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나모양내서 이웃집 꼬마에게 선물로 줬더니…

저의 카페 이웃꼬마에게 달고나를 만들어 선물로 줬는데, 그걸 또 뽑아서 가지고 왔더군요.

저의 카페에서 인기있는 음료가 달고나라떼인데요. 달고나는 제가 직접 만들어서 라떼로 만듭니다. 그래서 가끔 저렇게 모양을 내기도 하는데, 저 이웃집꼬마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서 뽑기를 해서 가지고 왔네요. 

제가 어릴때는 동네 공터에 저 달고나 하는 아저씨가 꼭 있었습니다. 부산에서는 쟤를 달고나라고 하지 않고, ‘쪽자’ 라고 했습니다. 집 앞 공터가 있었는데 거기에 쪽자아저씨가 오면 그걸 해서 먹곤 했었죠.

요즘 오징어게임 때문에 저 달고나가 대만에서도 인기가 있는데, 이번주에 ‘오징어게임 챌린지’ 가 에피소드5까지 나와서 다 보았습니다. 

저의 카페에는 하트와 원형틀이 있어서 두 종류만 만들어 보았습니다. 

저도 한 번 뽑아 보려구요.

아주 어릴적에 해 본 것이지만 이상하게 몸이 기억을 합니다. 그리고 그 어릴때 만들어 먹던 그 맛도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머리속에 뭔가 각인이 된건지, 아주 오래전에 먹었던 맛 이나, 냄새 등이 30년, 40년이 지나서도 기억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번주에 여기 우체국택배 직원이 물건을 하나 주고 갔는데, 그 분 몸에서 제가 초등학생 중학생때 유행했던 프로스펙스, 르까프 이런 신발의 좋은 향 냄새와 똑같은 냄새가 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 냄새와 똑같더군요.

카페에 가스버너가 없어서, 휴대용 가스버너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첫번째는 화력조절 실패… 두번째 부터는 쉽게 만들어 지더군요.

평소 음료용 달고나는 냄비에 대량으로 만듭니다.  저렇게 국자에 만들지 않습니다. 

원형은 성공을 했습니다. 먹어보니 맛도 좋네요.

카페하면서 달고나 엄청 만들고 있습니다. 가장 인기음료이기도 해서요.

그런데 지난번 한국들어가서 달고나라떼를 파는 곳이 있어 한번 시켜 보았는데, 달고나는 없고, 그냥 달고나 부스러기만 위에 올려 두었더군요.

그리고 달고나도 보니까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마트에서 파는 그런 제품인 것 같았습니다. 제가 처음 달고나라떼를 준비할 때 마트용도 하나사서 맛도 보고 만들어 보았는데요. 제가 기대하던 그런 달고나 맛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걔는 배제를 했습니다. 그냥 제가 만드는 것이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전통 이전의 그 달고나 맛이 납니다. 그리고 저는 달고나 저렇게 깨작깨작 부스러기만 올리지 않습니다. 

저는 라떼 안에 이미 저 정도는 넣어주고, 위에 큰 달고나를 추가로 올려 줍니다. 그렇게 해야 최소한 ‘달고나 맛’ 이라도 나거든요.  가끔 어떤 음료들 보면 0.1% 성분 넣어두고 그 이름을 크게 박아넣어 파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어떤 경우에는 기만에 가깝죠.

참치라면을 끓였는데,  참치는 커피스푼으로 한스푼 넣어 놓고 참치라면 이라고 하면 그건 군대에서나 하는 기만행위 입니다. 

아무튼… 최근 오징어게임챌린지 가 넷플릭스에 올라왔길래, 달고나 틀모양을 한번 만들어 이웃꼬마에게 주었습니다. 

태국시골의 가정집형태의 반야외 건축설계사무소 찾아간 이야기

태국시골의 어느 건축사무실에 가서 상담을 받아 보았습니다. 시골의 건축사무실이라 건물 아래의 반야외 사무실입니다. 사무실이 반드시 빌딩의 실내여야 한다는 건 또, 도시에 사는 우리의 선입견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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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고 있는 대만도 그렇고, 저기 태국도,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시골지역에서도 저렇게 오래된 건물들을 개보수 하거나 새롭게 현대식 건물로 지어서 좀 더 편하게 생활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골지역에 가 보면 건물 저렇게 잘 지어놓은 걸 종종 볼 수 있는데요. 

보통 집을 지어 올리려면 땅이 가장 큰 문제이고, 땅 값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싸고 넓은 땅이 있으니, 도심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저런 널직한 주차장이 있는 주택을 지을 수 있는 겁니다. 서울에서도 좀 오래된 아파트나, 빌라에서는 또 주차문제가 큰 스트레스죠. 어떤 분들은 생활패턴이 주차자리에 의해 좌우된다 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주차장소 때문에 왠만하면 차끌고 안 나가거나 일찍 들어온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북미의 주택가 가면 주차장 있는 차고 주택이 부럽습니다.

일반 주택이 아니더라도, 위의 사진처럼 주택+카페(영업가게) 등을 새롭게 지어서 주거도 하면서 내 건물에서 상업활동도 하는 귀농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사실 이런 경우가 가장 부러운 경우이죠.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여기 대만의 마을주민 중에도 도시에서 살다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여기 고향으로 돌아와서 저런 식으로 건물을 아주 현대적으로 지어 주거도 하면서 한켠에서는 영업도 하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내는 이런 비용중에는 ‘땅’ 에 지불하는 비율이 높은데, 이렇게 땅이 있으면 그 비용을 확 줄일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골지역에서도 건축사무소가 있고, 첫번째 사진처럼 시골지역에 특화?된 시골스러운 사무실에서 영업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겁니다. 

제가 찾아갔던 건축설계사무실은 저기 보이는 가정집의 1층부분에 있었습니다. 저기다가 컴퓨터, 프린터 및 각종 사무집기를 두고 영업을 하고 있더군요. 
얼핏생각하면 저런 곳에서 영업하고 있으면 믿을 수 없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오히려 도심의 이상한 사무실에서 책상 하나 컴퓨터 하나 두고 하는것 보다야 더 신뢰가 가죠. 왜냐하면 저기는 자기땅에 자기집에 자기가족들이 다 2층에서 생활하는 곳에서 영업을 하는 거니까 일단 신분보장은 확실합니다.  

저기 보시면 갓 걸어 말리고 있는 빨래들도 보이고, 주방용품들도 보입니다. 가스통도 있구요.

여기도 설계견적도 받아 보았는데, 설계견적디자인 비용을 미리 받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설계디자인 비용은 받았다가 만약 계약이 진행되면, 설계디자인비용은 돌려 주는 보증금 형태더군요.

도시에서 설계사무소 하면 도심빌딩속만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런 태국시골에서는 이런 형태의 사무실도 있다는 걸 소개해 보았습니다. 코로나팬데믹 이후 사무실의 정의와 근무형태의 변화가 찾아 오긴 했죠. 

