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불상나무, 한국의 타이어나무

태국이나 대만 여행하면서 나무가 불상의 머리나 불상, 혹은 건물을 감싸는 그런 풍경을 종종 보는데요. 그걸 볼 때마다 이런건 돈으로 사지 못 하는 세월이 흘러야만 만들어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한국출장갔을때, 타이어 사이로 나무가 자라 있더군요. 이걸 보면서 이것도 나름 세월이 만든 작품? 이라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태국 아유타야에서 유명한 나무속 불상머리이죠. 보통은 저런 식으로 나무가 자라면서 불상을 감싸는 형태인데요. 

굳이… 아주 굳이 저 타이어나무가 더 어려울까 불상나무가 더 어려울까 라고 생각을 해 본다면, 당연히 불상나무죠.

타이어나무는 뿌리쪽을 뽑아 타이어 집어 넣고 다시 심으면 저런 모양 비슷하게는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이런식으로 나무전체가 담벼락이나 건물을 감싸 안고 있는 형태도, 나무 뽑아서 어찌어찌 한다고 되는 부분이 아니죠. “좋은 세월”이 흘러야만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조직이나 스포츠팀에서도 경력이 많은 고참과 젊은 사람들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젊은 사람들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어떤 부분은 세월이 흘러 쌓여야만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거든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40대 이상의 분들은 아마도 느끼실 겁니다. 본인들의 20대 30대때 생각과 행동들이 얼마나 부족함과 아쉬움이 많았는지. 그리고 그 나이때에는 경험이 없어 그럴 수 밖에 없었음을 아실 겁니다. 

여기 태국의 옛수도 아유타야의 유적지에서는 미얀마왕조와의 전쟁의 상흔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불상들의 머리가 잘려져 나가 있는걸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을 하는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죠. 좋은 경력을 가진 고참이나 지휘관이 필요하죠. 아무리 신체능력이 뛰어난 신참만으로는 전쟁에서 이기기가 힘듭니다. 

제가 군복무시절, 90년대 초반, 연세대후문쪽과 명동롯데백화점 앞쪽에서 시위를 막은 적이 있는데요. 당시 부산에서 거의 주말마다 시위진압을 위해 나갔었지만 당시 서울 연세대 시위규모가 너무 커서 부산을 비롯 전국각지에서 지원을 나갔었습니다. 

낯선? 서울, 그것도 시위가 극렬하다고 하는 연세대쪽에 방패들고 서 있으니 좀 무서웠습니다. 당시 가장 막내군번 이었거든요. 방패너머로 대학생들이 쇠파이프 들고 있으니 엄청 긴장이 되었는데, 처음으로 고참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확실히 고참은 고참이더군요. 뒤에서 계속 겁먹지 말고 쫄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방패 잘 들고, 대학생들이 공격해 들어오더라도 뒤에 고참들이 있으니 방패조는 대열무너지지 말고 라면서 계속 분위기를 잡았습니다. 

또한, 대학생들을 향해서도 도발?까지 하면서 들어올테면 들어오라고 소리를 치니까 당시 연세대후문과 명동롯데백화점 앞도로에서 고참들의 필요성이 느껴지더군요.  물론 그 외에는 맨날 고참들에게 구타당하던 시절이라 싫었지만 딱, 그 두번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네요.

시위진압을 거의 주말마다 나갔고, 한번은 울산현대노동자 파업으로 15일인가? 인근 학교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시위진압을 나갔던 것 같은데, 그런것도 이제 세월이 지나니까 그런 시위진압을 나갔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 하네요. 정작 시위진압의 힘듬 보다는, 아침/저녁 고참들에게 구타당하던 고통이 더 커서 그런가 봅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큰일날뻔한 군대이야기는.

  1. 연세대 후문 방어할 때 개인에게 수류탄형 최루탄 2개씩을 지급해 줬는데, 저는 그걸 어떻게 몸에 지니는지 몰라 옷에 대충 걸쳐 두었다가 이동중 떨어뜨렸는데, 주위에 있던 다른 중대원이 주워준일… 아마 그거 분실했으면 그날 밤은 물론이고 며칠동안 갈비뼈 몇 개 나갈 정도로 구타를 당하고 어쩌면 영창 갔었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구타하면서 심한 부상을 당하는 부대원들이 많았습니다)
  2. 토요일 오후 부산남포동쪽 시위진압을 나갔었는데, 그날 자기가 챙기는 고참의 판쵸우의 꼭 챙기라고 했었나 보더군요. 그런데 저는 그 지시를 분명히 못 들었거든요. 그 당시는 거의 막내라 병장의 판쵸우의를 안 챙긴다는건 뭐 있을 수도 없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출동을 나갔는데, 아니나다를까 토요일 오후가 되니 예보대로 빗방울이 떨어지더군요. 그래서 진압복위에 판쵸우의 착용명령이 떨어졌는데, 제가 챙기는 고참만 판쵸우의가 없었습니다. 제가 안 챙긴거죠.

