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개미 와 개미알 식사

태국북부 이산지역에서는 식용개미를 파는 곳을 가끔 볼 수 있는데요. 저의 태국친구고향집에서 직접 잡은 개미와 개미알을 먹는 모습입니다. 정말 맛있어 보입니다. 

개미는 나무에서 채집을 하구요.

더군다나 저 나뭇잎 뒤를 보시면 하얀색의 고기가 있는데 쟤는…

민물고동입니다. 열대지역이라서 그런지 고동의 크기가 한국의 시골에서 제가 잡았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큽니다. 저도 어린시절 방학때 시골에 가면 고동 자주 잡아서 간장에 졸여 먹었었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크기가 비교가 안 됩니다. 

이 애벌레도 먹습니다. 살이 잘 올라서 먹음직 스럽게 보입니다. 

이 애벌레는 이 지역에서 많이 생산이 되는 사탕수수에서 자라는 녀석들인데요. 사탕수수도 재배를 하면서 이 녀석들도 먹을 수 있습니다. 

제가 차이컬쳐에서 중국의 옥수수밭 밤에 가 보면 무섭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면적도 엄청 넓고 옥수수의 높이가 사람키 보다 커서 밤에 거길 들어가면 사람이 죽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느낌입니다. 또 뱀이나 야생동물도 있을 것 같구요.

실제로 저의 태국친구가 사진을 찍어 보내 주었습니다. 밤에 저 안에 들어가면 아무도 모를 것 같은데…  이전 시골사람들은 남녀가 저런 곳에 들어가서 사랑을 나누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사랑을 위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시골의 삶입니다. 

넷플릭스 영화중에 ‘in the tall grass’ 라는 공포영화가 있는데요. 나름 볼 만 합니다. 

태국 시골의 태국친구들 모습을 계속 지켜 보는데요. 

이것저것 잘 먹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개미와 개미알만 소개를 해 드렸는데, 메기 잡는 모습을 보면 그 수량이 엄청 납니다. 

제가 어릴때 한국 논두렁에서도 메기를 잡았는데, 저렇게 까지 많지는 않았거든요.

어디서 살든 잘 먹고 잘 살면 그게 행복인거죠.

대만은 망고가 열리기 시작했네요

대만에 돌아오고 나서 삼일째 되는날 대학교주변 번화가(?)를 나가 보았습니다. 저의 카페를 와 보신 두 부부커플이 있으셔서 주변 잘 아시겠지만 번화가라고 말을 하기에는 좀 뭣한 그런 번화가입니다. 무튼…

나가보니 망고열매가 열리기 시작했더군요. 어떤건 좀 크고 어떤건 좀 작았습니다.  이 주변이 6월 전후가 되면 망고가 엄청납니다. 어제 글에도 적었듯이 가로수가 망고나무이고 집들 마당에 망고나무가 많습니다. 

열대과일 중 두리안 다음으로 가장 맛있는 과일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맛있고, 열대지방에서는 흔한 과일입니다. 

이번에 태국에 있으면서 망고를 몇 번 사서 먹었는데, 역시 싸게 사서 먹으니 맛있더군요. 그냥 시장통 길거리에서 외모가 좀 지저분해 보이는 망고 사서 시원하게 해 두었다가 먹으니 정말 맛있었습니다. 저걸 만약 한국에서 비싼 가격에 먹었다면 부담스러웠겠죠.

또 이번엔 태국에서 좀 오래 지나다보니 망고스티키라이스 도 몇 번 먹었습니다. 

태국에서 흔히 먹는 국민음식이죠. 과일과 밥의 조합이 어색하게 느껴질 것 같은데, 나름 먹을만 합니다. 맵고 짜고 자극적인 한국식음식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별로일 수 있겠네요.

참고로 Sticky Rice를 중국어로는 糯米[nuo mi] 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통상적으로 먹는 쌀과는 조금 다릅니다. 

100밧 하네요. 저의 시골출신 태국친구가 ‘역시 방콕은 비싸네. 우리 고향에서는 25밧이면 사 먹는데’ 라고 하더군요. 저 말이 사실이라면 거의 4배 차이네요.

약간 근사한 식당에서 망고스티키라이스를 시켜 먹었는데, 120밧 하더군요. 맛은 아주 좋았습니다. 그리고 돌아다니다보니 150밧 하는 곳도 있더군요.  태국친구의 25밧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저도 모르게 비싸다고 느껴지더군요.

대만, 태국에 있으면서 망고를 자주 사 먹는 편인데요. 이 품종 저 품종 골라서 먹는 재미가 있는데, 확실히 빨간색 애플망고가 가장 맛있는 것 같긴 합니다. 

대만에 오시면 4월~5월경 마라훠궈 체인점에서 후식으로 土芒果 를 무한제공 해 주거든요. 그 때 오시면 그 비싸다는 망고를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사진은 마라훠궈싸이트에서 다운입니다. 

저도 이전에 타이베이 살 때는 한달에 2~3번 정도 마라훠궈를 갔었는데요. 저 시기때는 놓치지 않고 갔습니다. 작아서 먹을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지만 맛있습니다. 

대만카페주변의 망고발육상황을 종종 소개해 보겠습니다. 

태국 어느 카페 홍보촬영하는 모습을 홍보

오늘은 태국의 방센해변도시에 있는 어느 카페구경을 해 보겠습니다. 방센해변을 가게 된 이유는 거기 대형국립대학교가 있다고 해서 태국의 대학교상권은 어떤가 싶어 한번 둘러보았습니다. 

제가 카페를 하기전부터 저는 어딜 돌아다닐때 상권 등을 유심히 보는 편이었고, 그런 내용들을 차이컬쳐에서도 많이 소개를 했었죠.

해변도시답게 대학교 간판 앞에 서핑보드가 있습니다. 

제가 워낙 좀 덜 발달된 지역 위주로 거주를 해서 그런지, 이 도시는 작지만 깔끔하게 인상이 좋더군요. 

해변가에 살면 좋죠. 부산 살 때 광안리해변에서 산 적이 있는데 좋습니다. 특히 광안리해변처럼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곳이면 더 좋죠. 