저도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라 노트북 펼칠 곳만 있으면 업무공간이 되기는 합니다. 태국친구 시골집에서 며칠 머물렀는데, 제가 방으로 사용했던 목조시골집 2층 저 공간에는 전등이 없더군요. 그래서 휴대하고 있던 스탠드를 키고, 테이블 같은 것이 마땅치 않아 생수팩을 놓고 컴퓨터를 했는데… 불편하죠. 허리 아프고…

전체가 목조건물이고 바닥도 목재라서 저렇게 아래층이 나무 사이로 보이는 형태입니다. 친구부모님 방이 나무틈 사이로 보이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태국친구 및 부모님, 언니, 여동생부부등이 밤에 일찍 잠을 자는데, 제가 컴퓨터 하거나 화장실 간다고 나무바닥을 밟으면 소리가 집안 전체에 크게 나서 조심조심 생활했습니다. 

당시 제가 머물렀던 2층 공간입니다. 모기장 안에서 머물렀죠. 시골간다고 전자모기향 2개를 가지고 갔었으나, 저렇게 넓은 공간에서 전자모기향은 무용지물 입니다. 그리고 벌레도 엄청 많고, 실내에 먼지도 많습니다. 낮에는 창문을 다 열어 놓으니까요. 그럼에도 저에게는 저런 곳에서 며칠간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태국친구와 자매들에게 물어 보았죠. 왜 이 오래된 집을 좀 현대식으로 개조하지 않냐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일단 경제적인 여유가 없고…

그리고 또 부모님이 돈이 조금 생기면 농지를 더 사지 집을 편하게 개조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해 드리면…  땅은 사 두면 나중에라도 오를 수도 있고, 농지는 거기서 수확을 해서 수입을 발생시킬 수 있죠. 그런데 집은 짓는 순간 그 때부터 감가가 발생이 되어서 계속 집의 건물가치는 떨어집니다. 그리고 건물은 유지보수비용도 들어가구요. 그래서 저런 시골어르신들은 평생 저렇게 살아 왔으니 그냥 저렇게 사시는거죠. 그럼에도 도시에서 살다 가끔 오는 딸들은 불편하고, 온수가 없어서 온수기를 사서 설치를 한 적도 있는데, 부모님은 온수기에 들어가는 ‘전기료’ 아낀다고 온수기 사용 안 하신다고 하시더군요. 사람 사는 곳 다 똑같습니다. 이전 저의 할아버지 집도 재래식 화장실이 너무나 불편했는데, 수세식변기를 주방에 설치를 해 놓고선 한번도 사용 안 하시고 끝까지 밖에 있는 재래식화장실만 사용하셨습니다. 

당시 저렇게 전등없이 지내니 지낼만 하더군요. 물론 며칠만 지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데 온수가 없으니까 그건 좀 불편했습니다. 더운나라 태국이라도 겨울철 아침저녁은 쌀쌀합니다. 특히 저 곳은 북부 시골이라 아침저녁은 좀 쌀쌀하죠. 그런데 찬물샤워를 해야 해서 그게 좀 힘들긴 했습니다. 

다 돈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저 부모님도 돈이 많으면 자식들 하고 함께 생활하는데 왜 현대식 편리한 집을 짓고 싶지 않겠습니까?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함께 살고 있는 딸부부가 최근에 임신을 해서 곧 손주도 볼 거라고 하는데, 돈이 많으면 새건물 짓고 싶겠죠. 부모세대라고 불편한 곳에 사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면 안 됩니다. 돌이켜 보면 저의 조부모, 부모님들도 그냥 가난하니까 참고 살았던 것 뿐입니다. 

하라는 카페운영은 안 하고 손님과 중국장기, 서양장기나 두고 있네요

하라는 카페운영은 하지 않고, 저의 카페손님과 장기나 두고 있습니다. 

저의 카페 단골손님인 미국인 학생인데요. 중국식장기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 왔더군요. 그래서 오랜만에 장기알을 만졌습니다. 

중국장기는 아주 이전에 중국에서 몇 번 두어 보고는 처음인데요. 오랜만에 보니까 살짝 또 헷갈리더군요.

그리고 이 친구가 서양식장기를 배워보지 않겠냐고 해서 처음으로 배워 보았습니다. 서양식장기, 체스는 그동안 관심은 조금씩 있었는데 배울 기회가 전혀 없었거든요. 그래서 급하게 말이 가는 길만 배우고 한 번 두어 보았습니다. 

참고로 저는 한국장기는 조금 두는 편입니다. 너무나 어릴때,  한글을 배우기전 장기를 먼저 배웠습니다. 그래서 주변 어른들은 저의 적수가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또, 초등학생 정도되는 아이가 주위 어른들을 장기로 다 이겨 버리니 신기해서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며 장기를 많이 두었죠.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자대배치 받고 거의 말년병장이 장기 둘줄 아냐고 물어보길래 안다고 하니 남들 점호준비할때 장기나 두자고 하더군요. (어찌나 눈치가 보이던지요. 자대배치 갓 받은 신병이었거든요) 

장기를 두었는데, 그 고참의 사士 2마리와 졸 몇 개 잡고 외통수로 이겨 버렸죠. 제 기준으로는 실력이 많이 낮았습니다 그랬더니 (농담으로) “누구야(장기 엄청 좋아하는 다른 병장) 신병이 빠져가지고 고참을 이긴다” 하더군요. 당시에는 깜짝 놀랐죠. 나중에 알고 보니 농담으로 저렇게 이야기를 했다는걸 알았습니다만…

그래서 그 때 부터 고참들과 장기를 두었는데, 대부분 제가 이겼습니다.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서 조금씩 아슬하게 져 주기도 했었죠. 그래야 다른 일 안 하고 편하게 장기나 둘 수 있었거든요.

처음 체스 기물을 옮기고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룰을 잘 모르고 기물의 이름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한 번 두어 보았습니다. 

그렇게 장기를 잘 둔다는 소문이 나니까, 중대장이 장기두자고 해서 중대장실 불려가서 장기도 두었죠. 근무 나가야 하는데, 근무 안 나가고 장기 둔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 기율경이 있었는데, ‘중대장 한테는 조금씩 져주면서 해라’ 라고 귀뜸도 해 주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장기는 좀 둔다고 이야기를 들었었죠. (물론 아마추어 일반인 대상이죠)

제가 초등학생때 삼촌이 직장동료중에 장기 단급이 있는 그런 분이 있다며 저를 데리고 가서 장기를 두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시절 장기로는 기고만장, 안하무인, 득의양양, 망자존대 하던 시절이라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랐죠. 당시에는 잘 둔다는걸 으시대기 위해 일부러 상대가 기물을 옮기고 나면 바로 옮기거나, 옆에 있는 과일이나 먹으며 신경 안 쓰는 듯 딴청 피우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다 어느날 저녁, 삼촌의 집 근처 어느 가정집에 가서 그 사람과 장기를 두었습니다. 어른들과 진 적이 많이 없어서 그 때도 이길거라 생각하고 갔었죠. 그런데, 이건 완전히 차원이 다른 실력이 더군요. ‘벽’ 이라는걸 그 때 처음 느끼고는 장기에 대한 겸손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왜 겸손해야 하냐면요…

저 미국친구는 저 중국식장기가 저 날이 두번째 였고, 저는 중국식장기가 오랜만이긴 해도 한국장기의 짬밥이 있으니 가볍게 이길거라 생각했었죠. 그런데 첫판을 제가 졌습니다. 진 이유는 왕과 사의 이동이 한국장기와 중국장기는 다른데, 그걸 착각하고 장군을 치면 대각선으로 피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중국식장기에서 왕은 대각선 이동이 안 되는걸 알게 되었죠. 착각을 해서 졌습니다. 그래도 진건 진거니까요.

