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여만에 태국에서 대만으로 돌아왔습니다. 3주동안 태국-한국-태국 이렇게 돌아다니다보니 마음은 엄청 오래 집을 떠난 듯 한데, 막상 대만집을 돌아와보니 기존일상과 똑같습니다. 그동안 달라진건 이웃집 아저씨가 저렇게 분재를 해서 놓아 두었네요.
저 이웃집아저씨가 나무가지고 뭘 만드는걸 좋아하고 또 특이하게 생긴 나무를 어디서 구해와서 다듬어 놓곤 했습니다. 기존에도 자신의 집에 몇그루 분재를 해서 놓아두곤 했는데, 이번에 이렇게 다량의 분재를 만들었네요.
판매의 목적인지 개인감상용인지는 모르겠지만 화분화초 가꾸는 것이 생활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거든요.
태국은 연일 35도가 넘는 무더위였는데, 한국가니 눈발이 내릴 정도로 추웠다가 다시 태국가서 35도의 무더위를 경험하다가 대만에 도착을 하니 아주 상쾌한 20도 전후의 상쾌한 가을날씨가 펼쳐지더군요.
그리고 방콕의 그 복잡한 사람들, 차량들, 뚝뚝이, 오토바이들 속에서 지내다가 저의 대만집으로 오니 뭔가 딴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타오위안공항에서 고속철도를 타고 가는데, 한무리의 초,중,고등학생들이 인솔교사와 함께 큰 배낭을 메고 탑승을 하더군요. 모두 등산을 한 듯 큰 배낭과 흙에 젖은 등산화가 있었습니다.
옆에 앉은 학생에게 물어보니 3박4일로 등산하고 야영을 했다고 하더군요. 밤에는 꽤 추웠다고 했습니다.
태국에서도 저런 배낭을 멘 여행객들을 많이 봤거든요. 살다보니 언젠가부터 바퀴달린 케리어만 끌고 여행을 했지, 저런 배낭 안 메어 본지 꽤 되었구나 라는 생각을 기차에서 잠시 해 보았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젊은시절의 기분을 낼 수 있는 배낭메고 하는 여행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저의 차이컬쳐 메인페이지에 있는 그 그림도 앞뒤로 배낭을 메고 여행할 때 찍은 사진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거든요.
기존에는 그냥 광동성에서 온 사람으로 퉁쳐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광동성에서도 저렇게 지역을 나누어 구분한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당시에 이런 형태의 범선을 타고 동남아등지로 무역을 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무역을 하다가 난파를 당해 실종된 사람도 많고, 그 당시에 각 나라별로 난파된 사람들을 모아서 관리하는 곳들도 있었다고 하구요.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일본, 청 등지로 해상무역을 하던 사람도 있고, 그 와중에는 난파를 당해 일본-필리핀 으로 일찍부터 해외의 발달된 문물을 보고 온 조선사람들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도 좀 더 일찍부터 청/일분뿐 아니라 더 넓은 세계로 해상무역에 눈을 떴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죠. 네델란드표류인이 자국에는 대형선박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고 하자 허풍이라고 조선왕뿐아니라 고위관리들이 비웃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바로 위 사진을 보면 남자는 중화권사람이고 여자는 태국쪽 사람인 것 같습니다. 보통 태국쪽 여자들이 저렇게 옷을 입으니까요. 그리고 저 당시에 중화권-태국사람간의 혼인도 있었다고 하며 1909년도 부터인가 아버지가 중국사람이면 해외에서 출생한 아이도 중국국적을 따르게 한다는 법이 제정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화라는 것은 대체로 한쪽방향으로만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서로가 영향을 받기도 하고, 어떨때는 두개의 다른문화속에서 다른 형태의 문화가 형성이 되기도 하죠. 언어도 마찬가지로 두개의 다른 언어가 공존하는 지역에서는 상호간섭을 일으키기도 하고, 기존에 없던 언어나 문자형태가 생성된다고도 합니다.
당시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의 삶은 많이 힘들고 고달펐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기술이 안 되어 있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집떠나서 객지에 사는 것 만으로도 힘든데, 이런 먼 해외에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삶은 지금의 저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형으로 잘 묘사를 해 두었네요. 그 당시의 병원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육체노동자들이 혼자살면서 병치레 하는 경우가 많아 중화식병원을 설립해서 운영을 했다고 합니다.
약탕기가 있는걸 봐서는 중의의원 인 것 같네요.
아울러 늘어나는 중화권이주자들의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학교도 설립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태국 전역에 여행을 하다보면 오래된 화교학교들이 약간은 뜬금없는 지역에 있는걸 볼 수 있는데요. 무언가 그 지역에 수요가 있으니 화교학교를 만들었겠죠.
한국에도 인천과 부산에 보면 화교학교가 있듯이 말이죠.
저 인형모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사람들의 탁구사랑…
중국의 시골학교들 가보면 운동장에 대부분 탁구대가 있습니다 문제는 야외탁구대라서 바람불면 좀 치기가 힘들고, 또 큰 돌을 사각형으로 만들어 탁구대로 사용하는데 표면도 울퉁불퉁해서 이런 환경에서 어릴때부터 탁구를 연습하니까 수많은 고수들이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게 합니다.(농담입니다)
그러면서 중화식 절도 많이 설립을 한 것 같구요. 확실히 태국에서도 중화식 절과 태국식 절은 확연히 다르죠.
그러면서 이런 연극공연장도 생겨나서 여가생활을 보낼 수 있는 환경도 점차 마련이 된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도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빈부의 격차가 있어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의 집과 가난한 사람들의 집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태국전역 돌아다니다보면 볼 수 있습니다. 조만간 230년된 중화권 부자집의 주택을 한 번 소개해 보겠습니다.
방콕 차이나타운 하면 저 위의 사진거리가 대표거리풍경이죠. 야경이 멋진 거리인데요. 저 거리를 The Gold Road 라고 하는데 실제로 금을 매매하는 가게가 많습니다. 달리 황금거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금매매를 많이 했던 것 같네요.
