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만/한국인의 카페배 체스대결

며칠전 저의 카페 단골고객과 서양장기, 체스를 두어서 2:1로 이겼다는 글을 올렸는데요.(그 글 보러가기)

어제 다시 복수매치를 했습니다. 그 단골손님이 체스 잘 하는 자기 친구를 데리고 오겠다고 했는데, 정작 그 친구는 오지 않아서 저의 미국인손님과 몇 수 두었습니다. 

실력은 저 미국인손님이 가장 월등합니다. 제가 아직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 최근에 유튜브를 보면서 조금 연습을 했더니만, 어제는 약간의 긴장감을 주는 순간이 있긴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에게 2:1로 졌던 손님이 다시 저와 한판 두었는데요.  또 제가 이겼습니다. 일단 저 손님보다는 아주 미세하게 제가 실력이 나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손님은 체스를 둘 때 살짝 안 좋은 습관이 있더군요. 기물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 놓는 습관은 별로 좋은 매너가 아닙니다. 뭐 어쩌다 한두번은 그럴 수 있지만 매번 들었다 내려 두면 좀 그렇죠.

현재 체스를 배우면서 가장 헷갈리거나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기물이 ‘대각선 이동’ 이 가능한 비숍과 퀸 인데요. 아무래도 한국장기에서는 이런 기물이 없어서 아직은 비숍과 퀸에 기물이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장기, 중국장기, 체스 이렇게 두어 보니 체스와 한국장기는 재미있구요. 중국장기는 조금 재미가 없습니다. 중국장기는 상象이 적진을 넘어서 공격으로 사용할 수 없고, 병/졸 이 자기 진영에서 좌우로 움직일 수가 없어 진법의 다양성이 좀 많이 떨어지더군요. 가뜩이나 장기가 바둑에 비해서 수의 변수가 적어 단조롭다 여겨지는데 병/졸마저 본진에서 좌우로 못 움직이니까 더 전술이 더 단조로워 지더군요. 

체스는 아직 초보자라 뭐라 평가할 단계는 아닙니다. 한국장기와는 달리 체스는 글로벌하게 다양한 외국인들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더군요.

언젠가 저에게 체스를 가르쳐 준 저 미국인손님을 이길때까지 연습을 하겠습니다. 

대만 장기판에 적힌 중국어 내용

저의 이웃집 저 자리에 종종 주민들이 앉아서 이야기도 하고, 담배도 피고, 간단히 음식도 먹곤 합니다. 특히 휴일오전에는 높은 가능성으로 저기 사람들이 앉아 있죠. 대만 시골지역 집들을 보면 집 앞에 의자를 두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장기판형 테이블이 있는데요. 저는 늘 중국어와 한자에 대한 공부를 하는 입장이라 어떤 문구가 적혀 있나 유심히 보았습니다. 

중화권의 장기판은 중앙을 강江 또는 하천河 으로 묘사해 둡니다. 보통 저기 한자가 있는 부분에 강/하천 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데 여기는 뭐라고 문장이 적혀 있네요.

棋中不講真君子 ‘장기를 두는 중에 말을 삼가하는 것이 참군자 이고’

起手無回大丈夫 ‘기물을 움직인 후 물리지 않는 사람이 대장부 이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棋中不講真君子 ‘장기를 두는 중에 말을 삼가하는 것이 참군자 이고’

그런데, 이 문장에서 말을 하지 않는 주체가 누구일까요? 장기를 두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구경하는 사람이 훈수를 하지 않는 걸로 이해를 합니다. 

한국에도 이전에는

장기판에서 함부로 훈수두지 말라 라는 말이 있었거든요. 비단 장기판뿐만 아니라 남의 인생에 오지랍 넓게 훈수두는 사람들이 많죠. 훈수 두는 건 쉽죠. 내가 책임 안 져도 되니까요.

이런 장기판에서도 ‘함부로 훈수두지 말라’는 교훈을 남겨 줍니다.  

