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신년맞이 방콕 차이나타운 걸어보기

2026년 새해. 차이컬쳐Chiculture 니까 또 중국관련 이야기를 한번은 해야죠. 중화권문화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차이나타운을 가면 뭔가 친숙한 느낌이 듭니다. 

새해연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더군요. 코로나기간 이전에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을 경험했었고, 코로나기간 사람들이 급감해서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았던 모습도 경험을 했던터라, 다시 이렇게 사람이 많은 모습을 보니 뭔가 ‘회복’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군중속에 고양이 한 녀석이 눈에 띕니다.

차이나타운 답게 중화권 관련 물품도 많고,  복잡한 대로변에 테이블 놓아 두고 장사를 하는 이런 식당의 풍경도 하나의 특색입니다. 오래됨, 혼돈, 무질서, 이런 것들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날씨가 좋았습니다. 여전히 덥긴한데, 못 걸어 다닐 정도로 덥지도 않았고, 저렇게 푸른 하늘까지 더해져서 천천히 걸어다니며 돌아보기에 딱 좋은 날씨였습니다. 

관광객들이 많았거든요. 보통 단기관광객들은 짧은 시간내에 많은 걸 봐야 하니 보통 이런 여행하면 2만보 이상씩 걷기도 하잖아요. 저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저날 실제로 태국친구들이랑 점심 먹으러 나왔다가 ‘그냥 한 번 돌아보자’ 라는 마음으로 둘러 본거라 여유있게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몇 개월 만에 왔는데, 그전에 없었던 가게들도 많이 보이고, 벽화들도 새롭게 그려진 것들이 몇 있더군요. 

코로나기간때는 사람들도 적었고, 공실도 많아서 이런 곳을 와도 흥?이 좀 덜했는데, 역시 이런 곳을 사람도 붐비고 다양한 상점들이 영업을 하고 있어야 더 느낌이 삽니다. 

 

차이나타운도 천천히 걸으면서 건물들을 보시면 역사의 흔적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다양한 형태의 건물들을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특히 한국은 현대식 획일화된 디자인의 아파트들이 많고, 어느 도시/지역을 가나 아파트+상가단지 의 풍경이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어떤 곳을 가면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런 다양한 멋진 건물들을 느껴볼 기회가 많지 않죠 한국에서는… 

저런 건물들은 ‘돈만 있으면’ 하나 구입해서 내외관 잘 보존해서 아이들이 찾을 수 있는 ‘어린이도서관’ 으로 운영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근데 태국은 전국적으로도 저런 독특한 느낌이 나는 건물들이 많습니다. 지방도시는 건물한채 가격이 또 그렇게 비싸지도 않습니다. 

이런 건물들도 나름 특색이 있죠. 그냥 방치가 되어 있는 것 같은데, 누군가 잘 정돈해서 잘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의 건물같은 경우가 이번에 보니까 누군가 리모델링을 해서 영업을 한 아주 오래된 건물입니다. 아래 건물은 100년되었다는 지방정부의 ‘인증’ 도 있더군요.

바로 이 건물인데요. 오랜긴간 비워져 있었는데, 25년도 중반인가부터 내부 공사를 하더니만 이번에 보니 저렇게 가게를 하고 있었습니다. 건물 외벽은 그대로 남겨 두고 내부만 개조를 해서 저렇게 영업을 하니까 건물의 느낌도 그대로 살리면서 좋습니다. 무엇보다 저 가게를 보면서 괜찮았다고 생각을 했던건, 저런 건물에 또 무슨 ‘간.판’ 이랍시고 건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걸 달아서 외관을 훼손하지 않았다는 거죠. 

제가 상가건물주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가끔 어떤 상가건물을 가 보면 외벽의 간판을 가게별로 다 통일을 한다든지, 건물외벽과 어울리게 만들어 놓은 곳이 있습니다. 그런 상가건물주는 자신의 건물가치를 어떻게 올리고 보존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외벽에 있는 간판들이 그나마 좀 괜찮은 건물외벽의 디자인을 다 죽여버리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게 어쩔 수 없는 것이 어차피 단기간 장사만 하고 빠져 나갈 사람들이라 그런 가게업주에게는 ‘멋’ ‘디자인’ 보다는 그냥 ‘시인성’ ‘단가’ 를 먼저 보게 되니까요.

