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사람, 영혼에게 돈/쌀 갖다 바치지 말고 주변 어린이부터…

대만에는 이런저런 절, 사당들이 아주 많습니다. 단독건물이 없는 절, 사당 같은 경우에는 저렇게 일반상점을 임대해서 만든 곳들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비단 대만뿐 아니라, 태국도 어느 곳에서나 절은 엄청 많고, 한국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교회탑이 엄청 보입니다. 

또, 대만에서는 저런 인형극을 하는 모습을 대만에서 사시는 분들이나, 자주 여행을 하시는 분들은 심심찮게 볼 수 있을 겁니다. 저 인형극은 대체로 절/사당 같은 곳을 마주보고 하는데요. 저건 산사람을 위한 공연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위한 공연이고, 후손들이 죽은 영혼을 위해 하는 공연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시골마을에서도 저 공연이 꽤 자주 열리고 저 공연만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렇게 도로를 막고 공연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돈이 많으니 죽은 영혼을 위해서 저런 공연팀에게 돈을 주고 공연을 하는 건 큰 문제가 안되고, 내가 건물 임대해서 절을 운영하든 사당을 운영하든 그런건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니죠.

제가 늘 눈여겨 보는건…

이 시골동네 아이들이 방과후에 딱히 갈 만한 곳이 없다는 겁니다. 대도시는 나름 여러 학원도 많고, 우리나라의 태권도학원 같은 곳들도 있고, 도서관 접근성도 좋아서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 지역마다 있죠.

하지만 이런 작은 도시, 지방도시, 시골마을의 아이들은 그런 환경이 열악합니다. 그러다보니 저의 이웃집 아이도 가끔 저의 카페에 와서 놀려고 하고 (부모님이 미안해서인지 아이들에게 못 오게 합니다), 가끔 저를 보면 배드민턴도 치자고 하고, 게임도 하자고 합니다. 아이들이 즐길만한 장소가 거의 없습니다. 

환경이 이렇다면, 지방정부와 기업, 어른들이 나서서 어린이도서관이라도 좀 지어주면 좋을텐데요.

제가 24년전 캐나다를 처음 가 보고 놀랐던 부분 중 하나가

어린이도서관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적절한 대화를 하면서 함께 책도 보고 이야기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게 뭐가 큰 대수냐 할텐데, 한국에서 도서관하면 늘 엄숙하고 조용하고, 작은 소음도 내면 안 되는 그런 공간으로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가, 개방형 어린이도서관을 가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24년전 캐나다에서 찍은 사진이 없어, 10년전 호주시드니 자주 가던 도서관에서 찍은 사진들 입니다. 

카페가 아닙니다. 무려 도서관 풍경입니다. 물론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 일 수도 있고, 돈 많은 정부와 가난한 정부의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군대도 그렇고 이런 정부도 그렇고 결코 이런데 쓸 돈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비리가 많고 새는 돈이 너무나 많을뿐…

제가 사는 주변에 보면, 식당이든, 카페든 영리를 추구하는 가게가 일년을 못 버티고 폐업을 하는 곳들이 많습니다. 지금 제가 사는 곳 반경500m 되는 상권만 해도 벌써 수많은 상점들이 임대료/인건비를 내지 못 해 1년을 버티지 못 한 곳도 많고, 6개월 못 버티고 폐업한 곳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저런 절/사당 같은 곳은 꾸준히 운영이 되죠. 왜냐하면…

사람들이 와서 돈, 쌀 등을 기부하거든요. 그리고 인건비도 필요가 없습니다. 신도들이 와서 청소도 해 주니까요. 

반면, 어린이도서관은 아무래도 영리를 추구하기가 어려운 곳이죠. 인건비 및 임대료 부대운영비를 어린이입장료? 로 충당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런 종교시설에는 자발적으로 와서 돈도 내고 쌀도 내면서, 어린이도서관 하나 운영을 못 하는 지방정부와 지방단체들이라면 그게 과연 바람직한 사회인가 라는 생각은 해 봅니다. 

죽은사람, 죽은영혼에게 돈, 쌀 갖다 바치지 말고, 미래를 위한 아이들의 교육, 어린이도서관 정도는 하나 지어서 지방정부 주도로 어른들이 운영을 하면 좋을텐데요.

차이컬쳐를 시즌1부터  봐 오신 분이라면 저의 모토가 ‘어린이들에게 꿈과 사랑과 희망과 용기를 전해주는’ 이고, 지금도 저의 목표는 어린이도서관을 하나 지어서 제가 사는 지역 아이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싶은데… (아직 돈을 많이 못 모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태국, 중국의 시골에 사는 아이들에게 이동식 영화관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영화 같은 걸 보여주면서 ‘문화예술과 접촉할 기회’를 제공해 주려는 꿈도 있는데…

저도 젊었을때는 이런 것들이 ‘열정’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었으나, 지금은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 떠도는 영혼에게 돈, 쌀 가져다 바칠 생각 보다는 자기 자식 좋은 문화공연장 가서 구경을 시켜 주는 것이 더 현명합니다.

위의 사진들은 본문내용과 상관 없습니다. 

8월 8일 대만 아버지날을 맞이해서 저의 아버지 사진

오늘 8월 8일은 대만의 ‘아버지날’ 父親節 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올해 75 이신데, 평소 꾸준히 헬스를 하시다가 지난달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향후 시니어헬스모델로 한 번 참가해 보는 것이 목표라고 하시네요.

원래 근육만들기가 쉽지 않은데, 75살에 저렇게 근육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난 5년간 술 담배를 끊고 새로운 삶을 사시겠다며 운동, 여행과 더불어 독서를 엄청나게 하시더군요.

아버지가 살짝 이전에 못 배운 한? 뭐 그런 것이 조금 있어서 최근에 책을 엄청 읽으시더니만 최근에 시집을 내고 저렇게 시집발표회까지 했습니다.

물론 저 책은 서점에 없을 계획입니다. 누가 살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자기만족용’ ‘꿈을 현실로용’ 책입니다.