그 순간… 오늘밤 점호시간에 죽도록 맞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는데, 다행히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었고 또 제가 챙기는 그 고참이 약간 좀 멋을 부리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의경부대에는 기율경 이라고 무전기 몇 개 몸에 차고 있으면서 중대장의 지시를 무전으로 지시하는 약간은 특수위치라서 다른 대원과는 달리 청바지에 사복을 입고 머리도 좀 기를 수 있는 그런 위치였습니다. 그래서 칙칙하고 냄새나는 판쵸우의 입는걸 싫어했거든요. 그 날 그 고참이 ‘나는 판쵸우의 냄새나서 싫다. 안 입어도 된다” 라고 해서 소위 상병급들이 그냥 넘어간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날 만약 그 병장이 상병에게 한마디 했으면 부대복귀해서 적어도 갈비뼈 한두개 정도 날아갈 정도로 군화발로 차였을텐데 말이죠.

갑자기 군대이야기 나와서 이야기가 살짝 샜습니다. 

태국방콕의 두리안도매시장 풍경

이전에 태국동남부, 라용의 대규모 두리안도매시장 소개를 해 드린 적이 있는데요. 오늘은 방콕의 두리안도매시장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당연히 두리안도 계절과일이니까 두리안’만’ 파는 곳은 아닙니다. 

최근 저의 대만아내가 두리안이 먹고 싶다고 하더군요. 집근처 과일가게에도 두리안을 팔긴 합니다 그런데 보통 몇 개 안 되는 두리안 올려 놓고 좀 비싸게 팝니다. (태국에서 수입하니까 그럴 수 있죠)

제가 태국살면서 두리안 좀 먹었거든요. 두리안이 저렇게 쌓여 있어도 맛있는 것이 있고, 맛 없는 것이 있습니다. 제주산 귤이라고 다 달고 맛있지 않듯이 두리안도 잘 못 고르면 맛이 없습니다.

여기는 방콕의 어느 심야과일도매시장인데요.  마침 두리안 제철이라 두리안이 많았습니다. 

저는 태국 살면서 두리안 농장도 몇 번 가 보고, 6종류의 두리안도 다 맛 보았죠. 물가가 싼 태국이지만 두리안은 여전히 비싼 과일에 속해서 태국에서도 두리안을 미친듯이 마음대로 먹기에는 부담이 있습니다.  

주변 소매점에 두리안을 배달하는 모습입니다. 여기는 소매점이라고 해도 저기 보이는 것처럼 두리안의 양이 엄청 나더군요.

저도 대학생시절, 과일도매상에서 부산시내 소매점에 트럭으로 과일배달 하는 알바를 한 적이 있었죠. 그 당시 꽤 오래 그 일을 했었습니다. 1톤 혹은 1.4톤 트럭으로 부산시내에 오렌지, 파인애플, 수박, 포도, 사과 등등을 배달하는 일을 했었습니다. 어떤 곳은 낮시간대에, 어떤 재래시장은 위의 사진처럼 새벽에 배달을 해야해서 새벽같이 일어나 시장통의 과일과게에 배달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시장은 사람들이 새벽에도 많아서 차가 들어가기 힘들때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1톤트럭으로 부산의 부전시장 같은 곳에 사람사이를 뚫고 들어가서 배달했습니다. 

제 유튜브채널에 태국의 심야시장 소개를 해 드린 적이 있는데요. 이전의 부산 부전시장에도 새벽에 사람이 엄청 많았습니다. 

포도는 가벼워서 쉬웠고, 사과상자는 무거워서 힘들었는데, 그럼에도 한번에 4~5개씩 등에 올려서 들고 배달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까대기’ 라고 했는데 뭐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포도는 알이 떨어지기 쉬워 좀 조심해야했고, 수박은 혼자서 배달이 어려워서 2인1조로 다녔습니다. 수박도 그렇고 포도도 운송중 파손이 되는 것이 있어서 보통은 도매상측에서 1~2개 정도 더 넣어 줍니다. 그러면 저같은 배달기사들은 파손 안 시킨다는 확신이 있어서 포도 한 송이 정도는 배달가면서 차에서 먹곤 했었죠. 특히 거봉….

부산 동래지하철역 부근에 ‘메가마트’인가 대형마트가 있었는데, 어느날 이른 아침 거기 대형트럭으로 포도박스를 가득 쌓아 배달을 갔었습니다. 

하얀색 스티로폼 포도박스 였는데, 그 당시 포도박스는 그 도매시장 소속 아저씨들이 쌓았습니다. 메가마트 화물차 주차장에 도착해서 검은색 고무줄을 푸는 순간 7개로 쌓아 올린 포도박스가 쓰러져서 주차장 바닥에 포도들이 ‘영.화.처.럼.’ 쏟아졌죠. 순간 망연자실 서 있었습니다. 그 많은 포도알갱이들이 주차장에 확 뿌려졌으니까요.  바로 사무실 실장님에게 전화를 했는데, 뭐 쿨하게 청소 잘하고 회수해 오라고 하더군요. 저는 제가 배상해야하는지 좀 걱정을 했었거든요. (당시에도 포도는 비쌌습니다) 

한번은 사과박스를 제가 쌓았는데, 제대로 안 쌓아서인지 부산의 동서고가도로 커브길을 도는데, 박스전체가 옆으로 기울면서 차가 옆으로 기울어지더군요. 순간적으로 옆차선을 보면서 최대한 트럭이 전복 안 되고 상자가 쓰러지지 않게 균형을 잡았던 아슬했던 적도 있고…

트럭지붕에 나무로 된 박스모서리에 대는 나무막대가 있는데 그걸 올려 놓고 달리다가 바람에 날려 뒷차에 맞을 뻔한 적도 있고…

학창시절 했던 알바 치고는 월급도 많고 재미있었던 과일배달 알바 였습니다. 그때는 힘도 좋고 체력도 좋아 저런 알바도 했었죠. 또, 운전기술이 조금 있어야 하거든요.