영국에 살던 친구가 이야기를 해 주던데, 자기 나라에서는 건물외벽 수리도 허가를 받고 해야하고, 유리창이 깨졌는데, 그거 교체하는 작업도 정부에 통보를 하고 지정해주는 유리로 교체를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일주일간인가? 깨진 유리상태로 지냈다고… 이전에 유럽도시 갔을때, 창문외부에 화초들이 많이 있어서 멋지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정부에서 보조?를 해 주는 거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는데 이 내용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또, 태국은 어딜가나 저런 목조건물이 많이 남아 있어서 독특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콘크리트건물만 보다가 저런 목조건물을 보면 신기하긴 하죠. 유지보수는 어떻게 할까? 북미쪽도 목조건물주택이 많다고 하죠. 그래서 허리케인 오면 건물이 쉽게 파손되고, 일본도 목조건물이 많이 남아 있어서 겨울에 그렇게 춥다고도 하고, 제가 살고 있는 대만에서도 목조건물들이 가끔 보입니다. 

다양한 건물디자인과 자재의 건물을 볼 수 있다는 것도 미적인 감각을 끌어 올릴 수 있는 환경이긴 하죠. 문화의 다양성을 배워나가는데도 도움이 되구요. 

그리고 이렇게 창문위에 저런 가리개가 있는 모습을 보지 못 한 분들도 많으실텐데요. 쟤는 햇빛을 차단해 주는 용도나 비를 차단해 주는 용도입니다. 저 방향이 북향이니까 쟤는 비를 차단해 주는 용도로 설치를 했겠네요. 저 면이 북향이라는 건 건물벽의 색상을 그 옆 면과 비교해 봐도 유추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 저런 건물들 보면 창문을 완전히 덮는 덮개가 있습니다. 저 사진 위의 건물에도 있죠. 아직 창문덮개가 있는 건물들이 많습니다. 

창문덮개가 있어도 비를 가려주는 차단지붕이 필요한 이유는, 태국처럼 더운 나라에서는 비가 내려도 창문 열어 두지 않으면 통기가 안 되어서 실내가 더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비가 내리더라도 창문을 열어 둘 수 있는 저런 비차단지붕이 필요한거죠.

표정과 모습이 완전 Stranger Things의 Eleven과 같습니다. 정말 진지하게 사진을 찍고 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는거…

넷플릭스가 만들어 놓은 건지 개인예술가가 만들어 놓은건지는 모르겠지만 광고효과는 좋겠네요.

 

진지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나서는 또 멋적은지 웃으면서 얼른 자리를 뜨는 모습입니다. 

최근에 시즌5 part2 가 올라 왔던데요. 연휴기간동안 다 볼 예정입니다. 

소소하지만 이런 중국풍 나는 받침이 있는 커피잔으로 블랙커피도 한잔 했습니다. 

위의 사진처럼 중국과 태국의 문화를 느껴 볼 수 있는 방콕 차이나타운 입니다. 비단 중국/태국의 문화뿐 아니라 과거의 문화와 현재의 문화를 극명하게 느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다양성을 체험하게 해 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해외생활 하면서 느낍니다. 앞으로는 다양성에 익숙한 아이들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사회도 점점 문화적 다양성은 심화될 것이고, 지금 제가 일을 하고 있는 조직처럼 타부서 중국사람과 업무미팅을 하고 대만상사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태국팀원들과 실무를 보면서, 일본직원과 회사생활 이야기도 가끔 나누고, 독일직원과 아침인사를 나누고, 싱가폴직원에게 업무외적인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더 많아 질 것이니까요. 외국인들하고도 업무를 많이 해 봐야 업무를 잘 할 수 있는거죠. 많은 한국분들이 해외공장 나가서 문화적, 언어적 장벽으로 능력발휘를 못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경험을 해 봐야 하는거죠. 짧게 라도 해외어학연수 가 본 사람과 안 가본 사람의 차이가 크듯이 말이죠. 

또, 동남아에도 중국에서 이주해 온 중화권사람들이 많습니다. 인류든 동물이든 늘 변해가는 환경에 새로운 장소로 이동을 하며 생존하고 발전해 왔죠. 그런 면에서 보면 저는 늘 ‘먹을 거리가 있는 환경’ 으로 이동을 하며 삶을 적응해 오고 있는 것 같고, 늘 ‘이 곳에 풀이 다 떨어지면 언제든 새로운 풀이 있는 초지로 이동을 한다’ 라는 마음으로 살아 왔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의 환경이 어떻게 다시 변할지도 모르고, 지금 내가 있는 조직이 영원히 나를 먹고 살게 해 줄 수 없다는 걸 알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한국의 저의 할아버지 세대는 농지가 있는 그곳에서 평생을 떠나지 못 하고 살다가 그 곳에서 삶을 마감하다보니 세상을 다양하게 볼 기회가 적죠. 매번 만나는 사람이 딱 그 ‘촌’ ‘부락’ ‘마을’ 사람들이니까요. 