금매매가게도 저렇게 모형으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금은 현금이상의 가치를 가집니다. 태국의 불상들 중에 금으로 만든 것들은 도난을 피하기 위해 겉에 다른 재료로 위장을 해 두는데, 그래서 불상의 머리를 많이 약탈했다고도 합니다. 아시는분도 많겠지만… 태국에서 불상머리 매매는 범죄행위입니다.
저 시대의 사진기록이 많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태국에서 중화권 사람들의 생활상은 어딜가나 저런 사진기록으로도 엿볼수 있어서 나름 고증하기는 쉬울 것 같습니다.
아래사진은 태국에 살고 있는 화교들의 직업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네요.
그 당시 태국에서 발급한 비자인데요. 기록을 보니 10밧인가?로 2년간 거류비자를 발급했다는 기록도 있고, 비자발급을 위한 인세도 20~400밧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날 여기서 이런저런 이전 기록에 대한 설명을 읽어 보았는데, 이민1세대 중화권사람들의 삶은 엄청 힘들었다고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원래 이민1세대는 고생하는 세대이고 2세대 3세대는 그걸 누리는 세대라고도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가끔 1900년대 전후의 중국상해지역, 광동/홍콩지역, 또 태국, 말레이시아 지역의 삶으로 돌아가서 살아 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기는 합니다. 그건 제가 중화권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일 수도 있는데요.
만약 제가 100년전 200년전 저 당시 사람이었고, 중국본토의 삶이 시궁창이었다고 한다면 저 역시도 어딘가로 떠나서 인생을 개척하려 했을 것 같습니다. 저의 성향상…
저 당시 아편전쟁 패배로 청나라는 국고를 채우려고 백성들을 상대로 세금도 많이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삶이 아주 피폐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정부는 국민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는 정책을 사용했는데, 상대적으로 북경에서 먼 광동 및 남쪽까지는 그렇게 제한할 수 없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저 여자분의 이름은 木 木 燕 이 아니라 林燕 인 것 같습니다. 나무목木 2개를 좀 더 붙여써야 할 것 같은데… 본인이 직접 썼다면 교육을 많이 못 받은 사람이었거나, 한자를 평소에 많이 써 보지 않은 태국사람이 저 문서를 작성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燕은 제비 라는 뜻이고, 이전에 황제의 딸 이라는 TV 드라마에서 딸의 이름도 저 燕 이 있었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여기 태국의 대중국수출물품 중 하나에 제비집이 있었다고 하죠.
그래서 방콕 차이나타운에 가면 이 제비집 파는 상점과 제비집요리식당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 제비집은 해안가에 사는 제비의 집으로 우리 시골에서 사는 그 제비집과는 다릅니다. 주로 해안가의 생물과 본인들의 침을 섞어 만들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공급량이 극히 적고 채집하기가 어려워 가격이 비싼 것이지, 뭐 딱히 약용효과는 없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한번 제비집요리를 먹어 보았습니다.
잠시나마 100년 200년전으로 태국이주한 중화권사람들의 삶으로 시간여행을 한 김에,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화권느낌 물씬나는 카페에서 음료도 마시고. 빵도 먹었는데요. 저 빵에 제공된 저 소스가 너무나 맛있더군요.
자칫했으면 하나 더 시켜 먹을뻔 했습니다. 저의 대만카페메뉴로 만들어 볼 생각으로 이미 만드는 법은 배웠습니다.
다시 첫번째 사진으로 돌아가서…
그 당시의 삶이 얼머나 힘들었으면, 중간의 하늘색옷 입은 여자분은 시장통 한가운데서 쓰러져 있습니다.
오늘은 태국에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게 된 역사적배경과 그들의 삶을 짧게나마 훑어보았습니다.
뭐가 어찌되었던간에 내 나라를 떠나 외국에서 정착하고 살아간다는 건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어려운 환경에 어쩔 수 없이 떠밀려 해외로 나온 사람들도 있을거구요.
방콕 차이나타운에 오시게 되면 이런 역사적배경도 생각하시면서 둘러보시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숙소에서 간단히 인사만 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여자분이 “나 이 소주 즐겨마신다. 함께 마실래?” 하면서 제 앞에 앉더군요. 저는 원래 술을 마시지 않지만, 밤10시 넘어 여자분이 술을 가지고 왔다는건 뭔가 함께 ‘대화’를 할 상대가 필요한 것이 아니겠나 라는 생각에 저도 함께 마셨습니다.
처음 저 여자분을 봤을때, 팔, 손목, 몸통, 종아리 등등 온 몸에 문신이 있어서 뭔가 성격이 과격?할 거라는 그런 선입견이 조금 있었습니다. 종아리 뒷쪽에 일본사무라이얼굴인지 일본가부키여성얼굴인지 가 크게 그려져 있어서 더 그랬는지 모릅니다. 특히..
양쪽귀에 위의 사진속 머리묶은 남자처럼 귀에다가 링을 넣은걸 하고 있어서 뭔가 펑키스타일? 반항적인 성격? 같은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동남아국가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잠시 비자문제로 방콕에 왔다고 하더군요. 무튼…
제 앞에 큰 잔을 두고 술을 따라 주면서
“한국영화 많이 보는데, 한국 꼭 가보고 싶다. 한국은 뭔가 낭만적이고 특별한 느낌이 있는 나라이다” 라고 하더군요.
제가 외국에서 많이 듣는 말이죠. ‘한국남자 잘 생겼다. 한국남자 로맨틱하다’ 다 그렇지 않다고 반박은 합니다.
한국소주 중 오리지널맛은 안 마시고 이 요구르트맛 소주만 마신다고 하더라구요. 잔을 들어올리며 “한국어로 술잔 부딪히면서 하는말 뭐지? 영화에서 자주 봤는데” 라고 하길래 ‘건배’ 라고 해 주니 곧잘 따라하더군요.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인생살이 이야기를 하더군요. 저는 주로 들어주는 역할이었습니다. 외모와는 달리 말투나 생각이 뭐 ‘난 이 세상의 모든 규칙을 파괴하겠어’ 는 아니더군요. 그냥 집을 떠나 이렇게 세계를 돌아다니며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부류이더군요. 저의 크리미아 친구와 너무나도 비슷한 삶을 살고 있네요.