태국도 이런 해변가에 살면 삶의 질이 올라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전이라 아직 해변에 사람은 많이 없었으나, 파라솔의 수를 보니 사람 엄청 몰리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전 정보 없이 그냥 해변가와 대학가 주변을 천천히 걸어 보았습니다. 저의 대만카페 주변 대학가처럼 학생들 숙소건물들이 엄청나게 많더군요. 그리고 학생들이 많으니 그 학생들의 소비를 뒷받침할 각종 크고 작은 가게들도 많았습니다. 

이른아침부터 걷다보니 식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장식하나 없는 시멘트건물에서 영업하는 식당을 들어가 보았습니다. 여기는 저 닭을 우려낸 육수면요리가 메인인듯 하더군요. 상당히 맛있었습니다. 특색있더군요.

다시 걷다보니 저 고양이가 ‘날 따라 들어와’ 라는 표정으로 저기 카페로 들어가더군요. 그래서 더위도 좀 식히고 다리도 쉴 겸 들어가 보았습니다. 사실 고양이 때문에 따라 들어간 건 아니고, 돌아다니면서 내가 생각하는 컨셉과 비슷한 형태의 카페라서 들어가 본 겁니다. 

마침 오픈시간이더군요. 제가 첫손님인듯… 사람들이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실내 실외 꽤 넓습니다. 그리고 인테리어 아웃테리어 모두 돈을 좀 많이 쓴 듯한 모습입니다. 

일단 더워서 시원한 음료 하나 시켜 보았습니다. 

가만히 보니 전문 촬영팀이 카페홍보용 영상과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속으로 ‘개업한지가 얼마되지 않았나 보다’ 라고 생각을 했죠.

어떤 식으로 촬영을 하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저도 가끔 카페홍보사진이나 신메뉴 사진을 찍지만 저는 그냥 저런 전문 조명장비 없이 자연채광에 휴대폰으로 찍어서 올리거든요. 저렇게 전문적으로 해 본 적이 없던 터라 좀 지켜 보았습니다. 

카페 홍보촬영하는 영상은 위 저의 유튜브채널에 올려 두었습니다. 영상으로 보시면 더 자세하고 재밌습니다. 

좀 오래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따뜻한 커피한잔 더 시켰습니다. 저는 원래 따뜻한 커피를 더 선호하는 편이거든요. 

음료를 마시는 모습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저기 촬영하는 사람들도 친구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주방에서 일을 하는 스텝중에도 친구가 있다고 했습니다. 

참 저기 여자분이 카페사장님 이시구요. 촬영현장을 보았는데 시종 웃으면서 밝은 분위기속에서 진행을 했습니. 유튜브영상에 잘 나와 있습니다. 

사장님이 직접 음료장식 하는 모습도 보여 주시더군요. 

제가 홍보촬영하는 모습 촬영해도 되냐고 하니까, 아주 흔쾌히 촬영해서 홍보해 달라고 하더군요.

사실 저도 저의 손님들이 저의 카페 촬영해서 SNS상에 올려 주시는 것이 가장 감사하거든요. 며칠전에는 어느 손님께서 영상으로 인스타그램에 올려 주셨더라구요.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은 이런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잘 알 겁니다. 

그리고 마당에 있는 망고나무에서 망고를 따는 모습입니다. 여기 저의 대만카페 주변에는 대략 6월 전후로 망고가 엄청나게 열립니다. 가로수마저도 망고나무 거든요. 그 비싸다는 망고가 땅바닥에 굴러 다닙니다. (정말입니다) 

여기도 저녁무렵 사람들이 저런 긴 채를 가지고 나와 망고를 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딱 저렇게…

카페도 하면서 종업원들이 저렇게 망고도 따고, 또 촬영하는 친구들 불러서 함께 영상촬영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저렇게 사람이 복작복작한 것도 보기가 좋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는 여기 대만에서 제 아내와 둘이서만 모든 것을 다 하다보니 아무래도 좀 저런 분위기가 나지는 않거든요.

정말 다행스럽게 카페스텦중에 중국어를 잘 하는 스텦이 있더군요. 중국어전공이라 중화권기업에서 오래 일을 하고 지금은 친구도와서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딱 저와 비슷한 케이스 인데요.

자칫 말이 통하지 않아 겉모습만 보고 돌아갈 뻔 했는데, 중국어를 하는 스텦이 있어서 카페에 대한 이런저런 내용들을 들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때문에 빨리 태국어를 배워야 합니다. 여행을 하면서 현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거든요.

여사장님이 시종 잘 웃고 친구들과 장난도 많이 쳐서 내부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밝아 보여 좋았습니다. 개업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새로운 도전을 하는 자영업사장님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네요.

오늘 저의 대만카페 지역날씨는 구름이 많이 낀 흐린 날씨입니다. 딱 한국의 가을기온 이네요.

대만집에 돌아오니 이웃아저씨의 수많은 분재가…

3주여만에 태국에서 대만으로 돌아왔습니다. 3주동안 태국-한국-태국 이렇게 돌아다니다보니 마음은 엄청 오래 집을 떠난 듯 한데, 막상 대만집을 돌아와보니 기존일상과 똑같습니다. 그동안 달라진건 이웃집 아저씨가 저렇게 분재를 해서 놓아 두었네요.

저 이웃집아저씨가 나무가지고 뭘 만드는걸 좋아하고 또 특이하게 생긴 나무를 어디서 구해와서 다듬어 놓곤 했습니다. 기존에도 자신의 집에 몇그루 분재를 해서 놓아두곤 했는데, 이번에 이렇게 다량의 분재를 만들었네요.

판매의 목적인지 개인감상용인지는 모르겠지만 화분화초 가꾸는 것이 생활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거든요. 

태국은 연일 35도가 넘는 무더위였는데, 한국가니 눈발이 내릴 정도로 추웠다가 다시 태국가서 35도의 무더위를 경험하다가 대만에 도착을 하니 아주 상쾌한 20도 전후의 상쾌한 가을날씨가 펼쳐지더군요.