여기는 소매점에도 두리안의 수량이 많아서 좀 비싼것부터 싼것까지 다양하게 맛 볼 수 있구요.

그리고 두리안 맛좀 본다는 사람들이 많이 오다보니 전체적인 품질도 좋습니다. 태국에서도 가끔 어설픈 곳에서 구입하면 맛 없는 두리안도 있거든요.

딸을 안고 두리안을 팔고 있는 가게주인입니다. 

저도 두리안을 좋아하고 두리안이 먹고 싶긴 하지만, 저의 집 주변 과일가게에는 두리안 몇 개 올려 놓고 파는 정도라 맛이 있을지도 의문스러워서 대만에서는 구입을 하지 않게 되더군요.

두리안 생각이 나서 태국 살 때 가 보았던 방콕과일도매시장, 두리안 소개를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과일도매시장 보니까, 대학생시절 도매시장에서 배달 했던 기억도 나구요.

참고로.. 그 당시 그런 도매시장에는 상권보호를 위해 조폭이 있었거든요. 그 당시 저의 사무실에도 조폭분이 한명 있었죠. 평소에는 성격도 좋고 얼굴도 좀 순하게 생겼으며, 배달 없을땐 저와 바둑도 종종 두곤 했는데…

온몸에 문신이 있어서 여름에도 땀 뻘뻘 흘리며 긴팔 입고, 당시에 거의 아파트 한채가격 한다는 갤로퍼 SUV를 몰고 다니면서 남포동 같은 곳에 함께 나가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검은색 옷 입은 어깨들이 ‘형님’ 하면서 90도 인사를 했었던 그런 기억도 있습니다.  

미국친구 데리고 대만루캉시 단오절 드래곤보트 축제 다녀왔습니다

미국인친구를 데리고 저의 카페 인근 도시인 루캉이라는 지역의 드래곤보트축제에 다녀 왔습니다. 지난 단오절연휴에 다녀 왔었는데요.

저는 이전 타이베이 살 때 집 앞 강에서도 드래곤보트 연습하는 사람들이나 시합을 종종 본 적이 있고, 까오슝에서도 단오절에 본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저의 카페 단골손님인 미국인친구가 1년간의 대만생활을 마치고 귀국을 하기 전, 단오절기분을 낼 수 있는 곳을 찾아 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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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지방도시의 드래곤보트 축제인데, 한무리의 미국인들이 모여 있더군요. 이야기를 좀 나눠 보니, 18세 이하로 이루어진 자녀들의 학교 드래곤보트팀에서 이 시합을 위해 미국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자녀들의 이런 스포츠활동을 위해 미국에서 온 것도 대단하고, 그 자녀들을 응원하기 위해 학부모들이 함께 와서 응원하는 모습도 부러웠습니다. 대다수의 가정은 이런 여유가 없잖아요. 

역시 교육은 어느 정도 ‘경제력’이 받쳐줘야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더 많은 영상과 내용은 유튜브로 올려 두었습니다. 길지 않은 영상이니 한번 보시면 재미 있으실 겁니다. 

보트에는 최소 8명 이상의 여자선수가 탑승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더군요. 그래서 남녀 함께 즐길 수 있어 더 좋아 보였습니다. 

중화권에서는 이런 드래곤보트, 용주龍舟 가 보편적이고 많은 사람들이 즐깁니다. 제가 아주 이전 홍콩출장 자주 다닐때, 홍콩이나 심천에서 살게 되면 중화권사람들, 외국인들과 이 드래곤보트 연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결국 지금까지 실현하지 못 하고 있는 꿈이네요.

여기 루캉시는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그동안 기회가 없었다가 이번 단오절연휴때 가 볼 수 있었습니다. 

작은 지방도시인데, old street 도 있어 옛스런 느낌도 나면서 위의 사진처럼 잘 정돈된 구역도 있었습니다. 

도시전체에 이런저런 단오절축제를 하고 있어서 사진처럼 도로에도 사람들이 넘쳐나는 모습입니다.

이런저런 노점들도 있어서 다양한 음식과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여기 Old street 느낌 괜찮더군요. 오래전에 형성된 거리와 건물들의 느낌이 좋았습니다. 규모면에서는 타이난의 그곳보다 더 크더군요.

태국에서도 그랬지만, 이런 오래된 건물들을 하나하나 구경하며 걷는 걸 좋아합니다. 

저날, 저 등지고 있는 미국인친구를 위해 여기 왔었는데요. 