저의 크리미아친구 유튜브캡쳐입니다. 이 친구도 지금 베트남에서 영어 가르치며 지금까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살고 있는데요. 중국-태국-영국-베트남… 곧 러시아 가서 1년살기 하고 나서 다시 다른 나라로 갈 계획을 세우고 있던데, 제가 대만에 와서 나랑함께 어학가르치자 라고 하니까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 보겠다고…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죠. 지금 저의 대만카페에서 영어가르치는 그 미국인들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살고 있구요.
큰 틀에서 보면 저도 한국떠나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정착해서 사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보면 ‘SURVIVE’ 하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사는 것 비슷하고, 고민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저 크리미아친구랑도 일주일에 몇번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아이디어도 주고받고 하고, 어제 남아공여자분과 이야기를 해 봐도 하는 고민이 비슷비슷 합니다.
늦은 시각이지만 편의점에서 면을 사와서 술을 마시기 전에 먹더군요. 그러면서
“공복에 술 마시면 안 돼”
또 폭탄주에 대해서도 잘 알더군요. 그래서 제가 폭탄주도 조심해서 마셔야 한다. 마실때는 그냥 잘 넘어가는데, 한순간 훅 가는 수가 있다. 라고 하니 자기도 잘 알고 있다면서 그래서 이런 방콕이나 낯선 곳에서는 그렇게 술 안 마신다. 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엄마가 나를 그렇게 키우지는 않았어” 라고 정확하게 이야기를 하더군요.
참고로, 가장 억양이 깨끗한 영어사용국가가 남아공과 캐나다쪽 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전부터 남아공으로 어학연수 가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영어강사생활은 재밌냐 라고 물으니, 학생들이 열심히하면 재밌는데, 학생들중에 적극적으로 말도 하지 않고, 숙제도 잘 하지 않고, 물어도 대답도 잘 안하는 학생과 수업을 하면 강사생활에 회의감이 느껴진다 라고도 하더군요.
대충 어떤 느낌인지 이해가 가더군요. 저도 어학을 가르칠때 수업을 잘 따라오면 재밌는데,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 하면 많이 힘들거든요. 특히 틀릴까봐 부끄러워서 말 하지 않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외국어를 틀리게 말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거 아닌가요? 왜냐하면… 한국어능력시험 문제집 하나 찾아서 풀어보세요. 이건 무슨 한국어문법인데 생전 평생 듣도보도 못 한 그런 문법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한국어가 다 맞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거든요. 내 모국어 문법도 다 맞을 수가 없는데, 외국어 틀리는 것이 무슨 큰 일입니까?
장기여행의 묘미는 코인세탁이죠. 오전에 숙소근처 코인세탁점에 가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함께 세탁을 하고 있던 남자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여행을 왔는데, 현재 대만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대만에서 일을 한지 12년이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둘다 대만에서 일을 하는 외노자 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편의점에서 간단히 아침을 사서 세탁을 하는 동안 먹었습니다.
고구마, 바나나(대만에서도 조식으로 꾸준히 먹던것), 빵, 요거트, 큰사이즈 물 해서 한국돈으로 3,300원 정도면 괜찮은 편이죠?
대만에서 12년 같은 공장에서 일을 했고, 최근에 귀국을 하고 싶어서 사장에게 ‘인도네시아로 돌아가고 싶다’ 라고 이야기를 하자 월급을 많이 올려줘서 계속 일하기로 했다고 하더군요.
오늘은 해외에서 일을 하는 외노자의 연봉이야기를 한번 해 보겠습니다. 사진들은 내용과 상관없는 지금 태국에서 찍은 사진들 입니다.
태국의 공장지대에는 저런 식의 기숙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수많은 직원들의 숙소를 해결하려면 저런 형태의 숙소들이 엄청 많아야 합니다.
<사례1> 저의 중국인 전직장동료가 있는데요. 그 직장동료가 어느날 월급이 낮아 힘들다 라고 하길래, 직속상사 찾아가서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 하고 월급을 좀 올려달라고 협상하라 했었죠. 면담을 했는데, 좋은 소리 못 듣고 나왔다고 하더군요. 그 뒤 퇴사하고 중국 돌아갔는데, 다시 회사에서 와달라 해서 거의 이전 연봉에 비해 2배 정도 인상된 조건으로 복귀했다고 하더군요.
<사례2> 오래 근무를 한 태국인직원이 이직을 하겠다고 하자, 부서도 옮겨주고 월급도 훨씬 많이 올려 주었다고 저에게 감사?한다고 하더군요. 그 당시 제가 다른 회사 이직소개를 해 주었거든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직원들이 많아 이런 숙소에도 문 바로 앞에 오토바이를 세울 수 있도록 저렇게 길이 있습니다.
<사례3> 저랑 알고 지내는 태국직원 두명은 비슷한 조건에,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시기에 회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연봉차이가 3배가 넘습니다. 한명은 그냥 한 회사를 꾸준히 불평불만하면서 다니고 있고, 나머지 한명은 영어공부 열심히 해서 영어로 업무를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 이직을 했습니다.
아직 10년전과 비슷한 연봉을 받는 그 태국직원의 경우는 제가 영어공부 시작하라고 500밧 정도 돈을 주기도 했는데, 결국 영어공부를 안 하더군요. 영어 하나 잘 해도 연봉차이가 2배 3배 날 수 있거든요.
태국직원들의 저런 숙소들은 월 1000밧~1500밧 정도의 좀 저렴한 곳도 있고, 3000~4000밧 정도의 깨끗한 환경도 있습니다. 물론 외국인노동자들은 5000~7000밧 정도에서 지내는 것이 보통이고 저는 10,000밧 이상되는 곳에서 거주를 했었습니다.
제가 근무를 했었던 대만기업들의 연봉들을 대충 보겠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인지 중소기업인지 소규모공장인지에 따라 연봉차이가 많이 납니다.
외국계기업의 해외근무자는 통상적인 연봉기준과는 다르게 ‘희소성’ 과 ‘특수성’ 이 많이 반영이 됩니다.