저는 이런 차이나타운을 올 때 마다 100년전 200년전 혹은 그 이전에 어느 사람들이 이주를 해서 정착을 하고 지금의 환경을 만들었다고 생각을 하니 그 당시 초창기에 온 사람들은 정말 고생했겠구나 라는 생각도 많이 합니다. 낯선 곳에 가서 정착을 하며 살기가 쉽지 않거든요. 

방콕차이나타운의 젊은사람들 많이 찾는 골목길

오늘은 태국방콕에서 떠오르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카페거리?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곳은 방콕의 차이나타운부근에 있는 곳인데요. 오래된 건물들이 보존되어 있는 곳인데 최근에는 젊은사람들이 많이 찾아 젊은사람들 취향에 맞는 카페가 많이 들어서고 있는 곳입니다. 

코로나시기때 자주 오던 지역인데, 확실히 지금은 코로나가 끝나서인지 사람도 그 때 보다 더 많은 것 같고 영업을 하는 카페나 상점이 더 많아 진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없던 신규 상점도 더 보였습니다. 

방콕 차이나타운을 가시면 대로변 말고 외곽의 뒷골목에 이런 젊은사람들이 찾는 장소나 카페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유는 당연히 대로변은 비싸거든요.

저기 골목길이 보입니다. 골목길로 한 번 들어가 봅니다. 

코로나이후 상권이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 곳곳에 이런 새롭게 영업을 준비하는 곳들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여기는 관광객들을 위한 민박을 준비하는 듯 합니다. 

아무래도 외부인구가 많이 유입되어 찾아줘야 상권이 활성화될 수 있는 거죠.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현지인들이 사는 모습들도 엿볼수 있고, 또 이런 허름해 보이지만 뭔가 오래된듯한 가게도 볼 수 있어 좋습니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중국식 만두를 만드는 곳입니다. 여기는 차이나타운 입니다. 

골목길 영상은 곧 저의 유튜브채널에서 더 많이 소개해 보겠습니다. 

곳곳에 이런 형태의 카페들이 있습니다. 

중간에 자세히 보시면 BASQUE BURNT CHEESECAKE 이라고 해서 150BAHT 에 팔고 있거든요. 

저의 대만카페에서도 저 BASQUE CAKE을 직접 만들어 파는데, 저희보다 대략 1000원 정도 비싸게 파는데, 그럼에도 저 카페가 더 크고 위에 크림치즈 같은 것이 한층 더 올라가 있긴 하네요.

케잌류들인데, 태국이 물가가 싸다고 하지만 이런것들은 한국과 가격이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이 골목도 이전에 자주 오던 곳인데, 이 카페는 못 본 것 같거든요. 아마 최근에 새롭게 생긴 것 같습니다. 그냥 별거아닌 오래된 골목길에 이렇게 하나둘 카페들이 모여드니까 점점 카페거리로 되어 가는 모습입니다. 

저도 여기 대만 지방에서 약간은 외진 주택가 골목에 카페를 열었거든요. 많은 분들이 ‘어떻게 이런 장소에 카페를 열 생각을 했어요?’ 라고 말을 많이 합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골목에 식당이나 카페를 열면 좀 더 상권이 활성화 될 것 같긴 한데, 아직은 그런 조짐이 보이질 않네요.

여기서 한무리의 젊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길래 보니까 저기 사진자판기? 라고 하나요? 저기서 사진을 찍고 있더군요.

이 부근은 건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걸어볼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50년 100년 정도 된 건물들이거든요. 어떤 건물에는 건물 지어진 연도가 있어서 알 수 있습니다. 

저 건물은 창인지 문인지 용도가 불분명한 문이 바깥쪽으로 나 있네요.

그런 오래된 건물에 이렇게 현대식 카페나 식당을 운영하는 곳들이 많아 졌습니다. 이전에는 이 곳이 한산했었거든요.