起手無回大丈夫 ‘기물을 움직인 후 물리지 않는 사람이 대장부 이다’

이 문장도 한국에서는 ‘일수불퇴一手不退’ 라는 용어가 있죠. 장기 두다보면 두고 나서 한수물려 달라고 습관적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 

뭐 장기 바둑이야 ‘물리적’ 으로 한수 물릴 수 있지만, 정작 인생은 그렇지 않죠. 그 당시 잘못된 선택과 판단으로 지금 내 인생이 더 잘 못 되었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살다보면 인생의 한수 를 물리고 싶다고 생각이 들때가 있죠.

슬기로운 대만카페생활

요며칠 여기 주택가에 중장비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얼마전 그어 놓은, 사실은 살짝 파 두었던 선을 따라서 땅파기를 시작했습니다. 

저의 카페손님중에 여기지역 두육시斗六市 분들도 오시는데요. 평생 살면서 이 골목안쪽은 처음 와 본다는 분들이 거의 대부분이거든요. 그만큼 별일없는 주택가골목에 별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통행도 제한이 되어서 외부차량이나 오토바이가 들어오기도 어렵게 되어 있고, 분진도 많이 나고 무엇보다 소음이 심합니다. 

그래서 주민분들의 생활에도 불편함이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일단 영업에 영향이 있으니 어서 빨리 끝나기를 바랍니다. 

카페 바로 앞을 파다보니 진흙 등이 유리에 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장사가 잘 되면 잘 되나 보다. 이런걸로 장사가 잘 안 되어도 ‘코로나 때보다는 낫지 않냐?’ 라는 마음으로 지내니 훨씬 낫습니다.

30대때 중국에서 개인사업을 할 때 참 화를 많이 내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납품하는 업체에게도 화를 많이 냈고, 매출이 잘 안 나오거나 하면 저의 직원들에게도 화를 냈고,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 왔거든요. 거의 평생을…

그 당시에는 그게 ‘열정’ 이라 생각을 했었고, 무엇이든 ‘열심히’만 하면 성공을 한다고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경험이 쌓이고 쌓여 어느 정도 세상을 보는 눈이 트이다 보니 순간순간 일희일비 할 필요가 없더라구요. 그런다고 더 잘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시정부에서 계획된 작업이라 제가 뭐 어찌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요며칠 마음 편하게 지내니까, 또 그 와중에 손님들이 계속 와 주시더군요. 외부에 소음이 많은데 괜찮냐 물어보니 손님들 모두 상관없다면서 와 주셨습니다. 

어떤 손님들은 이어폰 끼고 영상을 보기도 했구요.

위의 유리창 옆 손님은 소음이 심한데도 상관없다면서 저 자리에 앉아 커피를 즐겼습니다. 

흥미로운건 중장비들이 땅을 파고 특히 위의 저 장비는 엔진이 돌아가는 엄청난 소음+진동을 내고 있음에도 이웃주민들과 아이들은 의자까지 들고 나와 공사하는 모습을 보고, 파낸 돌과 흙으로 장난을 치는 모습입니다. 

저도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습니다. 달리 생각하니 정말 재밌는 경험입니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뭔가 잘 될때 보다는, 뭔가 잘 안 될때 더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나중을 위해서 중요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무엇이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반평생을 마음깊은 있어서 뭔가 잘 안 될때면 조급하고 화가 났는데, 그런다고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더군요.

최근에 코로나사태만 보더라도, 저는 정말 감사하거든요.

2008년 미국발금융위기 왔을때는 타격을 너무 많이 입고, 손실도 너무 많이 봤는데, 코로나기간때는 해외에서 월급쟁이 생활하면서 별 타격없이 오히려 더 잘 지내며 코로나를 넘겼거든요. 반면 분명히 코로나기간때 정말 어려운 시간을 보내신 분들이 계실겁니다.  제가 2008년도에 그랬던 것 처럼 말이죠.

작업인부들이 점심식사후 저의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해 주셔서 더 감사하더군요. 아마 작업을 하면서 저의 카페를 계속 보다가 ‘음료하나 시켜 마시자’ 라고 한 것 같습니다. 

마음을 좀 편하게 가지고, 인생을 사는 것도 하나의 지혜입니다. 저는 이전에 그렇게 하지 못 했던 것 같고, 값진 경험이 쌓이면서 차차 배웠습니다. 인생이 조금 힘들때는 유튜브에서 ‘법륜스님’ 강의를 많이 들었습니다. 도움이 많이 되더군요. 