그리고 방콕의 그 복잡한 사람들, 차량들, 뚝뚝이, 오토바이들 속에서 지내다가 저의 대만집으로 오니 뭔가 딴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타오위안공항에서 고속철도를 타고 가는데, 한무리의 초,중,고등학생들이 인솔교사와 함께 큰 배낭을 메고 탑승을 하더군요. 모두 등산을 한 듯 큰 배낭과 흙에 젖은 등산화가 있었습니다. 

옆에 앉은 학생에게 물어보니 3박4일로 등산하고 야영을 했다고 하더군요. 밤에는 꽤 추웠다고 했습니다. 

태국에서도 저런 배낭을 멘 여행객들을 많이 봤거든요. 살다보니 언젠가부터 바퀴달린 케리어만 끌고 여행을 했지, 저런 배낭 안 메어 본지 꽤 되었구나 라는 생각을 기차에서 잠시 해 보았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젊은시절의 기분을 낼 수 있는 배낭메고 하는 여행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저의 차이컬쳐 메인페이지에 있는 그 그림도 앞뒤로 배낭을 메고 여행할 때 찍은 사진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거든요. 

방콕 차이나타운의 형성배경 및 그들의 삶 훑어보기

태국도 중화권의 문화가 많이 남아 있죠. 경험상 태국 어디를 가더라도 중화권문화의 흔적을 볼 수 있죠. 차이컬쳐… 차이나+컬쳐 인만큼 어디 있더라도 중화권문화에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의 모형은 태국에 있는 중국식절 앞의 시장풍경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유럽에도 성당주변이 지역주민들이 모여서 시장상권을 형성한다고 하는데, 여기도 비슷한 맥락인 듯 합니다. 

<사진들은 제목을 우클릭해서 새창에서 열어보기로 보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방콕에 중화권사람들이 모여살기 시작한 시기를 1782~1851 경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네요.

당시 태국방콕의 노동인력 부족현상과 맞물려 중국본토의 이런저런 불안정세 등으로 중국의 해남성, 광동성, 복건성 부근의 사람들이 태국으로 이주를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중국의 무역상인들도 활발하게 동남아로 진출을 하기도 했었구요.

당시 태국으로 와서 정착을 했던 중국인들의 민족별로 나누어 두었습니다. 

두번째 사진을 보시면

복건인 : 복건성
조주인 : 광동성동북
객가인 : 광동성북부
광동인 : 광동성중부
해남인 : 해남섬동북부

기존에는 그냥 광동성에서 온 사람으로 퉁쳐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광동성에서도 저렇게 지역을 나누어 구분한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당시에 이런 형태의 범선을 타고 동남아등지로 무역을 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무역을 하다가 난파를 당해 실종된 사람도 많고, 그 당시에 각 나라별로 난파된 사람들을 모아서 관리하는 곳들도 있었다고 하구요.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일본, 청 등지로 해상무역을 하던 사람도 있고, 그 와중에는 난파를 당해 일본-필리핀 으로 일찍부터 해외의 발달된 문물을 보고 온 조선사람들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도 좀 더 일찍부터 청/일분뿐 아니라 더 넓은 세계로 해상무역에 눈을 떴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죠. 네델란드표류인이 자국에는 대형선박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고 하자 허풍이라고 조선왕뿐아니라 고위관리들이 비웃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바로 위 사진을 보면 남자는 중화권사람이고 여자는 태국쪽 사람인 것 같습니다. 보통 태국쪽 여자들이 저렇게 옷을 입으니까요. 그리고 저 당시에 중화권-태국사람간의 혼인도 있었다고 하며 1909년도 부터인가 아버지가 중국사람이면 해외에서 출생한 아이도 중국국적을 따르게 한다는 법이 제정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화라는 것은 대체로 한쪽방향으로만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서로가 영향을 받기도 하고, 어떨때는 두개의 다른문화속에서 다른 형태의 문화가 형성이 되기도 하죠. 언어도 마찬가지로 두개의 다른 언어가 공존하는 지역에서는 상호간섭을 일으키기도 하고, 기존에 없던 언어나 문자형태가 생성된다고도 합니다. 

당시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의 삶은 많이 힘들고 고달펐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기술이 안 되어 있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집떠나서 객지에 사는 것 만으로도 힘든데, 이런 먼 해외에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삶은 지금의 저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형으로 잘 묘사를 해 두었네요. 그 당시의 병원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육체노동자들이 혼자살면서 병치레 하는 경우가 많아 중화식병원을 설립해서 운영을 했다고 합니다. 

약탕기가 있는걸 봐서는 중의의원 인 것 같네요.

아울러 늘어나는 중화권이주자들의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학교도 설립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태국 전역에 여행을 하다보면 오래된 화교학교들이 약간은 뜬금없는 지역에 있는걸 볼 수 있는데요. 무언가 그 지역에 수요가 있으니 화교학교를 만들었겠죠.

한국에도 인천과 부산에 보면 화교학교가 있듯이 말이죠.

저 인형모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사람들의 탁구사랑…

중국의 시골학교들 가보면 운동장에 대부분 탁구대가 있습니다 문제는 야외탁구대라서 바람불면 좀 치기가 힘들고, 또 큰 돌을 사각형으로 만들어 탁구대로 사용하는데 표면도 울퉁불퉁해서 이런 환경에서 어릴때부터 탁구를 연습하니까 수많은 고수들이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게 합니다.(농담입니다)

그러면서 중화식 절도 많이 설립을 한 것 같구요. 확실히 태국에서도 중화식 절과 태국식 절은 확연히 다르죠.

그러면서 이런 연극공연장도 생겨나서 여가생활을 보낼 수 있는 환경도 점차 마련이 된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도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빈부의 격차가 있어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의 집과 가난한 사람들의 집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태국전역 돌아다니다보면 볼 수 있습니다. 조만간 230년된 중화권 부자집의 주택을 한 번 소개해 보겠습니다. 

방콕 차이나타운 하면 저 위의 사진거리가 대표거리풍경이죠. 야경이 멋진 거리인데요. 저 거리를 The Gold Road 라고 하는데 실제로 금을 매매하는 가게가 많습니다. 달리 황금거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금매매를 많이 했던 것 같네요.