여기는 태국문화와 중국문화와 저기 골목안쪽의 무슬림문화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 가게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저의 카페벽에도 벽화를 하나 그릴까 생각을 했었거든요. 아직 실행을 하지는 못 했는데, 벽화를 그려서 저렇게 젊은 사람들이 사진찍으러 오는 장소가 되어도 좀 더 손님을 유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여기도 뭔가 장사가 잘 되는 것 같더군요. 젊은사람들이 주문을 기다리거나 사진을 찍는 모습입니다. 

여기는 머리를 잘 썼더군요.

카페나 식당은 테이블공간=고정비용 인데요. 여기는 그냥 카페옆 통로, 빈 공간에 그냥 저렇게 의자 테이블 놓고 앉아서 먹게 만들어 놓았는데, 오히려 저런 느낌 좋아하는 젊은사람들에게 반응이 좋은 것 같네요.

지붕이 있어 그늘도 자연스레 만들어지고 저렇게 통로식으로 되어 있으면 공기의 흐름이 빨라져서 좀 더 시원할 수 있거든요. 成安街 라고 안쪽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듯 보입니다.  오른편의 건물도 엄청 오래되어 보이죠. 위의 사진 보시면 나무문으로 여는 그런 형태의 창문이 남아 있네요. 그 옆의 유리창문이 현대식으로 느껴집니다. 

차이나타운이라 곳곳에 한자가 많습니다. 對我生財。。。 직역하면 ‘나 돈 많이 벌게 해줘’ 인데요.

한자를 조금 아시는 분은 我가 ‘나’ 를 의미한다는 걸 아실텐데요. 아래사진은 차이나타운 다른 곳에서 찍은 겁니다. 자세히 보시면 글자 하나가 다르죠.

對吾生財

吾 도 我 와 비슷하게 ‘나’ 라고 해석을 하시면 됩니다. 나, 우리 이 정도로 해석을 하시면 되는데요.

그럼 저 한자 吾 가 나온김에… 

기미독립선언문 보시면 첫머리에 저 한자가 나오죠. 吾等(오등)은 이라고 시작을 합니다. 우리는 이라는 뜻인데… 뭐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저 한자가 나온김에 소개를 해 보았습니다.  둘다 방콕차이나타운에서 찍은건데, 저런 문구가 군데군데 보이면, 역시 중화권사람들은 恭喜發財 . 재물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가 있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한국은 이전 어른들이 ‘어린것들이 돈 밝히면 안 돼’ 라면서 돈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걸 약간은 금기시? 터부시? 하는 경향도 있었거든요. 이전 양반들이 상공업자들을 천시하는 문화의 잔재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이런 오래된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젊은사람들 입니다. 

오래된 건물들을 보면서 100년전 이곳 중화권사람들은 이런 집에서 살았구나 라고 상상을 하며 걸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차이나타운 오시면 가장 번화한 거리 위주만 보고 가시는 분들이 많지만, 외곽의 골목길에도 요즘 새롭게 카페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본문 중간에 새롭게 영업을 준비하는 가게들이 많이 보인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여기도 오래된 건물의 벽을 뚫어 통유리를 박아 넣은 모습입니다. 곧 뭔가 오픈을 할 것 같네요.

홍대상권도 가 보시면 기존 홍대의 큰 거리가 포화가 되다보니 점점 외곽의 주택들을 저런 식으로 개조해서 카페나 식당으로 영업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가정집을 개조할 때 벽에 통유리 박아 넣은 형태를 볼 수 있는데요. 연남동 주택가 골목에 가면 많이 볼 수 있죠.

건물 2층에는 이미 영업을 하는 모습입니다. 아직 나무창문이 남아 있고, 저런 형태의 발코니가 남아 있는 건물입니다. 

이런 오래된 건물 보는 것 좋아하고, 또 중화권 사람들이 오래전 태국에 와서 살았던 삶의 흔적을 보시기 좋아한다면 방콕차이나타운의 주변 골목길 여행을 추천드립니다. 

다음엔 여기서 조금 더 먼, 최근에 또 많은 사람들이 찾는 방콕차이나타운 주변 거리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5월 1일 노동절 휴일입니다. 태국은 오늘 하루 휴일이고, 중국은 황금연휴, 대만은 오늘부터 일요일까지 쭉 쉬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한국은 오늘 쉬는지 모르겠네요.

