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대만에서 카페를 오픈한 이후로 이 지역 행사를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어디에서 살든 그 지역사회와 동화가 되는건 중요하죠.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저 처럼 이 조그만 지역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저런 지역활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참가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12월 24일 이 지역 카페/식당 들이 주가 되는 야외활동이 있어 저도 참가신청을 했습니다.
주최측이 다소 젊은 사람들 위주로 아주 참신하면서도 도전적인 그런 색깔의 행사입니다.
전시회처럼 가게별로 부스를 주최측에서 제공해 주고 각 업주별로 그 부스에서 찾아오는 고객들 혹은 잠재고객들에게 홍보도 하고 교류도 하는 그런 행사입니다.
12월 24일 10시~17시
이 지역이 상대적으로 한국의 읍 정도의 규모라 얼마나 사람이 많이 올지는 모르겠으나, 가끔 여기서 이런저런 행사를 하면 그래도 인근지역 사람들까지 다 와서 구경을 옵니다. 약간 기대는 하고 있는데요.
행사가 열리는 곳은 현재 카페로 운영을 하는 혹은 카페였던 장소입니다. 정원과 건물이 아름다운 그런 카페입니다.
저는 카페건물 앞쪽 공간에 부스를 신청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이동을 하는 길목이기도 하고, 건물이 태양을 가려주어 별도의 가림막도 필요없는 위치일 것 같아서요.
또 대로변에서 들어오는 입구쪽 이기도 합니다.
저의 카페도 마찬가지이지만, 여기도 약간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서 카페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름 오래된 건물의 흔적도 느껴지며 현대식 빌딩내의 카페와는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 꽃이 아름답죠. 그런데 최근에 관리를 안 했는지 가지치기가 안 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쟤가 가지치기를 잘 해 놓으면 상당히 보기가 좋거든요.
반면 맞은편 건물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건물이고, 저 쪽 2층 3층에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 보이는데, 외관만 보아서는 아주 많이 낡아 보입니다.
무튼 이 주택가도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그런 곳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이런 곳을 활용해서 무언가 하려는 모습은 높게 평가를 합니다.
설명회를 하는 모습입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대의 청년창업자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저도 함께 설명을 듣고 의견을 내며 교류를 하는 저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카페의 새끼고양이입니다. 엄청 활발합니다. 저의 니니, 나나 3~4개월때 모습 보는 것 같더군요.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
각자 마음대로 이번 행사로고를 색칠하는데, 저는 市시 에 태극기를 그려 넣었습니다. 제가 그림솜씨가 없어서 좀 못 그린 것 같은데, 이런 곳에는 너무 프린트 한 것 같은 반듯한 태극기 보다는 차라리 이런 느낌이 더 낫습니다.
주최측의 젊은 사람들이 준비를 많이 했더군요. 창업정신으로 이렇게 도전을 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더군요. 기왕 참가비 내고 해 보는것, 이번 활동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카페홍보를 많이 했으면 좋겠지만, 이렇게 젊은 창업정신의 젊은 사람들과 함께 이런 교류를 하는 것 만으로도 저는 좋습니다.
저의 부스를 찾아주시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국적 느낌이 나는 책갈피를 구입해서 저렇게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가끔 저의 손님들 중에 애완동물을 데리고 오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대체로 미리 ‘애완동물 데리고 가도 되냐?’ 고 문의를 주시는데요. 저의 카페에 이미 세녀석의 고양이가 있으니까 당연히 환영입니다.
최근에 손님중에서 족제비를 데리고 왔더군요.
족제비가 오니 저의집 고양이들 난리가 났습니다. 나나(바닥의 회색)는 밥 달라고 할때만 하는 저 자세까지 해 가며 족제비를 보고 있습니다.
저의 카페에서는 여포인데, 막상 다른 동물들 오면 겁이 엄청 많습니다. 큰 녀석 호미는 원래 처음 입양할때부터 겁이 엄청나게 많은 녀석이라 이해를 하겠는데, 작은 두녀석은 평소에는 뭐든 다 공격하는 맹수처럼 보였지만, 다른 동물이 카페에 오면 완전 겁쟁이모드 입니다.