제가 다 읽어 보고 오탈자수정도 하고, 무엇보다 수기로 작성한 걸 타이핑을 다 해 드렸죠. 

뒤늦게나마 운동도 열심히 하고 독서도 많이 하고 저렇게 책도 출간하고 하니 보기가 좋습니다. 

한국에서 한국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이 나이에 제가 그런거 해야될 짬밥입니까?’ 이런말을 군대 제대해서 부터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나이가 들어도 배워야죠. 저는 지금도 중국어, 영어 최근에는 태국어도 꾸준히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있구요.

아버지날이라고 저의 대만단체톡에 이 영상이 올라와 있길래 제가 번역을 해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중국어 父親[fu qin][푸친] 과 

비용을 지불하다 의 중국어 付清[fu qing][푸칭]의 

발음이 비슷한 걸 이용해서 아버지의 노고? 수고? 고생? 에 대한 풍자를 했습니다.  

아버지들이 자식을 위해 너무 희생해서 살 필요도 없습니다. 또, 자식을 너무 오냐오냐 감싸안으며 도와주면 오히려 자식이 독립을 하거나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못 배우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소황제小皇帝 부자집자식2세富二代 이런 말들이 고유명사화 되는 거죠. 실제로 사회 문제가 되기도 하구요.

제가 중국대학생들과 함께 기숙사생활 할 때 가끔 중국대학생들과 축구, 농구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가끔 집에서 부모, 양가조부모 에게서 오냐오냐 자란 티가 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는 아이들이죠.

보통 농구를 하면 이런 아이들은 패스를 하지 않고, 지가 꼭 슛만 던지려 하구요. 심지어는 자기쪽으로 공이 흘러 나가도 지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절대 공 주으러 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멀리 있는 다른 학생이 공을 주으러 가죠. 

그 당시 좀 심하게 그러는 녀석이 있어서 저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컸지만 멱살잡고 농구장 펜스에 밀어 붙이며 싸울뻔 했죠. 중국에서 중국사람 때리면 안 된다는걸 알지만 그 녀석은 다른 학생들 배려를 전혀 하지 않고, 절대 패스 안 하고, 지 쪽으로 나간 공도 주으러 가지 않는 등… 제 기준에서는 선을 넘었죠. 주위에서 말려 때리지는 않았지만 멱살 잡고 몇 마디 해 주었습니다. (그 당시 중국어도 잘 못 했는데, 어떻게 말을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욕은 빨리 배우니까요)

회사업무 비효율적인 부분, 특히 이메일 에 대한 고찰

오늘은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젊은분들, 학생분들을 위한 글을 적어 보려 합니다. 

며칠전 유퀴즈에서 구글 16년 다니다 해고통보 영상을 보다가 생각나는 부분이 있어서 소개를 해 봅니다. 

직장인들, 특히 제가 했던, 해외영업, Project manager, 고객대응팀 이런 사람들 보면 출장 다니면서 비행기에서도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고, 공항에 대기하면서도 이메일 쓰고 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 중에는 정말 업무가 많고, 바쁘고, 능력있고… 그런 분도 있죠. 하지만 실제로 해외기업 프로젝트 맡아서 하는걸 보면 불필요하게 비효율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외국계회사에서 다국적직원들과 업무를 하면서 경험한 것들이 많지만, 지난 6월 프리랜서로 대만기업 업무 하면서 경험한 것 위주로 소개를 해 봅니다. 

<이메일 남발>

여러 국적 인력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면 이메일을 주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메일을 자세히 살펴보면, 저 직원은 왜 CC로 들어있는지 보내는 사람도 모르고, 받는사람도 이해를 하지 못 하고 그냥 일단 면책용 CC 발송이 엄청 많습니다. CC 받는사람은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습니다. 하루에 읽지않은 메일이 100통 200통씩 쌓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불필요한 CC첨부도 문제인데, 별 시덥잖은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내용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메일에 전체회신으로 보냅니다. 

<사례1> 미팅중 서류중에 약어가 하나 있더군요. OMG 이라고 합시다. Oh My God 의 약자인데 업종에 따라 약자가 많으니 모를 수도 있습니다. 현재 고객사와 미팅중에 그 약자를 알아야 미팅이 진행될 수 있는 상황인데, 그 상황에 그걸 질문하는 메일을 쓰고 앉았더군요. 그냥 메신저로 바로 ‘차이컬쳐씨, 서류에서 OMG 이 무슨 뜻인가요?’ 물어 보든, 전화해서 물어보면 딱 1분이면 끝날 것을 미팅중에 그걸 화면에 띄워서 메일로 쓰고 있더군요. 

메일을 쓰다보니 인삿말, 맺음말 써야 하고 격식 갖추느라 길게 질문하고… 

<사례2> 사람 엄청 많은 단체메일에 같은 사무실 직원 두사람이 내용 확인하느라 메일을 서로 주고 받습니다. 그냥 두 사람이 얼굴마주대로 물어보면 딱 3분도 안 걸릴 내용을 하루종일 메일 보내고 받고 보내고 받고 하고 있습니다. 그 메일에 들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 과정에 대해 알필요도 없습니다. 자기 부서내에서 그냥 결정해서 타부서에 통보하면 되니까요. 그걸 같은 사무실 같은 부서 직원이 하루종일 메일로 주고받고 있습니다. 메일이 엄청 늘어납니다. 

 

물론 어떤 내용은 나중에 히스토리 증거를 남기기 위해 구두로 확인한 걸 메일로 발송해 두기도 한다는거 저도 잘 압니다. 그 정도 분간은 합니다. 그런데 전혀 쓸데도 없고, 그냥 메신저로 물어보든 만나서 몇마디 나누면 될 일도 메일로 단체메일에 계속 보냅니다. 3분이면 끝날 결정을 하루종일 심지어는 다음날까지 주고 받습니다. 

거짓말 같지만 정말입니다. 

지난번 출장때 프리랜서로 함께 동행했는데요. 저 직원도 아니나 다를까 공항에서 노트북 펴 놓고 이메일 계속 확인하고 보내고 하더군요.