인생을 나태하고 게으르게 살아라는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요인을 만나게 되면 그걸 받아 들이고 슬기롭게 넘기는 법도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내 생각대로 안 되는 일들이 훨씬 더 많다는걸 알아야죠.

그리고 카페 준비를 하면서 저 유리를 주문제작 했었는데요. 소음을 더 잘 막아주는 두꺼운 유리로 구입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다 어차피 이 카페는 내 집이 아니고 ‘임대’ 이니까 저렴한 기본형으로 하자고 해서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10mm 짜리로 했거든요. (더 두꺼운건 샤시주인아저씨가 비추 하시더군요. 비싸다고)

그런데 확실히 유리 두껍고 샤시방음 잘 되는건 도움이 되긴 합니다. 저는 나중에 제 집을 보유하게 되면 샤시와 유리는 아주 좋은 걸로 할 예정이거든요.

이전에 제가 일했던 사무실 유리가 정말 두꺼운 것이었는데, 밖에 태풍 비바람이 쳐도 내부에서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방음효과가 좋았습니다. 

지금 이 지역에서 하는 작업이 노후상수도관 교체 작업인데요. 어떻게 교체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단수가 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상수도 문제로 인해 저녁영업은 하지 않습니다”

라고 붙여 놓고 쉬는 모습입니다. 정작 이 가게는 공사구간에 있는 식당도 아니고 단수도 되지 않았음에도 말이죠.

대만자영업은… 정말 쉬는 날도 많고, 업무시간도 짧고 참 부럽습니다. 

저는 월요일 1회 휴무를 하는데, 일주일에 1회 휴무로 몸이 버티냐? 2회 쉬어야 하지 않냐? 라고 저에게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구요. 심지어 10시부터 8시까지 영업을 하는데, 하루 업무시간이 너무 긴거 아니냐는 사람도 있습니다. 휴무일에는 8시~8시 까지 하는데요.

특히 자가건물인 자영업자들은 일주일에 4일 정도만 영업을 하는 곳도 있습니다.  장사가 부업인가 라는 생각이 들죠.

저의 카페 앞도로 파헤칠때 임시휴무를 할까 살짝 고민도 했었는데요. 하루라도 더 열면 우리 고양이들 사료값이라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냥 열어두고 있습니다. 

어제 4월 20일, 고양이 두녀석 입양한지 1주년이라 생일상도 차려 주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고양이 세녀석 식대가 저보다 더 많은 듯 하구요.

저도 평소 아까워서 못 먹는 참치캔인데, 저 녀석들은 매일 하나씩 먹더군요. 심지어 저도 장이 안 좋아 유산균 먹고 싶은데도 못 먹고 있는데, 심지어 유산균까지 별도로 먹고 있습니다. 저 녀석들…

최근 대만에는 여진이 많습니다. 이 글을 쓰는 오전에도 손님들과 카페의 전등이 흔들릴 정도의 지진을 느꼈습니다. 

저의 대만카페 단골손님 이야기

대만 지방 시골마을에서 카페를 하고 있다보니 사람들이 대체로 친절하고 다정합니다. 제가 운이 좋아 그런 사람들만 만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시보다는 그렇게 사람들이 날이 서 있다든지, 화가 났다든지 하는 경우는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오늘 한국뉴스에 어느 카페에서 빨대를 안 넣어 주었다고 찾아가 진상을 부렸다는 기사도 있고, 시식용 빵을 집에 있는 자기 애들 주겠다며 싸 달라는 부모도 있고… 일부이긴 하겠지만 그런 뉴스를 보고 있으면 도시를 빠져 나와 이런 곳에서 살고 있는것이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터넷상에서 보는 ‘소설같은’ ‘주작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내 회사에 내 주변에 있다는 것이 문제이죠. 

최근에 넷플릭스 드라마 ‘3 body problem’ 을 보면서 다시 한 번 ‘홍위병’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중국 욕할 것 하나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팔에 쬐끄마한 완장 하나 채여져 있으면 갑질 하는 사람들 많잖아요. 아파트입주민 대표 부터 대기업직원들까지…

심지어는 손님이라고 그 지위를 이용해서 편의점 종업원이나 가게주인에게 갑질 하는 문화가 있죠. 