겁쟁이모드를 동영상으로 올려 봅니다.
그래도 손님들이 족제비를 꺼내서 더 적극적으로 저의 고양이들과 교류하게 해 주려 해서 감사했습니다.
한국에서 호미를 처음 입양했을때, 호미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두려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죠.
“나는 호미가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호미가 좀 더 많은 사람, 좀 더 많은 동물들과 교류해서 사회성을 키우길 바랍니다.
저의 작은 두녀석도 마찬가지로 올해 4월 입양한 뒤로 혹시라도 집 안에서만 자라면 바깥세상의 모든 것을 두려워 하는 고양이가 될 까봐 어릴때는 주기적으로 안고 바깥에 데리고 나와 바깥의 소음도 느끼게 해주고 또 다른 풍경과 냄새도 맡게 해 주었습니다. 최근에는 이 녀석들이 커서 안기는걸 너무나 싫어해 좀 뜸하지만, 우리 고양이들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회성이 좋은 고양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있습니다
이 주인분도 족제비를 오냐오냐 키우지 않고, 저의 고양이들과 계속 교류를 하게 해 주더군요.
중국에 가보면 소황제 라고 해서 부모 2명, 조부모 4명이 자식 1명을 너무나 총애하고 오냐오냐 해서 키우다 보니 이 자식이 사회성이 없어지죠. 그러다보면 자식을 부모품에서 떠나 보내지 못 하고, 이 자식은 사회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경험축적이 안 되는 겁니다. 비단 중국소황제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모습이죠.
무튼 그런 족제비로 키우지 않겠다는 주인의 의지가 느껴집니다.
제가 부산에 살 때 집이 마당이 있는 주택이었는데, 어느날 족제비 한마리가 마당으로 들어왔죠. 당시 저의 집에 강아지 2녀석이 있었는데, 한 녀석의 이름은 ‘누렁이’. 이 녀석이 평소에는 엄청 순둥순둥 했는데, 족제비를 보자 엄청 공격을 하더니 결국 족제비가 마당의 창고건물 안으로 들어가 숨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저의 집 세입자 아저씨가 쌀포대로 족제비를 잡아 고아 먹었습니다. 당시 어린이였던 저에게는 ‘허리를 다쳐서 먹는다’ 라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뭐 정력제 라고 생각해서 먹었을 것 같네요.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그 족제비를 삶는데 비린내가 심하게 났었다는 겁니다.
저 손님에게 물어보니 족제비를 집에서 키워도 큰 문제는 없다고 하네요. 방에 풀어 놓아도 잘 놀고… 파충류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고,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고, 유튜브를 보면 더 다양한 동물들을 집에서 키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의 집들은 대부분 이런 모습입니다. 저의 카페 맞은편 건물도 저런 기와지붕이죠. 그냥 시골마을입니다. 한집건너 한집이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이고, 최근에는 농사를 직접 짓지 않아도, 이전에는 농경관련 일을 하셨던 어르신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와중에는 간혹 젊은 30대 40대도 보이긴 합니다.
어제 보니까 저의 카페골목에서 마을입구쪽에 무슨 대형천막을 쳐 놓고 행사를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그 곳에 작은 절이 있어서 종종 절에서 행사를 하거든요. 또 이번에 절에서 행사하나 보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평소 항상 지나다니는 집이었는데, 거기 할머니께서 별세를 하셨더군요. 대략 한달사이에 저의 마을에서, 한번은 가게 오른쪽편집, 이번엔 가게에서 왼편집, 2~3주전인가?는 한골목 돌아서 모퉁이에 있는 집의 어르신이 별세를 하셨습니다. 한달(아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여 만에 마을의 3명의 어르신이 별세를 한 건데요.
가뜩이나 여기도 인구가 감소하고 빈집이 곳곳에 많은데, 한달여만에 골목길 하나를 두고 3명의 어르신이 별세를 하셨네요. 평소 그 분들이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셨거든요.
지난번 카페 오른편 집에서 상을 당했을때도 그 앞의 절에서 하는 행사인가 하고 가보니 초상을 치르고 있어서 순간 급숙연해졌었거든요.