그래서 한국인과장급이 월 300,000밧 이상을 받을 수 있는거죠. 사실 한국공장에서 과장급이 억대연봉을 받는 사례가 흔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해외는 직원채용에 대한 ‘특수성’ ‘희소성’ 이 있다보니 위의 사례들처럼 퇴사를 한다고 하면 엄청난 조건으로 딜이 들어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만약 그 직원이 정말 필요하다고 하면요) 한국에서야 한국인직원 채용하기가 어렵지 않잖아요.
그런데 외국계기업들은 특정 국가의 직원을 찾기가 쉽지는 않으니 연봉이 아주 많아 지는거죠. 그러니까 과장급이 억대연봉을 받을 수 있는 거구요.
또 다른 사례는 저의 경우인데요.
제가 중국에서 사업을 할 때 저의 사무실 직원의 월급을 대략 2,400위안 정도 주었습니다. 당시 중국 대졸자 평균이 1,200위안 이었고, 일반인들 월급이 500위안 전후였던 걸 생각하면 적은 편은 아니었죠.
어느날 그 직원이 저에게
“사장님은 중국물가사정을 잘 몰라서 그런 것 같은데, 저에게 급여를 너무 많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을 했었는데요. 2000초중반 중국은 그야말로 사업을 하다보면 사기, 암투, 배신… 주변에 믿을 놈 한명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공장의 자재관리하는 직원이 밤에 자재 개인적으로 팔아 치우고, 회계가 돈 들고 튀고, 총무직원이 공장직원 식비에서 공장식당과 짜고 매달 뒷돈챙기고… 제가 중국에서 이런저런 사기관련 이야기를 하려면 오늘 밤새워야 합니다.
거래처 공장사장은 한국에서 자기 공장에 전화를 했는데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아, 중국공장으로 출장와서 공장을 들어가려는데 경비가 못들어가게 막았죠. 내 공장인데 왜 못 들어가냐? 라고 하니 이제부터는 ***의 공장이다. 라고 해서 알고보니 중국공장 명의를 빌려줬던 조선족직원이 아예 자기 공장행세를 하기 시작한거죠. 그 당시에는 중국인명의로 뭐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시대였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코로나시기가 끝나서인지 이전보다 대만초 관련 카페, 상점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저는 중국에서 혼자 사업을 하고 만약 그 직원이 제대로 일을 안 하거나, 딴 욕심을 가지거나, 나를 기만하려 하면 저는 사업 접어야 하는 상황이죠. 중국에서 중국현지인의 도움없이 한국인이 혼자 사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직원에게 1000위안(한국돈 125,000원 더 준다고 해서 저의 재정에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거든요. 특히 저는 사무실이 겨우 직원 몇 명이라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저의 운전기사 아저씨에게도 급여를 다른곳보다 훨씬 많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전부터 외국계회사 다니는 한국사람들 급여가 훨씬 많았던 이유이죠.
그래서 나는 월급 2백만원 3백만원 받는데, 간혹 외국계기업이나 외국에서 6백만원 8백만원 혹은 천만원 가까이 받는 경우가 있죠. 그건 그 사람의 능력이 그 만큼 차이가 많이 난다기 보다는 외국계기업의 직원에 대한 ‘특수성’ ‘희소성’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중국 심천사무소 담당할 때 저의 중국인직원 월급이 당시 8000위안 이었습니다. 대졸자 급여가 2000위안, 왠만한 공장의 공장장 급여가 5000위안 전후였던 시절에 적지 않은 급여였죠. 그 중국인직원 입장에서는 외국계회사에서 근무하는 중국인이고 저의 한국본사 입장에서는 3000위안(약360,000원) 더 주고 저런 직원이 성과를 내 주면 사업전체가 더 잘 될 수 있는 겁니다.
이전 중국에 있을때 개인사업하는 사장들 보면 매주 몇 번씩 중국가라오케 가서 룸아가씨한테는 1000위안씩 주면서 정작 자기 직원에게는 500위안이 아까워 월급 짜게 주다가 자기 직원에게 뒤통수 맞는 사례도 많이 보았거든요.
위의 급여사례는 저의 주변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다른 외국계회사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억대연봉이 아니라 더블억대연봉인 사람도 있다는 걸 압니다. 특히 기술영업, 시스템영업 등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의 외국계기업 직원의 경우는 그렇죠.
제 대만지인의 경우는 대만에서 회사 다녔으면 7만대만달러 정도 받았을 것 같은데, 중국에서 중국회사에서 일하면서 지금 16만대만달러 받고 일을 하고 있거든요.
이렇듯 외국에서 외국계기업의 연봉은 변수도 많고 조건들이 다 달라 연봉편차가 큰 편입니다. 우는아이 젖 더 준다 는 속담이 적용이 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오전에 코인세탁방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남자가 퇴사하겠다고 하자 급여 많이 올려줘서 계속 대만에서 근무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두서없이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어차피 오래 방콕에 머무는 마당에 낮에는 숙소에서 쉬다가 해 떨어지기 전 조금 선선할 때 숙소주변을 조금 걸어 보았습니다. 관광객들이 많습니다. 이번에 보니 중화권관광객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중국본토억양, 대만억양, 광동어 등등 다양한 중화권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숙소는 전형적인 배낭여행객, 특히 저 처럼 조금 오래 머무는 그런 여행객들이 많았습니다. 어제는 온몸에 문신(일본풍의 여자문신이 종아리에)을 하고 스타일이 조금 와일드한 서양여자분이 있어 무서운 마음에 눈을 피했는데, 어쩌다 같은 공간에 단 둘이 있게 되어 인사를 하고 가벼운 대화를 할 상황에 처해져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남아공에서 와서 캄보디아에서 영어를 가르치는데 소위 말하는 비자런? 하러 태국에 왔다고 하더군요.
여기 테이블에서 저는 컴퓨터를 합니다. 넷플릭스도 보고 그냥 이것저것 하는데, 이 숙소에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많더군요. 인도네시아 여자분들이 태국에서 구매를 하느라 장기로 머무는 것 같은데, 항상 저기 쇼파에서 여러명이서 지냅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제 며칠 봤다고 약간 정?도 들어 가네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저 쇼파에 여자분 한명이 누워 있습니다.
물건을 파는 남자분이 비둘기를 바라보고 있네요.
저녁식사 시간대라 주변 건설현장의 작업자들이 나와서 음식을 사고 있는 모습입니다.
