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저의카페 공포영화 극장

제3회 저의카페 공포영화관람회 를 성공리에 마쳤습니다. 이 날은 마침 비도 부슬부슬 내려서 공포영화 보기 딱 좋은 날이었는데요. 잠시 쉬는 시간에 한 컷 찍어 보았습니다. 

작년부터 여기 대학생들과 공포영화를 모여서 봤는데, 이번이 3번째 였습니다. 다음에 다시 모이기로 하였구요.

그리고 이 대학생은 얼마전 제가 바베큐저녁 먹을 때 마침 저의 카페에 늦게까지 남아 있길래 함께 먹자고 했더니만, 이번에 부모님집에 갔다가 부모님이 하는 식당의 음식을 저에게 주더군요. 받은걸 감사해 할 줄 아는 학생입니다. 

영화 관람하는 학생들도, 제가 장소와 음료, 케익 등을 제공하면 먹을걸 가지고 와서 함께 나눠 먹습니다. 

최근에는 어떤 대학생이 남자친구 기다리는데, 카페마감시간 8시가 되어서 갈 곳이 없어 하는 눈치더군요. 그래서 남자친구 올 때 까지 카페에서 기다려도 된다고 했습니다. 

곧.도.착.한.다. 던 남자친구는 9시30분이 넘어서야 오토바이를 타고 해 맑게 웃으며 오더군요. 직선거리로 60Km 떨어진 도시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대학생 손님들이 많은데요, 아무래도 학생들이다 보니 제가 좀 배려?를 해 주는 그런 입장입니다. 학생들이라 아무래도 경제력도 좋지 않은 경우도 많으니까요. 

여기 대학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는데, 학업을 하면서 알바를 하는 학생들이 꽤 있습니다. 일주일에 2~3번 파트타임 으로 생활비 정도 벌어가며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많은데요.

대학생시절 풀타임잡 같은 알바를 많이 했던 입장에서 말을 하면, 부모경제력이 좋아서 알바 안 하고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럽긴 하죠. 저의 경우는 대학생시절에 

트럭으로 과일배달 : 말이 알바이지, 하루 8~10시간 이상씩  새벽부터 무거운 과일박스 날랐음.

주차타워 파킹알바 : 1종대형  운전병 경력을 살려, 기타 알바보다 압도적인 주차실력으로 출퇴근시간 사람 몰릴때 차들을 신속히 이동.

과외 : 중학생이었나? 저는 돈을 벌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 중학생에게 일주일에 7~8개의 과외를 시키는 그 부모는 도대체… “선생님 저 너무 힘들어요” 라고 하던 그 어린 여학생의 표정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카페알바 : 트럭과일알바 오래 하다보니 땀 안 흘리고 힘 안 쓰는, 좀 우아한? 알바 하고 싶어 카페알바를 좀 오래 했었습니다. 

공장파산등산용품창고파격세일 : 큰 상가에 물건들 진열해 놓고 판매하는 알바였는데, 주인이 참 쫌생이 더군요. 거의 하루종일 일을 했는데, 8시30분까지 일을 했거든요. 저녁 6시쯤 되면 자기혼자 저녁 먹고 밥 한끼 제공 안 해서 좀 섭섭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새벽우유배달 : 너무 힘들었음. 이 학기 학사경고 받음. 아버지가 실직하는 바람에… 학교다니면서 절대 하면 안 되는 알바.

할뻔한 알바 : 자취방 옆방 누나들이 단란주점에서 일하던 누나들이었는데, 항상 저녁에 고기 구워 먹을때 저를 초대해서 함께 먹었고, 그 중 한 누나는 압도적인 미모여서 ‘저런 누나랑 사귈 수 있을까?’ 라는 환상을 가진 누나들이 있었는데, 저보고 자꾸만 자기들 단란주점에 술 서빙하는 알바 하라고 해서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당시 저의 알바시급을 듣더니만, 그 누나들이 비분강개하며 ‘도대체 니가 그 시급으로 왜 그런 알바를 하고 있니? 바보같이. 너 오면 누나들이 잘 챙겨 줄께. 너 외모면 손님들에게 팁도 엄청 받겠다’ 라고 꼬시는 바람에 그 당시 돈이 좀 필요한 시절이어서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저희집 고양이들은 낮에는 저보고 돈 많이 벌으라고 하지만, 밤이 되면 나름 자기들도 밥 값을 하겠다고, 1층에 놓아둔 생선들을 꼭 3층 침대옆에 가져다 놓습니다. 생선뿐 아니라 도마뱀 사체, 바퀴벌… 등등

갑자기 학생들 알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어떤 알바들을 했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지금 생각나는 건 저런 것들이네요. 학창시절 거의 상당수의 기간동안 알바를 했습니다. (부모 재력이 좋아 알바 안 하면서 공부만 할 수 있는 학생들은 행복한 거죠)

돈 많은 부모의 학생이라고 공부를 잘 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부모가 가난한 학생들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마저 가질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인근 대학생들 뿐 아니라, 카페 주변에 외국인들도 좀 있는데요. 그 외국인들 하고도 이래저래 교류를 많이 합니다. 그들은 차량이 없거든요. 그래서 저 위의 혼자 사는 미국인 여성분을 차로 몇 군데 모셔다 드렸습니다. 외국인이 혼자서 말도 안 통하는데, 살아가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것도 여자분이…

카페를 하고 있지만, 커피만 파는 카페가 아니라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문화공간이 되려고 노력을 합니다. 

