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카페, 체스를 둘 수 있는 젊은 분과 체스를 두었습니다

며칠전 카페에 젊은 여자손님이 오셔서 체스판이 있는 테이블에 앉으셨습니다. 그러더니 “체스 두어도 되요?” 라고 물어 보더군요. 그래서 “당연히 됩니다” 라고 했죠.
일행과 체스를 두더군요. 저도 최근에 체스를 배웠다고 하자 한번 두자고 하더군요. 

최근에 대만장기도 가끔 두는데요.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 장기를 두는 사람이 많지가 않습니다. 더군다나 대만에서 서양체스를 둘 수 있는 사람은 더 많지 않죠. 그럼에도 이렇게 체스를 배워서 둔다는 건 뭔가 약간은 다수의 또래와는 좀 다른 취미? 생활패턴? 을 가지고 있지 않나 추측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소개해 드렸던 암기暗棋 도 둘 수 있더군요. 그래서 암기도 함께 두었습니다. 

가끔 이런류의 머리 쓰는것 어렵다고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 있는데, 생각을 깊이하며 이기려고 하는 모습이 상당히 매력적이더군요.  저는 나이 성별 상관없이 늘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을 좋아합니다. 저도 최근에 서양체스, 암기를 배우고, 중화권장기도 다시 배웠거든요. 얼마전에는 카드오목Squence 도 배웠습니다. 무언가를 배우는 걸 좋아합니다. 

저 분과 체스를 두고 있으니 머리속에서는 계속 넷플릭스의 ‘퀸스 겜빗’ 이 연상이 되더군요. 무튼 최근에 본 분들 중에 상당히 인상적이고 매력적인 분이었습니다. 

며칠전 카페에 젊은 여자손님이 오셔서 체스판이 있는 테이블에 앉으셨습니다. 그러더니 “체스 두어도 되요?” 라고 물어 보더군요. 그래서 “당연히 됩니다” 라고 했죠.
일행과 체스를 두더군요. 저도 최근에 체스를 배웠다고 하자 한번 두자고 하더군요. 

최근에 대만장기도 가끔 두는데요.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 장기를 두는 사람이 많지가 않습니다. 더군다나 대만에서 서양체스를 둘 수 있는 사람은 더 많지 않죠. 그럼에도 이렇게 체스를 배워서 둔다는 건 뭔가 약간은 다수의 또래와는 좀 다른 취미? 생활패턴? 을 가지고 있지 않나 추측을 해 보았습니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다음주에 한국분들 대만에서 가이드를 또 합니다. 그분에게 미리 문의를 해 두었습니다.

“고궁박물관 일정에 넣어 드릴까요?” 라구요. 그러면서 제가 부연 설명을 해 드렸죠. 

“제가 여행가이드를 하다보면 박물관 같은 곳을 흥미롭게 보시는 분들이 계시고, 그렇지 않으면 지루해 하며 ‘빨리 나가기 위해’ 속보速步 로 걷거나, 벤치에 앉아만 있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렇게 설명을 하니 그 분도 납득을 하시고 함께 가는 일행들과 상의를 해 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하시더군요.

어떤 분들에게는 여행=인스타올리기용 사진찍기 인데, 박물관 같은 곳에서 뭘 보면서 ‘생각’ 하는 여행은 필요가 없는 거죠. 

차이컬쳐 오래전부터 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이전부터… 멀게는 사진/동영상을 별로 안 찍던 중국에서부터 다양한 사람들과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요. 위의 사진은 재작년 미국/캐나다 친구들과 태국여행했을때구요. 저 분들은 항상 Fascinating 이라면서 둘러 보니까 가이드를 한 저도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지인을 위해서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제 비용과 시간을 써서 일부러 제가 안내를 한 여행이었죠. 어떤 유적지를 어렵게 갔는데…

이 지인이 도착하자마자 배경과 셀카를 찍더니만 ‘거짓말 쬐끔 보태서’ 30분 동안을 휴대폰으로 사진 편집을 하고 있더군요. 페이스북에 올릴거라면서…

어떤 유적지를 갔으면 거기서 그 유적지들을 보면서 이전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저런 것들을 지어 올렸고, 뭐 이런 걸 감상하고 느껴 보는 것이 보편적인데… 이 지인은 일행들은 이동을 하면서 유적지를 보고 있는데, 이동하면서 계속 휴대폰으로 사진편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적지를 떠날때쯤 사진 업로드 하고는 댓글, 코멘트만 확인 하더군요. 그땐 정말 여행가이드 해 주기 싫었습니다. 내돈/내시간 들여 가이드 해 주는 거였으니까요.

저의 차이컬쳐에도 종종 나오는 저 태국친구의 경우에는 이전에 함께 유적지를 갔는데, 저 멀리서 혼자 건물들을 천천히 둘러 보며 감상을 하고 있더군요. 또 저렇게 표면도 만져 보면서 유적지를 감상했습니다. 

저는 이런 곳들이나 이전 건물들이 있는 지역, 마을, 장소들을 가면 늘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를 건축물이나 물건들을 보면서 상상을 해 보거든요. 

사람마다 여행의 목적이 다르다는 건 알고 취향이 다르다는건 알지만, 이런 유적지나 오래된 흔적의 마을에 가서 사진몇장 찍어 그거 인스타/페이스북에 올리려고 거기서 휴대폰만 계속 만지작거리다가 차 탈때 까지 댓글달고 조회수 보는 사람과는 다시 여행하고 싶지 않습니다. 뭐 그 사람이 돈을 지불하고 저를 고용한 관계라면 기꺼이 그렇게 하죠. 하지만 제가 호의를 베풀어 혹은 제 여행을 할 때 함께 가는 사람이 그렇게 하고 있으면 그 다음 부터는 함께 하지 않게 됩니다. 

