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살든 행복하면 그만
전편에 산 하나를 넘어 위벙雨崩이라는 산속마을에 도착한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또한, 이 이야기는 연재가 되고 있어 전편부터 보시면 더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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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깊은 산속에 있는 마을인데요. 도대체 이런 곳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지금도 차량으로는 들어올 수가 없고, 도보나 말, 당나귀 등으로만 들어 올 수 있습니다. 뭐 언젠가는 어찌어찌 차도가 뚫리는 날이 있겠지만, 제가 갔을때는 상수도, 전기도 제한공급이 되고, 휴대폰신호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함께 왔던 외국인일행들과 함께 음식을 시켜서 나눠 먹었습니다.
이 연재를 도중에 보시는 분들을 위해서…
저기 덩치가 가장 큰 고2학생의 학습동기부여, 인생각성여행을 왔습니다. 공부도 반에서 꼴찌이고, 집에서 밤새 게임만 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께서 저에게 의뢰를 하셨습니다.
늘 학교-방-학교-방 이런 생활을 하다가 웬만한 사람들도 평생 오기 힘들다는 이곳, 설산이 보이는 산속오지마을에서 식사를 하네요.
저 학생 인생각성여행 시켜주려다, 제 체력이 각성되었습니다. 저 당시 평소 운동을 좀 안 하던 상태라 산 하나 넘고 나니 몸이 너무나 힘들더군요. 전신에 근육통이 느껴 졌고, 다음날 아침이 되니 극심한 근육통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 하겠더군요.
하지만 여행내내 저 학생에게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고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 이 근육통 보다는 강하더군요.
이 마을이 살짝 어떤 느낌이냐면, 영화 반지의제왕 1편에서 호빗들이 사는 호비튼Hobitton 같았습니다.
마을전체에 가축들이 그냥 돌아다니고, 여러 곡물들이 자라고 있고, 또 유실수도 곳곳에 있구요.
여기 위벙마을은 저 메리설산梅里雪山의 입구인데요.
관광객들은 마을과 저 설산의 풍경을 보려 오는 것이겠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저 메리설산에 가서 기도를 하려는 목적으로 먼곳에서도 방문을 한다고 합니다.
이 위벙마을은 윗마을 아랫마을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마지막 사진은 아랫마을에서 바라본 윗마을 풍경입니다. 그래서 마을을 천천히 둘러 보았습니다.
마을이 아주 넓지는 않습니다. 일단 시야에 다 들어오니까요. 하지만 골목골목 걷다보니 멀리서 보는 것 보다는 더 넓더군요.
여행내내 “영어공부 열심히 해서 다음에 저 누나랑 꼭 직접 이야기 해 보고 싶어요” 라며 저 누나 좋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영어를 조금 할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저 누나는 지금 상해에서 물류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마을에 식당이 있어서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교직생활 하다가 은퇴하고 여행다닌다는 홍콩에서 온 남자분과 동석을 해서 함께 먹었습니다.
이런곳 여행하면서 일단은 군것질거리가 많이 없잖아요. 저 학생 식사때만되면 밥을 엄청 먹더군요. 체중이 100kg 넘으니 엄청 배가 고팠을 것 같고, 집에서는 먹고 싶을때마다 냉장고 열어서 먹었을텐데, 이렇게 여행을 나오니 이런 아무런 식사라도 엄청 맛있었을 것 같습니다 .
마을풍경은 사진 몇 장으로 소개를 할 수가 없습니다. 직접 가서 눈으로 담지 않으면 그 느낌을 받을 수가 없죠.
마을에 무려 당구장이 있더군요.
함께 갔던 두 여자들 성격들이 털털해서 너무나 좋았습니다. 저 여자도 아이들에게 “큣대줘봐. 내가 어떻게 치는건지 보여줄께” 라면서 당구채를 뺏어 잡고 시범을 보이는 모습입니다.
제가 중국에 살면서 저런 열악한 당구대에서 몇 번 쳤었는데, 이긴 적이 없습니다. 일단 당구대 평형도 안 맞고, 표면이 울통불퉁해서 공이 휘어집니다.