대만시골카페 일상

최근 카페일상을 한 번 소개해 보겠습니다. 일상블로그 입니다. 

위의 저 손님은 아이스라떼를 시켰는데, 주문을 하면서 “나 여기 라떼 마시러 온 거 아니다. 너에게 체스로 참교육을 시켜 주기 위해서 왔다. 지난번에 저 쪽 테이블에 앉아서 체스 이야기 했었는데, 기억 나냐?” 라고 도발을 하더군요. 

“얌전히 라떼 한 잔 마시고 떠나라. 괜히 다른 손님들 앞에서 망신 당하지 말고” 라고 해도, “니가 지난번에 다음에 체스 두러 오라고 하지 않았냐?” 오늘 너를 이기고 가겠다. 라고 하길래 또 손님과 체스를 두었습니다. 

세판을 두어서 세판 모두 제가 이겨 버렸습니다. 

주문한 라떼도 다 마시고, 제공한 물도 엄청 마시더군요. 벽을 느꼈을 테니까요.

연습해서 다시 오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더군요. (여기까지는 과장, 농담, 억지유머 를 좀 가미했습니다)

게임을 마치고 다음에 다시 두자는 기념으로 서로 인증샷을 남겼습니다. 저 손님 외모와 말투가 개그맨 정성호씨가 박근혜전대통령 흉내 낼 때와 비슷하더군요. 물론 대만사람이니까 중국어로 이야기를 했지만 느낌이 정성호개그맨이 박근혜 성대모사 할 때의 분위기와 너무나 비슷했습니다. 대학원생으로 공부를 하면서 가끔 체스연습을 한다고 하더군요.

얼마전에 놀면뭐하니의 이미주와 에이핑크 닮은 대학생 소개를 한 적이 있는데요.  이번에는 

트와이스의 지효…. 를 닮은 것 까지는 아니고 봤을때 연상이 좀 되는 그런 대학생손님이 있어서 인증샷을 함께 찍었습니다. 

중앙에 있는 손님인데, 뭔가 트와이스 지효 느낌(닮았다는 것 아님)이 나지 않나요?

서로 인증샷 찍고 사진 주고 받고 했습니다. 멀리서 일부러 저의 카페를 찾아 주신 손님이라 더 감사하더군요.

저의 카페는 시골마을, 그것도 주택가 골목길 안쪽, 상점이 하나도 없는 장소에 뜬금없이 떨어져 있어서 손님들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구글맵 후기 들이 가장 큰 광고가 됩니다. 

그래서 손님들이 사진을 찍어 자신들의 SNS에 올려 주면 그걸 보고 왔다는 친구들도 많거든요.

이렇게 사진찍어서 올려 주면 저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최근에 어떤 손님이 2층에서 찍어서 저에게 보내준 사진인데요. 저의 고양이 니니가 걸려있는 고양이 그림을 보고 있는 모습을 절묘하게 찍었더군요. 그래서 소개해 봅니다. 

그래서 손님들이 저의 고양이들 사진을 찍거나, (제가 한국인이라서) 저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해도 저는 늘 대 환영이죠.

위의 두 사진을 보면, 제 느낌으로는 첫번째 사진이 더 분위기도 있고, 좋거든요. 그런데 손님이 SNS 에 올릴때는 저의 상호가 나온 두번째 사진을 올리거나 둘 다 함께 올리면 더 감사하죠. 아무래도 상호가 계속 노출이 되면 사람들이 더 많이 알게 되니까요.

저희가 일을 열심히 하는지 안 하는지 늘 감시를 하고 있는 니니 입니다. 저는 뭐 잘 못 한 것도 없는데, 늘 제 주변에서 저런 표정으로 저의 근무태도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대략 반년에 한 번 정도 저렇게 방역을 하는 것 같더군요. 저 하얀연기를 하수구 구멍에다가 뿜어 넣으면 저 날은 온종일 수십/수백마리의 바퀴벌레들이 도로로 쏟아져 나옵니다. 저는 저 날 대략 40마리 이상의 바퀴벌레를 잡은 것 같습니다. 

대만은 타이베이 도심에도 바퀴벌레가 많습니다. 이게 겨울이 없는 기후때문에 바퀴벌레가 더 많은 것 같이 느껴집니다. 저의 카페 주변은 온통 논밭입니다. 그래서 카페 앞 길로

이런 대형 농기계들이 많이 다닙니다. 그리고 바로 이웃도 대형트럭을 이용해서 전문적으로 돌아다니며 농약을 쳐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집 트럭주변에 가면 농약냄새가 심하게 납니다. 