뭔가 새로운걸 보고 배우고 느끼고 그러면서 생각도 하는 그런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싶은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

오늘은 체스사진만 2장 달랑 올리기 뭐해서,  이야기가 살짝 흘렀는데요. (포스팅하다보면 사진을 좀 많이 올려야 한다는 강박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저랑 장기두는 그 미국친구가 요즘 대만젊은 친구들 대부분 대만장기를 못 둔다 라면서 둘 상대가 없음을 아쉬워 하더군요. 그래서 가끔 제 카페에 와서 저랑 두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와중에 저렇게 ‘진지하게 생각을 하면서’ 체스를 두는 젊은 분을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미국인손님이 카드오목 가르쳐 주고, 저는 한국장기 가르쳐 주었습니다

최근 저 미국인친구와 서양장기, 중국장기, 암기暗棋 등등을 종종 하고 있습니다. 저의 카페에 와서 한두시간 정도 함께 게임을 하곤 합니다. 

그러다 이번에는 Sequence카드오목 를 가지고 와서 함께 하자고 하더군요. 간단히 설명을 들었는데, 룰은 아주 간단하고 쉬웠습니다. 한번 슥 들으니 금방 이해가 되더군요. 

결과는 1승 1패. 앞으로 종종 게임을 할 것 같습니다. 

저도 하나 사 두려구요. 장기, 바둑과는 달리 룰이 쉬워서 누구나 금방 배워 즐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도 장기판을 하나 샀습니다. 

저 친구랑, 서양체스, 중국식장기, 暗棋암기 까지는 함께 게임을 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드디어 ‘한국식 장기’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룰을 아니까 이해는 금방 하는데 헷갈려 하죠.

가령 병/졸 이 좌우로 움직여서 기물을 취하는 것 부터.

상이 상대진영까지 넘어 공격할 수 있다는 것.

가장 헷갈려 하는 부분이 ‘포’의 운용.

그동안 제가 서양체스와 중국식장기 두면서 헷갈려 했던 고충을 저 친구도 느꼈을 겁니다. 

중국식장기는 병/졸이 좌우로 움직이지 못 한다는 것과 상이 4각형 대각선으로만 움직이고 내 진영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전술운용이 한국식장기보다 단조롭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한국식장기가 더 재미 있습니다. 

타이난 골목골목 천천히 둘러 보기

많은 관광객들이 짧은 일정으로 인해 타이베이위주로 대만여행을 하시는데, 저는 타이난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번잡하지도 않으면서 볼거리도 많고. 오래된 세월의 흔적을 느껴 볼 수 있는 볼거리가 많은 곳입니다.

그럼 지난번 태국친구가 왔을때 당일치기 타이난여행을 소개해 봅니다. 

공자사원 맞은편 골목길을 걸어 봅니다. 

泮宮 [pan gong]은 학교를 의미하거든요. 이전에 여기 학교가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은 사전을 찾아 보면 ‘공자의 묘 앞에 있는 연못’ 이라는 뜻도 있거든요. 실제로 공자사원안에 작은 연못이 있긴 합니다. (지난번 공자사원소개글 보러가기)

타이난은 이런 골목길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른아침 식당오픈을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특색있는 건물과 다양한 카페등이 있습니다. 다소 이른 시간이라 아직 영업은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타이어, 광동어, 객가어, 푸지엔어(아마 중국 복건성쪽 방언인 듯), 영어 가 가능하다고 적어 두었네요.

문 손잡이가 아주 친환경적입니다. 

거리를 천천히 둘러 봅니다. 이 날 날씨가 좋아서 천천히 걸어보기에 아주 좋았습니다. 

저 외국인관광객도 제가 찍은 저 건물을 찍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타이난을 왔을 그 기분을 어쩌면 저 태국친구도 느끼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 날 저 친구 엄청 기분좋아 하더군요. 뭐 이런 하늘에 이런 풍경을 싫어할 사람 몇 없죠. 더군다나 카페야외시장행사도 성공리에? 마친 상태였구요. 

타이난 처음 왔을때, 뭔가 아기자기하면서 다양한 볼 거리도 있고, 아주 살짝은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도 받았거든요. 그 당시에 묵었던 민박건물이 100년이 넘은 건물이어서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소방서건물인데요. 저 건물에 대해 조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경험으로 유추해 보면 저 건물은 이전에도 소방서나 어떤 관공서 건물로 사용을 해 오던걸 현재 소방서로 사용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여기 보면 이전 일제시대때 관공서 건물 중 저렇게 주변을 감시하는 탑을 만들어 놓은 것이 있거든요.

햐야시백화점 입니다. 아직도 이전 스타일의 내외관을 보존하고 있는 건물이라 유명한데요. 판매하는 물건들의 가격이 비싸서 그냥 눈으로 구경만 해 봅니다. 

태국친구가 저 모자를 찍어 태국친구들 단체방에 공유하면서 “뭔 밀짚모자가 1300대만달러나 하냐? 태국에서는 13밧이면 사겠다” 라는 늬앙스로 농담을 하더군요. 

저 백화점은 엘리베이터, 창문들, 그리고 옥상에 2차세계대전당시 폭격당했던 흔적 등등을 보실 수 있으니 물건 사지 말고 그냥 눈으로 둘러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좁은 매장에서 테이크아웃 위주로 하는 카페인듯 한데, 손님들이 대기를 하면서 주문을 하고 있길래 유심히 보았습니다. 

