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7과 8이 들어가는 한자성어 뭐 아세요?

차이컬쳐에서 가끔 한자漢字관련 글을 올리는데, 요즘에는 사람들은 한자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재미없어 할까봐 최근에는 자주 올리지 않았는데요. 

그런데 한자이야기 재미있다고 격려해 주시는 분이 계셔서 또 올려 봅니다.  

오늘은 숫자 7과 8이 들어가는 한자성어를 알아 보겠습니다. 

저는 대만에 있으면서 스트라이다로 산을 많이 올라 갔었습니다. 같은 산을 여러번 오르기도 하고 가끔은 새로운 곳 찾아 가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건, 어느날 아침, 아주 가볍게 ‘아침 운동이나 해야지’ 라고 가벼운 차림으로 스트라이다를 타고 갔다가 꽤 멀리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처음 가는 높은 언덕지형이 있더군요. 그래서 그 날도 아무 생각없이 언덕 아래에서 스트라이다를 끌고 올라 갔습니다. 그런데 아침공복에다가 물도 제대로 챙겨가지 않아 오르막 중간에 소위 ‘혈당떨어진’ 그런 머리 핑 도는 느낌과 함께 갈증이 너무나 났습니다. 또 처음 가는 길이라 얼마나 올라가야 할지 감이 없더군요. 그냥 자전거를 돌려 내려가면 내리막길은 아주 쉽죠. 내려가서 편의점에서 물마시고 음식을 먹으면 간단한 문제였는데요. 저는 늘 이런 곳에서 포기하지 않으려는 자아가 좀 강해서 그 날은 끝까지 올라 갔습니다. 아침운동 가볍게 하러 갔다가 필받아서 제대로 된 업힐 한 번 했었는데요.

저는 남에게 지는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저 스스로에게 지는건 좀 용납을 못 하는 성격이라서요. 그래서 저는 아침에 눈 뜨는건 아주 잘 합니다. 무튼…

대만 있을때 자주 올라가던 산에서 바라보면 저기 산 정상에 주택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이는데요. 저기 한 번 가본다 가본다 하다가 결국 못 가봤습니다. 사진에서는 나무에 가려서 잘 안 보이는데 산 정상에 주택들이 모여 있습니다. 

칠전팔기의 불굴의 의지로 도전을 합니다. 

참고로…  올해인가? 작년인가? 

중꺽마 라고 해서 ‘중요한건 꺽이지 않는 마음’ 이라는 표현이 밈처럼 자주 쓰여지던데.  사실

‘꺽이지 않는 마음’이 한자로는 불굴不屈의 의지意志  이죠. 한자표현은 이전부터 사용을 했었는데, 그걸 한국어로 풀어 쓰니까 새로운 표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숫자 7과 8 이 들어가는 한자성어는 보통 칠전팔기 를 많이 알고 계시죠. 그렇다면 이번에는 다른 표현 소개해 봅니다.

 대만 산에서 자전거를 타다보면 가끔 군데군데 저렇게 몰려 있는 개들이 공격을 해 오기도 합니다. 어떤 곳은 20여마리가 모여 도로를 막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곳은 자전거로 지나가기는 좀 무섭죠. 차였으면, ‘이 짜식들 안 비켜?’ 라고 큰 소리 치며 지나갔을 텐데요. 

산길에서 저런 개들의 무리를 만나면 마음속은 七上八下 칠상팔하 합니다. 

七上八下 마음이 불안하고 안정되지 못 한 상태.

그런데, 한자성어에서는 숫자7과 8이 들어가는 성어가 많습니다. 한자언어에서 숫자 7과 8은 “많다” 는 뜻과 “혼란스럽다” 라는 뜻이 있거든요. “혼란스럽다” 라는 뜻으로 사용되어지는 한자성어가 중국어를 조금이라도 배우신 분들은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자주 사용하는 亂七八糟 난칠팔조 입니다. 

하지만 난칠팔조 는 한자가 어렵죠? 한자 잘 모르시는 분들은 한자가 생소합니다. 하지만… 칠상팔하七上八下 는 한자가 쉽잖아요.  이런 쉬운 한자부터 익혀나가면 되죠. 한자에 관심 없으시면 굳이 어려운 한자 몰라도 됩니다. 