시골지역 카페생활 간단히 소개해 보았습니다. 

며칠전, 한국에서 아는 동생이 “형님 요즘 왜 유튜브 영상도 안 올리고 차이컬쳐 글도 뜸해요? 나태해 진 것 아니예요?” 라고 연락이 왔더군요.

아닙니다. 요즘 제가 체스연습을 하면서 점수를 좀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 기준으로 대략 900점을 넘겼는데요. 1000점 넘기면 다시 인증샷을 올려 보겠습니다. 

아직 글로벌 순위는 4,385,000 정도이네요.

한국 대만 일본 프리미어12 경기 feat 김도영선수 싸인볼

대한민국의 야구/축구광인 저의 대만 친구가 이번에 대만에서 열리는 프리미어12 한국vs대만, 한국vs쿠바 전을 관람하고 보내준 사진입니다. 

특히 김도영 선수 싸인까지 받았다고 자랑을 하더군요. 이 친구와 저는 한국축구/야구 경기할때면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늘 함께 합니다. 

이 친구가 약간 대한민국 야구/축구 광이라서 저보다 더 많은 내용들을 알고 있고, 심지어는 저도 모르는 내용들을 꿰뚫고 있습니다. 유튜브만 안 해서 그렇지, 소위 말하는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매니아 입니다. 

어제 한국vs쿠바 전도 저렇게 한국유니폼을 입고 티엔무경기장에 가서 관람을 했습니다. 제가 만약 타이베이에 살았으면 함께 갔을건데, 아쉽게 대만 중부에 살고 있고, 카페를 하고 있어 못 갔구요.

한일전 보러갈까 했는데, 괜찮은 좌석은 또 전부 매진이라는 것 같더군요.

야구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최근 대만에서 한국인 야구치어리더들이 인기가 많습니다. 

제가 “함께 기념사진이나 찍어라” 라고 했더니만 

“함께 사진 찍으려면 3000대만달러(약12만원) 상당의 물품을 구입해야 사진찍을 수 있는 티켓을 받을 수 있다” 라고 하더군요. 

제 아내에게 “저 한국인 치어리더랑 사진 찍으려면 3000대만달러 물품을 구입해야 한대” 라고 했더니만 저에게 

“너네 남자들은 저런 여자들과 사진 찍으려고 저런 돈을 낭비하냐?” 라고 가만히 있던 저까지 싸잡아 매도 당해 버렸습니다. 정말 억울…

한국인 관람객들이 많이 왔다고 하더군요. 저도 이전 타이베이 살 때 한국전 야구경기 보러 갔다가 관중석 앵글에 찍힌 적도 있죠.

해외살면 그 나라에서 국제경기 보러가게 되더군요.

이 친구가 대한민국 야구/축구 광팬이지만 그저께 한국vs대만 전에는 또 대만유니폼을 입고 관람을 갔습니다. 

타이베이돔 구장 입니다. 저기 한 번 가 보고 싶은데, 아직 기회가 없네요.

대만에게 졌죠. 이전에는 대만정도는 이랬는데, 이제는 대만에 지기도 하네요. 

다행이라면….  일본이 아니라서 그렇게까지 열받지는 않더군요. 오늘 한국 vs 일본 전에서 지면 엄청 열받을 것 같은데요. 오늘 꼭 이겼으면 합니다. 

지난번 골때녀 한일전에서 진 걸 보고도 하루종일 짜증이 났는데, 오늘 한일전 지면 엄청 짜증 날 것 같습니다. 

영어 급히 배워서 올해 구한 회사의 태국지인 급여명세서

저의 태국지인의 급여명세서 입니다. 태국돈으로 62,000밧 인데요. 

한국돈으로 환산을 하면 대략 2,520,000원 정도 입니다.  태국사람들의 평균급여수준이 한국의 30~40% 수준임을 감안할때, 한국돈으로 2,500,000원 을 받는다는 건 상당히 높은 편이죠. 거기다가 여기는 대기업이라 보너스, 퇴직금 그 외 복지조건들이 나쁘지 않거든요.

원래 이 지인은 공장에서 일반생산직과 생산관리직을 했었고, 처음 10,000밧, 퇴사할 때쯤 20,000밧(810,000원) 정도 였거든요. 저에게 진지하게 물어보더군요. 

“이 월급으로 공장에서 12시간씩 일을 하면서 살려고 하니 인생에 답이 안 보인다. 뭘 어떡해야 이런 지옥같은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겠냐?”

그래서 이야기를 해 줬죠. 외국어를 배워라. 그러니까 또, 자기는 머리가 안 좋은 것 같고 공부도 잘 못 했는데… 라고 하길래.

언어는 바보도 금방 배운다. 

라고 해 줬죠.