저는 살짝 당황했었는데, 정작 유족들은 호상이라면서 웃고 저에게 말도 건네주고 해서 이야기 많이 하다가 왔습니다.
이번에는 위의 사진처럼 왼쪽편의 집에서 어르신이 상을 당하셨습니다. 도시에 살면 한 아파트, 혹은 이웃이 상을 당해도 집에서 장례를 치르지 않기에 상을 당했는지 알 수가 없는데, 이런 시골마을은 집앞에 크게 천막을 펼쳐놓고 장례를 지내니까 바로바로 알 수가 있어서 더 체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장례를 치르는 빈도는 도시의 나의 집 부근이 더 많을지는 몰라도, 도시에서는 이웃이 장례를 치르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저도 이런 시골에 온지 대략 일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최근에 갑자기 추워지고 기온차가 많이 나서 그런건지 어르신 사망이 3건이나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 죽음을 논할 그런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은 하는데,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너무나 큰 후회는 하지 않고 미련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살려고는 하고 있습니다.
대만에서 스트라이다동호회 사람들과 오랫동안 교류하며 스트라이다를 타오고 있습니다. 타이베이에 있을땐, 저 동호회사람들과 자전거 자주 탔었죠.
올해는 타이중지역 자전거를 타기도 했습니다. 아래에 유튜브링크 걸어봅니다.
대만 각 지역에서 제가 살고있는 운림고속철도역까지 기차를 타고 와서 자전거라이딩을 시작했습니다. 저도 저 때 부터 참가를 하고 싶었는데, 이 앞에 고양이에게 할퀴어져 병원가서 파상풍주사 맞고 하던 순간이 마침 이 분들이 여기 모이는 순간이라 저는 부득이 처음부터 참가를 하지는 못 했습니다.
최근 운림지역의 기온은 온화합니다. 아침/밤에는 약간 쌀쌀함을 느끼는 기온이지만 대체로는 온화한 날씨라 야외활동하기에 딱 좋습니다. 주변에 꽃들이 만개를 해서 꽃향기도 많이 흩날립니다.
여기 운림현의 명물중 한 곳이 호미의 철로에서도 기념사진을 찍었네요.
그런다음 특별히 저의 카페까지 오셔서 음료도 한잔씩 주문을 하셨습니다.
모두다 저 달고나라떼 맛있다고 극찬을 해 주셨습니다. 대만에서 처음 먹어 보는 맛인데, 너무 맛있어서 집에 싸서 가져가고 싶다고들 하시더군요.
오후에는 제가 가이드를 해서 이 지역에서 유명한 식당에 가서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저는 여기 동호회활동을 대만에 처음 왔을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있거든요. 중간에 대만을 떠난 적도 있었고, 매번 활동을 다 참가하지는 못 해도 단체대화방에서 꾸준히 교류는 하고 있습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함께 동호회활동을 하는 건 좋죠.
그런데 가끔 한국의 커뮤니티의 글들을 보면…
나이가 얼마 이상인데, 동호회나가면 민폐 아닐까요? 나이가 얼마 이상인데 동호회 참가하면 이상하게 볼까요? 라는 글들이 있는데, 나이가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저는 이런 모임에서 나이 물어보지도 않고, 나이엔 별 관심이 없거든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이런저런 인생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그렇지 않으면 이런 사회모임의 지인들도 필요하고, 이런 모임을 통해 사람들과 교류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더군요.
저의집 고양이덕분에 대만에서 파상풍주사를 맞았습니다. 오전에 카페 오픈준비를 하느라 잠시 카페문을 열어놓고 있었는데, 그 잠깐사이에 저의 호미가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3층 전층을 다 뒤졌으나 없더군요.
이럴땐 중요한 것이 어찌할바를 몰라해야 하고, 당황해야 하며, 허둥지둥해야 합니다. CCTV 기록을 확인했죠. 잠깐 몇분 사이라서 몇분전 영상을 보니 이 녀석이 슬금슬금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찍혔더군요. 이 때 부터 영상의 방향으로 저와 아내가 동시에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두세번은 둘다 못 찾았습니다. 안 보이더군요. 저의 카페 바로 옆 건물인데 저렇게 폐허로 된 건물이 있습니다. 왠지 동선상 저기 있을 것 같더군요. 저 집안쪽으로 들어가서 호미를 발견하고 찾아 왔습니다. 녀석이 놀랐는지 제가 안으려고 하자 격렬히 반항하고 저를 공격하더군요. 물리기까지 했습니다.