태국전통극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저는 저 태국전통극을 실제로 본 적이 있습니다. 동작들이 독특해서 한 번쯤 보실만 할 겁니다.
걷다보니 MBK center 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여기가 관광객들 사진촬영장소 인듯 합니다.
마지막 사진의 저 중국인커플은 남자분이 연신 여자분의 사진을 찍어주는데, 여자분이 확인후에 계속 ‘왜 이렇게 못 생기게 찍냐?’ 며 남자분을 구박하더군요.
저 같은 경우는 구도, 거리, 각도까지 다 세팅해서 들고만 있다가 휴대폰 버튼만 눌러도 ‘사진이 잘 못 나왔다’며 구박받기 때문에 공감이 되네요.
점점 해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복고풍의 디자인 택시입니다. 저는 태국에서 Grab만 사용해서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CABB 이라는 택시서비스 인 듯 합니다.
그리고 여기도 삼성광고 많이 하더군요.
건물전체 대형스크린을 이용해 삼성광고를 하고 있는데, 여기는 또 바로 옆에…
애플스토어가 있습니다.
현대식 건물 바로 앞에는 또 이런 오래된 시계탑도 보실 수 있습니다. 보니까 숫자가 태국어로 적혀 있습니다.
CentralWorld 앞에 두개의 유명한 신이 있는데요. 저 신은 연애를 관장하는 신입니다. 대만의 삼신할매신 과 비슷한 역활을 하는 신입니다. 바로 그 옆에 있는 신은 성공을 관장하는 신입니다. 얼마전 저의 태국친구가 저기서 기도를 했습니다. ‘좋은 신랑감 만나고, 지금 하고 있는 일 성공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는데요. 이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소개를 해 보겠습니다.
숙소를 돌아올 때쯤엔 해가 완전히 떨어졌습니다. 퇴근시간이 되자 도로는 더 혼잡해 보입니다.
오늘아침 숙소 주변의 어느 식당에 걸려 있는 인형들입니다. 목에 링을 건 소수민족 인형도 보입니다. 아침에 보니 밝은 분위기인데, 밤에 보면 나무에 사람목이 걸려 있는 모습이잖아요.
사람 목 매달려 죽은 시체 혹시 실제로 보신 적 있나요? 영화말고… 저는 고등학교시절 여름방학 자율학습 하러 등교하는데, 흐린날 학교운동장 철봉에 어떤 남자가 목을 매달아 죽었더라구요. 아직 경찰이나 119가 오기전 이라 그 목 매달린 시체를 바로 옆에서 보며 교실로 들어 갔고, 점심시간 무렵 자율학습 땡땡이 치고 학교를 빠져 나가는데, 마침 정확하게 제 앞으로 그 시체를 들 것에 실어 차량으로 옮기더군요. 하얀천 밖으로 빠져 나온 손이 바로 제 앞으로 스윽 지나가는데 순간 조금 무섭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날밤… 당시에는 독서실에서 밤샘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그 날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주변을 보니 컴컴한 독서실 내에 저 혼자 있더군요. 밖에는 비가 내려서 집에 돌아가기도 어렵고… 그런데 아침에 보았던 시체 생각도 나고…
방콕시내를 혼자 걸어 보았습니다. 숙소에서 교통편을 타지 않고 걸어서 둘러 볼 수 있는 곳 위주로 다녔습니다. 방콕시내중심이라 관광객도 많고 현지태국인들도 아주 많았습니다.
방콕의 날씨가 늘 그렇듯 따가운 햇살에 더운 날씨였습니다.
위의 장소는 태국중심가의 유명한 신의 사당입니다. 여행다큐나 유튜브 등에서도 소개를 많이 하는 곳이죠.
호텔 주변에 인도인들이 많이 운영하는 도매상가와 식당가 그리고 주거지역도 둘러 보았습니다. 그리고 인도음식도 한번 먹어 보았습니다. 제가 인도음식은 아주 가끔 한번씩 먹었는데요, 그렇게 감동적으로 맛있다 라고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인도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거리를 둘러 보는 건 좋았습니다.
마침 음식박람회를 하고 있는 곳이 있어서 들어가 둘러 보았습니다.
이런류의 박람회는 거의 비슷비슷한 느낌입니다.
열차로 통근을 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래서 철로를 따라 한번 둘러 보았습니다.
오래된 낡은 외관의 열차가 버스처럼 사람들을 태우는데요. 도대체 표 검사는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태국에 와서는 길거리에서 식사를 많이 했네요. 그런데 확실히 방콕도심이라 비슷한 양의 비슷한 음식도 방콕외곽보다는 조금씩 비싸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방콕이 아닌 소도시나 지방에서는 저정도는 대략 50밧~80밧 이하로 먹을 수 있었는데, 방콕시내는 기본이 120~150밧 이고 200밧 받는 곳들도 많습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CentralWorld 부근인데요. 태국친구는 한국의 명동 같은 느낌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저는 명동은 여기 이 지역과 비교가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주변은 올 때마다 볼거리도 많고 현대식상점가부터 좀 낙후된 뒷골목까지, 그리고 다양한 자연환경까지… 여기가 훨씬 더 볼거리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 수 있으니 넘어가죠.
캐나다 있을때 가끔 가던 Tim Hortons 이 있길래 잠시 다리도 쉴 겸, 항공사에 전화해서 저의 귀국항공편을 좀 앞당기려고 했었죠. 그런데 전화를 조금 하다가 전화가 끊기고, 다시 전화를 하니 통신사의 안내멘트가 태국어로 나오는데 뭐 알아 들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마침 저기 사진에 앉아 있는 저 여성분에게 멘트내용이 뭐냐고 문의를 했죠.(사진은 카페입장전 찍은 것입니다)
그랬더니 자기도 베트남에서 와서 태국어를 모른다고 하더군요. 다른 손님이 없어 카페직원에게 물어보니 제 선불유심에 돈이 떨어졌다는 말이더군요. 그래서 좀 급하게 전화를 해야 하는데, 당장 유심충전하기도 어렵고 해서 다시 저 베트남여성분에게 가서
“혹시 당신 유심이 전화통화도 되는 것이면 제가 항공사에 전화를 좀 해도 되겠습니까?”