21일 출근하고 62,000밧을 받는 직장을 구했다며, 다 저의 조언덕분이라고 급여명세서를 보내왔길래 뿌듯한 마음으로 올려 봅니다. 

사실 이 친구뿐 아니라 또 다른 지인은 제가 스카웃해 오려고 면접을 봤는데, 기존 회사에서 그 사실을 알고 한번에 10,000밧(400,000원)을 올려 줬다고 하면서 제가 면접을 본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회사는 가만히 얌전히 묵묵히 다니는 직원에게는 급여를 더 주지 않거든요.

저는 이전에 어느 회사를 들어갔을때도 어느 직원의 급여가 하는 일에 비해 좀 많이 낮더군요. 그런데 이 직원은 사회초년생이라 그게 낮은 급여인지 인지를 못 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제가 제 상사에게 건의를 해서 올려 주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상사는 그 직원이 하는 일에 비해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좀 설득을 해서 월급을 올리기도 한 케이스가 있습니다. 

아무튼 한국의 30~40% 급여수준인 태국에서 태국인이, (그것도 기존에는 평범한 공장생산직이었던), 한국돈 2,500,000원을 받는건 쉬운 일이 아니죠. 한국급여로 환산하면 7,500,000원 정도이니까요. 

이렇게 영어 하나 잘 하는 것이 무섭습니다??? 

 

오늘아침 카페오픈 준비를 하려고 문을 열고 나왔는데, 마른 하늘에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더군요. 사진에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저기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일 정도로 마른 땅에 비가 딱 저 정도 내렸습니다. 마른 땅이나 흙에 빗방울 떨어지면 올라오는 그 냄새가 아주 상쾌하더군요.

영어이야기가 나온김에, ‘마른 땅바닥에 빗방울이 떨어져서 나는 냄새’ 를 영어로 petrichor 이라고 하거든요. 

한국어에서는 저 단어를 지칭하는 한단어가 없는데, 영어권에서는 있는 걸로 보아 영어권 사람들도 저 냄새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가졌나 봅니다. 영영사전에 보면 즐거운 기분을 주는 냄새 라고 되어 있거든요. 

대학생손님과 바베큐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카페 대학생손님과 저의 바베큐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종종 저렇게 저녁을 해 먹는데, 저 날은 저 대학생손님이 마감시간까지 남아 있던 차에 아직 저녁을 안 먹었다고 해서, 함께 먹자고 했죠.

지금까지 가끔 여기 손님들과 저렇게 바베큐저녁을 먹은 적이 있거든요. 

유학생도 그렇고 타지에서 와서 혼자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이런 저녁을 자주 먹을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요.

저는 자취생활도 많이 했고, 해외에서 혼자 오래 생활도 많이 했었고, 돈이 거의 없이 해외에서 공부한다고도 머물러 봐서 가끔 이렇게 현지인들이 이런 식사를 대접해 주면 그게 얼마나 감사한지 잘 압니다. 

특히 직장을 구하기 전 해외생활 할 때는 정말 궁핍하게 살았었거든요. 하루 생활비를 제한하려고 동전을 쌓아 놓고 집을 나설때 그것만 들고 나간 적도 있고, 일년 계획 해 놓고 돈이 없어서 중간에 돌아 온 적도 있고, 중국에서도 돈이 없어 중간에 지인에게 소액을 빌린 적도 있고 뭐 그랬습니다. 제가 대학교 다니면서 알바를 좀 많이 했던 이유가 경제적으로 좀 어려워서 였거든요.

지금은 가끔 여기 대학생손님들에게 고기저녁 한번씩은 대접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네요. 타지에서 혼자 공부한다고 나와 있으면 이래저래 힘들죠.

며칠전에는 어느 여학생이 최근 3주간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부모님집에 가서 머물다 왔다고도 이야기를 하더군요. 학창시절은 다들 그렇게 경제적으로 어렵게 지내기 마련이죠. 

최근 또 저 손님이 ‘니가 체스로 좀 친다며?’ 라고 도발을 해 오더군요. 도전장을 내밀길래 지고 울고가지 마라고 경고를 하고 두판을 두었습니다. 두판다 제가 이겼구요. 평소 혼자서 컴퓨터나 온라인으로 연습을 했는데, 실제로 사람과 두어 보니 완전히 다르다며 좀 더 연습을 해서 이겨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다짐 변치말라고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울면서 떠나는 모습이 애처로웠지만 어쩔 수 없죠. 승부의 세계는…

까지는 농담이구요. 저 손님도 저의 카페 단골손님이고 최근에 체스를 배우기 시작했다면서 저와 한 판 두었습니다. 최근 저와 체스를 두려는 손님들이 많아서 저도 꾸준히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만 저의 카페인근 시골마을 신축 4층주택 매입가격

제가 여기 시골마을에 와서 카페를 준비할 때 부터 짓고 있던 저 건물이 이제 완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먼저 이 부근의 상황을 설명드리면…