저 친구도 작은 카페를 하고 있고, 저도 소규모의 카페를 하고 있는 터라 이런 형태의 카페에는 눈길이 한 번 더 가게 됩니다. 더군다나 의자와 테이블을 밖에 저렇게 놓아 두고 앉아 마실려면 마셔, 라는 구조로 꾸며 놓았는데요.

이번엔 좁은 골목길 안쪽 주택을 개조해서 1층과 2층을 카페로 운영하고 있는 곳입니다. 지금 대만의 저의 카페와 비슷하죠. 일반가정집+주택가골목+1층/2층 카페. 얼핏보니 3층은 주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도 3층에는 거주를 하고 있구요.

동질감이 느껴지는 카페였습니다. 뭘 한잔 팔아주고 싶었는데, 저 당시 도저히 뭘 더 마실 상황이 아니라서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뭔가 독특한 느낌의 골목들입니다. 

거리에서 본 고양이와 잉꼬새? 입니다. 그리고 길 건너편 건물의 벽 따라 자라나 있는 식물이 장관입니다. 

타이난은 천천히 걸어 다니며 구경하면 볼 거리가 더 많은 곳입니다. 차로 유명관광지만 휙 돌아 보면 여느 다른 지역의 관광도시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수도 있구요.

타이난은 다음편에 또 소개를 해 보겠습니다. 

[대만카페일상]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거죠

오늘 글을 시작하기전… 며칠전 어머니가 한국에서 저의 카페를 다녀 가셨는데요. 어머니가 저에게 “흰머리 염색을 좀 해라. 손님 맞이 하려면 아무래도 단정한 검은색 머리색이 더 낫지 않냐?” 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최근에 어떤 남자분이 흰머리가 많으시네요. 라고 하시니까 그 옆에 있던 여자분이 “딱 봐도 염색한 건데 그걸 모르냐?” 라고 하시더군요.

흰머리가 아니고 블루그레이로 염색을 한 겁니다. 혹시라도 오해가 없으시길 바라며…

그저께 염색을 다시 했는데요. 

이번에도 블루그레이 로 염색을 했습니다.  

어머니께 Fashion의 F 도 모르면서 그런말을 하지 말라고 하려다 안 했습니다. (농담입니다)

지난 연말 저의 카페를 자주 찾아 주던 태국유학생 손님 중 한 명이 크리스마스카드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저와 저의 아내, 그리고 저의 카페 고양이 세녀석을 저렇게 그려서 선물로 주었습니다. 

비싼 물건보다 이런 손엽서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걸 보면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중간에 있는 저 친구인데요. 어제 저의 카페를 찾아와서

“타이베이에 직장을 구해서 오늘 이사하는데,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라고 하며 마지막으로 타이밀크티를 주문했습니다.  저의 카페 타이밀크티는 여기 태국유학생들 모두가 다 맛있다면서 하반기 꾸준히 주문을 해 준 음료거든요. 태국사람들이 인정한 태국밀크티…

무튼 이 학생이 그동안 여기 대학교의 생활을 마치고 직장을 구해 타이베이로 가는 뒷모습을 보니 참 시원섭섭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태국유학생들은 저의 카페에 초대해서 음식도 만들어 먹고, 저도 떡뽁이 만들어 주고, 생일파티도 하게 해 주고, 태국공포영화도 함께 보았습니다. 

제가 태국살아서 태국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정이 가는 부분도 있고, 저도 해외에서 학생신분으로 혹은 해외체류를 할 때 현지에서 누군가의 약간의 도움이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지를 잘 알고 있어서 이 유학생들에게 조금 더 잘 대해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캐나다에서 홈스테이할 때 주인집 가족들과 어딜 함께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한창 혈기왕성한 20대라 금방 배가 고파지던 시절이었는데요. 홈스테이주인 가족들이 이동지에서 뭘 막 사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당시 하루에 딱 정해진 금액 이상으로 소비를 하면 체류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라 배는 너무나 고팠는데 저는 함께 사먹지 않았거든요. 차에서 너무나 배는 고프지, 그 가족들 먹는 모습 보니까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해외라서 돈 아끼느라 뭘 제대로 못 먹었었거든요. 그런 경험들도 있고 해서, 유학생들에게는 좀 더 잘 해 주려는 편입니다. 

얘는 안에 술이 들어있는 쵸콜렛인데요. 마찬가지로 저의 카페에 자주 오는 홍콩유학생의 아버지가 선물로 주고 가셨습니다. 명목상으로는

자신의 딸 잘 보살펴 주어서… 라는데.

제가 딱히 뭘 잘 보살펴 준 건 없구요. 하루는 휴일날 카페에 앉아 있는데 휴일인지 모르고 왔더군요. 그래서 들어와서 공부하라고 하고 음료 하나 무료로 내어 준거랑…
가끔 라면 끓여 주고, 우리 저녁 먹을때 함께 먹고, 우리가 뭐 사서 먹고 있을때 그 홍콩유학생만 챙겨서 줄 때도 있고… 그런건 했었죠.

딸이 아버지에게 저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듯, 아버지가 홍콩에서 오셔서 저랑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선물도 주고 가셨습니다.  

이 친구도 이제 겨울방학이라 홍콩으로 잠시 돌아갈 것 같다고 하는데요…

최근에 자주 오는 대만인 손님의 오토바이입니다. 저 날은 여자친구와 함께 왔었는데요.
일단 오토바이가 대략 30년 가까이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한장 찍어 보았습니다. 

이 손님도 최근에 자주 와서 향후 진로에 대해 고민을 털어 놓습니다. 조만간 여기를 떠나 (여자친구가 있는)  대도시인 타이베이로 가서 자리를 잡을 생각인데, 막상 타이베이 가서 새롭게 시작하려니 막막하고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래서 이야기를 해 주었죠.