여기 야외에서 놓치면 다시 못 찾는다는 마음으로 물리든 할퀴어지든 저도 격렬하게 안았습니다.
호미를 찾는 동안 마음속으로 오만가지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도 오래 함께 했었다고 ‘공허’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반드시 찾는다는 마음으로 이동예상동선을 따라 하나하나 뒤져가며 추적을 했습니다. 추적끝에 눈이 마주쳤죠.
특히 오른손을 많이 다쳤더군요. 그렇게 찾고 나니 이 녀석이 뭘 했는지 온 몸에 흙투성이고 악취도 나고 해서 저의 고양이들 가는 동물병원에서 목욕을 한 번 시키기로 하고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병원에 가서 파상풍 주사를 맞았습니다. 의사분께서 상당히 친절하고 꼼꼼하게 치료를 해 주시고 파상풍주사도 안 아프게 잘 놓아 주시더군요. 한국의 의사들은 대체로 돈이 안 되는 손님은 대충 본다는 그런 인식이 있어서인지 상처치료를 흡사 학교다닐때 양호선생님이 해 주는 것처럼 꼼꼼하게 직접 해 주시더군요.
무엇보다 놀라운 건, 제가 대만의료보험카드가 있는데, 파상풍+병원치료는 150대만달러(6000원) 그리고 약국에서 먹는약 바르는약은 돈을 받지 않더군요. 보험료에 다 포함이 되어 있다고…
6000원이면 싼 거 아닌가요?
제가 2015년도에 파상풍 주사를 맞았다고 하자, 5년 지났으니까 안전하게 다시 한 번 맞으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2015년도에는 호주에서 파상풍주사를 맞았었거든요.
2015년 호주 에 있을때, 쓰레기봉투내에 있는 깨진유리병에 손이 찢어져서 병원에 갔었죠. 기억은 나지 않지만 병원치료비가 꽤 비쌌던 걸로 기억납니다. 그때 세바늘인가 꼬매기도 했습니다. 사진처럼…
더 놀라운 건…
그 당시 간호사가 한국분이었거든요. 저에게 “여기서 오래 근무를 했는데 한국분은 처음 봤습니다. 여기는 중국계 사람들이 많은 곳인데 어떻게 여기서 한국분을 만나네요” 라면서 오히려 그 간호사분이 더 놀라시더군요.
그러면서 상처 꼬매는날 저에게
“며칠뒤 의사가 붕대 교체해야 한다고 오라고 할 때 저에게 연락을 주세요. 여기 붕대 하나 교체하고도 돈 엄청 비싸게 받아요”
라고 해서 사진처럼 병원 밖 공원벤치에 앉아 붕대를 교체해 주었습니다. 무료로…
딱 저렇게 붕대만 새걸로 교체를 해 주는데 돈을 엄청나게 받는다고 같은 한국분이고 여기서 근무를 하면서 처음 한국분을 만나는 거라 도와주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저 당시에는 또 경황이 없어서 그저 고맙다는 인사만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지금 마음같아서는 찾을 수만 있다면 식사대접이라도 해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세월이 좀 지나서 이제는 저 병원에 안 계실 수도 있겠네요.
최근 두번 맞은 파상풍주사를 모두 해외, 한번은 호주,이번엔 대만에서 맞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호미를 찾고 있던 그 순간 만감이 교차를 하더군요. 평소에 늘 함께하던 저의 고양이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간절히 느끼게 되었고, 앞으로는 카페문을 열어 놓을때 좀 조심을 해야 겠습니다.
체스판도 목재로 만들어져 있어, 실제로 보면 싸구려 느낌이 나지 않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저의 카페손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고, 지난번 말레이시아소녀의 선물 이후로 참 기분이 좋습니다.(보러가기) 선물은 줄때도 기분이 좋다고 하지만 받아도 기분이 좋네요.