다음에는 오늘 배운 칠상팔하의 뜻을 가진, ‘아주 쉬운 한자로 된 재미있게 생긴 녀석’ 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산을 오르려는데 폭우가 내려 잠시 어떤 집에 들어가서 쉰 적도 있습니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하다 보면 실패를 하게 되고 실패를 하면, 칠상팔하의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또 해 보시면 성공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저의 대만카페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한국에서 여기 대만중부 작은 마을까지 일부러 찾아 주셨습니다. 

제가 대만 타이페이에서 살고 있을때 부터 알고 지내던 한국인 부부이신데, 이번에 저의 카페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외국에서 오래 살고 계신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한국에서 누군가가 찾아 주시면 참 반갑습니다. 

저의 카페에서 커피한잔 하고, 인근 후웨이 구경을 잠시 했습니다. 시간이 짧아서 구석구석 오래는 보지 못 하고 짧게 구경을 했는데요.

위의 사진은 후웨이 오면 다들 남긴다는 철로인증샷 입니다. 

후웨이는 외국인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지만, 나름 오래된 도시의 흔적이 남아있어 하루정도 둘러보기엔 괜찮은 곳입니다. 

저날은 시간이 없어 못 갔지만, 후웨이에는 이전 일제시대 군인들이 사용하던 숙소건물지역도 있어 가 볼만하죠. 

타이베이에서 만났을때는, 캡슐커피머신을 선물해 주셔서 저를 캡슐커피의 세계로 인도를 해 주셨는데…

이번엔는 이케아기프티카드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의 대만아내쪽 가족, 친구, 지인들은 여기 카페를 많이 찾아 주셨는데요. 지난주 일요일에도 4분이 찾아 주셨죠.  한국분이 찾아 주신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런 좋은 기운을 받아 저의 카페도 더 잘되기를 바랍니다. 

대만에서 영화 ‘서울의 봄’ 관람했습니다.

한국에서 흥행중이라는 영화 ‘서울의 봄’을 대만에서 봤습니다. 개봉할 때 부터 보고 싶었는데, 다행히 대만에서도 개봉을 해 주네요.

제가 살고 있는 여기 대만중부지역의 이 마을 영화관에서는 이 영화를 상영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카페휴일에 맞추어 인근 큰도시 영화관으로 갔습니다. 

극장에는 저, 저의 아내와 다른 일행 여성 두분, 모두 4명이서 보았습니다. 월요일오전 첫상영시간대라 사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영화완성도로만 놓고 보아도 상당히 긴장감이 넘치고 전개가 빨리 펼쳐져서 재미있었습니다.  

아쉽게 극장내에 ‘서울의 봄’ 포스터 한장이 안 붙어 있더군요. 

최근 태국에서 개봉한 공포영화입니다. 예고편을 봤는데, 영화 곡성류의 그런 태국시골지역에서 벌어지는 토속귀신? 이야기 인 듯 했습니다. 이런 공포영화 좋아해서 보러갈 예정입니다. 

관람을 마치고 로비에서 유일하게 함께 관람을 했던 대만여성분 두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의 정치이야기 이라 외국인들에게는 생소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는데 어떻게 보러 오게 되었냐 물어보니 

“우리가 연령대가 좀 있어서 한국의 이 역사에 대해 알고 있다. 그리고 전두환이 광주학살을 한 것까지도 알고 있다” 라고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한참을 한국의 어두운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그 분들이

“그래도 한국은 이제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이런 영화도 상영을 할 수 있으니. 중국은 이런 영화 아직 상영도 못 하지 않느냐?” 라며 저를 위로? 해 주시더군요.

대화를 하면서 이런 어둡고 부끄러운 역사가 있었다는 것에, 그리고 그런 역사를 제대로 심판하지 못 했다는 것에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거든요. 무튼…

기분 전환도 할 겸. 인근마을 후웨이에 가서 도시락을 구입해 야외에서 먹었습니다. 저기 보이는 손들고 있는 고양이가 저의 유튜브 프로필사진으로 등록되어 있는 호랑이 입니다. 

오랜만에 또 야외에서 도시락을 먹으니 기분이 좋더군요. 거창한 캠핑은 아니지만, 드라이브를 해서 공원에 앉아 이런 도시락을 먹으니 좋았습니다. 

대만에서 사시거나, 대만 자주 와 보신 분들은 대만에 이런 류의 도시락식당이 많다는건 아실건데요. 여기 후웨이 이 도시락식당은 가성비가 정말 뛰어 납니다. 그래서 가끔 와서 사 먹는 곳입니다. 이 날도 이 도시락 먹으러 겸사겸사 후웨이까지 드라이브를 왔습니다. 