“나는 외국인인데, 여기 너네 고향인 시골지역까지 와서 카페도 차렸다. 너는 겨우 너네 나라에서 다른 도시로 가는건데 뭘 그렇게 걱정하고 두려워 하냐?” 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연말에 했던 카페야외시장을 주최했던 학생들 중에서도 이번달에 여기를 떠나 타이베이로 간다며 마지막 주문을 하러 왔었습니다. 타이베이인근에 직장을 구했다며 여기 대학생활을 마무리 한다며 인사하러 왔더군요.

심지어는 저기 학생들 어머님까지 오셔서 자기 자식이 주최하는 행사에 참가해 주어 감사하다며 카페에 와서 주문도 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살다보면 새로운 만남이 있어 즐거웠고, 또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나다보니 헤어짐도 있고 그렇습니다. 

대학교 기말고사가 지난주 끝났습니다. 이제부터는 방학이고 곧 춘절이라 다소 한산할 것 같습니다. 대만살이 카페근황 소개를 해 보았습니다. 

생각난김에…

지난번 카페야외시장 행사 영상을 올렸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봐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대만대통령은 민진당에서 하게 되었네요.

대만카페 손님들이 주신 생일축하 메세지 및 선물

저의 생일이라 생일기간 3일동안 20% 음료할인 행사를 했습니다. 

카페손님중에 말로 ‘생일축하합니다’ 라고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와중에 이렇게 엽서를 적어 주신 분도 계십니다. 아주 잘 만들었습니다. 

제 성 朴 을 잘 못 적어 수정테이프로 수정을 했는데요. 제 추측에는 林 으로 적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만에는 저 朴박 이 흔하게 사용되지 않는 한자라 많은 사람들이 제 이름을 부를때 수풀림林[lin]  으로 부릅니다.

제 성 朴 의 중국어 발음이 [piao] 입니다. 단, 성姓 에서 사용할때 [piao][피아오] 라고 발음이 되는데요. 처음 중국을 갔을때 중국친구녀석이 [pu] [푸] 라고 발음을 하길래 푸라고 저도 따라했죠. 그런데 학교교수님이 잘못을 정정해 주셔서 그 중국친구도 저도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 대만에서는 성에서도 [pu][푸] 라고 발음을 하는데, 평소 잘 사용하는 한자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林[lin] [린] 으로 발음을 하고 적습니다.

또 다른 여기 대학생손님께서 생일선물도 직접 주시고 인증사진도 찍었습니다. 

카페손님께서 선물을 저에게 주시니 정말 감사하더군요.

또, 저에게 체스판을 선물해 주고 체스를 가르쳐 준 미국인손님(친구)이 이 책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책 내용을 보면, 체스를 배우기 전에 먼저 한자를 배워야 할 분위기 입니다.

그리고 어떤 손님은 음료를 다 마시고 가셨는데, 테이블을 보니 저렇게 생일축하합니다 라는 메세지를 남기고 가셨더군요.

그리고 며칠전 한국에서 어머니와 여동생이 저의 대만카페를 방문했는데요. 간단히 케잌을 자르고 현금선물을 받았습니다. 케잌아래 현금이 놓여져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손님들께서 생일축하한다고 말씀을 해 주셔서 여느해 보다도 가장 축하를 많이 받는 그런 생일이었습니다.  

아느 동생도 ‘생신 축하’ 라는 단어를 쓰길래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고 일침을 날려 주기도 했습니다.

많은 분들 덕분에 해외에서도 좋은 기운 받으며 1월을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대만공장 Audit 통역(중국어-한국어)업무를 하고 왔습니다.

업무통역을 다녀 왔습니다. 중국어를 조금 하시는 한국분께서 업무차 대만의 모 공장에 Audit를 하러 오셨는데, 아무래도 업무통역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통역을 구했었나 봅니다. 

먼저… 공장 Audit 하면 제가 좀 잘 했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공장 Audit를 해 보신 분도, 받아 보신 분도 계시겠지만, 해외공장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Audit를 준비해 보신 분들은 또 많이 없으실 겁니다. 저는 각종 외국인 직원들을 데리고 Audit준비를 해 본 경험이 아주 많습니다. 

공장측에서 마련해 준 차량으로 공장에 도착했습니다. 역사가 오래된 중소기업 이었습니다.

공장업무를 떠난지 대략 일년반만에 다시 공장관련 업무를 하러 왔습니다.

이전에 Audit 받는 날되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통역으로 온 거라 그런류?의 스트레스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통역이라는 것이 일반생활통역, 여행가이드통역, 이런 전문기술통역이 다 다릅니다. 기술통역은 기본적인 경험이 중요하죠. 저는 정확하게 2003년 초부터 제조업관련 기술통역을 했었죠. 2003년에는 중국어/영어도 더럽게 못 하던 시절이었는데 어떻게 그 어려운 기술관련 내용들을 통번역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합니다.

아마 건물기공식 했을때 사용한 첫삽을 기념으로 남겨 둔 것 같았습니다. 

Audit를 좀 많이 당하다보니 통역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양측이 잘 이해를 하는지에 대해서 경험이 많으니까요.

심지어는 중간에 Audit를 당하는 직원과 상대방 직원간 언쟁이 발생해서 목소리가 커지고 인상을 찌푸리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제가 재빨리 해결책을 제시해서 원만하게 처리도 해 주었습니다. 한국측 담당자분께서 감사하다고 하더군요.