금매매가게도 저렇게 모형으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금은 현금이상의 가치를 가집니다. 태국의 불상들 중에 금으로 만든 것들은 도난을 피하기 위해 겉에 다른 재료로 위장을 해 두는데, 그래서 불상의 머리를 많이 약탈했다고도 합니다. 아시는분도 많겠지만… 태국에서 불상머리 매매는 범죄행위입니다. 

저 시대의 사진기록이 많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태국에서 중화권 사람들의 생활상은 어딜가나 저런 사진기록으로도 엿볼수 있어서 나름 고증하기는 쉬울 것 같습니다. 

아래사진은 태국에 살고 있는 화교들의 직업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네요.

그 당시 태국에서 발급한 비자인데요. 기록을 보니 10밧인가?로 2년간 거류비자를 발급했다는 기록도 있고, 비자발급을 위한 인세도 20~400밧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날 여기서 이런저런 이전 기록에 대한 설명을 읽어 보았는데, 이민1세대 중화권사람들의 삶은 엄청 힘들었다고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원래 이민1세대는 고생하는 세대이고 2세대 3세대는 그걸 누리는 세대라고도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가끔 1900년대 전후의 중국상해지역, 광동/홍콩지역, 또 태국, 말레이시아 지역의 삶으로 돌아가서 살아 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기는 합니다. 그건 제가 중화권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일 수도 있는데요. 

만약 제가 100년전 200년전 저 당시 사람이었고, 중국본토의 삶이 시궁창이었다고 한다면 저 역시도 어딘가로 떠나서 인생을 개척하려 했을 것 같습니다. 저의 성향상…

저 당시 아편전쟁 패배로 청나라는 국고를 채우려고 백성들을 상대로 세금도 많이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삶이 아주 피폐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정부는 국민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는 정책을 사용했는데, 상대적으로 북경에서 먼 광동 및 남쪽까지는 그렇게 제한할 수 없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저 여자분의 이름은 木 木 燕 이 아니라 林燕 인 것 같습니다. 나무목木 2개를 좀 더 붙여써야 할 것 같은데… 본인이 직접 썼다면 교육을 많이 못 받은 사람이었거나, 한자를 평소에 많이 써 보지 않은 태국사람이 저 문서를 작성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燕은 제비 라는 뜻이고, 이전에 황제의 딸 이라는 TV 드라마에서 딸의 이름도 저 燕 이 있었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여기 태국의 대중국수출물품 중 하나에 제비집이 있었다고 하죠.

그래서 방콕 차이나타운에 가면 이 제비집 파는 상점과 제비집요리식당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 제비집은 해안가에 사는 제비의 집으로 우리 시골에서 사는 그 제비집과는 다릅니다. 주로 해안가의 생물과 본인들의 침을 섞어 만들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공급량이 극히 적고 채집하기가 어려워 가격이 비싼 것이지, 뭐 딱히 약용효과는 없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한번 제비집요리를 먹어 보았습니다. 

잠시나마 100년 200년전으로 태국이주한 중화권사람들의 삶으로 시간여행을 한 김에,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화권느낌 물씬나는 카페에서 음료도 마시고. 빵도 먹었는데요. 저 빵에 제공된 저 소스가 너무나 맛있더군요.

자칫했으면 하나 더 시켜 먹을뻔 했습니다. 저의 대만카페메뉴로 만들어 볼 생각으로 이미 만드는 법은 배웠습니다. 

다시 첫번째 사진으로 돌아가서…

그 당시의 삶이 얼머나 힘들었으면, 중간의 하늘색옷 입은 여자분은 시장통 한가운데서 쓰러져 있습니다. 

오늘은 태국에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게 된 역사적배경과 그들의 삶을 짧게나마 훑어보았습니다. 

뭐가 어찌되었던간에 내 나라를 떠나 외국에서 정착하고 살아간다는 건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어려운 환경에 어쩔 수 없이 떠밀려 해외로 나온 사람들도 있을거구요.

방콕 차이나타운에 오시게 되면 이런 역사적배경도 생각하시면서 둘러보시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남아공 여자분과 소주한잔 했습니다

숙소에서 간단히 인사만 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여자분이 “나 이 소주 즐겨마신다. 함께 마실래?” 하면서 제 앞에 앉더군요. 저는 원래 술을 마시지 않지만, 밤10시 넘어 여자분이 술을 가지고 왔다는건 뭔가 함께 ‘대화’를 할 상대가 필요한 것이 아니겠나 라는 생각에 저도 함께 마셨습니다. 

처음 저 여자분을 봤을때, 팔, 손목, 몸통, 종아리 등등 온 몸에 문신이 있어서 뭔가 성격이 과격?할 거라는 그런 선입견이 조금 있었습니다. 종아리 뒷쪽에 일본사무라이얼굴인지 일본가부키여성얼굴인지 가 크게 그려져 있어서 더 그랬는지 모릅니다. 특히..

 

양쪽귀에 위의 사진속 머리묶은 남자처럼 귀에다가 링을 넣은걸 하고 있어서 뭔가 펑키스타일? 반항적인 성격? 같은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동남아국가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잠시 비자문제로 방콕에 왔다고 하더군요. 무튼…

제 앞에 큰 잔을 두고 술을 따라 주면서 

“한국영화 많이 보는데, 한국 꼭 가보고 싶다. 한국은 뭔가 낭만적이고 특별한 느낌이 있는 나라이다” 라고 하더군요.

제가 외국에서 많이 듣는 말이죠. ‘한국남자 잘 생겼다. 한국남자 로맨틱하다’ 다 그렇지 않다고 반박은 합니다. 

한국소주 중 오리지널맛은 안 마시고 이 요구르트맛 소주만 마신다고 하더라구요. 잔을 들어올리며 “한국어로 술잔 부딪히면서 하는말 뭐지? 영화에서 자주 봤는데” 라고 하길래 ‘건배’ 라고 해 주니 곧잘 따라하더군요.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인생살이 이야기를 하더군요. 저는 주로 들어주는 역할이었습니다. 외모와는 달리 말투나 생각이 뭐 ‘난 이 세상의 모든 규칙을 파괴하겠어’ 는 아니더군요. 그냥 집을 떠나 이렇게 세계를 돌아다니며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부류이더군요. 저의 크리미아 친구와 너무나도 비슷한 삶을 살고 있네요.