저 미국인친구도 미국뉴욕쪽에서 공학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면서 정부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일년간 영어를 가르치며 대만생활을 하고 며칠전 돌아 갔습니다. 항공권 체류비 일체를 지원 받고, 월급도 받으면서 해외생활 하고 언어도 배우고…

거기에, 저 미국에서 온 학부모들. 자식들 드래곤보트 학교활동을 위해 대만까지 와서 지원해 주고 또, 함께 따라와 저렇게 응원도 하고.

역시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어야 양질의 교육도 받을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 하루였습니다. 

저는 중국에서 공부를 좀 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한학기 4개월 어학당코스만 수업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4개월수업 + 방학 2개월 이런 식으로 중국어를 배워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니 어림 없었죠. 당시에는 돈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중국에서도 돈이 없어 거의 매일 1원 2원 짜리 만두 같은거만 먹는 날도 많았고, 산동성 겨울인데 난방없고 온수 없는 싸구려 원룸 빌려서 생활했었거든요. 지금도 그게 너무나 아쉽긴 합니다. 

그 때 돈이 쪼끔만 더 있어서 쪼끔만 더 제대로 공부를 하고 사회에 나왔으면 직장생활, 사회생활, 인생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을테데 라는 생각이 아주 쪼끔은 듭니다. (한탄아님. 불평불만아님)

가끔 중국에서 4년제 대학을 나왔는데, 중국어를 저것밖에 못 하냐 하는 사람들이 보이거든요. 부모돈으로 유학가도 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건 아니니까요…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저 미국친구 귀국하는 날 오전에 저의 카페에 와서 체스도 몇 판 두고 저렇게 배웅해주는 친구들과 인사도 했습니다. 이란-미국-한국-대만 사람 입니다.

그 전날밤에는…

저의 카페 마감하고 12시까지 하는 시내쪽 카페에 가서 저 미국인친구를 위해 체스를 두었습니다. 

심지어는 옆테이블에서 보고 있던 다른 손님(흰옷)도 함께 모여 체스를 두고 12시가 넘어 집에 돌아 왔네요.

비가 내리는 밤, 야외에서 체스를 두니까 그것도 나름 재밌더군요.

저 미국인친구와 그동안 여행도 가끔 다니고 이런저런 대화도 많이 나누었는데, 돌아가서 아쉽더라구요. 저도 해외생활 많이 하다보니 인연이 다 오래가지는 못 해서, 점점 인연의 소중함을 느끼는 중입니다. 

이른아침 사람들이 다람쥐사체 사진을 찍는 이유

오전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어떤 여자분이 다람쥐사체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우리 동네 이장님도 나와서 다람쥐 사체의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6시가 조금 넘은 이 시각. 무슨 일로 사람들이 다람쥐사체 사진을 찍고 있으면 저는 왜 또 여기에 와서 그 사진을 찍고 있는 걸까요?

아침운동을 가려고 5시 40분경 일어 났는데, 저의 건물전체에 전기가 나갔더군요. 전원박스 열어봐도 메인스위치가 켜져 있는 상태였고,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6시가 조금 넘어 여느때처럼 시립체육관의 헬스장을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요.

집앞에서 마주친 동네주민 한분이 이 동네전체에 전기가 나갔다면서 이야기를 해 주시더군요. 그제서야 약간의 안도를 하며… 적어도 저의집 전기문제는 아니니까요. 그러면서 이장님이 처리를 하고 있다 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스쿠터를 타고 이장사무소 앞쪽을 가 보니 몇 명의 사람들이 이장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결론은 다람쥐가 전신주의 뭘 건드려서 폭발음과 함께 정전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저도 호기심에 한번 가 보았습니다. 다람쥐 한마리가 저렇게 죽어 있더군요.

평소 쟤네들은 감전 안 되나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요. 태국에 있을때도  동네 원숭이들이 저런 전신주에도 올라가고 전깃줄 타고 돌아다녀 궁금하긴 했습니다. 

이장님의 발빠른 조치?로 대략 한시간 조금 넘어 전기가 다시 들어왔습니다. 

이 동네 녹지가 많아서 이 다람쥐가 엄청 많습니다. 대학교캠퍼스 내에도 많고, 부근에는 저 다람쥐 이름이 붙은 공원이 있을 정도이니까요.

전기가 나가니까 냉동실의 얼음과 카페자재들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이 되더군요. 좀 불편한거야 감수하면 그만이지만, 장사를 못 하면 안 되니까요. 

머리에 침대 매트리스를 올린채 자전거를 타는 사람

저의 카페 통유리를 통해서 바깥세상을 바라 보고 있으면 재미있습니다. 여기는 대체로 자전거, 오토바이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짧은 순간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지나 다닙니다. 

며칠전에는 침대매트리스를 머리에 올리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이 보이더군요. 도대체 저게 가능한가 싶은데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습니다. 

영상으로 보시면 아주 안정감있게 타고 갑니다. 

최근 여기 대학교가 졸업+여름방학 이어서 많은 학생들이 많은 이삿짐을 옮기거나 캐리어를 끌고 가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있는데, 저렇게 매트리스를 자전거로 옮기는 모습은 처음이라 공유해 봅니다. 

얼마전에 비 오는날 큰 나뭇잎을 따서 우산처럼 쓰고 지나는 영상을 올린 적도 있습니다.(보러가기) 

최근 여기 대학교가 여름방학이라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떠난 상태라 좀 한가합니다. 많은 가게들은 방학 2달동안 아예 영업을 하지 않는 곳들도 있습니다. 

