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흐르는 물에 띄워 마시는 찻잔 찻집
대만시골살이 이모저모. 무지개세차, 쓰레기차, 나무위집 등
시골카페에서 키오스크 시스템 없이 주문받고 매출관리 하는법
사고친 저의 고양이 모습 및 대만시골카페살이 근황
대만시골생활, 카페생활 근황
화려하고 비싼 커피가 아니라도…(내 맛을 강요받지 마세요)
카페 통유리 설치 그리고 방음효과

카페개업 준비를 하면서 가장 극적이었던 공사는 아무래도 저 정면 통유리를 설치했을때 였습니다. 원래는 아무런 문 없이 그냥 철제셔터만 있는 그런 가게였습니다. 이전에는 여기가 시골마을의 잡화점 이었다고 하더군요. 오시는 손님들 중에
“이전에 여기서 과자 / 계란 사 먹고 했었어요”
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카페인데 유리문 하나 없이 영업을 하기에는 그렇죠. 그래서 통유리 설치를 했습니다.

유리를 달기전 프레임을 먼저 설치하고 며칠 뒤에 유리를 달러 왔습니다. 유리가 없을때는 좀 시끄러웠습니다. 앞으로 차와 오토바이가 지나가니까 그 때 마다 소음이 크게 났었거든요. 처음에는 유리와 에어컨 없이 저렇게 개방된 상태에서 업무를 좀 했었는데, 소음이 너무 심해서 좀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유리를 설치하고 나니 확실히 소음이 확 줄어 들더군요.

통유리 설치 후 그 다음날인가 유리문을 달았습니다. 유리문까지 설치를 하니 확실히 소음도 더 줄어 들었고 뭔가 아늑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유리문 설치하고 나서 뭔가 안정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제 뭔가 카페의 형태가 잡혀가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건물에서 하나하나를 준비하는 것이 이게 보통일이 아닙니다.
내 나라에서 이런 카페를 직접 발품팔아가며 여는 것도 쉽지가 않죠. 하물며 외국에서 이런 작업을 하다보면 더 힘듭니다.
그렇게 문을 설치했는데, 문의 특성상 4개의 면에 프레임과 약간의 공간이 있습니다.

특히 바닥으로는 각종 벌레들이 많이 기어 들어오더군요. 그럼에도 한동안은 그냥 지켜 보았었는데, 최근에 대규모 벌레들이 짝짓기를 하는 시즌이라 엄청난 수의 벌레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이야기 보러가기




그래서 문틈을 저런 걸 구입해서 막았습니다. 유리와 샷시의 공간을 완전히 막아 버렸는데요. 원래는 벌레진입을 막으려고 붙인 건데 예상치 못한 방음효과가 좋더군요. 유의미한 방음효과가 있었습니다.

외부소음이 저 틈으로도 많이 들어 오고 있었다는걸 이번 작업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혹시 저런 문의 가게가 있으신 분들 중에 소음이 심한 곳에 있으신 분들은 틈새를 막아 보시길 바랍니다. 방음효과가 너무나 좋아 소개를 해 봅니다.

이번에 한국가서 모카페에서 ‘달고나카페’를 마셔 보았습니다. 저의 카페 대표음료라서 맛을 비교해 볼 겸 한번 가서 마셔 보았는데요. 달고나카페가 아니라
‘달고나향이 아주 쬐끔 나는 카페‘
더군요. 카페양에 비해 달고나를 쬐끔 넣어 놓으니 맛이 나질 않는거죠.

저의 카페 ‘달고나라떼’ 입니다. 달고나 맛이 확실히 나게끔 만들었거든요.
가끔 한국의 어떤 음료보면 0.001% 성분을 넣어 놓고 무슨무슨 음료 라고 하는 경우있는데…
한국에 가서 마셨던 그 달고나라떼는 정말 달고나는 그저 살짝 물로 헹군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아주 쬐끔 뿌려 놓으니 그런거죠.
아무튼 어서빨리 이 벌레들의 짝짓기기간이 끝났으면 합니다.
카페 하늘에 떠오른 무지개

대만 중부지방은 최근 비가 자주 내리고 있습니다. 며칠전 비가 미친듯이 내리다 그친뒤 무지개가 떴습니다.

저의 가게 바로 옆 건물입니다. 저기 2층을 볼 때 마다 과연 누가 살고 있을까 의문이 드는 곳입니다.

저의 카페 ‘호미집’ 입니다.

마침 손님들이 계셨는데, 무지개가 떴다고 하자 모두 나와서 사진을 찍는 모습입니다.

저의 카페 부근 건물1층에 거주하고 있는 고양이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쳐다보고 있길래 한컷 찍어 보았습니다.