공장측에서 점심을 외부식당으로 잡아 두었다고 해서, 회의실에서 도시락으로 먹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Audit하면 시간이 촉박한데, 보통 해외공장에서 외부로 식사하러 나가면 2시간 소요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제가 중국공장에서 중국사람들과 업무를 할 때 힘들었던 부분중 하나가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하면 2시간 3시간씩 먹고 들어오니까, 제 생각에는 시간낭비라고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공장측에서는 한국고객/손님이 왔으니 좋은 곳에서 대접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점심시간이 너무나 깁니다. 어떤 공장들은 식당까지 이동을 하는데 20~30분씩 걸리기도 하고 왕복하면 1시간이 걸립니다. (중국업무 많이 해 보신분들은 이해하실듯…) 

비록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제가 잘 모르지만, Audit라는 것이 기본적인 공장품질관리시스템을 보는 것이라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가끔 공장의 내부 프로세스를 잘 모르면 이해가 안 되고 통역하기도 좀 어려울 수 있습니다만, 그런것도 ‘압도적인 공장통역 경험’ 으로 극복을 할 수 있죠.

일년여만에 다시 공장에 와서 Audit를 하니 이전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저는 제조공장에서의 업무는 잘 할 자신이 있거든요. 첫직장을 제조업으로 들어와서 완전 밑바닥 제조공장부터 제가 직접 자영업제조도 해 봤으니까요. 그래서인지 통역은 크게 어려움 없이 마쳤습니다. 

의뢰를 하신 분이 3시간이면 끝날거라며 3시간만 의뢰를 했는데, 어느새 어둑어둑해 지더니…

결국 어두워져서 업무를 마쳤습니다. 

Audit도 양측 모두 원만하게 마무리 되어 중간에서 통역을 한 입장에서 보람도 느꼈습니다. 

비즈니스통역은 단순히 외뢰자에게 기계적언어통역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외뢰자의 비즈니스목표가 달성될 수 있도록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거든요. 

이전에 중국에서 보면, 중국에 사업하러 와서 통역이 필요하니까 한국어하는 업무경험이 없는 어린 학생이나, 업무마인드가 없는 조선족 이런 사람들 데리고 와서 통역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뭔가 잘 못 되고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떨때는 통역의 센스가 중요합니다. 

의뢰자분께서 선물도 챙겨주셔서 감사히 받아 왔습니다. 

오랜만에 공장의 회의실에서 Audit 해 보니 이전 생각도 나고 해서 좋았습니다. 


2023년, 태국에서 대만이주 후 대만중부 지방에서 가게 구한 이야기

2023년 마지막날을 맞이하여, 올해 태국에서 대만으로 이주하고 정착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작년하반기에 태국에서 대만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대만 떠난지 대략 4년여만에 다시 대만에 살기 위해 돌아오니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본 원산대반점 마저 낯설게 느껴지더군요. 이전 타이베이 살 때는 집에서도 보던 모습이었는데 말이죠.

이번엔 타이베이에서 살지 않고 대만의 지방, 시골에서 살아야 겠다고 계획을 하고 들어온 터라, 타이베이에서는 단기로 머물 방을 구했습니다. 보통 집 임대는 1년 2년 단위라 몇 개월 짜리 방을 구하기는 쉽지 않고 선택지가 많지 않습니다. 

특히 고양이까지 있어서 방을 구하는데 선택지가 많이 없었죠.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왼편 녹색간판이 있는 건물에서 몇 개월 지냈습니다. 낡은 외관건물만큼이나 실내도 오래된 그런 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단기로 살거라 많은 것이 불편해도 지낼만 했습니다. 

가스온수방식이라 하루는 온수가 나오지 않아 가스가 없다는걸 알았죠. 원래는 작은 가스통이 예비용으로 백업을 해 주는건데, 저희는 이사를 하고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둘 다 비어버린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온수가 안정적으로 나오는 것에 감사하며 지냈습니다.  지금 대만의 온수기는 전기저장식 온수기인데,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샤워를 조금만 하고 나면 온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만약 내가 내 돈을 주고 저장식 온수기를 구입한다면 가능한 대용량을 구입할 것을 추천드립니다. 

중국에 살 때는 선불식 수도를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깜빡하고 몇 천원 납부하지 않아 저녁에 온 머리와 몸에 거품 뒤집어 쓴 상태로 단수가 된 적도 있었구요.
다른 지역에서는 태양열 저장식 온수기를 사용한 적도 있었는데, 이 태양열이 화창한 날에는 그럭저럭 온도를 높여 주는데 흐리거나 비 오면 물 온도가 충분히 올라가지 않습니다. 당시 전기요금 아낀다고 차갑지 않은 물로만 샤워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압권은 중국연대에서 온수기가 없는 정말정말 저렴하고,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공동빌라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데요. 

당시 온수기도 없는 그런 방을 임대해서 중국어공부를 했었습니다. 그 해 겨울… 정말 추웠습니다. 샤워를 할 때는 아래 사진처럼 

딱 저렇게 생긴 보온병에다가 물 끓이는 중간의 저 장치를 마지막사진처럼 꽂아 넣어서 물 끓여 그걸 찬물에 타 차가운 느낌만 없게 해서 샤워를 했습니다. 

샤워기로 샤워를 한 것이 아니라 받아 놓은 물을 몸에 끼얹는 형태로 샤워를 했었죠. 그 해 겨울내내 그렇게 샤워를 하고 저렇게 끊여서 따뜻한 물 마시고 했었습니다.  집도 오래되어서 방풍, 방온이 안 되 실내가 무지하게 추웠죠. 돌이켜보면 당시 돈은 없는데, 중국에서 중국친구들과 대화하면서 중국어 배우려고 하다보니 그렇게 지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돈이 없어서 중국친구들이 저녁마다 만터우 라고 중국식 큰 흰색 빵을 한두개씩 사 주었습니다. 