태국에서 가슴확대수술 비용

최근 태국지인이 가슴확대수술을 했습니다. 그리고 수술후 사진들을 보내줘서 봤는데요.

저 지인 기존 사이즈가 작은 A 사이즈였다고 하더군요. 평소에는 옷을 입고 브라를 하고 있으면 남자들은 정확한 사이즈를 알 수는 없죠. 가슴확대수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전 사진들을 보니까 T셔츠를 입은 상태에서 좀 볼륨감?은 없긴 하더군요.

비용은 50,000태국밧(약1,850,000원) 정도이고 예약잡고 오전에 가서 수술하고 오후에 집에 갔다고 하네요. 그리고 일주일뒤인가? 실밥 풀러 가고…

기분탓인지. 가슴수술후 부쩍 저런 스타일의 옷만 입고 야외에나가 사진을 많이 찍는 것 같더군요. 

남자들이 근육키워 몸 잘 만들면 몸 많이 드러나는 옷 위주로 입으려는 것과 똑같은 느낌이겠죠. 

한국지인중에도 가슴확대수술한 사람이 있는데, 만족도가 그렇게 좋고, 남편이 더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저 지인도 남편은 수술할 필요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는데, 하고나면 남편도 좋아할 거라고 확신을 하더군요.

저도 어릴때는 저런류의 성형수술에 굳이? 라는 생각도 조금 있었는데, 살아보니 저렇게 해서 내 인생에 자신감도 가져지고 행복감을 더 느낄 수 있다면 반대할 이유도 없죠. 어차피 인생 한번 사는거 멋지고 자신있게 행복하게 살면 좋죠.

그래서 한국은 찾아보니 대략 500만원 정도 하는 것 같더군요. 

태국에서 200만원 들여 남은 인생 본인만족하며 자신감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뭐 그렇게 비싼 비용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200만원 가지고 해외여행 한 번 하면 그 만족도가 오래가지 못 할 수도 있지만 저런 수술을 해 놓으면 거의 평생 가는 거니까요.

저와는 별개로 태국은 성전환 관련 이야기도 많죠. 제 주변 지인들 중에도 

이성애자 –> 동성애자 로 바뀐 경우가 몇 있거든요. 그리고 남자인데, 여자처럼 사는 사람도 좀 있구요. 작년에는 아주 가까운 남자지인이 동성애자 라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어머니가 한참을 울었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아들이니까, 이내 또 받아들이고 지지를 하시더군요. 그 남자지인이 저랑 가까운 사이라 그 전에 ‘말투나 행동 등이 좀 여성스러운데’ 라는 생각은 있었거든요.

태국은 남자들이 가슴수술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의 차이컬쳐 모토가 ‘어디서 살든 행복하면 그만’ 이듯이, ‘어떻게 살든 행복하면 그만’ 이죠.  

주변에 오지랍 많은 사람들 있죠. 정작 당사자는 잘 사는데 남의 인생을 평가 하려는 사람들. 내 인생 내가 잘 살면 됩니다. 가끔 보면 ‘이렇게 살면 부모님이 실망하시지 않을까 걱정…’ 이런 생각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성인이 되면 부모로 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해야죠.

제가 한국드라마는 거의 안 보는 편인데, 대만아내가 한국드라마 보고 있으면 중간중간 보는데요. 지난주에 대만아내가 끝마친 한국드라마에서도 아들 엄마 라는 사람이 아들인생, 며느리인생, 그 주변 사람인생 다 망치고 있더군요. ‘어떻게 키운 내 아들인데’ ‘우리 아들이 어떤 아들인데’ 이러면서…

오늘은 가슴확대수술 후 좀 뭔가 자신감?을 얻고는 사진 엄청 찍고 다니는 태국지인의 이야기를 소개해 보았습니다. 

대만의 연간 30도 넘는 평균일수

대만 많이 덥냐고 물어 보시는 분들 많죠. 저는 보통 4~5월 부터 10월까지는 한국의 여름날씨 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을 합니다. 대만에 살면서 대략 4~5월 정도면 이미 여름을 느낍니다. 그동안 수치화된 데이터가 없이 느낌으로만 대략 저렇게 생각을 했는데, 매년 30도 이상의 날짜평균 자료가 있더군요.

타이베이는 146일, 제가 있는 중부 짜이嘉義는 173일, 가장 더운날이 많은 곳이 타이난으로 186일 이네요. 반면 해발이 높은 아리산은 30도가 넘는 날이 없고, 일월담 지역도 16일 정보 밖에 되지 않습니다. 즉, 대만이라고 전 지역이 다 더운 여름날씨가 아니라는 거죠.

오전에 실내헬스장 가서 운동을 할 때도 있고, 인근 대학교 운동장 가서 운동을 할 때도 있습니다. 며칠전에는 대학교 운동장 가서 운동을 하려 했으나 아직 7시도 되지 않았는데 태양이 너무나 강렬하고 더워서 나무아래 교정을 걷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오전에 카페문을 열고 나가면 뜨거운 공기가 훅 들어옵니다. 하지만 대만에서는 좀 낫죠. 적어도 시원한 날도 꽤 되니까요. 태국 방콕 주변은 30도 안 되는 날이 일년에 1~2주 정도 밖에 안 되는것 같습니다. 언제나 오전에 출근하려 문을 나서면 공기가 뜨겁습니다.  