라고 하니 하라고 하더군요.
괜히 제 자리 가서 전화를 하면 또 다른 전화 한다고 의심을 받을까봐 그 여자분 맞은편에 앉아서 항공사콜센터와 통화를 했죠.
결론적으로는 제가 원하는 날짜로 변경이 안 되어서 지금 ‘강제태국휴가’ 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쌓여 있는 마일리지가 좀 있었는데, 그거 소멸된다고 해서 그걸로 항공권을 구입했더니만 변경에 제약이 있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당분간 태국에서 ‘강제휴가’ 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남들은 태국 한달살이 이런것도 하는 마당에 저도 방하나 구해서 이것저것 먹으면서 쉬다가 돌아가야 겠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감사의 뜻으로 커피나 디저트라도 사 드리려고 했는데, 이미 먹어서 괜찮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간단히 예의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영어를 잘 하시더군요. 제가 통화한 내용을 다 들었는지 중간에 ‘ 그 부분은 왜 물어 본거에요?’ 라고 질문도 하더군요.
며칠전에는 스타벅스를 갔었는데, 무현금매장 이라며 신용카드나 페이만 된다고 하더군요. 마침 제가 가지고 있는 신용카드가 없었고, 태국페이에 잔액이 없어서 근처에 있는 태국분에게
“여행중인데 120밧 현금을 줄테니 대신 페이결제를 좀 해 줄 수 있느냐” 라고 했더니 또 흔쾌히 도와 주시더군요. 여행을 다니다 보니 이래저래 의도치않게 도움을 받을 상황이 생기고 있습니다.
오늘 한국에서 태국으로 왔습니다. 한국에서는 꽤 추워서 고생을 좀 했는데, 태국은 역시나 아주 덥습니다. 지난주 태국에서 한국갔다가 다시 태국으로 왔습니다.
이번에 태국을 오니 신라면에서 새로운 콜라보상품을 출시했더군요. 저 사진속 아주머니는 태국에서 아주 유명한 식당주인이신데, 저는 저 아주머니를 다큐멘터리에서 먼저 봤었죠. 연기가 많이 나는 음식을 하니까 항상 저 고글을 끼고 요리를 해서 저 고글이 하나의 아이콘처럼 되어 있는 분인데 이번에 신라면과 콜라보해서 똠양맛을 낸 것 같더군요. 그래서 일단 구입을 했습니다.
태국에는 건물에 대체로 저런 신을 모신 조형물이 있습니다. 마침 지나다보니 꽃들도 아름답게 만개를 해 있어 찍어 보았습니다.
역시 이런 사진이 태국바이브를 느끼게 해 줍니다. 라고 쓰고 보니 어줍잖게 영어단어 쓴 것 같아 다시 수정합니다. 역시 이런 사진이 태국느낌을 줍니다.
또, 태국하면 이런 많은 전기줄 풍경이죠. 밤비행기를 타고 새벽에 공항에 도착을 했는데, 호텔체크인이 안 되는 관계로 호텔에 짐만 맡겨 두고 주변을 좀 걸어다니며 구경을 했습니다.
밤비행기라 잠을 잔다고 잤는데, 3시간 남짓 잤나요? 역시나 너무나 졸리고 피곤합니다. 그래서 호텔주변에 있는 발마사지샵을 가서 발마사지를 받으며 눈을 좀 붙였습니다. 깊이 있게 잠을 자지 않더라도 눈만 계속 붙이고 있어도 조금 낫거든요.
잠이 들었는지 어쨌는지 시간이 금방 지나가더군요.
그리고 호텔주변에 있는 식당을 들어갔는데 캄보디아사람들이 운영을 하는 식당이더군요.
처음엔 캄보디아식당인 줄 모르고 그냥 사람이 많길래 들어갔다가 자세히 보니 앙코르와트 사진이 걸려 있더군요. 그래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캄보디아사람들이라고…
이로서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음식을 다 먹어보았네요. 조만간 라오스, 캄보디아는 태국육로로 꼭 넘어 가 볼 계획입니다. 태국에서 살 때 코로나로 인해 못 육로로 가보지 못 한 것이 아쉽습니다.
서빙을 해 주신 분의 얼굴이 전형적인 캄보디아 전통여성상 같지 않습니까? 보통 그 나라의 전통적인 느낌이 나는 얼굴상이 있잖아요. 이 분 얼굴이 딱 캄보디아 사람의 전형적인 얼굴을 보여주는 것 같다 라고 쓰고 보니 사실 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사람들은 제가 보기에는 거의 비슷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눈에 한국사람, 일본사람 구분이 되는 경우도 있죠.
무튼 기념사진 요청해서 한장 찍었습니다. 손목, 손가락, 팔뚝 에는 불경? 같은 문신이 있고, 등에는 그림과 글자가 아주 넓은 면적으로 문신이 되어 있더군요. 태국에 살면서 몸에 불경? 문구를 크게 문신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거든요. 저 분의 경우에는 흰색 블라우스에 등면 큰 문신이 다 비쳐 보였습니다.
제가 이말을 하는 이유는 그저께 한국에서 영화 ‘파묘’를 보았거든요. 파묘 보신분은 왜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지 아실 겁니다.
그렇게 밖에서 시간을 보낸 후 체크인 시간이 되어서 호텔엘 들어갔는데, 다른 사람이 있는 방문을 열었네요.
몇 번 방으로 보이세요?
번호를 잘 못 보고 다른 방의 문을 카드로 터치를 했는데 문이 열리더군요. 다행히 내부 고리가 있어 문이 다 열리지 않았지만 하마트면 큰 실례를 저지를 뻔 했습니다.
그리고 방번호가 다르면 문이 열리지 않아야 하는데, 틀린 키 임에도 방문이 열리더라구요.
마침 제 짐을 가지고 함께 올라와준 호텔직원이 옆에서 이 일련의 상황을 다 보고 있어서, 카드키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면서 확인해 보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제 방번호를 보더니만 ‘그거 611 입니다’ 라고 하더군요.
저는 411 로 봤거든요.