위의 3장 사진은 중국인터넷 펌 입니다. 첫번째 사진은 정확하게 제가 사용했던 보온병이네요. 색깔도 그렇고 코르크마개도 그렇고… 

거의 30년이 된 차량이라 도로에서 멈추면 어떡하나 생각이 드는 차였지만, 갓 대만에 도착한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죠. 차 없이 집 보러 갔을때는 자전거, 오토바이 이런걸 타고 둘러 보았으니까요.

아직도 이 차는 운행이 되고 있으며,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 차에 대해 좀 더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인터넷으로 본 집들을 하나하나 방문해서 실물을 확인하고 주변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골목골목을 계속 둘러 보았습니다. 인터넷사진과 실물은 또 많이 다르고, (보통은 실물이 더 안 좋습니다) 원하는 위치나 건물이 잘 안 나타나더군요. 그래서 계속 둘러 보았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여기는 (과장 조금 보태서) 거의 모든 골목을 다 둘러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돌아 보았죠.

그럼에도 조건에 맞는 방이 없더군요. 

이런 식으로 1층은 가게, 2층은 주거를 할 수 있는 형태를 찾았는데, 적당한 조건의 집이 없었습니다. 

너무 낡은 집은 인테리어 및 수선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데, 임대를 하는거라 집 인테리어나 수선비에 돈을 너무 쓸 수는 없죠.

신축이나 좀 깨끗한 건물은 가격이 비싸거나 위치가 안 좋거나 면적이 좁거나…

당.연.히.  돈에 여유가 있다면 저도 가급적이면 신축건물에 들어가고 싶었죠.

그 와중에 아무도 입주하지 않은 신축건물도 있었습니다. 4층 건물 전체가 이전 타이베이에서 살았던 방3개짜리 아파트와 비슷한 정도이더군요. 저 집이 너무나 탐이 났는데, 위치가 너무 휑한 곳에 있어서 뭘 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고, 4층 건물 전체를 저희 부부 둘이서만 사용하기에는 너무 컸습니다. 그렇다고 다른걸로 활용하기도 마땅치 않았고…

임대를 한다고만 하면, 위의 사진과 같은 건물을 임대하는 것이 딱 좋아 보였는데, 아직 건축중이라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는 노릇이었죠.

저 당시 방 구하러 다니는 시기에 방은 안 구해지고, 시간은 계속 흐르고… 그러다보니 입술 주위에만 생기던 염증, 고름 같은 것이 눈 주위에도 생겨서 부풀어 오르더군요. 눈하고 입 주변, 입안에 뭔가가 계속 나고 터지고 반복했습니다. 

당시 방 보러 다닌다고 여기 대학교 주변도 계속 돌아다녔는데요. 위의 사진은 지금 저의 카페 바로 옆 식당입니다. 저기서 고양이와 사진도 찍었는데, 결국 지금은 저 부근에서 살고 있습니다. 

타이베이에서 왔다갔다 하기에는 비용도 더 많이 들고 방을 구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여기에 다시 단기거주용 방을 구했습니다. 

원룸을 구해서 3개월간 머물렀는데, 이 집이 너무나 춥더군요. 그래서 난방기도 구입을 했습니다. 

저의 고양이 호미도 함께 데리고 왔는데, 쟤도 추운지 난방기 옆에서 자고 있는 모습입니다. 

현지에 임시거처를 구하고 나서 좀 더 본격적으로 방을 보러 다녔죠. 거의 모든 골목을 다 돌아 보았고 여기 주변 일대 거의 다 돌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마땅한 매장이 없더군요. 

중간에 처가집 친척이 소유한 폐가로 방치한 집을 임대하려고 몇 번 방문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결국 그 친척들도 저에게 임대를 해 주지 않으려고 하더군요. 우여곡절이 좀 있었습니다.

구축이든 신축이든 대체로 매장의 면적이 제가 하려는 카페와는 맞지 않게 너무 면적이 작더군요. 

늘 돈이죠.  여유자금이 많으면 좀 느긋하게 일년 쉬면서 집만 보러 다닐 수 있습니다. 보통 해외로 가족이 이주해서 정착하는 기간동안 사용하는 비용이 1억이 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물가비싼 나라일 수록 이주해서 어영부영하면 1억 쓰는건 금방입니다. 

혹시라도 해외이주 이런걸 안 해 보신 분들 중에, 이주하기 전에 계획을 잘 짜서 가면 금방 정착할 수 있지 않나? 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해외이주를 하게 되면 그게 그렇게 내 생각이나 계획처럼 잘 되지도 않고, 또 경험이 없다보면 수업료, 시행착오비용도 발생하고, 어떤 부분은 현지에 도착해서만 알 수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대만에서 오래 지냈지만 또 이 지역은 처음이구요. 각종 비자, 의료보험, 운전면허 수속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나마 저는 해외이주 경험이 많고, 언어소통에 문제가 거의 없어서, 적은 비용으로 빨리 정착을 한 편입니다. 

제가 임시로 거주했던 방과 지금 저의 카페가 저기 논 가장 끝자락 저편으로 대략 200m? 정도 떨어져 있는데요. 여기도 수차례 돌아 본 곳이죠. 그런데 임대를 하는 방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쓰레기 차 시간에 맞추어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는데 제가 1분 정도 늦게 나와서 쓰레기차가 지나가 버렸습니다. 이웃주민으로 부터 ‘지금 저의 카페가 있는 골목길로 다시 쓰레기차가 지나간다’ 라는 말을 듣고 이 카페건물 위치로 왔다가 임대를 한다는 표지판을 보고는 주인에게 바로 전화를 했죠.