대학교 교정을 돌아다니다보면 저런 다람쥐가 많이 보입니다. 녹지가 잘 보존이 되어 있는 학교라서 교정을 거닐면 심신이 안정되는 느낌입니다. 실제로 많은 연구결과가 나무가 많은 숲속을 걷거나 명상을 하는 것으로도 심신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하죠. 

저기 저 강아지는 수업중에 교실에 들어와서 잠도 자는 강아지입니다. 가끔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자는 모습을 찍어 올리기도 합니다. 

낙엽주의 라는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한국군대에서도 ‘말년에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 라는 말이 있는데요. 사실 한국의 산림에서는 낙엽에 맞아 부상을 입을 만한 수종이 있을까 싶지만…

대만에서는…

 

저 높은 위치에서 이런 애들이 떨어지니까 조심 해야 합니다. 

지난주 한국출장 가기전까지만 해도 비가 자주 내려서 많이 덥지는 않았는데, 최근에는 비가 잠시 내릴때가 많고, 비가 내려도 오후에 ‘따뜻한 비’ 가 내리거나 비가 내리면서 한증막 효과가 발생을 합니다. 

그럼에도 기후만큼은 대만이 태국이나 한국보다는 좀 낫다고 생각을 해서 지내는 것이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그럼에도, 대만이나 태국여행 올때는 가벼운 긴팔을 휴대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내 들어가면 에어컨 바람에 한기를 느끼거든요.

중국리튬배터리업체와 한국출장을 갔었는데요.

지난주 모기업의 품질이슈로 한국출장을 갔었는데, 당시 리튬배터리공장의 직원도 왔었습니다. 리튬배터리쪽 이슈로 추정이 되는 품질이슈였거든요. 

그 배터리공장 직원이 배터리를 분해해서 확인해 보는데, 실내에서 하기에는 위험하다고 해서 외부로 나와 분해작업을 했었습니다. 

저보고 배터리를 분해하고 담을 물을 가져다 달라고 하더군요. 저 내부의 화학물질들이 위험물질이라 반드시 저렇게 물에 담궈야 한다고 했습니다. 물에 닿자 마자 거품이 심하게 발생을 하더군요.

아무튼 지난주 한국출장가서 중국배터리업체 담당자와 만나 이런저런 일을 하고 왔는데, 이번주에 한국의 배터리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네요.

중국담당자에게 물어보니 간혹 배터리분해작업 하다가 구토를 하는 작업자들은 있었다고 하더군요.

한국출장 마치고 대만귀국 했습니다

6일간의 한국출장을 마치고 대만으로 귀국을 했습니다. 늘 그랬듯이, 한국을 가면 출장가는 느낌, 여행하는 느낌이 들고, 대만 오면 내 집에 돌아왔다는 느낌이 듭니다.

말씀드린대로 모대만기업의 대규모품질이슈로 인해 납품했던 한국으로 가서 현지대응 했습니다. 저는 그 회사의 현지업무를 도와주러 간, 프리랜서? / 에이전트 역활이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업무경험이 쌓여서인지, 내가 해 보지 않은 제품, 내가 일을 해 보지 않은 공장의 업무도 대충 눈에 다 들어 오더군요. 심지어는 공장측에서 저렇게 대응하면 안 되는데, 라는 부분까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저는 사회초년생부터 엔지니어를 데리고 다니는 출장업무, 엔지니어와 함께 하는 업무미팅을 많이 해 와서 이번처럼 엔지니어와 함께하는 이런 류의 업무는 뭐  나름 경험이 많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업무를 해 오면서 주변의 PM(Project Manager), 영업 등을 보면 책상, 모니터에서 위주로 업무를 해 오다보니 현장경험이나 제조공장 현장업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꼭, 이런 직업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우리 삶에서도 인생을 딱 정해진 루틴에서 안전하게만 살아온 사람들이 있는 반면, 많은 경험과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산전수전 경험한 그런 삶도 있습니다. 

최근에 이런저런 업무를 하면서 보다보면 확실히, ‘경험’ 특히 ‘압도적인 경험’ 은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경험이 많이 없거나 책상/모니터 에서만 업무를 하는 직원들과 업무를 해 보면 그런 것들이 느껴 집니다. 

중국, 대만 직원들이 ‘한국치킨’ 을 먹고 싶다고 해서 교촌치킨에 갔는데요. 교촌간장치킨은 이전의 그 ‘감동?’ 이 없더군요. 이전의 교촌간장치킨 하면 압도적이었는데 말이죠. 이번에 먹으면서 좀 밍밍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런 맛이 어서 살짝 실망했습니다. 