“나는 평소에 갑질 안 당하고, 그런거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부모님이 챙겨주는 계란쏘세지 들어간 따뜻한 도시락 먹으며 오냐오냐 자랐을 가능성이 많은 아이죠.

무튼… 제가 외국살면서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이유가 한국뉴스 잘 안 보기 때문인데, 요즘엔 유튜브를 보다보면 가끔 저런류의 뉴스가 떠 오르고, 그러다 카페진상, 가게진상 뉴스가 나오면 저도 카페를 하고 있으니 한번 보게 되죠.

화제를  전환해 보겠습니다. 

저의 카페 단골중에 약간 우울증? 염세적 성격? 걱정주의? 너무소심? 의 손님이 있습니다. 뭐 성격이야 어떻든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찾아주는 손님이라 저는 엄청 감사하고 저랑 이야기도 많이 나눕니다. 

며칠전에는 ‘내가 이 고향을 떠나면 내 어머니는 어쩌나?’ 라며 또 고민과 걱정을 하고 있더군요. 타 대도시로 이직을 하고 싶어 하거든요. 여자친구가 있는 도시로 말이죠.

제가 중국 시골이나 지방도시 있으면서 저런 케이스의 젊은 사람들과 많이 대화를 나눠봤거든요. 저런 이야기를 할 때 마다 제가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니가 나중에 부모가 되어서 너의 자식이 대도시나 외국에서 공부를 할 기회나 능력이 되고, 또 타지의 더 좋은 회사에 입사할 기회가 될 때, 단지 자식이 고향에서 너랑 함께 지내기를 원해서 자식보고 평생 이 시골에서 생활하기를 원하냐?”

라고 물으면 열의 열은 ‘절대 아니다’ 라고 강하게 부정을 합니다. 자기는 자식이 더 좋은 기회를 찾아 떠나서 성공하는 것이 좋다 라고 말을 하죠.

그럴때 제가 이야기를 하죠.

“그럼 너는 왜 너네 엄마는 나쁜년 만드냐?”

“너는 니 자식이 더 좋은 기회를 찾아서 떠나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너네 엄마는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니가 평생 여기 시골에서 함께 지내기를 원하는 나쁜년이냐?”

라고 하면 또 아니라고 합니다. 그럴때 제가 물어봅니다. 

“너네 엄마는 니가 더 성공해서 돈 많이 벌고 잘 살 수 있다면 대도시든 타지에서 행복한 가정 이루어 잘 살기를 원하지 않냐?” 

라고 물어보면 열의 열은 또 다 그렇다고 합니다. 

그럼 또 제가 물어봅니다. 

“넌 니가 지금 너의 능력으로 큰 도시에 가서 도전하기가 두렵거나 용기가 없는 것이 아니냐? 괜히 니가 두렵고 용기가 없고, 마땅히 고향을 떠나서 뭘 하기가 두려우니 가만히 있는 너네 엄마 핑계대는 것 아니냐? 그러면 너네 엄마를 더 나쁜년 만드는 거다”

그러면서 저는 ‘모순’ 이라는 단어를 써 줍니다. 

“너는 니가 부모일때는 자식이 그런 기회를 찾아 떠나기를 바란다면서, 너의 부모는 니가 그런 기회를 따라 가지 못 하게 방해한다고 생각하냐? 왜 니가 떠나기가 두려우면서 뭐 니가 떠나면 너네 부모 누가 돌봐주냐? 라는 핑계를 대냐?”

저기 위의 사진 바다 보이시죠? 먼 바다로 나가려면 충분히 큰 배도 있어야 하고, 충분한 식량, 물도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미지의 저 먼 바다로 나가려는 ‘용기’ 가 필요한거죠.

그게 안 되면 평생을 남들 도전하고 떠나는 모습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보면서 부러워하며 살아야죠.

유일한 위안이 있다면 그렇게 도전한 사람들이 실패한 모습을 보며, 역시 ‘이불안이 제일 안전해’ 라면서 즐거워 하고 자기위안 하는 것입니다. 

최근 그 단골손님과 이런 이야기를 자주 나누고 있는데요. 며칠전에는 저의 카페에서 울기까지 했었죠. 여길 떠나서 타지에서 살려니까 두렵다면서…

음…..

