야기도 얼마전에 차이컬쳐에서 소개를 해 드렸었는데요(보러가기)

예상치 못 하게 체스선물을 받으니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체스판도 목재로 만들어져 있어, 실제로 보면 싸구려 느낌이 나지 않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저의 카페손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고, 지난번 말레이시아소녀의 선물 이후로 참 기분이 좋습니다.(보러가기) 선물은 줄때도 기분이 좋다고 하지만 받아도 기분이 좋네요.

저 친구가 미국에서 이공계쪽 박사과정 밟으면서, 지금은 국비로 대만에서 영어도 가르치며 중국어도 배우고 있는데요.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뭔가 체계적이고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단어를 하나 암기하더라도 수식표를 만들어서 그걸로 암기를 하고, 무언가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면 엄청 체계적으로 깊이있게 파고드는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박사과정을 밟는 거겠죠. 
저에게 이전 체스세계챔피언이었던 소련사람이 쓴 책도 pdf파일로 보내 주고, 유튜브채널, 체스강의 싸이트도 알려 주더군요. 체스강의싸이트의 경우 기물의 이동에 따른 승리확율도 실시간으로 계산을 해 주어서 내가 이동한 수가 좋은건지 나쁜건지도 바로바로 알려주어 좀 더 체계적으로 학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유치원생때 장기를 배울때는 그저 주변 어른들로 부터 어깨너머, 훈수, 사람대사람 이런 식으로 장기를 배운 것에 비하면 지금은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한국장기, 중국식장기에 이어 이제는 서양식체스를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7년전에 대만친구와 대만장기를 둔 사진입니다. 결과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제가 이겼을 것 같습니다. 

정말정말 평범한 태국시골마을 풍경. 특별한 것 없음 주의!

작은 역이 있는 태국의 보통 시골마을 입니다. 인구가 많지도, 특별히 관광상품이 있어 외부관광객도, 그렇다고 특출난 산업이 있어서 자체적으로 산업이 발달한 그런 곳도 아닌 그저 평범한 보통의 마을입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학생과 어른 한 명이 자전거를 끌고 철길을 따라 가고 있습니다. 기차에서 내려 철로를 따라 가는 것이 더 지름길이니까 저렇게 철로를 따라 가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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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보이는 역사도 아주 작고, 주변도 한가합니다.

앞쪽에 바퀴가 두개인 자전거를 끌고 가는 모습입니다. 병콜라가 두박스 실려 있습니다. 

주차를 해 두고 마을을 걸어 보았습니다. 원래 이런건지 상점의 수에 비해서 거리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토요일 오후였음에도 말이죠. 

우의를 비롯해서 여러가지 상품을 파는 잡화점도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대만의 시골지역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탈 때는 헬멧을 씁니다. 하지만 태국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헬멧을 쓰지 않습니다. 

대만에서는 골목길에서 오토바이를 바로 옆으로 옮길때도 헬멧을 쓰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헬멧은 잘 착용합니다. 물론… 여기 시골사람들 중에는 헬멧 없이 근거리를 이동하시는 어르신도 계십니다. 특히 옆집아저씨…

무슨 가게인지는 모르겠지만, 손님인지 주인인지 모르겠는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문을 닫은 가게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사실 이런 장소의 가게는 모서리 부분에 있어서 무언가 장사를 하기에 좋아 보이는데요.

제가 대만 여기 시골지역에서 가게를 하나 구하려고 거의 3개월 동안 골목골목 돌아다녔었거든요. 적당한 가게를 구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당연히 큰 도로 옆 번화가에 가게를 구하는 것이 유동인구가 많지만, 거기는 월세도 많이 비싸고, 경쟁도 더 심합니다. 

가게 구할때 마음에 드는 곳이 한 곳 있었는데, 월세가 지금 여기보다 5배 더 비싸더군요.

태국의 시골지역은 이런 2층 건물을 임대하는데 크게 비싸지 않습니다. 제가 태국에서 가게를 보러 좀 돌아다녔었는데요. 아마 이런 2층 건물 전체 빌리는데 제 추측으로는 3000밧(120,000원) 이하 일 것 같습니다. 

태국북부 어느 시골 대학가 주변에 이런 큰 가게 월세를 물어 본 적이 있는데, 1500밧 정도여서 살짝 놀랐죠. 1000밧에 37,000원 정도니까요. 월세가 저 정도면 뭔가 해 볼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워낙 시골이라 유동인구가 적습니다. 