다른 일행은 설산의 얼음호수를 보러 갔고, 저희는 설산아래의 폭포를 보러 갔습니다. 여기 마을에서 설산의 폭포까지 또 산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저 당시 제 몸 상태가 근육통에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고, 저 학생은 저 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모습이더군요. 그래서 다같이 말을 타고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말을 타는 것도 쉽지 만은 않습니다. 은근 다리와 몸에 힘을 계속 주고 있어야 하고 특히 내리막을 갈때는 떨어질 것 같아서 긴장도 됩니다.
앞에보면 현지인 순례자들은 걸어서 들어가는데, 저희는 몸상태가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 말이 쉬는 상점이 있는데요. 여기서 부터는 말도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해서 걸어서 올라 갔습니다.
관광객이나 순례객들이 있어서인지, 곳곳에 이런 상점이 있어, 배가 고플만 하면 뭔가 컵라면이라도 하나 먹을 수는 있습니다.
위의 상점에서 파는 물건중에 뭔가 독특한 것이 보이시나요?
한자나 중국어 보는 것이 익숙치 않은 분은 물건들을 보셨을 것 같은데요. 동충하초冬蟲夏草 를 판다고 글자를 저어 두었네요. 보통 이런 산에서 사람들이 직접 따서 오거든요.
그리고 여기는 먼 곳에서 온 순례객들이 1박을 할 수 있는 여관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식사도 제공해 주고 저렇게 침대도 제공을 해 줍니다.
드디어 얼음이 있는 곳에 다달았습니다. 예상대로 물은 엄청 차갑습니다.
배가 고픈지 과일껍질을 입으로 벗겨서 먹고 있네요. 집에서는 평생 해 보지 못 했던 경험이겠죠.
폭포수에 몸을 씻는다고 실제로 마음의 무언가가 씻겨 내려가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다짐을 하고 과거를 씻는다는 느낌으로 폭포수에 들어갔다가 나오더군요.
이게 얼음물이라 엄청 차갑습니다. 8월이지만 만년설에서 내려오는 물은 말그대로 ‘얼음물’ 이죠.
여기 폭포수에 한번 들어갔다가 나온 것이 저 학생에게는 여행의 화룡점정이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뭔가 새로운 다짐과 동기부여, 각성 이런걸 하려 온 여행이었는데, 이런 얼음물폭포에 들어가서 샤워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저런 행위보다는 아마 여기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더 깨달은 것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본문 중간에 소개했었던 상점 겸 여관에서 만난 아이들인데요. 관광객들이 타고온 말이나 당나귀 들을 끌고 올라오거나 데리고 내려가는 일을 한다고 하더군요.
중국에 살면서, 또 태국에 살면서 아이들의 이런 삶을 많이 보았습니다.
여기서 컵라면을 먹더군요. 그런데…
먹기전에 실수로 엎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컵라면 하나 사 주었던 걸로 어렴풋이 기억을 합니다.
그 학생에게도 이야기를 해 주었죠. 이런 곳에 와서 직접 보니 너의 삶은 얼마나 풍요롭고 편하고 부모님이 모든것을 다 해주는 그런 환경에서 살고 있냐? 여기 아이들은 어릴때부터 노동을 해야 하고,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도 없다.
공부를 할 수 있을때 조금이라도 더 해 보아라 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저도 학창시절 부모에게 반항한다고 공부를 안 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됩니다.
이 산은 다음편에 내려가야 겠네요.
메리설산梅里雪山이 있는 雨崩마을을 가기 위해 아침일찍 일어났습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난 이유는 여기 현지인들이 해뜨는 시각에 맞추어 설산을 바라보며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기 위함인데요.
설산이 이 지점에서 서쪽방향에 있으니까 떠 오르는 해를 받으면 장관이긴 할 것 같습니다.
이 여행기시리즈 중간부터 보시는 분들을 위해서…
이전 저에게 중국어를 배우시던 학생분의 어머니께서 아들이 하나 있는데, 매일 집에서 게임만 하고 성적도 반에서 꼴찌이고 공부도 하지 않고 밤에 게임만 하며 낮에는 잠만자고, 담배피고… 여하튼 이런 아들을 좀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고 싶다고 해서 제가 데리고 여행을 하였습니다.
고2학생 동기부여 여행기 샹그릴라 자전거여행 4편(보러가기)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이신 분들은 별 감흥이 없을 수 있지만, 여기 티벳불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종교가 곧 인생이죠.