그런데 제가 태국에서 처음 일을 했을때 태국 사람들의 손글씨 숫자가 우리와 많이 달라 처음엔 정말 헷갈렸습니다. 심지어는 공장 Audit 하러 온 한국고객사 직원들도 숫자 틀렸다고 지적을 많이 했었고 제가 하나하나 설명을 해야 했죠.
태국인관광객의 한국가이드를 마무리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곳저곳 다녔는데요. 어디가 가장 좋았냐고 물어보니 ‘눈이 많이 쌓여 있던’ 남산타워가 가장 좋았다고 하더군요.
해외여행이 처음이고 눈을 저렇게 직접 만져본 것이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다른 곳에도 바닥에 눈이 좀 쌓여 있었으나, 여기 남산타워는 꽤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요며칠 서울이 좀 추웠거든요. 저는 패딩 이런 것이 없어 외부에서는 더 춥게 느껴졌습니다. 저기 남산타워는 바람까지 불어 더 춥던데, 저기서 중국인 가족들이 컵라면을 먹고 있더군요. 반대편에 보니까 실내테이블이 있더니만, 저 추운데 아이들과 컵라면을 먹는걸 보고 놀랐습니다. 저렇게 추운데서 컵라면 먹으면 더 맛있을 수도 있죠.
눈이 내리는 풍경도 볼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게 비만 내리고 눈은 내리지 않더군요. 새벽 5시경에 아주 소량의 눈이 흩날리긴 했었습니다.
태국사람들 중에는 눈을 직접 보지 못 한 사람이 많아 눈을 만져 보는 걸 하나의 위시리스트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 분들도 태국에서부터 ‘눈을 보러 가고 싶다’ 라고 미리 이야기를 해서 저도 그 부분을 신경썼습니다.
중국사람들중에는 평생 바다를 보지 못 하 사람들도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한창 중국여행다닐때 산속이나 내륙에 사는 어르신들에게 바다본 적 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없다고 했거든요. 바다는 고사하고, 살고 있는 마을을 떠나지 못 한 노인들도 엄청 많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저의 가장 큰 오점이라고 하면 ‘명동에서 저녁을 먹은거’ 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도 서울에서 살았지만 명동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는 생각자체를 하지 않았는데 외국인관광객을 데리고 명동을 갔다가 그때 다들 배가 좀 많이 고픈 상황이라 저녁을 먹게 되었습니다.
한국삼겹살과 돼지껍질을 먹어 보고 싶다고 태국에서부터 이야기를 해서 그나마 프렌차이저처럼 보이는 위의 사진식당을 가 보았습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입장을 한 순간부터 나갈때까지 ‘인사’를 하나 하는 직원도 없고, 뭘 추가로 달라고 하면 ‘맛있게 드세요’ 라든지 ‘여기 있습니다’ 라고 말을 하는 직원이 없더군요.
저는 공장도 그렇고, 가게도 그렇고 ‘운영’ 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거든요. ‘운영을 중요시 여긴다’ 라는 뜻이 무엇이냐하면…
이런 명동에 이런 규모의 식당을 하나 차리려면 ‘돈’이 ‘많이’ 있어야 하잖아요. 어떤 부분은 돈으로 커버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공장도 마찬가지죠. 돈이 있으면 넓은 부지에, 좋은 최신 설비로 깨끗하게 시작을 할 수 있죠.
그런데 살면서 보면 저렇게 좋은 장소에 좋은 설비로 가게/공장을 하면서 ‘운영’ 을 제대로 못 하는 사장들이 많더라구요. 친절, 웃음, 청결 제대로 된 시스템구축은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운영의 부분인데 그런걸 못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자영업을 하고 있지만…
여기서 식사를 하고 나서 든 느낌은
‘여기는 뭘 잘 모르는 외국인들이 오는 곳이니 대충 해도 돼’ 라는 마인드거나, ‘나는 돈이 엄청 많은 사람이라 손님이 있든 없든 그딴거 신경 안 써’ 라든가 ‘이렇게 운영을 하고 있는데도 한 번 올테면 와봐’ 라든가…
직원들도 숙련직원이 아닌건지 현금영수증 발행을 못 하더군요. 제 휴대폰번호는 입력하지 않고, 명세서 출력해 놓고 영수증이라고 이야기를 하질 않나… 조작하는 단말기를 함께 보고 있었는데, 계속 금액 입력하는 곳에 전화번호를 입력 하고 있더군요. 그 단말기 시스템을 잘 모르는 제가 봐도 직관적으로 잘 되어 있더니만, 그걸 또 못 해서 결국 다른 사람이 올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네요.
저를 통해 한국여행을 온 태국관광객들이 최대한 좋은 추억을 남기고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저의 고객에게는 저는 늘 최선을 다합니다.
저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비록 아주 많은 투자금이 없어 화려하거나 번화가에 크게 시작은 못 했지만, 친절하지 않고 청결하지 않으면 장사를 접는다는 철학을 가지고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오는 손님이니까요.
그래서인지 저런 명동에서 저렇게 큰 식당을 하거나, 좋은 설비의 공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운영’을 잘 못 해 그 효율을 못 내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도 합니다.
춥고 비가 살짝 내렸던 쌀쌀한 이른아침 인사동을 오니까 대부분이 외국인관광객들이더군요.
저기 안국역에서 인사동 거리 들어가는 저 옷가게… 제가 몇 년전에 외국인지인들 데리고 왔을때 저기서 커피한잔 한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속으로 여기 ‘운영’ 하는걸 보니 별로인데 라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 카페 사라졌네요. 장사가 잘 되어서 확장이전을 한건지 그냥 하기 싫어서 그만둔건지는 저로서는 알 수 없지만 그 당시 제 생각으로는 ‘이렇게 좋은 장소에 이렇게 가게를 열어 놓고 운영을 왜 이렇게 못 하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사라졌네요.
저는 작게 자영업을 하고 있지만, 손님 한분한분을 소중히 생각합니다. 제가 나중에 더 큰 성공을 하게 되면 그 성공의 바탕은 모두 지금의 손님 한분한분 이거든요.
이번에 대만을 떠나 있는 동안 정말 감사했던 손님의 메세지 인데요.