여기는 지방국립대학교가 있고, 그 주변으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원룸, 자취방 들이 많이 형성이 되어 있습니다. 장소가 다소 지방에 있고 시골마을이라 도심의 대학상권과는 사뭇 느낌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대학교자체 기숙사가 부족해서 2, 3, 4학년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주변의 원룸에서 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이 곳 주민들은 기존의 방을 학생들에게 세를 놓는 임대업으로 돈을 조금씩 벌고 있는데요.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세를 주는 경우도 있고, 저렇게 오래된 건물을 헐어내고 완전히 현대식 새건물로 지어 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학생들이 많으니까 저렇게 원룸용 건물을 지어 올리면 돈이 되는것 아니냐? 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첫번째 사진 오른쪽 같은 낡은 건물을 매입해서 지어 올리면 되죠. 하.지.만.

여기는 이 대학교상권이 아니면 딱히 다른 대체상권이 들어오기가 어려운, 주변이 온통 논밭으로 둘러 쌓인 곳입니다.  대학교가 망하면 그야말로 수요가 확 떨어지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설마 대학교가 망하겠어? 인근에 사립대학교 하나가 올해 폐교를 했습니다. 그 대학교 주변에도 가 보면 이런 원룸도 있고, 약간의 상권도 있었으나 이제 거기는 완전히 죽어버린 상권이 되었습니다. 또, 대학교 학생수도 점차 감소하지 않겠어요? 대만도 한국처럼 출산율이 0.대, 즉 감소추세이거든요.

무튼, 이 신출건물도 오래된 건물을 헐어 내고 지어 올린 겁니다. 그런데 이 건물을 볼 때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첫번째 사진에서 제가 사진을 찍기 위해 서 있던 등쪽방향은 높은 건물도 없고 논밭방향이고 남향이며, 시야가 탁 트였습니다. 그러면 보통 시야가 탁 트인 남향으로 메인창을 내기 마련인데, 여기는 마주보고 있는 건물쪽으로 창문을 냈더군요. 왜 이렇게 설계를 했을까?  

저의 카페에서 종종 커피를 구입하시는 건축관리자가 있길래 아직 완공은 되지 않았지만 들어가 내부를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물어 보았죠. 왜 남향쪽은 확 트였고, 높은 건물도 없어 시야도 좋은데, 창문을 굳이 맞은편 건물쪽으로 냈냐고? 

저 분 말로는 이 건물의 동쪽, 즉 건물과 마주 보고 있는 쪽은

위의 사진처럼 ‘도로’ 인데, 남쪽은 도로가 아니라 사유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중에 저 공터사유지 주인이 건물을 지어 올릴 수도 있기 때문에 건물을 지어 올릴 수 없는 ‘도로’ 쪽으로 창을 낸 것이라고 합니다. 궁금증은 해소가 되었네요.

4층짜리 단독주택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4층빌라인데, 1층부터 4층까지 모두 내부계단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한국사람으로서 아쉬운 건, 창문들이 작아서 개방감이 덜 합니다. 이는 대만의 이런 집들이 대체로 비슷합니다. 개방감이 없어서 좀 답답한 느낌이 없잖아 있습니다. 또 은근히 3층 4층까지 걸어올라가는 것이 귀찮거나 힘들거나 합니다. 제가 3층에서 거주하고 있는데, 가끔 1층 주방에 뭘 가지러 가려면 좀 귀찮을 때도 있고, 아침에 막 일어나서 계단 내려가려면 좀 힘들기도 합니다. (몸이 이전같지 않네요)

그럼 왜 굳이 이렇게 높게 짓느냐? 땅값 때문이죠. 이 4층의 면적을 평면으로 펼치면 땅값이 감당 안 됩니다. 이런 신축이지만 건물값 보다는 땅값입니다. 여전히 이런 곳에 이런 건물을 구입하는 사람도, 오래된 폐가를 팔지 않고 내버려 두는 이유도 땅값 때문이죠. 

이 4층 주택의 가격을 물어 보니 저 분 말로는 1,800만대만달러(약 7억8천만원) 정도 될거라고 하더군요. 

원금만 따지면, 30년간 매달 2백만원 이상을 납입해야 갚을 수 있습니다. 내 경제력보다 무리가 되는 그런 집을 구입하기 위해 평생을 희생하며 살기 보다는 내 경제능력, 소득수준을 감안해서 부담없이 사는 것이 더 낫죠. 평생을 집 하나만 바라보며 주변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살기에는 세상에는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잖아요.

대만카페손님 한국어교양 중간고사 성적

저의 카페손님 중에 한국어 교양수업을 듣는 1학년 대학생이 있습니다. 9월학기 시작이니까 이제 한국어 배운지 2달 정도 되었네요. 저의 손님이라 제가 몇 번 속.성.족.집.게.과.외. 를 해 주었습니다. 외국어 배우고 가르치는데는 제가 또 일가견이…

일단 중간고사 하나 틀렸다고 하네요. 뭐 틀렸나 보니 ‘나는 시계가 얻ㅅ어요’ 혹은 ‘엀어요’ 라고 적은 것 같네요. 한국어를 전혀 못 하는 그런 학생인데, 한국아이돌 중 한 명을 좋아해서 한국어 배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교재인 것 같더군요. 그래서 언어학습전문가? 로서 한 번 훝어 보았습니다. 대학교 1학년 학생 입문용 교재인데요.