문제는 제가 CC 에 들어 있어 내용들을 보면 전혀 메일로 보내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내용까지 전체메일로 보내고 있습니다. 바빠서 공항에서 비행기내에서 메일을 쓰고 보내는 것이 아니라 비효율적인 부분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불필요한 회의>

저 직원과 한국에 있었는데, 지하철 이동을 하는 도중에도 이어폰 끼고 회의를 하고, 다른 업무를 하면서도 이어폰끼고 회의를 켜 놓습니다. 

그런데 본인도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꼭 없어도 되는데, 회의 주관자가 참석하라고 메일에 이름을 올려 놓아서 참석하는거라고”

제가 기업에서 온라인, 오프라인 회의 하는걸 보면 컴퓨터도 자기 일 하거나 휴대폰 계속 보면서 메신저 보내는 직원도 많고, 심지어는 그 회의가 뭐 하는 회의인지도 모르고 들어오는 직원들도 있습니다.   예를들면, 포장팀 부장 참석인데 부장이 참석 못 할 상황이 되자 그 팀원 아무나 참석 시킵니다.

제가 보면 불필요하게 끌려 들어와서 그냥 온라인회의에 멍하니 있다가 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부적절한 방식의 회의>

저는 대만계기업에 있다보니 대만, 중국 등 중화권 직원들간 회의가 많습니다. 거기에 태국직원 참가하라고 메일로 보냅니다. 그런데 중화권직원들이 대다수다 보니 회의를 중국어로 하고 심지어는 자기들 주고 받는 자료도 중국어입니다. 태국직원들은 계속 딴 짓 하다가 회의마치면 로그아웃 합니다. 무슨 내용이냐 물어 보면 모른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걸 정리해서 피드백 해 주는 직원도 없습니다.  그냥 그 태국직원은 명단에 있으니 접속해서 멍하니 있다가 끝납니다. 회의에 결과도 없습니다. 

“내가 불안하니 하는 회의” 가 너무나 많습니다. 

출장비 정산을 위해 인보이스를 요청 하더군요. 출장을 갔으니 돈은 받아야 하니까요.  보냈습니다. 

며칠뒤에 연락이 와서 A 라는 부분이 자기 회사 양식과 맞지 않으니 재경팀에서 수정을 요청한다고 연락이 왔더군요. A를 수정해서 보냅니다. 

아직 끝난게 아닙니다. 

다음엔 B 의 문구가 자기 회사 양식과 맞지 않으니 수정을 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B를 수정해서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자기회사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인보이스에 들어가야 한다면서 C 를 넣어 달라고 합니다. 

간단한 대금청구서 하나 수정하는데 10일이 걸립니다. 메일을 몇 번 주고 받는지… 그냥 처음 받았을때, ‘우리 회사 재경팀에서는  A, B, C 가 기본 양식이다’ 라고 한번에 말을 해 주면 될 걸 대금청구서 ‘양식’ 맞추는데 10일이 걸리면서 메일만 몇 번을 주고 받습니다. 

출장자들과 치맥을 했습니다.

지난 6월 중순 출장시 “다음주까지 이거 반드시 처리해야 하니 내일까지 서류 만들어서 보내 주세요” 하더군요. 내일까지는 도저히 정확한 자료가 나오지 않는 부분인데 계속 요구하길래 안 된다고 해서 2일이 필요하다고.

다음주까지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던 그 안건이 지금 8월 둘째주인데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그럼 다시 첫번째 사진으로 돌아가서.  함께 출장갔던 직원이 보니까 이메일을 잘 못 보내거나 내용이 틀리거나 실수를 많이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죠.

“너네 대만쪽 기업들은 왜 이렇게 모니터 사용에 인색하냐? 제발 보조모니터 써라. 13인치 노트북 화면으로 하는 것 보다 속도도 훨씬 빠르고 문서 2개 동시에 띄워 놓고 수정하기도 편하고 메일발송 실수도 줄일 수 있다.”

라고 하자 “회사에서 모니터를 안 사준다” 라고 하길래, 정 회사에서 안 사주면 모니터 그거 얼마 안한다 사무실에 너 사비로 하나 사서 놓고 모니터 2개로 업무해라 업무효율이 엄청 빨라진다.

이 말을 제가 여러 중화권직원, 태국직원들에게 했으나 안 하더군요. 결국 최근에 또 첨부 잘 못 했다고 첫번째 사진처럼 메일이 왔습니다. 일을 해 보면 13인치 노트북화면에서 오는 느림, 비효율, 실수가 엄청 많거든요.

유퀴즈에서 전직 구글직원이 했던 ‘80%을 감원해도 회사가 돌아간다’ 라는 말이 제가 말한 부분과도 무관하다 생각하지 않거든요. 미국계회사와도 프로젝트 미팅해 보면 거기도 PM 이 온갖 부서 자기직원들, 전부서 거래처직원들 참석시켜 회의 주최를 많이 하더군요. 정작 회의중에는 많은 직원들이 노트북으로 자기 업무 하고 있고, 회의 마쳐도 이 회의에서 무슨 안건으로 했는지 모르고 나가는 직원이 대다수입니다. 그냥 이름있으니 회의실 들어 왔다 딴짓 하고 나가는 겁니다.  

직장인들은 본인들은 이메일 열심히 많이 쓰고, 각종 회의 많이 참가해서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불필요한 업무가 정말 많습니다. 

제가 초반에 사회초년생, 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라면서 시작을 했죠.

여러분들은 이런 조직에 들어가면 그냥 순응하면서 그렇게 직장생활 하세요. 남들처럼 하루에 대략 2시간 3시간? 정도만 일하다 퇴근해도 월급이 나옵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용기내서 이야기 하고 개선할 생각도 의지도 없습니다. 오히려 윗선의 나이 많은 직원들은 저런 직원들을 더 싫어합니다. 그냥 튀지 말고 조용히 월급 잘 받으면서 13인치 모니터로 30분이면 끝날 서류작업도 3시간에 걸쳐서 해 주면 일을 더 많이 한다고 칭찬 받습니다.  (정말로 30분 정도면 끝날 문서작업을 3시간 하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타이핑을 두 손가락으로 독수리타법하는 사무직원도 있습니다. 키보드 안 보면 타이핑 못 하는 사무직원도 엄청 많구요)

일부 회사는… 일부(사실 대부분) 생각 없는 상사는…

30분만에 끝마치고 2시간 30분을 딴짓 하는 직원 보다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3시간 동안 작은 모니터 보면서 열심히 하는척 하는 직원들 더 좋아합니다. 