저의 카페 고양이와 태국차가 그립다며 저 언제 대만 돌아오냐고 메세지를 남겨 준 손님입니다. 이런 메세지 받으면 참 기분 좋으면서 더 손님들에게 잘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저나 저는 추운 날씨에 약합니다. 그래서 대만, 태국에서 더 잘 지내는 것일수도 있구요.
태국에서 짧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왔습니다. 이번엔 태국인관광객을 한국에서 안내 하는 일을 하러 왔습니다. 한국어는 물론이고 영어가 거의 안 되고, 무엇보다 해외여행이 처음인 중년분들이라 한국인동행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하든, ‘돈을 받고 하면’ 업무가 되는거죠. 외국인친구, 외국인지인, 심지어는 아내가 대만사람이라 관련 친척들까지 많은 한국여행을 동행했었지만, ‘돈을 받고’ 한국여행을 시켜준 건 이번이 처음이라 그 전과는 마음가짐이 달라지더군요. 그 이유는 아래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시골지역 오래된 목조건물을 활용해 비교적 젊은 사람이 약간은? 도시적? 현대적? 인 디자인을 해서 식당을 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차를 세우고 식사를 해 보았습니다. 한국오기전 마지막 태국에서의 식사였는데, 좀 맵더군요.
그래도 주민분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많은 사람들이 주문을 하였습니다. 차는 테이블 바로 옆에 세우는 그런 시골스러운 여유공간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마침 하늘의 구름과 태양빛이 아름다워서 찍어 보았습니다.
태국 수왓나폼공항에 도착해서 여행하실 분들을 만났습니다. 가족분들이 배웅을 나온 분도 계시더군요. 생애첫해외여행… 얼마나 설렐까요? 그래서 이번에 한국에서 좀 더 재밌고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저는 비행기를 참 많이 탔지만, 어떤 분에게는 처음 타는 비행기에 처음 가는 해외여행이 엄청 설렐 거잖아요.
많은 태국사람들이 한국가서 해 보고 싶은 것 중 하나가 ‘눈snow’ 구경 이거든요. 다행히 서울도착하니 바닥에 눈이 좀 남아 있고 특히 남산타워가니까 눈이 많이 남아 있어서 그분들이 즐거워했습니다.
태국공항은 이런저런 배낭여행하는 외국인들이 많죠. 큰 배낭에 슬리퍼신고 다니는 외국인이 많은 태국공항인데요. 마침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듯한 외국인커플이 있어서 그들의 짐을 찍어 보았습니다 자전거 가지고 비행기타고 이동하기가 쉽지는 않거든요. 저는 스트라이다를 몇 번 가지고 다녔는데, 작고 가볍다는 스트라이다도 꽤 번거롭습니다.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캐리어비밀번호를 모르겠다며 저에게 이야기를 하더군요. 가족들과 한참을 비밀번호가 뭐지 메세지를 주고 받는것 같던데, 아마 가족들도 모르는 것 같더군요. 가족들이 불러주는 비밀번호 다 맞춰봐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학창시절 박가이버… 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맥가이버 뺨치는 이런 능력은 있었죠. (실제 박가이버 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유튜브 몇 개를 보니 모두 불빛 비추어서 틈으로 뭘 보라는 팁들만 있더군요. 그런데 제가 노안으로 그 틈도 보이지 않고 해서 손의 감각으로 열어보기로 했습니다. 얼마전 타인의 자전거자물쇠를 감으로 딱 한번의 시도로 열은 적이 있거든요. 이번엔 대략 3번 정도의 시도로 열었습니다. 아직 자물쇠만드는 기술이 완전한지 않은지 어쩐지, 돌리다보면 소리와 감이 다릅니다.
해외여행 처음이라 자물쇠열쇠 잃어 버린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도 캐리어가 여러개라서 가끔 잊어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캐리어 비밀번호를 맞춰놓고는 사진을 찍어 두죠.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그 사진도 찾을 수 없습니다.
밤 비행기로 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저 혼자 여행이나, 귀국같은 목적이었으면 밤 비행기에서도 가끔 영화등을 보며 잠을 조금 덜 자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돈 받고 가는 여행가이드 이잖아요. 다음날 피곤하면 안 된다는 책임감에 비행기에 앉자마자 잠을 자려 했습니다. 가끔 기내식 준다고 깨우는 승무원이 있어서 기내식 필요없다고 하려 했는데, 저가항공사라서 다행히? 기내식을 주지 않더군요. 앉자마자 잠을 잤고 중간중간 조금씩 깨긴했지만 착륙전까지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심야 5시간 비행기에서의 잠은 좀 피곤하긴 합니다.
등을 손으로 긁고 있는 저 항공사직원의 헤어스타일이 다소 독특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물어보았죠.
출근할때 저 머리를 혼자서 만든다고 하더군요. 시간도 1~2분 정도면 된다고 합니다. 여자분들 헤어스타일을 잘 모르는 저로서는 뭔가 미장원에서나 했을 것 같은 저 머리를 혼자서 1~2분만에 한다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사진한장 찍었습니다
태국은 35도가 넘는 더운 날씨라 옷을 좀 가볍게 입고, 탔는데 기내는 좀 춥더군요. 잠을 깨서 보니 저가항공사라서 물도 구입을 해야 하고, 담요도 150밧을 주고 대여를 해야 하더군요. Rental이라고 적혀 있어서 승무원에게 ‘구입’ 이 아니고 ‘대여’ 가격이 맞냐고 재확인도 하니 대여라고 하더군요.
쌀쌀한 기내기온을 이겨내고 나름 깊은 잠을 자서 그 다음날 하루종일 잘 가이드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어제는 서울시내중심가를 여행했는데, 너무나 춥더군요. 제가 겨울자켓이 없어서 돌아다니는데 너무나 추웠습니다. 오히려 태국분들은 한국의 추위에 대한 명성을 미리 들었는지 두꺼운 자켓들을 다 준비해 왔더군요.
직업정신으로 추위를 이겨낸 하루였습니다.
한국분들을 해외에서 데리고 여행을 시켜준 경험은 많았는데, 외국인의 돈으로 한국에서 쓰니까 그것도 느낌이 색다르더군요. 저에겐… 그 이야기는 다음편에 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