마지막 사진처럼 담아도 한국돈 4000원 입니다. 

저는 93년도에 군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저는 지방경찰청장 관사병+운전병을 했었는데요. 그 당시에 지방경찰청장의 권력과 권위는 상당한 것이었고, 당시 김영삼정부가 ‘문민정부’를 표방하며 다소 검경의 권력이 이전 군사독재시절만큼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저야 한낱 군복무를 하는 사병이어 그런 권력과 권위의 핵심까지는 볼 수 없었지만, 사병이면서 경찰청장과 함께 숙식을 하고 같은 차로 이동을 하면서, 또 관사로 뇌물을 들고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권력, 권위의 ‘떡고물의 가루 부스러기’ 정도는 맛 볼 수 있었는데요. 

이제는… 소수의 권력에 전국민이 눌려서 사는 그런 세상을 저의 후대에게 물려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차이컬쳐시즌1에서 부터 저는 늘 강조를 했었죠. 항상 사람이 먼저이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요?

대만카페. 12월 24일 야외홍보행사를 이 지역 자영업주인들과 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5월 대만에서 카페를 오픈한 이후로 이 지역 행사를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어디에서 살든 그 지역사회와 동화가 되는건 중요하죠.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저 처럼 이 조그만 지역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저런 지역활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참가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12월 24일 이 지역 카페/식당 들이 주가 되는 야외활동이 있어 저도 참가신청을 했습니다. 

주최측이 다소 젊은 사람들 위주로 아주 참신하면서도 도전적인 그런 색깔의 행사입니다. 

전시회처럼 가게별로 부스를 주최측에서 제공해 주고 각 업주별로 그 부스에서 찾아오는 고객들 혹은 잠재고객들에게 홍보도 하고 교류도 하는 그런 행사입니다. 

12월 24일 10시~17시

이 지역이 상대적으로 한국의 읍 정도의 규모라 얼마나 사람이 많이 올지는 모르겠으나, 가끔 여기서 이런저런 행사를 하면 그래도 인근지역 사람들까지 다 와서 구경을 옵니다. 약간 기대는 하고 있는데요.

행사가 열리는 곳은 현재 카페로 운영을 하는 혹은 카페였던 장소입니다. 정원과 건물이 아름다운 그런 카페입니다. 

저는 카페건물 앞쪽 공간에 부스를 신청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이동을 하는 길목이기도 하고, 건물이 태양을 가려주어 별도의 가림막도 필요없는 위치일 것 같아서요.

또 대로변에서 들어오는 입구쪽 이기도 합니다. 

저의 카페도 마찬가지이지만, 여기도 약간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서 카페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름 오래된 건물의 흔적도 느껴지며 현대식 빌딩내의 카페와는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 꽃이 아름답죠. 그런데 최근에 관리를 안 했는지 가지치기가 안 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쟤가 가지치기를 잘 해 놓으면 상당히 보기가 좋거든요.

 

반면 맞은편 건물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건물이고, 저 쪽 2층 3층에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 보이는데, 외관만 보아서는 아주 많이 낡아 보입니다. 

무튼 이 주택가도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그런 곳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이런 곳을 활용해서 무언가 하려는 모습은 높게 평가를 합니다. 

설명회를 하는 모습입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대의 청년창업자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저도 함께 설명을 듣고 의견을 내며 교류를 하는 저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카페의 새끼고양이입니다. 엄청 활발합니다. 저의 니니, 나나 3~4개월때 모습 보는 것 같더군요.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

각자 마음대로 이번 행사로고를 색칠하는데, 저는 市시 에 태극기를 그려 넣었습니다. 제가 그림솜씨가 없어서 좀 못 그린 것 같은데, 이런 곳에는 너무 프린트 한 것 같은 반듯한 태극기 보다는 차라리 이런 느낌이 더 낫습니다.

주최측의 젊은 사람들이 준비를 많이 했더군요. 
창업정신으로 이렇게 도전을 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더군요. 기왕 참가비 내고 해 보는것, 이번 활동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카페홍보를 많이 했으면 좋겠지만, 이렇게 젊은 창업정신의 젊은 사람들과 함께 이런 교류를 하는 것 만으로도 저는 좋습니다. 

저의 부스를 찾아주시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국적 느낌이 나는 책갈피를 구입해서 저렇게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12월 24일… 기대가 되네요.