팝콘을 현장에서 만들어 팔고 있길래 한 번 사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런 맛은 아니더군요.

중요한 팝콘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손에 파리가…

벽돌 2개를 받쳐 놓은 테이블이 살짝 불안해 보이긴 합니다. 옷수선을 하는 가게인 듯 보이네요.

야자열매를 판매하는 가게도 보입니다. 

이런 시골에 가보면 동네젊은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많이 돌아다닙니다. 한국의 시골은 이런 젊은 사람이 적은데, 태국은 아직까지는 젊은 사람들을 ‘한국보다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태국 처음 와서 주택가를 돌아 보았을때, 집집마다 저 해먹이 있어 참 독특하다 생각했었는데, 여기는 야외에서 해먹에 낮잠을 잘 환경이 잘 되어 있습니다. 여름에 아무리 더워도 그늘에서 해먹에 누워 있으면 어느 정도 선선해 지거든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보면 도시에 살면서 경제적인 문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또, 인터넷 커뮤니티에 보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저도 30대에는 그런 도심의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도 없었고, 방법조차 몰랐죠. 

당연히. 마땅히 도시에서 그렇게 살아야 하는거라 생각을 했었거든요. 하지만 세상을 좀 둘러 보니 세상에는 다양하게 사는 사람들이 보이더군요. 소위 한국의 기성세대가 말을 하는 ‘대학가고, 사무직 대기업 들어가고 차도 어느 정도 급이 있는거 사야하고, 집도 서울의 아파트를 사야하고… 아기도 낳고(이제 아기 낳는건 많이 바뀌어 가는 것 같더라구요)… 명절에 제사 꼭 지내야 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기성세대들이 하는말,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말들을 다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람들도 모르고, 그 사람들도 지혜롭지 못 합니다. 나이가 많다고 그 사람들이 다 맞는 것이 아니거든요.

이 넓은 세상에서 한국은 특히 남한은 저 작은 면적입니다.  신토불이… 라고 하면서 우리 몸에는 우리 농산물이라며 하는 광고… 신토불이 같은 소리 하고 있죠. 어떻게 저 좁은 땅에서만 나는 음식만 먹고 살 수 있나요? 한우가 가장 맛있을 것 같은 마케팅… 성공한 듯이 보이죠. 비싸게 팔 수 있으니까요. 제가 다른 나라에서 여러 쇠고기 먹어 보았는데, 한우와 구분 못 합니다. 아마 여러 고기 섞어 놓고 블라인드테스트 하면 대다수는 구분조차 못 할걸요.

뚜렷한 사계절이 있어 좋은 금수강산…  지금은 점점 2계절화 되어 가고 있고, 겨울이라고 꼭 영하10도가 될 필요도 없고, 겨울에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곳도 수두룩 합니다. 그런 나라는 자연경관이 안 좋나요? 중국운남성 같은 경우는 일년내내 거의 한국의 봄/가을 정도의 기후대인데 살기가 정말 좋더군요. 살면서 혹한의 겨울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더 고통의 기간이더군요.

세상을 넓게 보고, 꼭 한국의 대도시라는 그 좁은 곳에서 살다가 살다가 힘들면 벗어나서 다른 곳에서 살아도 됩니다. 최근에 경제적인 문제로 자살한 사람들의 기사를 보니 안타까워서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 기성세대 말들 다 들을 필요 없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다 현명한 것도 아니고, 나이가 많다고 다 철이 드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많다고 그게 다 양질의 좋은 경험으로 축적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나이만 많다고 존경받으려는 그런 사회가 더 건강하지 못 한 사회가 되는 겁니다. 내 생각대로 인생 마음 편하게 사세요.

집에서 키운 양을 갓잡아서 오토바이에서 내다팔고 있는 동네주민 모습

아침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에서 누군가가 고기를 팔고 있더군요. 저렇게 생고기를 썰어 파는 모습은 낯선 모습이 아닌데, 오토바이 위에 놓고 소량을 썰어 팔고 있길래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거라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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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근처 이 나무 아래에는 저 옆에 보이는 조식파는 스탠드만 있는데, 오늘은 저렇게 고기를 썰어 팔고 있었습니다. 
물어보니 인근 농장에서 직접 키운 양을 갓잡아서 냉동시키지 않고 내다 파는 것이라고 하네요. 고기를 사시는 분께서 저를 알아 보시고는 (작은 동네라 많은 분들이 저를 알아 보십니다. 한국사람이라서요)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시더군요. 한국에서도 양고기를 먹냐 라고도 물어 보시더군요.