그런데 서양장기, 체스는 첫판을 제가 이겼습니다. 당연히 실력으로는 제가 지겠죠. 그런데 저 친구도 착각해서 제가 장군때리는 것에 외통수 걸렸습니다. 

당연히 실력으로라면 중국장기는 제가 월등하고 체스는 저 친구가 월등하죠. 체스는 2판을 두었는데, 그럼에도 제가 쉽게 물러 나지 않자, 장기에 대한 기본 머리가 있어서인지 처음 두는것 치고는 힘들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오랜만에 장기를 두니까 재미 있었습니다. 요즘 세대 사람들은 장기, 바둑 보다는 컴퓨터게임을 더 하겠죠.  각자 연습해서 며칠뒤 다시 붙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 와는 별개로… 태국에서도 장기를 두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요. 도대체 저 분들은 병뚜껑으로 어떻게 장기를 두는건지 정말 궁금하더군요.

혹시라도 뭐가 적혀 있나 싶어 봤는데 딱히 뭐가 적혀 있는것 같지도 않았거든요.

여행 다니다보면 아래 사진처럼 동네에서 장기를 두는 주민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런걸 볼때면 저런 여유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장기도 좋아하고 조기축구도 좋아했는데, 많은 것들을 직장 구한다고 서울가서 살면서 포기했던 것 같습니다.  

서양식장기 체스는 처음 두었는데, 나름 재밌더군요. 체스하면 또, 최근에 보았던 넷플릭스 드라마 The Queen’s Gambit 이 생각나죠. 여 주인공이 은근히 매력적입니다. 그 미국친구가 또 온다고 했으니, 체스 연습 좀 해야 겠습니다. 

참고로 저 미국친구는 미국에서 엔지니어계열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친구인데, 뭔가를 배우고 머리쓰는걸 엄청 좋아하더군요. 국비장학생으로 대만와서 학교에서 영어가르치고 있는데, 중국어도 엄청 열심히 배우고 있고, 최근에는 다른 아시아 언어도 배우고 있으며, 이야기를 나눠보면 새로운 걸 배우고 해 보는 것에 엄청 적극적이더군요. 이번주 주말에는 마라톤 풀코스도 참가를 한다고 하더군요. 

책상에 앉아, 책만 보고 암기만 하는 그런 형태보다는 저 친구처럼 해외에서 생활도 하면서 직접 접해 보고 경험하면서 지식/경험을 함께 쌓아 나가는 것이 더 좋아 보입니다. 

태국에서 자동차여행하다 침수사고 당한 이야기

오늘은 태국에서 자동차여행하다가 침수되어 견인된 이야기를 한 번 해 보겠습니다. 

태국에서도 그렇고, 대만에서도 자동차로 이동 많이 하고 여행 많이 다녔는데, 침수지역 지나다가 엔진에 물 들어가서 견인된 건 처음입니다. 

저 당시 정말 황당했었고 이런저런 손실이 막대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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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저의 유튜브채널 ‘타이컬쳐 Taiculture’ 에 올린 침수상황 영상을 보시면 조금 이해가 더 쉬우실 겁니다. 

이런건 영상으로 봐 줘야 더 실감이 나죠.

태국 시골지역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저 당시 저 지역에 비가 자주 내렸습니다. 하루종일 계속 비가 내린건 아니었지만 내리다 그치다를 하면서 대체로 흐린 날씨에 열대성 폭우가 쏟아지는 그런 날씨였습니다. 

또 저는 저런 날씨마저도 좋아하니까 저렇게 여행을 다녔었죠. 

비 올때 DSLR 들고 다니다 고장나서 수리 맡긴적도 있고, 카메가 가지고 물 사이를 점프하다가 빠져서 DSLR 하고 작은 카메라 등등 전자기기 날려 먹은 적도 있고…  지금 생각해 보니 침수되어서 날린 전자기기도 꽤 되네요. 

저는 성향이 돌아다니고, 도전해 보는 편이라 유무형의 손실도 많이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있으면 위험부담은 낮아 지겠지만요. 하.지.만. 집에만 있으면

이런 멋진 비구름을 현장에서 볼 수 없죠. 저는 이런 낮게 드리워진 어두운 비구름의 풍경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저는 이상하게 이런 비구름 많고 바람 부는 날씨가 좋습니다. 

시골지역을 차로 달리면서 이런 풍경을 보면 저 풍경속으로 빠져 드는 느낌도 듭니다. 

태국은 열대성폭우, 즉 갑자기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경우도 많고, 배수가 잘 되지 않아 도로가 침수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태국에서 살아 보신 분들은 이해하실 듯 한데요. 아무튼 그렇게 비가 내리는 가운데, 위의 영상속 지역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저의 태국친구부모님집으로 가고 있었죠. 그런데 영상처럼 제가 지나던 도로에서 차가 잠겨 엔진시동이 꺼졌습니다. 

영상에서도 보았듯이 옆차선의 차량들은 저렇게 지날 수 있는데, 제가 있는 쪽이 지대가 낮아서 수심이 깊더군요.

본네트위로 물이 올라오는 순간, ‘어? 이거 뭔가 잘 못 될 것 같은데… ‘ 라고 생각을 했는데 시동이 꺼지더군요. 처음 시동이 꺼졌을때는 배기관이 물에 잠겨서 혹은 순간 흡기가 안 되어서 시동이 꺼졌으려니 생각하고 시동을 다시 걸었는데 시동이 안 걸리더군요.

영상에서처럼 저 위의 분들이 물속에서 제 차를 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물 밖으로 빠져 나올 수도 있었고, 차에서 내릴 수도 있었습니다. 수심이 차문보다 높아 차문을 열 수 없었던 상황이었거든요. 

차량보험을 들 때, 긴급출동서비스 같은 걸 가입했었습니다. 보험사에 전화를 하니 사람을 보내 주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런 곳은 또 시골지역이다보니 도심처럼 보험사 직원이 빨리 오지도 않고, 서비스가 아주 좋지도 않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비는 좀 잦아 들었고, 물도 많이 빠졌습니다. 

제 차 바로 왼편은 무슨 농장이더군요. 소들도 보이고, 마당에 닭들도 뛰어 다니고…
차 옆으로 게도 떠내려 오고…

저 당시 머리속이 엄청 복잡했었습니다. 여행일정이 있었는데, 차가 고장이 났으니 수리기간이 걸릴텐데, 보통 침수가 되면 이건 간단한 수리가 아니거든요. 시간이 꽤 걸릴거라는 생각은 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아니라 태국이라 어쩌면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골치가 아프더군요.

보험사 직원을 기다리는 동안 저런 옷을 입은 사람이 와서 농장주인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걸로 보아, 뭔가 소 관련 거래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단순히 소를 키우는 곳이 아니라 뭔가 거래를 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상에서도 언급을 했듯이, 저 아주머니께서 제가 침수된 그 지점이 상습차량침수구간이라며 며칠전에도 벤츠 한 대가 침수되어 견인되었다고 이야기를 해 주시더군요. 