저의 카페에 손님이 족제비를 데리고와 저의 고양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끔 저의 손님들 중에 애완동물을 데리고 오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대체로 미리 ‘애완동물 데리고 가도 되냐?’ 고 문의를 주시는데요. 저의 카페에 이미 세녀석의 고양이가 있으니까 당연히 환영입니다. 

최근에 손님중에서 족제비를 데리고 왔더군요.

족제비가 오니 저의집 고양이들 난리가 났습니다. 나나(바닥의 회색)는 밥 달라고 할때만 하는 저 자세까지 해 가며 족제비를 보고 있습니다.

저의 카페에서는 여포인데, 막상 다른 동물들 오면 겁이 엄청 많습니다.  큰 녀석 호미는 원래 처음 입양할때부터 겁이 엄청나게 많은 녀석이라 이해를 하겠는데, 작은 두녀석은 평소에는 뭐든 다 공격하는 맹수처럼 보였지만, 다른 동물이 카페에 오면 완전 겁쟁이모드 입니다. 

겁쟁이모드를 동영상으로 올려 봅니다. 

그래도 손님들이 족제비를 꺼내서 더 적극적으로 저의 고양이들과 교류하게 해 주려 해서 감사했습니다. 

한국에서 호미를 처음 입양했을때, 호미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두려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죠. 

“나는 호미가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호미가 좀 더 많은 사람, 좀 더 많은 동물들과 교류해서 사회성을 키우길 바랍니다. 

저의 작은 두녀석도 마찬가지로 올해 4월 입양한 뒤로 혹시라도 집 안에서만 자라면 바깥세상의 모든 것을 두려워 하는 고양이가 될 까봐 어릴때는 주기적으로 안고 바깥에 데리고 나와 바깥의 소음도 느끼게 해주고 또 다른 풍경과 냄새도 맡게 해 주었습니다. 최근에는 이 녀석들이 커서 안기는걸 너무나 싫어해 좀 뜸하지만, 우리 고양이들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회성이 좋은 고양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있습니다

이 주인분도 족제비를 오냐오냐 키우지 않고, 저의 고양이들과 계속 교류를 하게 해 주더군요.

중국에 가보면 소황제 라고 해서 부모 2명, 조부모 4명이 자식 1명을 너무나 총애하고 오냐오냐 해서 키우다 보니 이 자식이 사회성이 없어지죠. 그러다보면 자식을 부모품에서 떠나 보내지 못 하고, 이 자식은 사회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경험축적이 안 되는 겁니다. 비단 중국소황제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모습이죠.

무튼 그런 족제비로 키우지 않겠다는 주인의 의지가 느껴집니다. 

제가 부산에 살 때 집이 마당이 있는 주택이었는데, 어느날 족제비 한마리가 마당으로 들어왔죠. 당시 저의 집에 강아지 2녀석이 있었는데, 한 녀석의 이름은 ‘누렁이’. 이 녀석이 평소에는 엄청 순둥순둥 했는데, 족제비를 보자 엄청 공격을 하더니 결국 족제비가 마당의 창고건물 안으로 들어가 숨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저의 집 세입자 아저씨가 쌀포대로 족제비를 잡아 고아 먹었습니다. 당시 어린이였던 저에게는 ‘허리를 다쳐서 먹는다’ 라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뭐 정력제 라고 생각해서 먹었을 것 같네요.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그 족제비를 삶는데 비린내가 심하게 났었다는 겁니다. 

저 손님에게 물어보니 족제비를 집에서 키워도 큰 문제는 없다고 하네요. 방에 풀어 놓아도 잘 놀고… 파충류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고,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고, 유튜브를 보면 더 다양한 동물들을 집에서 키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의 카페에 다양한 동물들이 찾아 주었으면 합니다. 

원숭이 없는 태국롯부리 돌아보기

오늘은 원숭이 없는 태국 롯부리 여행을 해 보겠습니다. 태국 롯부리는 ‘원숭이의 도시’ 라고 할 만큼 원숭이로 유명하지만, 사실 롯부리는 원숭이가 없어서 충분히 매력적인 여행지 입니다. 저는 롯부리 한 번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오래전 번성했던 도시답게 도시전체에 이런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어 가끔 이런 곳에서 산책을 하면 좋습니다. 이런곳은 ‘나 다음 코스 또 여행해야 하니까 빨리 휙 돌아봐’ 라고 하면 매력이 떨어집니다. 