그렇게 열심히 방들을 돌아볼 때는 못 찾았던 방을 우연하게 찾았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어떨때는 너무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하지 마라는 뜻이 아님) 어떨때는 운과 때가 좀 맞아야죠. 여기 집주인이 2~3일전에 임대표지를 붙였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2023년은 대만중부지역에서 정착을 한 해이기도 하고, 다양한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해 입니다. 호미외에 니니, 나나 길고양이도 입양해서 새로운 가족이 되었구요. 2024년에는 그 변화들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 더 나은 결실이 오기를 희망해 봅니다.  

대만에서 영화 ‘서울의 봄’ 관람했습니다.

한국에서 흥행중이라는 영화 ‘서울의 봄’을 대만에서 봤습니다. 개봉할 때 부터 보고 싶었는데, 다행히 대만에서도 개봉을 해 주네요.

제가 살고 있는 여기 대만중부지역의 이 마을 영화관에서는 이 영화를 상영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카페휴일에 맞추어 인근 큰도시 영화관으로 갔습니다. 

극장에는 저, 저의 아내와 다른 일행 여성 두분, 모두 4명이서 보았습니다. 월요일오전 첫상영시간대라 사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영화완성도로만 놓고 보아도 상당히 긴장감이 넘치고 전개가 빨리 펼쳐져서 재미있었습니다.  

아쉽게 극장내에 ‘서울의 봄’ 포스터 한장이 안 붙어 있더군요. 

최근 태국에서 개봉한 공포영화입니다. 예고편을 봤는데, 영화 곡성류의 그런 태국시골지역에서 벌어지는 토속귀신? 이야기 인 듯 했습니다. 이런 공포영화 좋아해서 보러갈 예정입니다. 

관람을 마치고 로비에서 유일하게 함께 관람을 했던 대만여성분 두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의 정치이야기 이라 외국인들에게는 생소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는데 어떻게 보러 오게 되었냐 물어보니 

“우리가 연령대가 좀 있어서 한국의 이 역사에 대해 알고 있다. 그리고 전두환이 광주학살을 한 것까지도 알고 있다” 라고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한참을 한국의 어두운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그 분들이

“그래도 한국은 이제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이런 영화도 상영을 할 수 있으니. 중국은 이런 영화 아직 상영도 못 하지 않느냐?” 라며 저를 위로? 해 주시더군요.

대화를 하면서 이런 어둡고 부끄러운 역사가 있었다는 것에, 그리고 그런 역사를 제대로 심판하지 못 했다는 것에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거든요. 무튼…

기분 전환도 할 겸. 인근마을 후웨이에 가서 도시락을 구입해 야외에서 먹었습니다. 저기 보이는 손들고 있는 고양이가 저의 유튜브 프로필사진으로 등록되어 있는 호랑이 입니다. 

오랜만에 또 야외에서 도시락을 먹으니 기분이 좋더군요. 거창한 캠핑은 아니지만, 드라이브를 해서 공원에 앉아 이런 도시락을 먹으니 좋았습니다. 

대만에서 사시거나, 대만 자주 와 보신 분들은 대만에 이런 류의 도시락식당이 많다는건 아실건데요. 여기 후웨이 이 도시락식당은 가성비가 정말 뛰어 납니다. 그래서 가끔 와서 사 먹는 곳입니다. 이 날도 이 도시락 먹으러 겸사겸사 후웨이까지 드라이브를 왔습니다. 

마지막 사진처럼 담아도 한국돈 4000원 입니다. 

저는 93년도에 군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저는 지방경찰청장 관사병+운전병을 했었는데요. 그 당시에 지방경찰청장의 권력과 권위는 상당한 것이었고, 당시 김영삼정부가 ‘문민정부’를 표방하며 다소 검경의 권력이 이전 군사독재시절만큼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저야 한낱 군복무를 하는 사병이어 그런 권력과 권위의 핵심까지는 볼 수 없었지만, 사병이면서 경찰청장과 함께 숙식을 하고 같은 차로 이동을 하면서, 또 관사로 뇌물을 들고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권력, 권위의 ‘떡고물의 가루 부스러기’ 정도는 맛 볼 수 있었는데요. 

이제는… 소수의 권력에 전국민이 눌려서 사는 그런 세상을 저의 후대에게 물려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차이컬쳐시즌1에서 부터 저는 늘 강조를 했었죠. 항상 사람이 먼저이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요?

대만카페. 12월 24일 야외홍보행사를 이 지역 자영업주인들과 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5월 대만에서 카페를 오픈한 이후로 이 지역 행사를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어디에서 살든 그 지역사회와 동화가 되는건 중요하죠.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저 처럼 이 조그만 지역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저런 지역활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참가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12월 24일 이 지역 카페/식당 들이 주가 되는 야외활동이 있어 저도 참가신청을 했습니다. 

주최측이 다소 젊은 사람들 위주로 아주 참신하면서도 도전적인 그런 색깔의 행사입니다. 

전시회처럼 가게별로 부스를 주최측에서 제공해 주고 각 업주별로 그 부스에서 찾아오는 고객들 혹은 잠재고객들에게 홍보도 하고 교류도 하는 그런 행사입니다. 

12월 24일 10시~17시

이 지역이 상대적으로 한국의 읍 정도의 규모라 얼마나 사람이 많이 올지는 모르겠으나, 가끔 여기서 이런저런 행사를 하면 그래도 인근지역 사람들까지 다 와서 구경을 옵니다. 약간 기대는 하고 있는데요.

행사가 열리는 곳은 현재 카페로 운영을 하는 혹은 카페였던 장소입니다. 정원과 건물이 아름다운 그런 카페입니다. 