보험사 직원을 기다리는 동안 저런 옷을 입은 사람이 와서 농장주인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걸로 보아, 뭔가 소 관련 거래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단순히 소를 키우는 곳이 아니라 뭔가 거래를 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상에서도 언급을 했듯이, 저 아주머니께서 제가 침수된 그 지점이 상습차량침수구간이라며 며칠전에도 벤츠 한 대가 침수되어 견인되었다고 이야기를 해 주시더군요. 

비는 맞아 몸은 축축하고, 보험사 직원은 오지 않고, 동행한 태국친구는 보험사콜센터의 응대내용과 실제 현장의 보험사 대응이 다르고 불친절하고 느려서 저보다 더 화가 난 상태였습니다. 만약 여기가 도심이었다면, 주변에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라도 한잔 하며 기다렸을텐데, 보시다시피 시골 허허벌판이라 아무것도 없습니다. 너무 기다렸더니 화장실도 가고 싶었습니다. 주변이 이런 환경이라 길거리에서 노상방뇨를 해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동행자도 있고, 문화국가, 문화시민으로서…

조금 걸어가니 이런 상점이 하나 보이더군요. 내부에 각종 중고 의류, 신발, 가방 등을 파는 그런 매장이었습니다. 시골지역 답게 가게가 조촐합니다. 여기서 화장실도 조금 빌려 사용했습니다. 

비는 내리고, 몸도 많이 젖었고, 보험사 직원도 꽤 오랫동안 오지 않아 계속 콜센터에 전화했고… 뜨끈뜨끈한 온돌방에 샤워하고 누워 있고 싶은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한참만에 보험사직원이 왔습니다. 

먼저… 저는 말이 통하지 않아, 저의 태국친구가 모든걸 처리했었는데요. 대충 분위기를 보니까,

1. 저 직원은 보험사 직원이 아니라 현지 협력업체 혹은 아는사람.
왜냐하면 예를 들어 태국처럼 땅이 넓은 곳에서는 각 지역별로 ‘삼성화재 긴급출동서비스’가 있을 수 없으니 이런 시골에서는 ‘삼성화재’ 에서 현지에 있는 협력업체에 하청을 주는 방식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보험사콜센터 직원과 이 현장직원간의 의견이 달라 태국친구가 엄청 화가 났었죠.

제가 생각하는 ‘긴급출동서비스’는 1회 무료견인 혹은 몇 Km 이내는 무료견인 이런거라 생각을 했었는데, 견인차를 불러 놓고 우리보고 돈을 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차를 점검할 정비센터를 찾아야 하는데, 저 날이 아마 토요일 오후였을 겁니다. 저의 차를 받으려고 하는 정비소가 없더군요. 저 직원이 계속 어디론가 연락을 했지만 정비소를 못 찾아 또 한참을 시간을 보냈습니다. 

보험사에서 부른 견인차량이 왔습니다. 부부가 함께 돌아다니며 견인을 하는 것 같더군요. 태국친구를 통해 이야기를 들어 보니 침수차량 견인수입이 솔솔하다고 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저 분들은 침수상황이 되면 더 수입이 많아져서 그걸 즐기고 있겠네요.

아무튼 이 견인차량은 보험사직원과 이야기를 해서 어느 정비소로 가야하는지 그걸 한참동안 상의하고 있더군요.

말도 안 통하고 뭔가 진척은 안 되고…  아주아주 이전에 중국 처음 갔을때 말 안 통하던 그런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차를 싣고 어디론가 갔는데, 이 태국친구가 또 차량을 싣고간 정비소가 어딘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더군요. 그리고 보험사직원도 언제 차량검사결과가 나오는지도 모르고 그냥 차만 보내 버렸습니다. 

그래서 보험사직원에게 맡긴 정비소 위치를 확인해서 또 거기까지 가 보았습니다.  가 보았더니, 토요일저녁이라 정비소 문은 잠겨 있고…

얼핏 보기에는 정말 허름해 보이는 사설정비소 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토요일밤이고 내일은 일요일이라 차를 볼 수 없다며, 월요일에 오라고 하더군요. 

가끔 여행유튜버들 보면 해외에서 불의의 사고, 도난 등을 당해서 멘붕 오는 그런 장면들 나오는데요. 저도 당시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결국 차량은 사설정비소에서 수리를 하지 못 하는, 엔진에 물이 들어간 상황이라 공식서비스센터에 입고를 했고, 부품수급 등등으로 인해 시간이 엄청 걸렸습니다. 

결국 월요일인가? 사설정비소 업무 시작하고 나서 직접 방문을 했습니다. 정작 사설정비소 사장님은 아주 친절하시더군요. 이것저것 확인하시더니만 사설정비소에서 수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며 공식서비스센터에 맡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시 견인차를 불렀습니다. 지난번에는 부부처럼 보이는 남녀가 왔는데, 이번에는 연인처럼 보이는 남녀가 왔더군요.

사설의 장점은 저렴한 수리비용이죠. 다시 말하면 정식서비스센터는 수리비용이 비쌀 수 밖에 없습니다. 어쩔 수 없죠. 엔진을 덜어내는 작업이었으니까요.

저 당시 이래저래 쓴 직간접비용이 엄청 났었습니다. 한참을 차를 맡겨 둔 것도 그렇고, 저 시골에서 태국집까지 비행기를 타고 왔다갔다 해야 했고, 당연히 수리비용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전자기기도 그렇고, 차량도 그렇고 물건을 사람보다 위에 두고 애지중지 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배의 존재 이유가 안전한 항구에 정박해 있기 위해서가 아니듯이, 물건들은 사용되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거죠. 

또, 홍수나 산사태로 목숨이 위험한 상황도 있는데, 저는 고작 얕은 물에 차가 잠겨 엔진이 죽은것 외에는 뭐 큰 손실도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좀 귀찮고 불편한 경험이었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하나의 좋은 추억입니다. 

휴일오전 대만카페, 이웃집 아이에게 아침식사를…

오늘은 여기 휴일이라 저의 카페 부근의 저 아이에게 아침식사를 제공했습니다. 항상 카페 앞에서 놀고 있는 이웃이라 이야기를 나누고, 저를 보면 손을 흔들며 Hi~~ 라고 하는 친구라 오늘 마침 학교도 안 가는 휴일오전에 breakfast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실내 CCTV 를 보며 손을 흔들고 신기해 하길래 휴대폰으로 보여 주니 더 신기해 하더군요. CCTV로 함께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일요일 오전에 카페에서 아침 먹으면 분위기 좋잖아요.

그리고 로봇청소기에 대해서 흥미를 보이면서 작동을 해 달라고 해서 보여 주었습니다. 엄청 신기해 하더군요. 그러면서 부딪히면 아프냐? 발 대고 있으면 다치냐? 라고 물어 보길래 알아서 피해간다고 하니 청소기 진행방향에 서서 피해가는 모습을 재미있어 하더군요.

저도 신기한데, 저런 아이의 눈에는 얼마나 신기하겠어요.

한참을 저렇게 지켜 보더군요. 휴대폰으로 멈추고 도킹하는 모습까지 보여 주니 완전 신기해서 도대체 어떻게 하는거냐 계속 물어 보았습니다. 