이 글은 뭘 불평하려고 적은 글이 아닙니다. 며칠전 유퀴즈를 보는데 80% 직원이 없어도 회사가 잘 돌아가는 것에 다른 IT 기업들도 인원감축을 한다는 영상을 보고 제가 그동안 회사생활 하면서 느낀 것들을 간단히 언급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부분은 월급직의 마인드 한계 이기도 하죠. 내가 월급을 주는 입장이면 저렇게 일 못 합니다.  

태국의 불상나무, 한국의 타이어나무

태국이나 대만 여행하면서 나무가 불상의 머리나 불상, 혹은 건물을 감싸는 그런 풍경을 종종 보는데요. 그걸 볼 때마다 이런건 돈으로 사지 못 하는 세월이 흘러야만 만들어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한국출장갔을때, 타이어 사이로 나무가 자라 있더군요. 이걸 보면서 이것도 나름 세월이 만든 작품? 이라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태국 아유타야에서 유명한 나무속 불상머리이죠. 보통은 저런 식으로 나무가 자라면서 불상을 감싸는 형태인데요. 

굳이… 아주 굳이 저 타이어나무가 더 어려울까 불상나무가 더 어려울까 라고 생각을 해 본다면, 당연히 불상나무죠.

타이어나무는 뿌리쪽을 뽑아 타이어 집어 넣고 다시 심으면 저런 모양 비슷하게는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이런식으로 나무전체가 담벼락이나 건물을 감싸 안고 있는 형태도, 나무 뽑아서 어찌어찌 한다고 되는 부분이 아니죠. “좋은 세월”이 흘러야만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조직이나 스포츠팀에서도 경력이 많은 고참과 젊은 사람들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젊은 사람들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어떤 부분은 세월이 흘러 쌓여야만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거든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40대 이상의 분들은 아마도 느끼실 겁니다. 본인들의 20대 30대때 생각과 행동들이 얼마나 부족함과 아쉬움이 많았는지. 그리고 그 나이때에는 경험이 없어 그럴 수 밖에 없었음을 아실 겁니다. 

여기 태국의 옛수도 아유타야의 유적지에서는 미얀마왕조와의 전쟁의 상흔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불상들의 머리가 잘려져 나가 있는걸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을 하는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죠. 좋은 경력을 가진 고참이나 지휘관이 필요하죠. 아무리 신체능력이 뛰어난 신참만으로는 전쟁에서 이기기가 힘듭니다. 

제가 군복무시절, 90년대 초반, 연세대후문쪽과 명동롯데백화점 앞쪽에서 시위를 막은 적이 있는데요. 당시 부산에서 거의 주말마다 시위진압을 위해 나갔었지만 당시 서울 연세대 시위규모가 너무 커서 부산을 비롯 전국각지에서 지원을 나갔었습니다. 

낯선? 서울, 그것도 시위가 극렬하다고 하는 연세대쪽에 방패들고 서 있으니 좀 무서웠습니다. 당시 가장 막내군번 이었거든요. 방패너머로 대학생들이 쇠파이프 들고 있으니 엄청 긴장이 되었는데, 처음으로 고참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확실히 고참은 고참이더군요. 뒤에서 계속 겁먹지 말고 쫄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방패 잘 들고, 대학생들이 공격해 들어오더라도 뒤에 고참들이 있으니 방패조는 대열무너지지 말고 라면서 계속 분위기를 잡았습니다. 

또한, 대학생들을 향해서도 도발?까지 하면서 들어올테면 들어오라고 소리를 치니까 당시 연세대후문과 명동롯데백화점 앞도로에서 고참들의 필요성이 느껴지더군요.  물론 그 외에는 맨날 고참들에게 구타당하던 시절이라 싫었지만 딱, 그 두번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네요.

시위진압을 거의 주말마다 나갔고, 한번은 울산현대노동자 파업으로 15일인가? 인근 학교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시위진압을 나갔던 것 같은데, 그런것도 이제 세월이 지나니까 그런 시위진압을 나갔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 하네요. 정작 시위진압의 힘듬 보다는, 아침/저녁 고참들에게 구타당하던 고통이 더 커서 그런가 봅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큰일날뻔한 군대이야기는.

  1. 연세대 후문 방어할 때 개인에게 수류탄형 최루탄 2개씩을 지급해 줬는데, 저는 그걸 어떻게 몸에 지니는지 몰라 옷에 대충 걸쳐 두었다가 이동중 떨어뜨렸는데, 주위에 있던 다른 중대원이 주워준일… 아마 그거 분실했으면 그날 밤은 물론이고 며칠동안 갈비뼈 몇 개 나갈 정도로 구타를 당하고 어쩌면 영창 갔었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구타하면서 심한 부상을 당하는 부대원들이 많았습니다)
  2. 토요일 오후 부산남포동쪽 시위진압을 나갔었는데, 그날 자기가 챙기는 고참의 판쵸우의 꼭 챙기라고 했었나 보더군요. 그런데 저는 그 지시를 분명히 못 들었거든요. 그 당시는 거의 막내라 병장의 판쵸우의를 안 챙긴다는건 뭐 있을 수도 없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출동을 나갔는데, 아니나다를까 토요일 오후가 되니 예보대로 빗방울이 떨어지더군요. 그래서 진압복위에 판쵸우의 착용명령이 떨어졌는데, 제가 챙기는 고참만 판쵸우의가 없었습니다. 제가 안 챙긴거죠.