휴일오전, 근처 카페에서 커피한잔 하고 천천히 걸으며 풍경과 자연을 눈에 담아 보는거죠. 

도심의 빌딩은 돈이 있으면 빨리 세워 올릴 수 있지만, 이런 오랜 자연은 돈이 있다고 금방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우리가 스위스, 캐나다, 호주 이런 나라의 자연을 보면서 부러워 하는 이유도 그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부러운 것이고, 또, 자연과 주변의 건축물이 ‘조화’가 잘 되는 것이죠.

한국도 아파트에 의.무.적.으.로. 조경을 해야해서 억지로 나무 사 와 심어 두었지만 그렇게 주변 성냥곽 아파트와 조화롭다 생각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 몇 그루 안 되는 나무 보면서 ‘나 정말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어’ 라고 감탄할 수도 있겠지만요.

중화권 문화가 남아 있는 절/사당의 모습입니다. 
꽃장식이 다소 특이하죠?

첫번째 사진과 마찬가지로, 도시전체에 이전의 성곽이나 유적지가 남아 있고, 또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좀 더 색다른 느낌? 이국적인 느낌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자 그러면, 사람들이 사는 구시가지 거리를 걸어 보겠습니다. 

대체로 어느 도시나 지역을 가더라도 구시가지(소위 old town/old street로 명명이 되어 있는곳)가 있고 신시가지 혹은 신도시 구역이 있습니다. 저는 대체로 이런 구도심, 이전 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들을 여행하는 걸 선호합니다. 

쟤를 뭐라고 부르죠? 복조리처럼 생긴 조리도구에 면을 넣어서 데치려고 하고 있네요. 한자를 보시면 船 배라는 한자가 있는데, 이 지역과 아유타야지역에 배에서 파는 면요리가 지역특산입니다. 

느낌상으로는 커플/부부가 함께 운영을 하는 것 같은데, 눈썹이 너무나 닮아서 남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가족과 저런 가게를 함께 운영하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제 기준으로는요…)

할머니와 손녀(겠죠?)가 노점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건물들이 보존되어 있는 old town 입니다. 

당시 코로나기간이라 어딜가나 거리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휴일오전의 여유로움을 느끼기에 더 좋았구요.

이런 오래된 지역의 건물에도 저렇게 현대식의 레스토랑을 열어서 영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건물은 아마 2개의 분리된 건물인 것 같은데, 중간에 비 맞지 말라고 옥상부위를 나중에 콘크리트로 연결한 것 같습니다. 보면서 중앙에 철근 없으면 떨어져 내릴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시공을 하면서 기본적인 그 정도는 고려를 했겠죠?

라고 하기에는 우리도 삼풍백화점 옥상이 무너져 내린 경험이 있고, 최근에도 아파트에 철근 빼 먹는 사례가 있어서… 

휴일오전, 걷다보면 또 뭔가를 먹어 줘야 합니다. 거리에서 파는 두리안… 저의 최애과일 중 하나 입니다. 
두리안이 엄청 큽니다. (단, 크기가 크다고 다 맛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저 날, 풍경 좋은 그늘에서 트럭에다 두리안을 팔고 있는 저 중년남성에게서 두리안을 구입했습니다. 
일단 트럭이 제가 구입을 해 보고 싶었던 픽업트럭이구요. 그 스타일리쉬한 트럭에 저렇게 과일을 떼와서 판매를 하고 있는 모습마저 멋있더군요. 
그래서 과일도 구입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어 보았습니다. 

두리안을 먹으며 또 천천히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해 봅니다. 어차피 세부적인 목적지는 없습니다. 어딜가나 저에게는 다 새로운 풍경이고 낯선 모습들이며 여행하는 기분이 들거든요.

수상가옥이긴 한데, 딱 배처럼 만들어 놓았네요.

갓 걸어 둔 듯한 빨래도 있고, 위성안테나도 있습니다. 

여기 대만도 그렇고 태국도 마찬가지로 겨울철이 오히려 여행을 하기엔 더 낫습니다. 
아무래도 조금 시원하거든요. 물론 태국은 겨울이라고 하더라도 무덥습니다만 4~6월 여름보다는 다소 선선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즐거운 금요일입니다. 한국문화는 금요일밤 하면 불금 이라 하여 늦게까지 술마시는 그런 문화가 보편적이지만, 차라리 토요일, 일요일 오전에 이런 곳들 천천히 여행다녀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전에 커피한잔 두리안 한조각 하면서요.