태국도 불교가 생활의 일부이고, 주기적으로 절에가서 기도를 합니다. 여기 티벳불교쪽은 태국과는 또 다른 느낌의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저의 모습입니다. 8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날짜전후였는데, 고산지대이다보니 추웠습니다. 8월이니까 관광객들은 가볍게 입고 와서인지 호텔측에서 외투를 빌려 주기도 하더군요. 여름에도 집안에서 모닥불을 피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닥불을 직접 피워 음식도 하고 난방도 해 보면 그 느낌이 정말 색다릅니다. 물론 실제로 그런 삶을 오래살면 불편할거라 생각합니다.
어제저녁을 함께 먹은 서양외국인들과 동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간단하게 조식을 합니다. 보시면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도 매우 두껍고, 직접 나무를 때서 음식을 하는 가판대 입니다. 보통은 가스를 이용하죠. 그만큼 여기는 산골입니다. 여기서 또 다시 지역버스를 타고 산의 입구까지 가야합니다.
호텔에서 산의 입구까지 가는데만해도 거리가 꽤 되고, 심지어는 신분증 검사를 합니다. 외국인들은 여권등록을 했던 것 같습니다.
호텔이 있는 마을에서 산의 입구까지 가는 풍경도 절경입니다.
소나 양을 모는 사람들이 간단하게 음식을 해 먹는 모습도 보이더군요.
협곡을 따라 펼쳐지는 풍경은 실제로 보지 않으면 느낄 수가 없습니다.
드디어 산의 입구마을에 도착을 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차가 들어갈 수가 없어서 도보로 산을 넘든지, 말이나 당나귀 등을 타든 이용을 해야 합니다. 당나귀에 배낭을 싣고 함께 가기도 하고 말을 타고 산을 넘을 수도 있습니다. 산길은 아주 험준하고 평소 운동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척 힘들 수 있습니다.
저는 저 당시 좀 많이 힘들었습니다. 당시 운동을 좀 하지 않던 시기였고 배낭도 좀 무거웠거든요. 저기 빨간 큰 배낭과 작은 배낭을 맨 저의 학생도 보입니다.
저는 저 학생에게 스스로 이런 체험을 해 주게 하려고 도보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함께간 일행들도 모두 도보로 이동을 하더군요.
저의 학생도
저희와 함께 했던 유럽, 중국 친구들도
어제밤에 만나 저녁함께 먹은 서양권 친구들도 함께 출발을 합니다. 제가 보니 저 서양권 2명의 남녀커플이 체력은 가장 좋은 것 같더군요.
말을 타고 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체력이 정말 안 되거나 하면 말타고 이동하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는 그.나.마 기초체력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저 산 넘고 나서 며칠간 고생했습니다. 함께간 학생 보살피느라 티를 안 냈을뿐…
그리고 저의 일행과 동선이 겹친 저 중국인 커플과 계속 함께 이동을 했는데요.
솔직히 저 남자분은 좀 불쌍한 지경이더군요. 저 말을 탄 여자는 여기 여행내내 투덜투덜 불평불만, 힘들다, 더럽다 남자에게 구박을 주는데, 남자는 그래도 좋다고 계속 사진 찍어 주고 수발들고… 말을 탄 여자가 남자가 들고 있는 짐은 좀 들어주면 좋을텐데…
결혼을 했는지, 아직 연인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남녀관계가 너무 지나치게 저런 관계면 나중에 불행해 질 수 있죠. 가스라이팅을 당한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고, 남자가 너무 여자를 위해 일방적인 헌신만 하는 것도 별로 건전하지는 않아 보이지만, 당사자들이 알아서 잘 했겠죠. 지금도 잘 살고 있는지…
여기 현지인분들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메리설산과 그 주변에 있는 폭포를 방문하려는 것입니다. 저 분들은 오랜기간 준비를 해서 며칠동안 이 여정을 한다고 하더군요.
머리에 짐을 지고 올라가는 모습도 놀랍고…
첫사진에서 첫출발때는 저렇게 아이를 목에 태워서 걷지만 곧 저건 안 된다는 걸 느낍니다.
저도 몸상태가 말이 아니었지만, 100Kg 가 넘고 매일 밤에 게임만 하고 담배피던 저 학생은 더 힘들었을 겁니다. 한번 앉으면 일어나지를 못 하더군요.