그 순간… 오늘밤 점호시간에 죽도록 맞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는데, 다행히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었고 또 제가 챙기는 그 고참이 약간 좀 멋을 부리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의경부대에는 기율경 이라고 무전기 몇 개 몸에 차고 있으면서 중대장의 지시를 무전으로 지시하는 약간은 특수위치라서 다른 대원과는 달리 청바지에 사복을 입고 머리도 좀 기를 수 있는 그런 위치였습니다. 그래서 칙칙하고 냄새나는 판쵸우의 입는걸 싫어했거든요. 그 날 그 고참이 ‘나는 판쵸우의 냄새나서 싫다. 안 입어도 된다” 라고 해서 소위 상병급들이 그냥 넘어간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날 만약 그 병장이 상병에게 한마디 했으면 부대복귀해서 적어도 갈비뼈 한두개 정도 날아갈 정도로 군화발로 차였을텐데 말이죠.

갑자기 군대이야기 나와서 이야기가 살짝 샜습니다. 

중국리튬배터리업체와 한국출장을 갔었는데요.

지난주 모기업의 품질이슈로 한국출장을 갔었는데, 당시 리튬배터리공장의 직원도 왔었습니다. 리튬배터리쪽 이슈로 추정이 되는 품질이슈였거든요. 

그 배터리공장 직원이 배터리를 분해해서 확인해 보는데, 실내에서 하기에는 위험하다고 해서 외부로 나와 분해작업을 했었습니다. 

저보고 배터리를 분해하고 담을 물을 가져다 달라고 하더군요. 저 내부의 화학물질들이 위험물질이라 반드시 저렇게 물에 담궈야 한다고 했습니다. 물에 닿자 마자 거품이 심하게 발생을 하더군요.

아무튼 지난주 한국출장가서 중국배터리업체 담당자와 만나 이런저런 일을 하고 왔는데, 이번주에 한국의 배터리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네요.

중국담당자에게 물어보니 간혹 배터리분해작업 하다가 구토를 하는 작업자들은 있었다고 하더군요.

한국출장 마치고 대만귀국 했습니다

6일간의 한국출장을 마치고 대만으로 귀국을 했습니다. 늘 그랬듯이, 한국을 가면 출장가는 느낌, 여행하는 느낌이 들고, 대만 오면 내 집에 돌아왔다는 느낌이 듭니다.

말씀드린대로 모대만기업의 대규모품질이슈로 인해 납품했던 한국으로 가서 현지대응 했습니다. 저는 그 회사의 현지업무를 도와주러 간, 프리랜서? / 에이전트 역활이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업무경험이 쌓여서인지, 내가 해 보지 않은 제품, 내가 일을 해 보지 않은 공장의 업무도 대충 눈에 다 들어 오더군요. 심지어는 공장측에서 저렇게 대응하면 안 되는데, 라는 부분까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저는 사회초년생부터 엔지니어를 데리고 다니는 출장업무, 엔지니어와 함께 하는 업무미팅을 많이 해 와서 이번처럼 엔지니어와 함께하는 이런 류의 업무는 뭐  나름 경험이 많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업무를 해 오면서 주변의 PM(Project Manager), 영업 등을 보면 책상, 모니터에서 위주로 업무를 해 오다보니 현장경험이나 제조공장 현장업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꼭, 이런 직업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우리 삶에서도 인생을 딱 정해진 루틴에서 안전하게만 살아온 사람들이 있는 반면, 많은 경험과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산전수전 경험한 그런 삶도 있습니다. 

최근에 이런저런 업무를 하면서 보다보면 확실히, ‘경험’ 특히 ‘압도적인 경험’ 은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경험이 많이 없거나 책상/모니터 에서만 업무를 하는 직원들과 업무를 해 보면 그런 것들이 느껴 집니다. 

중국, 대만 직원들이 ‘한국치킨’ 을 먹고 싶다고 해서 교촌치킨에 갔는데요. 교촌간장치킨은 이전의 그 ‘감동?’ 이 없더군요. 이전의 교촌간장치킨 하면 압도적이었는데 말이죠. 이번에 먹으면서 좀 밍밍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런 맛이 어서 살짝 실망했습니다. 

A라는 회사의 품질이슈 업무 도와주러 한국 와 있는데, B라는 회사 전직장 동료가 자기공장 품질이슈에 대해 저에게 물어보더군요. 어떻게 고객사에게 대응리포터를 써야 할 지 모르겠다면서…  제가 해 보지 않은 제품이고, 그 회사 제조/품질 프로세스를 모르지만 품질이슈 내용을 들어보니 어느 프로세스와 어느 프로세스를 점검하고, 거기 관리 SOP 및 관리데이터 확인하고 또, 고객사 쪽에는 어떤 부분 확인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는 보이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조언을 해 주었더니 그 다음날 그렇게 해서 효과를 봤다고 감사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동시에 2 곳의 품질이슈를 점검해  주는 (내 주 업무도 아니면서) 일을 했네요.  

압도적인 경험  에서 나오는 거죠.

100원 이라는 예산으로 칫솔과 치약을 사라고 하면 저는 칫솔 80 : 치약 20 으로 소비를 합니다. 칫솔과 칫솔질이 치약보다는 훨씬 중요하니까요.

대만에는 이 칫솔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쟤를 오래 사용해서인지 손잡이, 칫솔모 등등이 제가 가장 익숙한데, 다른 칫솔들은 사용하기가 좀 불편합니다. 모가 괜찮다 싶으면 손잡이가 좀 불편하고, 모와 손잡이가 괜찮다 싶으면 저 목부위가 너무 약해서 전체가 휘어 버리고. 

그래서 가끔 한국가면 제가 평소 사용하는 칫솔을 한번에 구입을 해 오는 편입니다. 

그리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저는 대충 한달에 한두번은 칫솔을 교체하거든요. 2주? 3주? 한달을 넘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양치를 하루에 3~4회는 꼭 하니까요.  그런데 3개월마다 교체하라니… 저 칫솔 내구성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습니다. 대략 2주 3주 정도면 칫솔모가 누워 버리거든요.  누운 칫솔모는 양치효과가 확실히 떨어진다는 건 많은 치과의사들이 이미 입증을 한 부분입니다.  