저의 크리미아친구 유튜브캡쳐입니다.  이 친구도 지금 베트남에서 영어 가르치며 지금까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살고 있는데요. 중국-태국-영국-베트남… 곧 러시아 가서 1년살기 하고 나서 다시 다른 나라로 갈 계획을 세우고 있던데, 제가 대만에 와서 나랑함께 어학가르치자 라고 하니까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 보겠다고…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죠. 지금 저의 대만카페에서 영어가르치는 그 미국인들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살고 있구요.

큰 틀에서 보면 저도 한국떠나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정착해서 사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보면 ‘SURVIVE’ 하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사는 것 비슷하고, 고민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저 크리미아친구랑도 일주일에 몇번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아이디어도 주고받고  하고, 어제 남아공여자분과 이야기를 해 봐도 하는 고민이 비슷비슷 합니다.  

늦은 시각이지만 편의점에서 면을 사와서 술을 마시기 전에 먹더군요. 그러면서

“공복에 술 마시면 안 돼”

또 폭탄주에 대해서도 잘 알더군요. 그래서 제가 폭탄주도 조심해서 마셔야 한다. 마실때는 그냥 잘 넘어가는데, 한순간 훅 가는 수가 있다. 라고 하니 자기도 잘 알고 있다면서 그래서 이런 방콕이나 낯선 곳에서는 그렇게 술 안 마신다. 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엄마가 나를 그렇게 키우지는 않았어” 라고 정확하게 이야기를 하더군요. 

참고로, 가장 억양이 깨끗한 영어사용국가가 남아공과 캐나다쪽 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전부터 남아공으로 어학연수 가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영어강사생활은 재밌냐 라고 물으니, 학생들이 열심히하면 재밌는데, 학생들중에 적극적으로 말도 하지 않고, 숙제도 잘 하지 않고, 물어도 대답도 잘 안하는 학생과 수업을 하면 강사생활에 회의감이 느껴진다 라고도 하더군요.

대충 어떤 느낌인지 이해가 가더군요. 저도 어학을 가르칠때 수업을 잘 따라오면 재밌는데,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 하면 많이 힘들거든요. 특히 틀릴까봐 부끄러워서 말 하지 않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외국어를 틀리게 말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거 아닌가요? 왜냐하면… 한국어능력시험 문제집 하나 찾아서 풀어보세요. 이건 무슨 한국어문법인데 생전 평생 듣도보도 못 한 그런 문법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한국어가 다 맞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거든요. 내 모국어 문법도 다 맞을 수가 없는데, 외국어 틀리는 것이 무슨 큰 일입니까?

저도 이제 대만집을 떠난지 20일이 되었네요. 

저의 블로그와 유튜브 배너에 인생모토가 있습니다. 

“어디서 살든 행복하면 그만” 

어디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한거죠. 

최근 태국에 있으면서 촬영한 영상 유튜브로 올려 보았습니다. 

그냥 사람사는 모습 보면서 이곳저곳 걸어 보았습니다.

코인세탁방에서 만난 대만에서 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남자와의 대화후…

장기여행의 묘미는 코인세탁이죠. 오전에 숙소근처 코인세탁점에 가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함께 세탁을 하고 있던 남자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여행을 왔는데, 현재 대만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대만에서 일을 한지 12년이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둘다 대만에서 일을 하는 외노자 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편의점에서 간단히 아침을 사서 세탁을 하는 동안 먹었습니다. 

고구마, 바나나(대만에서도 조식으로 꾸준히 먹던것), 빵, 요거트, 큰사이즈 물 해서 한국돈으로 3,300원 정도면 괜찮은 편이죠?

대만에서 12년 같은 공장에서 일을 했고, 최근에 귀국을 하고 싶어서 사장에게 ‘인도네시아로 돌아가고 싶다’ 라고 이야기를 하자 월급을 많이 올려줘서 계속 일하기로 했다고 하더군요.

오늘은 해외에서 일을 하는 외노자의 연봉이야기를 한번 해 보겠습니다. 사진들은 내용과 상관없는 지금 태국에서 찍은 사진들 입니다. 

태국의 공장지대에는 저런 식의 기숙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수많은 직원들의 숙소를 해결하려면 저런 형태의 숙소들이 엄청 많아야 합니다. 

<사례1>
저의 중국인 전직장동료가 있는데요. 그 직장동료가 어느날 월급이 낮아 힘들다 라고 하길래, 직속상사 찾아가서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 하고 월급을 좀 올려달라고 협상하라 했었죠. 면담을 했는데, 좋은 소리 못 듣고 나왔다고 하더군요. 그 뒤 퇴사하고 중국 돌아갔는데, 다시 회사에서 와달라 해서 거의 이전 연봉에 비해 2배 정도 인상된 조건으로 복귀했다고 하더군요.

<사례2>
오래 근무를 한 태국인직원이 이직을 하겠다고 하자, 부서도 옮겨주고 월급도 훨씬 많이 올려 주었다고 저에게 감사?한다고 하더군요. 그 당시 제가 다른 회사 이직소개를 해 주었거든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직원들이 많아 이런 숙소에도 문 바로 앞에 오토바이를 세울 수 있도록 저렇게 길이 있습니다. 

<사례3>
저랑 알고 지내는 태국직원 두명은 비슷한 조건에,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시기에 회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연봉차이가 3배가 넘습니다. 한명은 그냥 한 회사를 꾸준히 불평불만하면서 다니고 있고, 나머지 한명은 영어공부 열심히 해서 영어로 업무를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 이직을 했습니다.  

아직 10년전과 비슷한 연봉을 받는 그 태국직원의 경우는 제가 영어공부 시작하라고 500밧 정도 돈을 주기도 했는데, 결국 영어공부를 안 하더군요. 영어 하나 잘 해도 연봉차이가 2배 3배 날 수 있거든요.

태국직원들의 저런 숙소들은 월 1000밧~1500밧 정도의 좀 저렴한 곳도 있고, 3000~4000밧 정도의 깨끗한 환경도 있습니다. 물론 외국인노동자들은 5000~7000밧 정도에서 지내는 것이 보통이고 저는 10,000밧 이상되는 곳에서 거주를 했었습니다. 