여느 이런 교재와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문법을 엄청 설명해 두었습니다. 제가 장담하건데, 저렇게 공부하기 시작하면 4년뒤 졸업할때도 한국어 제대로 말 못 할 겁니다.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저런 문법들 가르치는 순간 흥미 다 잃고 어려워서 대다수가 포기를 할 겁니다. 

지금까지 영어도 저런식으로 공부를 해 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영어 말 잘 하냐 물어보니 영어도 말 못 한다고 하더군요. 당연하죠. 시작을 저렇게 하는데, 말을 잘 하기가 어렵고 흥미를 가지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대학교 바로 옆에서 카페를 하고 있어서 어학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종종 보는데요. 저 학생처럼 처음 배우는데, 저렇게 필기만 하고 있으면 장담컨대 4학년 졸업할때까지 한국사람과 소통 못 할 겁니다.  오히려 도중에 흥미 잃고 포기할 가능성이 높죠.

아직 짧은 문장 하나도 말을 못 하는 기초에게 굳이 이에요/예요 먼저 가르칠 필요 없죠. 제가 차이컬쳐에 수많은 글들을 적어 오고 있지만, 저는 아직도 이에요/예요 가 헷갈리거든요. 이 외에도 헷갈리는 한국어맞춤법이 적지 않습니다. 아직도 한국사람으로 헷갈리는 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한국사람도 헷갈리고 틀리는 문법들을 굳이 한국어 처음 시작하는 학생에게 문법이랍시고 먼저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 와중에 ‘삼포시대’ 같은 유행어도 가르치고 오포시대, 칠포시대, 구포시대 같은 저도 모르는 표현들도 선생님이 가르쳐 줬나 보네요. 구포시대에는 ‘성형’도 있네요.  성형이 꼭 ‘포기’를 해야 하는 항목인가 하는건 또 의문이 듭니다. 

아무튼 이 학생에게 어떻게 언어를 배워야 하는지 세번 정도 강의를 해 줬더니만, 눈물을 흘리며 감탄을 하면서 세상에 진작에 이렇게 영어와 한국어를 습득했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놀라더군요. (일부는 재미를 위해 과장된 내용입니다. 대략 눈물이라는 단어 부터…)

뭐 저도 저런 교재로 영어와 중국어를 배운 시기가 있어서 이해는 됩니다. 다들 저런 시기를 겪고, 나중에 후회를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외국어가 필요한 나이가 되었을때는 기회를 놓치고…

재미있는건, 저는 영어/중국어는 저렇게 공부를 했던 암흑기가 있었는데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배운 일본어는 또 듣고 말하기 부터 배워서인지 지금도 그 당시에 배웠던 문장들이 기억도 나고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엔 듣기/말하기 위주로 연습을 하면서 문법 같은걸 알아 가야 하는데 말이죠.

저 학생이 4학년 졸업할 때 한국어를 잘 할 수 있도록 제가 최대한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네요.

 

직접 담배를 말아서 피던 카페단골손님

며칠전 저의 카페 단골손님들이 저렇게 직접 말아서 담배를 피러 나가더군요. 저는 평생 비흡연자라서 담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최근에 저렇게 담배를 직접 말아서 피는 경우는 호주에 있을때 홍콩친구가 말아서 피는 담배를 피는것 보고 처음이네요.

저렇게 말아서 피는 담배가 특별한 장점이 있냐 라고 물어보니 가장 큰 건 “가격이 싸다” 라더군요. 그리고 향이 더 좋아서 담배의 악취가 몸에서 덜 난다 라고 했습니다. 

담배가루, 필터, 종이를 세트로 저렇게 가지고 다니더군요. 라이터를 보니 어디 노래방을 다녀 온 것이 아닌가 싶네요. 무튼. 

제가 담배를 피지 않게 된 건 저의 아버지 덕분이죠. 저의 아버지는 중고등학생때부터 70살까지 담배를 엄청 피웠거든요. 본인 말로 평균 하루 한두 갑 이상은 피웠으니까요. 가족들에게 그렇게 피해를 주고, 밥 먹을 돈은 없어도 술담배는 꼭 해야 했던…

얼마전 아버지에 대해 소개를 했지만, 70살이 되고 술담배를 끊었습니다. 세상이 너무나 달라 보이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아주 많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사는 대만시골마을에도 흡연자가 많습니다. 이웃집 아저씨를 비롯, 그렇게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으면서도 흡연을 합니다. 뭐 어쩔 수 없죠. 