그리고 일행으로부터 계속 뒤쳐져서 저는 저 학생과 거의 마지막으로 목적지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렇게 산을 올라가는 사람은 힘들지만…
순례길을 마치고 이제 거의 다 내려오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표정에는 ‘얼마 안 남았어’ 이지만, 저 지점은 출발하고 30분도 안 지난 지점이라는거…
휴게소? 산장? 말도 사람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휴게소에 소의 잘린 머리와 가죽이 널려져 있고, 직접 나무를 때서 물을 끓여 컵라면을 먹습니다. 이런 곳에서 먹는 컵라면은 맛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 뒤로 수많은 컵라면 컵이 보이시나요?
목도 마르고 체력도 고갈이 되어서 뭐라도 계속 먹게 되더군요.
이런 곳을 아이를 데리고 와 업고 가는 여자분들은 대체 체력이…
등산화 신고 왔지만, 현지인들은 그냥 아무 신발이나 신고 막대기 하나 들고 등산을 합니다.
도심 뒷산 오르면서 너무 비싼 고어텍스, 등산화 이런거에 몰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적은 비용으로 자주 등산을 하는 것이 중요한거지 도심지 뒷산 오르면서 경량화에 기능성에 너무 많은 돈을 투자할 필요도 없습니다. 뭐 안전을 위해 장비를 비싼 장비를 구입한다는 유튜버들도 있지만, 그렇게 비싼 장비가 필요할 정도로 우리가 깊은 오지를 가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죠. (돈 많으면 비싼거 사면 좋겠죠. 굳이 비싼 장비 사는 부류들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 느낄 필요도 없고, 그런 것 없어 취미생활 못 즐긴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강조하고 싶네요. 위의 사진들 보시죠)
이런 지역에는 중간 사진에서 여자분이 마시고 있는 산소캔을 판매합니다. 내가 고산병에 취약할 것 같다 싶은 사람은 미리 준비를 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티벳공항에는 고산병관련 전문의료진과 약품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아직 고산병을 느낄 정도로 높은 해발지역을 가보지는 못 했지만, 이 지역도 해발이 높은 지대라(8월에 얼음이 있는 곳이니까요) 저렇게 고산병을 느끼는 사람도, 또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이런 곳에서도 산소캔을 판매하기도 합니다.
여기 산을 오르면서 저 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요. 태어나서 이렇게 몸이 힘들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더군요. 그리고 스스로 이렇게 무언가를 해 본 경험도 없고, 부모가 이런 기회를 마련해 준 적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 학생에게 스스로 해 보고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전에… 제가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여기 휴게소를 지나면서 부터는 다소 평지도 나오고 내리막도 나오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마침내 설산이 눈 바로 앞에 들어오고, 목적지인 위벙마을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런 곳을 여행할때면 아주 오래전 사람들의 생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여기가 지도상으로 직선으로 그었을때 아마 10Km 남짓 되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도대체 이전 사람들은 전쟁을 하거나 이동을 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갈 때 어떻게 이동을 했을까요? 여기 말을 타도 쉽지가 않습니다. 말 위에서도 몸에 힘을 꽉 주고 있어야 하거든요. 다리 근육도 좀 좋아야 합니다.
삼국지에 보면 유비가 그랬나? (오래되어서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전쟁이 없고 말을 타지 않은지 오래 되어 다리가 약해 졌다. 뭐 이런 대사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힘들게 여기 위벙마을까지 왔습니다. 사진속 문구처럼
上有天堂 下有雨崩
하늘에는 천당, 지상에는 위벙
샹그릴라도 영국의 작가 ‘제임스 힐턴’ 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지상낙원, 유토피아세계 라고 소개를 한 곳인데요.
한국에 있을때 집이 분당인 사람이 저에게 뜬금없이 “하늘엔 천당, 땅에는 분당” 이라며 분당부심을 부리던데, 제가 분당을 제대로 가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이 마을의 특징은 저녁에는 단전이 되고 상수도가 없습니다. 저 당시에는 휴대폰신호도 없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이런 교통이 안 좋은 외부와 단절된 마을이 더 많았겠죠. 이런 마을들은 나라가 바뀌어도 뒤늦게 알거나 별로 관심이 없거나 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을 겁니다.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언젠가는 여기도 차로가 뚫리겠지만, 차로가 뚫리기 전에 한번 여행을 가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밤에 전기가 없어서 손전등, 기름등, 양초를 키고 생활을 언제 해보겠어요?
다음편에 여기 위벙마을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