외부시장에도 양고기를 팔지만 거기는 잡은지도 오래되고 유통과정중 냉동을 시켰다가 파는 것이라 이 아주머니의 양고기를 더 선호한다고 했습니다. 저렇게 내다판지가 10년이 넘었다고 하시네요. 

저의 카페 부근에는 저런 나무아래에 토지신을 모신 곳이 몇 곳 있습니다. 

저도 양꼬치를 좋아합니다. 중국에 있을때는 자주 먹었죠. 특히 중국으로 출장가면 첫날 저녁은 가급적 양꼬치를 먹으러 갈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혹시라도 신장지역 사람들이 운영하는 양꼬치집이 있으면 갈 만합니다. 거기는 양꼬치를 제대로 해 주거든요. 제가 몇 군데 가서 물어보니 자기들은 양을 신장지역에서 직접 공수해서 판다고 하더군요. 

아침부터 양고기를 보니 갑자기 또 양꼬치가 생각이 납니다. 

오늘 아침에 아주 살짝 빗방울이 흩날렸습니다. 비가 내릴것 같아 고고로와 스트라이다를 가게처마 안 쪽으로 들여 놓기도 했는데, 비가 살짝 흩날리다 그쳤네요. 그래도 날씨가 흐리니까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아주 화창하고 맑은 날보다는 구름이 많고 바람이 좀 부는 날이 더 좋습니다. 

태국의 어느 독특했던 지방도시의 절 풍경 (12월5일은 태국의 휴일입니다)

태국의 절들은 대체로 황금빛의 화려한 형태가 많습니다. 이 절은 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황금색의 화려함 보다는 소박하면서 독특한 색상이 인상적인 그런 형태의 절입니다. 약간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그런 느낌의 절이라 소개를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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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은 어느 작은 도시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대형 불상이 있고, 그 입구에 보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물이 있습니다. 태국에서 이런 건물 구조물에 그물을 쳐 놓은 이유는 대체로 새들의 진입을 막으려는 것입니다. 건물 외벽에 그물을 그냥 휘감아 놓은 곳들도 보이죠. 새들이 똥을 너무 많이 싸니까 이해는 됩니다. 

문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의 모습이 특색있습니다. 눈을 부릅뜨고 있으며, 하나는 황금색 장식을 머리에 두르고 있고, 하나는 검은색 머리입니다. 
멀리 보이는 구름의 모습이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그런 구름의 모습입니다.  

이 절은 태국식의 형태가 있으나, 구석구석 중국풍의 느낌이 있습니다. 비단 한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건축물의 모양이나 색상, 장식등이 뭔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구나 라고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기존에 중국식 절이나, 태국의 절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색상과 형태가 또다른 볼거리 입니다. 또, 절도 규모가 엄청 커서 천천히 돌아 보기에도 좋습니다. 

이런저런 장식도 많아서 볼거리가 많은데요. 이 절은 외부도 외부지만 내부의 모습이 인상적이더군요.

내부에 벽화들이 색감이 오묘합니다. 그리고 위 마지막 사진의 저 자리에서 바깥편에 있는 탑의 중간쯤에 중요하다고 하는 불상이 놓여져 있어서 그 불상을 보며 기도를 하는 모습입니다. 
절 내부 외에도 바깥에 이런 저런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요.

함께 갔던 태국친구는 각 불상들의 의미를 알고 기도를 하는건지… 저렇게 돌구멍내에 있는 불상에서도 기도를 하는 모습입니다. 
태국사람들은 주기적으로 절에 가서 기도를 합니다. 

또 다른 부처에게도 기도를 하는 하는 태국친구의 모습입니다. 기도를 정말 간절하게 합니다. 
저는 무교라서 이런 곳을 오면 마음을 편하게 하고, 좋은 기운 받아가고 그 정도이지 기도를 한다고 내 소원이 이루어지고, 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내가 하는 일이 안 되고 이런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 태국친구의 생각은 저와 다른 것 같더군요.

저 동그랗게 생긴 물건은 중앙부위를 계속 문지르다 보면 큰울림의 소리가 납니다. 간절히 문질러야 큰울림의 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그건 간절함과는 상관없이 물체의 주파수 공명현상과 상관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문지르다 보면 소리가 크게 나는 겁니다. 공명현상을 알든 모르든 상관 없습니다. 그냥 내가 기도를 해서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믿음을 가지며 긍정적으로 살면 되는거죠.