제가 근무를 했었던 대만기업들의 연봉들을 대충 보겠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인지 중소기업인지 소규모공장인지에 따라 연봉차이가 많이 납니다. 

외국계기업의 해외근무자는 통상적인 연봉기준과는 다르게 ‘희소성’ 과 ‘특수성’ 이 많이 반영이 됩니다. 

그래서 한국인과장급이 월 300,000밧 이상을 받을 수 있는거죠. 사실 한국공장에서 과장급이 억대연봉을 받는 사례가 흔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해외는 직원채용에 대한 ‘특수성’ ‘희소성’ 이 있다보니 위의 사례들처럼 퇴사를 한다고 하면 엄청난 조건으로 딜이 들어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만약 그 직원이 정말 필요하다고 하면요) 한국에서야 한국인직원 채용하기가 어렵지 않잖아요. 

그런데 외국계기업들은 특정 국가의 직원을 찾기가 쉽지는 않으니 연봉이 아주 많아 지는거죠. 그러니까 과장급이 억대연봉을 받을 수 있는 거구요.

또 다른 사례는 저의 경우인데요.

제가 중국에서 사업을 할 때 저의 사무실 직원의 월급을 대략 2,400위안 정도 주었습니다. 당시 중국 대졸자 평균이 1,200위안 이었고, 일반인들 월급이 500위안 전후였던 걸 생각하면 적은 편은 아니었죠. 

어느날 그 직원이 저에게

“사장님은 중국물가사정을 잘 몰라서 그런 것 같은데, 저에게 급여를 너무 많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을 했었는데요. 2000초중반 중국은 그야말로 사업을 하다보면 사기, 암투, 배신… 주변에 믿을 놈 한명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공장의 자재관리하는 직원이 밤에 자재 개인적으로 팔아 치우고, 회계가 돈 들고 튀고, 총무직원이 공장직원 식비에서 공장식당과 짜고 매달 뒷돈챙기고…   제가 중국에서 이런저런 사기관련 이야기를 하려면 오늘 밤새워야 합니다. 

거래처 공장사장은 한국에서 자기 공장에 전화를 했는데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아, 중국공장으로 출장와서 공장을 들어가려는데 경비가 못들어가게 막았죠. 내 공장인데 왜 못 들어가냐? 라고 하니 이제부터는 ***의 공장이다. 라고 해서 알고보니 중국공장 명의를 빌려줬던 조선족직원이 아예 자기 공장행세를 하기 시작한거죠. 그 당시에는 중국인명의로 뭐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시대였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코로나시기가 끝나서인지 이전보다 대만초 관련 카페, 상점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저는 중국에서 혼자 사업을 하고 만약 그 직원이 제대로 일을 안 하거나, 딴 욕심을 가지거나, 나를 기만하려 하면 저는 사업 접어야 하는 상황이죠. 중국에서 중국현지인의 도움없이 한국인이 혼자 사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직원에게 1000위안(한국돈 125,000원 더 준다고 해서 저의 재정에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거든요. 특히 저는 사무실이 겨우 직원 몇 명이라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저의 운전기사 아저씨에게도 급여를 다른곳보다 훨씬 많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전부터 외국계회사 다니는 한국사람들 급여가 훨씬 많았던 이유이죠. 

그래서 나는 월급 2백만원 3백만원 받는데, 간혹 외국계기업이나 외국에서 6백만원 8백만원 혹은 천만원 가까이 받는 경우가 있죠. 그건 그 사람의 능력이 그 만큼 차이가 많이 난다기 보다는 외국계기업의 직원에 대한 ‘특수성’ ‘희소성’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중국 심천사무소 담당할 때 저의 중국인직원 월급이 당시 8000위안 이었습니다. 대졸자 급여가 2000위안, 왠만한 공장의 공장장 급여가 5000위안 전후였던 시절에 적지 않은 급여였죠. 그 중국인직원 입장에서는 외국계회사에서 근무하는 중국인이고 저의 한국본사 입장에서는 3000위안(약360,000원) 더 주고 저런 직원이 성과를 내 주면 사업전체가 더 잘 될 수 있는 겁니다. 

이전 중국에 있을때 개인사업하는 사장들 보면 매주 몇 번씩 중국가라오케 가서 룸아가씨한테는 1000위안씩 주면서 정작 자기 직원에게는 500위안이 아까워 월급 짜게 주다가 자기 직원에게 뒤통수 맞는 사례도 많이 보았거든요. 

위의 급여사례는 저의 주변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다른 외국계회사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억대연봉이 아니라 더블억대연봉인 사람도 있다는 걸 압니다. 특히 기술영업, 시스템영업 등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의 외국계기업 직원의 경우는 그렇죠.

제 대만지인의 경우는 대만에서 회사 다녔으면 7만대만달러 정도 받았을 것 같은데, 중국에서 중국회사에서 일하면서 지금 16만대만달러 받고 일을 하고 있거든요. 

이렇듯 외국에서 외국계기업의 연봉은 변수도 많고 조건들이 다 달라 연봉편차가 큰 편입니다.  우는아이 젖 더 준다 는 속담이 적용이 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오전에 코인세탁방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남자가 퇴사하겠다고 하자 급여 많이 올려줘서 계속 대만에서 근무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두서없이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영업종료를 중국어로? 그리고 그 한자의 의미는?

대만에서 홀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아내가 위의 메세지를 조금전에 저에게 보내왔네요. 

마침 오늘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는 차에 재미있는 한자漢字 하나 소개해 봅니다. 

가게영업을 종료하다, 가게문을 닫다, 를 중국어로 打烊 이라고 합니다. 

關門 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실생활에서 打樣[Da Yang] 이라는 표현을 정말 많이 쓰죠. 위의 메신저처럼요.

위의 문구는 ‘오늘 조금 일찍 가게문을 닫아도 될까?’ 인데요.

烊 은 불화火 가 있는 글자로,  煬[yang]  과 동일하게 사용된 겁니다. 

煬[yang] 은 烊[yang] 처럼 금속을 녹이다 외에도 굽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煬은 고기를 굽다 라는 뜻으로 炙[zhi] 라는 한자와 함께 쓰입니다. 