돈만 아주 많다면 칫솔은 2주에 한번 정도 바꾸고 싶을 정도이거든요.

이전에는 한국오면 제가 좋아했던 던킨도너츠 에서 커피와 도넛 한번씩 먹었는데, 이제는 SPC는 불매를 해 줘야 할 것 같아서 최근에는 안가게 되더군요. 특히 인천공항에서도 그 던킨도너츠 매장에서 앉아 비행기 기다릴 때도 있었는데, 당분간은 SPC 니까 불매를 해 줍니다. 

덕분에 공항에서 늘 소비하던 5000원 아낄 수 있었습니다. 

타오위안공항에서 고속철도를 타고 대만중부 운림까지 와서 거기서 택시를 타고 집에까지 왔는데요.

약간 연세가 있으신 택시기사분께서 내려서 캐리어도 실어 주시고, 라디오를 들으시다가 제가 탑승을 하니 뭔가 고상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줘서 주변의 논밭을 바라보며 잠시 감상에 젖어 드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요.

저 영상 이전에 수차례 저렇게 고개를 떨구어서 졸음운전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대학졸업 할 때쯤 IMF 가 터졌었죠. 그래서 학교가기전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우유배달을 해야만 했었습니다. 3시 30분 부터 일어나 우유배달 하고 집에오면 7시전후. 그리고 저녁에는 수금을 하러 돌아야 했구요.  암튼 그렇게 우유배달하던 지역에 중고등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교무실에 선생님들이 출근하기 전에 우유, 요쿠르트 책상에 올려 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수금을 하려고 여자영어선생님과 직접 마주친 적이 있는데, 정말 어리더군요. 저는 군대도 다녀 오고 휴학도 두번인가 하고 해서 졸업이 좀 늦은 편이었으니까요.

그 때 처음으로 ‘선생님’ 이라는 사람이 그냥 보통의 직업군 중 하나. 특히 저 영어선생님도 내 주변의 선후배 중 학교에서 공부 좀 잘 하고 교원자격증 따서 저 위치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 이라는 생각이 들자, 어린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선생님’ 이라는 경외심이 한번에 사라지더군요. 

좋게 말하면, ‘선생님’ 이라는 직업도 별거 아니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업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열심히 하면 선생님보다 더 잘 할 수 있겠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제조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그 당시에는 차장/부장급 혹은 임원급 하면 뭐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 제조업의 품질부서 사람들은 아주 대단한 지식, 재능 이 있는 사람이구나 막연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는데요.

최근에 그 쪽 사람들 보면, 또 다 고만고만 한 능력치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장에서 차장 부장 이라고 해 봤자, 그냥 거기서 반평생 딱 그일만 해오다 보니 지식이나 사고가 편협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찌보면 월급쟁이의 한계 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안주하게 되거든요. 매너리즘에 빠져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지도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그릇은 딱 밥그릇 정도 크기인데, 그나마 기존에 알고 있던 오래된 지식은 비우고 새로운 지식으로라도 배워서 채워 넣어야 할텐데, 많은 공장의 소위 엔지니어 라는 사람들이 보면 그나마 가지고 있는 밥그릇 이라도 챙기려고 그걸 비우지 않고, 끌고 안고 그걸로만 평생 그 조직에서 자기 자리 유지하려 하니 발전이 없는거죠.

내가 알던 그 작은 밥그릇에 담긴 걸 빨리 비워서 그건 아랫사람이 하도록 전수해 주고 나는 새로운 걸 담아서 그걸로 더 발전된 일을 해야 하는데, 월급쟁이 타성에 빠지면 그게 안 되고, 그렇지 못 한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러다보니 조금의 외부변화에 어려워 하고 힘들어 하고 그 직장을 그만두면 할 것이 없다고 두려워 하는 것이죠.

택시를 20년 몰았다고 ‘미하헬 슈마허’ 처럼 되지 않습니다.

대만기업 출장업무 지원하러 한국출장왔습니다

한국에 출장을 왔습니다. 최근 몇년간 한국 올 때, 인천공항으로만 오다가 오랜만에 김포공항으로 입국을 했네요. 김포공항은 항공편이 적어 수속이 빠를 줄 알았는데, 함께 온 외국인들은 거의/체감상/기분상? 한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저는 자동수속기계를 이용해서 빨리 나와 기다렸는데, 외국인들 쪽 줄은 엄청 길더군요.  사람들이 너무 오래 나오지 않아 수하물 컨베이어벨트가 돌지도 못 하고 저렇게 대기를 하다가 급기야는 항공사직원들이 수하물들을 내려 놓기까지 했습니다. 김포공항은 항공편이 적어 수속 빠를 거라고 외국인직원들에게 이야기를 했었는데 살짝 머쓱해진 순간이었습니다. 

대만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이 오전이었는데, 제가 사는 중부지방에서 고속철도를 타도 그 시간을 못 맞출 것 같더군요. 그래서 출장당일 저녁 타이베이로 가서 1박을 하고 공항을 갔네요. 공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면 오전항공편 타려면 근처에서 1박을 해야 겠더군요.

이번 출장의 목적은 모대만기업의 한국출장업무 서포트 인데요. 프리랜서 형태로 그 기업으로부터 항공권, 출장비 전액, 인건비 등등을 받고 오는 형태라 평소 회사에 소속된 출장과는 조금 성격이 다른 출장입니다. 

올해초 모대만기업의 한국어통역업무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요청한 금액보다 더 많이 통역비를 줘서 감사했었는데, 여기 대만기업도 제가 요청한 비용에 대해서 모두 받아줘서 기분좋게 출장을 올 수 있었습니다. 

저도 한국에서 차량을 수배해서 고객사방문을 했는데요. 차량의 기어가 핸들 오른편에 붙어 있는 형태더군요. R N D 보이시죠?