당시 어딘가에 영상을 찍어 둔 것이 있었는데 못 찾아서 올리지 못 한 것이 아쉽네요. 그래서 소리는 나지 않지만…

마지막 동영상은 오늘 12월 5일 저의 태국친구가 절에 갔다가 보내준 영상입니다. 장난친다고 우는척하며 저렇게 영상을 찍었는데요. 실제로는 사람들은 경건하게 저 철판을 문지릅니다. 언급했듯이, 저렇게 우는척하며 문지르든, 경건하게 문지르든, 간절하게 문지르든 상관없이 공명주파수가 맞아야 소리가 나는 겁니다. 오늘 12월 5일은 King Bhumibol’s birthday 태국의 휴일입니다. 그래서 태국친구들도 절에 가서 기도를 했더군요.

그 외에도 대형 와불이 있습니다. 

오늘은 태국의 어느 지방도시에 있는 특색있는 절에 대해 소개를 해 보았습니다. 

본문 영상에서도 언급을 했듯이, 오늘은 태국의 휴일이라 몇몇 태국친구들도 절에 가서 기도를 하고 사진을 보내 왔습니다. 아래 오늘 12월 5일 태국친구들이 절에서 보내온 사진 올리며 마무리 해 봅니다. 

제가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며 느낀 건, 내 행복은 다른 사람이나 신 같은 존재가 주는 것이 아니더군요. 

나의 행복은 내가 만들어 가야 하는거고, 그게 보통은 외부의 물질적인 만족으로 부터 행복을 얻기는 어려우니까 내면의 자각으로 부터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쉽습니다. 

내 생각이 바뀌고 주변의 소소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행복을 느껴야 하는 겁니다. 

보통 사람은 매달 해외여행을 나가기가 쉽지 않죠. 그렇다고 일년에 한번씩 해외여행을 다니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해외여행 한 번 가는 것에 모든 의미를 두고 수년간 희생했다가 해외여행 며칠 다녀 온다고 인생이 크게 행복해지거나 바뀌지 않습니다. 몇 년에 한 번가는 해외여행에서 행복을 찾는 것 보다는, 저녁에, 주말에 내가 사는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고 구경해 보는 것부터 시작하다보면 내 일상이 어느새 여행을 하고 있는거죠. 저의 차이컬쳐 여행사진들을 보면 자칫 해외여행 엄청 자주 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는 해외살면서 주말에 집에서 빈둥거리지 않고 가까운 곳 부터 부지런히 가는 겁니다. 내가 사는 곳 주변도 잘 안 돌아다니면서 해외여행 한 번 간다고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듯이 말이죠. 

주말에 내가 사는 주변부터 돌아다니며 여행을 해 보세요.

어떤 종교를 믿든, 종교가 없든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내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말레이시아소녀가 일본에서 보내준 선물

며칠전 국제택배를 받았습니다. 일본에서 배송이 된 건데요.
가끔 살면서 이렇게 국제택배, 국제우편을 받으면 기분이 특별하긴 합니다. 

저의 말레이시아친구가 일본으로 신혼여행 갔다가 일본에서 저희에게 선물을 보내 준 겁니다. 

저기 가장 왼쪽에 싱가포르 에스프레소잔도 이전에 저 말레이시아소녀가 선물로 보내준 거고 지금도 아침에 에스프레소 마실때 잘 사용중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커피잔 선물을 받아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이 말레이시아소녀…  지금은 애엄마가 되었어도 저에겐 여전히 소녀의 이미지만 있습니다. 이 친구는 2015년경 처음 대만에서 만났었죠.

2015년 대만에 놀러온 아는 동생과 천등날리기로 유명한 스펀에서 스쿠터를 타고 스펀폭포를 갔었습니다. 분명 출발을 할 때는 저렇게 맑은 날씨였는데, 한시간쯤 둘러보고 돌아올 때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더군요.

그래서 쏟아지는 비를 피하려고 지붕이 있는 곳을 들어가려 하다가 도로변에 간단한 음식을 파는 천막형 노점이 있길래 거길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랬는데, 아래 사진처럼 비옷을 입고 비를 피하고 있는 소녀가 있더군요. 그래서 자연스레 이야기를 했습니다. 혼자서 여행을 왔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저 장소에서 헤어졌는데, 그 다음 장소에서 또 마주쳤습니다. 그런데 그 때 보니 저 소녀의 옷 뒤쪽이 튿어져 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있고 있던 셔츠를 벗어서 위에 걸치라고 주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한국의 그 동생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함께 여행을 제안했고 함께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날 타이베이에서 만나 제가 운전을 하고 한국에서 온 저 동생과 말레이시아에서 온 저 소녀와 함께 대만중부 자동차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저 때만해도 뭔가 저 녀석과 저 소녀가 잘 되기를 기원하며 여행을 했습니다. 