저는 카페건물 앞쪽 공간에 부스를 신청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이동을 하는 길목이기도 하고, 건물이 태양을 가려주어 별도의 가림막도 필요없는 위치일 것 같아서요.

또 대로변에서 들어오는 입구쪽 이기도 합니다. 

저의 카페도 마찬가지이지만, 여기도 약간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서 카페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름 오래된 건물의 흔적도 느껴지며 현대식 빌딩내의 카페와는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 꽃이 아름답죠. 그런데 최근에 관리를 안 했는지 가지치기가 안 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쟤가 가지치기를 잘 해 놓으면 상당히 보기가 좋거든요.

 

반면 맞은편 건물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건물이고, 저 쪽 2층 3층에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 보이는데, 외관만 보아서는 아주 많이 낡아 보입니다. 

무튼 이 주택가도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그런 곳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이런 곳을 활용해서 무언가 하려는 모습은 높게 평가를 합니다. 

설명회를 하는 모습입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대의 청년창업자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저도 함께 설명을 듣고 의견을 내며 교류를 하는 저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카페의 새끼고양이입니다. 엄청 활발합니다. 저의 니니, 나나 3~4개월때 모습 보는 것 같더군요.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

각자 마음대로 이번 행사로고를 색칠하는데, 저는 市시 에 태극기를 그려 넣었습니다. 제가 그림솜씨가 없어서 좀 못 그린 것 같은데, 이런 곳에는 너무 프린트 한 것 같은 반듯한 태극기 보다는 차라리 이런 느낌이 더 낫습니다.

주최측의 젊은 사람들이 준비를 많이 했더군요. 
창업정신으로 이렇게 도전을 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더군요. 기왕 참가비 내고 해 보는것, 이번 활동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카페홍보를 많이 했으면 좋겠지만, 이렇게 젊은 창업정신의 젊은 사람들과 함께 이런 교류를 하는 것 만으로도 저는 좋습니다. 

저의 부스를 찾아주시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국적 느낌이 나는 책갈피를 구입해서 저렇게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12월 24일… 기대가 되네요.

저의 카페에 손님이 족제비를 데리고와 저의 고양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끔 저의 손님들 중에 애완동물을 데리고 오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대체로 미리 ‘애완동물 데리고 가도 되냐?’ 고 문의를 주시는데요. 저의 카페에 이미 세녀석의 고양이가 있으니까 당연히 환영입니다. 

최근에 손님중에서 족제비를 데리고 왔더군요.

족제비가 오니 저의집 고양이들 난리가 났습니다. 나나(바닥의 회색)는 밥 달라고 할때만 하는 저 자세까지 해 가며 족제비를 보고 있습니다.

저의 카페에서는 여포인데, 막상 다른 동물들 오면 겁이 엄청 많습니다.  큰 녀석 호미는 원래 처음 입양할때부터 겁이 엄청나게 많은 녀석이라 이해를 하겠는데, 작은 두녀석은 평소에는 뭐든 다 공격하는 맹수처럼 보였지만, 다른 동물이 카페에 오면 완전 겁쟁이모드 입니다. 

겁쟁이모드를 동영상으로 올려 봅니다. 

그래도 손님들이 족제비를 꺼내서 더 적극적으로 저의 고양이들과 교류하게 해 주려 해서 감사했습니다. 

한국에서 호미를 처음 입양했을때, 호미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두려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죠. 

“나는 호미가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호미가 좀 더 많은 사람, 좀 더 많은 동물들과 교류해서 사회성을 키우길 바랍니다. 

저의 작은 두녀석도 마찬가지로 올해 4월 입양한 뒤로 혹시라도 집 안에서만 자라면 바깥세상의 모든 것을 두려워 하는 고양이가 될 까봐 어릴때는 주기적으로 안고 바깥에 데리고 나와 바깥의 소음도 느끼게 해주고 또 다른 풍경과 냄새도 맡게 해 주었습니다. 최근에는 이 녀석들이 커서 안기는걸 너무나 싫어해 좀 뜸하지만, 우리 고양이들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회성이 좋은 고양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있습니다

이 주인분도 족제비를 오냐오냐 키우지 않고, 저의 고양이들과 계속 교류를 하게 해 주더군요.

중국에 가보면 소황제 라고 해서 부모 2명, 조부모 4명이 자식 1명을 너무나 총애하고 오냐오냐 해서 키우다 보니 이 자식이 사회성이 없어지죠. 그러다보면 자식을 부모품에서 떠나 보내지 못 하고, 이 자식은 사회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경험축적이 안 되는 겁니다. 비단 중국소황제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모습이죠.

무튼 그런 족제비로 키우지 않겠다는 주인의 의지가 느껴집니다. 

제가 부산에 살 때 집이 마당이 있는 주택이었는데, 어느날 족제비 한마리가 마당으로 들어왔죠. 당시 저의 집에 강아지 2녀석이 있었는데, 한 녀석의 이름은 ‘누렁이’. 이 녀석이 평소에는 엄청 순둥순둥 했는데, 족제비를 보자 엄청 공격을 하더니 결국 족제비가 마당의 창고건물 안으로 들어가 숨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저의 집 세입자 아저씨가 쌀포대로 족제비를 잡아 고아 먹었습니다. 당시 어린이였던 저에게는 ‘허리를 다쳐서 먹는다’ 라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뭐 정력제 라고 생각해서 먹었을 것 같네요.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그 족제비를 삶는데 비린내가 심하게 났었다는 겁니다. 

저 손님에게 물어보니 족제비를 집에서 키워도 큰 문제는 없다고 하네요. 방에 풀어 놓아도 잘 놀고… 파충류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고,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고, 유튜브를 보면 더 다양한 동물들을 집에서 키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의 카페에 다양한 동물들이 찾아 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