대만고기식당 간판을 자세히 유심히 보시면 저 한자 炙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자성어중에 ‘회자인구膾炙人口’ 할 때 쓰는 단어 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거나 널리 알려진다는 표현을 할 때 ‘사람들 사이에 두고두고 회자가 될 일이다’ 이런 말 쓰잖아요. 그 때 그 ‘회자’ 입니다. 

다시 돌아가서 가게 문을 닫았다 라고 할 때 打烊 이라고 하는 건, (고기를 구울 혹은 음식을 할) 불을 이미 껐다 라는 유례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업종료했다 라는 중국어표현이 打烊 인 것이고 저 한자의 유례도 煬炙 라는 표현에서 나온 것입니다. 

한자이야기 재미 없어 하실것 같아 잘 안 올리려 하는데, 오늘 어떤 내용 쓸까 고민하고 있는데 아내가 저 메세지를 보내 와서 한 번 소개해 보았습니다. 

 

방콕숙소 근처 걸어서 돌아보기

어차피 오래 방콕에 머무는 마당에 낮에는 숙소에서 쉬다가 해 떨어지기 전 조금 선선할 때 숙소주변을 조금 걸어 보았습니다. 관광객들이 많습니다. 이번에 보니 중화권관광객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중국본토억양, 대만억양, 광동어 등등 다양한 중화권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숙소는 전형적인 배낭여행객, 특히 저 처럼 조금 오래 머무는 그런 여행객들이 많았습니다. 
어제는 온몸에 문신(일본풍의 여자문신이 종아리에)을 하고 스타일이 조금 와일드한 서양여자분이 있어 무서운 마음에 눈을 피했는데, 어쩌다 같은 공간에 단 둘이 있게 되어 인사를 하고 가벼운 대화를 할 상황에 처해져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남아공에서 와서 캄보디아에서 영어를 가르치는데 소위 말하는 비자런? 하러 태국에 왔다고 하더군요. 

여기 테이블에서 저는 컴퓨터를 합니다. 넷플릭스도 보고 그냥 이것저것 하는데, 이 숙소에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많더군요. 인도네시아 여자분들이 태국에서 구매를 하느라 장기로 머무는 것 같은데, 항상 저기 쇼파에서 여러명이서 지냅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제 며칠 봤다고 약간 정?도 들어 가네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저 쇼파에 여자분 한명이 누워 있습니다. 

물건을 파는 남자분이 비둘기를 바라보고 있네요.

저녁식사 시간대라 주변 건설현장의 작업자들이 나와서 음식을 사고 있는 모습입니다. 

태국전통극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저는 저 태국전통극을 실제로 본 적이 있습니다. 동작들이 독특해서 한 번쯤 보실만 할 겁니다.

걷다보니 MBK center 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여기가 관광객들 사진촬영장소 인듯 합니다.

마지막 사진의 저 중국인커플은 남자분이 연신 여자분의 사진을 찍어주는데, 여자분이 확인후에 계속 ‘왜 이렇게 못 생기게 찍냐?’ 며 남자분을 구박하더군요. 

저 같은 경우는 구도, 거리, 각도까지 다 세팅해서 들고만 있다가 휴대폰 버튼만 눌러도 ‘사진이 잘 못 나왔다’며 구박받기 때문에 공감이 되네요.

점점 해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복고풍의 디자인 택시입니다. 저는 태국에서 Grab만 사용해서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CABB 이라는 택시서비스 인 듯 합니다. 

그리고 여기도 삼성광고 많이 하더군요.

건물전체 대형스크린을 이용해 삼성광고를 하고 있는데, 여기는 또 바로 옆에…

애플스토어가 있습니다. 

현대식 건물 바로 앞에는 또 이런 오래된 시계탑도 보실 수 있습니다. 보니까 숫자가 태국어로 적혀 있습니다.

CentralWorld 앞에 두개의 유명한 신이 있는데요. 저 신은 연애를 관장하는 신입니다. 대만의 삼신할매신 과 비슷한 역활을 하는 신입니다. 바로 그 옆에 있는 신은 성공을 관장하는 신입니다. 얼마전 저의 태국친구가 저기서 기도를 했습니다. ‘좋은 신랑감 만나고, 지금 하고 있는 일 성공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는데요. 이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소개를 해 보겠습니다. 

숙소를 돌아올 때쯤엔 해가 완전히 떨어졌습니다. 퇴근시간이 되자 도로는 더 혼잡해 보입니다. 

오늘아침 숙소 주변의 어느 식당에 걸려 있는 인형들입니다. 목에 링을 건 소수민족 인형도 보입니다. 아침에 보니 밝은 분위기인데, 밤에 보면 나무에 사람목이 걸려 있는 모습이잖아요.

사람 목 매달려 죽은 시체 혹시 실제로 보신 적 있나요? 영화말고…  저는 고등학교시절 여름방학 자율학습 하러 등교하는데, 흐린날 학교운동장 철봉에 어떤 남자가 목을 매달아 죽었더라구요. 아직 경찰이나 119가 오기전 이라 그 목 매달린 시체를 바로 옆에서 보며 교실로 들어 갔고, 점심시간 무렵 자율학습 땡땡이 치고 학교를 빠져 나가는데, 마침 정확하게 제 앞으로 그 시체를 들 것에 실어 차량으로 옮기더군요. 하얀천 밖으로 빠져 나온 손이 바로 제 앞으로 스윽 지나가는데 순간 조금 무섭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날밤… 당시에는 독서실에서 밤샘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그 날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주변을 보니 컴컴한 독서실 내에 저 혼자 있더군요. 밖에는 비가 내려서 집에 돌아가기도 어렵고… 그런데 아침에 보았던 시체 생각도 나고… 

날씨가 더우니 비가 좀 내렸으면 좋겠는데, 방콕은 비소식은 없네요.