위의 사진은 호주에 있을때 알던 홍콩친구가 가지고 다니던 담배였는데요. 호주에 돈벌며 공부하러 왔는데, 어마무시한 담배값에 이렇게 담배를 피운다고 하더군요. 한국의 담배값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다들 한국의 담배값은 싼 편이라고 하더군요. 만약 담배값이 아주 비싸면 한국에서도 이렇게 담배를 피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 같은데요.

마지막엔 침까지 뭍여서 담배 한개피를 완성시키더군요. 

이전 제 친구 하나가 담배를 끊었는데, 딱 하루만에 끊어 버리더군요. 어느날 밤에 담배가 피고 싶은데, 담배사러 상점까지 걸어나가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처량해 보여서 이러느니 차라리 끊자 라고 하고는 담배를 아예 안 피더군요.

대마와 담배를 모두 어렸을때 오랫동안 했던 저의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사실 대마는 위험하지 않다. 대마는 내가 안 피려고 하면 오늘이라도 안 필 수가 있다. 하지만 담배는 중독성이 너무 강해서 내 의지로 끊기가 너무나 힘들다”

흡연을 하지 않는 제가 뭐 담배에 관한 소재로 글을 쓰려다 보니 딱히 쓸 것이 없네요.  

카페를 해 오면서 구체적인 목표가 없었는데, 최근 저의 카페손님의 옷에서 저의 카페가 나아가야할 방향성에 대해 인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아주 구체적이고 실현가능성?이 높은 목표가 생겼는데요.

현재는 월요일 휴무만 하고 있는데, 7일 휴무 하고도 먹고 살 수 있기를 바라며… 

는 농담입니다.  

태국 시골의 개구리반찬

간만에 태국아가씨의 시골살이 모습을 소개해 봅니다. 제가 저기 시골에 살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거의 매일의 생활모습을 보고 있는데요. 다른건 몰라도 먹는 음식들은 인정!

저는 여기 대만에서 살다보니 아침은 대충 커피와 토스트, 점심은 주로 편의점 혹은 식당도시락 정도이거든요. 육류는 가끔 먹게 되는데, 저 동네는 육류 섭취 및 음식의 다양성에 있어서는 인정입니다. 

개구리도 엄청 큽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분들 중에는 개구리 못 먹어 봤고, 또 먹기 힘들어 할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그 만큼 개구리를 안 먹어도 될 정도로 육류섭취를 다양하게 할 수 있는 경제환경이 되었다는 거죠. 

제가 이런저런 나라들 돌아다니며 살아보고 둘러보고 경험해 봐도, 한국은 ‘경제적으로’ 꽤 잘 사는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다들 불행하다고 느끼는 뭔가 모순된 상황이기도 합니다. 

통발로 잡은 뱀의 모습입니다. 제가 어느 여행프로그램(제목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세계테마기행 아니면 걸어서 세계속으로?)에서 동남아국가에서 호수로 나가서 뱀을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요. 

여기는 뱀 잡아 생계 까지는 아닌 것 같지만 일단 주변에 뱀이 많으니 잡고 보는 듯 합니다. 잡고 나서 먹을지 팔지 결정?

이 태국아가씨는 시골에서 이런저런 농장일을 하는데, 그 중 새벽에 고무나무 작업을 합니다. 그 때 마주친 뱀인 듯 합니다. 

제가 만약 저런 곳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목 긴 장화와 뱀에 물려도 상처가 나지 않을 긴 장갑을 꼭 착용할 것 같습니다. 

늘 호수에서 물고기들을 잡아 먹는 사진들을 많이 올렸는데요. 아예 저렇게 치어를 구입해서 방생을 해 두더군요. 그러면 저기 환경상 금방 자라니까 또 그걸 잡아 먹고…

별도로 키울 필요 없이 그냥 호수에 풀어 두면 알아서 자라니까 생선을 돈 주고 살 이유가 없습니다. 대만이 생선이 싸다고 해도, 여전히 생선을 먹으려면 ‘어느 정도의 돈’ 이 들긴 합니다. 생선뿐 아니라…

그 태국아가씨의 남편입니다. 

저의 지인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나는 바나나가 돈 주고 사 먹는 것이라는 걸 도시에 와서 알았다”

어릴때까지 시골에서 자라서 집 주변에 온통 바나나 나무라 바나나는 그냥 먹을 수 있는 거라 생각을 했었다는 군요.  저와 연배가 비슷한 사람은 경험이 있을텐데, 처음 ‘생수’ 라는걸 마트에서 팔 때 ‘왜 물을 돈 주고 사 먹지?’ 라는 생각을 잠시 한 시기도 있었죠.