사실 저도 휴대폰으로 로봇청소기 제어하고, CCTV 화면 보고 하는 것이 신기한데 저런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신기할까요.

그리고 여기 날씨가 쌀쌀해져서 크리스마스트리를 간단하게 만들어 보았습니다. 

저는 원래 크리스마스 이런건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었는데요. 하지만 저도 카페를 운영하다보니 아무래도 매출증대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보니 이런 시즌이 되었을때 이런 장식이라도 하나 해서 지나가는 손님들의 시선을 끌려는 목적으로 설치를 했습니다. 저걸 만들기 위해 별도로 구입한 건 아니고, 기존에 있던걸 트리로 만들면 좋겠다 싶어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낮에는 그저그런데, 밤에는 불빛이 바뀌니까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느낌이 나긴 합니다. 너무 저비용으로 만들어서인지 화려함은 덜 한 것 같지만 밤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적은 비용으로 운영하면 됩니다. 

주변을 둘러 봐도 이런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한 가게는 저의 카페가 유일합니다. 타이베이 같은 대도시의 백화점, 쇼핑몰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지역은 이렇게 소박한 느낌이 있는 곳입니다. 

저의 집 고양이들이 카페로 내려와서 저렇게 무념무상… 잠을 자고 있습니다. 

대만은 겨울에도 실내에 난방을 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실내라고 한국의 겨울처럼 온기가 느껴지지는 않고, 오히려 어떤 가게들은 외부보다 실내가 더 추운 곳들도 많습니다.  지난주부터 대만도 기온이 많이 떨어져 아침저녁으로는 13도 정도로 쌀쌀합니다. 한국은 지난주에 눈이 내렸다고 하더군요.

태국친구가 친구의 농장에서 뱀 잡았다고 사진을 보내 왔네요

오늘 태국친구가 친구농장에서 큰 뱀을 잡았다며 사진을 보여 주더군요. 보니까 사탕수수밭 인 듯 한데요. 저도 태국친구의 시골집에 갔다가 저런 사탕수수밭을 간 적도 있고, 저런 농장에서 일을 도와 준 적도 있습니다. 그 때 마다 늘 머리속에는 뱀 생각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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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은 없는 뱀 같네요. 오히려 독이 있는 뱀보다는 저렇게 큰 뱀이 한 번 싸워볼 만하죠.

저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는 편인데, 지금도 뱀 잡으러 반바지 입고 숲속에 들어가거나, 뱀 잡으러 숲속, 물속 뛰어 들어가는 모습보면 저게 진짜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도 저 농장에 가서 일을 도와준 적이 있거든요. 태국에서도 그렇고 중국에서도 그렇고 이런 농장은 뱀도 무섭고, 저녁에는 살짝 무섭긴 합니다. 

제가 이런 형태의 농장을 처음 가 본 것이 2000년 중국의 어느 시골 중의 시골마을 이었는데요. 친구집에 가 본다고 따라 갔었죠. 그 당시에는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처음 배울때 여서 이것저것 ‘중국인들처럼 해 보기’ 를 실천하던때라 시골마을 갈 기회가 있어서 가 보았습니다. 정말 시골입니다. 사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대만 이 곳을 ‘시.골’ 이라고 하지만 중국에서의 시골과는 비교과 되지 않습니다. 거기는…

위는 태국시골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2000년 그 당시 중국친구 시골마을은 주변이 온통 옥수수밭이었습니다. 그 때가 옥수수가 한창 높게 자랐던 시기였는데, 해가 질 무렵 옥수수밭 옆에서 옥수수밭 안쪽을 바라보니 살짝 공포스런 느낌이 들더군요. 들어가서 누가 죽어도 아무도 모를 정도의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 친구 시골집도 목조로 된 정말 다 쓰러져 가는 집이었거든요. 

중국에서 간혹 친구집에 여행을 다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래도 자식이 외지에서 외국인친구 데리고 왔다고 하면 없는 살림이지만 조금 성대하게 음식도 차려 내어 주고 하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 부모님은 뭐랄까… 집이 찢어지게 가난한 그런 집이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그 부모님의 모습이나 집의 정확한 구조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거의 다 쓰러져 가는 목조건물 부엌에서 그 대학교친구와 쪼그리고 앉아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던 기억은 어슴프레 납니다. 그리고 마을 전체에 어둡게 펼쳐져있던 그 옥수수밭들… (참고로 중국의 시골 옥수수밭은 면적이 엄청 넓습니다)

제가 학생때도 그렇고 업무적으로도 그렇고 중국시골은 참 많이 다녔었거든요. (차이컬쳐 시즌1 부터 보신 분들은 그 수 많은 이야기들 아실 겁니다)

대체로는 시골을 가더라도 어떤 곳은 좀 목가적인 여유로움이 느껴 지기도 하고, 사람들의 표정이 해 맑기도 하고 그래서 즐겁게 있다가 오는데, 당시 저 중국친구의 고향집과 부모님의 얼굴표정은 그야말로  가.난.에.찌.든.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연태대학교에 있을때, 학교 한국여자후배와 함께 거기서 공부를 했었는데요. 어느날 그 여자후배가 저에게

“선배, 여기 여학생들 생리대가 없어서 휴지로 생리대를 대신해서 사용해요”  

라고 하면서

“(우리 도와주는) *** 있죠. 걔도 보니까 생리대가 없어서 휴지로 사용해요”

라고 말을 하더군요.

전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여자들은 모두 생리대를 사용하는 걸로 생각을 했었고, 생리하면 당.연.히. 생리대라는걸 사용하는 거겠지 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여자들의 생리대에 대해서 자세히 관심조차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집에서 농장까지 거리가 좀 있어서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쉴때는 근처에 있는 이런 움막에서 간단히 음식도 해 먹으며 쉰다고 하더군요.

제가 차이컬쳐에서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요.

“저는 중국 다녀 와서 철이 들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라구요. 아무튼 그래서 그 중국친구는 학교에서 우리를 많이 도와줬던 친구라 저도 더 감사한 마음으로 밥도 사 주고 많이 도와 주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23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시골농장의 사탕수수/옥수수밭 이야기가 나오면 그 당시의 그 친구 시골이 생각납니다. 그 때 보았던 해가 진 직후의 옥수수밭의 공포스런 그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고, 그 가난이 찌들어 있는 부모님의 표정과 목조시골집이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갑자기 이야기가 삼천포로 흘렀는데, 아무튼 저런 옥수수밭이나 사탕수수밭은 실제로 들어가려고 하면 살짝 무섭습니다. 특히 해가 지고 나서는 정말 무섭습니다. 

저 태국친구 말로는 이 고무농장의 일은 새벽3시 ~4시경에 나와서 일을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기후때문에 덥지 않을때, 저 고무관련 일을 하러 농장에 가야 하는데, 보니까 여자 혼자서 오토바이타고 가서 일을 하더라구요.

제가 무섭지 않냐고 하니까, 무섭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이런 깊은 시골 농장에 밤이 되면 무섭겠죠. 그것도 여자혼자서 일을 하는데 얼마나 무섭겠어요.

그리고 뱀 안 나오냐 물어보니 뱀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런 긴장화를 신는 거겠죠.  그런데 보통 뱀과 마주치는 순간에는 뱀이 먼저 도망을 간답니다. 