한국의 상가화장실들이 깨끗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며칠전 한국의 어느 화장실을 갔을때, 저렇게 청소SOP가 사진으로 설명을 해 둔 곳이 있더군요. 인상적이더군요. 제가 공장에서 SOP 만들때 저런 식으로 많이 만듭니다. 현장작업자들이 많은 글을 읽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글이 많으면 잘 보지 않거든요. 그래서 현장작업자를 위한 SOP를 만들때는 직관적으로 만들죠. 저렇게 사진위주로 하거나 사진을 크게하고 문장을 최대한 줄이는… 그런걸 하는 것이 제 업무였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는 이 브랜드가 나름 대기업이라 이 정도는 신경을 쓰네 라고 생각을 했죠. 보통 화장실 가보면 청소를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확인정도만 하는 ‘체크리스트’ 만 있는 곳이 많거든요.

그런데, 여기도 보편적으로 하는 큰 실수를 하고 있더군요. 바로…

청소의 기본은 청결한 청소도구부터 시작을 합니다. 절대로 저런 젖은 걸레는 저렇게 방치해 두면 안 됩니다. 

청소도구가 더러운데 그걸로 청소해봤자 뭐합니까?

그래서 저런 청소도구는 항상 공중에 띄워서 건조를 할 수 있도록 걸어 두어야 합니다. 바닥에 저렇게 두면 냄새 엄청 납니다. 그런데 제가 화장실 가보면 많은 곳에서 밀대걸레 저런식으로 보관을 하죠. 

청소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럼 너는 너네 카페 청소도구 어떻게 관리하냐? 좋은 지적입니다. 

저는 청소를 할 때 물리적힘과 화학적소독을 병행합니다. 제 아내가 그렇게까지 빡빡 안 밀어도 된다고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저는 물기 바짝 빼고 바닥은 힘을 주어서 닦습니다. 

화장실 같은 경우는… 뭐랄까. 저는 카페를 시작하기 전부터 

‘화장실이 지저분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장사를 접는다’ 는 각오를 하고 시작을 했습니다. 저는 이전에 개인 사무실이 있을때도 화장실은 정말 청결하게 유지를 했습니다. 화장실 유지하는 모습을 보면 그 공장이나 기업의 수준을 대충은 알 수 있습니다. 

제 청소도구 걸어놓은 사진이 없어서 이전에 찍어둔 걸로 대신합니다. 저의 가게 옆 벽 비가 내리지 않는 저 곳에 청소도구를 모두 공중에 띄워 둡니다. 청소후 건조를 시키지 않으면 냄새가 나거든요. 저기 밀대걸레가 보이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위의 사진에서 저의 옆집 주인가족의 개 ‘컬러’ 였는데요. 위의 사진이 제가 최근에 교통사고로 죽기 바로전 찍은 마지막 사진입니다. 

저 때 미용도 하고 목욕도 새로 하고 저렇게 돌아다니다가 차에 치여서 죽었습니다. 무튼…

좀 유명하다는 맛집 식당들 중에서도 그렇게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을 정도면 약간의 돈을 써서 화장실 좀 깨끗이 유지하지 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 많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인식이 못 따라가는 거죠.

위의 화장실을 보면 분명히 좀 오래된 건물입니다. 제가 며칠전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건물이 오래된 거야 투자를 다시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깨끗하게 유지를 하는건 ‘운영’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이 식당도 이 지역에서 단체손님 엄청 오는 유명 대형식당인데 화장실은 저 모양입니다. 

청소를 하지 않죠.  운영을 못 하거나 화장실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 그럼 한국화장실은 대체로 깨끗할까? 제가 중국에 오래 있어서 한국화장실은 대체로 중국보다는 깨끗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가 한국을 가끔 갈 때마다 화장실이 그렇게 깨끗하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요.

한국은 가게들이 대체로 위와 같이 공동상가에 위치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을 공용으로 사용하죠. 

‘공동책임’은 뭐다?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다보니 화장실들이 대체로 지저분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상가화장실중에서도 비밀번호를 걸어 둔 곳이 많고, 어떤 곳은 영수증에 비밀번호를 표시한 경우가 있죠. 

저는 그렇게 하는 것에 찬성을 하는 편인데요. 왜냐하면 청결유지보수도 ‘비용’ 이거든요.  이번에 한국갔을때 카페에서 어느 남자가 ‘화장실비밀번호가 뭐에요?’ 라고 묻자 직원이 ‘영수증에 비밀번호 있습니다’ 라고 하니까 ‘화장실 하나 가는데 꼭 음료를 시켜야 해요? 아C 너무하네’ 라고 하는 걸 홍대모카페에서 들었거든요.

저는 저의 집 화장실을 카페화장실만큼 청결히 유지하지는 않습니다. 청결유지도 어차피 유무형의 비용이거든요. 

하지만 카페화장실 만큼은 ‘청결하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장사를 접는다’는 각오로 청소를 하며, 그 청소의 기본/출발점은 청소도구를 깨끗하게 유지하는거죠. 그런 면에서 보면 첫번째 사진의 저 가게는 대기업프렌차이저라 SOP가 사진으로 되어 있는 것은 좋았으나,청소도구 관리상태를 보면 아직 저 회사에 이런 SOP 관리하는 직원이 저것까지는 모르는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저의 집 화장실에서 제가 용변을 보고 있으면 종종 따라와서 저럴게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니니 입니다. 

본문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이 화장실은 청결하지만 남자 소변기의 위치가 저렇게 되어 있습니다. 통로에서 다 볼 수 있게 되어 있죠. 저기 남녀가 다 지나다니는 통로거든요. 통로쪽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차치하고…

저기 손 씻는 세면대가 남녀화장실 공용입니다. 저거 하나 밖에 없습니다. 저쪽편에서 볼일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와서 손씻고 있으면 그것도 나름 엄청 불편한 상황 아닌가요? 제가 손 씻으며 보니까 성기가 다 보이는데… 소변기 왼편에 저 나무판을 설치할 것이 아니라 소변기와 세면대 사이에 나무판을 설치해야 될 것 같은데 말이죠.

그리고 제가 태국에 살면서 느낀 것이 의외로 이미지와는 달리 태국은 화장실들이 깨끗합니다. 오히려 한국의 상가화장실보다 더 깨끗한 곳들이 많구요. 중국과는 비교가 안 되구요.  차이컬쳐시즌1에서도 화장실에피소드 적은 적이 있고, 차마 적지 못 한 내용도 많은데 중국에서 화장실이야기 하면 엄청난 이야기 나올 듯 싶습니다.