철새도래지의 도래지 한자漢字는?

철새도래지 라는 단어에서 도래지 의 한자는 무엇일까요? 먼저… 요즘 하도 어려운 한국어어휘를 모른다는 말들이 심심찮게 나와서 설마 도래지 라는 단어를 모르시는 분은 없으시겠죠?

이전 태국회사 뒷편에 이런 곳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혼자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하면서 풍경을 즐기곤 했었습니다. 

회사 바로 뒷편이 바다이고, 고래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고래를 본 적은 없으며, 이런 염전은 볼 수 있습니다. 가끔 염전밭 이라고 할때도 있는데, 초가집 처럼 전田 이 이미 밭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염전밭 이라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염전에서 일 하는 것이 엄청 힘들다고 이야기는 하더군요. 오죽했으면 신안에서도 불법적인 방법으로 노동력을 착취하겠어요. 이런 동남아시아에서도 염전의 노동은 힘들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힘든 노동업무에 태국사람들이 일을 하지만, 태국에서는 이런 어렵고 힘든 일은 미얀마사람들이 들어와서 합니다. 들리는 말로는 이런 곳에서 일을 하는 대부분의 미얀마사람들은 불법으로 일을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거주했던 곳은 태국전역에서도 미얀마근로자가 가장 많은 곳이었습니다. 

염전도 있고, 이런 습지도 있어서 사진에서 잘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새들이 있습니다. 저는 회사주변 이런 곳도 가끔 자동차로 혼자 돌면서 감상을 했었습니다. 

서울에 살면서 집-회사-집-회사 이런 생활을 하니 매일 같은 풍경에, 7~8시 사이에 회사 들어가서 집에 오면 9~10시 이런 삶을 살던 기억이 있어서 살면서 이런 풍경을 평일날 볼 수 있단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건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이런 저의 삶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쟤네들이 철새인지, 토착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꽤 큰 녀석도 있고, 작은 녀석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습지에서 이런 수의 새를 보면 으레 철새 이려니 하죠. 일단 철새라 치고… 보통 철새도래지 라는 말을 하는데, 도래지… 과연 한자가 어떤 한자인지 아시겠나요?

도래 라는 단어는 얼핏 到來 라고 찍기 쉽지만 절대 유혹에 넘어 가면 안 됩니다. 철새도래지는

渡來地  입니다. 

저기서 도는 강을 건너다 라는 도하渡河 입니다.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는 익숙하시죠?  그런데 공무도하가 도 그냥 저렇게 붙여서 보면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는데…

公 님 / 당신 

無하지마라  渡河도하(강을 건너는 행위)를

대략 이렇다는 이야기인데… 뭐 쓰고 보니 별 재미는 없네요. 요즘 워낙 사람들이 한자에 관심이 없을 것 같아서요.

이런 잔교도 볼 수 있고…

그 옆으로 사람들도 개도 저렇게 누워서 낮잠을 즐기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피로할때, 저렇게 그늘에서 누워 있는 사람이 정말 부럽죠.

그런데 저런 곳 도마뱀이나 뱀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당시 저 쪽으로 가는 길이 비포장도로였는데, 지금은 포장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오늘은 이전 태국회사 부근에 가끔 바람쐬러 갔던 곳의 풍경을 소개해 보았습니다. 

 

한달여사이에 저의 대만집 마을에서 세분의 어르신이 별세를 하셨네요

제가 살고 있는 동네의 집들은 대부분 이런 모습입니다. 저의 카페 맞은편 건물도 저런 기와지붕이죠. 그냥 시골마을입니다. 한집건너 한집이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이고, 최근에는 농사를 직접 짓지 않아도, 이전에는 농경관련 일을 하셨던 어르신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와중에는 간혹 젊은 30대 40대도 보이긴 합니다. 

어제 보니까 저의 카페골목에서 마을입구쪽에 무슨 대형천막을 쳐 놓고 행사를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그 곳에 작은 절이 있어서 종종 절에서 행사를 하거든요. 또 이번에 절에서 행사하나 보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평소 항상 지나다니는 집이었는데, 거기 할머니께서 별세를 하셨더군요.  대략 한달사이에 저의 마을에서, 한번은 가게 오른쪽편집, 이번엔 가게에서 왼편집, 2~3주전인가?는 한골목 돌아서 모퉁이에 있는 집의 어르신이 별세를 하셨습니다. 한달(아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여 만에 마을의 3명의 어르신이 별세를 한 건데요. 