참고로 태국어로는 바나나의 첫번째 사진과 두번째 사진의 세는 단위가 다릅니다. 우리는 바나나 한송이 라고만 부르지 첫번째 사진과 같은 형태를 호칭할 기회가 거의 없잖아요? 살면서. 하지만 태국어에는 확실히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언어학을 연구하면 역사적 배경이나 지리적 문화적 배경을 함께 유추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日暮 일몰 이라는 한자 저 몰暮 을 보면 태양日 이 풀초 사이에 위치를 하고 있죠. 그래서 저 한자가 만들어진 지역은 해가 질 때 초원사이로 지는, 즉 넓은 초원지대 였을 거라고 추측을 해 볼 수는 있습니다. 다 맞다는 건 아니지만, 언어에도 저런 역사성, 문화성, 지리성이 존재를 한다는 겁니다. 

젊은 태국아가씨가 도시 살다가 역귀농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도시에서 공장생활 할 때 보다는 더 자유롭고 여유롭게 살고 있는것 같긴 합니다. 도시 공장에서 일을 할 때 저 부부 집을 가 본 적이 있는데, 이건 뭐 수용소…

저는 그 당시에 적은 월급으로 12시간씩 노동을 하고, 허름한 단칸방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봐서 인지 그냥 자기 고향에서 저렇게 살고 있는 모습이 더 나아 보이네요. 

 

이번에는 도시에서 살고 있는 지인이 보내준 사진입니다. 여기도 목욕탕 물바구니에서 도마뱀이 튀어 나온 적이 있고, 죽은 쥐가 물통에서 나온 적이 있는데요. 지난주에는 설겆이 하는 곳에 저 모니터도마뱀이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제가 농담으로 제발 잡아 먹지 말라고 말을 해 줬는데요. 아래 영상으로 보시죠.

오늘 10월 31일. 대만은 태풍의 영향으로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을 비롯 많은 곳에서 임시태풍휴일로 지정이 되었으나 현재 비만 내리고 바람은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여기는 매번 바람은 없는데 임시태풍휴일로 지정을 해 줘서 저는 감사하죠.  아무래도 휴일에 카페손님이 더 많거든요. 오늘도 많은 손님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인근 대학생들과 제2회 공포영화 관람 활동

제2회 호미하우스 영화관람을 했습니다. 작년 태국유학생들과 태국공포영화를 함께 본 이후 이번이 두번째 인데요. 이번에는 대만학생들과 영화 관람을 했습니다. 

1회 2회 모두 태국공포영화를 봤습니다. 제가 제공한 저의 카페 케익과 음료와 함께, 학생들이 준비한 간단한 스낵등을 함께하며 심야시간에 보았습니다. 

이 글 아래아래에 소개한 그 태국공포영화이며 한편이 40분 남짓이라 원래는 2편을 보기로 하고 모였는데, 다들 재미있다며, 한편 더 보자고 해서 모두 3편을 봤습니다. 3편을 보고도 재밌다고 한편 더 볼까 고민하는걸 시간이 너무 늦어 제가 돌려 보냈습니다. 

위의 사진은 작년 1회 태국유학생들 모습입니다. 제 뒤로도 두명인가 세명이 더 있었구요. 공포영화를 보는데 다들 웃는 이유는, 한명이 너무 무서워서 소리를 마구 지르는 바람에 다들 공포속의 웃음바다? 였습니다. 1회때는 다들 음식도 준비해서 저녁도 함께 해서 먹고 난 뒤에 영화를 즐겼었구요.

제가 유학생이나 여기 학생들 대상으로 가끔 영화관람의 기회를 제공하는 이유는, 요즘 다들 각종 영화, 영상을 혼자서 휴대폰으로 혹은 노트북으로 봅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를 저렇게 모여 함께 보면 더 재밌습니다. 더군다나 저의 카페는 외곽 철문 내리면 완전히 캄캄해져서 영화관 못지 않고, 특히 저 쇼파석은 정말 편합니다. 해외유학생도 그렇고, 이렇게 타지에 나와서 기숙사생활, 혹은 자취하며 혼자 사는 학생들에게 이런 소소한 모임은 활력을 준다는 걸 오랜 해외생활을 통해 잘 알고 있거든요.

첫번째 사진에서 쇼파석 남녀는 약간 썸을 타면서 ‘니거인듯니거아닌니거같은나’ 의 거리였으나, 공포영화를 통해 저렇게 밀착을 하며 손도 잡고 하는 모습에 웬지 커플을 성사시켜 준것 같아 제가 스스로 뿌듯하더군요.

뭘 하나 봤더니, 공포영화를 본 기념으로 저렇게 공포사진을 찍겠다며 휴대폰을 얼굴에 대고 찍는 학생들의 모습입니다. 

이 학생들 이렇게 공포영화 보는게 너무나 즐거웠다며, 2주뒤에 다시 나머지 시리즈 봐도 되겠냐고 해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저도 이렇게 함께 보고, 또 그 중 한명이 유독 무서워하며 눈 가리며 봐서 다들 공포영화를 웃으며 볼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공포영화볼 때 유독 무서움 많이 타서 소리지르고 눈 가리는 일행이 있으면 더 재밌더군요.

카페를 하기전 이런 형태의 활동을 하려고 기획은 했었는데, 막상 해 보니 더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