저보고 새벽에 함께 나와서 일을 하자고 했었는데, 차마 새벽 3시에 농장일은 못 하겠더군요.

일하다가 힘들면 여기서 쉬어도 된다는데, 여기가 더 무섭…

저 해먹에 누워 있으면 왠지 뱀이 아래 위로 지나갈 것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태국시골, 중국시골 이야기를 좀 하면서 이전 중국시골 다녔던 생각을 떠 올리다 보니,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대만 여기는 ‘시골’이라 부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여기는 완전 번화한 대도시 느낌인데요.

태국은 2020년대에 돌아 다녔고, 중국은 2000년대에 돌아 다녀서인지는 몰라도, 중국의 시골들은 정말 시골이었네요. 그 당시에는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었고, 제 친구의 시골집에도 그 마을에서 전화기가 몇 곳만 있었고, TV가 흑백으로 이전 브라운관 TV 였으며 그나마 TV에 달린 안테나로 춘절관련 방송을 보는데 화질이 너무 안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태국친구의 시골도 엄청 시골이긴한데, 휴대폰이 있고, 휴대폰으로 인터넷이 가능하다보니 뭔가 고립된 느낌은 좀 덜 한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은 태국친구가 농장에서 뱀 잡은 사진을 보내 주길래 시골이야기 한 번 해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태국시골도 아직 엄청 가난합니다. 그리고 이런 시골지역 사람들의 경제상황, 주거환경들이 너무나 열악합니다. 

제가 차이컬쳐에서 다 못 다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어떤 부분은 이야기를 하기가 너무나 민감한 부분도 있어서 차마 올리지 못 한 내용이나 사진들이 많습니다. 

그런걸 보면서 저는 늘 경제적으로 엄청 부유하다 생각하며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중국생활하면서 물질보다는 ‘사람’ 이 먼저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또, 저의 차이컬쳐 전체 기조도 ‘사람’ 이구요.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 불합격

올해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을 쳤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을 하면 180점 합격선에서 173점을 받아 불합격이 되었습니다. 180점에 4% 모자라는 점수이네요.

7월 5일경 원서접수하고 8월 5일 시험을 쳤으니, 딱 한달 공부를 했습니다. 올해초는 저에게 좀 변화가 많았고, 바쁜 상반기였거든요.

대만으로 이주를 했고, 또, 카페를 오픈하려고 거의 6개월간을 이곳저곳 돌아다녔으며, 5월에 카페를 오픈하고서도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대만시골도 처음이고, 카페도 처음이고, 무엇보다 여기 연고가 전혀 없다보니 모든 것들을 혼자서 찾고 개발하고 하다보니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거기다가 계획에는 없었던, 새끼고양이 두녀석을 구출해서 입양하는 바람에 더 힘들었죠. 4월20일 구출해서 두달정도는 새끼고양이를 키우는데 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정신없는 상반기가 지나고 나니 원서접수날짜더군요. 원서접수하고 책을 폈습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한국어문법은 정말 어렵습니다. 

일을 하면서 시간나는대로 공부를 했습니다. 물론 공부시간이 충분치는 않아서 아쉬움은 있습니다만, 한달 공부하고 거의 합격선까지 나왔으니, 내년에 재도전하면 합격하겠죠.

 

한국어교육능력시험을 쳤던 교실의 모습입니다. 

어제가 수능이었죠. 혹시라도 시험결과가 좋지 않아 낙담을 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인생 길고, 인생 넓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장거리를 천천히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지 조금 늦었다고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습니다.

저는 아직도 영어와 중국어와 한자를 배우고 있고, 올해는 유튜브한다고 프리미어프로 배우면서 마우스 몇 번 집어 던졌고, 지금 글 쓰고 있는 블로그 새롭게 만든다고 워드프레스 배우다가  “농담 아닙니다”  정말로 앞에 있는 모니터 집어 던질 뻔 했습니다.  워드프레스는 정말로…  이전 이글루스에 편하게 글 쓸때가 좋았죠. 

살다보면 수능보다 국가자격증 하나가 더 유용할 때도 있습니다. 

또, 올해 수능 성적이 안 좋았으면 내년에 한 번 더 쳐도 됩니다.

인생을 지혜롭게 오래 살고, 양질의 좋은 경험을 많이 하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조금 늦게 대학을 들어가거나, 조금 늦게 직장을 구해도 인생 사는데는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을… 

오히려 학생시절에만 배우고 그 뒤로는 배우지 않는 그런 자세가 더 좋지 않을 수도 있구요.

부디 수능점수로 혹은 대학학벌 등으로 좌절하는학생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저도 올해 한국어교원 떨어졌지만, 뭐 어떻습니까? 내년에는 두달 공부하면 7점(4%)은 올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한달 그것도 정말 바쁘게 일하면서 공부해서 합격선까지 나왔으면 평소 한국어에 대한 기초는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긍정적으로 멀리 길게 보고, 천천히 올바른 방향으로 가다보면 원하시는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파이팅입니다!!!

대만 자전거여행중인 미국인의 자전거모습 및 저의 gogoro viva 소개합니다

어제 카페에 혼자서 자전거로 대만여행을 하는 미국인 손님이 오셨습니다. 자전거복장에 머리에 헬멧을 쓰고 있는 서양인이라 들어오는 순간 자전거여행을 하는 손님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 저렇게 자전거여행 중이라고 하더군요. 원래는 텐트를 치고 야외에서 자려고 했는데, 너무 더워서 텐트숙박은 포기를 했다고 합니다. 지금 11월인데 아직 대만 낮에는 덥습니다. 

제 카페는 큰 도로에서 안쪽이라 오기가 쉽지는 않은데 어떻게 왔냐고 물어보니 가끔 큰길 벗어나서 구경도 한다고 하네요. 주행이 목적이 아니라 자전거로 “여행” 이 목적이라 맹목적으로 달리지만 않는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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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대략 40대 전후? 서양인들 나이는 아직도 짐작이 어렵습니다. 말도 안 통하는데 혼자서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도전정신은 인정합니다. 
가끔 여기 대만 대학생들이나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남들 즐겁게 사는 모습만 인터넷으로 보면서 늙어 죽으면 너무 아쉽잖아요.

그 미국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도 저 스트라이다로 타이베이에서 대만남단 컨딩까지 종주를 한 적이 있다고 하자 아주 놀라더군요. 사실 여기 오시는 많은 손님분들이 저 스트라이다로 대만종주 했다고 하면 다들 놀라십니다. 

아! 그 옆에 보이는 gogoro 전기스쿠터…  드디어 저도 전기스쿠터가 생겼습니다. 처형이 안 탄다고 타이베이에서 여기로 탁송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타이베이에서 여기까지 오토바이 탁송하니까 1,000대만달러(약42,000원) 비용이 드네요.

쟤는 gogoro 여러 모델중에서 소형인 gogoro viva 라는 모델로 일반모델과 차이점은 배터리팩이 1개만 들어간다는 점과 일반자동차운전면허증으로 운전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 운전면허증으로도 탈 수 있는 모델입니다. 