가뜩이나 여기도 인구가 감소하고 빈집이 곳곳에 많은데, 한달여만에 골목길 하나를 두고 3명의 어르신이 별세를 하셨네요. 평소 그 분들이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셨거든요.

지난번 카페 오른편 집에서 상을 당했을때도 그 앞의 절에서 하는 행사인가 하고 가보니 초상을 치르고 있어서 순간 급숙연해졌었거든요.

저는 살짝 당황했었는데, 정작 유족들은 호상이라면서 웃고 저에게 말도 건네주고 해서 이야기 많이 하다가 왔습니다. 

이번에는 위의 사진처럼 왼쪽편의 집에서 어르신이 상을 당하셨습니다. 도시에 살면 한 아파트, 혹은 이웃이 상을 당해도 집에서 장례를 치르지 않기에 상을 당했는지 알 수가 없는데, 이런 시골마을은 집앞에 크게 천막을 펼쳐놓고 장례를 지내니까 바로바로 알 수가 있어서 더 체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장례를 치르는 빈도는 도시의 나의 집 부근이 더 많을지는 몰라도, 도시에서는 이웃이 장례를 치르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저도 이런 시골에 온지 대략 일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최근에 갑자기 추워지고 기온차가 많이 나서 그런건지 어르신 사망이 3건이나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 죽음을 논할 그런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은 하는데,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너무나 큰 후회는 하지 않고 미련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살려고는 하고 있습니다. 

대만스트라이다 동호회분들이 저의 카페를 찾아 주셨습니다

대만에서 스트라이다동호회 사람들과 오랫동안 교류하며 스트라이다를 타오고 있습니다. 타이베이에 있을땐, 저 동호회사람들과 자전거 자주 탔었죠.

올해는 타이중지역 자전거를 타기도 했습니다. 아래에 유튜브링크 걸어봅니다.

대만 각 지역에서 제가 살고있는 운림고속철도역까지 기차를 타고 와서 자전거라이딩을 시작했습니다. 저도 저 때 부터 참가를 하고 싶었는데, 이 앞에 고양이에게 할퀴어져 병원가서 파상풍주사 맞고 하던 순간이 마침 이 분들이 여기 모이는 순간이라 저는 부득이 처음부터 참가를 하지는 못 했습니다.

최근 운림지역의 기온은 온화합니다. 아침/밤에는 약간 쌀쌀함을 느끼는 기온이지만 대체로는 온화한 날씨라 야외활동하기에 딱 좋습니다. 주변에 꽃들이 만개를 해서 꽃향기도 많이 흩날립니다.

여기 운림현의 명물중 한 곳이 호미의 철로에서도 기념사진을 찍었네요.

그런다음 특별히 저의 카페까지 오셔서 음료도 한잔씩 주문을 하셨습니다. 

모두다 저 달고나라떼 맛있다고 극찬을 해 주셨습니다. 대만에서 처음 먹어 보는 맛인데, 너무 맛있어서 집에 싸서 가져가고 싶다고들 하시더군요.

오후에는 제가 가이드를 해서 이 지역에서 유명한 식당에 가서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저는 여기 동호회활동을 대만에 처음 왔을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있거든요. 중간에 대만을 떠난 적도 있었고, 매번 활동을 다 참가하지는 못 해도 단체대화방에서 꾸준히 교류는 하고 있습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함께 동호회활동을 하는 건 좋죠.

그런데 가끔 한국의 커뮤니티의 글들을 보면…

나이가 얼마 이상인데, 동호회나가면 민폐 아닐까요? 나이가 얼마 이상인데 동호회 참가하면 이상하게 볼까요? 라는 글들이 있는데, 나이가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저는 이런 모임에서 나이 물어보지도 않고, 나이엔 별 관심이 없거든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이런저런 인생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그렇지 않으면 이런 사회모임의 지인들도 필요하고, 이런 모임을 통해 사람들과 교류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더군요.

어쨌든 대만 각지에서 일부러 저의 카페를 찾아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저의 집 고양이덕분에 대만에서 파상풍주사를 맞았습니다

저의집 고양이덕분에 대만에서 파상풍주사를 맞았습니다. 
오전에 카페 오픈준비를 하느라 잠시 카페문을 열어놓고 있었는데, 그 잠깐사이에 저의 호미가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3층 전층을 다 뒤졌으나 없더군요. 