방콕 차이나타운의 형성배경 및 그들의 삶 훑어보기

태국도 중화권의 문화가 많이 남아 있죠. 경험상 태국 어디를 가더라도 중화권문화의 흔적을 볼 수 있죠. 차이컬쳐… 차이나+컬쳐 인만큼 어디 있더라도 중화권문화에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의 모형은 태국에 있는 중국식절 앞의 시장풍경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유럽에도 성당주변이 지역주민들이 모여서 시장상권을 형성한다고 하는데, 여기도 비슷한 맥락인 듯 합니다. 

<사진들은 제목을 우클릭해서 새창에서 열어보기로 보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방콕에 중화권사람들이 모여살기 시작한 시기를 1782~1851 경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네요.

당시 태국방콕의 노동인력 부족현상과 맞물려 중국본토의 이런저런 불안정세 등으로 중국의 해남성, 광동성, 복건성 부근의 사람들이 태국으로 이주를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중국의 무역상인들도 활발하게 동남아로 진출을 하기도 했었구요.

당시 태국으로 와서 정착을 했던 중국인들의 민족별로 나누어 두었습니다. 

두번째 사진을 보시면

복건인 : 복건성
조주인 : 광동성동북
객가인 : 광동성북부
광동인 : 광동성중부
해남인 : 해남섬동북부

기존에는 그냥 광동성에서 온 사람으로 퉁쳐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광동성에서도 저렇게 지역을 나누어 구분한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당시에 이런 형태의 범선을 타고 동남아등지로 무역을 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무역을 하다가 난파를 당해 실종된 사람도 많고, 그 당시에 각 나라별로 난파된 사람들을 모아서 관리하는 곳들도 있었다고 하구요.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일본, 청 등지로 해상무역을 하던 사람도 있고, 그 와중에는 난파를 당해 일본-필리핀 으로 일찍부터 해외의 발달된 문물을 보고 온 조선사람들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도 좀 더 일찍부터 청/일분뿐 아니라 더 넓은 세계로 해상무역에 눈을 떴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죠. 네델란드표류인이 자국에는 대형선박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고 하자 허풍이라고 조선왕뿐아니라 고위관리들이 비웃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바로 위 사진을 보면 남자는 중화권사람이고 여자는 태국쪽 사람인 것 같습니다. 보통 태국쪽 여자들이 저렇게 옷을 입으니까요. 그리고 저 당시에 중화권-태국사람간의 혼인도 있었다고 하며 1909년도 부터인가 아버지가 중국사람이면 해외에서 출생한 아이도 중국국적을 따르게 한다는 법이 제정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화라는 것은 대체로 한쪽방향으로만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서로가 영향을 받기도 하고, 어떨때는 두개의 다른문화속에서 다른 형태의 문화가 형성이 되기도 하죠. 언어도 마찬가지로 두개의 다른 언어가 공존하는 지역에서는 상호간섭을 일으키기도 하고, 기존에 없던 언어나 문자형태가 생성된다고도 합니다. 

당시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의 삶은 많이 힘들고 고달펐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기술이 안 되어 있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집떠나서 객지에 사는 것 만으로도 힘든데, 이런 먼 해외에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삶은 지금의 저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형으로 잘 묘사를 해 두었네요. 그 당시의 병원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육체노동자들이 혼자살면서 병치레 하는 경우가 많아 중화식병원을 설립해서 운영을 했다고 합니다. 

약탕기가 있는걸 봐서는 중의의원 인 것 같네요.

아울러 늘어나는 중화권이주자들의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학교도 설립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태국 전역에 여행을 하다보면 오래된 화교학교들이 약간은 뜬금없는 지역에 있는걸 볼 수 있는데요. 무언가 그 지역에 수요가 있으니 화교학교를 만들었겠죠.

한국에도 인천과 부산에 보면 화교학교가 있듯이 말이죠.

저 인형모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사람들의 탁구사랑…

중국의 시골학교들 가보면 운동장에 대부분 탁구대가 있습니다 문제는 야외탁구대라서 바람불면 좀 치기가 힘들고, 또 큰 돌을 사각형으로 만들어 탁구대로 사용하는데 표면도 울퉁불퉁해서 이런 환경에서 어릴때부터 탁구를 연습하니까 수많은 고수들이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게 합니다.(농담입니다)

그러면서 중화식 절도 많이 설립을 한 것 같구요. 확실히 태국에서도 중화식 절과 태국식 절은 확연히 다르죠.

그러면서 이런 연극공연장도 생겨나서 여가생활을 보낼 수 있는 환경도 점차 마련이 된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도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빈부의 격차가 있어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의 집과 가난한 사람들의 집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태국전역 돌아다니다보면 볼 수 있습니다. 조만간 230년된 중화권 부자집의 주택을 한 번 소개해 보겠습니다. 