저 친구가 미국에서 이공계쪽 박사과정 밟으면서, 지금은 국비로 대만에서 영어도 가르치며 중국어도 배우고 있는데요.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뭔가 체계적이고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단어를 하나 암기하더라도 수식표를 만들어서 그걸로 암기를 하고, 무언가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면 엄청 체계적으로 깊이있게 파고드는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박사과정을 밟는 거겠죠. 저에게 이전 체스세계챔피언이었던 소련사람이 쓴 책도 pdf파일로 보내 주고, 유튜브채널, 체스강의 싸이트도 알려 주더군요. 체스강의싸이트의 경우 기물의 이동에 따른 승리확율도 실시간으로 계산을 해 주어서 내가 이동한 수가 좋은건지 나쁜건지도 바로바로 알려주어 좀 더 체계적으로 학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유치원생때 장기를 배울때는 그저 주변 어른들로 부터 어깨너머, 훈수, 사람대사람 이런 식으로 장기를 배운 것에 비하면 지금은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한국장기, 중국식장기에 이어 이제는 서양식체스를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7년전에 대만친구와 대만장기를 둔 사진입니다. 결과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제가 이겼을 것 같습니다.
늦은 오후… 또 저녁시간이 다가 옵니다. 대만의 시골은 춥고 먹을 것이 없어 오늘도 카페 뒤편 논밭 주위를 돌아다니며 뭔가 저녁거리로 먹을 만한 동물/식물이 있나 찾아 봅니다. 이미 많은 논에서는 추수를 마쳐서 벼이삭 서리도 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저의 마을 빈집에 저렇게 호박넝쿨이 있어 혹시 호박이라도 있나 싶어 찾아 보았지만 이미 누군가가 다 가져 갔습니다.
마침 바나나가 열려 있는데, 당장 오늘 저녁거리로 서리를 하기엔 너무 녹색입니다. 아직 숙성이 되지 않아 먹을 수 없습니다.
요즘 이 지역에는 귤이 한창입니다. 허기진 마음에 귤이라도 서리를 하려 했으나, 농장에 주인어르신이 일을 하고 있네요. 실패.
저녁거리를 구하지 못 하면 집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각오로 논밭, 농장을 둘러 보던차에 마침 도로에 새 한마리가 움크리고 있습니다. 야생의 새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 이죠. 하지만 사냥은 늘 어려운 법. 위의 저 지점부터 한참을 따라 갔습니다. 원시인류가 동물을 사냥할 때 상대우위에 점할 수 있었던 건 ‘땀샘에서 체온을 낮추며 계속 사냥감을 쫓을 수 있는 지구력’
논의 가운데까지 따라 와서 결국 사냥성공.
은 농담이구요. 새가 좀 불편해 보여서 혹시 다친 건 아닌지 확인해 보았습니다. 혹시 다친거라면 치료를 해 주려구요. 제가 대략 5년전쯤 타이베이에서 참새새끼 구해서 살리려고 동물병원까지 데리고 갔으나 병원에서도 살리지 못 했다는 이야기를 차이컬쳐에 올린 적이 있는데요.
만약 상처가 있다면 치료를 해 주려 했는데 잡고 보니 상처는 없고 그냥 고령으로 기력이 쇠약해 진 것 같았습니다. 이런건 어쩔 수 없죠.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수 밖에… 제가 도와 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저의 유튜브채널 쇼츠를 링크했는데 쇼츠는 영상삽입이 안 되는 것 같네요. 그래서 다시 링크로 걸어봅니다. 새 잡는 영상 보러가기
이제는 자연에서 자연사를 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인 것 같아 논 옆에 놓아두고 왔습니다.
최근 저의 카페주변 논은 추수가 한창입니다. 저의 카페에서 가장 가까운 논이 약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요. 어제 보니 그 논도 추수를 마쳤더군요.
가끔 늦은 오후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바퀴 도는데요. 사진처럼 주변이 온통 논밭, 농장이라 풍경이 좋습니다. 카페 손님이 적을때 이렇게 자전거로 마을을 돌아보곤 합니다.