이럴땐 중요한 것이
어찌할바를 몰라해야 하고, 당황해야 하며, 허둥지둥해야 합니다.  CCTV 기록을 확인했죠. 잠깐 몇분 사이라서 몇분전 영상을 보니 이 녀석이 슬금슬금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찍혔더군요. 이 때 부터 영상의 방향으로 저와 아내가 동시에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두세번은 둘다 못 찾았습니다. 안 보이더군요. 저의 카페 바로 옆 건물인데 저렇게 폐허로 된 건물이 있습니다. 왠지 동선상 저기 있을 것 같더군요. 저 집안쪽으로 들어가서 호미를 발견하고 찾아 왔습니다. 녀석이 놀랐는지 제가 안으려고 하자 격렬히 반항하고 저를 공격하더군요. 물리기까지 했습니다. 

여기 야외에서 놓치면 다시 못 찾는다는 마음으로 물리든 할퀴어지든 저도 격렬하게 안았습니다.

호미를 찾는 동안 마음속으로 오만가지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도 오래 함께 했었다고 ‘공허’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반드시 찾는다는 마음으로 이동예상동선을 따라 하나하나 뒤져가며 추적을 했습니다. 추적끝에 눈이 마주쳤죠. 

특히 오른손을 많이 다쳤더군요. 그렇게 찾고 나니 이 녀석이 뭘 했는지 온 몸에 흙투성이고 악취도 나고 해서 저의 고양이들 가는 동물병원에서 목욕을 한 번 시키기로 하고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병원에 가서 파상풍 주사를 맞았습니다. 의사분께서 상당히 친절하고 꼼꼼하게 치료를 해 주시고 파상풍주사도 안 아프게 잘 놓아 주시더군요.  
한국의 의사들은 대체로 돈이 안 되는 손님은 대충 본다는 그런 인식이 있어서인지 상처치료를 흡사 학교다닐때 양호선생님이 해 주는 것처럼 꼼꼼하게 직접 해 주시더군요.

무엇보다 놀라운 건, 제가 대만의료보험카드가 있는데, 파상풍+병원치료는 150대만달러(6000원) 그리고 약국에서 먹는약 바르는약은 돈을 받지 않더군요. 보험료에 다 포함이 되어 있다고…

6000원이면 싼 거 아닌가요?

제가 2015년도에 파상풍 주사를 맞았다고 하자, 5년 지났으니까 안전하게 다시 한 번 맞으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2015년도에는 호주에서 파상풍주사를 맞았었거든요.

2015년 호주 에 있을때, 쓰레기봉투내에 있는 깨진유리병에 손이 찢어져서 병원에 갔었죠. 기억은 나지 않지만 병원치료비가 꽤 비쌌던 걸로 기억납니다. 그때 세바늘인가 꼬매기도 했습니다. 사진처럼…

더 놀라운 건…

그 당시 간호사가 한국분이었거든요. 저에게
“여기서 오래 근무를 했는데 한국분은 처음 봤습니다. 여기는 중국계 사람들이 많은 곳인데 어떻게 여기서 한국분을 만나네요” 라면서 오히려 그 간호사분이 더 놀라시더군요.

그러면서 상처 꼬매는날 저에게

“며칠뒤 의사가 붕대 교체해야 한다고 오라고 할 때 저에게 연락을 주세요. 여기 붕대 하나 교체하고도 돈 엄청 비싸게 받아요” 

라고 해서 사진처럼 병원 밖 공원벤치에 앉아 붕대를 교체해 주었습니다. 무료로… 

딱 저렇게 붕대만 새걸로 교체를 해 주는데 돈을 엄청나게 받는다고 같은 한국분이고 여기서 근무를 하면서 처음 한국분을 만나는 거라 도와주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저 당시에는 또 경황이 없어서 그저 고맙다는 인사만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지금 마음같아서는 찾을 수만 있다면 식사대접이라도 해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세월이 좀 지나서 이제는 저 병원에 안 계실 수도 있겠네요.

최근 두번 맞은 파상풍주사를 모두 해외, 한번은 호주,이번엔 대만에서 맞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호미를 찾고 있던 그 순간 만감이 교차를 하더군요. 평소에 늘 함께하던 저의 고양이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간절히 느끼게 되었고, 앞으로는 카페문을 열어 놓을때 좀 조심을 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