지금 대만에서 다른 도시로 가는거잖아요. 지금 제가 있는 이 도시에서 대만 남북끝까지 차로 3시간이면 다 도착하는 이런 작은 나라에서 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거잖아요.

저는 지금 딴 나라, 그것도 수도권도 아니고 지방도시에 와서 카페를 차렸는데요. 그리고 저는 중국에서도 사무실도 몇 번 차리고, 현지인과 합작이지만 공장도 설립했고, 말 안 통하는 태국도 가서 일했고, 그 외 단기로 해외로 나가 생활한 경험도 많은데요. 저를 보면서 고작 자기 나라 옆 도시로 이사하는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제 기준으로는 다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 그 이유중 하나가 혼자 남겨진 엄마….  

더 놀라운 건…

이 대화를 나누기 전에 했던 이야기가

“요즘은 50, 60대도 노인이 아니다. 심지어는 70대도 아직 팔팔하다.” 이런 이야기 둘이서 나누다가 저런 대화를 나눈 것이었거든요.

심지어 저의 옆집 아저씨 70대 인데 아직 농사 지으며 활발하게 잘 돌아다니거든요.

자기 말에 모순이죠.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스스로 타지역에 갈 용기가 없다 보니 엄마핑계카드? 를 내밀어 보지만, 저의 집요한 질문에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 

배운사람이 쓰는 전문용어로는 ‘자가당착’ 이라고 하죠. (농담입니다)

아무튼 그 단골이 자주 저의 카페를 찾아와 주어서 감사하고, 또 저와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서 더 정이 가고, 요즘 부모가 있는 고향을 떠나는 걸로 고민하고 있어서 저 마저도 함께 상황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며칠전 엄마 나쁜년 만들지 말고 떠나서 성공해라 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다음에 상황 다시 올려 보겠습니다. 

이렇게만 이야기를 마치면 흡사 그 손님이 20대 초반처럼 느껴지지만, 30대 중반입니다. 

저도 대학 갓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갔을때는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지만 저 정도로 두렵지는 않았는데 말이죠.

대만 공사 후 물청소 모습을 본 뒤

저의 카페 앞 도로를 따라 아스팔트를 잘라내고 있습니다. 수도관을 새롭게 매립한다고 땅을 파야 한다고 하더군요. 큰 도로에서부터 선을 그어 저렇게 땅을 기계로 잘라내고 있습니다. 저 순간은 소음도 컸고 땅에 흙이 많았죠.

그 뒤를 따라 바닥청소차가 물을 뿌리며 흙을 제거하더군요.

그런데…

저의 가게 앞 저 지역이 저렇게 물이 고이는 형태입니다. 그래서 물로 씻고 지나갔는데 흙탕물이 고여 있고 당연히 흙들이 고여 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물통을 들고 나와서 저걸 물로 쓸어내고 있으니까…

작업자 한 분이 저에게 뭐라고 막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런데 소음이 크기도 했고, 그 작업자분이 입안에 삔랑을 가득 씹으면서 이야기를 해서 뭐라고 하는지 잘 못 알아 듣겠더라구요.

보니까 이미 지나간 저 물청소차량을 다시 후진해서 저의 카페 앞을 다시 청소해 주시더군요. 그러면서 청소 제대로 못 하고 지나가서 미안하다고…

제가 중국본토에서도 오래 살고 대만에서도 지금 2015년부터 거주를 하고 있지만, 확실히 대만사람들이 이런 친절도나 세심함은 중국본토와는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

(오래전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경험입니다) 중국본토에서는 저 작업하고 물청소 안 하고 그냥 갔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똑같은 중화권사람들이지만, 문화대혁명을 거친 중국본토와 그렇지 않은 대만쪽 사람들간의 의식차이가 나는 겁니다. 그게 비단 문화대혁명 하나만의 영향이라고는 속단할 수 없지만, 저는 문화대혁명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경제적으로 돈은 많아 졌으나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의식수준으로 인해, 돈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중국사회가 되어 버렸죠. 우리 아빠, 엄마 높은 사람이야 라며 부모를 등에 업고 사람을 업신 여기는 중국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멀리서 볼 것 없이 한국에도 저런 사람들 있죠. 저런 사람들이 사회에서 특권을 누리지 못 하게 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