중간에 난팡아오 라는 항구에 들러 해산물도 먹고, 화련도 갔다가…

마침 저 시기가 六十石山이라는 곳에서 원추리꽃이金針花 만개했던 때라 저기를 함께 가 보았습니다. 

참고로 저기 돌석 石 의 병음은 [shi] 이나 저 단어에서는 [dan] 으로 발음이 됩니다. 

보통 8월에서 9월사이에 만개를 하니 그 시기에 맞추어서 가시면 좋습니다. 
화련에서도 남쪽으로 한시간정도 차로 이동을 해야해서 타이베이에서 당일치기를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는 곳이며 화련정도에서 1박을 하는 일정이 적절해 보입니다. 

당시에는 소녀였는데, 세월이 금방금방 지나가네요. 지금은 애를 키우는 애엄마가 되어서 신혼여행 갔다고 선물도 보내주고…

원래 저 소녀가 살고 있는 싱가포르 그리고 고향 말레이시아를 한 번 가려고 했었는데, 그 동안 코로나 때문에 무산되었었죠.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저 소녀의 애기도 볼 겸, 말레이시아 두리안도 먹을겸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제가 두리안 좋아하는데 말레이시아 두리안이 그렇게 맛있다고…

제가 두리안은 엄청 잘 먹는 편인데, 딱 두번 두리안 먹다가 몸에 이상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싱가포르 길거리에서 가장 강하다는 두리안을 먹었는데 먹고 나니까 뭔가 머리가 핑 돌면서 몸이 좀 이상한 느낌이 들더군요. 주인이 물 많이 마시라고 계속 물을 주더군요.

두번째는 태국에서 처음으로 두리안 농장가서 뷔페형태로 두리안을 먹었는데, 그 비싼 두리안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니 하면서 짧은 시간동안 엄청나게 먹었는데, 일어서니까 뭔가 머리가 핑 돌면서 좀 어지럽더군요.

당시 싱가포르 두리안가게 주인이 ‘절대로 술이랑 먹어서도 안 되고, 레드불 같은 에너지드링크류와 함께 마셔도 위험할 수 있다. 그리고 너무 많이 먹지 마라’ 라고 했었거든요.

오늘 일요일 오전… 

그 말레이시아소녀가 보내준 차를 따뜻하게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일요일오전에는 저의 카페에 부모와 자식이 함께 와서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오늘은 두팀의 부모자식이 와서 각각 1층, 2층에서 함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말레이시아소녀의 이전 사진들을 보니 시간이 금방 흘러가는 느낌이네요.

태국 주택가의 시장통 모습. 인력거와 토스트

여기는 태국 방콕의 어느 주택가에 있는 골목입니다. 관광지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택가옆에 형성된 시장골목인데요. 태국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선들 입니다. 엄밀히 말을 하면 전기가 통하는 전선은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낮은 곳에는 통신용 케이블이 형성이 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하는 일에는 실수가 있을 수 있고 부주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함부로 저런 전선에 접촉을 하면 안 됩니다. 

얼마전에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저런 인력거를 타고 마을을 돌아본 적이 있는데요. 여기는 주민들이 실제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삼륜인력자전거 입니다. 

사람을 태우기 위한 영업용 삼륜자전거도 있지만, 저렇게 개인의 이동용도로 개조한 삼륜자전거도 있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이륜자전거가 당연하게 생각이 되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륜자전거가 타기 어려울 수도 있거든요.

당연히 태국에는 이런 뚝뚝이도 보편적인 교통수단입니다. 인력거는 인력거 나름대로의 틈새수요가 있으니까 공존을 하고 있는 거겠죠.

또, 앞쪽에 2개의 바퀴가 있는 삼륜차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강아지를 태우고 가는 모습이고, 맞은편에는 통상적인 형태의 뚝뚝이 오고 있습니다. 

 

이런 시장통은 차량보다는 이륜, 삼륜차가 더 편리할 수 있습니다. 