거의 매일저녁 해바라기씨(꽈즈)를 먹고 있는데요. 이 녀석 ‘니니’는 제가 해바라기씨를 먹을때마다 와서 달라고 합니다. 다른 두 녀석은 안 먹는데, 이 녀석은 해바라기씨를 아주 좋아해서 항상 저랑 함께 하나씩 나눠 먹습니다.

의자에 다리 올리고 잠을 자면 종종 저렇게 함께 잠을 잡니다.
오늘은 간단한 근황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여기는 대학교상권인데, 대학교방학기간이라 조금 한가합니다. 어떤 상점들은 아예 두달동안 문을 닫기도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대만운림雲林의 풍경들

운림현雲林縣은 대만중부, 타이중과 타이난 중간,에 위치를 하고 있는 다른 현縣(한국의 도)보다는 덜 발전된 지역입니다. 주변에 타이중과 타이난, 그리고 짜이 라는 큰 도시가 있어서 여기는 여전히 좀 발전이 더딘 지역입니다. 이런 발전지표는 굳이 도별1인당수입지수 나 경제지표 같은걸 찾지 않더라도, 대형백화점, 대형쇼핑몰, 대기업대리점유무 등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IMAX 영화관도 없어서 인근 도시로 가야 하죠.

이전 일제시대때 관공서로 사용되었던 건물을 그대로 활용하여 스타벅스와 서점이 입점되어 있습니다. 내부를 들어가보면 이전의 소품이나 그 당시 벽면이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가 소방서였는데, 내부에 보면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봉도 있고, 망루도 저렇게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여기 3층 4층 높이면 아주 멀리까지 볼 수 있었을 것 같네요.

여기는 이 설탕공장이 유명했습니다. 일제시절 일본이 이 지역의 사탕수수를 정제해서 설탕으로 만들어 수송을 했던 곳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물자수송을 담당했던 철로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얼마전 태국소개글에도 일제시대때 물자운송을 담당했던 기차사진을 올린 적도 있고, 제가 자주 소개했던 태국 콰이강의 다리에서도 일제시대 물자운송 기차 사진을 올린 적이 있는데요. 하여튼 이 일본 이 녀석들은 힘 믿고 엄청 수탈해 갔죠. 이전에… 다시는 저런 짓 못 하도록 눌러줘야 합니다. 역사는 늘 반복이 되고, 저 녀석들은 언젠가 또 전쟁을 통해 영토확장을 하려 할 겁니다.

지금은 철로만 남아 있고 저 다리위의 철로는 일종의 관광지가 되어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곳이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도 이전에 일본놈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철로도 깔아주고 전기도 놓아 주고 해서 우리가 발전할 수 있었다 로 알고 있었다가 최근에는 완전히 ‘간사한 일본쪽바리 새끼들’ 이라며 일본이야기만 나오면 쌍욕을 하는 상태로 바뀌었습니다.
이전에 일본이 와서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다 라는 dog소리를 하시길래 그때 너무 짜증나서 아버지한테 한바탕 한 적도 있거든요.

여기는 이런 조형물이 있을 정도로 사탕수수가 유명한 지역입니다. 저걸 수탈해 가려고 철로를 깐거죠. 군산에 보면 쌀 수탈해 가려고 철로 깔았듯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일본이 철로를 깐건 한국/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네들 경제적이익을 위해 수탈하려고 깐 것입니다.

그 설탕공장 주변에는 당시 거주했던 일본놈들을 위한 숙소건물이 있습니다. 지금은 형체만 남겨 놓고 보존해 둔 상태입니다.

이렇게 보존이 잘 된 건물들도 있습니다.
이 주변에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를 해서 곳곳에 일본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전 대만에 살았던 사람들은 일본에 대한 반감이 한국/중국처럼은 없습니다. 오히려 본토에서 온 국민당 때문에 더 힘들었다고 하죠.
하지만 한국은 다릅니다. 힘으로 인한 주권침탈을 당했고, 무력으로 공포정치를 했으며 창씨개명, 언어말살 등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없애버리려고 했었죠.
올해 세상을 떠나신 저의 할머니… 제가 아주 어릴때 할머니는 제가 말 안 들으면 항상
“순사가 와서 잡아 간다” 라며 일본순사에 대한 두려움을 늘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 건물은 다수의 인력이 함께 모여살았던 기숙사 건물입니다.
외국으로 인력을 보낼때는 상위관리인도 보내지만 현장관리인력도 함께 보내니까요. 여기는 일반관리인력이 함께 머물던 곳으로 생각이 됩니다.