녹색번호판은 저의 일반차량운전면허증으로도 운행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電動車전기차 라고 번호판에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마침 색상도 저의 스트라이다와 동일한 하늘색이라 깔맞춤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토바이를 탈 줄 모릅니다. 사람들이 ‘자전거 타는 사람이 스쿠터를 왜 못 타’ 라고 많이들 하시는데, 절대 현혹되지 마세요. 스쿠터랑 자전거는 다릅니다. 가끔 스쿠터 처음 배울때 조작실수로 브레이크 악셀을 함께 땡겨서 튀어 나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연습을 좀 해야 합니다. 다행히 저의 카페 주변은 온통 논밭…

탁트인 일직선 논밭 도로에서 연습중입니다. 시골이라 운행하는 차량도 많이 없어서 스쿠터 연습하기 딱 좋습니다. 당연히 공터에서 혼자 타는건 큰 문제가 없는데, 차량이 많은 도로에 나가서 혹시 조작실수로 사람을 치거나 차를 칠까봐 미리 연습을 조금 하는 겁니다. 

절대 ‘자전거 타면 스쿠터도 탈 수 있다’ 같은 말을 믿으면 안 됩니다. 엄연히 다르고, 조금 연습을 해서 도로로 나가야 합니다. 가끔 여행유튜버 중에서 오토바이로 동남아 여행하는 사람들 보이고, 제가 태국에 있을때도 오토바이로 산악도로 여행하는 사람들 많았거든요. 제가 오토바이는 못 타는데, 실제로 배기량 높은 오토바이로 그렇게 달리면 신나긴 할 것 같습니다. 
베트남에 살고 있는 저의 크리미아친구 커플도 오토바이 구입해서 타고 나니고, 태국에 있을때도 오토바이 구입해서 타고 다녔거든요. 

배기량 높은 오토바이는 탈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gogoro는 앞으로 여기서 잘 타겠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는 저렇게 남쪽으로 떠났습니다. 저도 대략 7년전에 스트라이다로 종주를 했었고, 올해 1월 대만환도를 한번 했던 터라 마음은 저 사람 따라 떠나고 싶더군요.

어쩌면 내년초에 대만환도 다시 한 번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주 어쩌면…

자전거여행이 되었든, 배낭여행이 되었든 조금이라도 몸이 될 때 하세요. 저도 어지간히 돌아다니는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체력저하가 느껴지고, 몸과 마음이 점점 이전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중국의 그 지저분한 저렴한 숙소에서 1박을 해도 즐거웠는데 지금은 돈도 더 듭니다. 

어제 우연히 저의 카페를 들린 자전거 여행하는 미국인의 자전거와 이번주 받은 gogoro 를 소개해 보았습니다. 

태국에서 본 도루코면도기 및 손흥민선수 질레트 광고

지지난달 태국에 갔을때, 보았던 도루코면도기 광고입니다. 저는 도루코면도기를 아마 학창시절에 사용해 보고는 그 뒤론 질레트만 사용을 해 왔습니다. 도루코면도기는 목욕탕가면 1회용으로 주는 그런 것만 사용해서 실제로 절삭력이 어떤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럼에도 태국에서 도루코광고를 보니 반갑더군요.

도루코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국뽕이 넘치는데 (라고 했지만 사실 저는 소위말하는 국뽕 이런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옆에 질레트광고 손흥민이 있더군요.  손흥민은 못 참죠. 그래서 함께 찍었는데, 태국에서 도루코와 손흥민의 질레트를 함께 보니 중간의 저 남자가 도산 안창호열사님으로 보이더군요. 순간 도루코, 도산 안창호열사님, 우리 손흥민선수… 태국의 마트에서 국뽕이 넘쳐 나더군요.

하지만 아직까지 태국은 일본기업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길거리 자동차만 해도 일본차량이 국민차량입니다. 저도 태국에 있을때 일본차를 구입했는데, 태국에서 차량은 일본차 아니면 선택지가 별로 없습니다. 일단 차값이 너무나 비싸고, 다른 수입차는 세금이 엄청 나서 가격이 많이 차이가 납니다. 거기에 다른 수입차는 수리정비도 쉽지가 않습니다. 반면, 일본차 특히 도요타차량은 주변 카센터 비슷하게 생긴 곳만 가도 부품이 있고 정비가 다 된다고 할 정도로 흔한 국민차입니다. 태국에서 일본기업이 기반을 다지고 있는걸 보면 좀 짜증이 날 수도 있지만 일본은 이미 1500년대에 태국과 교역을 했습니다. 

태국 아유타야 라는 지역에 가면 일본인거주마을의 흔적이 있는데요. 거기 기록을 보면 대략 1569년경 오키나와에서 출발한 무역선이 이 곳으로 도착을 했고, 초창기에는 대략 1000~1500여명의 일본인이 이 지역에서 거주를 했다고 합니다. 

저기 붉은 동그라미 안쪽이 일본인들 거주지역이었고, 그 옆에는 포르투갈 사람들 거주지도 있었다고 하네요.  
역사기록을 보면 조선시대에도 동남아쪽으로 갔던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보니까 국가대국가의 교류가 아니라 사고등으로 표류를 하다 간 경우들이더군요. 네델란드 하멜일행이 일본가려다 표류해서 제주도 도착한 것처럼 말이죠.

태국도 보면 오래전부터 유럽쪽 동아시아쪽 국가들과 교류가 많았는데, 도대체 언어는 어떻게 배웠는지 늘 궁금합니다. 보면 통역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오래살다보니 언어를 습득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저 당시에는 어떻게 언어를 배웠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지금이야 워낙 다른 문화에 대해 접할 기회가 많아서 크게 낯설지는 않겠지만, 당시에는 완전히 다른 문화의 사람들을 만나면 그 이질감이 지금보다 훨씬 컸을 것 같은데 말이죠.  여수에 가면 하멜일행들의 연대기를 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보니까 하멜일행중에는 한국사람과 결혼해서 살았던 사람도 있더군요. 

태일우호. 泰日友好 태국전역에서 태국과 일본의 저런 문구를 볼 수 있고, 태국도 그렇고 제가 살고 있는 대만도 그렇고 일본산, 일본기술 이라는 걸 내세우며 마케팅을 하는 모습을 여전히 볼 수 있습니다. 뭐가 되었던 일본에게 지는것에 대해 마음속에서 짜증이 나는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K-culture가 잘 나가고 있어서 위안이긴 합니다. 일본기업이 주도를 하고 있는 태국에서 도루코와 손흥민선수의 광고를 보니 반가워서 소개를 해 보았습니다.  

별개로… 아무리 태국이지만 저렇게 태국사람들이 일본의 기모노나 일본풍의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은근 짜증이 나고, 해외에서 K-POP 댄스를 추는 모습을 보면 또 은근히 기분좋고 자랑스럽고 한 건 당연한건데, 해외에서 K-POP 유행한다고 하면 그걸 폄하하고 깍아 내리려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인지??

대한민국사람으로서 일본이 잘 되고 있으면 좀 짜증이 나고, 해외에서 한국노래, 춤, 드라마, 영화 사람들이 알아주면 기분좋은건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지우개똥을 치우려 종이를 접은 대만카페손님

대만시골지역 대학교부근에서 카페를 하고 있습니다. 대학교 주변이다보니 아무래도 학생들이 주요 고객입니다. 그동안 카페를 하면서 보니까, 학생들이 지우개를 많이 사용하더군요. 저는 언제부터인가 지우개를 거의 사용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여기 학생들은 지우개를 많이 사용하는 듯 했습니다. 