사실 저는 노파워핸들, 수동, 핸들 오른편에 기어변속기가 붙은 수동차량, 등등도 운전을 해 보았고, 이전 수동차량중에도 후진기어가 5단 우측에 있는 것도 있고, 1단 좌측에 있는 것도 있는데 그런 차량들도 운전을 한 경험이 있으며, 어렴풋이 기억으로는 기어변속기의 손잡이 부분을 들어 올려 후진으로 변경하는 차량도 있었는데, 무튼 뭐 그런 차들도 운전을 한 경험이 있어서 차를 타는 순간, 이거 뭐지? 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바로 적응이 되더군요.

(**노파워핸들 모르시거나 운전해 보지 않은 분도 계실 것 같은데요. 요즘 차량에는 기본인 파워핸들, 손가락 하나로 걸어도 핸들이 돌아가는 이 기능이 이전에는 무려 옵션인 적도 있었고, 이 기능 없는 차량도 많았죠. 저는 운전을 그런 차량으로 시작해서인지 노파워핸들도 무리없이 운전을 했었습니다)

저는 태국가면 공항에서 바로 운전을 하는데, 오히려 좌핸들 차량 운전도 이제는 낯설지가 않은데, 한국에서 운전하는 것이 살짝 낯설어 대략 10분간 시내도로에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우회전방법 바뀌었잖아요.

저는 유럽에 출장 과 여행 갔을때도 공항에서 렌트해서 운전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대략 30분 정도 차와 도로, 도로표지판 등등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 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 제가 있는 대만중부는 비가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했고, 타이베이는 우중충한 비내리는 날씨가 지속되고 있는데요. 이른 아침 공항 가려고 나오는데, 한증막에 있는 것처럼 습하면서 더운 열기가 온 몸을 감쌌는데, 확실히 한국은 대만에 비하면 습도가 낮아 상쾌한 느낌이더군요. 

최근 대만은 비가 내려도 시원하지 않는 그런 기온입니다. 

열악한 한국음식 환경인 대만에서 살다가 한국에 와서 제대로 된 삼겹살을 첫날 먹었습니다. 이런 삼겹살이 바로 제가 원하는 삼겹살인데요. 대만의 유사한국식당에서는 이런 삼겹살을 찾기가 너무나 힘듭니다. 

대만기업의 한국출장업무지원을 위해 출장을 오니 제가 직접 회사소속으로 제 업무를 위해 출장을 오던 것과는 확연히 부담이 다릅니다. 지금 출장을 온 대만직원들은 업무부담과 책임이 상당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지원하러 오다보니 ‘출장을 이렇게 마음편히 와도 되나?’ 라는 익숙치 않은 불안함? 이 되려 있네요. 반평생 출장=책임감/실적 이라는 마음으로 출장을 다녔으니까요.

 

친절하는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는 문구

저의 카페손님분이 입고온 티셔츠 문구를 찍어 보았습니다. 

it costs $0.00 to be a nice person.

좋은 사람 되는 것에는 돈 안 들어.

인데요. 태국여행중에 구매를 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저의 손님들과 자영업을 할 때 저의 직원들에게 엄청 잘 대하려고 노력을 했었거든요. 왜냐하면 저의 손님과 저의 직원이 저에게 돈을 가져다 주는 사람들이잖아요.

며칠전 저의 카페손님께서 고양이 네마리를 데리고 왔습니다. 저의 고양이 세녀석은 홈그라운드 임에도 무섭다고 숨어 있었습니다. 

무튼 저는 저의 카페에 사람이 방문을 하든 고양이가 방문을 하든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려고 늘 노력을 합니다. 

저의 카페 후기를 보시면 ‘친절’ 이라는 단어가 많다는 걸 보실 수 있는데요.

저의 카페후기 보러가기(링크)

이 고양이는 거의 강아지더군요. 사람에게 엄청 달라 붙고 사람손길 좋아했습니다. 

카페나 식당 이런걸 할 때, 돈이 많아서 좋은 위치나, 와서 사진 찍고 싶어하는 멋진 인테리어로 꾸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하기는 아직 어렵습니다. 그래서 돈 안 들이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친절’ 이고 ‘청결’ 이라 생각을 해서 늘 손님들에게 잘 대하려 합니다. 

이전 중국에서 사업할 때는 저의 직원들에게도 정말 잘 대해 주려고 했었습니다. 저에게 돈을 가져다 주는 사람들인데 잘 못 할 이유가 없잖아요. 

카페운영뿐 아니라, 인생도 불필요하게 너무 사람들에게 날을 세울 필요가 없거든요. 얼마전 호텔로비에서 호텔직원+사장이 투숙객을 응대하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약이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분이 말투에 엄청 날이 서 있더군요. 자기는 분명 예약을 했다. 그런데 왜 안 되어 있다고 하냐?

그런데 호텔측은 예약정보가 확인이 안 되고, 그래서 예약을 했던 웹싸이트(아고다, 부킹닷컴 등을 통해 예약을 한 것 같더군요)에 예약확인을 해 봐라. 호텔측에서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 맞는 말이죠. 호텔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냥 그 투숙객이 자기가 예약을 했다는 웹싸이트와 확인을 하면 되는건데, 계속 호텔에다가 불평을 하면서 소리를 지르더군요. 처음부터 말투자체가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짜증을 내거나 하는 그런 스타일이었습니다. 

주변에 보면 불필요하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거나 사람들에게 명령조로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죠.

요즘 대만 파인애플이 정말 맛있습니다. 너무 자주 이야기해서 죄송하지만… 대만와서 파인애플이 단과일 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걸 먹으면서 제 아내하고 감탄을 했습니다. 신맛이 전혀 없고 달더군요.

살면서 인간관계에서 약간의 신맛도 필요는 하겠지만, 불필요하게 신맛만 나거나 너무 지나치게 신맛만 날 필요도 없죠.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맛을 좋아하거든요.

친절한데 돈 들지 않는다는 문구를 오늘 보고 한 번 소개를 해 봅니다. 