대만에서 한국인이 주인인 카페에서 미국인 2명이 중국장기를 두는 뭐 그런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현장입니다. 며칠전 미국인 단골손님과 중국식장기를 두었다고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요. 이번에는 그 친구가 다른 미국인친구와 중국식 장기를 두려고 지난번 소개 이후, 저의 카페에 다시 왔습니다.
둘다 이제 갓 장기를 배운 초보라서 며칠 먼저 배운 초보가 이기긴 하더군요. 흥미로운 건 장기를 두는데 체스시계를 켜 두고 눌러가며 장기를 두더라구요. 한국에서 저렇게 장기를 두면서 시계 눌러가며 장기두는 모습은 전 본적이 없거든요.
확실히 외국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다 보면 기존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보게 되고 이런 것들이 발상의 전환을 하는 토대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어릴때부터 다양한 나라에 가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것이 사고를 유연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겁니다.
한분야의 전문가도 가끔 초보자들이 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한다고 하죠. 초보자들은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이 없어 기존의 고인물이 생각하지 못 하는 그런 방법도 시도를 하거든요.
장기를 처음 배워 두는데, 저 미국인친구는 包포를 처음부터 병 사이에 위치를 시키더군요. 아~~ 물론 중국식장기의 병/졸은 초반에 좌우로 이동하지 못 하고 중앙의 강을 건너야만 좌우로 움직일 수 있긴 합니다. 그리고 포도 한국장기는 다른 기물을 뛰어 넘어야 이동이 가능하지만 중국식장기는 또 다릅니다. 그럼에도 초반에 포를 너무 막 다루다가 2개의 포를 다 잃고 나니 게임이 급격하게 기울어 버리더군요. 장기에서 포가 아주 중요한 기물이거든요.
장기에서 포는 삼국지의 여포에 비유를 합니다. 여포는 삼국지에서 무력이 100에 가까운, 관우와 장비가 함께 붙어도 안 된다는 전투력 하나만 놓고 보면 탑인 장수입니다. 물론 장기에서는 차車의 점수가 가장 높긴 하지만 어떨땐 포가 없으면 수비/공격을 동시에 해 내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차이컬쳐에서도 소개를 해 드린 적이 있지만 삼국지의 장수로 비유하는 장기기물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차車 관우 포包 여포 마馬 마초 상象 조자룡 사士 진궁
이구요. 장기에서 차의 점수가 훨씬 높긴 하지만, 포는 수비/공격 을 동시에 하면서 초반에 포가 하나라도 없으면 차를 잃은 것 보다 더 전체 흐름이 불리해 질 수도 있습니다.
저의 카페에서 인기있는 음료가 달고나라떼인데요. 달고나는 제가 직접 만들어서 라떼로 만듭니다. 그래서 가끔 저렇게 모양을 내기도 하는데, 저 이웃집꼬마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서 뽑기를 해서 가지고 왔네요.
제가 어릴때는 동네 공터에 저 달고나 하는 아저씨가 꼭 있었습니다. 부산에서는 쟤를 달고나라고 하지 않고, ‘쪽자’ 라고 했습니다. 집 앞 공터가 있었는데 거기에 쪽자아저씨가 오면 그걸 해서 먹곤 했었죠.
요즘 오징어게임 때문에 저 달고나가 대만에서도 인기가 있는데, 이번주에 ‘오징어게임 챌린지’ 가 에피소드5까지 나와서 다 보았습니다.
저의 카페에는 하트와 원형틀이 있어서 두 종류만 만들어 보았습니다.
저도 한 번 뽑아 보려구요.
아주 어릴적에 해 본 것이지만 이상하게 몸이 기억을 합니다. 그리고 그 어릴때 만들어 먹던 그 맛도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머리속에 뭔가 각인이 된건지, 아주 오래전에 먹었던 맛 이나, 냄새 등이 30년, 40년이 지나서도 기억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번주에 여기 우체국택배 직원이 물건을 하나 주고 갔는데, 그 분 몸에서 제가 초등학생 중학생때 유행했던 프로스펙스, 르까프 이런 신발의 좋은 향 냄새와 똑같은 냄새가 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 냄새와 똑같더군요.