A라는 회사의 품질이슈 업무 도와주러 한국 와 있는데, B라는 회사 전직장 동료가 자기공장 품질이슈에 대해 저에게 물어보더군요. 어떻게 고객사에게 대응리포터를 써야 할 지 모르겠다면서…  제가 해 보지 않은 제품이고, 그 회사 제조/품질 프로세스를 모르지만 품질이슈 내용을 들어보니 어느 프로세스와 어느 프로세스를 점검하고, 거기 관리 SOP 및 관리데이터 확인하고 또, 고객사 쪽에는 어떤 부분 확인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는 보이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조언을 해 주었더니 그 다음날 그렇게 해서 효과를 봤다고 감사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동시에 2 곳의 품질이슈를 점검해  주는 (내 주 업무도 아니면서) 일을 했네요.  

압도적인 경험  에서 나오는 거죠.

100원 이라는 예산으로 칫솔과 치약을 사라고 하면 저는 칫솔 80 : 치약 20 으로 소비를 합니다. 칫솔과 칫솔질이 치약보다는 훨씬 중요하니까요.

대만에는 이 칫솔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쟤를 오래 사용해서인지 손잡이, 칫솔모 등등이 제가 가장 익숙한데, 다른 칫솔들은 사용하기가 좀 불편합니다. 모가 괜찮다 싶으면 손잡이가 좀 불편하고, 모와 손잡이가 괜찮다 싶으면 저 목부위가 너무 약해서 전체가 휘어 버리고. 

그래서 가끔 한국가면 제가 평소 사용하는 칫솔을 한번에 구입을 해 오는 편입니다. 

그리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저는 대충 한달에 한두번은 칫솔을 교체하거든요. 2주? 3주? 한달을 넘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양치를 하루에 3~4회는 꼭 하니까요.  그런데 3개월마다 교체하라니… 저 칫솔 내구성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습니다. 대략 2주 3주 정도면 칫솔모가 누워 버리거든요.  누운 칫솔모는 양치효과가 확실히 떨어진다는 건 많은 치과의사들이 이미 입증을 한 부분입니다.  

돈만 아주 많다면 칫솔은 2주에 한번 정도 바꾸고 싶을 정도이거든요.

이전에는 한국오면 제가 좋아했던 던킨도너츠 에서 커피와 도넛 한번씩 먹었는데, 이제는 SPC는 불매를 해 줘야 할 것 같아서 최근에는 안가게 되더군요. 특히 인천공항에서도 그 던킨도너츠 매장에서 앉아 비행기 기다릴 때도 있었는데, 당분간은 SPC 니까 불매를 해 줍니다. 

덕분에 공항에서 늘 소비하던 5000원 아낄 수 있었습니다. 

타오위안공항에서 고속철도를 타고 대만중부 운림까지 와서 거기서 택시를 타고 집에까지 왔는데요.

약간 연세가 있으신 택시기사분께서 내려서 캐리어도 실어 주시고, 라디오를 들으시다가 제가 탑승을 하니 뭔가 고상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줘서 주변의 논밭을 바라보며 잠시 감상에 젖어 드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요.

저 영상 이전에 수차례 저렇게 고개를 떨구어서 졸음운전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대학졸업 할 때쯤 IMF 가 터졌었죠. 그래서 학교가기전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우유배달을 해야만 했었습니다. 3시 30분 부터 일어나 우유배달 하고 집에오면 7시전후. 그리고 저녁에는 수금을 하러 돌아야 했구요.  암튼 그렇게 우유배달하던 지역에 중고등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교무실에 선생님들이 출근하기 전에 우유, 요쿠르트 책상에 올려 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수금을 하려고 여자영어선생님과 직접 마주친 적이 있는데, 정말 어리더군요. 저는 군대도 다녀 오고 휴학도 두번인가 하고 해서 졸업이 좀 늦은 편이었으니까요.

그 때 처음으로 ‘선생님’ 이라는 사람이 그냥 보통의 직업군 중 하나. 특히 저 영어선생님도 내 주변의 선후배 중 학교에서 공부 좀 잘 하고 교원자격증 따서 저 위치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 이라는 생각이 들자, 어린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선생님’ 이라는 경외심이 한번에 사라지더군요. 

좋게 말하면, ‘선생님’ 이라는 직업도 별거 아니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업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열심히 하면 선생님보다 더 잘 할 수 있겠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제조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그 당시에는 차장/부장급 혹은 임원급 하면 뭐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 제조업의 품질부서 사람들은 아주 대단한 지식, 재능 이 있는 사람이구나 막연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는데요.

최근에 그 쪽 사람들 보면, 또 다 고만고만 한 능력치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장에서 차장 부장 이라고 해 봤자, 그냥 거기서 반평생 딱 그일만 해오다 보니 지식이나 사고가 편협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찌보면 월급쟁이의 한계 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안주하게 되거든요. 매너리즘에 빠져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지도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그릇은 딱 밥그릇 정도 크기인데, 그나마 기존에 알고 있던 오래된 지식은 비우고 새로운 지식으로라도 배워서 채워 넣어야 할텐데, 많은 공장의 소위 엔지니어 라는 사람들이 보면 그나마 가지고 있는 밥그릇 이라도 챙기려고 그걸 비우지 않고, 끌고 안고 그걸로만 평생 그 조직에서 자기 자리 유지하려 하니 발전이 없는거죠.