방콕 차이나타운 하면 저 위의 사진거리가 대표거리풍경이죠. 야경이 멋진 거리인데요. 저 거리를 The Gold Road 라고 하는데 실제로 금을 매매하는 가게가 많습니다. 달리 황금거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금매매를 많이 했던 것 같네요.

금매매가게도 저렇게 모형으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금은 현금이상의 가치를 가집니다. 태국의 불상들 중에 금으로 만든 것들은 도난을 피하기 위해 겉에 다른 재료로 위장을 해 두는데, 그래서 불상의 머리를 많이 약탈했다고도 합니다. 아시는분도 많겠지만… 태국에서 불상머리 매매는 범죄행위입니다. 

저 시대의 사진기록이 많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태국에서 중화권 사람들의 생활상은 어딜가나 저런 사진기록으로도 엿볼수 있어서 나름 고증하기는 쉬울 것 같습니다. 

아래사진은 태국에 살고 있는 화교들의 직업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네요.

그 당시 태국에서 발급한 비자인데요. 기록을 보니 10밧인가?로 2년간 거류비자를 발급했다는 기록도 있고, 비자발급을 위한 인세도 20~400밧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날 여기서 이런저런 이전 기록에 대한 설명을 읽어 보았는데, 이민1세대 중화권사람들의 삶은 엄청 힘들었다고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원래 이민1세대는 고생하는 세대이고 2세대 3세대는 그걸 누리는 세대라고도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가끔 1900년대 전후의 중국상해지역, 광동/홍콩지역, 또 태국, 말레이시아 지역의 삶으로 돌아가서 살아 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기는 합니다. 그건 제가 중화권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일 수도 있는데요. 

만약 제가 100년전 200년전 저 당시 사람이었고, 중국본토의 삶이 시궁창이었다고 한다면 저 역시도 어딘가로 떠나서 인생을 개척하려 했을 것 같습니다. 저의 성향상…

저 당시 아편전쟁 패배로 청나라는 국고를 채우려고 백성들을 상대로 세금도 많이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삶이 아주 피폐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정부는 국민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는 정책을 사용했는데, 상대적으로 북경에서 먼 광동 및 남쪽까지는 그렇게 제한할 수 없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저 여자분의 이름은 木 木 燕 이 아니라 林燕 인 것 같습니다. 나무목木 2개를 좀 더 붙여써야 할 것 같은데… 본인이 직접 썼다면 교육을 많이 못 받은 사람이었거나, 한자를 평소에 많이 써 보지 않은 태국사람이 저 문서를 작성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燕은 제비 라는 뜻이고, 이전에 황제의 딸 이라는 TV 드라마에서 딸의 이름도 저 燕 이 있었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여기 태국의 대중국수출물품 중 하나에 제비집이 있었다고 하죠.

그래서 방콕 차이나타운에 가면 이 제비집 파는 상점과 제비집요리식당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 제비집은 해안가에 사는 제비의 집으로 우리 시골에서 사는 그 제비집과는 다릅니다. 주로 해안가의 생물과 본인들의 침을 섞어 만들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공급량이 극히 적고 채집하기가 어려워 가격이 비싼 것이지, 뭐 딱히 약용효과는 없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한번 제비집요리를 먹어 보았습니다. 

잠시나마 100년 200년전으로 태국이주한 중화권사람들의 삶으로 시간여행을 한 김에,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화권느낌 물씬나는 카페에서 음료도 마시고. 빵도 먹었는데요. 저 빵에 제공된 저 소스가 너무나 맛있더군요.

자칫했으면 하나 더 시켜 먹을뻔 했습니다. 저의 대만카페메뉴로 만들어 볼 생각으로 이미 만드는 법은 배웠습니다. 

다시 첫번째 사진으로 돌아가서…

그 당시의 삶이 얼머나 힘들었으면, 중간의 하늘색옷 입은 여자분은 시장통 한가운데서 쓰러져 있습니다. 

오늘은 태국에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게 된 역사적배경과 그들의 삶을 짧게나마 훑어보았습니다. 

뭐가 어찌되었던간에 내 나라를 떠나 외국에서 정착하고 살아간다는 건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어려운 환경에 어쩔 수 없이 떠밀려 해외로 나온 사람들도 있을거구요.

방콕 차이나타운에 오시게 되면 이런 역사적배경도 생각하시면서 둘러보시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