연탄난로 옆에서 먹은 시골느낌 자장면

가끔 한국들어가면 대체로 뼈다귀해장국은 꼭 먹는 편입니다. 뼈다귀해장국에 나오는 김치와 깍두기, 그리고 뼈다귀해장국의 그 국물맛은 해외에서는 잘 맛보기 어렵거든요.

그 다음으로는 자장면을 종종 먹는 편인데요. 저는 해외살면서 대체로는 현지음식 위주로 먹는 편이라 한국음식에 집착하거나 한국음식 없으면 못 사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지만 가끔은 한국음식이 그리울때가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 여행하다가 좀 오래된 느낌의 그런 중국식당을 들어 갔는데요. 연탄난로가 있더군요.

저 짧은 집게는 또 오랜만에 봅니다. 긴 집게는 어릴때 집에 한두개는 꼭 있는 아이템이었거든요.

식당의 느낌이 20~30년전 시간여행을 한 그런 내부였습니다. 

거기다가 보리차까지 완벽합니다. 

날씨가 추워서 따끈한 짬뽕도 땡기더군요.

양도 푸짐하고…

더 놀라운건 주문을 하니까 사장님께서 직접 면을 반죽해서 뽑으시더군요.

그리고 여기 말고 다른 중국집을 갔었는데요.

저는 동묘쪽은 많이 가보질 않았는데, 지난번 태국손님 한국가이드 할 때 숙소가 동묘쪽이라 거기서 며칠 지냈었거든요.

동묘에는 정말 연세 많으신 분들이 많더군요. 이 중국집은 연세 많으신 어른들 점심한끼 하는 곳으로 소문이 난 곳인지, 들어가니까 제가 가장 어린 것 같더군요.

양은 많으면서 가격이 최근 자장면 시세보다 싸서 노인분들이 많이 오시는 것 같습니다. 

가격이 저렴한만큼 내부는 그냥저냥 오래된 느낌입니다. 동묘 그 지역의 느낌이 좀 오래된 그런 느낌이더군요. 

노인인구비율이 많다는 이야기는 많이 듣고, 수치는 많이 봤지만, 동묘를 가니까 정말 노인들의 비율이 많았습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어떻게 살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자장면 한그릇 먹은 것이 뭐 이렇게까지 글로 적을 일인가 싶겠지만, 해외에 살고 있으면 한국에서는 쉽게 먹을수 있는 자장면도 먹기가 힘들어서 생각이 많이 날 때도 있구요. 또 이번에 한국여행하다가 간 곳은 정말 이전 시골스런 느낌이 간직된 그런 곳이라 더 특별했습니다. 

이전에는 김포공항 쇼핑몰내에 깔끔하지만 좀 비싼 그런 곳에서 양도 얼마 안 되는 그런 자장면을 간단히 먹고 나오곤 했었거든요.

 

고려시대의 돌다리, 진천농다리

제가 늘 말씀을 드리지만, 내가 사는 곳 주변부터 천천히 걸어보는 것이 여행의 시작이죠. 평소 내가 사는 곳 주변부터 돌아보지도 않으면서 해.외.여.행. 만이 여행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딱 이 맘때 4월 중순에 가기 좋은 곳을 소개해 봅니다. 벚꽃으로 유명한 곳들은 많이들 아실테니, 그나마 덜 유명하지만 느낌이 좋은 곳을 소개해 봅니다. 

진천농다리.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다리라고 합니다. 다리의 느낌도 독특하고 주변 풍경도 고즈늑하니 아주 좋습니다. 

저는 차이컬쳐에서 대체로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곳들이나 주택가, 사람들이 아주 많이 찾지 않는 곳들을 많이 소개했었는데요. 이유는 일단 유명한 관광지는 다른 사람들이 너도나도 소개를 많이 하니까요.

농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저는 꽃들이 많이 피었던 4월에 갔는데요. 다양한 꽃들이 많이 피어서 좋았습니다. 매년 꽃들이 피는 시기는 조금씩 다르니까 일정 맞추어 가시면 좋을 것 같네요.

도시에 살면, 이런 풍경 접하기가 쉽지 않죠. 그리고 수도권에 살면 어느 공원을 가나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벚꽃축제에서나 볼 수 있는 엄청난 수의 꽃은 아니지만 좋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뭔가 토속적인 조형물도 있네요.

농다리 뒷편으로 호수도 있고, 산책로가 잘 되어 있으니 산책로 따라 걸으시면 됩니다. 

등산로 언덕에서 내려다 본 농다리 입니다. 

사진 잘 찍는 분이 가셔서 찍으시면 멋진 작품이 나올 것 같습니다. 

꽃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종이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걸으며 다양한 형태의 나무를 보여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얼핏보면 그냥 다리이지만 돌 하나하나를 저렇게 쌓아 다리를 만든 모습은 흔하지 않습니다. 

풍경이 참 아름답죠.

뭐 차이컬쳐에서 종종 대만, 태국, 중국의 어느 풍경이라면서 소개하는 그런 곳보다 더 느낌이 있고 아름답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은 한국의 어느 지역에 사는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진천은 지리적으로 한국의 중앙부라 접근성도 그다지 나쁘지 않겠네요.

전선만 없으면 고려시대 선조들이 거닐던 풍경의 느낌이 납니다. 

저는 여행을 하면 이런 나무 하나하나도 눈여겨 보는 편이거든요. 거창한 거대 유적지나 대형 자이언트트리 가 이 나무보다는 더 크고 웅장한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살면서 그런 곳들을 매달, 분기별, 해마다 갈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주변의 작은 것들에서 행복을 느끼고 만족을 느끼는 것도 필요합니다. 

진해, 경주 같은 벚꽃은 아니더라도 은근한 아름다움이 있죠. 

 

제 아내도 여기는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겨울에 눈이 내렸을때 다시 한 번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멀리 해외여행 가는 것도 좋지만, 내 집에서 가까운, 많은 돈을 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그런 여행을 하시면 좋습니다. 

차이컬쳐에 올리는 많은 여행지들이 ‘일부러 거기 가기 위해 해외여행’ 한 것이 아니라 제가 거주하고 있는 주변의 모습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