내가 알던 그 작은 밥그릇에 담긴 걸 빨리 비워서 그건 아랫사람이 하도록 전수해 주고 나는 새로운 걸 담아서 그걸로 더 발전된 일을 해야 하는데, 월급쟁이 타성에 빠지면 그게 안 되고, 그렇지 못 한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러다보니 조금의 외부변화에 어려워 하고 힘들어 하고 그 직장을 그만두면 할 것이 없다고 두려워 하는 것이죠.

택시를 20년 몰았다고 ‘미하헬 슈마허’ 처럼 되지 않습니다.

대만기업 출장업무 지원하러 한국출장왔습니다

한국에 출장을 왔습니다. 최근 몇년간 한국 올 때, 인천공항으로만 오다가 오랜만에 김포공항으로 입국을 했네요. 김포공항은 항공편이 적어 수속이 빠를 줄 알았는데, 함께 온 외국인들은 거의/체감상/기분상? 한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저는 자동수속기계를 이용해서 빨리 나와 기다렸는데, 외국인들 쪽 줄은 엄청 길더군요.  사람들이 너무 오래 나오지 않아 수하물 컨베이어벨트가 돌지도 못 하고 저렇게 대기를 하다가 급기야는 항공사직원들이 수하물들을 내려 놓기까지 했습니다. 김포공항은 항공편이 적어 수속 빠를 거라고 외국인직원들에게 이야기를 했었는데 살짝 머쓱해진 순간이었습니다. 

대만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이 오전이었는데, 제가 사는 중부지방에서 고속철도를 타도 그 시간을 못 맞출 것 같더군요. 그래서 출장당일 저녁 타이베이로 가서 1박을 하고 공항을 갔네요. 공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면 오전항공편 타려면 근처에서 1박을 해야 겠더군요.

이번 출장의 목적은 모대만기업의 한국출장업무 서포트 인데요. 프리랜서 형태로 그 기업으로부터 항공권, 출장비 전액, 인건비 등등을 받고 오는 형태라 평소 회사에 소속된 출장과는 조금 성격이 다른 출장입니다. 

올해초 모대만기업의 한국어통역업무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요청한 금액보다 더 많이 통역비를 줘서 감사했었는데, 여기 대만기업도 제가 요청한 비용에 대해서 모두 받아줘서 기분좋게 출장을 올 수 있었습니다. 

저도 한국에서 차량을 수배해서 고객사방문을 했는데요. 차량의 기어가 핸들 오른편에 붙어 있는 형태더군요. R N D 보이시죠?

사실 저는 노파워핸들, 수동, 핸들 오른편에 기어변속기가 붙은 수동차량, 등등도 운전을 해 보았고, 이전 수동차량중에도 후진기어가 5단 우측에 있는 것도 있고, 1단 좌측에 있는 것도 있는데 그런 차량들도 운전을 한 경험이 있으며, 어렴풋이 기억으로는 기어변속기의 손잡이 부분을 들어 올려 후진으로 변경하는 차량도 있었는데, 무튼 뭐 그런 차들도 운전을 한 경험이 있어서 차를 타는 순간, 이거 뭐지? 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바로 적응이 되더군요.

(**노파워핸들 모르시거나 운전해 보지 않은 분도 계실 것 같은데요. 요즘 차량에는 기본인 파워핸들, 손가락 하나로 걸어도 핸들이 돌아가는 이 기능이 이전에는 무려 옵션인 적도 있었고, 이 기능 없는 차량도 많았죠. 저는 운전을 그런 차량으로 시작해서인지 노파워핸들도 무리없이 운전을 했었습니다)

저는 태국가면 공항에서 바로 운전을 하는데, 오히려 좌핸들 차량 운전도 이제는 낯설지가 않은데, 한국에서 운전하는 것이 살짝 낯설어 대략 10분간 시내도로에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우회전방법 바뀌었잖아요.

저는 유럽에 출장 과 여행 갔을때도 공항에서 렌트해서 운전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대략 30분 정도 차와 도로, 도로표지판 등등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 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 제가 있는 대만중부는 비가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했고, 타이베이는 우중충한 비내리는 날씨가 지속되고 있는데요. 이른 아침 공항 가려고 나오는데, 한증막에 있는 것처럼 습하면서 더운 열기가 온 몸을 감쌌는데, 확실히 한국은 대만에 비하면 습도가 낮아 상쾌한 느낌이더군요. 

최근 대만은 비가 내려도 시원하지 않는 그런 기온입니다. 

열악한 한국음식 환경인 대만에서 살다가 한국에 와서 제대로 된 삼겹살을 첫날 먹었습니다. 이런 삼겹살이 바로 제가 원하는 삼겹살인데요. 대만의 유사한국식당에서는 이런 삼겹살을 찾기가 너무나 힘듭니다. 

대만기업의 한국출장업무지원을 위해 출장을 오니 제가 직접 회사소속으로 제 업무를 위해 출장을 오던 것과는 확연히 부담이 다릅니다. 지금 출장을 온 대만직원들은 업무부담과 책임이 상당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지원하러 오다보니 ‘출장을 이렇게 마음편히 와도 되나?’ 라는 익숙치 않은 불안함? 이 되려 있네요. 반평생 출장=책임감/실적 이라는 마음으로 출장을 다녔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