테이블위와 바닥에 지우개똥 이라고 하나요?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청소 하나만큼은 깔끔하게 하니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 이 글을 적는 이유는, 최근 어떤 손님이 지우개똥을 담는 통을 직접 만들어 지우개똥들을 다 모아 두었더군요.

저렇게 종이를 접어 지우개똥을 다 담아 두었습니다. 저는 제 성격상 카페에서 지우개로 뭘 지우더라도 저렇게는 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손님들이 지우개로 지운 흔적을 남겨왔지만, 저렇게 종이를 접어 담아 놓은  손님은 저 학생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카페주인 입장이지만, 손님이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 생각합니다. 어차피 커피값에 청소비도 포함이 되어 있다고 보면 되거든요. 
저런 청소는 카페측에서 하는 것이 맞죠.

이 학생손님은 저의 단골입니다. 그래서 늘 제가 감사하게 생각을 하죠. 아마도 이 학생도 저의 카페에 자주 오니까 조금이라도 깔끔하게 사용하고 가려고 저렇게 수학연습한 종이를 접어 담아 둔 것 같은데, 제 입장에서는 그저 손님이 편하게 있다가 가는 것이 좋죠. 혹시 이런걸로 부담을 가지면 오히려 제가 더 마음이 안 좋습니다. 

얼마전 누가 댓글로 ‘시골도 아니면서 왜 시골이냐고 말을 하냐?’ 라고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의 근거는 실내체육관이 있는데 시골이냐? 는 논지인데요.

1. 논밭
 – 먼저 저의 카페에서 100m 도 되지 않는 곳에 논이 있습니다. 저의 카페에서 논이 보입니다.  그리고 약 300m 정도면 온통 논밭입니다. 

2. 농민들
– 위의 사진은 저의 카페 바로 옆집입니다. 저의 바로 옆집 이웃뿐 아니라 이 동네 분들이 농민이 많습니다. 농사일 하고 온 장화도 보이고, 저기 차량에는 농기계 싣고 다니십니다. 

3. 농업종사 이웃들
– 위의 사진은 저의 카페 바로 대각선에 사는 이웃의 차량입니다. 저 분들은 농지를 돌아다니면서 농약을 쳐 주는 일을 합니다. 농민들에게 돈을 받고 전문적으로 농약만 쳐 주는 일을 합니다. 

아래 하얀트럭도 마찬가지입니다. 약간 안쪽 골목에 세워져 있는 트럭인데요. 제가 평소 전화를 받거나 카페에서 잠시 쉬려고 할 때 저 장소에 서서 저기 풍경도 바라보며 전화도 받고 하는 곳입니다. 

4. 동네풍경
–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이런 집들이 대부분입니다. 저의 스트라이다를 세워두고 사진 한 장 찍었네요.  물론 최근에 지어진 현대식 건물이 몇 동 있습니다. 여기가 대학교 후문쪽이라 대학생들 원룸업을 하려고 현대식 건물로 지어 올리는 곳들이 있습니다. 

요즘 시골에도 프렌차이즈 카페도 있고 마트도 있습니다. 시골이라고 다방만 있지 않습니다. 

저 녀석은 항상 어딜 올라가는 걸 좋아합니다.

5. 현지사람들 질문
– 제가 여기서 카페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어쩌다 이런 시골에 오게 되었어요?” 입니다. 어제도 여기서 학창시절을 보냈다가 타이베이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웃주민이 장례때문에 돌아왔다가 “도대체 어쩌다 한국사람이 이런 시골까지 와서 카페를 합니까?” 그러면서 “이 골목에 카페가 들어설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못 했는데 어떻게 이런 시골동네 골목에 카페를 열 생각을 했나요?” 라고 질문을 해 왔습니다. 

여기 사는 분들은 모두 여기가 시골이라고 말을 합니다. 단, 시골과 도시의 기준이 뭔가요? 어디까지는 시골, 어디까지는 도시라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곳은 이름만 시이지, 가보면 완전 시골같은 곳도 있습니다. 

특히 태국은 방콕을 조금만 벗어 나는 순간 20~30년 시간을 거슬러 가는 느낌을 받는 곳도 많구요.

제가 이전에 유학을 했던, 중국 산동연태시는 물론 시라는 이름이 있지만, 23년전 그 당시 연태시의 풍경은 한국의 60년 70년대 풍경의 시골이었죠.

며칠전 카페골목 입구에서 인형극을 하는 모습입니다. 시골동네 작은 사원 앞에서 인형극을 하고 있습니다. 저렇게 보는 사람 없는 인형극을 하는 이유는, 사람보라고 하는 인형극이 아니라, 신이 보라고 하는 인형극이기 때문입니다. 신에게 기원을 하는 사람이 저 인형극하는 사람에게 돈을 지불하고 신전 앞에서 저렇게 인형극을 하면서 신에게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종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저의 카페 바로 옆집에서는 장례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서 물어보니 다행히 호상好喪 이라며 다들 웃으며 장례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괜히 저만 좀 엄숙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찾아 갔는데, 호상이라며 밝은 표정으로 또 제가 한국사람이라고 이런저런 (한국의) 장례절차에 대해서도 질문들을 많이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도시에서는 장소가 없으니 보통 장례식장 같은 곳에서 장례를 치르는데, 이런 시골에서는 어차피 터가 넓으니 이렇게 집에서 한다고 하더군요.

여기는 행정구역에는 시라고 되어 있지만, 시골이라고 해도 됩니다. 현지인들이 다들 시골이라고 하거든요. 정말 시골인지 아닌지 알고 싶으시면 저의 카페 한 번 오세요. 제가 논밭구경, 봄/여름 정도에는 가로수로 자라고 있는 엄청난 망고들도 보여 드릴 수도 있고,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엄청난 벌레도 짝짓기 시기에는 보실 수 있습니다. 


저의 카페는 雲科大學 라고 국공립 대학입니다.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 사립대학이 하나 있는데요. 위의 저 대학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내년에 폐교를 합니다. 대만도 지방에는 학생수가 감소를 하고 있다고 하네요.

제가 처음 이 지역을 왔을때, 3곳의 대학교를 두고 검토를 했었거든요. 당연히 위의 저 대학도 저의 카페장소로 물색을 했던 곳인데, 다행히 저 곳에서 카페를 열지 않았습니다. 제가 카페를 알아 보고 있을때는 폐교소식을 몰랐습니다.

대만의 어느 시골소재 대학교 후문에서 카페를 하고 있습니다. 뭐라 부르던 상관 없습니다. 농민들 이웃속에서 논밭을 보며 살고 있으니, 저는 시골살이 기분을 한껏 느끼고 있습니다. 

중요한건… 세상을 인터넷으로만 보며 판단하지 말고 직접 경험해보고 접해보고 사람들과 만나서 그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듣고 공감하는 그런 것들이 필요 하죠. 세상을 인터넷으로만 배울 수 없는 거거든요. 인터넷으로만 세상을 판단하니 공감능력도 떨어지고, 현실과 동떨어진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사람과 소통을 하고 공감을 할 수 있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