카페에 가스버너가 없어서, 휴대용 가스버너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첫번째는 화력조절 실패… 두번째 부터는 쉽게 만들어 지더군요.
평소 음료용 달고나는 냄비에 대량으로 만듭니다. 저렇게 국자에 만들지 않습니다.
원형은 성공을 했습니다. 먹어보니 맛도 좋네요.
카페하면서 달고나 엄청 만들고 있습니다. 가장 인기음료이기도 해서요.
그런데 지난번 한국들어가서 달고나라떼를 파는 곳이 있어 한번 시켜 보았는데, 달고나는 없고, 그냥 달고나 부스러기만 위에 올려 두었더군요.
그리고 달고나도 보니까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마트에서 파는 그런 제품인 것 같았습니다. 제가 처음 달고나라떼를 준비할 때 마트용도 하나사서 맛도 보고 만들어 보았는데요. 제가 기대하던 그런 달고나 맛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걔는 배제를 했습니다. 그냥 제가 만드는 것이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전통 이전의 그 달고나 맛이 납니다. 그리고 저는 달고나 저렇게 깨작깨작 부스러기만 올리지 않습니다.
저는 라떼 안에 이미 저 정도는 넣어주고, 위에 큰 달고나를 추가로 올려 줍니다. 그렇게 해야 최소한 ‘달고나 맛’ 이라도 나거든요. 가끔 어떤 음료들 보면 0.1% 성분 넣어두고 그 이름을 크게 박아넣어 파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어떤 경우에는 기만에 가깝죠.
참치라면을 끓였는데, 참치는 커피스푼으로 한스푼 넣어 놓고 참치라면 이라고 하면 그건 군대에서나 하는 기만행위 입니다.
아무튼… 최근 오징어게임챌린지 가 넷플릭스에 올라왔길래, 달고나 틀모양을 한번 만들어 이웃꼬마에게 주었습니다.
저의 카페 단골손님인 미국인 학생인데요. 중국식장기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 왔더군요. 그래서 오랜만에 장기알을 만졌습니다.
중국장기는 아주 이전에 중국에서 몇 번 두어 보고는 처음인데요. 오랜만에 보니까 살짝 또 헷갈리더군요.
그리고 이 친구가 서양식장기를 배워보지 않겠냐고 해서 처음으로 배워 보았습니다. 서양식장기, 체스는 그동안 관심은 조금씩 있었는데 배울 기회가 전혀 없었거든요. 그래서 급하게 말이 가는 길만 배우고 한 번 두어 보았습니다.
참고로 저는 한국장기는 조금 두는 편입니다. 너무나 어릴때, 한글을 배우기전 장기를 먼저 배웠습니다. 그래서 주변 어른들은 저의 적수가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또, 초등학생 정도되는 아이가 주위 어른들을 장기로 다 이겨 버리니 신기해서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며 장기를 많이 두었죠.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자대배치 받고 거의 말년병장이 장기 둘줄 아냐고 물어보길래 안다고 하니 남들 점호준비할때 장기나 두자고 하더군요. (어찌나 눈치가 보이던지요. 자대배치 갓 받은 신병이었거든요)
장기를 두었는데, 그 고참의 사士 2마리와 졸 몇 개 잡고 외통수로 이겨 버렸죠. 제 기준으로는 실력이 많이 낮았습니다 그랬더니 (농담으로) “누구야(장기 엄청 좋아하는 다른 병장) 신병이 빠져가지고 고참을 이긴다” 하더군요. 당시에는 깜짝 놀랐죠. 나중에 알고 보니 농담으로 저렇게 이야기를 했다는걸 알았습니다만…
그래서 그 때 부터 고참들과 장기를 두었는데, 대부분 제가 이겼습니다.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서 조금씩 아슬하게 져 주기도 했었죠. 그래야 다른 일 안 하고 편하게 장기나 둘 수 있었거든요.
처음 체스 기물을 옮기고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룰을 잘 모르고 기물의 이름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한 번 두어 보았습니다.