글 쓰다보니 살짝 열받네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큰 잘 못 중 하나는 전쟁이후 미군정이 통치를 하면서 일제시대 친일파 청산을 못 하고 오히려 그 당시 일제 앞잡이를 했던 세력을 다시 고위관리로 임명한 건데요.
첫단추가 잘 못 끼워진 상태로 지금까지 오다보니 뭔가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 바로 잡기가 너무나 어려워진 상황이 되어 버렸고 청산의 대상이 사회의 권력층이 되어 버린 그런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녹이 쓴 대문입니다.

상상을 해 보면, 이전 일제시대에는 사탕수수밭에서는 많은 농민들이 그걸 수확하고 설탕공장으로 운송을 해서 공장에서는 설탕을 만들어 항구로 실어 나르며 그 주변에는 많은 식당과 술집, 상점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 도시가 지금처럼 넓지는 않았겠지만, 저 설탕공장 주변으로 어느 정도로 형성이 되어 있었을 것이고, 그런 흔적들이 저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보입니다.

주변을 보면 아주 오래전에 사용되었을 것 같은 간판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것들로 부터 당시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측부터… 통조림류, 술담배, 사탕과자류, 소금, 기름 양념류…

어쩌면 당시에는 지금의 편의점 같은 그런 역활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 일본인 거주지역 주변으로는 이런 주택가가 형성이 되어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주택입니다. 딱 봐도 면적이 아주 넓어 보이는 주택입니다. 대도시에서는 땅이 너무나 비싸서 쉽게 볼 수 없는 규모의 단독주택입니다. 서울 방배동에 있는 저런 대형주택을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딴 세상 온 것 같은 느낌이더군요. 당시 집주인이 가장 큰 크기의 TV를 놓아 두었는데, 이쪽 쇼파와 TV간의 거리가 너무 머니까 TV가 작아 보이는 효과?도 있을 정도로 TV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주택들이 개성있고 멋있습니다.

여기 일제시대 주택들지역은 현재는 비어 있고, 가끔 관광객들이 와서 보고가는 곳입니다. 일부러 이걸 보러 운림까지 올 단기관광객은 없겠지만, 운림을 지나간다면 쉬면서 둘러보기에는 괜찮은 지역입니다. 사실 여기 운림은 대만사람들 중에도 와 보지 않은 사람들이 많더군요.
제가 여기서 카페를 열고, 이 지역 이전에 와 본적 있냐고 물어보면 10에 9은 처음 왔거나 왔어도 다른 일이 있어서 잠깐 들리거나 정도지 일부러 무슨 관광을 위해 와 본 적은 없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오히려 기회는 사람들이 많고 이미 발전된 곳보다는 지금보기엔 조금 덜 발전된 곳에서 더 많을 수가 있습니다. 이미 발전되고 포화가 된 곳에서는 더 많은 경쟁과 더 많은 비용, 투자가 수반이 되어야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반면, 아직 덜 발전된 곳은 어느 정도는 아이디어와 희소성, 장기적 안목 등으로도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곳으로 온 이유이기도 하구요.

대만 운림현에서의 생활이 아직까지는 만족스럽습니다. 현재 주변의 가족친척들은 우려했었고, 걱정했었고, 지금도 왜 도시에서 살지 않나? 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는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늘 살아오면서 남들이 ‘보편적’ 이라는 것들에 의문을 가지고, 남들이 ‘평균적’ 이라는 것들에 의심을 가지며 살아 왔습니다. 왜 꼭 남들처럼 살아야 하지? 라는 생각도 많이 해 왔습니다.
SNS에서보면 남들이 하는것 따라하며 살고, 남들이 가지는것, 남들이 하는것 안 하면 뒤처진다고 생각하며 불행해 합니다. 남들처럼 하지 않으면 ‘소속감’을 잃어 버릴 것 같고…
살아보니 굳이 그렇게 안 살아도 되더군요. 내 인생은 내가 설계해서 살면 되는거고, 그 남들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자세히 보면 그다지 현명하지 못 하더라구요.

멋진 편의점, 프렌차이저 점주라도 인생이 고달프고 경제적으로 늘 어려운 사람들이 많죠. 사장입네 라며 살아도 자영업자의 대부분이 사업장을 금방 접습니다.
저도 카페를 열고 벌써 손님이 한자리 수로 온 날이 며칠 될 정도로 잘 될땐 잘 되지만, 안 될땐 지독스럽게 안 되는 것이 자영업이구요. 카페사장? 뭐 부러워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절 부러워 하실 분들은 손님이 없을땐 그냥 저렇게 의자에 기대어 잠을 잘 수 있는 ‘여유’를 부러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손님 없으면 저렇게 기대어서 잡니다.
시골점빵하면서 저런 여유라도 있어야죠. 대도시 편의점 직원과는 다릅니다.
오늘은 설탕공장 일본인주거지역 위주로 소개를 해 보았는데, 다음에는 여기 일제시대 일본군의 군부대숙소건물지역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