제가 대학생때 새벽에 시장에 1톤 혹은 1.4톤 트럭으로 소매상에 과일배달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 때는 트럭으로 시장통 가게 입구까지 가서 과일박스 배송해 주는 일을 했었는데, 딱 저렇게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다녔습니다.  부산 중심가에 부전시장 인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시장이름들도 가물가물 하네요.

인력거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가끔 저는 인터넷에서 직장생활이 미친듯이 힘들다. 회사 다니는 것에 대한 정신적스트레스가 극심하다. 회사에서 인간관계로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 마다 정말 인생이 그렇다면 굳이 ‘그 회사’를 다녀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에는 다양한 길이 있거든요. 얼핏보면 인생은 하나의 목표지점이 있는 것 같지만 사람마다 그 목표가 같을 필요도 없고, 비슷한 목표지점을 반드시 많은 사람들이 가는 그 길로만 갈 필요도 없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 목표지점을 10년에 가야 성공이라고 해도 15년 20년에 걸쳐 갈 수도 있는거죠.

자꾸 사람들이 인생에 대해 고정틀을 짜고 그게 아니면 실패, 낙오라고 하니까 그런거지. 내가 왜 나의 인생을 남의 재단에 맞추어 살아야 합니까? 

직장생활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정말정말 힘들면 잠시 내려 놓고 다른 일을 하며 천천히 가도 되지 않나요?  

생선을 팔고 있는 모습입니다. 휴일오전 나와서 찬거리를 사는 사람들로 시장은 복잡합니다. 

태국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먹고 있는 개구리도 있습니다. 

저는 어릴적 시골에서 개구리를 먹었습니다. 개구리를 그냥 손으로 잡기도 하지만, 실 끝에 호박꽃의 수술을 매달아 풀숲에 내려 놓고 흔들면 개구리가 그걸 뭅니다. 그러면 허리를 잘라내고 허벅다리 만 야외에서 구워 먹습니다. 

태국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먹고 있는 개구리도 있습니다. 

저는 어릴적 시골에서 개구리를 먹었습니다. 개구리를 그냥 손으로 잡기도 하지만, 실 끝에 호박꽃의 수술을 매달아 풀숲에 내려 놓고 흔들면 개구리가 그걸 뭅니다. 그러면 허리를 잘라내고 허벅다리 만 야외에서 구워 먹습니다. 

저의 카페에도 저런 두꺼운 토스트를 팔고 있습니다. 저희는 전기오븐에 구워서 제공을 하는데, 저렇게 직화방식으로 구우면 더 맛있을 것 같지 않나요?

그래서 저도 사 먹어 봅니다. 소스통도 두껑이 없이 저렇게 열려 있고, 자세히 보시면 토스트 올려 두는 곳에 돈이 올려져 있고, 토스트도 집게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뒤집고 있어도 이런 곳에서는 또 이런저런걸 다 가리다 보면 먹을 수 있는게 없습니다. 또, 돌이켜 보면 중국에서 생활할 때는 더 지저분한 길거리 음식들도 먹으며 살았는데요.

가장 압권은 2000년 여름 상해 외국어대학교 부근 당시 4위안짜리 저녁 먹고 엄청난 장염에 걸려서 병원가서 100위안 넘게 쓴 추억인데요. 당시 돈 아낀다고 천막으로 된 정말 지저분한 길거리 식당에서 계란이 있는 밥을 먹었는데, 그 날 밤… 설사와 함께 배가 너무 아파서 말도 안 통하는데 주변 사람에게 병원 물어서 병원까지 혼자 기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병원에 도착을 했는데도, 말은 안 통하지 어떻게 수속을 하는지도 모르겠지, 배는 아프고 설사 계속 나고… 그 때가 아마 밤 12시 경이었을 겁니다. 또 그 당시 너무 더워서 샤워하고 천장에 매달려 있는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잠시 낮잠을 잤는데, 여름에 감기까지 걸려가지도 몸에 오한도 나고… 그게 상해외국어대학교 내에 있는 ‘초대소’ 같은 저렴한 다인용 여관이었습니다. 무튼 그런 기억이 있어도 인간은 망각을 하게 되고 또 저런 음식을 사 먹어 봅니다. 

오늘 제가 있는 대만중부 지역은 아주 살짝 비도 흩날리며 구름이 좀 많은 날씨입니다. 최근 오랜기간동안 맑은 날씨만 지속이 되어 살짝 비가 그리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주에 짧게나마 비 소식도 있어 기대를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