그렇게 장기를 잘 둔다는 소문이 나니까, 중대장이 장기두자고 해서 중대장실 불려가서 장기도 두었죠. 근무 나가야 하는데, 근무 안 나가고 장기 둔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 기율경이 있었는데, ‘중대장 한테는 조금씩 져주면서 해라’ 라고 귀뜸도 해 주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장기는 좀 둔다고 이야기를 들었었죠. (물론 아마추어 일반인 대상이죠)
제가 초등학생때 삼촌이 직장동료중에 장기 단급이 있는 그런 분이 있다며 저를 데리고 가서 장기를 두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시절 장기로는 기고만장, 안하무인, 득의양양, 망자존대 하던 시절이라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랐죠. 당시에는 잘 둔다는걸 으시대기 위해 일부러 상대가 기물을 옮기고 나면 바로 옮기거나, 옆에 있는 과일이나 먹으며 신경 안 쓰는 듯 딴청 피우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다 어느날 저녁, 삼촌의 집 근처 어느 가정집에 가서 그 사람과 장기를 두었습니다. 어른들과 진 적이 많이 없어서 그 때도 이길거라 생각하고 갔었죠. 그런데, 이건 완전히 차원이 다른 실력이 더군요. ‘벽’ 이라는걸 그 때 처음 느끼고는 장기에 대한 겸손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왜 겸손해야 하냐면요…
저 미국친구는 저 중국식장기가 저 날이 두번째 였고, 저는 중국식장기가 오랜만이긴 해도 한국장기의 짬밥이 있으니 가볍게 이길거라 생각했었죠. 그런데 첫판을 제가 졌습니다. 진 이유는 왕과 사의 이동이 한국장기와 중국장기는 다른데, 그걸 착각하고 장군을 치면 대각선으로 피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중국식장기에서 왕은 대각선 이동이 안 되는걸 알게 되었죠. 착각을 해서 졌습니다. 그래도 진건 진거니까요.
그런데 서양장기, 체스는 첫판을 제가 이겼습니다. 당연히 실력으로는 제가 지겠죠. 그런데 저 친구도 착각해서 제가 장군때리는 것에 외통수 걸렸습니다.
당연히 실력으로라면 중국장기는 제가 월등하고 체스는 저 친구가 월등하죠. 체스는 2판을 두었는데, 그럼에도 제가 쉽게 물러 나지 않자, 장기에 대한 기본 머리가 있어서인지 처음 두는것 치고는 힘들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오랜만에 장기를 두니까 재미 있었습니다. 요즘 세대 사람들은 장기, 바둑 보다는 컴퓨터게임을 더 하겠죠. 각자 연습해서 며칠뒤 다시 붙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 와는 별개로… 태국에서도 장기를 두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요. 도대체 저 분들은 병뚜껑으로 어떻게 장기를 두는건지 정말 궁금하더군요.
혹시라도 뭐가 적혀 있나 싶어 봤는데 딱히 뭐가 적혀 있는것 같지도 않았거든요.
여행 다니다보면 아래 사진처럼 동네에서 장기를 두는 주민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런걸 볼때면 저런 여유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장기도 좋아하고 조기축구도 좋아했는데, 많은 것들을 직장 구한다고 서울가서 살면서 포기했던 것 같습니다.
서양식장기 체스는 처음 두었는데, 나름 재밌더군요. 체스하면 또, 최근에 보았던 넷플릭스 드라마 The Queen’s Gambit 이 생각나죠. 여 주인공이 은근히 매력적입니다. 그 미국친구가 또 온다고 했으니, 체스 연습 좀 해야 겠습니다.
참고로 저 미국친구는 미국에서 엔지니어계열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친구인데, 뭔가를 배우고 머리쓰는걸 엄청 좋아하더군요. 국비장학생으로 대만와서 학교에서 영어가르치고 있는데, 중국어도 엄청 열심히 배우고 있고, 최근에는 다른 아시아 언어도 배우고 있으며, 이야기를 나눠보면 새로운 걸 배우고 해 보는 것에 엄청 적극적이더군요. 이번주 주말에는 마라톤 풀코스도 참가를 한다고 하더군요.
책상에 앉아, 책만 보고 암기만 하는 그런 형태보다는 저 친구처럼 해외에서 생활도 하면서 직접 접해 보고 경험하면서 지식/경험을 함께 쌓아 나가는 것이 더 좋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